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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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금별의 바다
1
전선을 넘어 부대에 돌아온 정찰병들을 제일 기쁘게 해주는것은 후방에서 보내온 편지다. 일반 병종의 군인들은 그시그시 오는 편지를 받아볼수 있지만 적후에서 싸우다가 돌아오는 정찰병들만은 대체로 퍽 때늦게야 그 편지들을 받아볼수 있게 된다. 그만큼 고향소식, 후방소식은 그들에게 반가움을 배가해주는것이다.
대소한무렵의 가혹한 추위를 적후에서 겪고 오래간만에 돌아온 정찰병들은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기통수아바이가 고이 보관했다가 나눠주는 편지들을 묶음으로 받았다.
《자, 관주동무! 고향에서 편지요.》
《예, 고맙시다, 에키! 두장씩이나?!》
《그담엔 하복남동무!》
《내게두 왔어요?》
《그렇네, 체네가 보낸게지? 글씨가 고운걸 보니. 우리 복남이한테 체네들이 반할만 하지, 나인 어려두 정찰병이 아닌가.》
《챠, 이 아바이가?!》
《되겐 바빠하는군, 하하하…》
《어허허…》
지금껏 살아오면서 리학문은 그들처럼 편지를 받아본적이 없었다. 편지를 보낼 사람도 없으니 애당초 기다리게 되지부터 않았다. 그래서 언제인가 남진의 길에서 후방에서 날아온 편지를 두고 감상적인 흥분만 가지게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던적이 있다.
기뻐하는 대원들을 심상하게 바라보며 그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이번엔 어떤 명령이 떨어지겠는지? 비둘기마음 콩밭에 가있다고 그의 마음은 늘 이렇게 머나먼 적후의 전장을 더듬는것이였다.
《아, 부부장동지! 여기 계셨군요. 부부장동지한테두 편지가 있습니다.》
《편지요?!》
《예, 자요. 이거요.》
나이에 비해 동그스름한 아래턱이 반반한 기통수아바이가 선심을 쓰듯이 안겨준 편지는 꽤 두툼했다. 겉봉을 살펴보니 《권녕신》이라는 이름이 활자로 찍은듯 또박또박 새겨져있었다.
(아니, 이 동무가?!)
바라마지않던 일이였으나 정작 처녀의 편지를 받고보니 뜻밖이였다. 아무리 큰 심장도 사랑이라는 불길앞에서는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모양이다. 죽음이 목숨을 노리는 적후의 순간에도 끄떡하지 않던 심장이 쿵쿵 절구질을 해댔고 가슴은 두근두근 널뛰듯 했다.
슬그머니 곁눈질해보던 복남이가 간잔지런한 흰 이발을 드러내고 안장코를 버릇처럼 발름거리며 웃는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그는 사람들의 눈에 띄우지 않은 조용한 곳에 찾아들어가 기쁨으로 하여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었다. 아직도 씁쓸한 먹즙냄새를 풍기는듯싶게 생생한 글자들이 렬을 맞추어 그를 쳐다보고있었다. 서둘러 훑어가는 글줄들이 귀에 익은 그 처녀의 목소리로 읽히우는것 같았다.
《…리학문동무! 이름난 영웅동지를 이렇게 부르는것을 용서하세요. 우리 집에 왔던 날 너무 매몰차게 대한데 대해 아울러 심심한 량해를 바랍니다.
그날에 남겨준 동무의 인상은 오늘도 저의 이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있군요. 무뚝뚝하고 결패사납고 그러면서도 천진한듯 한 성품, 저에겐 그것이 퍽 인상적이였어요.
하지만 그때 저는 영웅남아다운 동무의 인상을 애써 부정하려고 애썼답니다. 한것은 저의 마음속에 이미 굳어진 동무에 대한 그릇된 인상때문이였어요. 저는 후퇴의 길에서 만났던 허찬이라는 군관한테서 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었어요. 알고보니 동무의 상급이더군요.
물론 그 사람은 저에게 쓰디쓴 실망을 준 한 인물에 불과하지만 그를 통해 얻어들은 동무에 대한 이야기는 삶과 희망과 인생의 가치에 대해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더군요. 그 과정에 저는 자기 하나만의 생각을 절대화하고 생활의 모든 가치를 명예욕의 충족으로 평가하는 용납할수 없는 인생〈철학〉으로 빚어진 너무도 방불한 환영을 볼수 있었답니다. 그에 대한 반증이기나 한듯 우리 집에 왔던 그날 동무 또한 저에게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켜주더군요.
모든것을, 지어 사랑까지도 자신의 주관적인 욕구에 복종시키려 하고 조국이 안겨준 영웅이라는 값비싼 칭호를 그 무슨 사랑의 지참품으로 여기는듯 한 그러한 태도는 명실공히 이름없는 한 처녀의 분격을 자아내고도 남음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한태설부참모장동지를 통해 동무의 위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왜 그런지 마음이 설레이는것을 어쩔수 없었고 한 영웅의 량심을 함부로 우롱한것만 같아서 속시원히 동무의 진심담긴 이야기를 편지로나마 들어보고싶었어요. 다행한것은 저에게 동무가 적어주고간 군사우편대호가 있는것이였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그 무슨 사랑에 대한 고백을 하자는것이 아니예요. 그저 조국에 대한 숭고한 감정을 두고 이 나라의 젊은 청춘으로서 하고싶은 진정의 이야기를 하자는것뿐이랍니다.
