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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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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550회 작성일 20-08-1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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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고향길

2

전쟁의 참혹성이 어떤것인가를 설명이 없이도 알수 있게 하는 광경이 드디여 펼쳐지기 시작했다.

푸른 논밭들이 포탄에 온통 뒤번져졌다. 도로를 따라 늘어섰던 가로수와 전주대들이 허리부러져 나딩굴고 무너진 집터들에서 검은 연기가 타래쳐오른다.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산기슭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적병들의 시체가 너저분히 널렸다. 선전포고도 없이 신성한 공화국령토를 침공해왔던 적들을 용감한 38경비대 전투원들이 38°선 남쪽으로 물리쳐버린것이다.

어수선한 큰길을 질주하여 전투계선을 넘어선 전차종대는 벌써 개성부근에 이르렀다. 이제부터는 적의 맹렬한 저항을 예견해야 한다. 어느 건물이나 으슥한 골짜기에 숨어있던 놈들이 불의사격을 가해올수 있었다. 그놈들의 눈에 띄우지 않고 적배후깊이에 침투하자면 부득불 전차를 포기하고 도보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해야 했다.

《하차! 침착하게 행동하시오!》

모두들 군소리없이 전차에서 뛰여내렸다.

적후에로!

처음 겪게 되는 적후행동이여서 누구나 한껏 흥분되여있었다.

학문은 우회로를 따라 그들을 이끌어갔다.

《정찰병동무들! 다시 만납시다!》

전차병들은 숲속을 헤치며 등성이너머로 사라져가는 정찰병들에게 오래도록 손을 저어주었다. 적후의 길을 끝까지 함께 갈수 없는 아쉬움이 그들의 마음을 알찌근하게 만든것이다. 그들은 이제 곧 뒤따라오게 되는 보병들과 함께 행동하게 되여있었다.

공화국북반부지역에 대한 야심적인 공격에만 열이 올랐던 적들은 반공격에 진입한 아군에 대한 방어선을 변변히 구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장교들의 위협에 눌려 진지를 차지하고있던 사병놈들은 해일처럼 다닥쳐드는 인민군대의 반공격에 질겁한 나머지 수풀에서 뛰쳐난 놀가지들처럼 뿔뿔이 달아나버렸다.

차단봉을 드리운 초소들이 이따금 맞다들었지만 괴뢰군복차림의 정찰병들을 일선에서 퇴각해오는 제편인줄 알고 순순히 통과시켜주었다. 정찰대의 진출이 하도 빠른데다가 당장 도망칠 생각에만 급급해있던지라 차단임무를 수행할 형편이 못되였다.

(가소롭군. 우리의 반타격이 그렇게 드세찰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테지.)

만월대를 지나 자남산기슭에 이르렀다. 큰길로 접어들수도 있었으나 남쪽을 향하고 지파리천기슭으로 뻗어내린 등성이를 넘어 개암이며 매지나무, 매박통따위가 우거진 수풀길을 따라 속보로 전진해갔다.

《부과장동지!》

앞이 확 트인 언덕에 올랐을 때 중대장 라동수가 나직하게 불렀다. 손가락을 펴들고 그가 가리키는 동흥동쪽으로 꽤 넓은 공지가 펼쳐졌는데 그 한쪽켠에 《개성시경찰서》라고 쓴 큼직한 간판이 붙은 건물이 보였다.

《먹어치우기요!》

리학문은 눈을 끔쩍해보이며 짤막하게 말했다. 단숨에 점거하자는 은어다. 경찰서에는 흔히 애국자들이 감금되여있을수 있기때문에 적들에게 손쓸 시간을 주지 말고 지체없이 장악해야 한다.

은밀히 접근해보니 2층건물의 안뜨락에 여러대의 자동차들이 서있었다. 승용차가 1대, 찌프차가 2대인데 정문쪽으로 대가리를 돌려댄 회색승용차는 이미 발동이 걸려 부르릉거렸다.

(개자식들, 도망치자는거겠지.)

유리가 깨여져나간 현관문을 발로 내차며 검은 제복의 뚱뚱보 한놈이 문서꿰미들을 한아름씩 껴안은 경찰 두놈을 꽁무니에 달고 황황히 달려나왔다.

