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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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고향길
9
벌써 새벽이다. 아직 날은 밝지 않았다. 푸릿한 안개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밤새 차거워진 서늘한 대기가 페부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하루밤이 어느새 지나가버렸는지 놀라울 지경이였다. 한잠 더 잘수도 있었으나 아무리 애써도 잠들어낼것 같지 않았다. 길한 꿈에서 때일찍 깨여난것이 아수했지만 슬그머니 자리를 일고말았다.
스적스적 경계초들을 돌아보는것으로 아침운동을 대신하고났을 때에야 희읍스름한 하늘이 들리우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때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다락에 올라와보니 라동수가 어디 갔는지 없었다.
(아마 초소를 돌아보러 나간게로군.)
학문은 권총을 분해해놓고 소제하기 시작했다. 화염에 그슬린 총신을 열심히 쑤셔내고 탄알까지 노르끼레한 윤기가 나도록 품을 놓아 닦았다.
그때였다.
《부과장동지!》
잦은 발걸음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다락아래서 라동수의 다급한 부름소리가 들렸다.
《뭐요?》
《어서 내려와서 보십시오. 동호동무가 〈혀〉를…》
말끝이 떨어지기 전에 벌써 학문은 다락에서 뛰여내렸다. 진주방향의 경계초에 나가있던 김동호가 마대를 메고왔는데 끙 소리를 내며 쌀마대처럼 둘러메치고 헐금씨금하며 보고했다.
《부과장동지, 앞쪽에… 미… 미국놈들이 있습니다.》
《미국놈들이?! 구체적으로 말하오.》
《아 글쎄, 새벽녘에 도… 도로 가까이에서 이상한 말소리가 들리기에 몰래 가보니까, 아 그렁하니까 글쎄… 숱한 미국놈들이 도로주변의 수풀속에 구겨박혀서 쿨쿨 자고있질 않겠습니까. 저녁늦게까지도 없던 놈들인데… 어디서 갑자기 생겨났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단김에 다 해치울가 하다가 하도 머리수가 많아서 괜한 선불질은 하지 말자구 그냥 왔습니다. 한개 대대는 넉근히 됩니다.》
《그래?!》
학문은 골살을 찌프렸다. 이런 정황에서 말을 길게 하는것을 제일 질색하는 그였다.
(어제 저녁에도 없었던 적들이 어데서 나타났단 말인가?!)
수수께끼였다. 이 근방에서 미제침략군과 맞다들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부대에서도 역시 진주쯤에 가서야 미군과 접전할것으로 예견하고있었다. 어디서 온 놈들인지, 무엇때문에 이곳에 급히 나타났는지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미국놈이요?》
그는 마대를 턱으로 가리켰다.
《예, 그렇습니다.》
《어서 풀어놓소.》
김동호가 마대아구리를 풀어헤치자 그속에서는 몸집이 비대한 미군하사관놈이 기여나왔다.
《이놈은 어떻게 잡았소?》
《풀숲에 자빠져자는걸 그대루 마대속에 집어넣었지요. 잠꼬대를 하는지 쑹얼거리는데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내처 메고 오려니까 에― 진땀깨나 흘렸습니다.》
《정황처리를 아주 잘했소.》
곧 심문에 들어갔으나 영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미군과 처음 대상하는것이여서 도저히 의사를 전달할수가 없었다.
《소속이 어디야?》
거듭 물었어도 그놈은 두손을 엉뎅이에 붙인채 멍청한 우멍눈만 희번득거렸다. 작전지도를 펴놓고 부산과 마산, 대구를 꾹꾹 찍어보였더니 소 닭우리 들여다보듯 할뿐이였다.
《통돼지같은 놈을 낑낑 메고왔더니 무용지물이로군. 핫 참! 말도 알아 못 듣는 양놈 민충이같은게!》
동호는 쓴입을 다시며 툴툴거렸다.
그러나 학문은 실망하지 않고 종이우에 매부리코의 미국놈대가리를 그리고 큰 별 두알을 어깨우에 새겨넣었다. 그다음 아래쪽에 나란히 띤과 킨사단장의 대가리를 짐작해서 그렸다. 띤의 가슴팍에는 24, 킨의 가슴팍에는 25수자를 쓰고 그옆에다가 큼직한 물음표를 그려놓았다. 그제서야 그놈은 소속을 묻는다는것을 알아차리고 활짝 편 두손을 홰―홰― 젓더니 29을 세였다.
