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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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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990회 작성일 20-10-1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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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는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거침없이 달리고있다. 차안은 거의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옆창이 꼭 닫기여 이따금 어기는 다른 차들이 질주하는 소리도 바람소리처럼 들릴뿐이였다.

늘쌍 설계사업소의 수백명 사람들속에서 들볶이군하는 림성욱은 승용차안에서 혼자 조용히 흘러보낼수 있는 이런 시간을 더없이 좋은 휴식시간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수가 없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그런 처지에 놓여있는 동지에 대해 왜 좀 더 일찌기 보고드리지 못했던가. 그이를 가까이 모시고 사업하면서 그가 늘쌍 뜨거운 감동속에 느껴온것이 바로 인간의 운명문제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였다. 내가 대바르고 의리심이 강한 사람이였다면 심운호가 반당종파분자들의 강요에 못이겨 외국식집을 설계할수밖에 없었던 사실만이라도 구체적으로 말씀드렸을것이였다.

림성욱은 벌써 몇번이나 출장으로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도 미영이네 집을 들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을 상기하고 더구나 낯이 뜨거워졌다. 그는 심운호가 돌아간후 친구의 안해와 자식들이 곤경에 처하고있다는 이야기를 얻어듣고 무척 마음이 괴로왔으나 그때뿐이고 사업에 다몰리느라면 어느새 그러한 생각도 잊어버리군 하였다.

이번에 김정일동지께서 불우한 운명의 길을 간 심운호를 료해하시고 그의 자녀들을 평양으로 불러주시는 조치를 취해주시지 않았던들 림성욱은 영영 옛 친구와 그 유가족들앞에서 의리를 저버린 인간으로 되고말았을것이다. 그이께서 심운호의 운명을 두고 얼마나 깊이 심려하시였으면 그의 단명을 아쉬워하며 미영이네 남매들을 평양에 데려오실 생각까지 하시였겠는가.… 결국 김정일동지께서는 심운호와 그 자녀들만 아니라 이 림성욱이도 때늦게나마 옛 친구로서의 의리를 지킬수 있는 도덕적위치에 세워주시였다. 림성욱이 뼈아픈 자책에 잠겨 지난날의 자신을 엄정하게 총화해보는동안 승용차는 사리원도시설계사업소앞에 다달았다.

미영은 설계사업소에 없었다. 휴일이여서 출근하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는 차를 돌려세웠다.

반시간쯤 지나서 승용차는 황주역에서 얼마쯤 떨어진 농촌마을에 이르렀다. 림성욱은 마을로 들어가는 길어구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혼자서 미영이가 살고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뜰안의 터밭에서는 고추들이 독을 올리며 새빨갛게 익어가고있었다. 토방우의 닭장안에서는 새노란 햇병아리들이 야무지게 삐용삐용 울어댔다. 한산할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퍼그나 오붓하게 느껴지는 집이였다. 부모없이 사는 집이건만 지붕도 벽도 한결같이 깨끗했다.

집이 비였는지 문들은 모두 닫겨있었다. 그는 행여나 하여 헛기침을 하며 집주인을 불러봤지만 병아리들만 삐용거릴뿐 집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그는 마당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저쪽 강냉이밭 사이길에서 웬 늙은이가 나타나더니 미영이네 집마당으로 들어왔다. 그의 한손에 다람쥐장이 들려있었다.

그는 림성욱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어줍게 물었다.

《어디서 오신 손님인지요? 전 이웃 늙은이올시다.》

《아, 그렇습니까? 평양에서 미영이를 찾아왔습니다. 부모없이 저들끼리 사는 애들을 곁에 두고있으니 이웃에서 수고가 많겠습니다.》

림성욱은 허리굽혀 인사를 하고나서 로인이 들고있는 다람쥐장에 눈길을 주었다. 네모반듯하게 쇠그물로 둘러막은 장안에서는 깜찍하게 생긴 다람쥐가 채바퀴를 굴리며 재롱을 피우고있었다.

《그것 참, 재미있는 놈이군요.》

《네, 이 집 막둥이녀석이 하두 부러워하길래 하나 만들어놨댔는데 오늘에야 다람쥐를 잡았습니다. 좀전에 잡아넣었는데 벌써 제법 채바퀴를 돌립니다.》

《정말 로인장의 성의가 대단하십니다.》

《뭘요. 우리 동네에선 모두 미영이네를 제자식처럼 도와줍네다. 미영의 어머니가 돌아간후 리당비서동무가 나서서 벌써 두번이나 땔감이랑 보장해줬지요. 여긴 탄만 넉넉하면 그리운게 없이 사는 고장이웨다. 마침 저기 미영이네 막내녀석이 옵니다요.》

로인이 가리키는 쪽에서 예닐곱살쯤 되여보이는 사내아이가 북술개를 앞세우고 달려왔다. 그애는 마당에 들어서자바람으로 토방우에 놓인 다람쥐장을 보고 대뜸 환성을 올렸다.

