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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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업소청사 3층회의실에서는 평양시내 여러 건설대상들에 대한 중간총화회의가 있었다.
남정기는 회의에서 오직 대학습당설계만 얘기된것처럼 느껴지면서 줄곧 그 한가지 생각에만 옴해있었다. (불당같은것을 만들다니… 불당, 불당…) 그 말을 되씹느라니 그의 머리가 딴데로는 주의가 돌아가지 않았던것이다.
남정기가 토론하기전에 림성욱소장이 보고가운데서 대학습당설계집단에서 발로된 복고주의적결함을 두고 주로 소장으로서 자기의 무책임한 사업에 대하여 비판총화했다.
남정기는 림성욱의 말에 오히려 더 큰 자책감에 잠겨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인민대학습당형성안제작에 사업소의 기본력량을 들이밀고 전적으로 도와준 소장한테야 무슨 잘못이 있는가? 비록 엄중한 과오를 범했지만 소장한테는 물론 자기의 협력자들중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전가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남정기는 몇몇 사람들이 주는 진심으로 되는 충고를 허심히 받아들였다. 간혹 지나친 말이 나와도 고까운 생각이 없었다.
민호의 비판까지도 이제는 별로 노엽게 생각되지 않았다. 유민호는 자기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학습당형성안을 지도해주시기전에 술병을 들고 남정기를 찾아가 술판에 끼여들었으며 술에 취해 불당처럼 설계된 학습당을 세계적인 대걸작처럼 자랑하는 남정기의 망발에 맞장구를 친 청맹과니같은 행동을 했다고 금시 눈물이라도 흘릴것같은 심각한 자기비판을 했다. 남정기는 그가 심각하고 량심적인 비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민호가 털어놓은 사실은 회의참가자들을 어지간히 놀라게 하였다. 집행부에 앉았던 김광성은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그게 사실이냐고 남정기에게 물었다. 남정기는 구태여 구구하게 변명하고싶지 않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형성안을 완성한 이튿날에 나오실줄 모르고 안해가 간소하게 차려주는 술상에 앉아서 취중에 수다스럽게 떠벌인 사실을 부정할수 없었다. 그의 장점으로 인정해온 남다른 탐구심, 열정, 일욕심이 실지에 있어서는 공명심의 발현이였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에 일부 사람들은 유민호를 의아하게 혹은 못마땅하게 바라보기도 하였다.
남정기는 회의참가자들이 주는 어떤 비판도 접수하려고 노력했을뿐 유민호의 비판에 그 무슨 사심이 깔려있다는 생각따위는 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누구를 탓하기전에 자신을 심각히 검토해보는것이 훨씬 더 절박했다.
남정기는 제방에 돌아와 걸상에 앉았다. 그는 혼자서 조용히 다시금 과오의 원인을 따져보며 번민에 시달렸다.
(나를 공명주의자라고 락인한것은 정확한 비판이다. 내가 자기실력을 시위하려는 그릇된 야심을 품었던것은 사실이 아닌가? 될수록 요란하게, 될수록 화려하게, 될수록 재간이 드러나보이게 설계하려고 애썼다. 나는 나의 야심을 실현하는데로 방조자들을 이끌었다. 나의 검질긴 주장에 그들은 따를수밖에 없었다. 나를 따르다나니 그들의 눈도 멀게 되였다. 나도 그들도 조선식이라는 개념을 옛식이라는 개념과 혼돈해버렸다.… 아, 그이의 빛나는 예지, 김정일동지께서 비범한 안목으로 까밝혀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영 구원되지 못할수도 있었다. 이제라도 자신을 알게 된것이 다행이기도 하다.
나의 의욕, 그것은 참다운 당원, 참다운 인민적예술가다운 옳바른 욕심이 아니였다. 순전히 자기 명성을 떨치려는 속물적야심이였다. 나는 어느결엔가 변질되였어…)
남정기는 이런 생각에 시달리며 자신을 무자비하게 채찍질했다. 자기가 범한 엄중한 과오를 무엇으로 씻어야 할지 지금의 그로서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120명의 설계집단앞에서, 안해와 자식들앞에서, 출퇴근길에서 만나는 수도시민들앞에서 머리를 들수 없을것 같았다.