《29련대라는 소린가?! 29사는 없는게구. 29련대면 새로 상륙한 모양인데…》
어쨌든 미군부대가 나타났다는것만은 확실했다.
포로를 주력부대로 호송해서야 보다 정확한 적정자료를 알아낼수 있었다.
적들은 진주―마산방향으로 진격해오는 아군에 의해 대구―부산사이의 도로가 차단될수 있다는 불안에 잠겨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대구에서 인민군련합부대들의 정면공격을 받고있는 미군이 완전포위될수 있다. 그때문에 미8군사령관 워커는 섬진강계선에서 인민군대의 진격을 저지시킬 목적으로 방금 부산에 상륙한 미29독립련대를 부랴부랴 진주를 거쳐 하동으로 내몰았던것이다. 지루한 항해길의 개고생을 겪은 뒤에 눈 한번 붙여보지 못한채 급작스러운 명령을 받고 밤새도록 먼길을 행군해오던 미29독립련대놈들은 너무도 지쳐빠져서 행군서렬 그대로 도로 좌우에 앉아 잠간 휴식한다는것이 모두 잠들어버린것이였는데 아침늦도록 대렬을 수습하지 못하고있었다.
《우리가 먼저 적을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트면 선제공격을 받을번 했소. 김동호동무가 참 잘했소.》
《뭘요. 그렁한것쯤이야…》
김동호는 뒤더수기를 긁으며 씩 웃었으나 흐뭇해하는 기색은 감추지 못해했다.
전선서남부에서 성과를 확대하고있는 인민군련합부대들이 공격방향을 즉시 동쪽과 동남쪽으로 돌려 전선서부와 중부에서 저항하는 적의 익측을 타격할데 대한 전선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현재 사단은 두개의 공격방향을 유지하고있었다. 하동을 거쳐 진주로 진출할 임무를 수행하는것은 한태설의 1련대였다.
정찰대의 통보를 받은 뒤 포로의 자백을 통해 적의 기도를 알게 된 련대에서는 하동에로의 행군을 다그치는 한편 76㎜포병대대장을 먼저 보내왔다. 한강에서 풋낯이나 익혔던 턱밑이 검실검실한 텁석부리소좌였다. 그는 두대의 찌프차를 끌고왔는데 모래가마니를 쌓아실은 우에 로획한 미식브로닝경기가 걸려있었다.
《정찰부과장동무, 잘 있었소? 한태설련대장동지가 보내서 왔소. 련대는 적들을 두전골안에 몰아넣고 포위섬멸할 계획이요. 정찰대에서 놈들의 퇴로를 차단해달라고 하더구만.》
《알겠소.》
학문은 찌프차우에 벋쳐놓은 경기관총을 일별하며 말했다. 한태설련대장이 고마왔다. 정찰대의 의도를 앞질러 헤아리고 미식브로닝경기를 장비해준것이다.
《근데…》 대대장은 무슨 기이는게 있는지 말꼭지만 떼놓고 잠시 주저하는듯 하더니 내처 말하는것이였다. 《당신네 과장 말이요, 왜 그런지 내보기엔 적극성이 상당히 부족한것 같소.》
군대식에 어울리지 않는 당신이라는 부름말에 학문은 미간을 찌프렸다.
《그건 무슨 말이요?》
《이번에 보니까 정찰대사업을 놓고 까박이 많더란 말이요. 규범이 이렇소 저렇소 하면서… 내가 동무네한테 배속되여 간다니까 펄쩍 뛰지 않겠소. 포가 정찰에 배속되는게 얼토당토않은 일이라나. 참모회의때마다 보니까 늘 그 모양이더군. 규범, 원칙하면서… 정찰의 특수성을 내세우자는 본위주의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무네들을 퇴로차단에 인입하는것은 정찰규범에 맞지 않는다는거요. 적정을 보고한것으로 정찰과의 임무는 끝났기때문에 자기들은 이번 작전과는 상관되지 않는다고 하더란 말이요. 맹랑한분입데.》
사단급에서 정찰사업을 맡아보는 상급을 본인도 없는데서 이러쿵저러쿵 시비하는것이 언짢아진 학문은 턱을 내두르며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런 말은 그만두고 련대장동지한테 인사나 전해주우. 차를 보내줘서 고맙단다고.》
《뭘, 이건 한강에서 신세진 보상으루 칩시다.》
한강도하장에서 넘겨준 자동차들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다.
