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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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우리를 당할자 없다
3
중암리와 봉암리방향으로 정찰조들을 파견한 다음 리학문은 안창항이네 조를 데리고 신산리쪽으로 빠졌다.
신산리는 함안―마산간, 창원―진동간의 도로옆 삼각지점에 자리잡고있는데 화계산을 등지고 펼쳐진 넓은 구릉지대다. 언덕벌로 이루어진 들판에는 강냉이와 수수들이 가을바람에 익어가는데 군데군데 폭탄구뎅이들이 움푹움푹 널려있었다.
《가만, 저건 폭탄구뎅이가 아니라 포진지로구만.》
화계산정점에 감시호를 정하고 쌍안경으로 내려다보던 학문이 포진지들을 먼저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검붉은 흙을 파헤친 곳마다에 위장망이 덮여있고 그속에 숨겨진 포들이 긴 포신만 하늘로 쑥 내뻗치고있었다.
《저게 바로 미국놈들이 새로 끌어들였다는 포들이 아닐가?》
《정말 신형포라면 저렇게 공개적으로 내다배치했을가요? 어느 외진 곳에 감추었을텐데… 신형땅크라는것들도 진동리쪽 산속에 깊숙이 숨어있다가 기여나오지 않았습니까.》
라동수가 반신반의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미국놈들이란 교활한 족속들이니 우리를 속여넘기자고 오히려 넓은 개활지대에 신형무기를 널어놓았을수도 있지 않소. 속시원히 현지에 들어가 확인해보는게 어떻겠소?》
《포진지에 직접 접근하자는 말입니까?》
어마지두 놀란 라동수가 큰눈을 치뜨며 반문했다. 놈들의 경계가 이만저만하지 않으니 놀랄만도 한 일이였다.
포들이 배치된 지역을 둘러싼 넓은 지대에 수색대놈들이 온통 널려있고 포진지를 빙 에워싸는 두겹세겹의 철조망이 설치되였는데 포진지구역에 드나드는 차단소는 하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저 포진지구역으로 들어갈수 있을가?!)
감쪽같이 뚫고들어갈 신통한 수가 있어야 했다.
《앉아서 궁리하는것보다는 직접 부닥쳐봐야 수가 나지는 법이지. 안창항동무, 나와 같이 바람이나 쐬여보자구.》
《알았습니다.》
안창항이가 과거에나 급제한듯이 싱글벙글하는데 라동수는 펄쩍 뛰였다.
《부과장동지, 또 모험을 하시려는겁니까?》
학문은 선선히 웃었다.
《모험은 무슨, 모두 여기서 대기하면서 기다리오. 직접 검문소앞에까지 산보하면서 궁리해보고 올테니.》
《그럼 그사이에 저는 적의 혀를 하나 홀쳐보겠습니다.》
라동수의 제의에 학문은 쾌히 동의했다.
《좋소. 실수가 없도록 하오.》
《념려마십시오.》
리학문은 안창항을 데리고 차단소앞으로 지나간 큰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가며 침투해들어갈 구멍수를 찾아보았다.
도로로는 괴뢰군대렬이 무시로 오고갔다. 전선에서 얻어맞고 쫓겨오는 패잔병대렬이 있는가 하면 보충병으로 끌려가는 놈들이 있고 이따금 수색대놈들이 살기띤 눈깔을 희번득거리며 지나갔다.
《부과장동지!》
굽인돌이길에 이르렀을 때 안창항이가 목소리를 낮추어 불렀다. 그가 턱짓하는 곳은 포진지로 들어가는 길목이였다. 거기에는 두다리가 없는 괴뢰군사병 한놈이 피투성이에 먼지투성이가 된 처참한 몰골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있었다. 그 꼴을 보는 순간 학문의 머리속에 펀뜩 떠오르는 수가 있었다.
(옳지! 저놈을 리용하자.)
그는 사병놈앞으로 다가가며 큰소리로 물었다.
《여, 사병! 넌 왜 혼자 떨어졌어?》
놈은 코물눈물로 매닥질한 얼굴을 쳐들고 훌쩍거렸다.
