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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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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2,366회 작성일 20-11-17 09:51

본문

  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2009-05-04-U01.jpg

 

                                박    윤

 

 

( 제 2 회 )

 

 

제 1 장

 

2

 

그는 자주 행복에 대한 공상에 잠겼다. 행복에 대한 사색, 행복에 대한 추구, 행복을 위한 실천ㅡ 그것은 어느때나 그의 심장을 틀어잡고 놓을줄 몰랐다.

성격이 나약하고 감상적인 사람은 흔히 그것을 추억에서 찾으려하고 진취적이며 강의한 사람은 미래에서 찾으려고한다.

박신철소좌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후자에 속하는 젊은이였다.

그는 학창시절을 마치고 군복을 입은 첫날부터 수염턱이 꺼칠해진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범하면서도 줄기찬 군사복무의 긴 나날에 자기 생활이 완성되였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으며 늘 출발선에 서있는 기분이였다.

그는 자기를 명령집행에 충실하고 생활에 든든히 발을 붙인 실무적인 인간으로 자처했으나 성격의 깊은 곳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감성적인 인간이였고 다분히 공상적인 기질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서른이 넘어선 오늘까지 유감스럽게도 아직 독신생활을 끝 마치지 못하고있었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개인적인 리상이 높아서도 아니였다.

그에게 있어서 가정이란 뽀얀 안개에 휩싸인 먼 지평선 같은것이였고 동시에 그것은 다정하고 참한 녀성의 온화한 모습이였다. 사나이다운 억센 투지와 완강성을 키워가던 해군정찰부대의 간고하면서도 랑만적인 병사시절이나 그 이후 품들여보낸 군사대학의 나날 그리고 인민무력부의 중요부문에서 참모로 일하고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슨 영문에서인지 어느 한 처녀도 굳게 닫긴 그의 가슴속 철문을 열지 못했으며 지어 그 문을 두드리는것조차 저어하였다. 그가 은근하게 관심을 가지고 대했던 몇명의 사교성있고 눈매가 정찬 녀성들이 그 철문을 조심스레 두드린적은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 두드리는 소리가 어찌나 약하고 자신심이 없었던지 그것은 이 심중하고 나이 지숙한 청년의 두터운 심장의 벽까지 끝내 가닿지 못하고말았다.

그가 그런 조심스러운 손길들에 희망과 힘을 주었던가? 그 아련한 눈길들이 아픔으로, 열정과 헌신의 별빛으로 아름답고 눈물겹게 빛나도록 아량과 충격을 주었던가?

박신철은 사업에서는 성실한 군인다운 큰 걸음을 내짚어 주위사람들을 놀래웠지만 개인생활에서는 끝내 뭍과 멀리 떨어진 고립무원한 섬ㅡ외토리가 되고말았다.

 그런데 별안간 그것이, 흐르고 피고 불어오는 봄 같은것이, 짜릿한 환희와 오싹하는 전률같은것이 끝내 찾아오고야말았다.

지난해 여름, 박신철은 해상훈련지도에 대한 출장임무를 거의 끝마칠무렵 직계상관인 최남호부국장으로부터 귀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까지 평양에 돌아와 국에서 진행되는 훈련판정을 위한 협의회에 참가하라는것이였다.

박신철이 급히 군부대사령부를 떠나 역에 도착한것은 뜨거운 해가 마지막독을 쓰고있는 때였다. 그는 한발 먼저 역에 나와 차표를 준비해놓고 기다리는 관하부대 일군의 안내를 받아 역건물로 들어섰다.

박신철은 나들문앞에서 부대일군들과 헤여진후 스적스적 역홈으로 걸어갔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옅은 구름이 낀 회백색의 무표정한 하늘이 다소 답답한감을 주며 눈에 안겨들었다. 대지의 열기가 뿜어나와 하늘도 온통 더위에 화끈화끈 달아올랐고 바람기조차 없었다.

역홈은 사람들로 붐볐다.