《기억력도 좋군. 우린 벌써 다 잊었드랬는데…》
《그게 포병의 의리란거요. 하하…》
아침이 밝기 시작했다. 서둘러야 했다. 적을 에돌아 후위로 빠지자면 시간이 모자랄것 같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잠시 생각을 굴리던 학문은 대담하게 적들속으로 돌파해나갈것을 결심했다. 모두가 괴뢰군의 복장에 장비까지 적들과 꼭같이 갖추었으니 문제될것이 없지 않은가. 미군하사관놈이 없어진것을 알고 혹 소동을 피울수 있으나 놈들이 영문을 알아차릴수 없게 신속히 적후 깊숙이 뚫고 들어가면 추격할 생각을 못할것이다.
그의 결심을 포대대장도 쌍수들어 찬성했다.
두대의 자동차에 갈라탄 정찰병들은 차를 몰고 적들이 있는 곳을 향해 쾌속으로 달렸다. 앞차에 리학문과 포대대장이 앉았다.
선잠에서 깨여난 미군놈들은 도로 량옆에 모여 대렬을 짓느라 법석거리고있었다. 게사니무리처럼 왝왝거리는 고함소리와 새된 휘파람소리, 이발만 하얀 검둥이흑인에 껌을 질겅질겅 씹는 백인놈들… 오합지졸의 무리가 경적을 울리며 거침없이 달려오는 두대의 자동차를 호기심과 경멸에 넘친 눈으로 지켜보았다.
태연스레 앉아 그것들을 바라보던 학문은 두손가락을 코등우에 올려 미군식의 경례를 해보였다.
《국군》의 차를 알아보았는지 놈들은 더 왁작 고아대면서 빈 깡통따위를 마구 집어던졌다.
《도덕두 없는 놈들같으니라구야. 경례받을줄두 모르는구먼. 수류탄이나 하나 멕여줄가요?》
뒤좌석에 앉은 라동수가 두덜거렸다.
《못 본척 하오.》
리학문이 주의를 주었다.
적들속을 무사히 뚫고나온 정찰병들은 400고지에 이르러 매복하였다. 그때는 련대가 하동을 차지하고 공격준비를 완성한 때였다. 쌍안경으로 적들을 감시하던 학문은 도로옆에 몰켜서있는 장교놈들을 포착했다. 놈들은 큰 지도를 놓고 둘러서서 연신 손짓을 해대고있었다. 그 무슨 작전을 토의하는것 같았다.
학문은 익숙한 솜씨로 포병대대장에게 좌표를 불러주었다. 차용대한테서 송화기를 받아쥔 대대장은 포진지를 찾아 사격명령을 내렸다. 불과 몇초후에 포탄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쉭― 쉬이익! 쾅! 쾅!
《잘하는군. 우리 포병들 솜씨가 괜찮아!》
라동수의 경탄에 포대대장의 입귀가 쳐들렸다. 두발의 박격포탄이 날아와 장교무리를 명중하였다. 흙덩이와 군복넝마가 휘뿌려지고 두개의 커다란 웅뎅이가 생겼다. 장교들이 살상되여 지휘체계가 허물어지자 적들은 갈팡질팡했다.
포탄들은 한 십오분간 쉴사이 없이 날아왔다. 큰길의 주변은 들씌워지는 박격포탄에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놈들은 껑충껑충 뛰다가 너부러졌다.
첫탕에 된맛을 보고 독안에 든 쥐신세가 된 적들은 케가 글렀음을 깨닫고 진주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우리 차례다!》
정찰병들의 일제사격이 놈들을 맞받아쳤다. 포위된 놈들은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몰라 우리안의 망아지들처럼 돌아치다가 옷을 홀딱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논밭에 뛰여들었다.
그다음엔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벌거숭이놈들은 얼마나 바빠맞았는지 논김이나 매듯 벌벌 기여다니다가 이삭을 팬 벼포기들속에 머리만 깊숙이 박은채 엉뎅이를 하늘로 쳐들고 숨느라 야단이였다. 해괴한 구경거리를 만난 정찰병들이 오히려 어안이 벙벙해졌다.
《놈들을 체포하시오.》
리학문이 독촉해서야 그들은 사격을 멈추고 논밭으로 추격해들어가서 까투리처럼 버둥거리는 놈들을 한놈한놈 잡아일구었다. 맨몸뚱이의 놈들을 잡아내는것이 헐치 않은 일이였다. 퉁실퉁실한 비게덩어리를 아무리 두손으로 틀어잡아도 꿈틀 완력을 부리면 놓쳐버릴수밖에 없었다. 인민군대가 저들을 쏘아죽이려고는 하지 않는것을 알자 그놈들은 더 기를 쓰고 달아나는것이였다. 붙잡으면 달아나고 붙잡으면 또 달아나고… 머리까지 빡빡 깎아버린 놈은 도무지 붙잡아낼 재간이 없었다.
