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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계승자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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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8,502회 작성일 20-07-2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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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래, 탄광개발지에 보낼 청년돌격대조직사업은 어떻게 됐소?》

석태진은 몸집이 둥실하고 어질게 보이는 도사로청위원장이 출입문을 조심스레 닫고 긴 앞상모서리옆에 와 서는것을 기다려내지 못하고 물었다.

《저… 지금 한창 청년돌격대를 조직하고있는중입니다.》

《한창이 뭐요.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보고하오.》

석태진은 온종일 사업에 지쳐 피발이 선 눈을 찌프렸다.

도사로청위원장이 어정쩡하게 대답하는것보다도 그의 바빠하지 않는 태연스런 말투와 얼음우를 걸어가는 펭긴새를 련상시키는 느릿느릿한 동작에 더 화가 치밀었다.

《책임비서동지, 시내 공장, 기업소, 기관사로청조직들에서 한창 청년돌격대원들을 선발하고있습니다.》

석태진은 손바닥으로 사무탁을 소리나게 치고 일어섰다.

《내가 동무한테 청년돌격대를 조직해서 령산군 탄광개발지에 보내라고 과업을 준게 언젠데 아직도 사람선발이요?》

《저, 그래야 열흘밖에…》

《열흘이 작은가! 당장 눈이 내릴판인데. 시행정위원회에서는 사흘만에 운수기재와 사람들을 보냈단말이요.》

《초급사로청위원장들을 불러다 협의회도 하고 몇명씩 내라고 따끔히 못을 박고 전화로 독촉도 했는데…》

《동무는 원래 일본새가 그렇게 느리오?》

《제 성격이 좀 그런데가 있습니다.》

자기를 시인하는 범상스런 태도에는 면구해하는 구석이 별로 없었다.

《성격이라구? 당이 과업을 주면 사로청이 불이 번쩍나게 뛰여다녀야지 성격이 무슨 상관이요? 성격이 아니라 사상문제요. 동무한테서 쇠소리가 나지 않으니까 초급사로청조직들이 어떤가말이요. 도내 사로청원들속에서 불량배가 나오고 무직건달군, 안일해이된 청년들이 삐여진단말이요.》

《책임비서동지, 며칠내로 청년돌격대를 뭇겠습니다. 사실 선발사업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여서…》

《무엇이 어렵단말이요?》

《사로청조직의 호소에 선뜻 응해나서는 청년들이 많지만 일부 사로청원들은 탄광개발지대에 보낸다니까 꺼려합니다. 부모들중에도 자기 아들을 그런 산골에 잘 보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구요.》

《부모들중에도 있다… 도당과 시당이나 행정위원회 간부들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소?》

석태진은 도사로청위원장에게 걸상을 가리키고 자기는 앞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도사로청위원장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걸상에 앉는 그의 얼굴에 회의적인 미소가 언뜻 지나갔다.

《책임비서동지, 도당이나 시당, 행정위원회 간부들중에는 자식들을 탄광개발지에 보내는 부모들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 그럼 어떤 청년들이 돌격대에 망라되오?》

《거의다 로동자들과 일반 사무원집안의 자녀들입니다.》

석태진은 놀라운 사실앞에 더 말을 못하고 묵묵히 담배갑을 끄당겨 한가치 피워물었다.

도사로청조직사업이 틀렸다고 추궁만 할 일이 아니였다. 사로청사업을 지도하거나 도와주고 관심해야 할 일군들부터가 자식들을 당이 부르는 어려운 곳으로 보내기 싫어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전쟁을 치르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복구건설을 하면서 혁명을 해왔는데 인제는 자식들이 아까와서 힘든 곳으로 보내지 않다니. 자기들이 겪은 시련과 고생같은것을 자식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것은 단순히 자식들에 대한 사랑에 눈이 어두워서가 아니라 혁명을 계속해나가지 않겠다는 안일하고 위험한 사상경향으로 분석해야 하지 않겠는가. 탄광, 광산도 개발하고 공장과 발전소들도 건설하고 도내에만도 큼직이 할 일이 그득한데 3세 젊은 청년들이 떨쳐나서고 2세 부모들이 뒤받침해야만 사회주의건설을 앞당겨나갈수 있지 않는가.