《흑 흑… 같이가던 놈들이 귀찮다면서 날… 내깔리고 갔십니더. 소령님, 제발 살려줍시소.》
어이가 없었다. 죽게 된 동료를 내팽개치고 가버리는 짐승같은 놈들이 인민군대와 감히 맞서보겠다고 하는것이 가증스러웠다.
《이봐! 그 친구를 업게. 되게 불쌍하군. 저 포부대에 의무대라도 있을테지.》
안창항은 학문의 말뜻을 제꺽 알아차렸다.
《알겠습니다, 장교님.》 그는 병신짝이 된 부상병놈에게 널직한 잔등을 들이댔다. 《자식, 업혀라. 그리구 하느님께 감사드려. 네 오늘 운수좋게 괜치 않은 장교님을 만난줄 알아라.》
이게 웬 살길이냐 하고 그놈은 죽을 기를 쓰며 안창항의 넙적한 잔등에 기여올랐다.
학문은 사병놈이 흘린 때묻은 군모를 주어들고 엄포를 놓았다.
《야, 임마, 죽지 않고 살겠거던 날 삼촌이라고 해!》
《예, 예. 꼭 그러겠십니더. 천당에 가서두 잊지 않겠십니더.》
사병놈을 업은 안창항을 뒤에 달고 버젓이 차단소로 걸어갔다.
얼룩덜룩한 차단봉이 무겁게 드리워진 길가녁에 널판으로 비좁게 세운 차단소의 전화탁에는 당직장교인 애숭이중위가 앉아있었다.
《중위, 일선에서 싸우다가 부상당해서 죽을 고비에 이른 조카를 업고왔는데 여기 의무소에서 구급처치를 받아야겠소.》
직통배기로 들이대는 소령이 아니꼬왔던지 얼굴이 돈잎처럼 동그스름한 중위는 일어서지도 않고 혀밑소리로 투덜거렸다.
《곤난합니다. 의무소에 부상자가 꽉 찼습니다. 오늘만 해도 부상자를 업고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패가 열한번째인걸요.》
학문은 꽥 소래기를 질렀다.
《버르장머리없는!… 야 임마, 너같으면 조카가 다 죽게 된걸 보구 그냥 내버리겠는가? 여기도 우리 군단산하 포진지겠지? 나 군단 인사부 참모야. 하루이틀사이에 차를 끌구 다시 와서 군단병원으로 실어갈테니 당분간만 여기 신세를 지잔 말이야!》
뜻밖에도 중위는 픽 코웃음쳤다.
《소령님, 우리는 군단과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뭣이?》
《깜깜세상에서 오셨군요. 우린 특수에 특수입니다.》
군단참모라고 떡떡거리는데 반발심이 생긴 애숭이는 코대를 세운다는것이 저도 모르게 안할 말까지 했다.
학문은 한수 더 떠서 그놈의 심리를 빡 긁어주었다.
《말버릇 사납다. 그래도 군단이 있구야 너희도 있겠지? 인사과 참모가 그리 맥수는 아닌줄도 알게구?》
예산대로 잔망진 애숭이녀석은 버릇없이 또 코웃음을 치고나서 자기가 결코 그만한 위협에 끄떡할 위인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하려는듯 비밀에 속하는것을 함부로 드러내놓았다.
《우린 미25사직속입니다. 일반 국군과는 다르단 말입니다. 유엔군중에서도 알심이지요. 국군장교가 미군사병도 다스릴수 없는것처럼 군단에서 우리를 이래라저래라 할수 없지요.》
《흥, 좋다. 그런건 후에 따져보자.》 학문은 한걸음 물러서는체 하면서 은근한 위협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너도 목석이 아니면 목숨이 간들간들한 내 조카를 좀 봐! 이 애가 죽는 경우 내가 어떻게 할것 같은가? 응?》
록록치 않게 나오던 중위는 성깔사나운 소령과 더 맞서야 리로울게 없겠다고 판단했는지 안창항의 잔등에 업힌 사병의 처참한 몰골을 측은한 눈길로 들여다보며 인정을 베푸는체 하려들었다.
《조카라면 안되기는 했군요. 같은 장교끼리니 모른다고 할수도 없고…》 중위놈은 말꼬리를 끌더니 자기는 비록 중위여도 소령쯤과는 어깨동무라는 식으로 거들거리며 보초병에게 소리쳤다. 《야, 소령님일행을 통과시켜주라.》
볼꼴도 없는것이 위세를 부리려 놀아대는 꼴에 눈이 시렸으나 꾹 참았다.
