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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48. 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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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956회 작성일 20-10-0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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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후날의 이야기

 

 

자정이 가까와오는 때, 휘황한 조명빛으로 대낮과 다름이 없는 김일성광장에 80고령의 할머니가 두 오누이의 손을 잡고 거닐고있다. 남자아이는 아이라고 부를수 없을만큼 숙성해보이는데 갓 대학생이 된듯싶고 동생은 분명 중학교 학생이다. 그들의 뒤에는 굽실굽실 보기 좋은 머리카락을 7월의 훈풍에 날리는 중년사나이와 연분홍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현숙해보이는 녀인이 따라섰다. 첫눈에도 한가정식솔들이라는것이 알린다.

한낮에 열병대오가 보무당당히 행진해간 그 길로 천천히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그 무슨 사연을 추억하는듯 더없이 경건해보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들의 모습을 자꾸만 돌아보며 저들끼리 무슨 말인지 속살거린다.

그들은 다름아닌 리학문 2중영웅의 안해 권녕신과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들이다. 텔레비죤을 통해 여러번 소개된바가 있어서 이제는 온 나라가 아는 영웅가족이다. 얼마전에는 영웅의 숭고한 넋을 후대들에게 물려주겠다고 권녕신할머니가 한생토록 꼭꼭 정리한 리학문영웅의 적후정찰투쟁실화자료가 또 두툼한 책으로 출판되였다. 이미전에 실화집들을 여러권 집필하여 출판한 그는 년로한 몸이여도 불타는 정열을 바쳐 새로운 실화책을 써냈는데 적후정찰활동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풍부한 자료들이 안받침된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대인기를 끌었다. 그런 연고로 영웅가정의 식솔들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경축 로병대표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온 권녕신은 마음속에 끓어넘치는 흥분을 눅잦힐수 없어 온 가족을 이끌고 이 광장에 나온것이였다.

가슴뜨거운 나날이였다. 김일성광장에 굽이쳐가는 열병대오를 보았고 김정은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김일성상계관작품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했으며 새로 훌륭히 일떠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서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위대한 년대에 경의를 드린다》라는 김정은동지의 빛나는 친필이 새겨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의 승리상앞에 섰을 때는 감격이 북받쳐 눈시울을 적셨다.

전쟁로병들의 손을 잡으시고 환히 웃으시는 김정은원수님을 우러러 만세를 부르며 권녕신은 자기의 옆자리에 남편 리학문이 서있는듯 한 환각을 느꼈다. 아니, 분명 서있었다. 조국수호의 결전길을 헤쳐온 정찰병들모두가 서있었다.

전승절을 계기로 그는 살아있는 전우들을 모두 만나보았다.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경축 국가미술전람회에서는 김덕천이 로년의 정력을 다 기울여 그린 유화 《용감한 정찰병들》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라동수와 김기전, 차용대와 하복남들은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를 지녔다.

큰 병원의 원장으로 아직도 정정해서 사업하는 심초향과 부상당했던 눈을 고치고 안경공장 고문지배인으로 일하는 그 옛날의 하사도 만나보았다.

황홀경을 펼쳤던 축포의 불꽃들이 대동강우에 별빛이 되여 내려앉고 여러가지 경축행사들이 끝나 들끓던 광장과 거리들에 고느적한 고요가 깃들기 시작했으나 그의 마음은 안정을 모른다. 벌써 광장을 두고패째 거닐고서도 성차지 않은지 광장 한복판에 점도록 서서 주석단을 우러러보고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손자손녀들을 돌아보며 묻는다.

《얘들아, 들리느냐?》

의아해난 막내손녀가 두눈이 올롱해서 쳐다본다.

《할머니, 뭐가 말이나요?》

《네 할아버지의 발걸음소리말이다.》

그 말에는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이 필요없었다. 그에 대한 대답이 너무도 명백한 까닭이다. 권녕신은 무적의 열병대오가 굽이쳐간 광장에서 영생하는 영웅남편의 발걸음소리를 마음속으로 듣고있는것이다.

전승의 그날로부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던가.