석태진은 도당위원회사업의 중요한 측면, 간부들과 당원들이 자기들뿐아니라 자녀들까지 대를 이어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충성으로 받들어모시도록 사상교양사업을 심화시켜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서기가 두툼한 서류를 가지고 들어오자 석태진은 담배꽁초를 재털이에 비비고 일어섰다.

《도사로청위원장동무, 청년돌격대 대장을 누굴 시키겠소?》

《사로청지도원 강운학동무를 시키겠습니다.》

《청년공원건설때 사로청원들을 데리고나왔던 몸집이 뚱뚱한 동무말이요? 그 동문 술버릇이 나빠. 건설장에 나가보니 사로청일군이란게 대낮에 건설사업소 직장장과 술판을 벌리고 점심을 먹드란말이요.》

《고쳐주겠습니다. 술만 절도있게 마시면… 일은 제끼는 동무인데.》

《이번엔 청년돌격대를 둘로 나누어야겠소. 그래서 하나는 탄광갱건설을 맡고 다른 돌격대는 탄광까지 가는 산협길을 닦게 하시오.》

《알겠습니다.》

도사로청위원장은 들어올 때와는 달리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석태진은 서기가 가져온 서류를 비준해주고나서 선전비서와 몇가지 사업토론을 끝낸다음 령산군당책임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탄광개발지에 오십명의 선발대를 보냈으면 좋소. 청년들로 인차 기본인원을 보내시오. 도에서 탄광기술전문가들과 일부 관리인원들을 보내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탄광의 주인은 동무네요. 이름도 령산탄광이니까. 저질탄이지만 쓸수 있는 그런 탄광을 외면하고 내버려둔 군당위원회가 이번 기회에 탄광개발을 본때있게 해서 친애하는 지동자동지께 기쁨을 드립시다.》

석태진은 황황히 결의를 피력하는 군당책임비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탄광현지에서 만나본 대머리진 사람좋은 얼굴모습을 상기했다.

도당책임비서가 시행정위원장과 같이 동발들이 썩고 도처에 붕락된 갱막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령산군당책임비서는 승용차가 길이 나빠 더 갈수 없게 되자 잡관목덤불을 헤치고 지름길로 탄광에 달려왔다. 그의 얼굴과 온몸은 땀에 푹 젖었고 바지가랭이에는 도꼬마리열매따위들이 잔뜩 달라붙었다. 그는 위험한 갱막장에 들어가서 배낭에 탄을 넣어가지고 나온 석태진과 시행정위원장의 탄가루가 묻어 온통 시꺼먼 모습앞에서 몸둘바를 몰라했다. 사유는 어떻든지간에 탄광을 페갱시킨 책임이 군당에 있다는것을 솔직히 시인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력연해서 석태진은 그에게 잘못을 따지지 않고 탄광을 재생시키고 새 갱들을 건설할 대책적문제들을 의논했었다.

석태진은 벽에 걸어놓은 령산탄광개발략도에 마주섰다. 급히 그린것이 되여 산협길은 잘 표시되여있지만 탄광건물들의 형태와 위치는 대략적으로 그려놓았다. 탄광 기본건물과 갱입구, 권양장, 공무직장, 살림집들과 탁아소, 유치원의 설계를 끝내서 가져갔으니 건설준비는 빈틈없이 되여가는셈이였다.

그런데 기본은 사람선발문제이다. 도사로청이 사업을 굼뜨게 조직한데도 결함이 있지만 어떻게 되여 당조직들이 청년돌격대조직사업을 밀어주지 않고있는가, 대렬꾸리는 시작부터 이래가지고 청년돌격대가 제 구실을 해낼것인가.

