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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계승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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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287회 작성일 20-07-2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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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저 식당이 그 맥주집입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옆좌석에 송구해 앉아있는 석태진에게 묻고는 승용차를 세우게 하시였다.

로동자 두사람이 불꺼진 맥주집에 다가가 출입문을 두드리다가 가버렸다. 뒤따라오던 사람들도 컴컴한 창문안을 기웃거리다 아쉬운듯 발걸음을 돌린다.

《책임비서동무, 왜 맥주집문을 닫았습니까?》

《제가 그렇게 하도록 시행정위원회에 지시를 했습니다. 맥주집을 밤늦도록 여니까 패싸움같은 불미스런 일이 생깁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지내 과격한 조치같습니다. 로동자, 사무원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 맥주집을 페쇄한건 잘못된 일입니다. 하루일을 끝낸 사람들이 맥주 몇조끼를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고 피곤을 푼 다음에 집으로 가는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패싸움같은 불미스런 사건이 벌어졌다고 도시의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밤하늘에서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졌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생각에 잠겨 걸으시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비가 옵니다. 어서 떠나십시오. 제가 우리 도에서 다시는 불량청년들문제가 생기지 않게 더 보충적으로 강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책임비서동무가 도안전부와 사로청에서 청년들에 대한 통제를 엄하게 하고 규률과 질서를 바로세우도록 한것은 잘한 일입니다. 난 도내청년사업에 대한 책임비서동무의 당적조치가 은을 내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을 마치고도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이께서는 패싸움에 관계한 청년들중에 순봉이나 창범이같이 건전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청년들이 있다는데 류의하시였다. 그것은 지난날 시나 도의 사로청조직들이 청년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것을 여실히 말해주는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여기 산간도시, 지방사로청조직의 실태에 국한되는것이겠는가?

그이께서는 평남도의 옥천마을을 생각해보시였다. 기발 하나 꽂히지 않은 벌판, 청년들의 랑만과 정서생활을 찾아볼수 없는 농촌마을이다. 나이 많은 리사로청위원장은 당면한 벼가을전투에 청년들을 조직동원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차적인 일거리나 만들고 그것조차 문건화해서 들고다닌다. 청년일군으로서는 지나치게 《령감일군》냄새가 풍기고 청년사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실무적이고 진부한 일본새다. 지난날 당사업에서 성행했던 그런 재래식사업방법이 어떻게 사로청일군에게 그대로 남아있는가? 구체적현실은 청년사업을 새 년대의 요구에 맞게 혁신하려는 자신의 결심이 정당하다는것을 반증해주는것만 같았다.

정일동지께서는 석태진의 등을 가벼이 떠미시였다.

《걸읍시다. 비를 좀 맞으면 뭐랍니까? 난 책임비서동무를 신뢰하면서도 어쩐지 떠나기가 힘듭니다. 바쁘지 않으면 며칠이라도 여기 더 남아서 책임비서동무와 같이 도의 청년사업을 연구하고 당적으로 밀고나가고싶습니다.》

성긴 비발이 그이의 어깨에 떨어졌다.

차거운 맛이 도는 가을비꽃이였다.

포석길이 젖기 시작하였다.

랭기를 머금은 싸늘한 강바람이 비에 눅눅해진 나무잎사귀를 건드렸다.

《책임비서동무는 한경택동무의 사직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신중한 낯빛으로 석태진을 돌아보시였다.

《제 생각에는… 창범이를 로동교양소에 보낸이상 국장동무의 사직은 받을수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의 여론은 어떻습니까?》

《아들녀석이 아버지등을 믿구 날친다고 말이 많았지만 정작 엄중처벌을 하니 잠자코 있습니다.》

《국장동무는 혁명에 공적이 많은 사람이지만 언제한번 자기 리속을 차리거나 불투명한 일이 없습니다. 사사일과 직무상일을 뒤섞지 않는 결백하고 공정한 일군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조금도 융화하지 않고 아들을 혹독히 처벌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도당협의회때 앞자리에 머리를 떨구고앉아 묵묵히 쓰기만 하던 한경택의 어두운 얼굴을 떠올리시였다. 아들을 제손으로 로동교양소에 보내자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그렇게 하고도 사표를 내고… 도안전국장이기 전에 자식의 잘못을 맡아안을줄 아는 견실한 아버지이다.

