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서 계승자 26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서 계승자 26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801회 작성일 20-08-04 22:02

본문

01.jpg

26

 

도당책임비서 석태진이 탄 승용차는 고개마루에 못미처 화물자동차들을 따라잡았다.

령산탄광개발지의 청년돌격대에 가져갈 지원물자를 실은 석대의 화물자동차들은 두시간전에 출발시킨것이였다.

원래 도소재지에서부터 강을 끼고 여러 시간을 달려야 할 먼길인데다가 눈길이 미끄러워 화물자동차들은 굼뜨게 전진했다.

승용차의 전조등빛에 화물차의 짐 실은 적재함꽁무니가 드러난다. 쇠사슬을 씌운 뒤바퀴에서 내뿌리는 눈가루가 승용차의 시창을 뿌옇게 한다.

그래도 운전사는 화물차를 앞서려고 경적을 울리며 바투 뒤따라 승용차를 몰았으나 비좁은 고개길에서 용빼는 재간이 없었다.

화물차운전사는 눈길이 위험해서 낭떠러지인 옆으로 바싹 비켜서려고 하지 않는다. 고개마루의 어김길까지 천천히 올라가는수밖에 딴도리가 없었다.

차안에는 올리막길에 마력을 내는 발동기소음뿐 조용했다.

석태진은 이야기라도 나눌가 해서 옆에 앉은 채혁을 돌아보았으나 그는 고개방아를 찧으며 졸고있었다. 몹시 피곤한 모양이다. 석태진은 옛 정찰소대장의 살이 빠지고 윤기없는 볼편에 희슥희슥 내돋은 수염싹을 측은한 심정으로 쳐다보았다.

채혁의 팔굽이 쳐진 작업복소매끝에서 피줄이 돋은 큼직한 돌멩이같은 손이 묵직하니 무릎에 드리웠다. 저녁무렵에 석태진이 령산탄광에 간다고 공장에 전화했더니 채혁은 집에도 미처 들리지 못하고 작업복차림으로 도당에 달려왔다. 옛 전우여서뿐아니라 아들일로 시름을 덜지 못하는 그여서 관심을 둔것이였는데 피로해하는걸 보니 괜히 알리지 않았는가싶었다.

채혁이 걱정하지 않아도 그의 아들과 청년돌격대원들을 배불리 먹일 식량과 부식물같은 후방물자들을 자동차에 넉넉히 싣고가는것이였다.

석태진이 사업에 바쁘다나니 미처 짜고들지 못해 늦어진게 탈이였다.

달반가량 전투를 벌려서 공사를 끝낼것으로 타산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탄광개발공사도 그렇고 산협길닦기도 예상외로 퍼그나 늦어지고있었다. 그래 긴급지원대책을 세운것이였다.

앞좌석에 앉은 새로 임명된 젊은 도사로청위원장은 도당책임비서의 승용차를 타서 송구해그런지 등받이에 편안히 기대앉지 못하고 줄창 시창밖에 눈길을 주고있었다. 그러다간 자주 손시계를 들여다보군 한다. 아마도 이런 속도로 공사장에 갔다가 돌아오느라면 아침렬차시간이 늦어질가봐 걱정인 모양이다.

중앙사로청위원회에서는 새로 임명된 도사로청위원장과 부위원장들, 중요기업소, 공장사로청위원장들을 평양에 부른것이였다.

석태진은 도사로청위원장의 량어깨를 잡아 좌석등받이에 꽉 붙여주었다.

《초조해말라구. 렬차시간이 늦어질가봐 그러지?》

《아니… 책임비서동지, 뭐 일없습니다. 화물차가 밤중에 돌아선답니다.》

도사로청위원장은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내 차를 타고가라구. 난 길닦기공사장에 들렸다가 래일 하루는 탄광에 올라가있겠소.》

석태진은 그가 마음을 놓도록 례사롭게 말했다.