석태진은 사무탁에 돌아와 전화기에 손을 얹었으나 공장, 기업소 당비서들에게 호령하고 추궁하기는 싫었다.

도당책임비서로서 그렇게도 해야 하겠지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가르쳐주신 항일유격대식당사업방법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였다. 단순히 청년들을 어려운 탄광개발지에 보내는 문제라면 몇마디의 된 추궁과 지시로써 해결할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들, 자식들을 가진 간부들과 당원들이 당과 혁명앞에서 어떻게 충실하는가, 대를 이어 계속되는 충실성만이 참다운 충실성이라는것을 당비서들을 통해 심각히 인식시켜야 하는것이다.

서기가 들어와 종합기계공장 로동자가 아까부터 한사코 책임비서를 만나게 해달라고 조른다고 알리였다.

《이름이 뭐라오?》

《채혁이라고 합니다.》

《들여보내시오.》

석태진은 사업의 번민에서 벗어나게 된것도 있지만 옛 전우를 다시금 만나게 된 기쁨이 더 컸다.

뜻밖에 맥주집에서 상봉한 이후에 안해와 아들을 데리고 집에 오라고 딸애를 보내고 일요일에는 승용차까지 보냈지만 채혁은 좋은 말로 구실을 대고 거절했다. 그 다음엔 석태진이도 사업이 드바쁘다나니 전우를 만나 회포를 나눌 기회를 얻지 못했다.

석태진이 안해한테 전화를 걸고났을 때 채혁이 들어왔다.

《집에는 안오더니 무슨 생각이 나서 제발로 찾아왔나?》

석태진은 채혁의 손을 꽉 잡은채 쏘파에 끌어다앉혔다.

《미안합니다. 사실 정치부사단장동지가 도당책임비서라는것을 안 다음엔… 그런 아들을 둔게 부끄럽구 죄스러워 갈수 없었습니다.》

《인사말이 길구만. 격식을 차리자나? 뭐 아들이 어쨌다구 그래. 고치면 될게 아닌가. 전우들사이에 무슨 허물할 일이 있다구.》

《맥주집에서 그렇게 맞다들릴줄이야.》

채혁은 한숨을 쉬였다.

석태진은 서기더러 차물을 가져오게 하고 새 담배곽을 꺼내놓았다. 그는 걱정스레 물었다.

《내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자 보니 다리를 꽤 저는구만. 어떻게 고칠 방도가 없소?》

《오른쪽다리가 좀 짧아졌을뿐입니다. 빨리 걷지 못해 탈이지 살아가는데는 일없습니다.》

채혁은 조금씩 저려나는 오른쪽무릎을 주물렀다.

《다리건사보다도 자식을 바로 교양해내지 못한게… 자나깨나 그게 걱정이구 고통입니다.》

《종합기계공장 당비서한테 물으니 요즈음은 순봉이가 선반기에 달라붙어 일을 착실히 한다더구만.》

《그 꾀바리녀석이 공장사로청에서 통제가 심하니까 일을 하는척 하지요.》

《너무 걱정마오. 차차 나아질거요. 도사로청에서 청소년들통제를 심하게 하고 교양사업을 짜고들도록 단단히 과업을 주었소. 초급사로청조직들에서 불건전한 청년들에 대해 사상투쟁의 불을 걸거요.》

《우리 순봉이는 중학교때부터 머리 깬 녀석이 돼서 저를 욕질하고 교양하는 사람의 속궁냥을 뻔드름히 넘겨짚구 코웃음을 치지요.》

채혁은 석태진이 켜주는 라이타불에 담배를 붙였다. 그는 담배가치가 반나마 타들게 연거퍼 빨고는 침묵을 깨뜨렸다.