박신철은 군인칸이 멎게 될 맨 앞쪽으로 나가 모자를 벗어들었다. 머리칼이 온통 땀에 젖어버렸다. 그는 남들과는 달리 몸이 달면 등이 아니라 머리에서부터 땀발이 솟는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우선 뒤통수와 목덜미의 땀부터 씻었다. 문득 박신철의 눈길이 나들문쪽에 멎어버렸다.

한 녀성군인이 그 문을 빠져나와 역홈쪽을 두리번거리며 총총히 걸어왔다. 그 독특한 걸음새가 류달라 박신철은 눈길을 뗄수 없었다.

걸음을 내짚을 때마다 날씬하고 가는 허리며 탄력있는 상체가 미묘한 률동을 띄여 몸전체에서 상쾌하고 도고한 기운이 풍겨왔다. 녀성군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급히 찾는듯싶더니 곧장 앞쪽으로 걸어왔다. 창황중에도 그 류다르고 세련된 걸음걸이는 조금도 헝클어지지 않는다.

박신철은 저도모르게 한숨을 내쉬고나서 군복주머니에서 또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그 순간 령장에 배우표식을 단 그 녀성군인이 얼굴을 돌려 박신철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는 가슴이 섬찍해지는감을 느꼈다. 그러자 처녀가 그에게로 급히 다가와 깍듯이 경례하였다.

《저, 소좌동지, 미안하지만 절 좀 도와주십시오.…》

예상외로 좀 낮으면서도 맑고 부드러운 빠른 말씨를 대하게 되자 박신철은 저으기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당황하여 손수건을 움켜쥐였다.

《무슨 일입니까? 배우동무.》

박신철은 애써 자신을 자제하며 무뚝뚝한 얼굴로 그 녀자를 바라보았다. 상대방도 그 순간 놀란듯 면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손에 들고있던 흰 손수건으로 이마의 보송보송한 땀을 찍어냈다.

《좀 도와주십시오. 얼마전에 제대명령을 받았는데 전 오늘중으로 평양에 올라가야 합니다. 래일 아침 제가 저… 아니, 새 일터에 임명받게 되는데… 벌써 차표는 다 나가고…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

박신철은 그제서야 다소 안정된 기분으로 그 녀자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동그스름한 흰 얼굴이 땀에 차분히 젖어 발그레해졌는데 약간 두툼해보이는, 귀가 우로 들린 입술이며 검은 동자가 큰 시원한 눈가에 근심이 가득 실려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렇게 탄성을 지를만큼 아름다운 녀성은 아니였다. 하지만 오똑한 코언저리주변에 다문다문 박힌 연한 주근깨며 어딘가 자그마한 얼굴전체를 조화시키는 고운 선이 흐르고있어 은근한 매력을 풍기였다.

《소좌동지, 차표를 사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그래… 어디에 임명 받습니까?》

《민족예술단입니다. 전 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한후 이곳 군부대예술선전대에서 복무하고있었습니다.》

멀리서 급행렬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처녀는 흠칫하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박신철은 자기가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녀자는 왜 하필이면 하많은 사람들을 제쳐놓고 유독 자기를 겨냥하고 달려드는것일가? 자부심보다도 괘씸한감이 앞섰다.

《이거 참, 피차 야단이구만. 나도 역시 급한 걸음입니다.…》

박신철은 자기의 목소리가 어쩐지 구차스럽게 느껴져 더욱 화가 났다. 그의 머리로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처녀의 눈가에 안타까움이 실렸다.

《꼭 좀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방도가 없을가요? 전… 사실 믿고 부탁하는데…》

말뜻이 아리숭했으나 박신철은 스쳐버렸다. 그는 꼿꼿한 자세를 취하며 다소 랭정하게 말했다. 

《유감스럽지만 달리 도와줄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남의 일처럼…》

처녀는 눈물이 글썽해서 그를 마주 보더니 락심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 녀자의 서운해하는 마지막말이 박신철의 마음을 비틀었다.

