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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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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187회 작성일 20-11-0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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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 경림구두방 강로인의 환갑을 차려주신다니 너무도 뜻밖이여서 김광성은 얼른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참말로 놀라운 일이였다. 시당비서의 심정이 이러한데 로인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문혁의 병문안을 해주셨다는 말을 전해듣고 온밤 운 늙은이인데…

김광성은 자기가 환갑상을 받은것이상으로 가슴속이 울렁거리였다.

그는 한참후에야 자기 사무실에 오래 앉아있을 사이가 없다는것을 깨닫고 움쭉 일어섰다. 우선 강로인이 집으로 갔는지 그것부터 알고싶어 헛걸음삼아 구두수리방에 부랴부랴 들려보았다. 하나에서 열까지 김정일동지께서 세심히 보살펴주시는 환갑에 구태여 자기가 뛰여들어 안달복달할 일이란 없었지만 어쨌든 대사는 대사였다.

애당초 환갑을 쇠자고 작정하지 않았던 로인인데 리발이랑 했겠는지… 그런 일쯤은 어련히 아들 문혁이가 알아서 빈틈없이 할것이다. 그러나 김광성은 이내 머리를 저었다.

문혁은 요즘도 주체사상탑건설장의 대형분수 지하펌프장설계때문에 현장에서 꼬박 밤을 샌다. 벌써 한달가까이 바깥출입없이 때식을 날라다 먹으며 일하는 젊은이였다. 문혁에게는 일체 부담을 주지 말고 아버지가 환갑상을 받을 때에나 나타나서 술을 부으랄수밖에 없다. 그런데 강로인한테로 찾아가니 뜻밖에도 문혁이가 구두수리방에 와있었다. 아무렴 오늘같이 경사스런 날에 아들이 설계실에 붙박혀있자고 할텐가.

어찌된 영문인지 이날도 강로인은 여느때처럼 번들거리는 고무앞치마를 두르고 앉아서 신발수리에 여념이 없었다. 이 순박하고 텁텁하게 살아오는데 습관된 늙은이가 아직도 자기에게 차례진 혜택을 믿지 못하는것이나 아닌가? 문혁이와 옆의 녀인들이 환갑날에 구두수리가 다 뭔가고 속상한 소리를 해도 귀먹은듯이 앉았던 로인은 김광성을 알아보고서야 일손을 멈추었다.

《로인님, 큰 대사를 앞두고 이게 웬일입니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로인님이 환갑을 즐겁게 쇠였다는 보고를 받아야 기뻐하실텐데요. 어서 일감을 거두십시오. 오늘에야 여봐란듯이 창광원에 가서 리발도 하시고 환갑상도 받으셔야지요.》

김광성은 로인에게 따뜻이 권고했다.

오랜 세월 구두수리일로 마디진 손에 돋보기를 벗어쥔 로인은 말없이 앉았다가 조용히 눈굽을 훔치였다.

《시당비서동지, 난 작년 가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이 자그마한 구두수리방에 찾아오셨던 일이 아직두 눈에 선하우다. 그날 그이께서 유람선에까지 태워주신후로 시내에 나서면 모두가 이 보잘것없는 늙은이를 쳐다보는것 같더군요. 난생처음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요. 내가 팔자에 없는 복을 받았지요. 그게 바루 엊그제 있은 일 같은데 환갑까지 차려주시니… 그분께선 인민을 위한 일에 귀천이 없이 이 늙은이를 하늘처럼 떠받들구 내세워주시는데 난 아무 한 일도 없구려.》

로인의 말에 코마루가 시큰해진 김광성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였다.

《글쎄 나같은 늙은이의 환갑이 뭐라고…》

눈구석이 질적해진채 바위돌처럼 앉아있던 로인이 드디여 자리에서 부시시 일어났다. 거쿨진 손으로 고무앞치마를 벗어놓고 꺼실꺼실한 턱을 쓸어만지는 로인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이 함뿍 피여났다. 조금후 로인이 기분이 활짝 개여 구두수리방을 나서자 문혁이가 아버지의 친구들을 환갑에 초청하러 달려나가고 뒤따라 김광성이도 지체없이 동평양에 있는 강로인의 집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이날 창광원으로 간다고 떠난 로인의 심정은 누구도 미처 다 알지 못했다.

