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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계승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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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312회 작성일 20-07-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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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정일동지께서는 당과 군사부문의 주요문건들을 비준하고나서 송수화기를 들어 당중앙위원회 청년사업담당일군인 차성규부장을 찾으시였다.

《요즘 건강이 어떻습니까?… 괜찮다. 위가 그닥 시원치 않다는걸 알고있습니다. 가을철에 접어들었는데 지방출장가서랑 몸을 덥게 건사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중키에 체소한편인 차성규의 온화한 얼굴을 떠올리시였다.

《부장동무, 청년사업문제를 가지고 나와 한번 마주앉읍시다. 최근 사로청의 전반사업실태를 료해해가지고 며칠내로 내 방에 와주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어서 문화예술부 정치국사업을 개선하기 위해 일군들과 담화를 하느라 오전시간을 거의나 보내시였다.

한낮이 되여서야 그이께서는 시간을 내여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옥천마을에 갔다옵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에게 이르시였다.

승용차는 가을볕에 은행나무잎사귀들이 황금빛으로 물든 수도의 중심거리를 달렸다.

그이께서는 래일 북부지구로 떠나야 했지만 옥천마을에 가는걸 더 미룰수 없으시였다. 유성칠관리위원장이 사망한지도 벌써 여러날이 되는데 수령님을 대신해서 가보아야 하는것이였다.

교외를 벗어나자 뽀뿌라나무들이 늘어선 포장길이 뻗어갔다.

길 량켠의 논밭에서는 벼가을이 끝나가고있었다. 벼단무지들우에서 참새떼가 분주히 날아다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유성칠관리위원장… 그는 끝내 병원에서 뛰쳐나와 자기가 태를 묻고 자랐고 땀흘려 가꾸어온 옥천마을에서 생을 마쳤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유성칠관리위원장을 잘 아시였다.

그이께서 유성칠을 처음 만나신것은 광복된지 몇해 지난 늦은 가을날이였다.

수령님과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평남도지경에 들어서 달리다가 저물녘에 옥천마을쪽 개울가에서 멈춰섰다.

낮에 내린 폭우에 개울이 급작스레 불어난것이였다.

시누런 흙탕물은 차가 다니는 개울바닥을 휩쓸고 아래쪽에 통나무 두대를 꺾쇠로 붙여 건너놓은 다리밑을 위태롭게 사품치며 흐르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려 통나무다리로 가시였다.

불시에 개울기슭에서 거쉰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 여보시오! 웬 어른이 거기를 건너겠다구 하시오?》

머리를 깎은지 오래고 무릎이 쑥 나온 흙묻은 광목바지를 입은 삼십대의 농민이 살찐 황소옆에서 마라초끄트머리를 태우고있었다.

《이 다리로 못건넙니까?》

《버팀목이 무너질라구 움씰움씰하는게 안보입니까?》

《허, 이거 야단났군. 옥천마을에 가야겠는데… 동무는 어떻게 건넙니까?》

《나야 소를 타고 건너지요.》

얼굴이 길숨하고 이마덕이 높은 농민은 다 탄 마라초끝을 집어던지고 코뚜레를 씌운 황소볼따귀를 쓸어만졌다.

볕에 탄 얼굴이 벌깃한게 좀 우쭐한 기분이였다. 장거리에서 막걸리 한사발쯤 걸친것 같았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주먹만 한 돌을 집어 개울에 던져보시였다.

《아저씨, 개울물이 얼마 깊지 않구만요.》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농민의 넙적한 발에 신은 검은 고무신코숭이가 닳아 엄지발가락이 우습게 삐여져나온것을 보시였다.

《깊지 않다니?! 소의 무릎정갱이는 넘는단다.》

《그러문 개울에 빠진다 해도 일없겠구만요. 아버님, 제가 먼저 통나무다리를 건느겠습니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미처 말리실사이도 없이 뛰여가 통나무다리에 올라서시였다.