《야, 다람쥐! 할아버지, 끝내 잡았구나!》

《응, 오늘에야 한놈 걸렸다.》

《히야, 멋있네. 이거 이젠 내거지?》

《그래그래. 철남이거구말구. 다람쥐가 달아나진 않을테니 좀 있다 가지구 놀도록 하구 큰누나 어디 갔는지 찾아야겠다. 평양서 손님이 오셨다.》

이웃집 늙은이가 귀띔해주어서야 비로소 어린것은 림성욱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는 잠시 유심히 림성욱을 쳐다보더니 싱긋 웃으며 꾸벅 머리숙여 인사를 하였다.

《음, 네가 미영이 동생이냐?》

《예, 철남이예요. 전 선생님을 알아요.》

철남은 오돌차게 대답하고 손등으로 코밑을 문대겼다. 림성욱은 저으기 놀랐다. 그애가 자기를 알수 없었기때문이였다.

《네가 날 어떻게 아니?》

《우리 집에 소장선생님이 아버지하구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요.》

자랑스럽게 울리는 그애의 대답에 림성욱은 가슴이 찔렸다. 자기는 철남이가 저렇게 크도록 아무런 관심도 돌리지 못하였는데 이애는 이 못난 사람의 직명까지 알고있으며 아버지의 옛 친구라고 자부심을 느껴온것이 아닌가? 림성욱은 어린것의 눈을 마주 볼수가 없었다. 그의 옹색한 마음을 알리 없는 철남은 토방에 올라가 방문을 활짝 열고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소장선생님, 방으로 들어가시자요. 사진첩이랑 보여줄게요. 이제 인차 큰누이가 와요.》

《누인 어디로 갔느냐?》

《미옥누나하구 상점에 갔어요. 미옥누나가 래일 야영을 떠나요.》

림성욱은 철남이한테 끌려 방안에 들어섰다. 우선 첫눈에 띄우는것이 심운호가 외국류학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낡은 쏘련제 자명종탁상시계… 방안에는 별로 색다른 가구가 없었다.

철남은 색날은 스프천으로 가리운 벽장을 뒤지더니 뚜껑가녁이 닳아빠진 두터운 사진첩을 꺼냈다.

《이 사진첩안에 소장선생님이 우리 아버지하구 같이 찍은 사진이 있어요. 수태 많아요.》

철남은 사진첩을 앉은뱅이책상우에 내려놓았다. 림성욱은 자기를 심심치 않게 해주려고 마음쓰는 철남이에게 듣기 좋은 말로 거절하였다.

《너희 아버지와 같이 찍은 사진들은 우리 집에도 많다. 그 사진첩은 후날 시간이 넉넉할 때 보도록 하자. 그대신 너의 누나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그거나 좀 보자고 하는데 일없겠니?》

사진첩을 번지게 되면 아무래도 어린 철남이가 자기 아버지의 과거에 대하여 자꾸 캐물을것 같아서 일부러 피한것이다.

《누나들의 책은 저기 있어요. 맘대루 봐요.》

철남은 웃방의 앉은뱅이책상쪽을 가리켰다. 그 책상우에 놓인 두단짜리 책꽂이에 미영이의 대학시절 교과서들과 중학교 교과서들이 학습장들과 함께 꽂혀있었다. 그 한켠에는 자그마한 경대… 책상우에는 사륙판크기의 두툼한 수첩이 만년필을 끼워둔채로 놓여있었다. 림성욱은 무심결에 푸른 뚜껑을 번져보았다. 지난해부터 써오는 미영의 일기책이였다. 그는 철남이를 보며 량해를 구하듯 말했다.

《이게 누나의 일기책 같은데 내가 한번 봐두 일없겠니?》

《보십시오. 나두 봤는데요.》

그애는 다람쥐와 같이 놀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일기장을 눈으로 더듬기 시작한 림성욱은 차츰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던 미영이의 지나간 생활세계에 깊이 빠져들어갔다.

 

1978년 10월 12일 (맑은 날씨)

 

소슬바람 불어오는 산기슭에 피여난 한떨기 들국화, 땔나무를 주으러 갔다가 꺾어가지고 와서 빈 탄산수병에 꽂았다. 이 꽃은 내가 사랑하는 꽃이다.

