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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장의 행운아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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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758회 작성일 20-09-1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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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용감성은 타고나는가

3

 

부대에 도착한 다음날 오후 새로운 임무가 하달되였다. 군단참모부에서는 부장과 리학문을 불러 적들의 새로운 기도와 조성된 전선정황을 알려주었다.

참모장이 말했다.

《길게 말하지 않겠소. 지금 적들이 전선동부에 주타격방향을 두고있는 조건에서 최고사령부의 방침에 따른 우리 군단의 작전적의도는 전선동부에 쐐기를 치고 신속히 진출하여 적의 익측과 후방을 타격하는것이요. 최사정찰에 의하면 지금 적들은 전선에서 멀지 않은 원주에 새로운 비행대들을 은밀히 끌어들여 우리의 중요지점들에 대한 집중적인 공중타격을 감행할 음모를 꾸민다는것이요. 군단정찰대의 임무는 바로 이 비행대들을 찾아내여 말끔히 소멸함으로써 아군에 대한 적들의 항공집중타격을 파탄시키는것이요. 알만 하오?》

《알만 합니다.》

정찰대의 침투경로에 대해서는 참모장이 구체적으로 찍어주었다.

《적들은 38°선이남으로 패주하여 방어로 이전했소. 동무들은 야밤을 리용해서 양구서남쪽 괴뢰2군단과 3군단의 린접점으로 뚫고 들어가시오. 그 길이 안전할거요. 그리고 참고적으로 말해줄것은 적들이 제1방어선에는 괴뢰군을 배치하고 제2방어선인 원주지구에는 미군을 많이 배치했다는것이요. 이런 조건에서 반드시 통역원을 정찰대에 인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오. 적임자가 준비되여있소?》

《예, 있습니다.》

부장이 대답했다. 통역원에 대해서는 파악이 없던 리학문은 다행한 생각이 들었다.

참모장이 그루를 박듯 덧붙였다.

《군단참모부는 동무들이 맡겨진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것을 기대하고있소. 물론 정찰대가 갓 조직되였고 훈련도 충분치 못하지만 동무들이야 잘 알지 않소, 전쟁에선 구실이 통하지 않는다는걸. 그럼 믿겠소.》

또다시 적후에로!

학문은 심장의 피가 후두둑 뛰는것을 느꼈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서 정찰척후대로 적들속을 종횡무진했으나 공격전에 나섰을 때와는 어쩐지 감정이 달랐다. 이제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위해서가 아니라 반공격을 위해 적후로 들어가게 되는것이다. 정찰병들속에 신입대원들이 많은데다가 훈련을 충분히 하지 못한때문에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넘치는 희열과 기쁨은 이루 헤아릴수가 없는것이였다.

부장은 흥분한듯 돌아오는 길에 이런 말을 꺼냈다.

《우선 데리고 갈 인원들을 잘 선정해야겠소. 참, 잊지 마오. 참모장동지도 강조했듯이 미군놈들의 행동구역에 들어가야 하는것만큼 통역원이 꼭 필요할게요. 적임자가 한동무 있는데 한번 써보오.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학생투쟁에 참가한 동무인데 입대한지는 얼마 안되지만 재능이 있다오. 이름은 한중일이라고 하오.》

그 말에 리학문은 깜짝 놀랐다.

《한중일동무 말입니까? 그 동무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습니까? 헌데 그가 적후행동을 꽤 해낼수 있다고 봅니까?》

《왜 그러오? 믿음이 안 가오?》

부장은 저으기 놀라는 표정이였다.

《예, 기질적으로 봐선… 다른 동무를 택할수 없을가요? 1계단작전때 하동전투에서도 영어를 아는 통역원이 없어서 애를 먹긴 했는데… 정찰병의 기질을 갖추고서도 미국놈말을 할줄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그것은 함박눈 내리던 날 보초소에서 겪었던 일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다.

