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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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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515회 작성일 20-09-1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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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용감성은 타고나는가

1

 

불비 쏟아지던 여름과 가을이 흘러간 땅에 사나운 겨울이 왔다.

이미 10월 중순 태평양상의 웨이크섬에서 만나 《감은절》전으로 조선전쟁을 끝내며 늦어도 크리스마스까지는 미8군을 일본으로 철수시키겠다고 흰소리를 쳤던 트루맨과 맥아더는 겨울이 닥쳐옴에 따라 더욱 초조해났다. 락동강계선까지 진출했던 인민군대의 주력부대가 《유엔군》의 거대한 《강철자루》포위망속에서 빠져나갔을뿐아니라 북조선의 깊은 후방에서 강력한 반타격집단이 형성되고 저들의 배후에서는 제2전선부대들의 맹렬한 활동이 전개되여 황금자루를 하나씩 둘러메고 본국으로 돌아갈 화려한 꿈을 꾸고있던 미국과 그 추종국가군대들의 숨통을 앞뒤에서 조이고있었다.

압록강과 두만강에 《자유세계》의 방역선을 밀어올리겠다던 신기루같은 꿈이 깨여진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나 북조선내륙깊이까지 진주했던 미국과 추종국가들의 정예한 대부대들이 소잔등에 겨우 기여올랐던 민충이가 순식간에 나떨어지듯 38°선, 37°선 이남으로 급기야 쫓겨난것은 세상을 깜짝 놀래웠다.

그동안 리학문은 진주에서 다친 허리때문에 며칠간 군의소신세를 지게 되였다. 이상한 일이였다. 적후싸움의 긴장속에서는 몰랐었는데 후퇴가 끝나니 허리병이 도져서 하는수없이 군의들한테 《체포》되여갔었다. 부등부등 떼를 쓰다싶이 해서 인차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지금도 뻐근한 허리가 행동을 억제할 때가 드문했다.

생각같아서는 군의소처녀들의 알뜰한 간호를 받으면서 며칠간만이라도 더 안정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지금의 형편은 그의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갓 무어진 군단정찰대의 형편이 시원치 못한때문이였다.

정찰대원들로 선발된 인원의 대부분은 공장과 농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거나 책상물림이여서 정찰병의 자질은 당장 론할 형편이 못되였다. 한태설부참모장에게 말하여 차용대와 하복남 두사람을 겨우 데려왔어도 무선수와 련락병만으로 정찰대의 면모가 다 잡히는것은 아닌것이다.

반가운것은 최고사령부정찰국에서 사업하던 상좌가 군단정찰부장으로 파견되여온것이였다.

이미 리학문에 대해 잘 알고있는 부장은 근심스러운 소리로 이제는 공화국영웅이고 군단급지휘관인데 적후에 직접 들어가는 일을 그만두고 참모부에서 지휘만 하는것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한태설에게서 들었던 말을 다시 듣게 되는것이 놀라왔다.

《고맙습니다. 그런 권유를 받는것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난 원체 적후생활이 몸에 배여놔서… 적후에 들어가야 맘이 편해지는걸요, 허허…》

《거참, 허리병보다 더한 병이 있었구만.》

《예?!》

《정찰병 말이요, 하하…》

《허… 그런 개인비밀은 언제 다 알았습니까? 정말이지 정찰병이라는게 내겐 타고난 천성인것 같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주신 믿음에 보답하는 길도 내게야 그 길밖에 더 있겠습니까. 어깨에 별이 늘어나도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정찰병으로 싸우고싶습니다.》

《고맙소. 내 최사에 있을 때 들은 소리인데 부부장동문 위훈도 많이 세웠더구만. 〈킨작전〉의 분쇄, 신형땅크의 유인소멸과 신산리포진지습격… 후퇴의 길에서도 숱한 적을 소멸했구, 그러나 전쟁은 하루이틀에 끝나는게 아니지. 이젠 새 직무도 맡았고 공로도 많이 세운 동무를 아끼고싶어서 그런 말을 했소. 섭섭했다면 량해해주오. 참, 적후에서 겪은 전투가 몇차례나 되오?》

학문은 마음속으로 꼽아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부장은 빙그레 웃었다.

《허… 것 보오. 자신이 전투를 몇번 치르었는지 그것마저 기억하지 못하고있구만.》

《거야 중요한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옳소. 이 전쟁의 참다운 의미를 이 심장으로 아는 사람이래야 그렇게 대답할수 있는게 아니겠소. 군단의 정찰사업이 조련치는 않을게요. 적지 않은 정찰병들이 신대원들이여서 더 힘들수 있지. 하지만 새로운 환경과 직무에 맞게 우리 손잡고 일을 더 잘해봅시다.》

그 순간 그는 이전 정찰과장 허찬을 상기했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끝나고 반공격이 시작된 때에 부대에 전해진 그에 대한 소식은 너무도 가슴아픈것이였다.

