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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계승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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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4,148회 작성일 20-07-2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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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정환은 오후 4시에 열리는 도당협의회에 참가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협의회에서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를 뵈옵게 된다는 생각은 그의 마음을 행복감으로 설레게 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렇다하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중압감이 흥뜬 감정을 밀어내였다.

그는 사업수첩을 펼쳐놓고 시행정위원회사업을 검토해보았다.

그사이 도시경영, 로동행정, 상업, 량정, 원림… 행정위원회의 어느 부문 사업을 돌아보아도 아직 료해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깊이 침투했다 해도 추궁이나 강조를 하고 도행정위원회에 제기를 했을뿐 위원장으로서 걸린 고리를 시원히 풀어제낄 방법론이나 대책을 세우지 못한것이였다.

시행정위원회의 일들은 자기가 없이도 종래의 궤도를 따라 굴러가고있는것 같았고 위원장인 그가 있다고 해서 별로 달라진것이 없다고 생각되는것이였다.

서정환은 퍼그나 주눅이 들어 행정위원회 부서들의 문건을 뒤적이며 협의회참가준비를 해나갔다.

책상우의 전화종이 울렸다.

그는 문건들너머로 손을 뻗쳐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도당책임비서 석태진의 약간 긴장을 띤 무게있는 목소리가 울리였다.

《행정위원장동무, 이제 곧 도당위원회로 오시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동무를 부르십니다.》

《!…》

서정환은 흥분해서 송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한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친애하는 그이의 은정, 공명정대한 조치로 존엄을 되찾고 이렇듯 중책을 맡고서도 성과없는 빈손으로 그이를 만나뵙게 되다니, 협의회에 참가하면 눈에 띄지 않게 한쪽구석에 조용히 앉아 가르침을 받으려 했는데… 그러나 어째선지 근심과 가책은 뒤로 밀려나고 그리움과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서정환은 서류가방에 사업수첩과 문건들을 쓸어넣고 다급히 사무실을 나섰다.

도당청사까지는 몇분 안되는 거리였지만 그의 머리속에는 하많은 추억의 토막들이 잇달아 떠올랐다.

십오년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공장에 오시였던 젊으나 젊은신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는 그의 추억속에서 봄빛처럼 따스하고 부드럽고 친근한 모습이였다.

그날 순녀는 현장에서 침식을 하는 남편의 저녁밥을 싸들고왔다.

순녀는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싶어하는 재영이까지 데리고 공장에 찾아왔으나 수원들이 들여보내지 않았다.

지배인방에서 수령님의 참석하에 협의회가 열리고있다는것을 미처 알지 못하였다.

그때 현장복도쪽에서 수수한 평상복차림을 한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걸어나오시였다.

《아, 지배인동무의 부인이십니까?》

그이께서는 순녀와 재영의 인사를 반가이 받아주시였다.

《아침저녁 밥을 해가지고 공장에 나온다지요. 관심이 극진하십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재영을 유심히 바라보시다가 머리를 쓸어주고 목에 맨 명주실로 짠 붉은 넥타이를 바로잡아주시였다.

《얘가 재영입니까?… 아주 의젓하게 잘 생겼구만요. 입이랑 눈매가 어머니를 많이 닮은것 같습니다. 얼굴형과 높은 코날은 지배인동무쪽입니다.》

순녀는 김정일동지께서 양아들이란것을 아시면서도 그렇게 따뜻이 말씀하신다는것을 느꼈다.

친아들을 자랑해주시는것 같아 기뻤고 남의 자식을 키운 수고로움을 진정 알아주시는 푸수한 해학미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공부는 잘하느냐?》

그이의 다정한 물으심에 재영은 쭈물거리며 대답을 못했다.

어느때나 아들의 지나친 보호자인 순녀가 민망스러워하며 솔직히 말씀올렸다.

《최우등을 못했습니다.》

《무슨 과목이 떨어지는가요?》

《수학입니다.… 얜 수학골이 못돼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머니의 변명에 너그러이 미소를 지으시였다.