부장은 서운한 기색을 지었다.

《유감이지만 그런 동무는 없소. 어쩌겠소. 부부장동무가 휴양소에 가있는 기간에 그 동무를 자주 만나보았는데 각오가 참 좋더군. 한번 믿고 써보오. 그리고 적후활동을 하면서 단련시킬수도 있는게 아니겠소.》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신입대원이 많은데다가 받은 임무가 록록치 않은것만큼 잘못하면 랑패를 당할수 있겠다는 우려심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문득 헤여진 전우들이 그리워졌다. 라동수중대장과 김기전특무장, 김덕천이… 그들은 사단정찰중대에 남았다. 그들모두가 함께 왔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것인가.

헤여질 때 누구나 다 그랬지만 라동수와 김기전은 학문의 손을 부여잡고 놓을줄 몰라했었다.

《그러지들 말라구. 전승의 날 만나게 될텐데 뭘.》

이렇게 엉너리를 쳤으나 그자신의 두눈도 벌겋게 상기되여있었다. 눈굽이 질벅해가지고도 그들은 모두 함께 큰소리로 웃었다.

(이제는 그 어떤 타발도 필요없다. 실전속에서 단련되고 단련하면서 전투를 치르어야 한다.)

문득 학문에게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뵈옵던 날에 받아안은 귀중한 말씀이 되새겨졌다.

《정찰병들은 관찰력과 판단력도 빠르고 정확해야 합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불의적인 정황속에서도 덤비지 않고 림기응변하여 행동할줄 아는 정찰병들을 더 많이 키워내야 합니다.》

(그렇다, 싸움속에서 단련시켜 쇠소리나는 정찰병들로 키워내는것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나에게 직접 주신 명령이나 같다. 어쨌든 좋아, 해내자!)

박꽃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저녁, 정찰대는 현리계선으로 진출했다. 차용대와 복남이를 내놓고는 이름이나 겨우 익힌 사람들이였다. 물론 정찰병다운 배짱군들을 고르느라 여러차례의 심사를 거치기는 했어도 싸움마당에서 구실을 꽤 해낼수 있겠는지는 두고보아야 했다.

벌써 내려쌓인 눈이 발목을 넘었다. 소나무들이 무거운 폭설을 들쓰고 가지를 푹 수그렸다. 백석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와 이어진 무명고지에 자리잡은 포병감시소도 눈속에 푹 묻혀있었다.

《저쪽은 괴뢰2군단이고 이쪽은 괴뢰3군단놈들이 차지하고있는데 요즘은 어찌된 셈판인지 괴뢰7보사놈들이 그 짬에 끼여들었습니다. 괴이한 일이지요. 아직까진 잠잠했댔는데…》

군단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는 사단정찰과장이 감시소창구에 붙어서서 팔들어 가리키며 설명했다.

《괴뢰7보사면 제2제대로 있던 놈들이 아니요?》

《옳습니다. 그런 놈들이 무슨 개꿈을 꿨는지 기여나와 대가리를 디밀지 않습니까.》

《음.》

리해할수 없는 의문이 새록새록 머리를 쳐들었다. 왜 갑자기 적정이 변했는가? 정찰병들의 움직임은 절대비밀로 된다. 그 비밀의 대가는 목숨으로 지불되는것이다. 만약 적들에게 정찰대의 기도가 알려지는 경우 정찰임무를 수행할수 없게 되는것은 물론 군단의 작전이 큰 타격을 받게 될것이였다.

학문은 군사위원자리를 차지하고있는 리승엽의 책동으로 정찰대의 진출기도가 사전에 적들에게 알려진 사실을 알수 없었다. 하여 적들은 괴뢰3보병사단으로 방어를 강화하면서 제2제대로 있던 괴뢰7보병사단을 정찰대의 침투방향에 급급히 배비했던것이였다.