《고맙네, 중위.》
차단봉이 올라갔다. 그들은 버젓이 차단소를 통과했다.
《임마, 의무소에 가서도 치료를 잘 받으려면 소령님을 삼촌이라고 해!》
안창항이가 등에 업은 사병놈을 추스르며 다짐을 두자 그놈은 또 같은 말을 곱씹었다.
《고맙십니더. 꼭 그러케 하겠십니더. 천당에 가서두 잊지 않겠십니더.》
의무소는 갈대가 숲을 이룬 진펄지대에 자리잡고있었다. 구릉지대여서 이런 진펄은 없겠는데 이상하다 하고 살펴보니 오수가 고여 생긴것이였다.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속에 위생복을 입은 군의관들과 간호부들이 분주스럽게 오갔다. 곳곳에는 부상병들이 발디딜 틈이 없이 욱실거렸다.
맞다든 안경쟁이군의는 늙수그레한 놈인데 처음부터 시쁫한 기색이였다.
《군의관, 이 사병을 잘 치료해주시오!》
《부탁인가요?》
《아니, 명령이요!》
소령의 엄엄한 소리에 군의는 안경을 벗어 위생복자락으로 문대면서 툴툴거렸다.
《전쟁바람에 군복을 입었더니 날마다 이런 구박을 받게 되는군.》
《군의관은 군대일에 무슨 의견이 있는가?》
《없을수 있겠소?》 안경쟁이는 아무것도 꺼리낄것이 없다는듯 뻣뻣하게 반문했다. 《전탕 내리먹이는 판이 군대판이니까. 이건 특수기지래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지, 그러면서두 부상병은 사정없이 처넣지. 저걸 좀 보오. 모기벌레가 득실거리는 습지에 의무소를 몰아넣고선 밤낮 부상자들을 드립다밀어넣으니 무슨 수로 다 감당하겠소!》
《그래? 거참 잘못된 일이군. 여기 장관들한테 말할것이지?》
어성을 퍽 낮추며 동정하는 빛을 보이자 반응은 더 스스럼없어졌다.
《랭수 마시고 배탈날 소리 말해선 뭘하우. 미군신형포부대랍시구 우리 국군의무소를 개우리만큼이나 여기는줄 아시우. 양키들의 의무소는 저―기 연유창고뒤쪽에 따루 있으니까 한국인들의 의무소야 무슨 대수겠소.》
《미군의무소가 따로 있소? 대체 미군포수들이 얼마나 되게 그런 특전을 부리려든단 말이요?》
《많든적든 코큰 그것들이야 늘 자기들의 의무소를 따로 달고다니는걸. 우린 카츄샤병들만 대상하게 돼있지요. 저기 포병지휘부엔 주치군의관들까지 따로 있는걸요. 나참!》
그만하면 내막을 짐작할만 했다.
《그럼 조카를 맡기고 가겠소. 다음번에 데리러 와서 톡톡히 인사를 차리지.》
학문은 군의관에게 건성 인사말을 남기고 물러났다. 돌아나오는 길에 일부러 포진지쪽으로 에돌면서 군의관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대체로 맞아떨어졌다. 별스레 긴 포신을 가진것은 신형곡사포이고 땅을 깊숙이 파고 숨겨놓은것은 로케트포들이였다.
차단소를 거쳐 들어온 그들을 의심하는 놈들은 없었다. 포진지의 미군보초병들만이 눈을 부라리며 어서 사라지라는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한국》인들은 아예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였다.
《철수!》
그들은 차단소의 애숭이중위와 깍듯이 경례를 나누며 돌아나왔다.
정찰결과는 좋았다.
그동안 라동수는 세명의 정찰병을 데리고 기지주변의 외진 곳에 잠복했다가 미군장교 한놈을 잡아 심문했는데 신산리계선에 전개된 포들이 미국에서 새로 들여온 포라는것을 알아내였다. 정보가 확인된것이다.
어려운 정찰을 성과적으로 끝마치고 귀중한 정보를 확인했어도 학문의 마음은 무거웠다.