《책임비서동무, 나는 우리 부모들, 특히 일군들이 자녀들문제처리에서 원칙적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일개 부모이기 전에 혁명의 선대라는 자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자식을 옳바로 키우기도 해야 하지만 자식이 일단 나쁜길에 들어서거나 죄를 지었을 때는 사회와 혁명앞에 자기 피줄에 대한 정신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혁명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후대의 한사람이기때문입니다.》

비방울이 어느덧 그이의 어깨와 옷자락을 눅눅히 적시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국장동무에게 당책벌을 주는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다 응당한 처벌을 받는것으로 되니 법과 사회의 량심앞에 꺼릴것이 없고 자식을 거느린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수 있습니다. 한경택동무는 책벌을 받고 종전보다 국장사업을 더 책임적으로 해야 할것입니다. 사직은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측면으로 볼 때 자기 사업의 책임을 쉽게 벗어던지는것으로 됩니다. 도안전국장동무는 계급적원쑤들로부터 당과 혁명을 보위하고 인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지키는 사업에 전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내놓고라도 전재고아들이 많은 도에서 불량청년들이 생겨나지 않게 사업을 세밀히 짜고들어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청년들의 운명과 장래를 귀중히 여긴다면 생활의 길에 잘못 들어선 그런 청년들을 미리 교양해야지 죄를 저지른 다음에 후과를 법률로 처리하는것은 손쉽고 뒤늦은것으로 됩니다. 가슴만 아프고.》

석태진은 그이의 사리정연한 분석에 머리가 숙여졌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사실 저는 이번 패싸움사건의 사회적영향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국장동무의 아들을 좀 융화해서 사로청에서 되게 문제를 세우고 로동교양처벌까지는 주지 않으려고 했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석태진의 얼굴에서 인정과 원칙이 뒤섞인 복잡한 심중을 헤아려보시였다.

《법률이 우리 당의 정치적무기라고 해서 당일군이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된다는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괴롭긴 하지만 책임비서동무는 옳게 처리했습니다. 공민은 그가 보통사람이건 간부건 당과 인민이 제정한 법규범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엄격한 준법성 그자체가 우리 당의 정치적무기입니다. 만약 이번 일을 한갖 젊은 아이들의 있을수 있는 싸움질로 대수롭지 않게 보고 무난히 처리한다면 청년들속에서 준법의식이 약해지고 사회의 건전한 분위기를 흐리게 할수 있는 보다 더 엄중한 일이 벌어질수 있습니다.》

비방울을 떨구던 구름뭉치가 흩어지면서 광채밝은 저녁별이 몇개 돋아났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포석길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발밑에서 비에 젖은 나무잎사귀들이 밟히는 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창범이가 로동교양소에 갈 때 국장동무가 바래주었는가요?》

《예, 바래는 주었는데 그때까지 성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안해한테도 말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걸 안해가 어떻게 알고 달려왔더랍니다. 어머니가 옷가지와 먹을걸 싼 꾸레미를 주면서 우니까 창범이도 울더랍니다. 어머니손을 쓸어만지면서 <어머니, 날 용서해주세요. 내 이제 로동교양을 마치고 나오면 다시는 어머니속을 태우지 않겠어요.>하더랍니다. 어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데 국장동무가 소리치더랍니다. <곱사등이는 무덤속에서나 고친다. 때늦은 참회는 그만두고 어서 차에 타라.> 풍을 씌운 차가 떠나가자 창범이 어머니는 대뜸 돌변해서 남편에게 성을 내더랍니다. 당신은 자식을 가진 사람인가, 어쩌면 그리도 무정한가, 내가 곱사등이를 낳았단말인가 하고 절규했답니다. 국장동무가 맘을 가라앉히고 <당신이 낳은게 아니라 우리네 눈먼 사랑이 앨 곱사등이로 만들었단말이요. 죄다 내탓이요.>하고 안해를 겨우 진정시켜 데리고왔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팔짱을 끼신채 오래도록 침묵하시였다.

보안서출신 한경택, 광복직후 원쑤들로부터 공장을 지키겠다고 망치를 총으로 바꿔잡은 사람, 그는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고 사회의 안전을 좀먹는 온갖 불건전한 행위들과 30년나마 날카로운 투쟁을 벌려왔다. 전쟁시기 군내무서장을 하면서 천내산골안에 둥지를 튼 적무장집단을 분쇄할 때 허리에 중상을 당했었지. 배허벅의 총상자리를 한손으로 틀어막고 도망치는 두목놈을 끝내 쏴눕힌 사람이다. 전후에도 도내무부에서 별다른 과오없이 참으로 많은 일을 해왔다. 우리 혁명의 당당한 2세의 한사람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들을 옳바로 키우지 못했는가. 내무부일, 안전부일에만 전심하다나니 자식은 방임해두었는가.… 어찌했든 한경택은 결국 자기의 분신이고 살붙이인 아들의 일로 하여 가슴찢기는 고통을 당했고 사람들에게 쓰라린 교훈을 남겨놓았다.

