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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계승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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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3,619회 작성일 20-07-1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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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색승용차는 항구도시의 교외해변길을 달리고있었다.

항구기계공장 사로청위원장 림원국은 난생처음 승용차를 탔으나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저녁안개가 자욱히 낀 수평선이며 길옆 모래불에 널린 소나무와 해당화덤불들에 감상적인 눈길을 팔새 없었다.

공장에서 시내쪽으로 갈 때 늘 걸어다니는 해변가여서 풍경에 무심하기도 했지만 보다는 까닭모를 의혹이 점점 자라올라 걱정과 불안을 야기시키고있기때문이였다.

불과 두달전에 도사로청에 왔다간 중앙사로청위원장이 무엇때문에 또 내려왔을가? 사업토의나 협의회차로 내려올수 있겠지만 별로 크지 않은 공장의 사로청위원장을 데려오라고 자기 승용차까지 보내다니… 전례에 없는 일이였다.

좌석은 폭신하고 들추지 않았건만 림원국은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였다.

도사로청협의회시간이 바빠서일가? 운전사에게 물었으나 위원장을 닮은듯 표정이 엄하고 과묵한 그는 그저 빨리 데려오라고만 했다고 퉁명스레 말하는것이였다. 그닥 좋은 일 같지는 않다. 도사로청일군들을 대하는 말투가 부드럽지 못하고 쩍하면 두드러진 눈덕에서 짙은 눈섭이 성이 나서 꿈틀거리는 중앙사로청위원장에게서 좋은 일을 기대할수 없는것이였다. 도사로청회의 뒤끝에 당한 면박을 삭이지 못해 분풀이를 하려고 내려온것이 아닐가? 옹졸한 불안과 위구심은 끈덕지게 매달리고있었다.

…두달전, 도사로청회관에서는 중앙사로청위원장 장주천의 지도하에 도내사로청일군열성자회의가 열렸다. 가뜩이나 긴 도사로청위원장의 보고와 토론도중에 주석단에서 장주천이 느릿느릿한 말을 반복해서 또 강조하고 사사로운 지엽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연탁의 사로청일군들을 지루하게 닦아세우다보니 회의는 세시간이 되도록 끝나지 못하고있었다.

당에서 제시한 기술혁명방침관철에로 도내사로청원들을 조직동원하기 위한 과업을 토론하는 회의인데 림원국의 생각에는 그렇게 길게 하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림원국은 평소에 각종 문건을 내려보내는것과 전화질에 의한 사업포치, 독촉, 모임으로 이어지는 구태의연한 도사로청위원회사업에 대한 불만이 컸다. 그래서 장주천위원장이 회의마감에 의견들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제기하라고 하자 회의장뒤줄에서 저도모르게 불쑥 일어났다.

《…두가지 문제를 제기하려고 합니다. 도사로청위원장동지는 보고에서 청년들이 기술혁신을 본때있게 벌리도록 추동하자면 공장, 기업소사로청조직들이 지배인, 기사장과 같은 행정경제기술일군들과 사업을 원만히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주천은 흰오리가 섞인 머리를 량쪽으로 쓸어넘겼다. 그는 흥미를 가지고 림원국에게 쪼프린 눈길을 던졌다.

《그렇게 해서 기능공사로청원들에게 기술혁신과제를 맡기는 조직사업이 잘 이루어지게 하는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기술혁신, 창의고안에 대한 보수문제, 상금을 장려하는것은 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말이요?》

몸집이 갱핏한 도사로청위원장의 입에서 옥타브가 높은 부르튼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는 옆에 앉은 장주천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장주천의 눈덕우에 죽은듯 누워있던 검은 누에눈섭이 무엇에 찔린듯 꿈틀했다.

장내에 들어찬 사로청일군들의 호기심짙은 선망의 눈총들이 림원국에게 쏟아졌다.

림원국은 한순간 주춤했으나 두려워하지 않고 속에 품은것을 쏟아놓았다.