대답해주세요. 과연 동무는 영웅이라는 명예를 위해 전장에 목숨을 내걸고 싸웠던가요?
솔직히 말하여 영웅이 되는것을 그 누가 싫다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영웅이라는 명예가 탐나서 당과 조국을 위한 전투장에 나섰다면 그런 인생이 그 무슨 가치를 가지겠습니까.
저는 명예만을 탐내는것도 환멸스럽지만 그 명예를 자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더 환멸스럽습니다.
제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속에는 명예욕에 유혹되여 이 성스러운 전쟁에 참가한 사람이 없습니다. 저 멀고먼 남해안에서부터 저와 함께 사선을 헤치고 최고사령부를 찾아 후퇴의 길을 끝까지 걸어온 그 사람들, 그들속에 비록 영웅의 금별메달을 가슴에 달아보지 못하고 간 동지는 있어도 명예를 바라고 준엄한 시각에 목숨을 바친 동지는 없었습니다. 그들모두가 당을 위하고 조국을 위하는 그 길을 살아서 못 가면 죽어서라도 가겠다는 오직 하나의 신념이 가리키는 길, 혁명전사의 량심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왔기에 모진 시련과 고난도 꿋꿋이 이겨내며 혁명전쟁의 행로우에 빛나는 삶의 자욱자욱을 새겨올수 있은것이 아니겠습니까.
허찬이라는 그 사람은 바로 그러한 신념이 부족했기에 간고한 그 길에서 락오하여 외진 산중에 주저앉았던거예요.
그와 헤여진 후에 우리는 적후전선부대를 만났고 무사히 최고사령부에 도착하였습니다.
알아주세요. 이 나라 처녀들의 심장은 결코 명예나 재부에 불타지 않는다는것을!
명예보다 귀중하고 재부보다 신성한 그것이 바로 우리 장군님에 대한 흠모심이고 당과 조국앞에 지키는 량심이며 겨레와 인민에게 바치는 헌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생각합니다. 그 모든것을 합친 말이 바로 사랑이고 믿음이라는것을!
학문동무!
또다시 적후에로의 먼길을 떠나지나 않았는지, 부디 미거한 이 처녀의 절규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학문은 더 읽어내려갈수가 없었다. 무엇이 처녀를 이토록 분격하게 만들었는가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것이였다.
(그래, 정말 나에게 사심이라는 그런 너절한것이 있었더란 말인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것이 옹이처럼 마음속에 맺혀들었다. 도고한 그 처녀에게 비수같은 글을 적어보내지 않고서는 참아낼수 없는 울분이 서리서리 돋아올랐다. 하지만 다음순간 그는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수 있었다. 무슨 말을 적어보낸단 말인가. 인생에는 오해도 있고 곡절도 있는 법이다. 처녀에게 가슴아픈 보복의 회답을 써보낸다는것은 사나이로서 유치한짓이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감정이 용암처럼 들끓던 한순간이 지나자 가슴속에 이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차오르면서 처녀에게 무슨 말이든 적어보내고만싶은 정회와 아량이 샘솟는것이였다.
하여 그 자리에서 전투가방을 무릎우에 올려놓은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권녕신동무!
동무의 편지를 받아보았습니다. 적후에서 돌아와보니 반갑게도 동무가 보내준 편지가 기다리고있더군요.
그런데 글줄마다가 가시로 찌르는듯 이 마음을 사정없이 허비는군요. 내가 덜퉁하게 굴었다면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꼭 말하고싶은것은 우리 병사들의 순정을 부드럽고 친절하게 리해해야 한다는것입니다.
동무가 편지에 쓴것처럼 내가 아는 참된 병사들 그 누구도 훈장이나 메달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한 공명심과 허영심에 이끌려 전투장에 나선 사람은 제아무리 총을 메였다고 하더라도 병사의 자격이 없는것입니다.
우리는 인차 또다시 적후로 떠납니다. 이 길에서 내가 적탄에 쓰러질수도 있고 나 아닌 또 누가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헌헌히 웃으며 험난한 시련이 기다리는 적후로 떠나는것은 동무가 질시하는 그런 사심과 리기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정찰병들은 누구나 한없이 위대하신 우리의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한목숨 바칠 각오가 되여있는 사람들입니다.
적후에서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당과 조국은 우리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것이며 우리의 작은 위훈도 온 나라가 다 알고 온 세상이 다 알게, 후손만대가 다 알게 빛내여줄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감히 조국을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을 가지는것이며 죽더라도 웃으며 죽을수 있는것입니다.
우리 병사들, 정찰병들은 누구보다도 사랑할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조국과 인민과 그리고 동무와 같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을 우리 총잡은 전투원들은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동무를 사랑합니다.
동무의 편지를 기다리겠습니다.》
만년필이 나가는대로 속에 품고있던것을 글로 다 써놓고 다시한번 읽어보니 마음이 별스럽게 설레이는것이였다.
(이런게 련애편지라는겐가?! 이건 련애가 아니라 사상투쟁이로군.)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글재간에 탄복하게 되는것이였다.
(아마 사람이 격해지면 글도 잘되는가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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