남의 일이라니? 그렇다면 내가 저의 지휘관이나 정녕 《친오빠》라도 된단 말인가?

박신철은 또다시 가슴속에 영문 모를 노여움과 일종의 자존심이 차오르는것을 느꼈다.

그는 다소 엄격한 어조로 내쏘았다.

《배우동무!》

《?!…》

그 녀자가 멈춰섰다.

돌아서지는 않았다. 박신철은 무거운 걸음으로 그 녀자의 곁에 다가갔다. 그는 군복저고리웃주머니에서 차표를 꺼내들었다.

《자, 받으시오!》

그 녀자가 홱 얼굴을 돌렸다. 박신철은 흠칫 놀랐다. 그 녀자의 부드러워진 눈가에 맺힌 물기가 해빛에 반짝하고빛났다.

도툼한 입술이 벌려지고 눈처럼 하얀 이새가 드러났다.

《아니 그럼 거기서는?》

《내 걱정은 마십시오. 해군정찰출신이니까요. 훌륭한 배우가 되길 바랍니다.》

급행렬차가 구내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박신철은 처녀의 손에 차표를 쥐여주었다. 그러자 처녀는 얼굴을 확 붉혔다.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전 최단아라고 부릅니다.》

활달하고 순진한 녀자라는 생각이 가슴을 쳤다.

박신철은 급행렬차가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승강대에서 처녀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검갈색머리칼이 군모밑에서 가볍게 흩날렸다.

렬차가 떠나버리자 역홈은 텅 비여버렸다. 폭양에 떨어진 《여름락엽》만이 딩굴뿐이다. 박신철은 또다시 《외진 섬》에 떨어진 기분이였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나서 군복매무시를 바로 했다. 래일 아침까지 렬차는 없다. 홍안의 구분대정찰병시절처럼 또다시 먼 행군로가 그의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하지만 군부대에서 평양교외의 상원세멘트공장까지 가는 군용화물차가 저녁에 출발하도록 예견되여있는것을 아는만큼 마음이 놓였다.

이튿날 아침, 박신철은 회의가 시작될무렵 부국장방에 들어설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뒤자리, 부장인 김한경대좌곁에 앉은 그는 최남호부국장의 안색부터 살폈다. 얼굴은 무표정했고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관골이 약간 두드러지고 량볼에 깊은 주름들이 패워 엄엄해보이는 그의 네모진 철빛얼굴표정만 보고서는 그 마음속을 알수 없다. 이따금 최남호는 총이 세고 숱이 많은 앞머리칼이 이마로 흘러내릴 때마다 습관처럼 고개를 뒤로 제끼며 군관들을 바라볼뿐이다.

박신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전연부대에서 소환된지 얼마 안되는 그는 아직 자기 상관의 엄숙한 기질에 습관될수 없었고 어지간히 마음을 조이지 않을수 없었다.

최남호부국장은 이를테면 말이 적은 사람이였다. 그에게서는 불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들어볼수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은 다 군사과업수행에 필요한것들이였다. 짧고 명백하고 언제나 명령조에 가까운것들이였다. 그는 부하에게서 결함이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엄격히 지적하군 했다. 회의나 총화모임에서 무게를 더하여 비판하기 위해 뒤로 미루는 법이란 없었다. 그는 뒤가 없었다. 아무리 엄중한 결함이라도 제때에 시정되면 그것을 때없이 상기하여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는 대범한 사람이였다. 어쩐지 이날은 상관의 그 대범성에 기대를 걸수 있을것 같았다. 그만큼 박신철은 급행렬차를 떠나보낸후 밤새 몹시 어렵게 강행군길을 돌파했던것이다.

마지막구간인 상원읍에서부터는 차가 없어 거의 달리다싶이 했었다. 목에서 병사시절처럼 쇠비린내가 역하게 치밀 때까지 지칠줄 모르고 달렸다.

삽시에 온몸에서 맥이 빠져달아났다. 그는 그저 주저앉고싶었다.

처음부터 꼬인 길은 마감까지 비틀리기마련인 모양이다.