누런 계급장을 보니 직급이 꽤 높은 놈이였다. 경찰서장인것 같았다.

권총을 뽑아든 학문은 그놈부터 쏘아눕혔다.

뚱뚱보는 두팔로 하늘을 그러안으며 콩크리트계단에 얼굴을 박고 어푸러졌다. 문서장들을 내던지고 달아나던 두놈의 경찰도 정찰병들의 총탄에 나가너부러졌다.

한놈이라도 빠져나갈세라 번개처럼 달려들어 족치고 수색해보았으나 경찰서건물은 벌써 텅 비여있었다.

(도망질엔 빈대 한가지로군.)

학문은 발동을 건채로 서있는 승용차와 2대의 찌프차들을 점검해보았다. 방금전에 어름거리던 운전사놈들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그림자도 없었다. 정찰병들을 시켜 시내를 두루 돌아보게 했으나 그 어디에도 적들이 없었다.

(이렇게도 텅 비여있을수가 있는가?! 이놈들이 어데로 다 달아났을것인가?… 우리를 먹어보겠다고 감히 접어들었던 음흉하고 악착한 놈들이 이렇게 쉽게 저항을 포기할리는 없겠는데… 그렇다면?!

분명 방어에 유리한 지점에 기본력량을 배치하고 그뒤로 내뺐을것이다. 하다면 그 방어지점은 과연 어디일가?!)

기민하고 정확한 추리분석력은 정찰병의 기질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지형을 살펴보니 장풍과 판문간 도로교차점에 있는 산릉선이 점찍혔다. 적들이 의지할 지형은 대덕산방향의 그곳 산지밖에 없다. 사실여부를 확인하는것과 함께 놈들이 방어진을 강화할 시간적여유를 주지 말아야 했다. 지체없이 현지로 진출해야 한다.

이런 때 지휘관의 정황판단과 결심이 가지는 가치를 학문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적이 없는 시내에 그냥 머물면서 차후지시만 기다리는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동해야 한다!

즉시 명령을 내렸다.

《승차! 판문으로!》

정찰병들은 경찰서에서 끌어낸 1대의 승용차와 2대의 찌프차에 갈라타고 판문방향으로 내달렸다. 괴뢰군복을 입은데다가 적의 자동차까지 빼앗아탔으니 인제는 조금도 꺼리낄것이 없었다.

연빛으로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구름발이 슬며시 걷히더니 시르죽은 해빛이 산과 들을 어름어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포격에 부러진 나무가지들에 매달린 파아란 잎사귀들이 하늘에 그 무엇을 하소하듯 애처롭게 팔랑거렸다. 그나마도 운수가 나빠서 길바닥에 군드러진 가로수들은 진흙탕속에 딩굴고있다.

3대의 자동차는 거침없이 질주해갔다. 길웅뎅이에 고인 누런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여났다.

판문과 장풍간의 도로교차점에 이르니 우측에 그리 높지 않은 릉선이 보였다. 락타등처럼 굴곡을 그린 릉선우에 듬성듬성한 소나무들이 미풍에 몸을 내맡기고 쓸쓸하게 서있었다. 릉선우에서 감시되지 않을 산탁 굽인돌이에 차들을 멈춰세운 학문은 쌍안경을 눈에 가져갔다. 그리 높지 않은 둔덕을 이룬 산우에 과연 번들거리는것이 보였다. 적의 철갑모가 해빛을 반사하는것이였다.

쌍안경의 배률을 높여 자세히 살펴보니 박격포신을 안고 돌아가는 놈들이 포착되였다. 중화력무기들을 한창 전개하는중이였다. 저 릉선에 포와 중기관총 같은 중화력무기를 걸어놓고 이쪽도로방향으로 조준사격을 들이대면 뒤따라오는 아군부대의 전진에 매우 불리하리라는 판단이 머리를 쳤다.

《음! 놈들도 머저리는 아니야, 요진통을 알거던. 동무들! 지체없이 들이쳐야겠소.》

그의 생각이 옳았다. 놈들은 괴뢰18련대의 중화력중대들을 릉선에 배치하여 아군의 진격을 가로막을 심산으로 포와 기관총들을 급급히 전개하는것이다. 개성시내를 당분간 포기할지라도 이곳에서 아군을 견제하면 다시 북진해볼수 있으리라고 놈들은 타산한것이다.