《어, 도담한데…》

농민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 날래게 다리를 건느자 농민은 벌씬 웃으며 어쩔수 없다는듯 손으로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수령님께서는 물살이 휘감기는 버팀목을 살펴보시고는 그 농민이 길손을 위하는 진정과 반쯤 엄포놓은것이 리해되여 웃음지으며 통나무다리를 무랍없이 건너가시였다.

《아저씨! 소타고 건너보시라요.》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건너편기슭에 무릎을 꺾고앉아 재미있는듯 소리치시였다.

《그래, 어디 한번 뵈달라니?》

농민은 흰대문이를 드러내며 아주 우쭐해져서 보퉁이를 팔에 꿰자 몸을 뒤채여 황소잔등에 솜씨있게 올라탔다.

황소는 사품치는 흙탕물이 두려운지 선뜻 발통을 적시지 못하고 어정거렸으나 농민이 고무신발로 배때기를 걷어차자 훌쩍 놀래서 개울물을 박차고 건너기 시작했다.

아닌게아니라 기슭을 지나자 물은 황소의 무릎정갱이를 넘었다.

더 깊지 않은게 다행스러웠다.

농민은 황소가 순조롭게 느릿느릿 개울을 건느는것에 그닥 흥취를 느끼지 못했는지 불시에 신발코숭이로 황소옆구리를 찼다.

《이랴! 쩌-》

물을 두려워하던 황소는 반사적으로 놀래 뛰쳐나가다가 물밑의 돌을 잘못 밟았는지 옆으로 자빠질번 하였다.

그 서슬에 잔등에 호기있게 앉아있던 농민은 몸집이 뒤로 쏠려 두팔을 허공에 내짚으며 허우적거리다가 개울물에 나떨어졌다.

《저런!》

수령님께서 도와주려고 급히 다가가시였으나 농민은 개울물에서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낡은 광목옷이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었으나 별일 아닌듯 태연스레 소고삐를 잡고 개울기슭으로 나왔다.

흙탕물에 젖어서도 소주인의 위신을 그닥 잃지 않고 나오던 농민은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 기슭에서 건진 보퉁이를 가져다주시자 저으기 주눅이 들고 무안해하였다.

《아저씨, 어디 다친덴 없어요?》

《일없다. 이거 어린 구경군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구나.》

시큼털털한 막걸리냄새가 물씬 풍겼다.

《괜히 나때문에 물에 빠졌군요.》

《어, 그렇지 않아. 내가 한바탕 객기를 부린건데.》

《소는 원래 우쭐렁거리는 주인을 좋아하지 않소.》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다래나무줄기를 휘여만든 소의 코뚜레며 이마박에 가죽띠로 붙인 황동엽전을 만져보시였다.

《소를 장에서 사옵니까?》

《예, 알아맞혔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구만.》

《평생소원을 풀었으니 안그럴리 있습니까. 젖기는 했지만 보퉁이에는 녀편네의 치마감까지 척 사넣었지요.》

수령님께서는 농민의 솔직하고 호방스런 성미가 무척 마음에 드시였다.

《옥천마을에서 삽니까?》

《그렇습니다.》

《마침 잘됐습니다. 우리도 거기 갑니다. 군에서 옥천마을을 제일 못 산다구 <피앗골>이라구 부른다지요?》

《손님은 어디서 오십니까?》

《평양에 있습니다. 농사일을 의논해보려구 옵니다.》

《아, 간부동지시군요.》

사위에는 땅거미가 깃들고 멀리 병풍처럼 둘러선 나지막한 산봉우리로 쟁반달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소쩍새가 울었다.

석비레땅을 지나자 길은 질척질척하였다.

밤이슬에 대기는 눅눅했다.

길섶의 보도랑에서는 내물이 조잘거리고 보뚝의 마르기 시작한 풀덤불에서 들국화와 쑥꽃의 쌉쌀한 향기가 풍겨온다.

《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유성칠이라고 합니다.》

농민은 조금 우쭐해져서 말을 쏟아놓았다.

