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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계승자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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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1,431회 작성일 20-08-0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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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갱생》승용차는 시행정위원회청사마당을 나섰다.

서정환은 운전사더러 곡산공장으로 가자고 일렀다.

그는 여러날전에 도당책임비서 석태진으로부터 아들 재영이소식을 들었다. 그때 그는 너무도 기쁘고 흥분해서 북천강변에 방풍림 조성하는 문제와 관련한 부서사업토의를 황급히 마무리했다.

한시바삐 저녁이 되여 집으로 가서 안해한테 아들이 살아있다는것을 알리고싶은 마음뿐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차차 흥분이 가라앉고 아들이 건강한 몸으로 곡산공장에서 열관리공으로 일한다는 천만다행스러운 사실자체도 어쩐지 범상스러운것처럼 생각되였다.

아들이 어데가서 잘못되지나 않았는가 하고 가슴조이는 불안과 걱정으로 잠못 이루던 고통스런 밤들은 어느결에 잊어졌다. 아들을 내쫓았던 자신을 반성하고 이제 재영이를 찾으면 죄다 용서해주고 가정에 받아주리라 생각했던 그였다. 그러나 재영이가 멀쩡히 살아있을뿐아니라 멀지도 않은 시내 곡산공장에 있으면서 자기 행처를 알리지 않고 속을 태웠다고 생각하니 괘씸하기도 하였다. 재영이가 역시 속통이 못돼먹은 녀석이라고 단정했다. 그런 녀석을 데리러가는것이 그다지 바쁘지 않다고 생각되고 또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행정위원회사업이 볶이다나니 서정환은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던 그는 석태진으로부터 엄한 추궁을 받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재영이 일로 걱정하고계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가슴이 얼어드는듯싶었다. 서정환의 심중은 자못 복잡하였다. 재영이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준비는 되였지만 아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할지 은연중 걱정스러웠다.

이제 아들앞에 어떻게 나타날것인가? 지난날의 랭혹한 자존심과 체면을 누르고 머리를 숙인다는것도 헐치 않은 노릇일것이였다. 반갑다고 기쁘다고 속에 없는 수선을 떨수도 없는 일이였다. 차라리 안해를 보냈을걸 하고 후회도 했다. 순녀는 이런 경우에 어머니로서 아들과 무랍없이 마음이 통할수 있을것이 아닌가.

《갱생》차가 언덕배기밑에 이르렀을 때 서정환은 운전사더러 차를 멈추게 하였다. 경사진 길가녁으로 기름때 절은 작업모를 눌러쓴 사람이 접이칼처럼 허리를 구부리고서 안깐힘을 써 손밀차를 끌어올리고있었다.

서정환은 급히 차에서 내려 탄을 듬뿍 실은 손밀차의 뒤판자를 떠밀었다. 무연탄짐에 눌린 손밀차바퀴가 삐걱거리면서 쉽사리 언덕배기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손달구지임자가 뒤를 돌아보다가 서정환을 알아보고 반가와했다.

《아니, 이거 시행정위원장동지가?!》

《어서 올라갑시다.》

서정환은 벌씬 웃으며 고개짓을 했다. 그도 시행정위원장으로 부임하던 날 이 언덕길에서 만났던 사람을 알아본것이 기뻤다. 그때의 손밀차였지만 무연탄은 질이 다른것이였다. 시내 공장들의 생산용과 살림집 땔감으로 평남도에서 기차방통으로 들여온 질좋은 무연탄이 아니였다. 아무리 보아야 이번에 도에서 개발한 령산탄광에서 캔 발열량이 낮은 무연탄이였다.

도사로청의 청년돌격대가 령산탄광으로 가는 산협길을 아직 채 닦지 못해 먼 길을 에돌아 몇자동차 실어왔으나 저탄장에서 공급지령표를 떼주어도 누구도 그걸 때겠다고 실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앞으로 령산탄광에서 본격적으로 탄을 캐서 실어온다 해도 때는것이 문제거리였다.