빈방에 혼자 앉아 번민을 거듭하던 남정기는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어쩔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자기의 몸을 바람벽에 힘없이 기댔다.
(아, 이 과오를 무엇으로 보상해야 옳단말인가.)
남정기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가누며 실성한 사람마냥 문을 열고 방에서 나왔다. 자기의 병든 넋이 빚어낸 《불당》모형을 당장 두드려 마스고싶었다. 그는 비칠거리는 걸음을 옮기였다. 반쯤 열려진 형성관의 출입문앞에 이른 그는 발길을 멈추었다.
휑뎅그레한 광실안에서 김광성과 림성욱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그의 가슴에 날아와 박히였다.
《소장동무, 인민대학습당이 어떤 건물인가. 수령님께서 우리 인민에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학습당을 지어주시려고 10년이상이나 남산재를 비워두셨는데… 글쎄 불당처럼 됐으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마음이 어떠하셨겠나. 그때 눈앞이 캄캄해지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써늘해지네. 아무래도 남동무를 여기에 그냥 둘수 없을것 같네.》
《그러니까 사업소에 들여보내잔말인가?》
《다른 방도가 없지 않나? 난 어제 회의에 참가하여 유민호동무의 토론까지 듣고나서 남정기가 단단히 병들었다는것을 알게 됐네. 그래서 난 조용히 대학습당설계에서만 손을 떼게 하자는거네. 눈감아주는것도 한도가 있지 않겠나.》
《여보게》
방안을 거니는 림성욱의 무거운 구두발소리가 복도에까지 울려나왔다.
하루밤사이에 10년은 더 늙어버린것처럼 이마에 깊은 주름이 뒤덮이고 허리까지 구부정해진것 같은 소장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난 이 모든것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네. 남정기동무한테는 차라리 책벌을 주는 한이 있어도 이 설계집단에서는 떼낼수 없네. 학습당설계에서 떨어져나가면 남동문 죽지부러진 새가 되고 마네… 사실이야 이번에 남동무가 범한 과오를 어찌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만 할수가 있나? 더 큰 책임이야 나한테 있지. 나한테 더 큰 과오가 있단말일세…》
그러던 림성욱이 문득 생각난듯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심운호가 남정기를 두고 말하기를 잘 이끌어주면 우리를 훨씬 릉가하는 훌륭한 설계가가 될수 있다고 했어… 난 여태 그저 남동무한테 설계가는 창작가이니만치 야심이 커야 한다구만 말해왔네. 배짱과 대담성을 키운다는게 그만…》
림성욱이 빠른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자, 어쨌든 남동무를 설계에서 떼겠으면 나한테도 당적인 책벌을 주게나. 소장자리에서 떼두 의견이 없네. 그 사람만 책임지고 나앉으면 이 소장은 뭐가 되겠나.》
그럴수록 김광성의 목소리는 전에없이 랭랭해졌다.