아버지는 혁명가인데 아들은 불량청년이다. 너무도 심한 대조이다. 대나무에서 돋은 싹은 곧은대로 자라고 솔방울이 험한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졌지만 거기서 나온 솔씨는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로 자라난다. 세상만물이 그런 드팀없는 유전법칙을 가졌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못한것 같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혁명에 충실한 청년들이 많지만 그렇지 못한 청년들도 있다. 《자식은 겉을 낳지 속은 못 낳는다》는 옛 격언이 틀리지 않는다. 후대는 선친의 피줄을 물려받지만 결코 정신은 유전되지 않는다.

포석길이 바른쪽으로 꺾어든 공지에 나무들이 설피게 둘러서있었다. 울타리를 이루다만 측백나무들이 먼 가로등빛에 키낮은 그림자를 던지고있었다.

《공원이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나무간살이 떨어지고 뼁끼칠이 너무 낡아 터갈라진 긴 걸상에 무랍없이 앉아보시였다. 처음 만들어놓았을 때는 《뻰취》도 괜찮았을것 같았다. 걸상이 몇개 놓인 소공원 안쪽에 서있는 외등갓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무슨 공원입니까?》

그이께서 관심을 가지고 물으시였으나 석태진은 난처해서 대답을 못 올렸다.

《전 아직… 시내에 덜 나와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작은 공원같은데…》

《그래도 이름이 있겠지요. 부지도 정 작지 않은데 애당초 목적이 없이 만들지는 않았을테지요.》

측백나무들쪽에서 시사로청위원장과 몸집이 뚱뚱한 강운학사로청지도원이 다가와 그이께 인사를 드렸다.

《이 공원은 전후에 도시중심으로부터 큰 길을 뽑으면서 남게 된 공지여서 만든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시사로청위원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두 청년일군을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얼굴이 넙적한 사로청지도원은 40고개를 넘어선것 같았다.

그이께서는 시사로청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동무는 몇살입니까?》

《마흔여덟입니다.》

《위원장사업을 한지 오랩니까?》

《4년째입니다.》

《원래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시당에서 과장을 했습니다.》

《사로청사업이 힘들지 않습니까?》

《힘들진… 않습니다. 그런데 공장, 기업소위원장들을 불러다 되게 달궈대는데도 사로청사업이 시원히 되지 못하고있습니다. 말썽군이 생기고…》

《한창 세계관이 서가고 자라는 청년들이니 결함이 없을수 없지요. 위원장동무는 사로청원들속에 더러 내려갑니까?》

《부서들의 사업보고를 받고 지시를 주고 궐기모임이나 여느 회의를 하느라면 도무지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문건을 만드는데도 적지 않게 시간이 듭니다. 어쩌다가 내려가도 공장이나 시내기관 사로청위원장들과 사업하기도 바쁩니다.》

《청년들속에 들어가면 실태도 구체적으로 알수 있고 그에 맞게 사업방법도 새롭게 전개할수 있겠는데요.》

《제 경험에 의하면… 솔직히 말해서 교원출신인 우리 부위원장동무는 붙임성이 좋아서 괜찮은데 전 사로청원들이 너무 어려서 그런지 상대가 잘 안되고 말할 재미가 없습니다. 이번에 패싸움건으로 강안기계공장에 내려갔지만 어린 청년들한테 뭐라고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장사로청일군들을 모아놓고 눈이 쑥 빠지게 욕질했습니다. 사실말이지 잘못이야 사로청원들속에서 그런 불량청년이 나올 때까지 교양사업을 안하고 방임해둔 사로청일군들에게 있는것입니다.》

《공장사로청일군들의 구성상태는 대체로 어떻습니까?》

《거의나 사로청사업경험이 많고 다른 부문에서 지도일군으로 일한 경력을 가진 좋은 동무들입니다. 나이도 대개 서른다섯이상이니 관록이 서고 사로청원들도 어렵게 대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며 한동안 생각에 잠기셨다가 화제를 돌리시였다.

《동무들은 지금 퇴근길입니까?》

《아닙니다. 시내 사로청규찰대사업도 검열할겸 한번 돌아보는중입니다. 초급사로청위원회들에 호된 지시를 떨궜는데도 밤이 되면 식당에 쭈밋거리고 거리를 쓸데없이 돌아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조금전에는 이 공원에서 패싸움에 끼였던 청년이 련애질하는걸 집으로 쫓아보냈습니다.》

시사로청위원장은 석태진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련애질이라니요?!》

김정일동지께서는 호기심을 나타내시였다.