서정환은 언덕마루에 오르자 허리를 펴고 탄가루묻은 손을 툭툭 털었다.

《우린 이렇게 또 만났구만요. 강안기계공장에서 일하지요?》

《수리공 채혁입니다. 저번때 난 행정위원장동진줄 모르고 말을 막 했습니다.》

채혁은 미안쩍어하며 땀에 젖은 모자를 벗고 팔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안되는 일을 놓고 사람을 가리겠습니까. 시행정위원장이 응당 받아야 할 비판이였지요. 앞으로도 그래주시오. 우리 시에는 만사를 외면한채 울타리를 치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은 많아도 난관을 안타까와하고 소리나게 뛰여다니는 사람은 적은것 같습니다.》

《난 행정위원장동지가 령산탄광 페갱속에 들어가 배낭에 탄을 캐내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감동되였습니다.》

《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가르침대로 했을뿐입니다. 아니, 아직 제 고장 탄을 캐때라는 지도자동지의 말씀을 관철하지 못했습니다.》

서정환은 무겁게 뇌이고서 채혁이 내놓는 담배쌈지에서 써래기를 한가치 말아물었다.

《채혁동무, 저탄장에는 고열탄이 많겠는데 왜 령산탄을 실어옵니까?》

《우리 고장에서 나는 탄을 우리가 때야지 누가 때겠습니까. 내 요즘 집에서 화독을 개조하고 이 저질탄을 때보는데 괜찮을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지만 화독보온벽을 이중으로 잘 손질해서 열이 허실되지 않게 하느라면 승산이 있을겁니다.》

《령산탄을 살림집아궁이에서 땔수 있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우리 시민들이 제 고장에서 탄을 캐서 마음껏 때게 하기 위해 먼 북관땅에 오셨댔는데 채혁동무의 일을 알면 크게 기뻐하실겁니다.》

《시행정위원장동지, 제 마음도 그겁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기쁨을 드리는 일을 한다는 생각만 해도 힘이 솟구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그래서 난 며칠전에도 청년돌격대에 나가 길닦이를 하는 아들한테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오금박아 편지를 보냈습니다.》

《도사로청돌격대에 아들을 내보냈습니까?》

서정환은 부러운 눈길로 물었다.

《그러문요.》

《령산탄광개발공사에서 산협길 빼는 일이 제일 힘들겠는데.》

《그다지 달가와하지 않는걸 한번 단련하라구 떠밀어보냈지요. 그 녀석이 청년돌격대에서 건달기를 뿌리뽑구 의지를 벼렸으면 좋으련만.》

채혁은 다 탄 마라초끄트머리를 손밀차의 탄무지에 집어던졌다.

서정환은 손밀차를 끌고 멀어지는 채혁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였다. 그는 아들문제를 걱정하는 채혁이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였다. 제 친자식이 있어 그것때문에 속썩인다는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갱생》차가 그의 곁에 와 갈길을 재촉하듯 부릉거렸다. 그제야 서정환은 펀뜩 정신이 들어 차에 올랐다.

《갱생》차가 곡산공장구내에 들어가 커다란 낟알저장탕크옆의 공지에 멈춰서자 인차 초급당비서가 마중나왔다.

보통키에 이마가 약간 벗어지고 실눈을 한 초급당비서는 이미 사연을 알고있는지라 서정환을 무척 동정하는 낯빛이였다.

《저기가 보이라직장입니다.》

그는 시행정위원장과 보이라공과의 극적인 상봉에 흥미를 가지고 립회설 생각인지 류달리 친절을 베풀어 안내하려고 했다.

《날 재영이한테 혼자 가게 해주시오.》

서정환은 초급당비서의 호의를 거절하는것이 미안쩍었으나 량해를 구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쩐지 기쁨보다도 불안과 위구심이 앞서는 이 마당에 다른 사람이 있는것이 싫었다.

마음놓고 말할수 없을것 같고 감정을 터칠수 없는것도 있겠지만 아들과의 피치 못할 복잡한 갈등을 낱낱이 드러내보이고싶지 않은것이였다.

