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수필] '사람이 살고 있었네' 바로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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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수필] '사람이 살고 있었네' 바로 이해하기
강산 (통일운동가) 민족통신
20대 청년시절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들은 황석영의 소설들이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거나 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대받고 괄시받는 밑바닥 인생들이다. 그런 주인공들이 급격하게 자본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겪게 되는 애환이 소설을 읽는 동안 가슴 뭉클하게 감동시키고 세상을 바로 직시할 수 있게 만들며 나아가 그 주인공들과 하나되게 만든다.
그의 초창기 소설 '객지' 와 '가객' '삼포 가는 길'을 비롯하여 수많은 단편소설과 한국일보에 오랫동안 연재된 '장길산' 등의 장편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분단된 남녘의 민중에 대한 의식이 확고해졌고 나 또한 애환 많은 민중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황석영 (소설 가객의 뒷표지)
황석영 소설집 가객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1985년에 출판하여 지하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광주민중항쟁 다큐멘터리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비밀리에 숨을 죽여가며 읽었던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전두환 정권의 언론탄압으로 그동안 숨겨왔던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알게 되고, 군대에 의한 끔찍했던 민간인 대학살을 명령했던 전두환이 대통령이라는 남녘의 현실을 바르게 자각하고 이후 민주화 시대를 여는데 앞장서서 세상을 바꾸어놓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민주화를 위한 활동가요 행동가였다.
황석영 선생은 1989년에 북부조국을 방문하였고, 이후 몇 차례 방북하는 동안 남북의 문화교류와 협력사업을 협의하였다.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귀국한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는 소설가이면서 통일운동가로 지금까지 여전히 활동중이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는 1989년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었던 황석영의 방북기를 1993년에 귀국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중일 때 출판한 책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보안법 하에서 당시에 북부조국의 진실을 그대로 담고, 저자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한 책을 남녘에서 출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와 출판사가 그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그렇지만 북에 대한 바른 정보가 차단되어있던 당시에 이 책은 남녘 민중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조국통일에의 염원을 키워가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언론보도를 통하여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사람들은 그 제목부터 많은 호기심을 갖게 하였다. 그런데 황석영이 평양에서 만나본 사람들의 이야기와 인민의 생활을 묘사하며 그 제목으로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하자 언론에서는 한결같이 "북한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 사는 북한, 그 '사람' 이라는 것이 우리와는 영 딴판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글을 쓰는, 그리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 가족이었던, 그런 '사람'들이다"라는 투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였다.
그러니 그 기사를 본 반공세뇌 속에서 살아오던 민중 대다수는 '그래, 북에도 당연히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 '개인적인 자유는 아무 것도 없이 병영생활처럼 북의 인민들은 구속된 상태로만 살아간다고 여겼지만 역시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는 대다수 민중뿐만 아니라 남녘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던 사람들까지도 비슷한 인식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오늘 짚어보고싶은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과연 언론이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해서 의식있는 민중이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생각해도 좋은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말인가?
소설가 황석영 선생
황석영 선생이 책 제목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붙였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가 당시 해외에서 머물면서 조선을 네 차례나 방문하며 김일성 주석님도 만나뵐 수 있었고, 평양 시내뿐만 아니라 조선의 농촌도 방문하면서 인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선을 깊숙이 이해하고 쓴 책의 제목으로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하였을 때, 과연 그가 북녘 또한 남녘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의미로 그렇게 제목을 붙였겠는가 하는 말이다.
남녘의 민중이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으며 불공평한 삶을 살아왔는지는 민중소설가로서의 황석영 선생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깊숙이 인식하고 있었고 그의 초창기 소설들에서 무엇보다 그 부분을 주제로 하였다. 해방 이후 남녘에서 정의로운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모두 제거해버렸고, 군부독재 치하에서 생명만은 끈질긴 잡초처럼 살아남은 민초들이 개발독재의 산업화 현장에서 저임금에 장시간의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인간이하의 모습으로 살아온 것을 세세하게 소설로 묘사해온 그가 어떻게 그것이 사람다운 삶이라 여길 수 있었겠는가?