시사로청위원장이 석태진을 보며 우물쭈물하자 곁에 서있던 몸집이 실팍한 강운학지도원이 한걸음 나서서 설명을 했다.

《강안기계공장 청년인데 처녀와 같이 저 걸상에 앉아 기타를 뚱땅거리고 노래까지 부르며 놀아대는게 아니겠습니까. 시대풍조에 벗어나는 행동이란것도 모르고말입니다.》

《사로청위원장동무는 기타를 탈줄 압니까?》

《모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물으시였다.

《지도원동무는?》

《전 원래 악기는 소질이 없습니다.》

《음악에 취미가 적구만.… 총각, 처녀가 공원에 앉아 기타를 타고 노래를 불렀다는데 난 여기에 문제될것이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들의 정서생활을 그런식으로 비하하고 이색적인 색안경을 쓰고 봐서는 안됩니다. 처녀, 총각이 련애하고 사랑하는것은 아름답고 고상한 일입니다. 청년들의 정상적인 순진한 이성관계를 <련애질>이란 표현을 쓰며 시비하는것은 아주 비문화적인 처사입니다. 혁명하는 청년들의 시대풍조에는 음악도 있고 사랑도 있어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언짢은 기분을 누르고 타이르시였다. 사로청사업을 하는 정치일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매력이 없고 몸에 밴 메마른 편견과 전횡만 느껴지는 이들과 상대하고싶은 생각마저 없어지시였다. 이들처럼 거칠게 청년들을 다룬다면 패싸움같은걸 막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대신 청년들의 랑만적인 생활에 주눅이 들게 하지 않겠는가. 청년들의 신성한 권리를 억누르고 그들의 개성과 존엄에 손상을 끼치는 결과를 빚어낼수 있다.

석태진은 면구해서 주책머리없이 나서서 처신을 바로하지 못하는 두 사로청일군을 마뜩지 않게 흘겨보고 한쪽에 물러서게 하였다.

그러나 걸상에서 일어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어정쩡해 서있는 시사로청위원장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시였다.

《시사로청위원장동무, 우리 공원이나 좀 돌아봅시다.》

공원구석에는 마른 풀이 무성하고 깨여진 걸상밑둥아리가 딩굴고있었다. 설핀 측백나무울타리 안쪽으로 열대여섯그루밖에 안되는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랐을뿐 공원은 꽃밭 하나 없고 비에 젖은 나무잎사귀들이 어수선히 널린 휑뎅그렁한 공지였다.

시행정위원회 도시경영과에서도 그렇고 원림사업소조차도 소공원에 거의나 관심을 두지 않은것이 분명했다.

《동무는 공원이 욕심나지 않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영문을 몰라하는 시사로청위원장에게서 눈길을 돌려 석태진을 건너다보시였다.

《책임비서동무, 내 보기엔 시내거리에 청년들이 휴식할만 한 공원이 있는것 같지 않구만요.》

《예, 별로 없습니다.》

《이 공원을 청년공원으로 만들면 어떻습니까. 시사로청에서 맡아서 품을 좀 들이면 되겠습니다. 지금은 너무 꾸리지 않고 내버려두었는데 공원 안쪽둘레에 나무를 많이 심고 공지가운데는 분수까지는 못 놓아도 꽃과 꽃나무들을 심어 둥그렇게 화단을 만들면 됩니다. 나무들주변에 걸상들을 놓고 외등을 여러개 설치하면 거리에서 봐도 풍치좋고 쓸모있는 공원이 될것입니다. 낮에는 공원에서 책도 보고 휴식할수 있고 퇴근무렵부터는 청년들이 모여들어 손풍금이나 기타같은걸 타면서 노래도 부르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말 좋을것 같습니다.》

석태진은 감동해서 시사로청위원장을 돌아보았다. 그는 거리의 귀퉁이에 버려진 공지조차 청년들의 정서생활을 위해 마음쓰시는 그이의 고결한 풍모에 머리가 숙어졌다. 청년들에 대한 단속과 통제에만 신경을 쓰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어든 자신의 처사가 불미스럽게 생각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책에 휩싸여있는 청년일군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고 차에 오르시였다.

승용차가 역전을 향해 얼마쯤 달렸을 때 그이께서는 옆자리에 앉은 석태진에게 물으시였다.

《시사로청동무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을가요?》

《예… 그랬을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지만 생각은 다른데로 뻗어가시였다. 그것은 청년일군들이 청년들을 어떻게 대하고 이끌어주는가 하는 청년사업전반에 포괄될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였다.