《책임비서동지, 내가 찾아온건 우리 애녀석을 위해 약처방을 하나 떼달라구 해서입니다.》

《순봉이 약을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야 선반공노릇은 그 녀석의 병을 고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난 그 녀석을 이번에 사로청에서 뭇는 청년돌격대에 넣어 령산탄광개발지에 보내자는겁니다. 우리 애가 머리는 깼지만 일하기 싫어해서 뼈마디는 약골입니다. 청년돌격대에 집어넣으면 규률이 세구 일이 힘들테니 단련이 될게란말입니다. 그래서만이 아니라 당이 부르는 어려운 곳에 피가 한동이 되는 젊은 녀석이 달려가는것은 응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채혁동무, 좋은 생각이요. 그럼 순봉이를 청년돌격대에 보내지 나한테서 처방을 뗄게 있소?》

《말두 마십시오. 공장사로청에서부터 당장 퇴짜를 맞았습니다. 불량청년이라는거지요. 시사로청에서도 우리 앨 그런 리유로 쫓아버렸습니다.》

《허허, 됐소. 내가 전화를 걸겠소. 맘놓구 순봉이를 돌격대에 보낼 준비나 하오. 날이 추워오는데 솜옷이랑 동화랑 든든히 장만해야 할거요.》

석태진은 일정계획에 물려놓은 사업이 바빠 전우와 이야기를 더 나눌수 없었다.

그는 채혁이더러 몇가지 제기된 일을 처리하고 집에 같이 가자고 극진히 권고했으나 채혁은 이담에 아들이 사람구실을 온전히 하게 됐을 때 데리고 찾아가겠다면서 사양했다.

석태진은 채혁이 돌아간 다음에 도당과 군당위원회들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사업을 하면서도 줄곧 전우에 대한 후더운 심정에 휩싸여있었다.

채혁은 조국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시기에 자기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대고 원쑤들과 싸워 중상을 당하고 영예군인이 되였다. 그한테는 자식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고 고이 자래울 당당한 사회도덕적권리가 주어져있다. 그러나 그는 이 평화시기에 지난날의 자기 공적을 가지고 털끝만치도 재세하지 않고있다. 오히려 그자신은 공장에서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어려운 일을 맡아하고있으며 아들까지 탄광개발지에 보내려는것이다.

석태진은 서기를 불러 도내 청년돌격대문제를 가지고 공장, 기업소, 기관 당비서들의 협의회를 래일 조직하도록 지시했다.

밤이 이슥해서 석태진의 방에 도안전국장 한경택이 들어왔다.

밤색사복차림을 한 그는 항일모를 본따서 만든 모자를 벗어 앞상에 놓고 희슥희슥한 머리를 쓸어넘겼다. 국경지역 군안전부들에 내려가 며칠째 복잡한 사건들을 마무리하느라 변변히 휴식조차 못했는지 살갗이 거뭇하니 죽었고 주름살이 깊어보였다.

한경택은 도당책임비서가 자기의 볼편에 꺼칠하니 돋은 수염을 지적할가봐선지 손으로 자주 쓸어만지며 간단히 사업보고를 했다.

석태진은 대내에 숨어서 준동하던 몇놈의 송사리를 잡아낸 사건내용은 서류를 통해 이미 알고있는지라 국장에게 사업상 몇마디 조언을 주고서 말머리를 돌렸다.

《집에 들어가지 못했겠습니다.》

《웬걸요. 내가 슬그머니 도착했는데 집사람이 어떻게 냄새맡았는지 점심을 싸들구 국에 찾아나왔던데요.》

《허, 옛날 녀성검찰일군의 기질이 어데 가겠습니까. 거기다 순실동무야 남편공대가 여간 극진합니까.》

석태진은 한경택의 얼굴에 떠오른 시름겨운 미소를 띠여보고 물었다.

《국장동무는 아직 창범이한테 가보지 않았지요?》

한경택의 굵은 눈섭꼬리가 불만스러운듯 관자노리로 비껴올랐다.