《수학을 잘하는 애들이 따로 있긴 하지만 그런 애들도 머리보다는 노력을 많이 해서일겁니다.》

그이께서는 재영이어깨를 끌어당기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수학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수학은 모든 과학의 기초이다. 정리나 공식을 인식하고 외워두는것도 중요하지만 문제풀이, 응용문제풀이를 많이 해보는게 좋다. 그래야 계산법들과 정리, 공식들의 원리와 수의 비밀을 파고들수 있다. 수학자들이 발견해낸 수의 얽힘리치와 오묘한 계산법의 비밀을 자기것으로 파악하면 수학이 재미있고 다른 자연과학과목들도 공부하기 쉬울게다.》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서정환에게 일군들이 단위당시간에 생산지휘를 짜고들어 능률을 내도록 하고 저녁에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서 즐겁게 생활하라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서정환은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 와서도 그날의 감격을 잊을수 없었다.

이윽해서야 그는 도당위원회청사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가서 책임비서의 방에 이르렀으나 흥분으로 뒤설레는 가슴을 좀처럼 진정할수 없었다.

도당책임비서의 서기가 묵직한 참나무출입문을 밀어주어서야 넓다란 사무실에 들어섰다.

《아, 행정위원장동무가 왔구만요!》

앞상 맞은켠의 긴 쏘파에 앉아계시던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서정환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이게 얼마만입니까?!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농기구공장에서 단조공으로 일했다지요. 수령님께서는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께 보고하라고 하셨는데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서정환을 긴 쏘파에 이끌어앉히시였다.

서정환은 눈물이 앞을 가리워 쏘파귀퉁이에 몸을 붙이고 한동안 대답을 못 올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억울했지만… 제 잘못이 컸습니다.… 제가 생산지휘를… 지배인구실을 바로하지 못해…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원만히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어떤 변명을 하겠습니까. 저는 단조집게를 잡고 일하면서 자기를 돌이켜보았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난날의 고생과 피해에 대한 눈물겨운 항변, 호소가 아니라 자기의 조그마한 잘못을 먼저 시인하고 앞세우는 성실한 서정환이 더욱 마음에 드시였다.

《일군이 자기 과오를 허심하게 인정할줄도 알아야지만 당적원칙선상에서 옳고 그름을 칼날로 베고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싸울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배인동무의 개인적운명도 지켜야지만 공장의 생산문제는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것입니다. 정환동무가 떨어져내려간 다음에 편협한자들이 앉힌 무능력한 지배인은 공장생산계획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앞상 건너편에 앉은 석태진에게 공감의 눈길을 보내시였다.

《내가 지나간 일을 파내는건 당의 경제정책관철에 쓸모있는 인재를 촌구석에서 썩인게 너무 가슴아파서… 회초리매 한대 맞으면 될것을 7년세월 억울하게 마음고생시킨게 가슴아파서 말하는겁니다. 흘러간 시간은 강물처럼 되돌아오지 못하고 정신적고통으로 시달리면 사람이 겉늙고 머리가 셉니다. 정환동무한테서는 지배인시절의 젊고 혈기왕성하던 모습을 찾아볼수 없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쏘파에서 일어나 사무실안을 거니시였다. 정환에게 흘러간 세월과 육체의 소모를 되돌려주지는 못해도 삶의 진정한 목적과 향취를 잃은데서 오는 그 어두운 그늘만은 어떻게든 가셔주어야잖겠는가. 그래서 일군으로서의 밝고 의젓하고 열정적인 모습만을 되찾아주어야 자신의 마음이 편안할것 같으시였다. 명예회복, 집이사, 시행정위원장의 직무를 맡긴것 같은 실무적조치들로써는 안심이 되지 않으시였다.

《책임비서동무, 정환동무가 내려갈 당시 평정문건을 어떻게 했습니까?》

《간부부에… 있을겁니다.》

석태진은 그이의 은정어린 조치들을 집행했지만 과거 리력문건같은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편협한자들이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일군을 모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종파련루자>문건이겠는데 있으면 이리 가져오게 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직하나 날카로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석태진은 간부부에 가서 7년전의 그 문건을 가지고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신빙성이 없는 자료를 과장해서 꾸민 문건을 몇장 번지다 성냥불을 켜 가져다대이시였다.