수도의 한복판에서 소좌의 령장을 단 군관이 달린다는것은 사람들의 눈길을 쏠리게 하는 류다른 행동이다. 하지만 젊은 군관은 달렸다.

협의회가 끝나자 박신철은 최남호의 기색을 살피면서 자리를 뜨려고 생각했다.

군관들이 방을 거의 빠져나갈무렵 다시 보니 부국장은 펼쳐놓았던 사업수첩에 그냥 눈길을 박고있었다. 박신철은 안도의 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최남호의 석쉼한 목소리가 그의 등을 때렸다.

《신철동문 왜 한마디도 없었소?…》

박신철은 차렷자세로 홱 돌아섰다. 그는 당황하여 먼저 자기의 군복부터 내려다보았다. 마치 물속에서 나온듯 온통 땀에 푹 젖어버린 볼품없는 군복이였다. 최남호는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와 그의 앞에 멎어섰다.

호되고 단호한,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엄격한 추궁을 기다리며 박신철은 눈길을 들수 없었다.

뜻밖에도 최남호는 가벼운 숨을 내쉬였다. 그 숨소리는 포착하기 힘든것이였으나 박신철의 심중에 와닿았다. 박신철은 놀라며 눈길을 들었다. 그 순간 최남호는 돌아서서 자기 책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침실에 돌아가서 쉬오. 그리고 군복도 다려입고… 동문 군인이라는걸 한시도 잊지 마시오.》

그날 박신철은 침실에서 온밤 번열에 시달리며 잠들지 못했다. 오래간만에 갑자기 많은 땀을 흘려서인지 아니면 정신적인 긴장이 풀려서인지 열이 오르고 가슴이 가빠왔다. 그는 악몽에 시달렸다. 새벽녘에야 잠들었다.… 그는 회백산벼랑밑의 깊은 골짜기, 그 낯익은 고향의 이깔숲에 서있었다. 소년은 자작나무며 가둑나무를 한아름 되게 모아 묶은후 쇠줄로 타래를 지었다. 타래에 고삐를 걸고난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물기 오른 이깔숲 잔가지사이로 감색하늘이 올려다보인다. 수리개 한마리가 그 넓지 않은 공간에 나타나 원을 그리더니 산비둘기둥지가 있는 산벼랑우로 날아간다. 수리개가 사라진 희끗희끗한 산벼랑을 바라보던 그는 소스라쳐 놀라 들고있던 바줄을 내던졌다. 눈같이 흰 세타에 파란치마를 입은 소녀가 벼랑턱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소녀는 분명 벼랑끝에 무득히 피여있는 산국화를 꺾으려는 모양이다.

《여! 내려오라! 죽자구 그래?!》

그는 목청껏 소리지르나 웬 일인지 말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이깔숲을 빠져나와 산벼랑으로 달렸다.

그 순간 소녀가 얼굴을 돌렸다. 웃입술이 약간 우로 들려 다소 두툼해보이는 입술, 주근깨가 다문다문한 희고 동그스름한 얼굴에서 오목눈이 반짝하는 순간 박신철은 그 자리에 우뚝 굳어졌다. 뜻밖에도 소녀는 최단아였다. 최단아는 벼랑턱에 올라서서 산국화 한송이를 꺾어들더니 활짝 웃는다. 그는 놀라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녀자는 한또래소녀가 아니라 눈부리 서늘해지는 싱싱한 처녀였던것이다.

그 별같은 눈동자, 그 이상한 률동적인 걸음걸이, 멀리서는 안보이고 가까이에서만 눈에 띄는 그 다문다문한 연한 주근깨…

그것은 꿈속에서만이 아니라 이날부터 자나깨나 박신철을 괴롭히며 따라다녔다. 그가 공상하던 녀성의 모습이 현실로 나타난것인가?