《옥천마을에서 간부를 하지요. 내가 리위원장인데도 마을사람들이 예전대로 <더벅머리 성칠이>라구 자꾸 부릅니다. 후끈 달아서 요전날 뒤집의 덕배령감보구 시침을 뚝 따구서 땅을 떼겠다구 을러멨지요. 그랬더니 그 소문이 마을에 쭉 퍼져서 사람들이 다시는 <더벅머리>를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허, 지주행세를 했구만요.》

《잘못했지요. 롱이 지나쳤거든요. 저녁에 녀편네가 하는 말이 덕배령감마누라가 리위원장이 정말 지주처럼 땅을 떼면 어쩌겠는가구 고민하면서 밤잠을 못 잔다는겁니다. 당장 술을 한병 차구 덕배령감네 집에 갔지요. 갓나물절임에 고사리무친 접시를 두리반에 놓구 술을 따르는데 마당에서 꼬꾸댁- 하는 급한 소리가 나기에 뛰여나갔습니다. 덕배령감마누라가 날 대접하겠다구 닭을 붙잡아 금시 목비트는게 아니겠습니까. 겨우 말리고 데려들여다 령감옆에 앉혔습니다. 그리구 머리숙여 사죄를 했습니다. <덕배아바이, 머슴군이던 내가 무슨 권한이 있다구 땅을 떼겠습니까. 그 땅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겁니다. 김일성장군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느 간부도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리 농민들한테서 땅을 뺏어내지 못합니다…>하구 말하다나니 난 저절루 목이 메였구 덕배령감내외는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담배를 꺼내 농민에게 권하시였다.

《<더벅머리 성칠>이가 광복전 천대받던 시절의 이름이긴 하지만 마을사람들이 푸수하게 입에 올리는건 성칠동무를 자기네 농민들을 생각해주는 사람으루 믿구 사랑하구 존경하는 마음에서일겁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자기들이 손을 들어 선출한 리위원장을 친구지간처럼 그렇게 간격없이 부를수 있겠습니까. 농민들의 그런 허물없는 신뢰를 받는게 진짜 농촌간부고 일군입니다.》

수령님의 부드럽고 진지한 말씀에 농민은 담배태울 생각도 잊고 고개를 수굿하고 걸어갔다.

그러더니 혼자 머리를 끄덕이고 존경어린 눈으로 수령님을 유심히 보았다.

《간부동지는 리치에 닿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머리속에 쑥 들어오누만요. 앞으로 마을사람들이 불러주지 않아도 난 <더벅머리 성칠이>로 살겠습니다.》

달구지바퀴자국이 깊숙이 패인 길은 왼편으로 굽어들었다.

등잔불이 여기저기에 희미하게 비치는것으로 보아 부락이 멀지 않은것 같았다.

달빛이 흘러내려 멀찌감치에 솟아있는 검스레한 뽀뿌라나무정수리의 뾰족한 륜곽을 뚜렷이 볼수 있었다.

벼짚이영을 한 부락의 지붕들이 달빛에 차츰 은회색을 띠였다.

농민은 소를 마을길에 들여세우며 수령님께 얼굴을 돌렸다.

《참, 간부동지는 평양에서 사시니 김일성장군님을 뵈올수 있겠습니다?》

《허, 자주 만납니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높은 기관에 계시누만요. 내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 옥천마을사람들의 소원입니다.》

《말씀하십시오. 내 전하지요.》

《평양에 가거들랑… 김일성장군님께 우리 옥천마을에 꼭 한번 와주십사하구 말씀드려주십시오. 외람된 청이긴 하지만 신문을 보니 장군님께서 차길두 없는 양덕군 산골에까지 찾아가셨구만요.》

《갔댔지요. 별로 힘든 부탁이 아닙니다. 성칠동무네 마을에도 올겁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 평생소원은 나라를 찾아주시구 땅을 주신 장군님을 우리 집에 모시는겁니다. 그래서 내 땅에 내가 심은 조찹쌀로 떡을 치구 소를 잡아 장군님께 대접하겠습니다.》

《허, 장군이 소를 먹으면 성칠동무는 가대기를 뭘로 끌겠습니까?》

《난 열두살부터 아버지와 같이 지주네 소작밭에서 가대기를 끌었습니다. 제 땅에서야 왜 못 끌겠습니까!》

그날밤. 수령님께서는 조그만 들창문을 가리우도록 조짚이영이 드리운 성칠의 농막집에서 옥천마을의 농사형편을 료해하시고 밤을 보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금도 그날밤 지주네 종살이고생으로 젊음이 일찍 시들어 겉늙은 성칠의 무던한 안해가 두리반상에 들여온 피쌀밥과 떡호박맛을 기억하시였다.