그가 인식한 남녘 민중의 삶은 사람으로서 사람대접을 받으면서 사람행세를 하며 살아온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녘은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아니었던 것을 황석영 선생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북을 다녀온 이유만으로 이 책이 출판될 때 그는 잡혀가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던 것 자체가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의로운 행동을 한 댓가가 감옥인 세상이 어떻게 사람사는 세상이며 그곳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살아가는 민초들이 어떻게 사람이겠는가?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국가보안법으로 양심의 자유를 구속하는 곳이 어떻게 사람사는 곳이겠는가? 오죽하면 이후의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했던 좌우명까지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람사는 세상'이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그가 북녘에도 남녘과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고 여겼겠는가? 오히려 북에서는 '진짜배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느끼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물론 황석영 선생이 북에서 인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남녘 민중들과 똑같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며 때로는 짙은 농담도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들과 별 다름 없는 사람냄새를 맡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언급하였듯이 남녘 민초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소원하였던 민중운동가이다.
그런 그가 제도적으로 인민이 주인된 세상에서 로동자들이 더이상 자본가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스스로가 공장에서 주인이 되어 생산에 임하고, 농민들은 땅의 주인이 되어 협동하여 증산을 위해 일해나가는 활기찬 모습을 보며, 나아가 국가에서는 인민의 복지를 위하여 무상교육, 무상주택,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진정한 인민의 나라인 조선을 보고는 '아, 이곳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이구나. 진짜배기 사람이 이곳에 살고 있었네' 라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반공세뇌를 벗어던지지 못한 자본주의 세상의 우리들은 여전히 착각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허덕이며 살아가는 모습에 대하여 이것이 진정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깊이 성찰해볼 기회마저 갖지 못하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거주하는 집세를 내기 위하여, 그리고 자동차를 사서 매달 월부금을 내면서 유지하고 온갖 보험비를 내며, 아이들의 학비를 마련하고, 비싼 전기 전화 물세 하수도세 케이블 비용을 내며, 식료품 구입에다 비싼 세금까지 납부하기 위하여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런 지출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죽도록 일해야 하는 것이 과연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이겠는가? 그러다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망하는 확률은 얼마나 높은가? 코로나 19가 지금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설혹 코로나 19를 해결한다해도 이런 자본주의 제도가 가져오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이런 온갖 스트레스에 실직이나 파산을 당할 위태로운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사람다운 삶이고, 국가에서 인민이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제공해주는 조선의 인민들은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곳으로 인식하도록 끊임없이 세뇌당하며 살아왔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대량생산과 제3국에서 수입한 값싼 제품들을 자신이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무슨 커다란 특권으로 여기면서 그런 것들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미국의 경제봉쇄에 그동안 허리띠를 조르면서도 자력갱생으로 극복해온 조선의 인민들은 그런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살기에 불행하며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의 오류를 범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선을 바로 인식하는 통일운동가들 외에 민주화를 외쳐온 대다수의 활동가들 또한 포함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민주화를 외쳐온 운동가들이지만 반공세뇌를 깨지 못한 그들 대다수는 여전히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정도의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만 이루면, 그리고 정권만 바꾸면 지금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세상의 민초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온 것이다. 그런 남녘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도 여전히 하루 40여명이나 생활고로 자살을 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21세기 대명천지에 1년에 40여만 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1만 몇천명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상을 어떻게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운좋게 내가 그런 불행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고해서 그런 세상을 사람사는 세상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도 자신만은 불행을 당하지 않고 있음에 감사해하며 세상을 바꿔보려는 꿈조차 꾸지 못하는 반공세뇌된 대다수의 사람들을 과연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보통 100대 1의 경쟁을 하는 곳이 어떻게 사람사는 세상이 되며, 이놈의 자본주의 세상은 젊은이들이 마음놓고 결혼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인데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제 이해가 되지 않는가? 황석영 선생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하였을 때 그것은 다름 아닌 "아, 나는 보았네. 조선은 유일하게 사람다운 사람이 살고 있었네. 거기엔 사회주의 혁명을 이뤄내어 돈의 노예로 살지 않고 혁명적으로 살아가는 진짜배기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 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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