그런 내용은 알수 없었어도 예정대로 침투로정을 밟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감시소를 옮겨봅시다.》

그의 단호한 결심에 사단정찰과장이 눈시울을 치켜올렸다.

《어디로 말입니까?》

《저기 동쪽 가칠봉쪽으로. 그곳에 괴뢰1군단과 2군단의 린접점이 있지? 린제쪽 말이요. 방어밀도가 저렇게 조밀한데 어떻게 넘어가겠소. 섶지고 불에 뛰여들기지.》

학문은 적들을 정면에서 경계하면서 괴뢰1군단과 2군단의 린접점인 린제방향으로 행동로를 바꾸었다. 오래지 않은 감시를 통하여 놈들의 방어선에 병력증강이 없다는것을 확인하는 즉시 어둠을 타고 출발하였다. 사단은 물론 군단에서도 정찰대의 침투로정이 달라진것을 알지 못했다.

예견했던대로 괴뢰1군단과 2군단의 린접은 거의 공백이나 다름없었다. 정찰병들은 백포를 뒤집어쓰고 배밀이로 전선을 넘었다.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릉선을 따라가며 철조망을 끊고 지뢰원을 돌파할 때까지 적들의 진지쪽은 잠잠했다. 성공이였다. 날이 밝기 전에 린제를 벗어난 정찰대는 강행군으로 원주까지 내처 행군할 예정이였다.

전선을 무사히 넘었다는 안도감이 들자 후유― 한숨이 새여나왔다. 신입병사들이 용케도 실수하는 일이 없어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다. 철조망에 매달린 깡통을 건드리거나 지뢰를 밟거나 오발사고라도 냈다면 만회할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수 있었을것이다.

허나 그것은 때이른 만족이였다. 태기산근방에 이르렀을때 《앗!》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소동이 벌어졌다.

《뭐요?》

앞서가며 주의를 주었음에도 한중일이가 발을 헛디디여 눈구뎅이속에 빠져들어간것이였다. 정찰활동에서 처음 겪는 일이여서 학문은 혀를 털었다.

(정찰병이라는게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다니?!)

전선구역은 벗어났지만 위험은 가셔지지 않았다. 아닐세라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건너편 산봉우리에서 《땅 땅 뚜루룩…》 적들이 총을 쏘아댔다. 거리가 멀기때문에 개의할것은 없으나 정찰대의 침투를 눈치챌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된것이 언짢았다.

사단정찰시절에 데리고 다니던 정찰병들과 대비해보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들은 칼벼랑도 단숨에 오르내리고 깊은 계곡도 쉬이 날아넘군 했었다. 눈무지에 빠져 제 몸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이런 생둥이들이 언제면 그들만큼 성장할수 있겠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안창항이나 김동호, 김덕천이들 같으면 하루밤에 이백리씩이나 축내군 했지만 이들과는 백리길도 어려울것 같았다.

빨리 눈무지속에 파묻힌 한중일이를 구원해야 했다. 학문은 전투가방을 벗어내치고 눈속에 뛰여들었다. 자맥질하듯이 한참 생눈을 파헤치며 들어가서야 그를 찾아낼수 있었다.

《내 몸을 딛구 올라서라구, 어서!》

했으나 그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어푸어푸하며 그냥 헤덤비기만 했다.

《이런 풋내기라구야. 정신을 차리구 자, 날 꽉 붙잡소!》

크게 소리쳐서야 허우적거리던 두팔로 학문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학문은 팔과 다리로 눈을 꾹꾹 다지며 솟구쳐올랐다. 적이 없는 구역에서 사달이 났으니 말이지 접전이 한창일 때 이런 일이 생겼더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허거픈 탄식이 나왔다.