삽시에 불이 달린 문건은 거무스름한 종이재를 남기며 타들어갔다.

그이께서는 문건종이가 대리석바닥에서 알싸한 연기를 남기고 다 타버릴 때까지 지켜보시고는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다시는 이따위 허위문건이 견실한 사람들의 운명을 롱락하지 못할것입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고…맙…습니다.》

서정환은 목이 메여 가까스로 부르짖었다.

눈물이 샘처럼 솟아나와 그의 꺼칠한 량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환의 옆에 앉으시여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리시였다.

《재영이는 잘 있습니까? 그애도 내려가 고생을 했겠습니다. 이젠 스물너덧은 됐겠는데…》

《…》

김정일동지께서는 서정환이 입을 꾹 다물고 덤덤히 앉아있는것이 이상하시였다.

《재영이가 어떻게 됐습니까?》

《저… 그 녀석은 제가 농기구공장에 내려갈 때 고모네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뭐라구요? 부모를 버리고?》

《예.》

《어째서?》

《자긴 친자식이 아니기때문에 양아버지와 같이 피해입을수 없다는겁니다.》

《저런 후레자식이 어데 있습니까. 다 죽게 된걸 구원해서 길렀더니… 그 은공을 모르고… 부모처지가 어렵게 됐다고 차버렸단말입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근엄한 눈길을 석태진이쪽에 던지며 어성을 높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수 없으시여 묵묵히 방안을 오가시였다.

《재영이는 정환동무가 농기구공장에서 단조공으로 일할 때조차 한번도 찾아가지 않은것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석태진의 의분에 젖은 말을 들으시고는 다시금 서정환의 옆에 앉으시였다. 그런 무서운 인륜적고통을 당해서 서정환이 더 늙고 시들었다고 생각하니 그에 대한 끝없는 동정심에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으시였다.

《그래 지금 재영이가 고모네 집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며칠전에 집에 찾아온걸…》

《집에 왔다구요?》

《예, 제가 소환된 날 저녁에 트렁크까지 들고왔기에 눈에 불이 나서 내쫓았습니다.》

방안에 오래도록 정적이 깃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정환에게 담배를 권하고 자신께서는 어느결에 한가치를 다 태우시였다. 그리고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7년세월이 흘렀으니… 재영이가 철이 좀 든 모양입니다. 모름지기 양부모를 찾아온건 지난날 잘못을 용서해달라는거겠는데…》

《그렇지만… 속심은 아버지가 행정위원장이 됐으니 또 붙어서 덕을 보자는거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들에 대한 서정환의 날카로운 반응을 탓하지 않고 방안을 조용히 거니시였다. 그이의 가슴에서 배은망덕한 재영이에 대한 분노가 퍼그나 누그러지시였다. 양부모는 어찌하든간에 재영이는 자신의 품을 떠나서는 안될 이 나라의 청년이고 후대의 한사람인것이다.

《정환동무… 재영이를 찾아 집에 데려오는게 아닙니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전 이미 7년전에 그 녀석과 결별하구 잊어버렸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흥분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하는 서정환을 이윽히 띄여보시였다.

《정환동무가 죽을번 하면서… 불속에서 건진 앤데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겠습니까.》

《…》

김정일동지께서는 서정환이 도량을 펴지 않는다고 재촉하지 않으시였다. 자식한테조차 자기의 결백한 당적량심을 인정받지 못하였으니 그 아버지의 원망은 뿌리깊은것이고 화해나 용서의 푸른 잎을 펼치기 힘든것은 당연할것이였다. 편협한 일군들이 사람의 정치적생명을 마구 칼질하고 롱락하면 피해당사자들은 물론 사회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이런 도덕륜리적문제들이 파생하는것이다.

《재영이가 집을 나갈 때 몇살이였습니까?》

《열여덟살입니다.》

《열여덟이면… 철이 없었다고 할수 있지요.…》

김정일동지께서 그나이 청년이 결코 어리지 않다는걸 아시면서 재영이를 위해 그렇게밖에 말씀할수 없으시였다.