《그런 물질적자극을 지나치게 하면 사로청원들이 보수를 바라고… 돈에 유혹돼서 창의고안, 기술혁신을 하는데로 마음이 쏠릴수 있습니다. 사로청원들이 힘들게 일하는 자기 공장사람들을 위해서, 당을 위해서 기술혁명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로청원들속에는 사회와 조국을 빛내일 큰 일을 하려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저는 사로청조직이 청년들이 가지고있는 이런 훌륭한 사상에 불을 달아야 한다고 봅니다.》

《항구기계공장 위원장이 좋은 제기를 했는데… 허지만 물질적자극이 없이 사로청원들이 그렇게 머리쓰는 어려운 일을 할것 같소?》

장주천의 굵직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물질적보수를 걸고 청년들의 심리를 자극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어떤 청년들이 개인적인 목적, 리기적인 목적을 추구해서 기술을 혁신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집단주의사상을 품도록 교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당의 기술혁명방침수행에서 사상교양단체인 사로청이 할 사업이지 보수를 주고 돈을 주는 문제는 해당기업소의 행정경제부서들이 할 일이라고 봅니다.》

장주천은 불그스름하게 상기된 얼굴을 도사로청위원장에게 돌렸다.

《저 친구 꽤 바른소리 하는구만. 똑똑해. 도사로청위원장, 저 동무 몇살이야?》

《스물일곱살입니다.》

도사로청위원장이 반쯤 허리굽혀 일어나며 대답했다.

《어리구만, 어려. 총각인가?》

《그렇습니다. 도내초급사로청위원장들중에서 하나밖에 없는 총각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어린 사람이 공장사로청위원장이 됐나?》

《이전 공장사로청위원장이 병으로 그만두면서 저 동무를 극력 추천하기에…》

장주천은 상급에 대한 지나친 순종과 존대로 인품이 떨어지는 도사로청위원장을 거들떠보지 않고 다섯손가락을 굽혀 앞탁을 위엄있게 두드렸다.

《공장사로청위원장, 이름이 림원국이던가? 그래 원국동무, 리치바른 소리를 했는데 그렇지만 이걸 알아야 해, 도사로청위원장이 상금이나 보수같은 물질적자극문제를 중시한건 사로청조직이 창안같은것을 하느라고 고생하는 청년기술자들이 걱정없이 일할수 있도록 잘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소리야. 성공하면 해당한 보수가 차례지도록 하는것도 응당한 일이구. 문제를 그렇게 폭이 넓게 대범하게 인식하라구. 다른 경제문제와 마찬가지로 기술혁신에서도 정치도덕적자극을 앞세우는것이 중요하다는걸 여기 어디 모르는 사람이 있을라구. 그렇단말이야. 그럼 내 한가지 과업을 주겠소. 동무네 공장에서 사회와 집단을 위해 기술혁신을 하는 사로청원들을 키워놓으라구. 전 동맹적인 모범으로 내세우고 <로동청년>신문에도 내주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젊은 동무가 씨원씨원해. 배짱이 있구. 괜찮아, 사람이 잘난데다가 체격두 좋구만. 그래 두번째문제는 뭔가?》

《위원장동지, 회의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럽니다. 지난 기간 도사로청에서 소집한 회의들도 그렇고 오늘 회의도 세시간씩이나 하니 이거야 어디 <령감동맹>의 회의이지 청년동맹의 회의입니까?》

장내에 와-하 하고 청년들의 웃음이 터져올랐다. 참아온 자기들의 속불만을 대변해서 후련하게 내뿜은데 대한 지지가 웃음소리에 깔려있었다.

장주천은 손바닥으로 앞탁을 탕 쳐서 대번에 장내의 화기로운 분위기를 얼구어버렸다.

《여 총각위원장! 어따대고 훈시질이야? 회의시간이 길다구? 진지하게 문제를 토의해서 뭐가 나쁘단말이야. 도사로청위원장, 저렇게 불손하구 사로청사업을 훼방놓는 녀석을 당장 떼버려! 알았소?… 이건 곱다곱다 하니까 꼭뒤 피도 마르지 않은 햇내기가 주제넘게스리 누굴 가르치겠다구. 여, 이 장주천이는 동무같은 어린아이들이 코물을 훌쩍거리면서 메뚜기치기를 할 때 아식보총을 틀어잡구 전선에서 피를 흘렸다. 련대 민청원들을 이끌구 총탄이 쏟아지는 고지를 돌격해 올라갔단말이야.》

장주천은 숨가빠했다. 그러나 무섭게 번뜩이는 눈우에서 한동안 꿈틀대던 누에눈섭이 어째선지 맥없이 늘어지더니 두눈에 서글픈 기색이 어렸다.