(저 포들이 사격을 개시하면 전선너머 아군의 종심까지 타격할수 있겠구나. 반대로 아군의 포들은 사거리가 짧아서 이곳을 포격할수 없을것이다.)
생각은 점점 깊어져갔다.
허찬의 론리대로 하면 확인한 적정을 부대에 알리기만 해도 정찰대의 임무를 다한것으로 된다. 그러나 부대에서 인원을 새로 파견하여 저 포진지를 제압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걸릴것이다. 그동안에 적의 우세한 포화력은 아군에 어떤 위험을 들씌울는지 모른다. 그때 정말 정찰병의 량심은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무방하겠는가?
학문은 도리머리를 했다.
(아니다, 하루속히 포진지를 까부시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단호히 말했다.
《동무들! 정찰병의 량심을 가지고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소. 나의 결심은 저 포진지를 날려보내자는거요!》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력량으로 꽤 가능할가요? 사단포병을 호출해서 반포타격을 가하면 어떻겠습니까?》
라동수가 흥분하여 나서며 대안을 내놓았다.
《아니, 우리 포들의 사거리가 짧아놔서 반포투쟁은 불가능하오. 적들은 바로 그걸 타산하고 이 깊은 종심에 신형포들을 배치한것이요. 육탄이 되여서라도 우리가 까부시는 길밖에 없소.》
《우리가 까부십시다!》
《우리가 맡읍시다!》
모두가 주먹을 내흔들며 웨쳤다.
《옳소. 우리 력량은 비록 적지만 야간전투를 무서워하는 미군놈들의 약점을 잘만 리용하면 얼마든지 해제낄수 있소. 사단에 그렇게 보고합시다. 무선수!》
전파가 날았다.
멸악산 앞
신산리에서 적들의 신형포진지 발견. 한개 련대력량으로 추정됨. 정찰대자체로 습격하겠다.
참매
허찬은 크게 놀라면서 사단지휘부에 보고하고 결론을 받을테니 차후지시를 기다리라고 했다.
그 시각 전선너머에서 정찰대의 무선내용이 사단과 전선사령부를 통하여 최고사령부에 보고되고있는것을 정찰병들은 알수 없었다.
드디여 전파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허찬이나 대상무선수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전선사령부무선대에서 보내는 전파가 곧장 날아들었던것이다.
《참매, 참매! 나 대동강.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신명령을 전달하겠다. 들리는가?》
저쪽에서 몹시 흥분해하는것이 억양으로 알렸다.
학문은 옷깃을 바로잡고 대답했다.
《나는 참매, 잘 들린다.》
《리학문동무,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동무들의 결심을 지지해주셨소.》
전선사령관 김책의 목소리를 학문은 가려들었다. 뚜렷한 억양으로 곱씹어 말하는 그의 말뜻을 알아차리는 순간 학문은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참매 들으라. 최고사령부는 동무들이 신산리의 신형포진지를 완전소멸하리라는것을 굳게 믿는다. 들었는가.》
《들었습니다. 전선사령관동지!》
그는 환희에 차서 부르짖었다.
이어 사단에서도 무전이 왔다.
참매 앞
증원력량을 보내겠다. 23시 6호지점에서 그들을 맞이할것. 성공을 바란다.
멸악산
《야!》
《장군님께서 우리를 아신다!》
리학문과 차용대를 둘러싸고있던 정찰병들은 서로서로 손을 부여잡고 돌아갔다. 한껏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달래일수 없어 학문은 한손을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올듯이 쾅쾅 높뛰였다.
《동무들!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를 믿고계시오. 우리 몸이 그대로 수류탄이 되고 폭약이 되여서라도 적의 포들을 까버립시다.》
《까버립시다!》
《육탄이 되여 날려버립시다!》
날이 저물었다. 구체적인 전투방안을 세우고난 학문은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전선을 넘어올 증원대가 도착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난 때였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별찌가 꼬리를 길게 끄을며 날아내렸다.
(왜 이렇게 늦어질가?! 적들에게 발견되면 되려 불리한 정황이 조성될텐데…)
일각이 천추같은 시간이 흘렀다.
경계초에 나갔던 룡조가 허찬을 앞세우고 나타난것은 지정된 시간을 두시간이나 초과한 때였다.