도사로청위원장은 미안한감을 표현하지 못해 말은 못하고 반쯤 불편스레 돌아앉았다.

석태진은 그의 량어깨를 다시 잡아 등받이에 편안히 기대주었다. 석태진은 담이 작고 처녀처럼 해말쑥하고 어질게 생긴 이 청년이 도사로청위원장사업을 꽤 감당해낼가 하는 근심이 도지고있었다.

석태진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제시하신 사로청간부혁명방침을 받들고 도내사로청간부들을 전부 젊은 청년일군들로 교체하는 사업에 특별히 왼심을 쓰고 많은 시간을 바쳤다.

사로청이 당의 후비대인만큼 이 중요한 사로청사업은 응당 나이듬직한 경험많은 일군들이 해야 등탈이 없다는 고답적인 견해와 틀이 도당위원회와 산하 당조직들에 지배하고있어서 그것을 깨버린다는것도 조련치 않았다.

석태진은 간부부에서 새로 선발된 청년일군들의 나이와 성분과 경력 등을 따지고 여러가지로 고려하면서 주저하는것을 보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가르치심대로 젊은 청년일군의 당에 대한 충실성을 기본으로 해서 대담하게 등용할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석태진은 지금 이 애젊은 도사로청위원장이 공업대학 재학기간에 사로청사업을 했고 시사로청돌격대부지도원으로 일을 성실히 해온것과 같은 문건에 씌여진 경력을 더듬었다. 새로 선거된 젊은 청년일군인만큼 전적으로 믿고 사업에서 부족점이 생겨도 고쳐나가면서 청년사업을 해나가도록 뒤에서 밀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석태진은 도사로청위원장이 아침차로 평양에 가야 하는걸 알면서 이렇게 데리고 떠난것이다. 도사로청위원장자신이 령산탄광개발지의 청년돌격대에 가보겠다고 나서지 못한 점은 섭섭하게 여겼지만 지적하지는 않았다. 도사로청위원장으로 배치된지 보름밖에 안되는 이 청년의 사업시야가 단번에 그렇게 넓어질수는 없는것이다.

《도사로청위원장은 결혼을 했다지?》

석태진은 그의 문건을 료해할 때 결혼한 점을 아쉬워했다는것을 상기하며 혼자말처럼 건늬였다. 되도록 쌩쌩한 총각일군을 등용해서 사로청사업을 패기있게 벌리도록 하고싶었던 그였다.

도사로청위원장은 결혼한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듯 목안의 소리로 대답했다.

《예…》

《아이는 몇살이요?》

《두살입니다.》

《아들인가?》

《딸입니다.》

《동문 스물여섯이지… 결혼을 빨리 했구만.》

《합숙생활이 싫어서…》

석태진은 도사로청위원장의 어줍은 변명을 들으며 자기가 그를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고있음을 느꼈다. 리성적으로는 그를 인정하고 믿고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딘가 안심되지 않고 불안감을 털어버리지 못한데서 오는 반응인것이다.

승용차는 고개마루어방에서 화물자동차들을 따라잡고 속력을 내였다.

내리막길은 서북쪽이여서 눈이 덜 녹고 얼어붙어 굽인돌이를 달릴 때는 속도를 죽였는데도 뒤바퀴가 눈얼음에 조금씩 지치러지는것이 알렸다.

그러나 산골길에 익숙한 운전사는 제동판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여유있게 위험한 내림받이굽이길로 차를 몰아갔다. 고개를 내려서자 오른쪽으로 달구지길을 넓혀 새로 닦은 길이 나졌다.

청년돌격대원들이 맡은 산협길이였다.

차를 멈추고 석태진이 내리자 도사로청위원장과 굳잠에서 깬 채혁이 뒤따라 내렸다.

차불빛에 보이는 길은 눈속에 돌쪼각들과 나무뿌리가 곳곳에 드러나고 평토작업을 하지 않아 고르롭지 못했다.