강로인이 찾아간 곳은 창광원이 아니라 인민대학습당 건설장이였다. 수령님께서 우리 인민을 위해 오래동안이나 별러오시다가 보란듯이 지어주시는 남산재우의 건물앞에 절이라도 하고싶은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그리로 찾아간 늙은이였다.

로인은 수도의 제일 좋은 자리에 거연히 솟아나는 인민의 전당을 넋없이 바라보느라니 거기에 자기의 행복한 모습이 찬연히 비껴있는것 같아서 오래동안 발길을 떼지 못하였다. 그 길로 장대재등성이를 넘어 다시금 창광거리건설장에 당도한 늙은이는 (과시 백성을 위해 들끓는 세상이로다!)하는 생각이 또 한번 목안이 꽉 메여오르는것을 느꼈다. 로인은 옛 평양성의 관문인 보통문밑을 지나 마감으로 잊지 못할 추억이 깃들어있는 대동강유보도에 나가 연거퍼 줄담배를 태우고서야 대동교건너의 신리고급리발소에 들리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천하에 없는 덕망을 지니시고 환갑까지 차려주시는데 외관이 너무 허술하면 안될것 같아 로인은 리발을 멀끔히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강로인의 두칸짜리 온수난방집은 벌써 환갑을 축하해주려고 모여온 사람들로 흥성거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한 평범한 구두수리공에게 환갑상을 보내주셨다는 소문이 쫙 퍼져 이웃아빠트의 아낙네들과 아이들까지도 로인의 환갑상을 구경하려고 부산스레 찾아다니면서 설레이였다.

이날 강로인의 환갑에는 김광성과 림성욱소장만 아니라 인민대학습당 건설장의 곽운필참모장도 참가하여 의젓하게 앉아있었다.

문혁이네 설계사업소에서도 설계가들이 오고 강로인이 소속되여있는 편의협동직원들도 여러명이나 와 구면처럼 한데 어울려 떠들썩 이야기판을 벌리면서 환갑잔치의 분위기를 북돋아주었다. 그중에서도 환갑의 주체를 담당한 김광성의 활약은 특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아빠트의 60세대중에서 제일 식솔이 단출하여 늘쌍 호젓하고 조용하던 로인의 집은 연회장이나 되는것처럼 술렁거리였다. 평시에 강로인이 남의 단란한 가정을 넘겨다보면서 은근히 부러워했지만 한날한시에 천만가지 소망이 죄다 풀리는듯 하였다. 오늘은 빈집같이 휑뎅그렁하던 로인의 집이 좁아서 문혁이네 젊은 패들은 더러 미영이네 집으로 밀려갔다. 웃음소리, 열기 띤 말소리는 그쪽에서도 왁자하니 들려왔다.

김광성은 시간이 흘러 방안에 손님들이 꽉 들어차자 로인의 팔소매를 슬그머니 잡아당기였다.

《로인님, 이젠 옷을 차려입고 환갑상을 받으셔야겠습니다. 이러다간 사람사태에 아빠트가 무너지든지 일나겠습니다.》

김광성은 조금전에 학습당건설장의 남정기네도 떠났다고 알려주었다. 이제 그들만 도착하면 올 사람은 다 온다는것이였다. 강로인은 더이상 시간을 끌지 말자는 김광성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지 않아도 너무 소문을 내며 환갑을 하는것 같아서 옹색스러워 하던 로인이였다. 때마침 누군가 등뒤에서 슬그머니 허리를 그러안는 사람이 있어 돌아보니 남정기였다. 아직도 오른팔에 처맨 붕대를 풀지 못한채 나타난 남정기는 로인의 귀에 대고 《우리 강아바이한테 대통운이 텄수다. 제발 더 늙지 마십시오.》라고 가만히 속삭였다. 강로인은 벌써 몇십번이나 그런 인사를 받는지 몰랐다.

잠시후 로인이 례식에 림할 차비를 하고 방안에 들어서자 모두들 기다리던 시각이 왔다는듯이 우줄우줄 일어서며 정답게 눈인사를 보내였다. 그들속에는 로인의 환갑에 초빙되여 온 동갑친구들도 섞여있었다. 1년에 두세번씩 명절을 계기로 자주 술상에 마주 앉아 인생회포를 나누군 한 구역직맹위원회의 한 일군은 눈물까지 글썽히 머금고 자기의 흉금을 허물없이 터놓았다.

