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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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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597회 작성일 20-09-0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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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우리를 당할자 없다

4

 

새로 들여온 신형포진지가 습격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윌리암 킨은 기절할만큼 놀랐다. 그만큼 부하들을 닦아대고 필요한 모든 방비책을 다 세웠는데 인민군대가 하늘로 날아왔는지 땅에서 솟구쳤는지 무슨 수로 그 어마어마한 경비진을 뚫고들어와 볼장을 보았는지 리해할수가 없었다. 배달환과 제임스에 대한 증오보다도 신비에 가까운 그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 먼저 그를 사로잡았다. 제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을수가 없었다.

아침식사를 건늰채 신새벽에 부관을 독촉하여 신산리로 떠났다. 부하들에게 야전장군의 위세를 보여주느라고 늘 애용하는 얼룩무늬가 있는 야전복을 입고 역시 얼룩무늬철갑모까지 꾹 눌러쓴 모습은 어마어마한것이였지만 실지 그의 마음속에는 누를수 없는 공포와 불안이 서려돌았다.

옆에 앉은 포치엔은 애교와 천진성이 잔물결치는 얼굴로 흥얼거리며 차창밖을 내다보고있다. 킨과 동행하는것을 무척 즐거워하는 이 녀자는 지금 일어난 불행을 전혀 리해하지 못하고있다. 습격, 패배, 살상이라는 전쟁판에 흔한 말들은 이미 너무도 자주 들어놔서 습관되여있는것이다.

전선에서 어느어느 부대가 괴멸되였다느니, 공격이 실패하였다느니 하는 등 전선에서 장교들이 가슴서늘해하는 무서운 소식들이 련일 날아오고있으나 실지 사단장의 방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없었다. 그러니 이번의 참변도 그러그러한것으로 그 녀자는 치부해버린 모양이였다. 하지만 킨에게 있어서 이번의 포진지습격사건은 운명적인 괴변이 아닐수 없었다.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곧추!》

부관의 물음에 단마디로 대답하고나서 인차 다른 생각의 곬으로 빠져들었다.

(결국은 우리의 철통같은 경비진에 약한 고리가 있었다는것인데… 그게 대체 어디였을가?! 《부르독》이 알면 생벼락이 떨어질 일이군. 정말 일이 났어.)

이 사건이 차후 작전에 미칠 후과도 엄청나지만 월톤 워커가 쏟아부을 벼락을 상상해보니 더욱 끔찍스러웠다.

자동소총을 꼬나든 수색대가 당장 덮쳐들 기세로 길옆에 늘어서있다가 사단장의 차를 알아보고 급급히 두손가락을 코등우에 추켜올리며 경례를 표했다. 여러겹으로 늘여진 철조망이 흘러가고 브로닝경기만이 아니라 바츄카포까지 뻗쳐세운 참호들이 연방 차창으로 지나갔다. 다락처럼 네 기둥우에 올라앉은 망루에서 감시병이 쌍안경으로 이쪽을 유심히 내려다보고있다.

벌써 검문소를 세개나 통과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경비진을 뚫고 포진지를 습격한 사나이들의 심장은 강철로 만들어진것이 아닐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지막검문소로 통과해들어가는 길을 메우며 위생차처럼 생겨먹은 《포드》화물차 한대가 뚱깃거리면서 굴러나오고있었다. 죽은 송장들을 실어내가는 차인가 해서 눈여겨봤으나 적십자나 적반월표식이 없는것을 봐서는 그런것 같지 않았다. 장마때 깊이 패인 길이 워낙 좁아서 부관은 승용차를 길옆으로 비켜세웠다.

《저건 무슨 차요?》

호기심을 숨길수 없어난 킨이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각하.》

부관의 태연한 대답에 킨은 어지간히 화가 나서 어성이 높지는 않으나 신경질이 다분한 소리를 했다.

《그럼 가서 알아봐야지.》

《알겠습니다, 각하.》

화물차에 뛰여가 노랑머리운전사와 뭐라뭐라 말하던 부관이 되돌아와 두손을 벌려보이며 보고했다.

《파괴된 포무기들을 수리해보려고 왔던 사단수리차인데 너무 험하게 파괴되여서 한문도 건져내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랍니다.》

《음―》

킨은 신음같은 소리를 흘리며 두눈을 꾹 감았다.

태평양을 건너온 신형포들이 그 막강한 위력을 한번도 발휘해보지 못하고 또 파철더미로 되였다는 소리다. 신형땅크에 신형포, 대체 조선인민군은 무슨 마술수단을 가지고있길래 미합중국이 품을 들여 마련한 귀중하고 위력한 그 모든것을 번번이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것인지 자다가도 통탄할 일이였다.

언제인가 포치엔에게서 들었던 불가사리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단이 즉시 조선전장으로 출동하라는 국방성의 첫 명령이 떨어진 바로 그날 밤 포치엔은 야릇한 흥분에 동떠서 조선의 신화들과 민속에 대한 구구한 이야기들을 킨에게 들려주었는데 그중에는 쇠붙이를 먹고산다는 불가사리라는 해괴한 거물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불가사리는 무쇠를 씹어먹고 요사를 물리치는데 몸집은 곰처럼 생기고 눈과 꼬리는 황소와 같대요. 다리는 범처럼 생겼구요.…》

그때 킨은 전설적인 거물에 대해 호기심은 들었으나 너무도 현실성이 결여된 환상적인 모상을 만들어내는 조선인들의 무지를 픽 웃어버렸었다. 약자들은 늘 그런 허황한 환상을 좋아하는 법이다. 현실에서 이룰수 없는 소망을 공상에서나마 실현해보려는것이 그들의 심리인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불가사리가 현실에 정말 있어서 인민군대편을 들고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나는것이였다.