리학문의 결심을 알게 된 라동수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사단에 그냥 보고하면 되지 않을가요?》

날카롭게 번득이는 학문의 시선이 홱 돌아갔다. 이런 때 거칫거리는것이면 아무리 사소한것에도 무섭게 과격해지는 그였다.

결정적인 시각에 지휘관들의 의지는 전투행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중대장인 라동수의 의견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 훈련때 신사적인 정찰을 말하며 잘 알지도 못할 람자이정찰조니 마타하리니 하던 생각이 났다. 그런 말을 어디서 얻어들었는가고 물으니 허찬정찰과장이 자주 하던 이야기라고 했다. 그때에는 흥미거리로 하는 여담이겠거니 했는데 긴급한 전투환경에서 그 일을 생각하니 신경이 곤두서는것이였다.

《그럼 전투를 피하자는거요?》

《될수 있다면야! 우리야 정찰이지 전투구분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항시 적의 포위속에 들어있는것과 마찬가지인 적후에서 공개적인 전투를 벌리는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찰활동의 기본은 자신을 로출시키지 않고 상대편의 비밀을 감쪽같이 탐지하는데 있다는것도 부인할수 없다. 적의 작전문건을 빼앗는것이라면 몰라도 처음부터 전투를 공개적으로 벌리는것은 정찰규범과 거리가 있다고 말할수도 있는것이다. 그렇다고 아군의 전투행동에 막급한 저애를 줄수 있는 적의 흉계를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두고 지나쳐야 하겠는가? 뒤따라올 주력부대가 만단의 준비를 갖춘 적을 제거하는 간고한 전투를 감당하게 해야만 하겠는가? 아니다, 적들이 진지를 공고히 구축하기 전에 소멸해치워야 한다. 그것이 군인의 량심이다!

학문은 단호히 결단을 내렸다.

《정찰병의 량심대로 합시다! 순간을 놓치면 벌써 늦소!》

《위력정찰입니까?》

《소멸전투요!》

라동수의 표정이 심각한것으로 바뀌였다.

《우리 력량으로 꽤 될가요?》

학문의 눈초리가 치켜올랐다.

《겁나오?》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행동이 처음부터 적들에게 알려질것 같아서…》

라동수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지켜보던 끝에 불끈해버린 안창항이가 주먹을 내흔들었다.

《부과장동지! 칩시다. 까짓것들 아예 탕을 쳐버리면 더 좋지요.》

무선기를 끼고앉아 여차하면 전개할 준비로 궁싯거리던 차용대도 올곧지 않은 눈길로 라동수를 치떠보았다.

《중대장동지, 적을 그저 피해다닌다면 그게 무슨 정찰병이겠습니까.》

그 옹골찬 항변에 동수는 덤덤해졌다. 그러나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하는듯 시틋한 눈길로 대원들을 훑어보았다. 할말은 있어도 정황이 긴급한 때에 말씨름을 벌릴수 없어 마음을 늦춘다는 태도였다.

전쟁 첫날부터 일치되지 않은 감정상의 마찰을 느끼며 학문은 어지간히 실망했다. 하지만 완강한 성품그대로 그에 도전이나 하듯 손을 홱 내리그었다.

《전투조직을 하겠소. 1조는 저 산골짜기로 우회하여 익측을 타격하시오. 1조의 타격에 뒤따라 전원은 정면으로 릉선을 공격하겠소. 가장 중요한것은 불의성을 보장하는것이요.》

긴말이 필요없었다. 결전진입순간에는 일체 잡념이 없어야 한다. 보통때의 긴절하고 심각한 문제거리들도 이런 순간에는 한갖 시시껄렁한 잡것으로 치부되여 뒤전에 밀려나고마는것이다.

《출발!》

짧고 나직한 구령 한마디에 모두들 공격출발선으로 전진해갔다.