《여보게 동갑이, 날 용서하게. 난 여태껏 구두수리공으로 늙어가는 자네를 동정해온 사람일세. 그래서 늘쌍 자네를 데려다 우리 집에서 술좌석을 펴군 했지. 한데 오늘은 꿈같군그려. 저 환갑상을 보게, 세상이 다 환히 밝아지는것 같애.》

강로인은 두눈이 부시여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동갑이 한 말이 옳다. 그래 밝은 세상이구말구, 김광성의 부축을 받고서야 로인은 환갑상앞에 가서 옹송그리고 앉았다. 로인이 너무도 황송하여 얼굴도 제대로 쳐들지 못하자 곽운필참모장이 답답한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로인님, 오늘은 허리를 쭉 펴시구려. 이런 환갑상앞에 앉으면야 천하를 굽어보시는듯 하겠는데요.》라고 호기있게 타일러주는 말소리가 방안을 드렁드렁 울리였다.

그래도 로인이 똑바로 고개를 쳐들지 못하며 두눈을 슴벅이니 이번에는 사진기를 들고 다가앉았던 젊은이가 연신 안타까운 소리를 했다.

《아바이, 좀 더 얼굴을 드시라요, 좀 더… 아니아니, 우시면 안됩니다.… 잠간만…》

드디여 사진기의 샤타를 누르는 찰칵소리가 울리였다. 련이어 몇장의 사진을 더 촬영하느라 술렁거리던 방안이 조용해졌을 때였다. 이날의 경사로운 례식이 벌어지고 김광성의 간단한 축사가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30여년동안 자그마한 구두수리소에서 인민을 위해 성실히 봉사한 로인을 숨은 공로자로 내세워주시고 친히 환갑상까지 보내주신데 대한 고마움이 뜨겁게 울려나왔다. 김광성은 축사를 마친후 그이의 대해같은 사랑과 은정에 목이 메여 어깨를 들먹이는 로인에게 술을 부어드리고 조용히 말했다.

《로인님, 이 잔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부어드린줄로 알고 받으십시오.》

《예?!…》

강로인은 당황히 술잔을 받아들고 일어나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는 방안에 정중히 모신 어버이수령님과 김정일동지의 초상화앞에 다가가서 반백의 머리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를 드리였다. 술잔을 든 로인의 팔이 후들후들 떨리고 다른 사람들도 감격에 겨워 눈물을 머금고있을 때 김광성이가 박수를 쳤다. 김정일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와 흠모의 마음을 안고 다들 열렬한 박수로써 호응했다. 그리고는 이날의 의식이 끝나자 모두들 한집안식구들처럼 상에 주런이 앉아서 김정일동지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며 뜻깊은 첫잔을 들었다. 뒤이어 문혁이가 아버지앞에 꿇어앉아 술을 부어드리고 로인측대표로 편의협동의 나이지숙한 녀성지배인이 나섰다. 연신 손수건으로 눈굽을 훔치던 강로인의 주름진 얼굴에 밝은 웃음이 함뿍 피여나고 어느덧 방안의 분위기도 대사집같게 차츰 흥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역시 환갑은 늙은이들의 잔치인것 같았다.

림성욱이와 곽운필은 모두 년로한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여서 강로인과 가까운 자리에 앉아 흥겨운 이야기로 술맛을 돋구며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문혁은 맏아들구실을 한답시고 부지런히 돌아가며 손님들의 잔에 술을 붓다가 곽운필참모장한테 붙잡혀 단단히 진땀을 뽑았다. 곽운필은 자기앞에 놓여있는 술잔을 문혁이한테로 내밀면서 엄엄하게 말했다.

《동무도 거기 앉아서 한잔 마시오.》

《아니, 전 저쪽에 가서…》

문혁은 곽운필이가 어려워 주는 술도 받지 못하고 젊은 패들이 앉아있는데로 꽁무니를 사릴 궁리만 했다. 그 눈치를 챈 곽운필이 재차 엄포를 놓았다.

《어디로 뺑소닐 치려구? 이 참모장을 문문히 봤다간 큰 변나. 앉소. 오늘은 거기가 동무자리요.》

마침 김광성이가 문혁을 강다짐으로 잡아두는 곽운필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허, 남의 환갑잔치에 와서도 곽참모장의 관료주의가 판을 치니 너무하지 않소.》

곽운필은 그 말에 옆에서 한바탕 유쾌히 웃어대는데도 시치미를 뻑 따고 태연히 앉았다가 강로인에게 큰소리로 권유했다.