《그 녀석한테는 뭣하러 가겠습니까. 애비의 무른정을 뵈주면 그 녀석 버릇이나 굳히고 교양에도 나쁘지요. 그래서 처한테도 가지 말라고 다짐을 두었는데 글쎄…》

《순실동무가 로동교양소에 갔다왔습니까?》

《끝내 면회를 갔댔습니다.》

한경택은 씁쓸히 뇌이고 모자에 눌려 반가름난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의 얼굴에는 아들을 로동교양소에 보낼 때의 분노와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직 력연했다. 달라졌다면 인생에 대한 회오와 서글픔이 눈가에 진하게 비낀것이였다.

《창범이가 앓지는 않는답니까?》

《펀펀하지요. 그 녀석이야 원체 날 닮아 뼈대가 굵고 속집이 좋아서 아무데 굴려놔도 고뿔 한번 안걸립니다.》

《일이 힘들다지 않습디까?》

《채석장일이 무슨 그다지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 녀석들한테는 좋은 교양장소지요.》

《국장동무…》

석태진이 몸을 일으키자 한경택은 영문을 몰라 따라일어나며 모자를 집어들었다.

《며칠전 새벽 3시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나한테 전화를 거시였습니다. 국장동무 아들 창범이가 어떻게 지내고있는가, 규률생활을 잘하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지도자동지께서는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것이 우리 당의 본성이니만치 불량청년이라 해도 끝까지 믿고 교양하면 다 고쳐줄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경택은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려 했으나 가득 고인 눈물은 다치기 바쁘게 마디굵은 손가락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국장동무, 인차 로동교양소에 한번 가보십시오. 창범이뿐아니라 다른 불량청년들한테도 지도자동지의 해빛같은 사랑을 말해주십시오.》

《그… 러겠습니다.》

한경택은 눈물에 젖은 얼굴에 밝은 기색을 짓고 방을 나갔다.

석태진은 밤이 이슥해서 퇴근길에 올랐다.

그는 큰길에서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한 사이길을 산보삼아 천천히 걸었다.

길좌우켠에 오리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사택구역의 이 호젓한 길에 들어서면 그는 분망한 하루사업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새날에 할 사업을 두고 생각을 굴리기도 하였다.

줄기가 미츨한 오리나무가지들에서 떨어진 잎사귀들이 널려 발에 밟혔다. 먼저 떨어진 잎사귀들은 말라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잎이 없는 앙상한 잔가지들이 뒤엉킨 사이로 별들이 차겁게 떨고있었다.

두어달전만 해도 푸른 잎새들이 무성하게 설렁대던 오리나무들이였다.

가을의 정취는 별로 감상할 사이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겨울용석탄문제, 령산탄광개발문제가 다시금 커다란 압박감을 가지고 안겨들었다.

시행정위원장과 같이 붕락된 령산탄광막장에까지 들어갔다 나온것으로 만족하고 아래일군들에게 개발사업을 밀어맡긴채 날자를 등한히 흘러보낸것이 후회되였다.

그는 탄광개발사업을 놓고 자기가 일종의 인기주의, 형식주의를 범한것만 같은게 괴로왔다. 자기 반성을 심하게 할수록 한편으로 낡은 사업방법의 틀에 매달려 지시하고 내려먹이는 식으로 구태의연하게 사업을 벌리는 아래일군들에 대한 야속함과 원망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어쩌면 다른 도의 질좋은 석탄을 손쉽게 기차에 실어다 안일하게 땔 궁리만 하고 제힘으로 제 발밑의 탄을 캐쓰는 일에는 팔을 걷고 나서지 않는가. 탄광에 보낼 인원선발, 청년돌격대조직사업이 탄을 캐기 싫고 저질탄을 때지 못한다는 이 지방일군들의 그런 안일하고 낡은 사상관점으로 하여 굼뜨게 진행되고있는것이다. 이제 와서 갑자기 그런 혁명적인 변화를 감수하기 어렵다는것인가. 종전처럼 령산탄을 좀 캐쓰다가 안되면 줴버리겠거니 하고 림시적인 관념으로 접어든다면 오산이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주신 과업이니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석탄을 개발하고 때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지방, 다른 사람들의 신세와 도움으로 안일하게 살아가는 나쁜 버릇을 버리고 제 살림을 제힘으로 꾸려나가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사람들에게 특히는 청년들, 도의 주인으로 살아갈 후대들에게 든든히 심어주는 사상정신적문제임을 일군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석태진은 사택의 담장부근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것이였다.