영웅과 포로! 전장을 헤치며 같은 길을 걸어왔는데 어이하여 종착점은 이다지도 다른것인지 생각이 깊어지는것이였다.

모든 정찰병들이 허찬과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더 훌륭하게 수행할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알았습니다. 당장은 정찰대원들에 대한 교양과 훈련에 모든것을 복종시키겠습니다. 기본전투부대들이 전선에 진출하여 싸우고있는 때 우리에게는 한시도 헛되이 보낼 권리가 없습니다.》

《옳소. 이제 곧 명령이 내릴것이요. 그러면 전선을 넘어 적후에 들어가야겠는데 준비를 잘해야지.》

온 하루 재빛으로 흐려있던 하늘은 그날 밤 함박눈을 쏟아부었다. 온종일 훈련에 열중하다가 늦저녁에 한잠 자고일어난 리학문은 보초소를 돌아보려고 군용외투를 걸치고 나섰다.

벌써 밤이 퍽 깊었다.

새날에 접어들면서 하늘이 무너지는듯 눈은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막같은 눈발에 가리워 몇걸음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찬눈은 벌써 발목을 덮는데 숫눈에 묻힌 길가에는 사람의 발자국 하나 없었다. 옷깃을 여미고 마구 딩굴어보고도싶게 정갈한 산촌이였다.

군단참모부가 전개되여있는 산기슭을 돌아 정찰대가 담당한 경계구역에 들어선 그는 첫 잠복초에 이르러 나직이 대호를 불렀다.

《3번!》

그러자 눈무지속에서 사람이 불쑥 뛰여나왔다. 류관주였다.

《옛! 근무중 이상없습니다.》

《아주 좋구만. 그래 춥지 않소?》

《괜찮습니다, 부부장동지.》

믿음이 가는 친구였다. 1조장인데 조장으로 임명한것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송림에서 용해공으로 일하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군대에 입대하여 공병으로 싸웠다는 그는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것처럼 무슨 일이든 시원시원하게 해제끼는것이 마음에 들었다. 정찰병으로 소환된다는 바람에 공병친구들이 그리도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를 학문은 엊그제 재미있게 들었었다.

《수골 하시오.》

《잘 가십시오.》

그곳에서 좀더 가면 참모부로 들어가는 길목에 두번째 잠복초가 있었다. 소리없이 그곳에 다가서며 대호를 불렀다. 응대가 없었다. 다시한번 더 불렀으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학문은 긴장해졌다. 이런 밤에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는 법이다. 부득이한 일이 생겨 잠간 자리를 옮겼다 해도 이만한 소리는 얼마든지 알아듣고 반응할것이다. 적들이 침습한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에 머리칼이 쭈빗 일어섰다.

《보초병!》

다시 크게 불러보았다. 했어도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심상치 않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그는 권총을 뽑아들고 발소리를 죽여가며 전진해갔다. 발밑에서 뽀드득거리는 눈 밟히는 소리가 별로 크게 들렸다. 길목을 가로질러 전진하면서 소나무숲속까지 두루 훑어보았으나 보초병의 형체를 찾을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되였단 말인가?! 정찰대를 폭풍시켜야 하지 않을가?)

소나무에서 소나무에로 건너뜀을 하며 전진하던 그는 개활지대에 서있는 희벗한 건물의 담벽밑에 쭈그리고앉아있는 거뭇한 형체를 눈발속에서 알아보았다.

(적인가?!)

권총을 그쪽으로 겨누며 날카롭게 물었다.

《누구얏? 쏜다!》

그제야 이쪽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모양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부부장동지입니까? 나, 납니다. 한중일입니다.》

《한중일?!》

《날 모르시겠습니까? 보초병입니다. 에― 혼났다.》

학문은 맥을 탁 놓으며 안도의 숨을 후 내쉬였다. 검은 형체는 껑충거리며 눈발을 헤치고 뛰여왔다.

《보초병이 초소를 리탈해서 뭘하고있어?》

《용서하십시오. 허허공지에 홀로 서있자니 등뒤에서 누가 덮치는것만 같아서… 무섭더군요.》

《무섭다구?》

《예.》

《하, 거기 외따른 담벽밑에 있으면 무섭지 않구?》

학문은 허파 빈 소리를 내며 턱을 쳐들었다.