《그때… 숱한 민청원들이 죽었어, 죽었지. 총각, 앉으라구, 앉아… 동무보다 훨씬 어린 민청원들이 적탄에 쓰러졌는데 민청위원장인 난 살구… 이렇게 회의를 지도하는구만. 그런데 뭘? 회의가 길다구? 거야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세시간이라. 그렇게 시간이 많이 갔단말이지. 하지만 문제토의는 언제든지 진지하게 해야 하거든. 자, 그럼… 회의를 그만 끝내자구.》…

승용차가 도사로청건물을 지나쳤을 때에야 림원국은 불안스러운 생각에서 깨여나 급히 물었다.

《차가 어디로 갑니까?》

《도사로청위원장네 집에요.》

운전사는 불친절하게 짤막히 대꾸했다. 보매 그는 무슨 일로 자기를 데려가는지 아는것 같았지만 원국은 시답지 않아 하는 그한테 구차스레 매달리고싶지 않았다.

승용차는 어느덧 도사로청위원장의 집앞에 이르렀다.

마당에서 기다리고있던 위병으로 몸이 여윈 도사로청위원장이 승용차에서 상체부터 내밀며 서툴게 내리는 그를 부축해주며 친절스레 맞이했다.

《난 원국동무가 공장에 있지 않구 어데 자리를 떴을가봐 속이 조마조마했소.》

《무슨 일로 찾았습니까?》

《들어가면 알게 되오. 어서, 장주천위원장동지가 기다리오.》

도사로청위원장은 현관에서 낡은 운동화를 신은 원국의 차림새를 훑어보더니 이마살을 찌프렸다.

《중앙사로청위원장동지가 직접 찾으시는데 옷차림이 이게 뭐요?!》

《제겐 이 혼방직옷이 제일 좋은겁니다.》

《이제야 할수 없지. 빨리 들어가자구.》

현관은 고기에 파를 두고 볶는 냄새와 갖가지 음식냄새로 꽉 찼다.

문을 열어놓은 부엌쪽에서 그와 면목있는 도사로청위원장의 안해와 낯모를 녀인들 몇이 음식을 만드느라 부산스레 돌아치고있었다. 그들은 원국이가 들어오자 문설주에 몰켜와서 무슨 신랑감구경이라도 하는듯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오, 공장사로청위원장이 왔구만. 총각주인공이 나타났어.》

원국이가 정지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귀에 익은 장주천의 굵직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원국은 담배연기가 자욱한 큰 방안에 여라문명의 나이듬직하고 풍채좋은 손님들이 둘러앉아 자기를 심사하듯 뜯어보는 바람에 어리둥절해졌다.

놀랍게도 구석쪽자리에는 어머니가 그 옛날 아버지가 해준것이라며 장농속에 아껴 간수해두군 하던 광목치마저고리를 단정히 입고 앉아있었다. 아들을 쳐다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긍지심과 대견함이 가득 어려있었다.

원국은 어머니의 곁에 앉아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이고있는 낯선 처녀를 얼핏 보았다. 치마저고리를 단정히 입고 파마한 머리를 뒤로 살풋이 꽁진 무척 우아해보이는 처녀였다.

《이리 오라구. 총각위원장, 손이나 잡아보자구.》

초물방석에 올방자를 튼 장주천은 담배꽁초를 재털이에 집어던지고 원국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인지 두툼한 입술사이로 덧이가 보이고 누에눈섭의 꼬리가 아래로 처져내렸다.

장주천은 원국의 손을 대충 쥐였다놓고는 그를 방안사람들쪽에 돌려세웠다.

《조직부장, 어떻소. 내가 사람을 잘 골랐지?》

장주천은 원국의 어머니곁에 앉은 처녀한테도 대견스런 눈길을 던졌다.

《예, 괜찮습니다. 키도 좋구, 미남이군요. 간부감입니다.》

창문쪽에 무릎을 세우고 앉은 얼굴이 길쑴한 일군이 제꺽 응수했다.

《겉보기가 속보기라구 이 친구 성격은 얼마나 좋다구. 얼음박은 랭수지. 사내배짱이구. 도사로청회의장에서 기관총사격으로 떡 맞서는 바람에 내 땀을 뺐단말이요. 지금껏 다니다 우릴 령감동맹이라구 정면으로 비난한 젊은이는 이 친구밖에 없거든.》

《허허, 배짱이 여간 아닙니다. 나이 어리지만 중앙사로청지도원을 시키면 꽤 해낼겁니다.》

장주천의 눈섭꼬리가 불만인듯 치켜올랐다.