《놈들의 경계가 얼마나 심한지… 겨우 넘어왔소. 우리의 침투를 낌새챈 모양인지 별로 갈개더란 말이요.》
허찬은 흙탕이 게발린 팔소매를 탁탁 털며 중얼거렸다.
도착한 인원은 열다섯명의 공병들이였다. 정찰병들까지 계산해도 서른아홉명이다. 한개 련대가 넘는 적을 서른아홉명이 녹여낸다는것은 힘에 부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애초에 증원대의 도움을 바란것은 아니였지만 이왕 전선을 넘어올바에는 좀 통이 크게 조직할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불만스러운 생각이 학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어둠속에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난 허찬은 허리춤에서 수류탄 세발을 꺼내놓으며 응당한 일인듯 스스럼없이 말했다.
《인원을 인계받으시오. 난 바쁜 일이 있어놔서 돌아가야겠소. 그동안 상급의 비판을 받고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할일이 참 많다는걸 알았소. 여기 일은 부과장동무한테 맡기니 잘해보우.》
학문은 아연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바쁜 일이란 무엇이고 할일이 많다는것은 또 무슨 말인가?!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집행해야 하는 전투를 당장 앞에 두고 더 바쁜 어떤 일들이 그를 기다린단 말인가?
두명의 자동총수를 앞뒤에 세운 허찬은 몹시 서두르며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허리를 조금 굽히고 산비탈을 내려가는 모습은 무엇이 두려워 쫓겨가는 경겁한 사람의 뒤모습처럼 초췌해보였다.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으나 까밝혀 따지고들 경황도 아니였다.
전투조직을 새로 해야 했다.
《…이렇게 차단조는 도로에 지뢰를 매설해서 함안방향에서 증원해올수 있는 적을 막아야겠소. 습격조는 중기관총과 브로닝경기를 효과있게 리용하여 적유생력량을 깨끗이 소멸하시오. 파괴조의 임무가 무겁소. 파괴조는 내가 책임지겠소.》
밤 2시 30분. 차단조와 습격조가 맡은 대상을 찾아 떠나간 뒤 파괴조도 학문의 지휘밑에 적의 포지휘소가 가까이 바라보이는 차단소가까이에 전개했다.
안창항과 김덕천은 포지휘소와 련결된 통신선들을 찾아내느라 배밀이로 보리밭고랑을 기여다녔다. 분명 포지휘용통신까벨이 있을것이고 그것을 절단해버려야 놈들의 지휘통신을 마비시켜 전투를 수월히 치를수 있었다.
《안창항동지!》
오수물이 고인 철조망아래를 총창으로 뚜져보던 덕천이가 팔뚝만큼 굵은 까벨을 찾아내고 불렀다.
《응, 까벨이구만. 자, 이걸 고여놓구…》
안창항이가 넘겨주는 참나무토막을 까벨밑에 밀어넣는데 뚜거덕 뚜거덕 군화발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그들은 납작엎드렸다.
어둑시그레한 보리밭뚝을 따라 늘여진 철조망옆으로 두억시니같은 두 그림자가 걸어왔다. 미군순찰병놈들이였다. 목이 긴 군화발들이 그들의 눈앞으로 뚜벅뚜벅 다가왔다. 뭐라뭐라 저들끼리 쑹얼거리는데 알아들을 재간이 없었다. 간혹 위스키니 꼬냐크니 하는 말토막에 억양이 높은걸 보면 순찰중에 보리밭에서 한잔 마시고 일어난 모양이였다.
두 정찰병은 숨을 딱 멈추었다. 단 몇발자국이면 지나쳐갈 그 순간은 무척도 길었다. 나란히 걸어온 두놈중의 한놈이 덕천이가 엎드려있는 바로 앞에서 뚝 멈춰섰다.
(발견됐는가?!)
여차하면 때를 놓치지 말고 벌떡 일어나 제껴버려야 한다. 덕천이가 땅을 차고 일어나려는 찰나 그놈이 삑 돌아서서 이쪽으로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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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헬로우, 워로비스트!》(여, 빨리오라!)
앞서 간 놈이 소래기를 지른다.
《와이트!》(기다려!)
양키놈은 왜서인지 어둠속에 쭈그리고앉아 부시럭거렸다.