그는 담장옆의 잔디밭공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시내물쪽으로 다가갔다.

차거운 달빛이 마른 잔디풀우에 나무그림자들을 엉성히 던지고있었다.

물가에 뿌리박은 줄기가 굵은 버드나무곁에 두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집에 들어가자요. 네? 어머니가 좋아하실거예요. 아버지도 오셨을지 몰라요.》

《아니, 싫어.》

《그럼 왜 여기까지 왔어요?》

《그저… 석화동무를 바래주고싶어서…》

석태진은 딸애말고 청년의 약간 빈정대는듯 한 애된 목소리를 어데서 들었던가 하고 생각했으나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순봉동무, 우린 언제 만날가요?》

딸애의 목소리에는 정이 함뿍 어려있다.

(채혁의 아들이였구나. 엉큼한 녀석인데… 언제 벌써 석화의 환심을 샀을가.)

석태진은 큰 오리나무줄기옆에 서서 담배를 끄집어내여 한가치 물고 성냥을 그으려다 젊은이들의 감정을 깨칠가봐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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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요전처럼 공장에 오면 되지 뭐.》

《청년돌격대에는 안갈래요?》

《망나니라고 안받아주는걸 어떡해.》

《호, 동무가 가기 싫어 그러는건 아니예요?》

《이 채순봉이를 어떻게 알구 그래? 탄광개발이 아니라 적탄이 쏟아지는 위험한 곳이래도 난 두려워않구 가는 사람이야.》

석태진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엿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나오는 기침을 가까스로 참고 집쪽으로 돌아섰다.

그는 불현듯 떠오른 한가지 생각, 딸애를 청년돌격대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당에 조용히 들어선 그는 정원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창문에는 수틀에 바싹 허리를 굽히고 앉아 열심히 수를 놓는 안해의 그림자가 비쳤다.

석태진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아들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금할수 없었다. 안해가 섭섭해할가봐 버린지 오랜 아쉬움이였다. 석화가 아들이였다면 이런 때 청년돌격대에 가서 한몫 할수 있지 않을가. 부질없는 생각이다.

주먹을 입에 대고 나직이 기침을 했는데도 안해는 어떻게 들었는지 방문을 열고 나왔다.

《날씨가 찬데 왜 그러고 앉아있어요?》

안해는 조용히 묻고는 그가 대답없이 묵묵히 담배를 태우자 옆에 와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석태진은 담배불을 끄고 안해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보, 우리 석화를 청년돌격대에 보낼가?》

《탄광개발지에 말이예요.》

《그렇소.》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손풍금이나 타는 애가 돌격대에 가서 무슨 일을 하겠어요?》

《처녀애들이 할 일이 왜 없겠소.》

《제 딸까지 그런 공사장에 보내야 되겠어요? 도당책임비서야 당조직들에 탄광을 개발할 과업을 주면 안되는가요.》

《여보, 난 도당책임비서이기 전에 이 도에 사는 일개 당원이구 자식을 가진 아버지요. 사람들에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말씀을 관철하라구, 석탄을 캐내라구 지시만 해서야 안되지 않겠소. 책임비서인 나부터가 자식을 어려운 곳에 보내기 싫어한다면 무슨 량심으로 사람들에게 대를 이어 당을 받들어나가는것이 참다운 충실성이라고 말한단말이요.》

안해는 쟈케트앞섶에 꽂은 바늘의 수실만 만지작거렸다.