세월은 아득히 멀리도 흘러흘러 세기가 바뀌고 세대가 교체되였으며 산천이 변했다. 처녀로 전쟁에 참가했고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은 권녕신의 머리우에 흰서리가 내렸고 이제는 막내손녀가 전쟁때의 할머니나이에 이르렀다. 장군님의 배려로 장령의 군사칭호를 수여받고 생의 마지막날까지 보람찬 삶을 이어오던 리학문2중영웅은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였다. 영웅을 대신하여 조국보위초소를 지켜가는 둘째아들로부터는 어제 편지가 날아왔다. 아버지처럼 영웅이 되겠다는 결심부터가 권녕신의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

갑자기 누군가가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외무성청사쪽에서 한 사나이가 이쪽으로 달려오고있다. 흰샤쯔에 곤색바지를 받쳐입고 진붉은색넥타이를 맨 환갑나이의 남자인데 나이에 비해서는 퍽 날렵하게 반달음쳐오더니 권녕신의 팔을 부여잡는다.

《여기 계셨군요. 창전거리의 집에 들려보니 아마 이 광장에 있을거라구 이웃들이 말해서 행여나 하고 나와봤는데 그 말이 옳았군요.》

《이게 누군가, 명조가 아닌가!》

두눈을 간잔지런히 좁히고 그를 여겨보던 권녕신이 드디여 상대를 알아보고 반긴다. 함흥자동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는 그 사나이는 김룡조의 아들 김명조이다. 이제는 어언 환갑나이를 넘어섰지만 권녕신을 친어머니로 여기고 평양에 올적마다 이렇게 잊지 않고 꼭꼭 들리군 하는것이다. 그를 만날 때마다 권녕신은 남편생각이 더 간절해지는것을 어찌할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나?》

《저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불러주시여 전승 6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올라왔습니다.》

《그래?》

그들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채 저마끔 회억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김명조까지 만나고보니 권녕신의 가슴속에는 남편에 대한 추억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 추억은 전쟁후의 가지가지 사연을 그의 눈앞에 펼쳐주었다. 가장 감회로운것은 김룡조와 이어진 추억이였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리학문은 전사한 김룡조가 알려준 함흥 동흥산밑에 있다는 집을 찾아갔었다. 룡조가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했다고 늘 외우던 아들과 가족을 찾아내여 돌봐주어야 할 자신의 의무감을 한시도 잊을수 없는 그였다. 룡조가 숨지면서 넘겨주고간 종이쪽지에 씌여진 주소대로 품을 놓고 찾아보았으나 그의 안해와 아들의 행처를 알수가 없었다.

적들의 야만적인 폭격에 페허로 된 도시에 성한 집이라고는 한채도 없었다. 동흥산일대의 반토굴들을 찾아돌아가며 수소문해보다가 동사무소에 들려 물어보았지만 그런 가족을 모르겠다는것이였다.

《숱한 주민들이 폭격에 잘못되였고 또 전쟁통에 이리저리 옮겨갔으니 그런 집이 있었더래도 당장이야 어떻게 찾겠습니까.》

영예군인이라는 동사무장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겹친 표정으로 사죄하듯 두손을 마주 비볐다.

하는수없는 일이였다. 그후에도 몇번이나 일부러 걸음을 해보았으나 살았는지 죽었는지 파도우에 던져진 모래알마냥 그들의 행처는 묘연했다.

전우에 대한 의리를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을 안고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준비로 온 나라가 들끓던 어느날 장령고층살림집의 현관에 들어서는 낯선 사나이가 있었다. 작달막하고 둥그스름한 얼굴에 아주 다부지고 단단해보이는 중년사나이였다. 누구를 찾는가고 묻는 권녕신에게 그는 정찰병영웅 리학문을 찾아왔다고 대답했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있던 리학문은 전실에 들어선 낯선 사람을 의아해서 바라보았다.

《나를 찾아왔다구?! 어디서 오는 누군데?》

《전 함흥에 사는 김명조인데 아버지인 김룡조에 대해 알수 없을가 해서 찾아왔습니다.》

리학문은 깜짝 놀라 들고있던 책을 떨구었다.

김룡조! 너무도 잊을수 없는 이름이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고개를 저었다. 그토록 찾고찾았는데도 간곳 없던 사람이 이렇게 제발로 찾아들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이름이 같은 사람도 있는것이다.

《그래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였고 또 나와는 대체 무슨 련관이 있는가?》

책을 주어든 다음 그를 응접실로 이끌어들이며 학문은 서둘지 않고 물었다.

명조는 담담한 목소리로 사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태여난지 얼마 안되여 아버지는 남반부에 있는 고향에 가보겠다고 집을 떠나갔는데 그후 아무 소식이 없었다고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 늘 이야기했습니다.》

《언제 집을 떠났는데 나에게 와서 아버지에 대한것을 묻나?》

《해방된 이듬해에 고향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학문은 명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낯이 익은듯도 한데 자세히 살펴보면 생소한 얼굴이였다.