아연도판을 씌운 보이라직장건물 지붕너머로 비바람에 퇴색한 벽돌굴뚝이 키를 솟구고서 낟알저장탕크와 여러 직장건물들을 굽어보고있었다.

지붕꼭대기에 작은 통풍지붕을 얹은 보이라건물의 창문들은 채광과 환기가 잘되게 칸살창문들이 폭이 넓었다.

아들이 일하는 곳이라는 호기심도 있었지만 그전날 공장지배인을 할 때 보이라를 대체로 알고있는 서정환이여서 건물밖에서부터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살펴보게 되였다. 걸핏하면 닦은 뒤가 없이 먼지가 끼는 보이라창문들의 유리가 그만하면 맑은 축이였다. 생산증기를 보내는 굵은 관들은 두툼하게 보온을 잘하고 흙매질을 반반히 해서 보기에도 좋았다.

배구장옆의 꽃밭은 누군가 철이 지나 말라죽은 꽃가지들을 뽑아버리고 흙을 고루 손질해놓았다.

서정환은 재영이가 일하는 곳이 보이라실이지만 환경이 깨끗하고 자기 일에 애착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일터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놓였다.

그는 배풍기와 송풍기의 세찬 동음이 울려나오는 보이라건물의 묵직한 철문을 열고 안에 들어섰다.

알싸한 탄재먼지내가 풍기고 후끈한 열기가 얼굴에 마쳐왔다.

탄때가 묻어 얼룩진 모자를 눈덕까지 내려쓰고 수건을 목에 걸친 청년이 긴 쇠장대를 화구안에 쑤셔넣고 이글거리는 탄불층을 들춰놓고있었다. 미분탄보이라인데 불판에 녹아붙은 슬라크재가 미처 재처리사슬판밑으로 빠지지 못하는 모양이였다. 미분탄투입과 송풍량을 적당하게 조절하지 못할 때 생기는 페단일수 있었다.

젊은이는 런닝그가 땀에 푹 젖어 쇠장대로 쑤시지만 슬라크에 구멍만 생기고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쇠장대질이 서툴었다. 젊은이는 보이라조작에 햇내기인것 같았다.

널쪽걸상에 앉아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줄곧 젊은이를 지켜보던 나이지숙한 열관리공이 참을성을 가지고 나지막하게 소리질렀다.

《쇠장대를 왼쪽으로 틀라구.… 배허벅에 힘을 주구서…》

서정환은 저으기 놀래서 바라보았다.

쇠장대끝의 둥근 고리손잡이에 매달려 헛되이 애쓰는 젊은 열관리공이 바로 재영이였다.

나이지숙한 열관리공이 널쪽걸상에서 움쭉 일어나더니 벙어리장갑을 끼고 재영이한테 다가섰다.

《쇠장대를 이리 내라구.》

그는 쇠장대의 고리손잡이를 거머쥐자 얼꾼해 서있는 재영이를 어깨로 밀어버렸다.

재영의 손에서 그렇게 육중하게 움직이던 긴 쇠장대가 그의 손탁에서는 화로의 부저가락처럼 가볍게 놀았다.

그는 불길이 사품치는 화실안을 눈여겨살피더니 미분탄불에 뻘겋게 단 쇠장대끝을 춤추듯 돌려가며 엉켜붙은 슬라크덩어리들을 뜯어내고 부스러뜨렸다. 어느결에 쪼각난 재는 사슬불판밑으로 떨어지고 채 깨지지 못한 큰 쪼각들은 아궁앞으로 끌려나와 떨어졌다.

옆에 밀려난 재영은 어깨를 처뜨리고 슬라크가 깨끗이 없어지고 파란 불길만이 솟구치는 화실안을 부러운 눈길로 보았다. 그러더니 락심해서 웅얼거렸다.

《기관장아바이, 난 안될것 같아요.》

기관장은 쇠장대를 솜씨있게 끌어내여 철판바닥에 내려뜨렸는데 듣기 좋은 쇠부딪침소리가 났다.