《고작해서 지도원인가?! 조직부장, 통이 크게 조직부 책임지도원으로 등용하라구. 내 간부부장한테도 말하겠소. 조직부장은 아마 이 친구수준이 어떻다는걸 모를거야. 내 보기엔 우리 중앙사로청안에 정치리론수준에서 이 동물 당할 사람이 있을것 같지 않아.》

《위원장동지 의향대로 하겠습니다.》

조직부장이 무릎을 고쳐세우며 겸손하게 말했다.

《좋소. 그럼 이젠 본론으로 들어가기요. 총각책임지도원은 저기 어머니옆에 가앉으라구. 여, 도사로청위원장, 상을 들여오라.》

장주천위원장의 유쾌한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문지방에 서있던 도사로청위원장이 검은 옻칠이 번들거리는 길다란 자개박이상을 들여다 방복판에 놓았다.

뒤미처 흰 앞치마를 산뜻이 두른 도사로청위원장의 안해가 색갈이 다양한 료리접시들이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원국의 어머니가 황황히 일어나 받아놓았다.

《아, 어머닌 오늘 기쁜 날인데 가만 앉아계십시오. 여, 도사로청, 이거 굉장히 준비했다. 하긴 중매군 뺨 석대 맞지 않으려거든 잘 차려야지.》

장주천의 호방스런 말에 도사로청위원장이 배허벅에 마주 쥔 손을 어줍게 맞비비였다.

《저희들은 뭐 별로… 다 위원장동지가 직접 가지고 오신걸로 차렸습니다.》

《아아, 그런 말은 하는게 아니야.》

장주천은 못마땅한듯 골살을 찌프리고 덧붙였다.

《서두를 떼라구. 짤막하게.》

도사로청위원장은 가공음식과 지방토색음식들로 풍성하게 쌓인 상에서 채 들여오지 못한거라도 있는가를 살피고는 헛기침을 톺았다.

《저, 오늘 저녁 이렇게 여러분들과 모여앉게 된것은 항구기계공장 사로청위원장인 림원국동무와 장주천위원장동지의 조카인 장금실동무의 행복한 앞날을 축복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본인들의 의사를 건너뛰여 이런 벼락약혼식을 하게 된것은 장주천위원장동지가 사업이 몹시 바쁘고 또 여러가지 사정으로 서로 만나 의사소통을 할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기때문입니다. 량해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이미 원국동무 어머니가 장금실동무를 마음에 들어하는만큼 원국동무는 장주천위원장의 깊은 관심과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여 찬성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보다싶이 장금실동무는 아릿답게 생긴데다가 학교시절에 무용을 해서 몸매가…》

림원국의 귀에는 도사로청위원장의 장광설이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뒤통수를 후려맞은것처럼 머리가 핑 돌고 눈앞이 뿌잇해졌다.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강권으로 내리먹여도 분수가 있지!…

원국은 저도모르게 어머니의 옆에 앉은 처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옹색함을 덜지 못해 가냘픈 미소가 어린 그 처녀의 서늘한 눈매와 부딪쳤다. 그는 아무 죄없는 처녀에게 야속하고 원망스런 눈총을 던졌다. 그다음에는 외면했다.

원국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불행스러울지도 모르는 그런 운명의 순간이 닥쳐왔음을 깨달았다. 아무런 기쁨도 느껴지지 않았고 촉망되는 장래로 인한 환희는 더구나 없었다. 자기를 위해 차린 상우의 음식도 둘러앉은 사람들도 불쾌감을 자아냈고 적의마저 느껴졌다. 그런 속에서도 머리에 떠오른것은 지난달에 공장에 취재왔던 로동청년신문사 기자처녀였다.

진수옥! 오른쪽눈섭에 녹두알기미가 있고 쌍까풀진 눈매가 지성미를 풍기며 날카롭게 번쩍이는 처녀…

어찌하여 청춘의 장래를 판가름하는 이 긴박한 순간에 그 처녀가 떠오르는가! 이미전에 심장에 자리를 잡았더란말인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도 한쪼각 추파도 던지지 않았는데 지방의 평범한 총각이 무슨 미련과 기대를 가지고 평양의 기자처녀를 생각하는가? 그저 사모할뿐이다. 정녕 그 처녀를 사모하지 않는다면 장주천위원장의 호의와 어머니의 흔연한 결심을 맞갖지 않게 여길 리유가 있는가.