 

거치른 들판에

홀로 핀 들국화야

마가을 찬서리가

삼라만상 뒤덮어도

너만은 싱싱해

나를 반겨 웃겠지

 

아, 들국화, 들국화

나는 네가 부럽구나

 

1978년 10월 22일 (개임)

 

림성욱소장동지가 인민설계가칭호를 수여받았다. 고성기가 전해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가슴은 터지는것 같았다. 나의 아버지도 그냥 살아계시고 또 설계를 계속했다면 소장동지처럼 되였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이였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아버지!… 아버지는 돌아가시였다. 오명을 지워버리지도 못한채… 그 오명때문에 우리 자매들한테까지 그늘이 졌다. 오늘은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아서 호텔설계에 손을 못댔다.

 

1978년 11월 15일

 

오늘 아버지가 남겨둔 설계도면 몇장을 찾아냈다. 새 형의 주택형성안들이였다. 놀라울만치 착상이 대담하고 기발하다! 매 형성안들마다에 발견이 있고 독창적이다. 이렇듯 훌륭한 집을 설계할수 있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어찌하여 륜환선거리에는 볼품없는 집을 설계하여 앉혔을가?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망스럽다. 아마 아버지자신도 자기의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하여 저주스럽게 생각하고 량심상 부끄러움을 느낀것 같다. 자기의 설계가 실현되지 못하리라는것을 알면서도 이런 형성안을 만들 때의 아버지의 심정은 얼마나 복잡하셨을가? 그 누가 시켜서 만든 형성안이 아니다. 그 어떤 충동에 못이겨 그렸으나 속으로는 눈물을 흘렸을것이다.

 

림성욱은 더 읽지 못하고 책상앞에서 일어났다. 글줄이 흐려져 읽을수 없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들고 눈굽을 훔치였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파마머리의 숙성한 처녀가 들어왔다. 미영이였다.

《아니, 소장동지가?》

몹시 반가와하면서도 놀라움과 의아함이 뒤얽힌 아주 복잡한 표정이였다. 갸름하게 생긴 얼굴에서 발그스름한 홍조가 물결쳤다.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아이, 뭐가 달라졌겠어요. 예나제나 미영이 그대로지요.》

퍼그나 오래간만에 만나보게 된데서 오는 서먹서먹함을 미영은 그 한마디 말과 복성스러운 웃음으로 일시에 날려버렸다. 처녀는 봄을 맞은 꽃나무처럼 싱싱하였다. 크지 않은 몸은 날씬하면서도 옹골차보이였다. 영채어린 눈은 꼭 어머니를 닮았다. 얼굴도 해볕에 감실감실하게 탔다. 어깨에서도 팔에서도 싱싱한 기운이 느껴졌다.

《몸이 좀 좋아진것 같구나.》

미영은 소리없이 웃었다.

《그래요? 아마 여기 황주의 붉은땅이 절 단련시켰는가 봐요. 이곳의 적토는 비라도 오는 날에는 참 굉장합니다. 흙덩이가 신발창에 한삼태기씩 달라붙는답니다. 호호… 산도 들판도 온통 뻘건 진흙땅으로 뒤덮인 이 고장에서는 웬간한 평양내기들은 걸음을 옮기기도 힘겨워해요. 그렇지만 이 고장흙은 구멍탄을 빚는데는 그저 그만입니다. 아무데 있는 흙이나 무연탄과 섞으면 구멍탄을 빚을수 있어요. 그래서 살아가는데는 아주 편리한 고장입니다.》

미영이가 쑥스러운듯 혼자 웃다가 갑자기 부엌쪽으로 돌아섰다.

《소장동지, 우리 미옥이가 얼마나 줄난가 좀 보세요.》

부엌 문설주를 잡고 중학생복차림의 애어린 처녀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네가 미옥이냐?》

림성욱이 반겨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미옥은 그제야 머리숙여 인사를 하면서 방싯 웃었다.

《정말 몰라보겠구나. 이리 오너라.》

미옥은 제 언니와는 달리 얼굴이 둥글하게 생기고 성미도 온순해보였다. 림성욱의 옆에 와서도 미옥은 얌전하게 묻는 말에나 대답했다.

《소장동지, 이래뵈도 미옥인 우리 집에서 주부구실을 한답니다. 듬직하구 말이 없구…》

미영은 자기네 가정이 평양을 떠난 이래 단 한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던 림성욱이 불쑥 찾아온 일이 의아쩍었지만 구태여 입밖에 내여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옛 친구로서 그간 너무도 심하게 외면하고 지낸것이 미안하여 지나가던 길에 얼핏 들린것이라고 짐작한 모양이였다. 그러고보면 미영은 아주 속이 깊고 심중하고 교양이 있었다. 림성욱을 딱한 립장에 빠뜨릴가봐 아무런 별다른 내색도 보이지 않던 미영은 부엌에 내려가 곧 음식지을 차비를 하였다. 그런 눈치를 알아차린 림성욱은 인차 떠나야 한다고 하면서 미영이더러 어서 올라오라고 재촉했다.