《좀더 구체적인걸 말해보게.》

《제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준겁니다.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한생 홀몸으로 저 하나를 키웠는데 글쎄 전쟁이 끝난 후에 보니 아버지가 반동이라는겁니다. 그럴만한것이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원산일대에서 〈국군〉복을 입고다니는 김룡조를 본 사람이 있는것이였습니다.

남들의 아버지들은 전쟁에 참가해서 영웅이 되고 훈장메달을 가슴이 넘쳐나도록 받았는데 저의 아버지는 반동이라니 정말 억울했습니다. 물론 병신자식도 품에 안아 사랑을 다해 키워주는 어머니처럼 고마운 당에서 저를 남들과 차별없이 공부시켜주고 일군으로 키워주었지만 나라앞에 대죄를 지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그것때문에 제 마음의 그늘은 가셔질줄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저한테 그런 오욕을 들씌운 아버지를 어머니도 한생토록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세월속에 차츰 철이 들면서 저는 아버지가 원쑤들편에 가담했다는것을 인정할수가 없었습니다. 생활의 론리를 따져보아도 그렇습니다. 해방전부터 왜놈들의 공사장에 끌려다니며 마소처럼 천대와 멸시를 받아온 아버지가 왜 원쑤들의 편에 서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그걸 보증해줄 사람이 없는것이였습니다. 성진과 장진강, 문평에서 아버지와 함께 왜놈들의 노예로동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이 서너명 있었는데 그들은 아버지의 해방전생활은 보증할수 있었으나 해방후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이후의 사실은 보증할수 없었습니다. 정말 괴로왔습니다.

그러던중에 어느 하루는 권녕신이라는분이 쓴 전투실화를 읽게 되였는데 정찰조원들속에 김룡조라는 이름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선듯 믿을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름이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한번 확인이라도 해보자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분수에 넘는 생각일는지 모르겠지만 탓하지 말아주십시오.》

리학문은 웬일인지 자꾸만 끌리는 심정을 겨우 눅잦히면서 짜릿한 긴장감에 휩싸여 재우쳐 물었다.

《아버지의 고향이 어데인지 아는가?》

《예.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경상남도 부산시 렴중정이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통일되면 꼭 찾아가보라고 하면서…》

이제는 더 의심할것이 없었다. 리학문은 두팔을 펴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한발두발 명조에게로 다가갔다. 두손이 화들화들 떨었다.

《그럼… 그럼 네가 정말 김룡조의 아들이란 말이냐. 그렇게도 안타까이 찾으려던 룡조의 아들을 전쟁이 끝난지도 36년만에 만난단 말인가! 아!》

명조도 성큼 자리에서 뛰쳐일어섰다.

《우리 아버지를 아십니까? 장령동지. 정말 우리 아버지와 함께 싸웠단 말씀입니까?》

《그래그래, 그렇다! 너의 아버지 김룡조는 나의 전우였다. 그는 바로 위대한 수령님을 위해, 전쟁의 승리를 위해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한 용감한 정찰병이였다!》

리학문의 눈굽이 눈물에 젖었다. 명조는 막 소리내여 울었다.

그날 그들은 온밤 한잠도 자지 못했다. 난생처음 만나는 사이여도 깊은 해후를 나누었다.

리학문은 김룡조에 대해, 그의 위훈과 영웅적인 최후에 대해 들려주었다. 김일성장군님의 정찰병이 된것이 행운중에도 특출한 행운이라던 그의 말을 몇번이나 곱씹었다. 그러느라니 그런 사람이 반동으로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다.

(적후에서 언제한번 편히 마음놓고 자보지도 못하고 변변히 먹어보지도 못하면서 험한 산발을 넘나들며 수령님의 명령을 목숨걸고 관철한 사람인데… 누가 시킨적이 없어도 신념과 량심으로 병사의 구실을 맡아하다가 전사한 사람인데… 사실을 밝혀야 한다, 무조건 밝혀야 해!)

며칠후 그는 함흥으로 떠났다.

찾아온 사연을 듣고난 도당 책임일군과 도안전부장은 정말 기가 막힌 일이라며 혀를 찼다.