(정말 귀신같은 일이야.)

습격받은 현장은 예상했던것보다 더 처참했다. 포진지주변의 흙마저 불길에 그슬려 거뭇한것이 초토화폭격이라도 겪은듯싶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위력을 지니였던 거밋거밋한 철물무데기와 아직도 군데군데 널려있는 시체들은 일본군의 불의습격을 당한 진주만의 비참한 광경을 돌아보던 때의 처절한 감정을 되살려주었다.

시체와 파철더미를 치우느라고 낑낑거리던 미군병사들이 저들의 사단장을 힐끔힐끔 돌아보며 목을 움츠렸다.

《각하, 더 갈수 없습니다.》

가뜩이나 울퉁불퉁한 포진지구역을 메뚜기 뜀뛰듯 쉬염쉬염 달리던 승용차가 폭탄세례를 받은것처럼 무수한 구뎅이가 널린 2대대구역에서 멈춰섰다.

《그럼 걸어서 가야지.》

킨은 군말없이 병사용군화를 꼭 졸라매여 신은 긴 다리를 차문밖으로 내뻗치여 땅에 내려섰다.

꽤 넓은 포진지구역을 일일이 돌아보면서 그는 시종 말 한마디 없었다. 괴롭게 곤두기침을 두번 깇었을뿐이였다.

《저… 사단장각하!》

언제 왔는지 제임스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의 뒤에는 배달환이 사냥개처럼 묻어왔다.

킨은 못 볼것을 본것처럼 그들을 외면한채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무슨 말을 더해야겠는지 생각나지 않았고 설사 할말이 있다고 해도 입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욕설도 용기가 있을 때 하는것이다. 그만큼 몰아대고 위협하고 강조했건만 이런 결과를 빚어낸 그들에게 무슨 더 할 말이 없었다.

넓은 포진지를 다 돌아보고 승용차가 서있는 곳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점심시간이 가까운 때였다. 줄곧 킨의 뒤를 따르던 포치엔이 그때까지 승용차주위에 못박혀 서있는 제임스에게 교태어린 미소를 보내는것을 띠여본 킨은 불시에 사나와졌다.

《귀관은 무슨 면목으로 내앞에 서있는거요? 도대체 리해할수가 없소. 누가 이런 참변을 빚어냈는가!》

제임스가 두손을 쩍 벌려보였다.

《저희들도 역시… 이건 분명 인민군정찰병들이 한짓인데 아직 단서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킨의 부아를 더 돋구었다.

《우둔한 소리 작작해. 단서는 무슨 단서! 행차뒤 나발이지. 이제는 당신들에게 더 할말이 없소. 우리에게 더는 잃을것이 없고 당신들이 지킬것도 없지 않소. 이제는 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킨작전〉이란 존재하지 않소. 작전의 비밀이 다 새여나간 덕분에 인민군의 공세가 우리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가해졌고 신형포까지 잃었으니 실패를 만회할 트럼프장까지 상실했소. 이로써 나의 이름은 워커사령관의 의도와 달리 미국의 전쟁사에 수치의 대명사로 기록되게 되였단 말이요. 수색련대는 일선으로 떠날 준비를 하시오. 그러나 그전에 이런 참화를 우리에게 선사한 인민군정찰병들을 붙잡아내야 하오. 총력을 다하여 이 일대의 산과 들을 샅샅이 수색하시오!》

부하들이 듣거나 말거나 제 할말을 다 토해버린 그는 간다는 인사말도 없이 승용차로 다가갔다. 부관이 날래게 달려가 차문을 열었다. 승용차에 올라앉아 두눈을 꾹 감은 그는 흡사 돌부처와 같았다.

승용차는 부르릉 낮은 발동소리를 내며 울퉁불퉁한 달구지길을 따라 굴러갔다. 말뚝처럼 굳어진 제임스와 배달환이 벙해진 눈길로 바랬다.

부관이 터져나오려는 재채기를 참느라고 끙끙거리다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워 소리를 죽여가며 쿨럭거렸다.

여전히 두눈을 감은채 덤덤히 앉아있었으나 이제는 무용지물로 되여버린 포진지를 뒤에 두고 가는 킨의 마음은 분노와 절망으로 뒤번지고있었다.

(인민군은 게릴라전의 명수들이라더니 과연 신출귀몰하는군. 우리 미군이나 국군에 죽음을 무릅쓰고 덤벼들어 날뛰는 그런 용사가 다문 몇놈만이래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참 비극이지, 비극이야.)

그는 작전실에서 련일 밤을 꼬바기 지새워가며 빈틈없는 강구책을 세우느라 쏟아부은 고심이 결국은 허망하기짝이 없는 일이였음을 자인하면서 무서운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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