그러나 산옆구리의 굳은 흙을 파내느라 곡괭이질 한 흔적들과 깨여진 바위등에 난 정대자리만 보아도 청년돌격대원들이 얼마나 고생스레 일했겠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것이였다.

채혁은 돌로 촘촘히 쌓고 흙을 채워 넓힌 낭떠러지쪽에 가서 좀처럼 돌아설줄 몰랐다. 달구지길을 시원히 넓힌 이 어려운 공사에 그렇게 애먹이던 자기 아들도 한몫 끼였다는 가슴뿌듯한 생각에 잡혀있는 모양이였다.

석태진은 여기 청년돌격대로 서슴없이 떠난 딸애를 생각하고는 아버지로서 순진하다 할 정도의 자부심과 긍지감에 싸였다.

《이보라구 도사로청위원장, 내 딸도 여기 청년돌격대에 있다오.》

하고 자랑하고싶은 말이 그의 입에서 튕겨나올번 하였다.

그는 차불빛이 비치는 어둠속 길을 이윽히 바라보며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길을 넓히니 좋구만. 탄을 실은 자동차들이 넉넉히 다니겠소. 청년돌격대원들이 수고했소.》

석태진은 도사로청위원장과 운전사가 곁에 다가오자 흥분한 감정을 누르고 물었다.

《이 길로 령산탄광에 가면 거의 백리길은 질러가지?》

《예, 국도 3호도로로 가기보다 80리를 줄입니다.》

운전사의 대답이였다.

석태진은 초가을에 령산탄광의 페갱을 보러갔다올 때 멀던것을 되새기고는 무연탄을 하루빨리 실어오자면 이 지름길을 닦는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럼 가볼가?》

석태진은 도사로청위원장을 돌아보고나서 채혁이쪽에도 가자고 손짓했다.

운전사가 인차 승용차를 가져다댔으나 석태진은 손을 내저었다.

《청년돌격대원들이 고생스레 닦은 길인데 어떻게 차를 타고가겠소. 도사로청위원장, 걸어가는게 옳지? 길도 살펴볼겸.》

《그렇습니다. 아마 저기 골짜기로 좀 올라가면 어린 청년들로 무어진 3소대가 있을겁니다.》

석태진은 신임도사로청위원장이 현지실정을 알고있는데 저으기 놀래서 물었다.

《돌격대지휘부도 3소대에 있다지?》

《예, 3소대가 맡은 구간이 늦어진다기에 제가 전화로 강운학동무더러 지휘부를 옮기는게 좋겠다고 권고했습니다.》

《동문 도사로청사업을 인계받는것만도 아름찼겠는데 벌써 돌격대사업에까지 손을 뻗쳤구만. 괜찮아.》

석태진은 기뻐서 걸음을 멈추기까지 하였다. 그의 패기와 겸손성이 마음에 들었다.

나이많은 이전 도사로청위원장은 탄광개발청년돌격대를 조직해 보내라는 과업을 준지 보름이 되도록 질질 끌며 뭉개는 바람에 석태진자신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석태진은 다리를 저는 채혁을 한사코 승용차에 태우고는 젊은 도사로청위원장을 데리고 걸음을 빨리했다.

지세가 나빠 줄기가 아무렇게나 휘여든 소나무들과 잡관목이 뒤섞인 숲을 지나 골짜기언덕길을 올라가느라니 나무들사이로 불빛이 비치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구지길을 넓히느라 여기저기 파낸 언덕길은 지나온 길보다 더 울퉁불퉁했다.

메질소리와 곡괭이질소리, 삽날이 돌멩이에 부딪치는 아츠러운 소리가 가까이에서 나고 군데군데 꽂아놓은 홰불방망이가 길닦기작업장을 환히 비치고있다.

청년돌격대원들은 거의나 솜옷을 벗어붙이고 야간작업에 열중하고있었다.

한쪽에 피워놓은 모닥불의 내내가 작업장에 떠돌았다. 추운데도 모닥불을 쬐는 청년은 없었다.