학문은 신고한 끝에야 겨우 한놈의 부얼부얼한 목덜미를 붙잡을수 있었는데 그놈은 뜯개말로 조선말시늉까지 하는 놈이였다.
《나, 나… 좋은 사람! 제발 목숨만…》
《이놈은 괜찮은 놈인데… 조선말을 다 배웠구만? 헌데 너희놈들은 체포되게 되면 왜 옷을 벗어버리는가?》
키가 꺽두룩한 그놈은 비위좋게 벌쭉 웃기까지 했다.
《옷을 벗어버려야 맨살만 내놓게 되고 그래야 붙잡지 못합니다. 이건 덩께르크에서 얻은… 경험입니다.》
《훌륭한 전쟁경험이군. 어떻게 돼서 예까지 오게 됐는가?》
《초저녁에 련대는 진주에 주둔하고 우리 전위대대만 하동으로 진출하라고 명령해서 떠났습니다. 큰 부락이 있기에 거기 들지 않고 도로옆의 풀숲에서 휴식했습니다. 부락에 주둔하면 포위될 위험이 있기때문에 그랬습니다. 이것도 2차대전때 얻은 경험입니다.》
《허, 굉장한 자랑거리로군. 별 싱거운 놈의 자식들!》
포로한 놈들을 보병구분대에 넘겨주느라니 좀 지체되였다. 실 한오리 걸친것 없는 맨몸뚱이로 부끄러움도 모르고 우줄우줄 렬지어가는 놈들을 보니 구역질이 났다. 저런 놈들이 감히 인민군대와 싸우려들었다는 분격감, 저런것들을 믿고 미군 두어개 사단으로 전쟁형국을 뒤엎겠다고 호언했다는 맥아더에 대한 환멸감이 솟구쳤다.
《정찰부과장!》
보병대렬이 흘러오는 시가쪽에서 달려오던 야전차가 바로 코앞에서 삑 하고 제동덧판 긁는 소리를 내며 멈춰서더니 한태설이 닁큼 뛰여내렸다.
《본때있구먼, 응? 정찰대가 괜찮우.》
《뭘요, 76미리포대대장동무가 괜찮습니다.》
《부과장동문 자기들자랑은 아예 할줄 모르는구먼. 하…》
태설은 련합부대의 진출방향이 둘로 갈라진 조건에서 정찰대를 1련대에 배속시킨 사단지휘부의 의도를 알려주면서 진주계선에 배치된 적에 대해 말했다.
《지금 미24사가 그곳으로 진출중이라는 정보가 있는데 사실자료의 정확성여부는 알수 없구먼. 진주에서의 싸움이 치렬해질것 같우. 정찰대가 이번에도 잘해주. 그런데 말이우. 허찬이 그 량반 병원신셀 지고 오더니 뭔가 달라진것 같우. 터무니없이 정찰특세만 부리려들거던. 쩍하면 조르게니 마타하리니 하면서 정찰대는 뭐 전투구분대가 아니라나. 전투구분대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우? 동무네처럼 승용차를 타고다니면서도 적을 본때있게 족쳐대는 그게 난 좋단 말이우. 헌데 그 량반은 영 마음에 들지 않게 놀아대거던.》
학문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포대대장한테서 이미 들은것도 있지만 그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은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직속상관에 대한 비평에 이러니저러니 맞장구칠 생각은 없었다. 오래 이야기할 사이도 없었다. 정찰대는 진주에 나가 그곳에 있는 적의 배치상태와 기동정형을 정찰해야 했다.
한태설과 헤여진 학문은 출발을 서둘렀다.
《적들이 남강다리를 폭파하기 전에 진주에 들어가야겠소.》
《그런데 인원을 다 태우고 가자면 차가 모자랍니다.》
라동수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지었다.
《그건 나도 아오. 하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소. 내가 먼저 돌입할테니 중대장동무는 다른 자동차를 부지런히 굴려서 인원을 나르라구. 무선수와 련락병만은 날 따랏!》
마음이 급했다. 한강과 금강에서처럼 놈들이 진주로 건너가는 다리를 끊어버리려고 날뛸것은 뻔했다.