《첫술에 배부르겠나. 보이라 쇠장대질을 온전히 배우자면 이마때기가 타서 두어껍질은 벗겨져야 된다니.》

재영은 엉겁결에 손으로 이마덕을 문질러보았다.

서정환은 저도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기관장은 쇠장대질을 잘하지 못해 오래 우물거리느라면 보이라아궁에서 사품쳐나오는 뜨거운 불길에 얼굴이 익게 된다는걸 비교해 말한것이였다.

《그러자면 얼마쯤 걸리나요?》

《다섯달은 넘어야 해.》

《그렇게 오래요?!…》

재영은 한숨을 쉬였다.

《땀이나 닦으라구.》

기관장은 재영의 목에서 수건을 벗겨 도로 던져주었다.

기관장은 별반 땀을 흘리지 않았다. 그는 스뎅물통뚜껑에 걸쳐놓은 국자고뿌로 찬물을 떠서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보이라압력계를 올려다보았다.

《증기가 익었는걸. 압이 올랐어.》

기관장은 가열기의 변으로 솔솔 새여나오는 투명하다 못해 새파랗게 단 증기발을 만족해서 훔쳐보고는 송풍기스위치를 잡아당겼다.

《한바탕 쉬자구.》

그는 널쪽걸상어방에 벙어리장갑을 집어던지고 탈의실쪽으로 갔다.

송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멎자 널다란 보이라작업장은 화실안에서 불찌튀는 소리와 조절변에서 시내물소리같은 증기흐르는 소리뿐 한결 조용해졌다.

재영은 부아가 치미는지 자기의 손탁에 굴복하지 않는 쇠장대를 다시 집어들고 기관장의 몸동작을 본따 둔장질해보다가 맥이 나서 철판바닥에 도로 메치고말았다. 그러더니 모자를 벗어 기관장의 벙어리장갑우에 훌 던지고 걸상에 주저앉아 목수건으로 땀을 씻었다.

서정환은 그 자리에 못 박힌듯 서서 아들의 땀에 뜬 벌기우리한 얼굴이며 손짓과 몸짓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집마당에서 만났던 그때의 아들이였지만 어딘가 다른 청년같아 보였다.

서정환의 마음속에는 그때와 같은 랭담과 멸시와 분노는 조금도 없었다.

그동안 애가 체격이 보기좋게 든든하게 자랐구나 하는 후더운 생각이 갈마들었고 쇠장대질에 익숙하지 못해 속이 상해하는 아들의 행동은 그에게 가슴아플 정도의 깊은 동정심을 자아냈다.

《재영아…》

서정환의 갈린 목소리는 창너머에서 나지막이 고르롭게 울리는 배풍기소리에조차 눌려 잦아들었다.

재영은 누군가의 부름소리를 들었는지 서정환이쪽에 얼핏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보이라에 온 웬 낯선 손님으로 여겼는지 상관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장을 꺼내 철판바닥에 놓고 골똘히 들여다보았다.

서정환은 아들한테로 가까이 다가가 이번에는 큰소리로 불렀다.

《재영아, 나다.》

아들은 흠칫 몸을 떨더니 머리를 들었다.

재영의 놀란 눈길이 한동안 서정환을 올려다보더니 뼈마디가 부러지기라도 한것처럼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때묻은 종이장이 손에서 떨어졌다.

첫순간 놀래고 당황해서 허둥거리던 재영의 눈길이 점차 안정을 찾더니 이어 차거운 빛이 떠올랐다.

일종의 경계심과 랭기가 서린 아들의 얼굴에서 아버지에 대한 반가움같은것은 꼬물만큼도 찾아볼수 없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저 이렇게… 네가 여기 있다기에 왔다.》

서정환은 조금 열적게 웃었다.

그는 아들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부름이 나오지 않는것이 서운했지만 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기 좀 앉아도 되겠니?》

그는 아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널쪽걸상에 앉았다.