적들은 아군이 여기까지 와닿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안심하는지 아니면 당황망조하여 헤덤벼서인지 경계근무도 제대로 조직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장교놈들이 꽥꽥 소래기치며 돌아치고있다. 그 덕분에 정찰병들은 발견되지 않고 적들의 턱밑에 바싹 들어붙을수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익측으로 우회한 안창항의 1조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따쿵! 따따쿵!》

적들의 후위쪽에서 터진 자지러지는 카빈총소리를 신호로 삼아 2조와 3조의 정찰병들은 정면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개암나무며 싸리나무가 무성한 등성이에서 정찰병들이 벌떡벌떡 떨쳐일어나 불줄기를 뿜어대면서 릉선우로 짓쳐올라갔다.

포를 전개하느라 헤덤비던 적들은 비호처럼 달려드는 정찰병들앞에서 별로 저항해보지도 못하고 무리로 쓰러졌다. 살아남은 놈들이 황황히 저격무기를 집어들고 잡관목숲속에 산개하여 맞불질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공격속도를 늦추면 력량상 우세한 적들이 정신을 차리고 반격해올수 있었다.

《한놈도 놓치지 말라!》

학문은 련발사격을 들이대며 정향나무가 한벌 뒤덮인 등성이로 뛰여올랐다. 순간 외롭게 서있는 소나무뒤에서 세찬 불줄기가 뻗어나왔다.

날쌔게 바위홈채기쪽으로 몸을 굴렸다. 여러발의 총탄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머리우로 날아지나갔다. 칼날에 맞은듯이 잘려나간 소나무가지가 어깨우에 날아내렸다. 나무뒤에서 괴뢰군장교모자가 얼핏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그 찰나 학문은 어리뻥해졌다.

(저게 누군가?!)

몹시 낯익은 모색이였다. 그놈도 이쪽을 알아보고 놀랐는지 머리를 다시 쑥 내밀더니 되는대로 자동총을 한바탕 란사하고는 날래게 사라졌다. 눈여겨 살펴볼새가 없었다.

(어디서 봤던 놈일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떠오르는것이 없었다.

(소리쳐볼가?)

수풀속에서 총소리가 두어방 더 울리더니 인츰 잠잠해졌다.

(대체 어떤 놈일가?!)

제풀에 화가 올라 벌떡 몸을 솟구며 련발사격을 퍼붓는것과 함께 그쪽으로 덮쳐들었다. 하지만 그놈은 벌써 생쥐처럼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제길! 우물거리는 사이에 놓쳤군.)

전호조차 제대로 설비하지 않고 기관총과 포들을 여기저기 벋쳐놓던 놈들은 태반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나머지는 잽싸게 두손을 들었다.

전투는 예상대로 빨리 끝났다. 전장을 수습하고 포로 몇놈을 심문해보니 장교놈들 서넛이 도망쳤을뿐이였다. 낯이 익어보이던 그자가 어떤 놈인지 알아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포로놈들자체가 도망친 장교들이 누구누구인지조차 몰랐던것이다. 학문은 머리를 털었다. 그런 일때문에 더 지체할 시간적여유도 없었다.

《무선수!》

차용대가 싱글거리며 무선기를 전개했다. 무선기를 석대씩이나 로획하여 부속품원천과 전원예비를 가지게 된 그는 제일 기분이 흥떴다. 레시바를 귀에 끼고나서도 한옆에 탄약상자처럼 무져놓은 무선기전원들을 툭툭 두드려보이며 자랑이다.

《부과장동지! 보십시오. 이거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원걱정은 없겠습니다.》

《불필요한 말은 말고 빨리 결속하시오!》

안테나를 설치한 용대는 날렵한 동작으로 조절기를 돌려 주파수를 맞추었다. 출력표시등이 반짝 켜지는 동시에 삑, 삐익― 솨― 하는 굵고 가늘고 여물고 둔탁한 각종 신호음들이 엇갈렸다.

잠간동안에 파장을 맞춘 후 교신이 시작되였다.

멸악산앞

판문―장풍간 도로교차점 우측릉선에 방어진지를 전개하던 적 18련대의 중화력중대들을 소멸했다. 전진로에 장애는 없다.

참매

인차 답전이 날아왔다. 정찰대의 보고를 받은 사단지휘부에서는 대만족이였다.

참매앞

전과를 축하한다. 빨리 한강하류로 진출하면서 적의 기동상태와 방어상태를 알아내며 사단의 도하지점을 확정할것.

멸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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