도사로청위원장이 한창 메질을 하다가 땀을 들이는 몸매 다부진 청년에게 다가가 메를 뺏아들었다.

《광천이, 3소대장동무, 수고해.》

《아니? 철규동무가 어떻게?!》

3소대장은 뜻밖에 산중의 길닦기공사장에 나타난 그를 보고 놀랬다.

《자네들을 도울 일이 없을가 하고 왔어. 도당책임비서동지도 오셨소.》

도사로청위원장은 메를 휘둘러 소대청년이 틀어잡은 정대머리에 먹였다.

석태진은 땀에 젖은 머리에서 김이 문문 피여나는 젊은 돌격대소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야간작업을 하오?》

《그렇습니다. 책임비서동지.》

인사도 몸에 밴 절도있는 동작이였다.

《제대군인이구만. 군사복무를 어데서 했소?》

《강원도 철원근방입니다.》

《돌격대일이 힘들지 않소?》

《저야 뭐, 군대에서 갱도공사하던 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석태진은 그의 시원시원한 대답이 마음에 들어 스러져가는 모닥불에 삭정이를 집어던지고 물었다.

《소대청년들의 나이가 어리다지?》

《예, 스무살 안팎입니다. 열여덟살나는 동무도 있습니다.》

《채순봉이말인가?》

《순봉이를 아십니까?》

소대장이 기뻐했다.

석태진은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그 청년이 일을 잘하오?》

《예, 잘합니다. 힘들어하면서도 남들한테 지지 않으려 합니다. 오돌차게 똑똑한 동뭅니다.》

석태진의 뒤에서 잠자코 듣고있던 채혁이 한발 나서며 물었다.

《그런데 거 순봉이 그앤 왜 작업장에 보이지 않소?》

《저… 몸이 좀 불편해하길래 천막에서 쉬라고 했습니다.》

소대장이 어쩐지 두리뭉실히 대답하는데 채혁은 끈덕지게 물었다.

《어데 앓는가요?》

《별로 앓진 않는데 낮에 메질하느라 무리한것 같습니다.》

채혁은 무언가 미심쩍은게 풀리지 않는지 모닥불에 비친 소대장의 얼굴표정을 살펴보고나서 묵묵히 자리를 떴다. 그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저쪽으로 가더니 키작은 청년의 손에서 곡괭이를 뺏어들고 언 땅을 세괃게 찍어댔다.

《채순봉이 아버지요.》

석태진은 놀라와하는 소대장에게 나직이 말을 이었다.

《아들을 청년돌격대에 넣어달라고 나한테까지 왔댔소. 아들을 단련시키겠다고… 사람을 만들겠다고 얼마나 극성인지 모르오.》

《정말 쉽지 않은분입니다.》

소대장은 곡괭이질을 하는 채혁의 뒤모습에서 감동어린 눈길을 떼지 못했다.

석태진은 웃동을 벗어붙이고 청년돌격대원들을 도와 삽질을 했다.

길닦기공사장은 들끓었다. 페유를 끼얹은 홰불망치가 사위를 대낮처럼 밝히고 메질소리가 캄캄한 어둠에 잠긴 골짜기의 정적을 깨뜨리고있었다.

석태진은 속적삼이 땀에 흥건히 젖을 때까지 한바탕 삽질을 하고나서 도사로청위원장과 소대장을 데리고 석축을 해야 할 개울옆길을 돌아보았다. 등성이너머 달구지길까지 넓혀가자면 이 청년돌격대소대가 맡은 구간에만도 아직 작업량이 많았다. 온통 바위투성이인 등성이길을 닦는게 제일 난문제였다. 정대와 메질로는 이달 말까지도 해낼것 같지 못했다.

