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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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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383회 작성일 20-08-3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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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명 령

8

 

부대로 돌아가는 길은 날개라도 돋친듯싶었다. 여느때도 그랬지만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훌륭히 수행하고 돌아오는 길은 개선장군들의 귀환길마냥 성수나는 길이였다. 지금 사단에서는 정찰대의 보고자료에 기초하여 적들을 되게 답새길 작전을 펴고있을것이다.

정찰병들의 사기를 더욱 북돋군것은 지휘부에서 날아온 희소식이였다. 전선신문기자가 그들의 위훈을 소개하겠다고 기다리니 빨리 돌아오라는것이였다.

《하 이거, 부대를 떠날 때 괜히 덕천이한테 성화를 받았는데. 하 하…》

김동호가 큰 손으로 이마를 슬슬 문대며 시까슬렀다. 고향에 보낼 그림을 그린다고 두시간나마 모델을 섰던 생각이 나는 모양이였다. 그날 그리던 그림은 아직 미완성이다. 이제 부대에 돌아가면 꼭 완성하겠다고 늘 희떱게 굴던 덕천이였는데 그런 말을 듣게 되니 무척 섭섭한 모양이였다. 단박에 골이 나서 툭 내쏘았다.

《그래두 그림이 그림이예요. 마저 그려줄려 했더니만… 에익, 그 약속은 무효다!》

《아아, 그렁하지 말라구. 그림두 보내구 사진두 보내구 다 보내면 좀 좋아서?》

《어허허… 욕심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적의 소굴인 마산계선을 벗어났으니 이렇게 웃을 겨를도 있는것이였다. 이제 전선가까운 곳에 이르면 또 긴장해야 한다.

어서 가자, 빨리 가자! 모두들 발걸음을 다그치고있었다.

대렬앞에서 걸어가는 리학문은 배달환놈과 결산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된 아쉬움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언제든 기회가 있을것이다.

행군속에 날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가만!》

학문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선가 가늘게 들려오는 발동기소리를 감촉한것이였다.

《무슨 소리가 들리지?》

모두들 귀를 기울였으나 인차 도리머리를 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요. 이건 분명 적의 땅크소리요!》

그는 멀리 남쪽에서 들려오는 이상야릇한 소음을 온몸으로 가려듣고있었다.

《아마 진동리쯤 되는것 같아. 확인해야겠소.》

대오를 되돌려세운 그는 진동리방향으로 뻗어간 도로옆에 정찰조들을 산개시켰다. 담배한대 태울만 한 사이에 발동기소리는 난청이래도 알아들을만큼 요란해졌다. 얼마후엔 적땅크대렬이 나타났는데 꼬리는 아직 굽인돌이뒤로 돌아갔다.

한대, 두대, 석대…

포탑에 흰 별을 그린 적땅크들은 12.7㎜대구경기관총을 건들거리며 거들지게 전진해왔다. 와릉와릉하는 발동기들의 소음이 땅과 하늘공간을 꽉 채웠다.

《분명 놈들은 아군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시작하자는것일게요. 우리가 놈들의 발목을 걸어채야겠소.》

《부과장동지, 반땅크포도 없는 우리가 꽤 해낼수 있을가요?》

라동수가 자신심없는 기색을 보였다.

《사단에 보고하면 능히 소멸할수 있겠는데요.》

정영모도 걱정스러운 표정이였다.

까닭없는 걱정이 아니다. 반땅크포는 물론 반땅크수류탄조차 없는 정찰대가 단독으로 땅크집단과 맞서는것은 모험이다. 더우기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제시간내에 관철하고 부대로 돌아가는 길을 늦잡아야 한다는것이 모두의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것이다. 영예로운 임무를 수행했는데 또 위험천만한 전투임무를 스스로 떠맡는단 말인가.

하지만 학문의 량심은 아군을 향해 출동한 적땅크들을 그냥두고 지나치는것을 허용치 않았다.

《저놈들을 살려두고는 전선을 넘을수 없소.》

주먹을 꾹 틀어쥔 그는 고집스레 말했다. 그렇다고 어떤 묘안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적땅크들을 소멸하는것이 정찰대의 몫이라는 확신만이 심장을 틀어잡았을뿐이였다.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땅크서렬을 살펴보던 그는 맨앞에서 달려오는 찌프차를 포착했다. 차에는 몇몇 괴뢰군장교들이 탔는데 땅크를 안내하는 모양이였다. 아마 이곳 지형에 생소한 미군이 괴뢰군장교들을 길잡이로 삼은것 같았다. 순간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저 찌프차를 감쪽같이 빼앗아타면? 그렇지!)

찌프차를 빼앗아 몰고가면 뒤따르는 땅크들을 마음먹은대로 유인해갈수 있으리라는 타산이 뇌리를 친것이였다.

《무선수!》

차용대가 달려와 학문의 옆에 엎드렸다.