《출발준비!》

대렬은 다시 흘러갔다. 밤이 깊어지면서 눈보라가 일었다. 눈보라는 우우 소리치면서 길을 메웠다. 모두 지쳐버려서 더 가낼것 같지 못했다. 어디서든 숙영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산속에 불을 피우면 주변의 적들이 대뜸 몰려들것이다. 그러니 불을 피울수 없는데… 그렇다고 생눈속에 재울수도 없었다. 단련이 부족한 대원들이 동상을 입을가봐 걱정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이 지대에도 적들의 경계가 심할것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적들의 눈을 피해 외진 곳을 찾아다니는것보다 놈들의 눈에 잘 띄우는 곳에서 대담하게 숙영하는편이 더 유리하다.

학문은 산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부부장동지, 어데 가자고 그럽니까?》

무선기를 등에 진 차용대가 의아해서 물었다.

《안전한 숙영지를 찾자는거요. 아직은 말내지 말라우. 동무야 날 잘 알지 않나.》

모두가 묵묵히 따라왔다.

드디여 차길에 내려섰다. 길옆에는 눈덮인 들판이였다. 도로옆의 산기슭에 잠풍한 홈타기가 있었다. 그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간 학문은 생눈을 발로 쳐내며 말했다.

《여기서 하루밤 쉬고가자구.》

대원들은 모두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일없겠습니까?》

한중일이가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일없지 않구. 자, 어서 모닥불을 큼직하게 피워놓고 푹 쉬기요.》

정찰병들은 포탄에 맞아 쓰러진 나무들을 끌어다가 불을 지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밤하늘을 태울듯 널름거렸다. 대원들은 언손을 내들고 녹이며 좋아들 했다.

《서성거리지 말고 빙 둘러앉으라구. 놈들은 이렇게 큰 모닥불을 여러개씩이나 피워놓고 셈평좋게 앉아있는 우리가 인민군정찰병들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게란 말야, 하하…》

앞뒤에서 모닥불이 기세좋게 타오르자 뒤잔등까지 뜨뜻해왔다.

《히야― 적후란게 이렇구만. 긴장할것두 없고 모든게 그저 그렇구만.》

한중일이가 하는 말에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학문은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의미있게 한마디 덧붙였다.

《배짱있는 정찰병에겐 역경이란 없는거요. 자기가 대담하다고 생각하는 동무들은 모두들 자라구.》

보초병도 따로 없이 모두들 모닥불가에 누워서 셈평좋게 잠들었다.

학문은 잠들지 못하고 모닥불을 돌보며 주변을 경계했다. 적후에 들어와 정찰병들에게 대담성이란 어떤것인가를 실지로 보여주게 된것이 기뻤다.

《부부장동지, 좀 쉬지 않습니까? 경계근무는 내가 서겠습니다.》

차용대가 일어나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모닥불을 들여다보던 학문은 느슨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몹시 어설픈것이였다.

《잠이 오지 않는구만. 떠나간 동호랑, 룡조랑 전우들 생각이 나고… 솔직히 말하면 이제 겪을 싸움에 대한 걱정도 많고…》

튀여나 바지에 달라붙은 불찌를 탁탁 털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던 용대가 콱 잠긴 목소리로 응수했다.

《그럴테지요. 부부장동지, 하지만 모든 일이 잘될겁니다. 부부장동지가 늘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믿음만 있으면 된다구. 믿음을 알면 강자가 되고 믿음만 저버리지 않으면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내는 법이지요. 한중일동무도 이제 훌륭한 정찰병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다른 모든 동무들도 믿음의 의미를 알게 되면 결코 비겁해지지 않을겁니다. 부부장동지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배려로 휴양까지 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울었습니다. 그리곤 이 전쟁은 이미 이긴 전쟁이라고 말들 하더군요.》

《용대, 동무가 정말 좋은 말을 해주누만. 옳소! 믿겠소. 믿읍시다. 이 동무들모두가 용감해지고 대담해지리라는걸 내 굳게 믿겠소. 허허…》

학문은 불쑥 젖어드는 눈을 슴벅거리며 용대의 미더운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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