빈대딱지가 말라붙은 시누렇게 뜬 도배지에서는 채 벗지 못한 가난과 궁핍의 때가 짙게 흐르고 꿰진 노전구들에서는 봉당내와 솔가리 땐 내내가 풍겼다.

가을밤의 달빛은 홍수처럼 마을에 넘쳐났고 어디선가 소쩍새울음소리와 개짖는 소리가 두간두간 들리다 끊쳤다.

농짝구석에서는 귀뚜라미가 구슬프게 때로는 경쾌하게 쉬임없이 울었다.

마당가에 림시거처를 정한 누렁소의 끈질긴 새김질소리와 거쉰 숨소리가 들린다.

뒤울안의 돌배나무에서 무르익은 돌배알이 헛간의 썩은 판자지붕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서는 땅바닥에서 피식- 하고 터져 단즙액이 흘러나왔다.

잠들수 없는 농촌 가을밤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어뜩새벽에 일어나시여 장작개비들과 삼태기, 콩단들이 널린 마당을 나서시였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도 졸음이 실리는 눈을 비비며 돌배향기가 짙은 마당으로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수령님을 따라 젖빛안개속에 묻혀 새벽잠에서 깨지 않은 마을을 돌아보시였다.

동녘하늘이 희끄무레 밝아오고 마가을 찬 이슬에 젖은 농가지붕들에 솟은 굴뚝에서는 아직 연기가 피여오르지 않고있었다.

잡풀이 우거진 두렁길은 질고 미끄러웠다.

신발과 바지가랭이는 이슬에 푹 젖고 도꼬마리열매와 도깨비바늘같은 풀씨들이 달라붙었다.

수령님께서 하늘에 명줄을 건 척박한 《피앗골》밭들을 돌아보실 때 군당위원장이 농촌위원장과 같이 숨이 턱에 닿아 달려왔다.

가을밤 진창길을 같이 걸어왔고, 봉당내나는 노전구들에서 피쌀밥과 떡호박을 구수하다고 무랍없이 잡수신분이 바로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걸 안 유성칠은 너무도 놀랍고 행복해서 그리고 너무도 죄송하고 감격해서 《장군님!》하고 부르짖으며 밭두렁에 넙죽 엎디여 절을 했다.

수령님께서는 급히 마주가시여 유성칠의 어깨를 붙안아 일으키시였다.

《우린 벌서 구면친구인데 뭘 이럽니까. 어제밤처럼 간격없이 지냅시다. 난 나라정사를 하는 사람이고 성칠동무는 천하지대본인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 서로 친구가 됩시다.》

《장군님…》

유성칠은 목이 꽉 메여 더 말을 못하고 앉아 어리신 김정일동지를 부여안고 눈물만 흘리였다.

《그러니 장군님의 자제분… 어린 장군이시였구려.》

수령님께서는 옥천마을농민들이 잘살게 하기 위해 새벽에 골안을 돌아보며 무르익힌 설계를 군당위원장과 농촌위원장앞에 펼쳐놓으시였다.