석태진은 도사로청위원장과 같이 모닥불가에서 침착하고 믿음성있어보이는 소대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땅이 얼고 바위들이 많아 불도젤을 탄광쪽에 보낸 실정이며 돌격대의 후방공급정형을 알아보고난 그는 지원물자를 가지고 뒤늦게 공사현지에 나와본 자신의 사업을 돌이켜보았다. 그는 마음이 무거워져 도사로청위원장에게 말했다.

《시간도 없는데 동무는 이 길로 돌아가지? 눈도 좀 붙여야 할테니까. 돌격대사업토의는 동무가 평양에 갔다와서 하자구.》

《책임비서동지, 돌격대원들의 천막에랑 가보겠습니다. 지휘부천막도 그 부근에 있다는데… 강운학돌격대장동무랑 어째서 청년들이 밤작업을 하는데 삐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돌격대실정을 더 파보겠단말이지. 좋소. 그럼 우리 함께 가보기요.》

석태진은 젊은 도사로청위원장의 결패있고 주인다운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이 청년일군이 가지고있는 좋은 성품이 하나하나 엿보이는것이 그를 은연중 기쁘게 했다.

홰불망치를 들고 앞장에 선 소대장은 골짜기오솔길을 따라 석태진이네를 안내하다가 산비탈에 주런이 자리잡은 다섯개의 천막을 가리켜보였다.

《맨 아래쪽천막이 소대식당입니다. 석화동무가 취사원으로…》

석태진은 소대장이 우물쭈물하며 그 천막부터 가려는것을 눈치채고 웃으며 말했다.

《석화가 내 딸이란걸 아오?》

《모를리 있습니까.》

《그애가 말했소?》

《아닙니다. 처음엔 석화가 자기 아버지가 난방사업소 로동자라구 해서 소대원들이 깜빡 속았댔습니다. 그런걸 강운학대장동지가 와서 사실이 드러났지요. 취사원을 안하고 공사장에 나가 일하겠다고 해서 여간 애를 먹지 않았습니다.》

《우리 애 소원대로 해줄걸 그랬소.》

《남보다 늦게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물긷고 대원들의 밥짓는 일이 제일 힘에 부친다는걸 알고서야 석화동문 취사원이 됐습니다.》

석태진은 무척 기뻤으나 내색하지 않고 머리만 끄덕이고는 식당천막을 지나쳐 돌격대지휘부천막으로 갔다.

출입문휘장에 덧드리운 모포를 들치고 천막안에 들어서니 잘 정제하지 못한 도토리술냄새가 코를 찌르고 담배내굴이 꽉 차서 가뜩이나 전압이 낮은 전등알이 수수떡처럼 벌겋게 보였다.

모포가 바닥에 흘러내린 침상에는 후방부대장이 네활개를 쭉 뻗고 드러누워 코를 골고있었다.

도람통난로는 싸늘하게 식어있다.

널판자를 얼추대여 만든 식탁에는 순대쪼박지와 마른 명태껍질이 너저분하게 널렸는데 술잔을 손에 틀어쥔 강운학이 접시에 코를 박고 죽은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석태진은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어린 청년돌격대원들은 홰불을 켜놓고 메질과 곡괭이질을 하며 야간작업을 하는데 그들을 지도한다는 나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현장에 나가 고무는 못할망정 뜨뜻한데 들어배겨 술추렴을 벌리다니! 분노로 하여 주먹이 불끈 쥐여졌다. 하마트면 리성을 잃고 돌격대장의 멱살을 쥐여 흔들번하였다.

그를 따라 뒤미처 들어온 도사로청위원장이 강운학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왜 이래?! 시끄럽게!》

댓글목록

profile_image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강운학은 몸을 뒤틀며 팔을 내휘젓다가 중심을 못 잡고 의자에서 나떨어지는것을 도사로청위원장이 붙잡아주었다.

《누구야?》

강운학은 혀꼬부라진 소리를 내뱉으며 초점이 풀린 눈을 지릅뜨고 이 산중에서 감히 자기를 방해하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오, 너 시사로청… 지도원 철규 아니야?! 이 산골에 어떻게 왔어?》

강운학이 헤식은 웃음을 지으며 반가와하더니 문득 깨도가 돼서 소리질렀다.