《너도 여기 와 앉으려무나.》

그는 재영에게 곁에 있는 널쪽걸상을 가리켰다.

《괜찮아요. 난… 그럴새가 없어요.》

서정환은 자기를 반가와하지 않고 피하려는 아들의 랭정한 태도가 서운했지만 참았다.

《그새… 고생을 했다지?…》

죽으려고까지 했던 아들이니 자기에게 이런 랭대를 해도 참는것이 온당할것이였다.

《내 고생이 무슨 상관이예요.》

재영은 여전히 쌀쌀히 말했다.

서정환은 성냥을 켜 입에 문 담배가치에 불을 붙이려다 말고 너그럽게 웃었다.

《왜 상관이 없겠니. 난 널 키웠는데. 엇드레질 말고 집에 들어오려무나.》

《엇드레질이라구요?》

재영은 억울함과 분기가 되살아오르는지 귀밑까지 뻘겋게 열이 올랐다.

서정환은 어떻게 해서나 아들과의 관계를 칼날처럼 만들지 않고 어물쩍 눙쳐서 해결하고싶었다.

《재영아, 차를 가지고왔다. 집에서 어머니가 기다린다. 어머니가 널 얼마나 보고싶어하는지 아느냐?》

서정환은 아들의 약한 고리를 찔러 말머리를 돌렸다.

재영은 눈물이 글썽해서 아래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내겐…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어요. 난 고아예요.》

《재영아… 내 그날 너무했다. 아버지로서 도량이 없구… 잘못했구나.》

서정환은 아들의 눈물과 울부짖음에 감동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잘못했다구요?!》

재영은 거멓게 덞은 손등으로 눈물을 뻑 훔치였다.

《아버진 잘못한게 없어요. 어려운 시기에 부모를 버린 배은망덕한 자식을… 피줄이 다른 자식을 어떻게 용서할수 있겠어요. 아버진 내게 그걸 똑바로 인식시켰구 자존심과 피줄의 법칙대로 옳게 행동하셨어요. 난 아버지가 회복되고 시행정위원장이 된게 기뻐서 달려갔던거예요. 지난날 잘못을 빌고 같이 살고싶었어요. 하지만 인젠 다시는 가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자식의 올리사랑은 바라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난 일찌기 고독하게 사는 늙은 양부모를 위로해드릴만 한 의리심마저 줴버린 아들이예요. 어머니한테도 그렇게 말씀해주세요.》

서정환은 말문이 꺽 막혔다. 얼마나 똑똑하고 사리정연하고 랭담하고 매몰찬 녀석인가.

재영이를 찾아오면서 되살렸던 옛정은 삽시에 얼음벽처럼 부서지고 리성과 아량에 눌렸던 분노가 용암마냥 끓어올랐다.

《그래, 넌 화해할수 없다는거냐?》

서정환은 거칠게 물었다.

《아버진 참 고집스럽군요. 뭘 화해한단말이예요?

아버진 아버지대로 살고 난 나대로 살면 그만인걸요. 우린 서로 남이예요. 날 더 건드리지 마세요.》

서정환은 고통스러워 한동안 말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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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좋다. 널 건드리지 않으마. 집에 들어오라구 빌지 않겠다. 다시 찾아오지도 않구.

한가지만 말해둘게 있다. 넌 내 잘못과 네 잘못을 한 천평에 올려놓고 평형을 이룬 같은 무게로 달구는것 같은데 어리석은짓이다.》

서정환은 한번밖에 빨지 못한 담배가치를 발로 비벼껐다.

《난 지난간 일의 잘못의 경중을 따지고 시비를 가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넌 틀려먹었다. 나이많은 아버지가 도량을 가지고 널 집에 받아들이지 못한걸 반성하는데 넌 뭐냐?!》

《아버지, 내 잘못이 커요. 키워준 은혜를 저버렸거든요. 하지만 그때 난 아버지를 따라갈수 없었어요. 난 아버지를 나쁜 사람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으로 과오를 범했다고… 내가 모르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를 따라가는것이 우리 제도와 사상적으로 다른 길로 가는것 같았어요.》

서정환은 온몸을 휩싸는 서글픔에 목이 메였다. 떨어져 내려갈 때의 자기 처지가 새삼스레 되새겨졌다.