《나를 자꾸 괴롭히지 말게. 누군 남정기동무를 설계가로서 매장시키자는 사람인가…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난 그의 설계능력두 문제라구 보네. 남동무가 만경대천석식당설계는 잘했지만 그후에 설계가로서 크게 인정받을만 한 일을 한게 없잖나. 인민대학습당은 그의 힘에 너무 부쳐. 앞에 놓고 말해서 안됐네만 소장동무나 감당할 대상이란 말일세. 그렇다구 소장이 도맡아서 할수는 없는것이고 이제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분발시켜 다시 설계를 한다구 해도 시간이 없지 않나. 학습당개작설계는 당장 달라붙어야 하네. 제발 내말대루 하세.》
《아니, 나는 동의할수 없네. 자네도 알다싶이 난 남정기가 학습당의 설계시안을 내놨을 때 제일 앞장에서 환성을 올렸던 사람이네. 우리들중의 그 누가 17만㎡의 방대한 규모로 건설될 인민대학습당을 조선식건물로 만들려고 시도한 사람이 있었나? 나도 감히 엄두를 못냈네. 어찌보면 남정기와 같은 배짱군만이 할수 있었던 착안처럼 생각되기도 했네. 하긴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나한테도 후회되는바가 많네. 내가 남정기동무를 덮어놓고 좋게만 보지 말고 자기 창조물앞에서 좀더 허심할것을 요구했더라면 사전에 이런 과오를 막을수 있지 않았겠는가 싶군. 여하튼 난 소장으로서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가책이 크네. 남정기만이 아니라 나도 인민대학습당이 불당처럼 된줄을 몰랐으니 피차일반이지.》
반쯤 열려진 문옆에 서있는 남정기는 소장의 무거운 한숨소리에 천길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소장이 아무리 구원해주려고 애써도 자기의 운명은 피할길 없는 파국에로 내닫는듯싶다. 남정기는 어쩔수없이 학습당설계에서 물러설수밖에 없는 자신을 절통하게 의식했다. 이제는 무엇을 더 기대하며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어데로 가는지도 모르고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였다. 필생의 야심작으로 생각했던 대학습당과 정든 동무들과도 리별해야 하는 기막힌 시각이 닥쳐왔다. 그는 자기를 성의껏 도와준 동무들에 대한 죄의식으로 가슴이 더더욱 저려났다. 얼굴이 시꺼멓게 질려 김정일동지앞에 서있던 소장의 모습도 망막을 찌르며 다가들었다. 소장이 지금도 형성안이 놓여있는 광실을 뜨지 못하며 무거운 바위에 눌린듯 허리를 구부정하고 끝없이 걷고있을것만 같았다. 그한테 여러모로 죄스러운 일이 많았다.
남정기는 여태껏 건축가가 자기의 자욱을 뚜렷이 남기지 못하면 생명이 없다는것을 남달리 강하게 주장해왔다. 그는 지어 설계까지도 개성이 뚜렷하지 못하다면서 불만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로설계가와 젊은 설계가사이에는 가끔 마찰이 생기였다. 그는 림성욱을 우리 나라 건축계의 로장으로 존경하면서 고전주의건축을 신봉한다고 여간 의견이 있어하지 않았다. 그런 일로 해서 소장한테서 건방지다는 말도 들었다. 그럴 때면 사죄를 겸한 이런 말도 했다.
《소장동지,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차후로는 소장동지앞에서 저의 고약한 말버릇을 고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소장동지의 세대에 살았어도 그렇게밖에 될수 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여보, 그 달콤한 소린 그만두오.》
림성욱은 그답지 않게 역증을 내기까지 했다. 그런 말다툼이 있은 뒤면 소장은 노여워서 며칠동안은 인사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로건축가답게 후배인 남정기를 극진히 아껴주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였다.
남정기는 오늘에 와서야 소장의 가장 큰 우점을 알게 된것 같았다. 괜히 소장을 괴롭히고싶지 않았다. 자신이 스스로 물러나는것이 소장을 괴롭히지도 않고 또 자연스럽기도 할것이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는 사업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한두명의 설계가들이 그를 위로해주려고 찾아왔다. 남정기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정말 한심한 놈이였소. 당에서 중요한 설계과제를 맡겼으나 당의 뜻을 받들 생각보다 한번 세상을 놀래워보려고만 했소. 동무들을 보기가 부끄럽소. 이제 더 날 위로하지 마오. 됐소, 됐소.》
남정기는 손을 내흔들기까지 했다. 그는 이 순간처럼 자신이 역스럽게 느껴진적은 없었다. 흔히 사람들은 건축이 생활풍습과 감정, 구조적해결, 시공자료, 이 네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하여 《4차원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그중에서도 남정기는 민족적인 전통과 생활감정을 중시하며 인민대학습당을 티끌만 한 손색도 없는 조선식건축물의 본보기로 되게 하려고 여태껏 고심참담한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개성지구와 심심산속의 절간들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고 연구하지 않은 옛 건축물이란 하나도 없다. 전국 각지의 민족문화유산들을 편답하기 위해 가파로운 산발을 오르내린 거리만 해도 몇천리는 잘될것이다.