담장밖에서 땅바닥을 콩콩 울리는 단화소리가 가까와지더니 석화가 어머니를 찾으며 마당에 뛰여들었다.

나무밑의 정원의자에 앉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발견한 석화는 기뻐서 한달음에 뛰여왔다. 통주름치마가 딸애의 무릎도리에 탄력있게 감겨들었다.

《야,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다정히 앉은걸 사진 한장 찍었으면 좋겠네.》

석화는 두사람사이에 응석스레 비벼들어앉았다. 그리고 팔을 벌려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러안으려 했지만 손이 모자랐다. 제풀에 좋아하던 딸애는 자기의 명랑한 기분에 어정쩡히 응하는 아버지의 신중한 기색과 어머니의 어두운 낯빛을 보고는 놀래서 일어섰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다퉜나요?》

《원 참 애두.》

안해는 딸애의 팔을 잡아당겨 도로 앉히며 말을 에둘렀다.

《아버지가 널 시사로청에 들여보내지 않으려 해서 그런다.》

《어머니, 그야 아버지의향이 옳지 않을가요? 나도 시사로청에서 문건들이나 다루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석태진은 딸애의 어깨에 손을 얹고 넌지시 물었다.

《그건 어째서? 일이 쉽구. 그러다 시사로청지도원을 할수 있구 좋지 않니?》

《머리속에 든게 없으면서 남들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 청년들이 뒤에서 웃어요. 사람들에게 지시를 하자면 그럴만 한 능력과 품성을 갖추어야 하잖나요.》

석태진은 기특하고 사랑스러워 딸애의 어깨를 끌어잡았다.

《여보, 우리 석화가 인생관이 바로잡힌걸보니 예술학교를 겉으로 졸업하지 않았구만. 그래 넌 뭘했으면 좋겠니?》

《난 공장에서 로동하겠어요.》

《예술은 어떡허구?》

《로동하면서 음악을 하죠 뭐. 생활체험을 많이 하구 작곡가가 될래요.》

석태진은 딸을 대견스레 훑어보았다.

《네가 벌써 지향이 뚜렷한 처녀로 컸구나. 기쁘다. 이 아버지의 고충도 리해할수 있겠구나. 석화야, 넌 아버지가 령산탄광막장까지 들어갔다온걸 알지? 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걱정하시는 석탄문제를 기어이 풀려고 한다. 그런데 사로청에서 조직하는 청년돌격대사업이 잘 진척되지 않고있구나.》

석태진은 말하기 힘들어했다.

《아버지, 더 말씀하시지 않아도 알겠어요. 내가 탄광개발청년돌격대에 나가면 되죠?》

《석화야!》

안해가 더 감동해서 딸애를 끌어안아 어린 시절처럼 무릎에 앉히고 딸애의 보드라운 손을 매만졌다.

《길닦기공사가 힘들겠는데 네가 견딜수 있겠니?》

《어머닌 수만 놓아 그런 일은 걱정이 크지요? 일없어요. 나도 남들처럼 곡괭이를 휘둘러 굳은 땅을 파볼래요. 뭐 공장에서 로동하는거나 별반 차이가 없을거예요. 단련해보겠어요.》

딸애는 선선히 대답했다.

석태진은 딸애의 사상정신상태가 너무도 맘에 들어 코마루가 찡해났다.

《네가 아버지의도를 잘 아는구나. 옳다, 단련하는것이다. 난 너와 같은 새 세대청년들, 도내사로청원들을 온실의 꽃나무처럼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과 당을 받드는 의지가 굳센 청년들로 키우고싶다. 도사로청사업이 그런 방향에서 패기있게 벌어지고 들끓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청년사업문제를 두고 마음놓으시게 말이다.》

《아버지, 너무 걱정마세요. 사로청사업이 잘 되겠지요뭐. 이제 탄광개발청년돌격대가 북을 울리고 나가면 다른 청년들도 정신을 차릴거예요.》

석태진은 딸애의 말에 유난히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런 딸을 두었다는게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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