《지휘부와 결속하시오, 빨리!》

무선은 제꺽 결속되였다. 전선이 멀지 않으니 차페작용이 없어 통화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 학문은 직접 송수화기를 넘겨받고 상대를 호출했다.

《멸악산! 멸악산! 나 참매! 들리는가? 수신!》

《나 멸악산! 잘 들린다. 말하라!》

인차 상대무선수가 나왔는데 학문은 지휘관에게 직접 련결하라고 요구했다. 한태설련대장이 나왔다. 적땅크가 출현한 정보를 받은 그는 무척 흥분한듯싶었다.

《부과장, 적들의 진출방향은 어디우?》

《15―29!》

《그쪽은 안돼. 우리에겐 제일 약한 곳이우.》

《그럼…우리가 놈들을 몰아가겠습니다. 우리 포병들의 포아구리로!》

《가능할가?》

《해야지요!》

《좋아! 그렇게 해주! 21―53지점으로 몰아오면 돼우!》

《알았습니다.》

통화를 결속한 학문은 짤막하게 설명했다.

《많은 인원이 필요치 않소. 무선수동무와 김덕천동무만 날따랏! 다른 동무들은 엄호하시오. 집결지점은…》

너도나도 모두가 습격에 나가겠다고 나서서 애를 먹었다.

《우리도 가겠습니다.》

《나도 가겠습니다.》

《명령을 흥정하지 마시오. 우리가 저놈들을 제끼면 동무들은 시체를 숲속에 재빨리 숨겨야 하오. 감쪽같이 해야 돼!》

습기찬 산골짜기의 아침은 별로 선선했다.

세사람은 도로옆 나무숲으로 기여나가 매복했다. 물푸레나무가 촘촘한 숲언저리에서 쑥이며 속새풀이 자라는 들판이 시작되였다. 황량한 그 들판가운데로 시내물이 흘러내리고 자갈밭을 따라 길아닌 길이 뻗어있었다.

찌프차에 탄 놈들은 소풍이라도 하는 기분인지 히히덕거리며 쾌속으로 달려오고있었다. 들까불며 메추리처럼 달아나는 찌프차를 놓쳐버릴가봐 겁이 나는듯 땅크들은 와르릉거리며 부지런히 굴러왔으나 길이 좁고 험해서 속력을 내지 못했다. 바위같은 장애물에 자주 맞다들려 주춤거리기도 했다. 그러다나니 찌프차와 땅크사이가 많이 벌어지게 되였다.

(잘한다, 잘해. 머저리자식들!)

수림이 우거진 산모퉁이쪽에서 적땅크들은 계속 기여나왔다.

《하나, 둘, 셋… 열일곱, 열여덟… 스물다섯, 스물여섯, 스물… 넨장, 또 삭갈렸군.》

땅크대수를 세여보려 애쓰던 덕천이가 화를 내며 꼽아가던 손으로 제 머리를 탁 쳤다.

《이 친구 중학교 산수시간에 낮잠을 잔게로군, 하하…》

차용대가 시까스르는 바람에 덕천은 골을 내저으며 투덜거렸다.

《너무 많으니까 그러지요. 도무지 세여볼수가 없구만요.》

한적하던 수림속은 땅크발동기소리로 발칵 뒤집히는것 같았다. 그만하면 땅크병놈들 몰래 찌프차를 제낄 자신이 있었다.

마침내 찌프차가 정찰병들이 숨은 풀숲앞에 이르렀다.

때를 놓치면 랑패였다. 그들은 풀숲에서 후닥닥 떨쳐일어섰다. 리학문이 먼저 일어나 맞받아나가며 단도를 운전사옆에 앉은 적장교를 향해 날렸다. 차용대와 덕천은 뒤좌석에 탄 놈들을 제꼈다.

뜻밖의 봉변을 당한 찌프차가 술에 취한 놈처럼 비틀거리며 제동판 쓸리는 소리를 냈다.

《차를 세우지 말라!》 비호처럼 몸을 날려 운전사놈의 옆자리에 올라앉으며 학문이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불응하면 죽일테다!》

용대와 덕천이도 나는듯이 차에 뛰여올라 이미 숨이 끊어진 장교놈들을 내리던졌다. 대기하고있던 정찰병들이 시체를 숲속으로 끌고들어갔다.

학문이 들이댄 권총을 본 운전사는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안심하고 몰라! 곧바로!》

적땅크들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극성스럽게 따라왔다.

찌프차는 수림을 옆에 끼고 달렸다. 얼마쯤 달리니 넓은 개활지대에 나섰다.

《이젠 저쪽으로! 저기 바위산이 보이지? 그쪽으로 몰라! 차가 서기만 하면 네놈을 무조건 쏴갈기겠다!》

총구가 옆구리를 꾹 찌르자 운전사놈은 눈이 뒤집혀서 운전대를 부지런히 돌렸다.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우릉우릉하더니 직승기 한대가 나타났다. 포지휘기였다. 직승기는 찌프차가 달리는 도로상공을 자꾸만 맴돌았다.