《소장동지에게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는줄 저도 알아요. 여기서 오래 지체할 생각이면 운전사동무를 차에 두고 들어오셨겠어요. 그렇지만 잠간만 앉아계셔요. 어쩌다 우리 집에 오셨는데.》

《내가 너희네 밥이나 축내자고 여기로 온줄 아느냐? 괜히 그러지 말고 올라오너라.》

림성욱은 한사코 만류했다.

《소장동지, 우리 자매들의 심정두 좀 생각해주세요.》

미영은 애원하다싶이 하였다.

《글쎄 어서 올라오라니까. 내 그럴만 한 까닭이 있어 그래.》

림성욱은 부엌에 머리를 내밀고 미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원망스럽게 자기를 쳐다보는 미영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저희 부모들이 살아계신다면 식사 한끼 안하구 훌쩍 떠나실수 있겠어요?》

말문이 막힌 림성욱은 미영의 손을 놓았다. 때마침 철남이가 법랑소랭이를 들고 기쁨에 넘쳐 뛰여들어왔다.

《누나, 이것 봐, 가물치야, 과수반장아저씨집에서 두마리 가져왔어!》

《…》

미영은 동생의 눈길을 피하며 말없이 바람벽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왜 그래? 누나.》

《됐다. 거기다 놔라. 소장선생님이 떠나시겠다누나.》

갈린 목소리였다. 일시에 풀이 죽어버린 철남이는 찬거리로 구해온 가물치를 부엌바닥에 쏟아던지고 밖으로 뛰여나가버렸다. 림성욱은 부엌에 내려가 미영이의 어깨를 어루쓸었다.

《미영아, 울지 말아라. 나는 너희들을 평양에 데려가자구 왔다.》

《네?!》

미영은 쌀함박을 쥔채 굳어졌다. 그의 얼굴색이 하얗게 바랬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너희들을 데려오라고 나를…》

미영은 깜짝 놀라며 림성욱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을… 》

미영은 금시 눈이 커지며 림성욱을 따라 방에 올라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림성욱을 넋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일전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륜환선거리를 새로 건설할 대책을 세우시다가 너희 아버지에 대해 료해하시구 아까운 동무가 반당종파분자들때문에 건축가로서의 한생을 잃었다고 몹시 아쉬워하시였다. 너희들이 어머니까지 잃고 외롭게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얼마나 가슴아파하셨는지 모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아버지가 범한 실책을 그 자식이 바로잡게 되면 아버지에게도 자식에게도 다 좋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너를 륜환선거리설계그루빠에 망라시키고 너희형제들을 모두 평양에 데려오라고 하시였다.》

《그게… 그게 정말이예요?… 죄많은 저희 아버지인데… 저희들을 평양에 불러주시다니?… 꿈이지요? 소장동지!》

미영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성욱의 팔을 흔들며 속삭이다가 방바닥에 어푸러지며 울음을 터뜨리였다.

림성욱은 미영이가 진정할 때를 기다렸다가 김정일동지께서 심운호와 미영이형제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금 자상히 전달하였다.

그리고 이제 곧 평양으로 올라갈 차비를 하라고 하였다. 미영은 연신 눈물을 쏟으며 림성욱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그는 손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훔치면서 코멘 소리로 겨우 말을 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저희들을 불러주시였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수 있어요? 소장동지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왜 이 날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가요. 어쩌면 그렇게도 명이 짧을수 있어요… 떠나기전에 부모님들의 묘소에 가서… 떠나는 인사라도 하고 오겠어요.》

림성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도 가슴속에 눈물이 흘러드는것을 느꼈다. 친우에 대한 지난날의 우정이 되살아오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세 남매를 두팔로 끌어안을듯 부둥키며 함께 밖으로 나섰다. 구름한점 없이 맑은 하늘에는 태양이 찬연히 빛을 뿌리고있었다. 묘소로 올라가는 산등성이 풀덤불속에 한가닥 벌거우리한 오솔길이 나있었다. 미영이 어머니가 돌아간지 한해밖에 안된다는데 그간 세 남매가 얼마나 오르내렸는지 저렇게 오솔길까지 생겼겠는가.

숲속은 고요했다. 금잔디가 곱게 덮인 묘앞에서는 미영이네 나지막한 집이 내려다보이였다. 미영은 부모님들이 땅속에서라도 자식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게 하려고 마을사람들이 이 산등성이에 자리를 잡아주었다고 말하였다. 미영이네 세 남매가 먼저 작별인사를 드리였다. 림성욱도 뒤따라 화강석상돌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술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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