《아버지가 촌에서 올라오고 직위가 높아졌을 땐 사상이 같아졌다고 생각을 하고… 너의 론리가 모순되지 않구 정연하구나. 참 훌륭한 판단력을 가진 청년이다. 사회정치현상을 지내 단순하게 보는게 탈이지. 글쎄 네말대로 사람은 관직이 올라가면 훌륭해지고 사상이 투철해지는지 모르겠지만 물은 말이다, 작은 시내물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흐름이 풍만해지고 큰 강이 되는 법이다.

올라가고 내려가는걸로 사람의 진가를… 사람의 사상을 재버릇하지 말아라. 그러느라면 어미품에서도 떨어지고 무리에서도 배척받은 외기러기신세가 된다. 남이라도 그런 말은 들어둬라. 잘 있거라.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

서정환은 널쪽걸상에서 일어났다. 빈혈이라도 온것처럼 눈앞이 핑 돌았다.

그는 넘어질것 같아 걸음을 내짚지 못하고 굳어졌다. 동안이 지나서야 손수건을 꺼내여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보이라칸이 바깥날씨에 비해 그다지 덥지 않은데도 그는 속내의가 젖어들게 땀을 푹 쏟았다.

무너진 희망, 인생의 비애, 정신적허탈감이 그의 육체에서 즙을 깡그리 짜낸것 같았다.

《잘 가세요.》

재영은 아무런 감정도 온기도 없는 말을 던지고는 보이라칸 구석쪽으로 갔다. 그는 거기에서 통고무바퀴로 된 따찌까를 끌어다놓고 보이라아궁에서 흘러나와 쌓인 탄재를 곽삽으로 와락와락 퍼담았다.

재먼지가 풀썩풀썩 일었다.

문이 열려있는 보이라탈의실쪽에서 기관장이 황급히 뛰여왔다. 기관장은 성깔사납게 삽질을 해대는 재영이한테서 다짜고짜로 삽자루를 나꾸챘다.

《먼지를 피워야 되겠어? 심술궂다구야. 이제 보니 넌 정말 도덕이 쥐뿔만치도 없는 녀석이구나.》

기관장은 재영이한테 엄하게 눈총을 쏘았다. 그는 제풀에 부아가 돋아 입술을 터지게 깨물고 선 재영이를 노려보고나서 어찌할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기관장은 보이라철문으로 휘청휘청 걸어가는 서정환을 따라왔다.

찬바람이 보이라마당의 검은 재먼지를 말아올렸다.

기관장은 서정환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이렇게 가시겠습니까?》

《…》

《내 대충 들었수다. 리해하시우. 여물지 못한 녀석이 제 뿔난대루 행정위원장동지를 노엽혔구려. 너무 상심마시우. 재영이가 꼭 집에 돌아갈거우다. 그렇잖으문 난 우리 집에서 쫓아내겠습니다.》

서정환은 아들을 마음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리고 인정의 줄기를 칼로 베듯이 단념한 이 순간에조차 어째선지 재영이가 좋은 사람밑에서 일을 배우고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차에 오르기 전에 혹시나 해서 보이라철문쪽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재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차문을 잡고 잠시 머물러섰다.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고싶거나 어떤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였다. 집에서 재영이를 데려오기를 눈이 까매 기다리고있을 안해가 무등 걱정되여서였다.

서정환은 기관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는 비록 아들과 영 갈라졌지만 쓰라린 상실과 허탈로 정신이 비칠거리는 자기를 따뜻이 바래주고 좋은 말로 위로해준 기관장을 고맙게 여겼다.

《재영이가 댁에 부담을 지울텐데 합숙에 내보내지요.》

《뭐 일없수다. 아들삼아 데리고있는걸요.》

기관장은 호방스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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