산속에서 눈비를 맞으며 끼니를 굶은 때도 여러번 있었다. 간고하면서도 희망에 넘쳤던 그 나날에 그는 수백장의 실측도면들을 그려가지고 자기의 색이 날아 버린 배낭을 불룩히 채웠다. 그는 조선식건물의 대표작을 만들리라는 주관적인 욕망을 앞세우고 정신없이 내닫기만 하였지 자기가 복고주의의 수렁창에 빠져들어가는줄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뜻밖에도 민호가 그의 방에 나타났다. 어디라없이 쑥스러워하는 기색이였다. 그는 걸상에 앉지도 못하고 눈을 내리깐채 말했다.
《형님, 어제저녁엔 미안하게 됐수다.… 문혁이까지 찾아왔기에 아무래도 술마시며 형님을 축하해준것이 당조직에 알려질것 같아 자기비판을 했는데…》
남정기는 그를 언짢게 흘끔 쳐다보았다. 어제 회의장에서는 그렇게도 성실성으로 자신을 위장하던 그의 입에서 지금은 전혀 다른 말을 듣는다는것이 여간만 불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미리 방패막이를 했다는건가?》
남정기는 저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소리를 뱉았다.
《남의 입을 통해 반영되기보다 자진해서 비판을 하는것이 좋지 않습니까?》
민호는 우물쭈물 말꼬리를 얼버무리며 구차스러운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도 지난밤엔 잠을 못잤습니다. 토론준비를 못해가지구 나가다보니 안할 소리두 한것 같군요.》
남정기는 저도 모르게 울분을 터뜨렸다.
《그래, 내가 취중에 떠들어댄 말을 듣고 맞장구를 친것이 그렇게도 겁이 나던가? 술은 반년간이나 침식을 잊다싶이 하며 수고를 했다구 해서 자네 처형이 반주삼아 차려준걸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가 굉장한 술판이라도 벌린것처럼 과장해가며 자기비판할 때 난 속으로 크게 놀랐네.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나 희생시킬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제코도 씻지 못하는 주제에 남을 훈시질한다고 비웃지 말구 내말을 명심해 듣게. 표리부동한 자네의 행동은 심상치 않네. 그게 장차 어디로 내닫겠는지 우려된단 말이네. 평설계가도 아니고 실장이기에 더구나 걱정이 돼.》
남정기는 비록 이런 처지에 놓이긴 해도 속대가 꿋꿋하게 자기의 견해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전 그래도 친척이라구 생각해서 속마음을 털어놨는데 너무하군요. 아무튼 처형한테만은 제말을 말아주시우.》
남정기는 민호가 얼굴이 벌개서 부탁했으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치만 살피던 민호가 목이 부러진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방에서 나가자 남정기는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는 가방과 몇달동안 현장에서 사용하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싼 보꾸레미를 들고 방을 나섰다. 이제는 래일 아침 정확히 제시간에 사업소로 출근하면 된다. 대학습당형성안에 자기의 땀과 넋이 스며있는 창조물을 남겨둔채 밖으로 나가는 그는 병신자식과 리별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팠다.
남정기는 허탈상태에 빠진채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내가 어디로 가는가? 알수 없었다. 한참후에야 그는 자기의 무의미한 발걸음을 멈춰세우고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낮게 드리운 회색하늘에서는 금시 비방울이 후두둑 떨어질것 같았다. 차라리 한줄금 시원히 소낙비라도 쏟아져내렸으면… 남정기는 손가방과 보꾸레미를 든채 머리를 떨구고 대동강쪽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강가에는 전혀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기야 자기처럼 마음속 번민때문에 방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 궂은 날씨에 강바람을 맞으며 여기로 나오겠는가.