《그렇지! 너 도사로청위원장이 됐다지. 굉장히 출세했구나. 야 축하한다. 한잔 들라.》

강운학이 추켜든 술잔에서 술이 마구 식탁에 쏟아졌다.

석태진은 강운학이 노는 꼴을 더 보고있을수 없어 천막밖으로 나오고말았다. 천막안의 어지러운 공기에 숨이 막히고 속이 메슥메슥하던 그는 겨울밤의 찬공기를 시원스레 들이마셨다.

《강운학동지, 일어나라요!》

도사로청위원장의 안타까움에 젖은 그러면서도 성이 난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추태예요. 청년돌격대장이란 사람이 체면도 량심도 없어요? 청년돌격대원들이 뭐라구 하겠어요. 이래가지구 어떻게 그들을 이끌수 있겠어요.》

이끈다구? 술에 취한 사람에게 적당치 않은 충고다.

석태진은 강운학이 청년돌격대사업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겨울밤에 술을 마실수 있다. 그러나 강운학은 어린 청년들을 밤작업시키고 자기들은 배포유하게 맘껏 마셔대였다. 그야말로 체면도 량심도 없는 인간이다.

석태진은 홰불방망이를 들고 자기를 기다리는 소대장에게 목갈린 음성으로 물었다.

《대장이 술을 자주 마시오?》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마 피곤해서 마셨을겁니다.》

소대장은 조심스레 석태진의 눈치를 살피며 강운학을 감싸주려고 했다.

석태진은 이전 도사로청위원장이 강운학을 추천하면서 사람이 술을 좋아하는게 결함이지만 사로청사업을 잘한다고 말하던것을 상기했다. 스쳐듣지 말았어야 했다.

청년들을 지도하는 일군이 술을 좋아하는것은 좋지 않다. 그자신은 말할것 없고 사로청원들에게 주는 영향이 더 나쁜것이다.

석태진은 심사숙고하지 않고 그런 사람에게 청년돌격대사업을 맡긴것을 후회했다. 자기의 사업실책임을 반성하지 않을수 없었다.

석태진이 소대장의 안내로 돌격대원들의 천막에 들어서니 한발 먼저 온 채혁이 성이 나서 순봉이를 닦아세우고있었다.

《남들이 야간작업을 하는데 떡 자빠져있어? 사람질을 하라고 돌격대에 보냈더니… 후유,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 샌다는게 널 두고 하는 말이구나.》

천막바닥의 랭기를 차단하려고 널판자를 낮추 깐 침상에 내의바람에 앉은 순봉이의 얼굴은 열에 뜬 사람마냥 검붉은 빛갈이였다.

채혁은 입을 꾹 다문채 대답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있는 아들의 얼굴에 코를 가져다대였다.

《흠, 그렇지. 네가 농태기를 마셨구나. 얼간망둥이같은 녀석!》

채혁은 무쇠덩이같은 주먹을 쳐들었으나 널침상두리에 주런이 선 돌격대원들한테 눈길이 가닿자 그만 손을 내리고말았다.

석태진은 아들에게 랭혹한 채혁을 밀어치우고 순봉이옆에 앉았다. 순봉의 이마를 짚어보니 단쇠처럼 뜨거웠다.

《너 감기가 심하구나. 소대장, 해열제같은게 없나? 아스피린도?》

석태진은 오한에 떨며 자기품에 쓰러지는 순봉이를 안아 널침상에 눕혔다.

못박힌채 서있던 청년돌격대원들이 소대장이 배낭구석에서 찾아주는 약을 가져온다, 난로우의 늄주전자에서 물을 따라온다 하고 서둘렀다.

석태진은 순봉이에게 약을 먹이고 모포를 여러장 덮어주었다.