자신의 뜻이 단순히 버려진 소공원을 청년들을 위한 공원으로 꾸리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인격과 존엄을 지켜주고 정서와 랑만에 조금이라도 그늘이 지지 않게 하려는데 있다는것을 그들이 받아들였겠는가. 청년일군들이 지금은 자책하고 청년들을 망탕 다루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을수 있겠지만 또 다른 문제들에서는 자신의 뜻대로 행동할것 같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시사로청위원장과 지도원이 청년들에 대한 경시와 매정함, 관료적인 사업관점을 하루아침에 고칠수 있겠는가. 그런 관점이 청년들의 사상정치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것을 그들이 깨닫고 자각하겠는가. 청년일군들인데 청년사업을 마치 어떤 행정사업을 하듯 인정도 없고 감정의 고려도 없이 안하무인격으로 하고있다. 어딘가 옥천벌에서 만났던 밀짚모자를 쓴 리사로청위원장의 사업작풍과 거동을 련상시킨다.

이들 사로청일군들에게서 공통되는점은 무엇인가?… 지시와 독촉으로 이어지는 각종 문서놀음, 밤거리를 돌아보는것과 같은 유람형태의 행세식지도, 령감티를 내고 틀을 차리면서 청년들에게 무턱대고 명령하고 그들의 개성과 존엄은 안중에도 없이 통제하고 나이많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요구하고… 이런것들은 한때 당조직들에 내재했던 관료주의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낡은 재래식사업방법과 작풍이 사로청이라는 근로단체조직에 이식되고 배양되였다고 볼수 있다.

어째서 그들은 하나같이 나이들이 그렇게 많은가? 청년사업을 하는 일군들인데 그들자신은 도저히 청년이라고 말할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어린 청년들앞에서 틀만 차리면서 어른대접을 받으려 하고 령감냄새를 피운다. 청년들을 아이들처럼 여기고 말할 재미도 없으며 상대도 안된다는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로청일군들은 기름방울처럼 되여 청년군중우에 떠있게 된다. 젊은 청년들의 심중을 알아줄수 없고 그들과 휩쓸려 정신적호흡을 같이할수 없다.

이런 사로청일군들이 있는 곳에서 생기발랄하고 패기있는 청년조직을 바랄수 있겠는가. 한창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자기들의 본성적인 랑만과 정서의 생활방식과 미감, 투쟁정신을 외면한 무미건조한 사로청조직생활에 흥미를 잃을것이다.

그러니 청년들이 어떤 길로 가겠는가. 청년들의 사상정신상태, 도덕륜리는 어떻게 세워질것인가. 사로청조직생활에서 벗어나면 자연히 청년들은 어지러운 물에 들게 되고 패싸움이나 그보다 나쁜 길로 굴러떨어질수 있다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것은 현시기 우리 나라 청년운동 전반사업에 경종을 울리고 해부학적진단을 내려야 한다는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다.

멎었던 가을비가 다시금 추덕추덕 내리였다.

성긴 비발이 드리운 역홈에는 그이를 배웅나온 도의 당, 행정경제일군들이 서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의 뒤켠에 어두운 얼굴로 서있는 서정환을 띠여보고 석태진에게 당부하시였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재영이를 찾도록 하시오.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합니다.》

《재영이를 꼭 찾겠습니다. 찾으면 인차 전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주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고도 렬차에 오르지 못하시였다. 배웅나온 사람들속에서 누군가를 찾다가 멀찌감치 구내등빛이 덜 미치는 그늘진 곳에 못박혀있는 도안전국장을 보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시였다.

한경택은 황황히 다가왔으나 장령복바지혼솔에 손을 붙인채 부동의 자세로 섰다. 굳어진 표정에는 어찌할수 없는 위축감과 회오가 비껴있었다.

《허리의 총상자리는 도지지 않습니까?》

《일없습니다.》

《힘을 내여 국장사업을 잘하기 바랍니다. <곱사등이는 무덤속에서 고친다>고 했다는데 창범이는 선천적인 불구가 아닙니다. 병신자식, 못난 자식이 따로있을수 없습니다. 고쳐봅시다. 사직서는 창범이가 로동교양소를 마치고 나와 사로청조직의 품에서 참사람이 됐을 때, 국장동무가 사회앞에 후대를… 우리 혁명의 3세, 4세들을 옳바로 키웠을 때 그때에 가서 당조직에 제출하십시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뜻을… 알겠습니다.》

한경택은 목메여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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