비바람이 센 곳이니 처마지붕이 저렇게 길다, 그러니 방안이 얼마나 어둡겠는가, 마을위치는 저기 두봉산기슭에 있는 지주네집처럼 나무도 있고 건조해야 되는데 집들이 습한 논벌가운데 있으니 좋지 않다, 집들을 산기슭에 옮겨짓고 과일나무를 많이 심어 온 마을을 무릉도원으로 꾸려야 한다, 농민들이 제 땅만 다루려 하지 말고 마음을 합해야 한다, 피와 조나 수수를 겨우 심던 《피앗골》밭들을 벼랑을 까내고 철관을 묻고 수로를 째여 청천강물을 넘겨서 기름진 논으로 풀어야 한다, 경사지밭에는 고구마를 심고 최뚝과 빈땅을 일구어 콩을 심어 기름을 짜고 축산을 해서… 마을농민들이 모두 기와집 쓰고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

《장군님, 눈앞이 활 트입니다.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마을을 꾸리겠습니다.》

유성칠은 말보다 실천으로 수령님을 받드는 농촌혁명가였다. 그는 별을 안고 들에 나갔다가 별을 지고 집에 돌아왔다.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홰불을 켜들고 50리물길을 쨌고 수천그루의 과일나무를 얻어다 두봉산기슭에 심었다. 봄에는 삽, 여름에는 호미, 가을에는 낫이 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농민이 서툴게 김매는것을 보고는 한마디도 탓하지 않았다.

《너 좀 쉬라. 내 좀 맬게.》하고는 호미로 북을 돋구고 풀을 뽑고 대솎음을 해가며 실농군의 일본새를 배워주었다.

공부를 못했으나 영농지식은 《박사》였다.

주체농법, 당의 방침이 곧 유성칠관리위원장의 《경험》이였다. 강냉이를 톱날식으로 심어 밀식할 때 농장의 일부 사람들이 농사를 망친다고 우려했으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에서 다 시험하고 내려보내준것인데 동무들이 왜 의혹을 가지는가? 그래 동무들은 지금껏 나라에서 하라는대로 농사를 지어 이렇게 잘살지 않았는가!

그는 집에서 닭알을 삶아가지고 밤중에 뜨락또르가 밭을 가는 농장포전에 나가군 했다. 포전머리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뜨락또르불빛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뜨락또르운전사들은 관리위원장을 친형이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는 언제나 마음속에 《더벅머리 성칠》임을 잊지 않고 살았다.

김정일동지께서 알고 기억하시는 유성칠관리위원장은 이런 사람이였다.

그의 성장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농촌친구》로 믿어주고 이끌어주신 수령님의 각별한 사랑과 우정이 깃들어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수령님과 농촌관리위원장과의 친분관계는 두터워지였다.

그러나 세월은 또한 야속하게도 그 소중한 우정의 뉴대를 계속 이을수 없게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그 옛날 개울에 건너질렀던 통나무다리자리에 넓다랗게 건설한 세멘트다리를 건너 옥천마을기슭에 당도하였다.

그이께서는 지난 50년대 말과 60년대 초엽에 수령님을 모시고 옥천리에 들린적이 있으시였다. 그때는 두번 다 여름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늘 차를 멈추시군 하던 포전머리 길섶에 차를 세우시였다.

벼가을을 끝낸 《피앗골》의 100정보가 넘는 벌판에는 벼단무지들만 무수히 널려있고 사람들은 점심먹으러 집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길섶에서 살찐 메뚜기들이 푸릉푸릉 날아뛰였다.

따스한 가을해빛에 취한 고요하고 맑은 대기속에서는 날개가 투명한 잠자리들이 낮추 떠돌고 아지랑이같은 연한 운무가 낀 들판에서는 여문 낟알향취와 익어가는 과일향기가 풍겨왔다.

두봉산기슭에 흰구름이 내려앉은듯 줄지어 자리잡은 하얀 문화주택의 지붕들은 고추를 널어 빨갛게 불타는것 같았다.

농막집들이 어수선히 널려있고 피와 조그루터기가 앙상하던 스물세해전에 비하면 옥천마을은 알아볼수 없이 변하였다.

유성칠관리위원장은 갔지만 그가 소원하고 땀흘려 가꾼 농장은 아름답고 풍요하게 살아있는것이다.

정일동지께서는 옥천리의 변모된 가을풍경에서 받은 밝고 따뜻한 감정으로 추억과 번민어린 아픈 마음을 달래시며 마을쪽으로 걸어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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