어머니는 어찌하여 이 아들의 마음을 묻지도 않고 이런 장소에까지 오셨습니까. 순박한 어머니는 그저 고마와하고 아들이 자랑스럽고 그래서 마냥 즐거우시겠지만 이 아들은 난감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원국동문 왜 우거지상을 하고 앉았소? 춤이라도 덩실 추고싶을 정도로 기쁠텐데.》

《평양에 소환되겠다, 가문이 좋은 집 색시가 차례지겠다. 호박이 넝쿨채 떨어졌으니 뗑할수밖에.》

모두들 한마디씩 던지며 상에 다가앉았다.

도사로청위원장이 《감홍로》술병을 들고 마개를 땄다.

원국은 혼사가 어떻든지간에 술좌석에서 나어린 사람이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술병을 뺏어 장주천위원장의 잔부터 부었다.

장주천위원장은 그의 례절바른 흔연스런 행동을 승낙하는 결심이 이루어진것으로 여겼는지 흡족한듯 머리를 끄덕였다.

《원국이한텐 큰 잔을 가져오라구. 약혼날엔 신랑감이 푹 취해야 혼사가 깨지지 않구 잘 살아.》

장주천은 원국의 잔에 술병을 기울여 가득 부었다.

《에그! 우리 앤 술을 못하는데.》

어머니가 걱정을 했다.

《일없어. 마시라구. 주량이 도량이야. 술 못마시문 간부 못돼.》

장주천은 원국의 잔을 쩡 소리나게 맞쪼았다.

모두들 그들 젊은 두사람의 행복한 앞날을 바래서 마셨다.

림원국은 다들 마시고 난 다음에야 어머니가 근심스레 지켜보는 속에서 큰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도수높은 술이 목구멍을 뜨겁게 지지였으나 그는 술과 싸우기라도 하듯 맹렬한 기세로 마지막방울까지 다 부어넣었다. 당장 가슴속이 불타는듯 달아오르고 숨이 막혔다. 구리빛얼굴이 검붉어졌다. 잔을 거칠게 내려놓는통에 수저가락이 상에서 떨어졌다.

그는 혈관속으로 퍼져가는 술기운을 떨어버리기라도 하듯 손으로 얼굴을 뻑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순간 눈앞이 아찔해서 헛손질을 하며 가까스로 몸균형을 바로잡았다. 과도한 술량이 점점 그의 육체에서 조절능력을 빼앗아가고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자존심과 자유로운 리성은 강압과 권력에 눌리우지도 쓰러지지도 않고 젊은 육체를 지탱해주었다. 그는 대나무처럼 꼿꼿이 섰다.

《어, 신랑이 중요발언을 하려는가 보군. 그래야지. 위원장동지가 동무한테 얼마나 큰 혜택을 베풀었나. 응당 고마움을 표시해야지.》

조직부장이 대견해했다.

장주천은 벌써 거나해서 도사로청위원장이 눈치있게 가져다놓은 베개에 팔굽을 기대고 엇비스듬히 앉아 원국을 지켜보았다.

《중앙사로청위원장동지와 여러 간부동지들이 저를 소중히 여겨주고 개체생활까지 뜨겁게 관심해준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원국은 허리굽혀 인사를 하고 버젓이 고개를 들었다.

세찬 바다바람이 황혼이 비낀 창문을 붙잡고 몸부림치고있었다.

그는 창너머 해변쪽에서 바람속에 삼키워져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파도에 씻겨 하얀 알몸을 드러내는 해변이 눈앞에 안겨든다. 어린 시절에도 성장한 지금에도 그는 해당화향기와 쩝쩔한 바다물냄새가 취하게 감도는 해변을 사랑했다.

앞날에 대한 운명적인 결심을 선언해야 하는 이 시각에도 그의 마음은 바다의 숨결이 설레이는 해변으로 가고있었다. 파도소리는 지나친 관심과 구속의 포승줄에 묶이우는 청춘을 풀어주고 자유로운 정서가 굽이치는 바다가로 끌어낸다. 달콤하면서도 서글픈 애수가 갈마든다.

《파도가 세차군요. 저녁에는 바다날씨가 늘 이런가요?》

진수옥의 부드럽고도 사색적인 목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다. 끈달린 가방을 한쪽어깨에 멘 그 처녀는 원국이한테서 반걸음씩 뒤져서 모래불에 뒤축높은 구두자국을 찍고있다. 세찬 바람이 그 녀자의 머리와 옷자락을 날린다. 흰거품을 앞세우고 밀려온 파도가 두사람의 발자국을 삽시에 메워버리군 한다.