우람진 체격의 도안전부장은 미안한 어조로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이렇게 먼 걸음을 시켜서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가 일을 더 잘했어야 하는건데…》

어떻게 더 량해를 구할지 몰라 말끝을 맺지 못해하던 그는 벽가로 다가가 회색뼁끼를 칠한 철궤안에 보관되여있던 큼직한 사진첩 세개를 들고 돌아와서는 책상우에 펼쳐놓으며 덧붙였다.

《이 세개의 사진첩에 있는 사람들중에서 그 전우의 사진을 골라내주십시오.》

학문은 좀 불쾌한 생각이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무엇에 필요합니까?》

《량해하십시오. 김룡조라는 그 사람은 해방후에 인차 남조선으로 나가다보니 사진 한장 변변히 남긴것이 없습니다. 해방전에 찍은것 한장이 우연히 남아있을뿐인데 사람문제인만치 정확히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월이 많이 흘러서 잘 생각나지 않을수 있겠지만 그래도 사선을 함께 넘어온 전우의 얼굴이야 기억하시겠지요. 천천히 기억을 잘 더듬어보십시오.》

《알겠소.》

흥뛰는 심정을 겨우 누르고 사진첩을 몇장 번져보았으나 누렇게 퇴색한 사진속의 사람들은 모두 낯설었다.

(전쟁기간 석달밖에 함께 지내지 못한 사람을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그것도 해방전의 낡은 사진을 보고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무리한 일이야. 이제 크게 망신하는게 아닌가? 룡조의 사진을 찾지 못하면?!… 그러면 명조는?!…

아니다, 찾아내야 해! 이게 다 내 불찰이야. 덕천이 손을 빌려서 룡조의 모습을 꼭 남겨뒀어야 했을건데…)

이런 생각에 다달으자 문득 흉벽을 치는것이 있었다. 그림재간이 있는 김덕천이가 있음에도 정찰병들은 자기들의 모습을 남겨두려고 부디 애쓰지 않은것이다. 전투와 훈련의 여가때마다 덕천이를 못살게 굴던것은 롱담과 익살이였을뿐이였다. 그랬다. 그들모두는 자기들이 후세에 높은 평가를 받고 떠받들리우기 위해 목숨내걸고 싸운것이 아니였다.

전우들에 대한 생각을 더듬으며 세권의 사진첩을 꼼꼼히 다 번져봤지만 김룡조의 사진을 도저히 찾아낼수 없었다. 옆에서 긴장하여 들여다보던 도당책임일군도 안전부장도 저으기 실망하는 기색이였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초조한 생각에 가슴이 아프도록 조여왔다.

아무리 신중한 일이라 해도 색날은 사진들을 보고 확인하라는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다시 머리를 들었지만 도안전부장의 요구대로 김룡조의 사진을 찾아 보증해야 한다는 자각으로 한사람한사람 사진이 뚫어지도록 들여다보며 훑어나갔다.

그 순간 뇌리에 번개치는 생각이 있었다. 룡조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잊지 못할 그 달밤에 굽실굽실한 머리카락이 눈섭가까이까지 돋아있는 그를 보며 《이 친구, 끔찍이도 이마가 좁구나. 눈섭가까이 머리칼이 붙은게… 아들도 이 친구를 닮았겠지.》 하고 속으로 웃던 생각이였다.

(그렇지, 좁은 이마의 표상을 찾자!)

채깍거리는 벽시계의 초침소리는 그의 인내력을 시험하는것 같았다. 끈덕진 고심끝에 끝내 두장의 사진을 골라낼수 있었다.

두장중 한장이 더욱 마음을 끌어당겼다.

(룡조의 모색과 어딘가 비슷한것 같기도 한데…)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전날의 붙임성좋고 다기차던 전우의 얼굴모습을 찾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도안전부장이 긴장해서 물었다.

《전우의 사진이 옳습니까?》

《수십년전에 석달남짓하게 같이 싸운 사람을 해방전의 쾌쾌 낡은 사진속에서 갑자기 찾으라니 똑똑한 표상이 떠오르지 않소. 이 두장의 사진중에서도 이 사진이 그중 많이 비슷한것 같아 다시 보는중이요.》

학문은 공연히 불쾌한감이 들어서 이마살을 찌프리며 성난 사람처럼 말했다. 그러나 안전부장은 환성에 가까운 큰소리를 지르며 그의 두손을 부여잡았다.