남정기는 하늘도 땅도 강물도 온통 한 빛으로 흐릿한 강변을 걸어가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저쯤에서 뜻밖에도 문혁이가 땅바닥에 눈길을 떨군채 따라오고있었다.
문혁은 그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서도 한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은채 소리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때문에 문혁이가 여기 강변에 나타났는가 하는것은 구태여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아마 남정기 자기를 찾으러 왔다가 뒤따라 온 모양이였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바람부는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따금 철썩 기슭을 치는 물결소리가 들려왔다.
《남선생, 정말 사업소로 철수해들어갈 생각인가요?》
문혁이가 마침내 먼저 입을 열었다. 남정기는 그를 의아해서 쳐다보았다.
《누가 그러던가?》
《사업소에 소문이 돌더군요.》
(벌써 그렇게 되였군.)
남정기는 먹장구름이 갈가리 찢어지며 향방없이 흘러가는 검은 하늘을 절망이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난 대학습당설계에서 물러나야 하네. 내가 범한 과오는 당장 씻을 길이 없소.》
남정기는 불쑥 눈물이 솟아올라 얼굴을 돌리였다. 문혁의 눈에도 물기가 고여올랐다.
《그래 공들여 쌓은 탑을 통채로 없애치우는데 불당처럼 만든 설계가 뭣이 그렇게 큰거겠소? 가슴이 아프지만 다른 방도는 없소. 깨끗이 물러나앉는 길밖에.》
문혁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버쩍 쳐들었다.
《남선생, 저도 선생의 고민을 리해합니다. 그러나 너무 나약합니다, 나약해요. 내가 믿고따랐던 설계가가 아니란말입니다. 전 이런줄은 모르구 그래도 선생한테 도움이 될가 해서 이따위걸 다 들고왔군요.》
문혁이가 손에 움켜쥔 종이장들을 내흔들며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자, 받으시우. 이젠 남선생한테 쓸모없이 된것이긴 하지만 남선생을 위해 수집한것이니 내버리겠으면 내버리고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건 뭐요?》
《우리 나라와 세계의 건축자료들입니다.》
남정기는 놀란 눈으로 문혁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에서 구겨진 자료들을 받아쥐였다. 이책 저책에서 뜯어내여 서로 크기도 다르고 뗀 자리가 너슬너슬한 책장들인데 한뭉테기나 되였다. 문혁이가 서고에 소중히 보관한 책들을 발칵 뒤져서 이렇게도 많은 자료들을 아낌없이 뜯어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개중에는 문혁이가 그의 집으로 놀러올 때마다 욕심을 내기에 선사한 화첩의 그림들, 삼국시기와 고려, 리조때 건립한 국보적인 가치가 있는 건축자료들과 현대의 유명한 세계적건축자료들이 여러장 들어있었다.
어떤 종이장에는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건축유산들이 찍힌 엽서들과 엽서만큼 작은 희귀한 자료들을 정성껏 오려서 붙여놓은것들도 있었다. 남정기는 불시에 목이 꽉 메였다.
《고맙네만 지금은 어찌할수 없구만. 난 때늦게 진리를 깨달은 시대의 락오자야. 늦었어. 당에서는 날 세상에서 둘도 없는 영광의 단상에 세워주었지만 허튼 꿈을 꾸었거든. 난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네. 》
남정기는 목메인 소리로 말을 마치고 두손으로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가까스로 아름드리 버드나무줄기에 등을 기대였다.
그의 우묵하게 들어간 두눈에 한순간 어설픈 미소가 어리였다. 그 미소를 보기가 괴로운듯 문혁은 머리를 돌리였다.
《남선생, 너무 자신을 비하하지 마십시오.… 과연 그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의도를 따르는 길이겠습니까?… 생각을 좀 깊이 해주십시오.》
문혁의 목소리는 안타까이 울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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