《물론 무섭습니다. 그래두 등뒤에 담벽이 있으니까 조금은 낫습니다. 담벽이라도 믿을수 있지 않습니까.》

《헛참!》

떡심이 풀렸다. 이런 친구와 어떻게 죽음이 수시로 노리는 적후에로 침투해들어간단 말인가. 이런 겁쟁이한테서 그 무슨 용감성과 대담성을 기대할수 있단 말인가. 무어라고 더 꾸중을 할 용기조차 잃고말았다.

《어서 초소를 차지하시오. 보초병은 죽어도 자기 위치를 떠나선 안된다는걸 명심하시오.》

엄하게 이르고 돌아선 학문의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풀이 죽어 초소로 비척비척 걸어가던 한중일의 뒤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이제라도 교대시켜줘야 하지 않을가?… 아니, 아니야, 단련이 없이는 정찰병은커녕 일반병사도 못돼. 저런 비겁쟁이는 실컷 혼이 나봐야 해.)

자기 생각에 빠져서 군단참모부정문앞을 지나는데 귀에 익은 부름소리가 그를 멈춰세웠다.

《부부장동무가 아니요?》

한태설부참모장이였다. 어깨와 군모우에 눈이 수북이 올라앉아 눈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이 밤중에 어떻게?!》

무등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 일찌기 그를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고 정찰대를 알쭌히 꾸릴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을 토의해보자고 생각하던 참이였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감각이 예민한 정찰영웅이 주위판단능력을 아예 잃어버렸누?》

방금전에 있은 일로부터 시작하여 정찰대를 꾸리는데서 안타까왔던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학문의 목소리는 맥빠진것이였다.

《이런 상태로야 어떻게 싸움을 해먹겠습니까. 적극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리해되우. 그 문제는 함께 해결해보기우. 당장은 좋은 소식을 알려주겠소. 이 소식을 알려주자구 온델 찾다녔구먼. 부부장동무, 기뻐하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배려로 전투영웅들을 위한 휴양제가 나왔어.》

《예? 휴양제라니요?!》

한태설의 목소리는 퍽 갈려있었다.

《최고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곳곳에 화선휴양소가 설립되는것과 함께 경치좋은 여러곳들에 전투에서 위훈을 세운 영웅들을 위한 휴양소가 설립되여 운영되기 시작했단 말이우. 부부장동무는 래일 당장 수풍지구의 휴양소로 떠나게 되여있소.》

학문은 펄쩍 뛰였다.

《그건 또 뭡니까? 왕청같이… 지금이 어느땝니까. 전선에선 모두 피흘리며 싸우는데… 더구나 우린 당장 명령을 받고 전선을 넘어야 하구… 그런데두 아직 정찰대의 형편이 그런데…》

《곧은목으로만 생각하지 마우, 학문동무! 우린 벌써 이겼소. 승리를 확신하고계시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의도가 이번 휴양명령에도 어려있단 말이우. 휴양소에 가는것도 전투명령이우. 이게 바로 우리 장군님의 배심이구 담력인거지. 정찰대문제는 너무 걱정마우. 우리 최고사령관동지의 사랑과 심원한 뜻을 더 잘 알게 되면 그 누구인들 용감해지지 않겠소. 아무튼 래일 아침 일찌감치 떠나기우. 나와 함께 가게 되우. 상급지휘관들이 인솔하여 휴양소까지 안내하라는 명령이 있고 마침 의주쪽에 우리 집이 있지.》

《그렇습니까?》

학문은 종잡을수 없는 심정에 휩싸여버렸다.

《당분간 부부장동무의 사업은 정찰부장동무가 맡아보게 될거요. 그러니 마음놓고 떠나자구.》

말뚝처럼 서있는 학문의 어깨를 툭 치며 태설이 덧붙였다.

《재삼 말하지만 최고사령관동지의 깊으신 뜻을 명심하자구. 이건 동무만이 아니라 정찰대모두에 대한 사랑이구 우리 군단, 나아가선 전체 인민군장병들에 대한 사랑인것이우. 그 사랑과 믿음을 잘 알게 된다면 정찰병들 그 누가 위훈을 떨치는 용사로 성장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응?》

너무 흥분한탓인지 태설은 같은 말을 자꾸만 곱씹었다. 학문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둠속이여도 흰눈을 배경으로 보여오는 그의 모습은 별로 의젓하고 틀져보였다. 뜨거운것이 가슴속에 솟구쳐오르는것을 느끼며 머리를 숙였다.

《알았습니다, 부참모장동지!》

눈이 내리고있었다. 펑펑 쏟아지는 그 눈발들이 그 무슨 사연을 자꾸만 속삭이는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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