(저놈들은 지나가지 않고 왜 빙빙 도는거야? 비행사놈이 혹시 무슨 기미라도 챈게 아닌가?!)

긴장한 순간이 흘렀다. 까딱 실수하는 날엔 모든 일이 뒤틀리고만다. 어떤 약속된 암호라도 있는건 아닐가?!

의심이 버럭 생긴 학문은 운전사놈에게 따졌다.

《야! 저놈의 비행기가 왜 저래?》

《모르겠십니더.》

《비행기와 약속된 신호가 없는가?》

《전 모릅니더. 전 다만 장교님들이 가자는데루 차를 몰라는 임무를 받았을뿐입니더. 그 비밀은 죽은 장교님들이 알고있을겁니더.》

다시 따져물어도 운전사놈은 같은 말을 되풀이할뿐이였다.

여전히 찌프차주위를 맴도는 직승기를 아니꼽게 쳐다보며 덕천이가 상욕을 퍼부었다.

《넨장, 비루먹은 놈들아! 제 갈길이나 올곧게 갈게지 왜 시끄럽게 따라다녀?》

학문은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저놈들이 자꾸 따라오는걸 보면 우리한테서 어떤 반응이 있길 기다리는게 분명한데 그게 뭘가? 침착하자, 침착해야 해. 이런 땐 침착해야 방도를 찾을수 있다!)

참을성을 먼저 잃어버린 직승기에서 노란 기발이 드리워졌다. 그것을 보니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과연 찌프차의 앞대가리 기발대에 흰 기발이 펄럭거리고있었다.

(옳지, 저거다! 저기에 무슨 암호가 있다!)

차안을 살펴보니 앞창유리밑에 차곡차곡 접어놓은 노란 기발이 있었다. 제꺽 흰 기발을 떼버리고 노란 기발을 매달았다.

동체를 기웃기웃하며 찌프차의 상공을 다시 한바퀴 돌고난 직승기는 그제서야 노란 기발을 걷어들이더니 유유히 동남쪽으로 날아가버렸다.

《덕천이, 다시 세여보라구, 땅크가 몇대나 돼?》

《부과장동지, 아직두 끝이 안보입니다. 보이는껏 세여봐도 한 서른대는 됩니다.》

《그만하면 푸짐하군.》

《포병친구들 되게 좋아는 할겁니다. 탈없이 깨끗하게 소화해야겠는데…》

적땅크서렬이 지휘부와 약속한 지점인 좁은 골짜기에 들어서자 학문은 운전사놈에게 차속도를 더 부쩍 높이라고 소리쳤다.

땅크들과 찌프차의 거리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덕천이만을 태운 찌프차를 골짜기안쪽으로 빠져나가게 한 다음 차용대와 학문은 산마루로 올랐다. 거기서 아군지휘부와 무선을 결속하고 포사격좌표를 불러주었다.

《친구들, 찰떡함지를 통채로 안겨줬으니 실컷 두드려패게!》

드디여 아군의 각종 포들이 포문을 열었다.

산마루에서는 소멸전의 통쾌한 광경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량옆이 벼랑으로 막힌 좁은 골짜기에 빠져든 적땅크들은 오도가도 못하고 연방 얻어맞았다. 선두땅크에 펑끗 불티가 튀더니 연유통이 꿰창났는지 확 불길이 일었다. 땅크들은 길목이 막히자 전진할수 없고 도망치자고 해도 뒤의 놈들이 저마끔 먼저 달아나겠다고 꽁무니를 돌리다가 충돌하는 바람에 퇴로가 막혀 도망칠수도 없어 고스란히 얻어맞아야만 했다.

유리한 지점에 매복했던 아군포병들은 그물에 든 물고기를 때려잡듯 연방 포탄을 쏘아댔다.

말짱 녹아난 적땅크들은 오성장군 맥아더가 큰 몫을 지워 워커중장에게 보냈고 워커가 큰 기대를 걸고 윌리암 킨사단장에게 집중시켜준 《엠26퍼씽》신형땅크들이였다. 태평양을 건너온 그 신형땅크들은 싸움다운 싸움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불타는 골짜기에서 파철무지로 되여버렸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학문의 가슴속에는 끝없는 희열이 넘치고있었다. 차용대와 어깨를 겯고 선 그는 멀리 북쪽하늘을 바라보았다.

련련히 뻗어간 산과 들우에 찬연한 아침해빛이 부채살처럼 뻗쳤다. 아낌없이 뿌려지는 눈부신 그 해살은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 보내시는 축복의 미소인듯싶었다.

(최고사령관동지, 우리는 또 이겼습니다. 당신의 정찰병들은 머나먼 적후에서 승리의 보고를 삼가 드립니다.)

그는 북녘하늘을 우러르며 마음속으로 절절히 아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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