《중학교를 금방 졸업한 청년이니 아버지가 당한 그런 정치적처벌에 당황하고 두려웠을겁니다. 문제를 정치적으로 옳게 식별하지 못할수 있지요. 책임비서동무생각은 어떻습니까?》

그이께서는 석태진의 생각깊어진 표정을 일별하고 마치 자신의 견해를 긍정하는듯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재영이도 목석은 아니니까 부모와 갈라지고도 늘쌍 괴로와했을겁니다. 행정위원장의 덕을 보자고 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회복된것이 너무 기뻐서 달려왔을겁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말이 서정환의 마음을 돌려세울만큼 설득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으시였다. 그가 조금이라도 쓰라린 과거를 밀어버리고 메마른 인정미가 후더워지기를 바라서였다.

《순녀동무는 어떻습니까. 재영이를 친자식보다 더 귀히 여기던데… 정환동무처럼 모진 맘을 먹고 재영이와 갈라졌습니까?》

서정환은 순녀가 자기와 립장이 다르다는걸 말하는것이 속에 걸렸다. 그때 순녀가 재영이를 목이 쉬도록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정환은 분노가 내려가지 않아 자기는 그따위 녀석을 다시는 찾지 않을것이라고 속다짐했지만 날이 지남에 따라 어쩐지 안해의 무른 정에 동화되고 그래서 침울해지는것이였다. 제살붙이가 아닌 자식인데 어찌하여 점차 그런 감정에 젖어드는가? 그것이 기른 정이라는것인가? 악은 짧고 선은 길다는 인간본연의 감정이 지배해서인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처는 사실… 저와 다릅니다.》

서정환은 인정과 도량의 빈약함을 느끼고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사연을 듣고싶어 진지하게 기다리시는 김정일동지앞에서 말씀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순녀는 그날밤 시내 갈만한 곳은 다 돌아다녔으나 재영이를 찾지 못했다. 날 샐녘에야 집에 돌아와 밤이슬에 젖은 옷을 벗지도 못하고 지쳐 쓰러졌다.

정환은 흐느껴우는 안해곁에서 침묵으로 날을 밝혔다. 아침에 순녀는 물한모금 먹지 않고 이웃도시에 살고있는 재영의 친고모네 집으로 갔다. 아들은 거기에도 가지 않았다.

순녀는 허탈상태에 빠져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새 직무에 드바쁜 남편에게 부담지을수는 없고 해서인지, 마음을 좀 돌렸는지 일어나 동자질을 했다. 그러나 순녀의 얼굴에서 재생된 운명의 기쁨은 찾아볼수 없었다. 산간군에 내려가 있을 때처럼 침침한 그늘이 비끼고 희끗한 머리와 눈귀의 잔주름이 유표하게 알렸다. 집안일을 수걱수걱할뿐 종일 가야 말한마디 없었다. 가정분위기는 랭랭하고 어두운게 초상난 집처럼 쓸쓸했다. 정환은 안해한테 재영이를 찾아보마고 약속은 했지만 일에 묻혀 거기에 별로 신경을 쓸새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야기를 끝낸 정환의 어딘가 의기소침하고 면구스러워하는 얼굴을 쳐다보시였다.

《재영이한테 고모말구 다른 친척들이 없습니까?》

《별로 없습니다.》

《재영이가 어데 있다는걸 알기라도 하면 순녀동무의 맘이 좀 편해지겠는데… 친자식이든 제 피줄이 아니든 자식을 기른 어머니의 정이란걸 우리 남자들이 헤아리기 어려운겁니다. 자식에게 이미 쏟아부은 어머니정은 세월속에 흔적조차 없지만 모름지기 피줄을 초월한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비상히 굳건한 정신적혈연관계를 남겨놓았을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앉아있는 서정환을 띄여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난 그때 수령님께서 공장현지지도를 끝낸 후 렬차를 타고 돌아가시면서 지배인인 정환동무에 대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재영의 친아버지는 서울해방전투때 전사하고 어머니는 공장에서 소재직장 선반공이였다지요?》

《예…》

《수령님께서는 정환동무가 공장을 소개할 때 강변에서 다섯살난 재영이를 구원해내던 일을 감동스레 이야기하셨습니다.》

서정환은 속에서 무언가 차겁게 얼어붙어있던것이 녹아 뜨끔거리며 솟구쳐오르는감을 느꼈다. 추억의 문이 열리자 단숨에 스무해전의 일이 숨가쁘게 눈앞에 안겨든다.