안창항은 품속에서 비수를 더듬어 틀어잡았다. 여차하면 결딴을 내여버릴셈이였다.
알고보니 마시다가 남은 술병을 감추어두려고 그러는것이였다.
(너절한 놈! 래일 마저 마시자는거겠지.)
그놈은 인차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두릿두릿 살펴보더니 되돌아섰다. 어슬렁어슬렁 가버리는 그놈의 뒤모습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두억시니처럼 보였다.
그때 땅! 어두운 밤하늘을 흔들며 드디여 신호총소리가 울렸다.
안창항이 내려친 도끼에 통신까벨이 동강났다.
그들은 카빈총을 내들고 벌떡 일어나 달렸다.
벌써 습격조의 친구들이 적의 병영을 들이쳐 기관총벼락을 퍼붓고있었다.
《빨리! 지휘소로!》
적포지휘소로 달리던 그들은 수류탄이 터지며 지휘소천막이 날아나는것을 보았다.
번쩍 하는 섬광에 달려나오는 리학문의 모습이 드러났다.
창황중에도 안창항과 김덕천을 알아본 학문이 짤막하나 힘있게 웨쳤다.
《포진지에로!》
그가 웨쳤다. 배당된 포진지에 이른 파괴조성원들은 궁형치호와 조준구들을 파괴해버리기 시작했다.
쾅! 콰광!
사방에서 수류탄이 터졌고 하늘을 향해 쳐들리였던 포신들이 하나 또 하나 꺾어지듯 푹푹 땅에 구겨박혔다.
그만하면 목적이 달성되였다고 생각한 학문은 붉은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전투원들은 포진지주변에 쌓여있던 휘발유도람통과 포탄상자무지에 수류탄을 던지고 집결구역으로 내달렸다.
병영에서 자던 놈들은 습격조의 몰사격에 전멸되였고 증원해오던 적들도 차단조에 부딪쳐 무리죽음이 나자 멀리서 헛총질만 하다가 달아나고말았다. 휘발유에 달린 불길은 밤이 새도록 하늘을 찌르며 주위를 환히 밝혔다.
전원이 안전한 지점으로 철수한 때는 새벽이였다. 너무나도 혼쭐이 나서인지, 한밤중에 방향을 가늠할수 없어서였는지 추격해오는 놈들은 없었다.
온밤 불길과 화염에 그슬린 전투원들은 서로 부여잡고 통쾌하게 웃어댔다. 단 한명의 인원손실도 없이 적들의 신형포들을 몽땅 하늘로 날려보낸것이였다.
《무전을 칩시다. 승전의 보고를 장군님께 드립시다.》
리학문은 쩌릿한 흥분에 휩싸여 한손을 허공에 높이 쳐들고 웨쳤다.
전파가 날았다. 승전한 정찰대의 보고는 또다시 사단과 전선사령부를 거쳐 최고사령부에 이어졌고 최고사령부의 전신이 전선사령부를 거쳐 적후천리에 날아왔다.
참매 앞
최고사령부의 전신내용을 전달한다.
적의 포진지를 파괴한 정찰구분대 성원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동무들의 영웅적위훈을 조국은 잊지 않을것이다. 모두 건강한 몸으로 무사히 귀대하길 바란다.
대동강
학문은 군모를 벗어들었다. 경건한 자세로 멀리 북녘하늘을 우러르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고맙습니다. 이 몸은 적후천리 먼곳에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최고사령관동지의 가장 가까운 곁자리에 있습니다. 오늘에 받아안은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잊지 않고 이 전쟁이 우리의 승리로 끝나는 날까지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사된 본분을 지켜 언제나 용감하게 싸우겠습니다. 부디 안녕하십시오. 건강하십시오.)
정찰병들은 두주먹을 머리우에 쳐들고 소리를 낮추어 만세를 불렀다.
《만세!》
《김일성장군 만세!》
《만만―세―에―!》
성공했다! 김일성장군님의 믿음에 실천으로 보답했다!
행복과 보람으로 충만되는 이런 때의 감정을 한생토록 잊을것 같지 않았다. 몸은 비록 적후에 있어도 용감한 정찰병들의 운명의 좌표는 언제나 최고사령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