운전대를 직접 잡은 그가 가속변을 밟자 차가 껑충 뛰였다. 전속으로 차를 몰아가며 허찬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알수 없는 일이였다. 왜 그는 내앞에서는 입을 씻으면서도 뒤에서는 까닭없이 정찰사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질만 하는것일가? 그의 규범과 원칙이라는것은 대체 어디서 나온것일가?
저쯤 앞에 남강이 보였다. 이제 남강을 건느면 진주에 들어설수 있다. 산굽이를 에돌아 길이 뻗어간 곳에 다리가 있으리라는것을 학문은 지도를 통해 알고있었다.
진주! 그 다음엔 마산! 마산에서 부산은 불과 백리!
학문은 군복안주머니에 있는 편지를 손더듬해보았다. 고향에 돌아갈 날은 눈앞에 있었다.
그때였다. 학문은 시창을 확 채우며 다가드는 집채같은 물체를 보았다. 거뭇한 몸체에 흰별을 그린 그놈은 두억시니처럼 사정없이 육박해왔다. 그다음엔 쾅! 요란한 충격음! 눈앞에서 무수한 별찌가 오락가락하는것을 의식하였을 때는 온몸이 허공에 둥둥 뜨는것 같았다. 몽롱한 의식속에서 무수한 별찌들이 조롱이나 하는듯 아물거리며 사방에 떠도는것을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얼음에 닿은듯 어깨가 시려들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의 몸은 강물우에 둥둥 떠있었다. 다행히도 물은 허리를 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고 힘을 모아 한번 움쩍해보았으나 꼼짝도 할수가 없었다. 안깐힘을 써서야 겨우 머리만을 들어 주위를 살펴볼수 있었다.
찌프차는 강물에 구겨박혔고 길우에는 숱한 괴뢰군놈들이 모여서서 내려다보고있었다. 제놈들의 차량들이 퇴각하기도 전에 남강다리를 폭파한 때문에 길이 막혀 다시 되돌아나오던 괴뢰군의 장갑차가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찌프차를 들이받은것이였다.
옆을 손더듬해서 찾으니 차용대가 움지럭거렸다.
《용대! 어드래?》
《난, 난 괜찮습니다. 부과장동지는요?》
《견딜만 해. 복남이는?》
차에서 휘뿌려지며 다행히 강물에 떨어졌기에 목숨은 건질수 있었지만 허리에 심한 타박을 받은것으로 하여 하반신을 움직일수가 없었다.
둘이서 벌벌 기여다니며 복남이를 찾아냈다. 물풀을 그러안고 어푸러져있는 그를 끌고 죽을 기를 쓰며 기슭으로 기여나갔다.
(이게 무슨 꼴이람?)
권총집을 더듬어 무기를 꺼내들고 기슭으로 기여올라갔다. 복남이도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누었다.
먹구름같은 연기를 내뿜으며 와르릉거리는 장갑차에서 괴뢰군중령이 뛰여내렸다.
《소령! 천만다행이요.》
흔들쩍거리며 다가오던 그놈의 두눈이 갑자기 휘둥그래졌다. 숨까지 헉 들이키면서 뒤걸음치더니 손을 옆구리에 가져갔다.
순식간에 모든것이 결정될 아슬아슬한 판이였다.
(저놈이 왜 저럴가?!)
차용대를 살펴보았다.
자갈무지에 기여오른 그에게서 별다른것을 발견할수 없었다.
복남이는? 카빈총을 끌어안고 어푸러져있는 그에게서도 신원이 드러날것은 없다.
그렇다면?!
자기 옷차림을 살펴보던 학문은 소스라쳐 놀랐다. 차에서 휘뿌려지면서 덧입었던 괴뢰군복이 째졌는데 그통에 왼쪽어깨의 인민군대 소좌견장이 드러나있었다. 중령놈은 그걸 보고 놀랐던것이였다.
선손을 써야 했다. 지체할수 없었다.
그는 초인간적인 힘으로 벌떡 일어서며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꺼내여 이발로 안전고리를 뽑아버렸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친것인지 자신도 알수 없었다. 뒤걸음치던 중령놈은 돌부리에 걸채여 뒤로 벌렁 넘어졌다.
순간 장갑차를 향해 수류탄이 날아갔다. 차용대와 복남이도 몸을 솟구며 련발사격을 들이댔다.
투탄거리가 너무 가까운탓으로 폭풍에 몸이 날린 학문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
누군가가 안타까이 찾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차렸을 때는 전투가 끝난 후였다. 뒤따라 도착한 정찰병들이 적들을 모조리 소멸해버린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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