천막안에는 정적이 깃들었다.

바람이 천정의 방수포지붕을 펄럭였다.

순봉이가 가늘게 신음소리를 냈다. 이발을 맞쫏는 소리가 석태진의 마음을 아프게 긁었다.

채혁은 옆구리가 우무러진 도람통난로에 불을 지폈다. 바람이 거꾸로 부는지 뜬김같은 연기가 아궁이 좁다하게 쓸어나오더니 불이 달리자 그런대로 빨려들어갔다.

그는 쭈그리고앉아 돌격대원이 가져다주는 나무가치를 난로에 집어넣었다. 난로불에 비친 채혁의 얼굴은 벌거스름하고 거무틱틱한게 금방 부어낸 청동주조상 같았다.

《소대장동무… 우리 아들이 어떻게 술을 마셨소? 술을 마시게 왜 가만뒀소?!》

채혁의 목소리는 나직하나 분노와 비탄에 젖어있었다. 그는 난로아궁에서 나는 연기에 쐬여선지, 마음속괴로움이 터져올라선지 그을음이 묻은 손으로 눈굽의 물기를 찍어내였다. 그는 난로둘레에 선 어린 청년들을 면구해하지 않고 주름잡힌 눈귀에 다시금 고이는 눈물을 또 닦았다.

석태진은 전쟁의 가렬처절한 싸움마당에서 용맹스럽게 지혜롭게 정찰소대를 이끌어 임무를 수행하던 이 강철같은 전사가 흘리는 눈물을 처음 보았다.

후대에 대한 사명감에 가슴이 뻐개지게 아파 흘리는 고통의 눈물이였고 늙음과 함께 어찌할수 없이 찾아드는 나약한 심정의 로출이였다.

《아버님, 순봉동문 나을거예요. 우리 천막에 가시자요.》

언제 들어왔는지 석화가 채혁의 손을 다정히 잡으며 위로했다.

《순봉동무가 돌격대에서 일을 얼마나 잘한다구요.》

석태진은 귀에 익은 목소리만 아니였다면 남자들처럼 솜바지저고리를 입은 딸애를 첫 순간에 알아보지 못할번하였다. 목수건을 두른 딸애의 얼굴은 곁에 있는 돌격대 남자청년들 못지 않게 구리빛을 띤것이 추위와 로동에 습관된 모습이였다. 집을 떠날 때의 핼쓱하게 보이던 흰 살결과 위구를 자아내던 연약한 소녀티는 씻은듯 사라져버렸다.

석태진을 흐뭇하게 한것은 아버지가 왔다고 기뻐서 달려왔을 딸애가 자기한테 매달려 어리광을 피우며 반가와하지 않고 천막안의 분위기에 맞게 처신을 잘하는것이였다.

《너도 돌격대에 왔다지. 추운데 고생을 하는구나.》

채혁은 침울한 기색을 가시고 석화의 튼 손을 매만지며 반가와했다.

《아버지를 못 만났지? 어서 만나봐라.》

채혁은 석화의 등을 떠밀었다.

《책임비서동지, 딸애가 우리 집에 왔을 때보다 아주 의젓해졌습니다. 귀여운 총각애같구만요.》

석태진은 딸애보다도 채혁의 기분이 밝아진것이 더 기뻐서 웃음을 지었다. 그는 곁에 다가와 돌격대청년들이 있어 부끄러운지 가만히 팔을 부여잡은 딸애의 탄탄한 어깨를 어루만져주었다.

《소대장동무, 그럼 어디 식당천막이랑 돌아볼가?》

석태진이 딸애와 소대장과 같이 천막밖으로 나오니 홰불방망이를 쥔 돌격대원이 웬 늙수그레한 사람을 데리고왔다.

《소대장동지, 산아래마을 농장원입니다.》

돌격대원이 소개를 하자 농장원은 손에 들었던 솜옷을 내밀었다.