사품치는 북천강의 여울목, 뒤늦게 소개하는 공장사람들을 향해 기총탄을 퍼부으며 앙칼진 소리로 대기를 찢어 발기는 적비행기, 삼단같은 불기둥… 강 저편 기슭에 쓰러진 사람들, 어머니시체옆에서 울어대는 어린 아이… 강 이편 숲에 먼저 당도한 공장사람들은 땅을 치며 울었다.

그러나 서정환은 되돌아서서 여울목을 건느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에 기총탄이 비방울처럼 뿌려치고 숲에선 순녀와 공장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다. 적기는 미친듯이 날쳤지만 강우에 덮인 포연속에 몸을 감추며 서정환은 결사적으로 여울을 건너갔다. 건너가서는 어린 재영이를 둘쳐업고 되돌아섰다. 자갈깔린 강변에 어데 숨을데도 없었다. 죽으나사나 강을 건너와 숲에 몸을 숨겨야 했다. 정환은 재영이를 업고 정신없이 여울목을 철벅거리며 건느다가 기총탄에 아이가 잘못될것 같아 품에 꽉 끌어않았다. 강을 다 건너와서 그는 어깨에 기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도 아이는 가슴밑에 보호했다.…

아이를 사경에서 구원해낸 공덕은 그 애를 아버지로서 제 살붙이처럼 길러낸 스무해세월의 로고와 함께 잊혀지고 언제한번 생각해본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것이 어제일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떠올라서는 자식에 대한 정이 동토대처럼 꽉 얼어붙은 그의 가슴구석을 녹이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랑과 증오가 엇섞여 고패치는 정환의 복잡한 심중을 더듬으시였다. 그리고 아득히 흘러간 그 일이 정환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옛 성품을 되살리기를 진정 바라시였다.

《혈육간의 정이란 피줄을 타고 물려지는 본능적감정만은 아닐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을 꺼내시였다.

《부모는 자식을 낳았어도 품들여 옳게 키우지 못하면 후날에 자식의 외면과 랭대를 받을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건 재영이를 두둔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자식의 성장과 인생관에 주는 영향문제를 놓고 말하는겁니다. 부모와 자식간에 이어진 피줄문제보다도 정신도덕적혈연측면을 론하고싶습니다. 모름지기 정환동무는 다섯살난 재영이를 불속에서 건질 때 그애의 생명만이 아니라 장래운명까지도 책임지겠다는 고상한 충동에서 나섰을게 아닙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얼굴색이 컴컴해진 서정환을 향해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정환동무, 어찌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부모가 자식에게 도량을 보여주어야지요.… 선대가 후대를 책임지는것은 정신상 령역에서 진화의 리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이께서는 긴 재가 달린 담배를 재털이에 끄시였다.

《이젠 사업이야기나 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화제를 돌려 방안의 어두운 분위기를 바꾸시였다.

《책임비서동무가 그러는데 정환동무가 시행정위원장사업에 열성이 높은데 성과가 별반 나지 않아 번민이 많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솔직히 말해서 시행정위원장사업이 제겐 아름찹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옛날 지배인시절보다 더 분주히 뛰고 행정위원회 부서들협의회만도 수십차례를 했지만 걸린 문제들을 시원히 풀어제끼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제 능력이…》

《첫술에 배가 부르겠습니까. 행정위원회사업이 처음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배운다는 립장에서 일을 차근차근 해나갑시다. 우선 석탄문제가 제일 걸렸다지요?》

《예, 그렇습니다. 벌써 가을철이 벗어지는데 행정위원회는 시내주민용석탄을 계획분의 절반도 받지 못했습니다.》

《방도는 어떻게 세우고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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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평남도의 탄광에서 여러가지 객관적사정때문에 석탄을 제대로 캐지 못해서 그런답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실이구 실지 석탄이 적지 않게 생산돼서 자기네 주민용은 거의 다 풀었습니다. 우린 계획분의 석탄량을 제날자에 받지 못한 사실을 두고 도행정위원회에 루차 제기했습니다.》

서정환은 사업에 들어서서는 아들문제보다 더 흥분하는것 같았다.