《착한 어린애처럼 얌전한 바다였는데… 오늘따라 투정을 부립니다.》

《제가 불청객인가보죠.》

창너머 파도소리는 잦아들고 궂은 날씨의 바다도 상냥스레 대할줄 아는 진수옥의 음성이 귀전에 울린다. 사랑의 고백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언약도 한것이 없건만 처녀는 그의 심장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 처녀의 의향을 묻지도 않고 그럴수 있는가?! 어찌하랴. 짝사랑이 불우한 결말을 짓더라도 그는 진수옥을 잊을수가 없다. 오직 그 녀자만을 생각한다. 그의 심장에는 다른 녀자가 있을 자리는 없다. 그러니 상급의 친절과 압력에 복종할수 없는것이다.

《정말이지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혼약을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화기롭던 방안의 소음은 순간에 가라앉고 폭풍이 일기 전의 정적과도 같은 무섭고도 침침한 기운이 서렸다. 천정에 서린 담배연기는 먹장구름처럼 낮추 떠내려앉는다.

창밖의 바람은 그 어떤 불행을 예고하는듯 불안스레 설레였다.

《얘야…》

어머니는 당황해서 더 말을 끝내지 못하고 그의 바지가랭이를 잡아당겨 앉히려고 했다.

장주천은 청동주조품처럼 움쩍도 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조직부장과 도사로청위원장이 어처구니없는듯 그를 시까슬렀다.

《망아지 뒤발로 어미배 차는 격이야?!》

《엇드레질을 해보는거겠지요.》

《우리 앤 술을 못해서… 취했는가 보우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변명을 해서 분수에 어긋나는 아들의 폭언을 감싸고 뒤번져지는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원국은 이제껏 자기 하나를 기둥처럼 의지해 살아온 어머니한테 죄스러웠다.

《어머니, 난 취하지 않았어요.》

원국은 말마디에 힘을 주어 자기의 립장을 변경시킬수 없음을 알렸다.

《취하지 않았다. 그럼 위원장동지의 조카가 싫다는건가?》

조직부장이 랭소하며 물었다.

원국은 수치감으로 하여 고개를 푹 떨구고있는 처녀에게 미안스런 눈길을 보냈다. 그는 강제약혼의 애꿎은 희생물이 된 처녀에 대한 동정을 누르고 좌중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량해하십시오. 제게는… 이미 약속한 처녀가 있습니다.》

《뭐라구?》

장주천이 베개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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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장주천이 베개에 의지했던 상체를 벌떡 일으켜세웠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장금실이 흐느끼며 웃방으로 뛰쳐올라갔다.

도사로청위원장이 황황히 나섰다.

《원국동무, 그게 무슨 말이요? 동무 어머니는 봐둔 처녀가 없다고 했소. 도대체 누구요?》

《그건 말할수 없습니다.》

《자기 상급이 묻는데도 말 안하겠다는거요?》

《이게 무슨 사업상문제라고 복종하겠습니까.》

《동문 조직관념도 없소? 일신상문제도 말해야 한단말이요!》

《도사로청위원장동지, 묻지 말아주십시오. 그런 문제를 따지는건 저를 모욕하는것으로 됩니다.》

불시에 장주천이 눈을 부릅떴으나 어머니가 있어 그런지 쓴웃음을 짓고 말소리를 낮추었다.

《의리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풋내기로군. 동문 이 나많은 위원장의 깎이는 체면은 생각지도 않는다는거지? 괜찮아, 괜찮아. 배짱이 있어. 조직부장, 어떻소. 꽤 발전성있는 청년일군이 아닌가?》

장주천의 독기서린 말뜻을 알아차린 조직부장이 당연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원국동문 오늘 일로 하여 일생을 두고 후회할거요.》

《전 아직 제가 한 일때문에 후회한적은 없습니다.》

《원국아!…》

어머니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이 뒤따랐다.

원국은 그처럼 원망과 애수에 차고 페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어머니의 목소리를 지끔껏 들어보지 못했다.

부엌과 현관에서 녀인들이 행운을 물리친 원국의 배심과 파기된 혼약에 놀라 두손을 모아쥔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떠나가는 그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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