어느날 그는 전승광장을 지나가다가 문득 그 녀자를 보았다. 인파속에 섞여 걸어오는 처녀였으나 그는 마치 인간이 그 어디에 서있어도 직감적으로 해의 위치를 가늠하듯 그 녀자의 존재를 느꼈다. 그것은 그 이상한 률동적인 걸음새때문만도 아니였다. 그 고운 선이 흐르는, 연한 주근깨가 박인 희고 동그스름한 얼굴때문도 아니였다. 눈이 아니라 심장이, 지그시 아파나는 마음속의 눈이 그 녀자를 알아본것이다.

처녀는 길 건너편에서 비파거리쪽으로 걸어가고있었다. 처녀가 건늠길에 멈춰서서 주위를 살피는순간 박신철은 그제야 자신이 저도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섰음을 발견했다. 그는 처녀의 눈길이 탐조등마냥 자기의 얼굴께를 스치는 순간 급히 돌아서서 황황히 걸음을 옮겼다.

(이게 무슨 꼴이람! 여 해군정찰병! 심장이 그렇게 작아가지고도 사내대장부라고?…)

그는 은근한 호기심에 이끌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한순간 박신철은 흠칫하고 놀랐다. 그 녀자가 건늠길입구에 오도카니서서 자기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있었던것이다. 박신철은 못볼것을 본 사람처럼 급히 돌아서서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땀배인 자기의 군복잔등에 그 녀자의 눈길이 가을비처럼 후둑후둑 떨어지는것처럼 느껴졌다.

그후 몇번 바로 그 전승광장에서 멀찌감치 그 녀자를 띄여보군 했으나 박신철은 애써 눈길을 피해버렸다. 마음은 밀물마냥 그 녀자에게로 사품쳐 흘러갔으나 몸은 천리로 만리로 멀어지고싶은것이였다.

초겨울의 어느날 아침, 침실을 나서서 급한 걸음으로 전승광장을 지나 지하도로를 빠져나오던 박신철은 그 자리에 우뚝 굳어지고말았다.

허리가 날씬한 노란 외투차림의 한 녀성이 그의 앞에 서있었다.

《소좌동지, 안녕하십니까?》

《?!…》

최단아는 검은 동자가 큰 약간 오목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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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최단아는 검은 동자가 큰 약간 오목한 눈을 깜박이며 박신철을 내려다보았다.

박신철은 그냥 계단아래 멈춰선채 그 녀자를 올려다보았다. 문득 눈이 부신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제가 몹시 밉던 모양이죠? 그렇게 늘 피해다니시는걸 보면… 하지만 난 며칠전부터 이 길목을 지키고있답니다.》

《아니, 무슨 일로 나를?…》

박신철은 계단우에 올라섰다. 마주서니 최단아의 키가 거의 자기와 비슷하다는것이 알렸다.

《호호, 사실은 신철동지를 만나 단단히 인사하려댔어요. 그런데 마주치기만하면 달아나버리더군요.》

《허허, 참…》

최단아는 들고있던 가방을 열었다. 길다란 구경표 하나를 꺼냈다.

입술이 열리고 하얀 이새가 드러나자 고운 선이 흐르는 얼굴의 연한 주근깨가 한순간 가뭇없이 사라져버린다.

《자, 받으세요. 토요일 저녁 우리 극장에서 음악무용종합공연이 있답니다.》

박신철은 표를 받으며 처음으로 시무룩이 웃었다.

《그러니 차표대신이군요.》

《내가 얼마나 춤을 못추는지 신철동지의 검열을 받고싶더군요.》

최단아는 티없는 웃음을 활짝 지으며 스스럼없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박신철은 웬일인지 오래전부터 알고있는 허물없던 다정한 사람을 만난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받으며 그 녀자와 나란히 서서 걸었다.

《그런데 단아동문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소?》

《그건, 절대비밀입니다.… 나도 군인의 딸이니까요.》

《그럼 아버지가?!》

《평양… 주변에서 지휘관을… 아이, 더 묻지 마세요. 호호호.》

최단아는 눈을 쪼프리며 깔깔 웃더니 건늠길쪽으로 뛰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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