《지휘관동무, 솜옷을 임자에게 돌려주려구 왔수다.》

소대장이 누구건지 몰라 솜옷의 안거죽을 펴보는데 석화와 돌격대청년이 제꺽 알아보았다.

《채순봉이 솜옷입니다.》

《임자가 나졌으면 됐수다.》

농장원이 시름을 놓았다.

《이게 어떻게?!》

소대장은 놀라와했다.

《날이 저물녘에말입니다.》

농장원은 소대장옆에 나이 지긋해보이는 석태진이 있어서 그런지 깍듯이 례의를 차려 말했다.

《이 솜옷을 입은 아주 어려뵈는 청년이 우리 집에 오지 않았겠습니까?》

《순봉동무가 마을상점에 심부름 갔댔는데…》

《건 모르지요. 하여튼 그 순봉이란 청년이 날 보고 몹시 미안해하면서 술을 좀 달라는것이였습니다. 돈이 없다면서 솜옷을 벗어놓는게 아니겠습니까. 난 수일전에 우리 집에 와서 닭을 훔쳐간 돌격대원을 보면서도 가만 놔두었습니다. 이 산골에 와서 길을 닦는 돌격대에 지원은 못할망정 닭 한마리쯤 가지고 야단을 쳐서야 안되지요.

그런데 순봉이란 청년은 겸손하게 나오는 품이 다르더란말입니다. 그래 난 감동돼서 솜옷을 도로 입히고 비닐장통에 술을 넣어주었습니다. 헌데 웬걸요. 날이 깜깜해진 다음에 집에 들어오던 처가 울바자에 걸쳐놓은 이 솜옷을 발견했더란말입니다. 술값으로 남겨뒀지요. 맘이 갸륵한 청년이우다. 솜옷을 입지 않고갔으니 얼마나 추웠겠소.》

《농장원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소대장은 비탈길로 되돌아가는 농장원에게 홰불방망이를 들려주었다.

석태진은 짐작되는바가 있어 조용히 물었다.

《그러니 소대장동무, 강운학이… 돌격대장이 순봉이한테 술심부름시켰구만?…》

《…》

소대장은 괴로운듯 입을 다물고 대답을 피했다.

석태진은 더 캐묻지 않고 소대장의 어깨를 천막쪽에 돌려세웠다.

《어서 솜옷을 순봉이한테 가져다주오. 채혁동무한테… 아버지한테 사연을 말해주라구. 술통을 가지고오다가 한모금 마셨겠지. 그보다 순봉이의 사람됨을 알게 되면 무척 기뻐할거요.》

곁에서 석화가 긍정하는 정찬 눈길로 석태진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순봉동무는 솔직하고 속이 깊은 청년이예요.》

《돌격대에 와서 많이 달라졌니?》

《그래요. 그런데도 순봉동무아버지는 이전에 공장에 잘 나가지 않고 망나니패에 섞여놀던 때처럼 다루는군요.》

《요구성을 높이는거야 좋은 일이지.》

석태진은 순봉이에 대한 딸애의 관심이 얼핏 마음에 씌였으나 스쳐버렸다. 길닦기공사에 대한 걱정이 무겁게 갈마들었다.

석태진은 자기가 래일 강운학이 술이 깬 다음에도 그와 공사문제를 의논하지 않으리라는것을 느꼈다. 돌격대대장부터 갈아치을 결심이였다. 도사로청위원장과 의논해서 이제라도 소대장이든가 누구 다른 사람을 대장으로 앉힐 생각이였다.

북방의 혹한이 엄습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길닦기공사를 끝내자면 청년돌격대의 힘만 가지고는 안된다는것이 명백하였다. 메질과 곡괭이질 그리고 맞들이로 흙을 나르고 석축을 하는것 같은 손로동에만 의거할수는 없었다.

석태진은 돌아가면 도당위원회적인 협의를 해서 사람도 더 동원하고 기계수단을 들이미는것 같은 결정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