《옳습니다! 정말 용케 찾았습니다.》

도당책임일군의 얼굴에도 기쁨의 미소가 한껏 피여났다. 한 인간의 운명이 새롭게 태여나게 되였다는것이 그를 기쁘게 한것이였다.

그 순간 학문은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면서 긴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후 만사람의 갈채속에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은정이 어린 렬사증을 수여받던 날 명조네 온 가족은 울었다. 그렇게 김룡조는 다시 태여났다.

그때로부터도 또다시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참으로 많은것이 바뀌고 변했다. 허나 바뀌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누려가는 행운이다.

김일성대원수님의 위업을 이으시여 이 나라 군대와 인민을 영예로운 승리자로 키워주신 선군령장 김정일대원수님의 성업은 백두산이 낳은 또 한분의 천출명장이신 김정은원수님에 의하여 빛나게 계승되고있으니 전승열병식의 발구름소리 높이 울리며 조선인민군 장병들이 행진했고 김일성동지의 축복을 받아안았던 승리의 광장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동지의 사열을 받으며 이 나라의 군민들은 조국수호성전의 승리자로 자랑떨치는 행운을 또다시 가슴벅차게 받아안았다.

그렇다, 이 땅우에 세월은 아무리 흐르고흘러도 행운의 세대는 바뀌지 않는다. 위대한 년대의 행운아들처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원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무비의 용맹을 떨쳐갈 영웅들이 무수히 태여날것이니 그가 어느 세대에 속하건, 어느 년대에 살건 백두령장들의 충직한 전사들은 그 모두가 위대한 년대에 영원한 행운의 세대로 사는것이다.

리학문공화국2중영웅은 오늘도 승리자들의 대오속에 어엿한 모습으로 서있다. 척척 영생하는 삶의 발구름소리를 피흘려 지킨 조국의 대지우에 높이 울리며 후대들에게 영웅의 넋은 말한다.

《이 나라에 태여난 사람들이여! 그대가 누구이든 대를 이어 누려가는 승리자의 행운이 어떻게 차례진것인지 심장으로 알아라. 김일성대원수님만을 따라왔기에 우리 세대가 안아올린 7. 27! 김정일대원수님만을 받들어왔기에 빛나게 이어져온 승리의 7. 27은 천출명장 김정은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영원한 승리자의 명절로 빛날것이어니 백두의 천출명장들을 대를 이어 모시였기에 시련많고 고난이 겹쌓인 길, 설사 피와 목숨을 바쳐야 하는 준엄한 길을 걷는다 해도 나도 그대들도 충정과 의리에 사는 조선사람들의 그 모든 세대들이 행운아의 운명을 타고난것이다. 그 진리를 심장에 새기고 산다면 그대들은 모두 영웅적인 삶의 주인이 될것이다!》

온 누리에 메아리치는 영웅의 그 웨침을 권녕신할머니는 지금 듣고있는것 같았다. 그는 손녀의 귀여운 두볼을 다독여주면서 혼자말처럼 다시 뇌이였다.

《너희들의 할아버지는 행운아야. 나도 그렇구 너희들도 그렇구 아버지도 어머니도… 또 명조 자네의 아버지도 그렇구, 수령님을 따라 위대한 년대에 살며 싸운 조선사람들은 다 같지. 설사 전장에 쓰러졌대도 말이다.》

그리고는 붉은 천으로 소중히 싸고싼 그 무엇을 품속에서 꺼내들었다.

한겹 또 한겹 펼치는 손이 가볍게 떨렸다. 그것은 리학문이 고향에 보내려고 하동에서 썼고 대동강반에서 그에게 넘겨주었던 보풀진 그 편지였다.

할머니는 모두를 둘러보며 눈을 슴벅거렸다.

《우리가 채 못 간 고향길을 김정은원수님을 모시고 너희들이 꼭 이어가야 한다. 저 부산, 남해도까지 말이다. 조국이 통일되고들랑 이 편지를 그이의 고향에 꼭 전해다오.》

거리는 조용했다. 밤이 너무도 깊은것이다. 그러나 생활의 거세찬 흐름은 순간의 정지도 없이 흐르고있다. 그 사실을 립증하듯 멀지 않게 바라보이는 창전거리에 불장식이 휘황했다.

뎅! 뎅! 인민대학습당에서 웅글진 종소리가 울려나왔다. 그것은 이 땅에 흐르는 오늘의 시간만이 아니라 통일조국에로 가는 주행시간을 알려주는듯싶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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