《그러니 협의회와 전화독촉, 문건을 통한 제기들이 방도의 전부입니까?》

《아직은… 그러면서 기다리는중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석태진이쪽을 건너다보시였으나 자신의 눈길을 피하는 그의 침묵에서 이렇다 할 다른 안이 없음을 서운하게 느끼시였다.

《위원장동무, 내 생각에는 석탄을 앉아서 기다리지만 말고 사무실청사를 썩 벗어났으면 합니다. 부위원장이나 과장을 비롯해서 일군들이 이 고장에 흔한 동발목같은것을 찍어 몇차판 싣고서 탄광에 직접 가서 그곳 일군들과 탄부들에게 호소하면 어떻겠습니까. 급한 석탄문제를 풀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책에 휩싸여있는 두 일군사이를 거니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석탄이 부족한 이 도의 살림살이를 걱정해서 탄광도 두어개 떼주시고 늘 걱정하십니다. 그렇다고 해마다 남의 도에서 캐주는 탄을 앉아서 받아먹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안일하고 낡은 사업관점입니다. 동무들자신도 그렇지만 도에서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남에게 의존하는 살림방식을 배워주고 물려주어서는 안됩니다. 어떻게든 도자체로 석탄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어떤 좋은 안이 나오기를 기다리시였지만 두 일군은 여전히 무거운 침묵이였다.

《내가 료해한데 의하면… 천불령너머 골짜기에 작은 탄광이 하나 있다고 하던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석태진에게 묻는듯 한 눈길을 보내시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그 탄광은 거기 산골농장에서 땔감이 바쁠 때 좀 캐쓰는데 천불령이 험해서 이쪽으로 실어내오지 못합니다.》

《령길이 험하다,… 발열량도 낮다지요?》

《그렇습니다.》

서정환이 머리를 들었다.

《그 탄광문제는 요전날 행정위원회협의회에서 토의된겁니다. 발열량이 기준치아래로 퍽 떨어지는 저질탄이 돼서 도시에서는 땔 엄두를 못낸다고 합니다. 탄광도 페광하다싶이 했습니다.》

《위원장동무는 탄광에 가봤습니까?》

《못가봤습니다.》

《책임비서동무는요?》

《저도… 가보진 못했습니다.》

《동무들은 이 지방실정을 잘 모르는 간부들인데 앉아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속단해서는 안됩니다. 시원히 내려가보시오. 내려가 탄광형편이 실지 어떤지 알아보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도에 그래도 탄이 나는 곳이 있다는게 대단한 일이 아닙니까. 탄광개발전문가들과 석탄연료기술자들을 데리고 현지에 가서 잘 의논해보시오. 저질탄이라지만 그 고장사람들은 더러 캐 때지 않습니까. 기술적방도가 있을수 있습니다. 령길이 험한것은 길닦기를 하면 되니 문제가 아니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차탁의 고뿌를 들어 목을 추기시였다.

《내 오늘 협의회에서도 말하겠지만 당일군은 물론이고 정권기관과 경제부문 일군들도 인제는 낡은 재래식사업방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은 정환동무가 공장지배인사업을 하던 60년대가 아닙니다. 시대는 달라졌습니다. 혁명과 건설이 새로운 앙양기에 들어선 이 70년대는 우리 일군들로 하여금 종래의 타성적인 낡은 사업방법을 버리고 새로운 주체의 사업방법인 항일유격대식사업방법으로 일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이것은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입니다. 일군들은 사무실책상을 떠나 들끓는 현실속으로 군중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군중의 지혜와 힘에 의거해서 방도를 찾고 걸린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제 많은 시간과 정력을 바쳐 지도해야 할 도당협의회를 앞두고 퍼그나 음성이 갈리시였지만 믿음과 기대어린 밝은 안색으로 두 일군을 바라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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