《로인님, 오늘에야 한마디 심중의 말을 하셔야지요. 이후에 내가 왜 그 좋은 날 샌님처럼 앉아있었던고 하구 후회하지 마시구요.》

《그럼요. 어서 말씀하시라요.》

로인은 여기저기에서 맞장구를 치자 한마디 말주변이 없어 난감해하는 사람처럼 수군이 앉아있다가 쉬주근한 목소리를 뽑았다.

《뭐라고 하면 좋을지… 내 오늘 이 환갑상을 받고보니 허헌선생이 생각납니다요. 그 유명한 인사가 환갑을 쇠던 일 말이웨다.》

로인이 왕청같은 말을 꺼내는바람에 곽운필은 어안이 벙벙해서 쳐다보았다.

도대체 저 늙은이가 허헌선생을 어떻게 알기에 제 눈으로 본것처럼 말하는가 하고 놀라는 표정이였다.

허헌은 일제식민지통치시기 놈들의 폭압에도 굽힘없이 애국적지조를 지키며 법정에서 활동한 량심적인 변호사였다. 당시 함흥지방법원, 경성복심법원, 경성고등법원 등 일제재판소들에서 취급된 수많은 반일정치범들과 3. l봉기 독립선언서작성자 33명에 대한 변호인이였던 허헌의 명성은 대단하였다. 그는 일본사람들보다 일본법을 더 잘 알기에 법정재판에서 언제나 이기군 하였다.

허헌은 《간도공산당사건》관계 청년운동자였던 김책의 변호도 자진담당하고 엄형판결(사형)을   3년징역으로 감형받도록 하여 또 한번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광복후 미제의 사촉하에 감행된 남조선단독선거때 입북한 허헌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으로 임명받고 최고인민회의 의장, 법제위원회 위원장사업을 겸직하면서 새 조국건설에 적극 헌신하였다. 그러나 곽운필이나 김광성이조차도 허헌의 개인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로인님이 어떻게 허헌선생의 환갑을 다 아시오?》

강로인은 곽운필의 물음에 조금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조리있게 말하였다.

《전쟁시기 평북도 박천에서 고사포병으로 싸울 때 허헌선생이 그곳 대령강나루터로 찾아온 일이 있었지오다. 그게 허헌선생이 환갑을 쇤지 두달밖에 안된 장마철이였는데… 수령님께서는 허헌선생이 예순여섯살이 되도록 환갑상을 받지 못했다구 하시며 지금 어려운 전쟁을 겪고있지만 이제라도 성의껏 차려주자고 하셨답니다. 그래 예순개의 초불까지 켜놓고 허헌선생의 환갑을 했답니다. 그날밤 그 초불이 다 타도록 허헌선생은 울었다더군요.》

곽운필이 입을 꾹 다물고 앉아서 머리를 끄덕였다. 허헌선생이 수령님께서 차려주신 환갑상을 받은것처럼 로인의 앞에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보내주신 환갑상이 놓여있지 않는가? 늙은이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있는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수령님께서 허헌선생을 얼마나 아꼈으면 그렇게 하셨겠수. 수령님께서는 그후 허헌선생이 종합대학개교식에 참가하려고 평북도 정주군으로 떠날 때에는 한사코 만류하셨답니다. 종합대학이 소개되여 가있는 정주라는데가 바다가이다보니 놈들의 함포사격이 보통 심하지 않은데다가 장마철이였으니까요. 그래두 허헌선생은 자기 직무에 성실한 분이라 부득부득 떠났다우. 그 길을 가느라 우리 고사포부대가 주둔한 박천의 대령강나루터에로 찾아왔던겁니다. 폭격에 대령강의 구진다리가 뭉청 내려앉았거든요. 그런데 며칠동안 장마비가 퍼부은 뒤라 강물이 불어서 배를 타고도 건너가지 못할 형편이였습니다. 나루터의 사공령감은 당초에 엄두도 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답니다. 한데 허헌선생이 너북선에 찦차까지 싣고 떠났다가 잘못됐는데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가슴아파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강로인은 깊은 회억에 잠긴채 다시 뒤말을 이었다.

《글쎄 최고사령부 작전도앞에서 밤을 지새우시는 수령님께서 멀건 죽을 드시였답니다. 난 허헌선생님이 그렇게도 수령님께서 아끼시는 큰 인물이니까 환갑상도 받는가부다 했습니다. 한데 오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이 늙은 구두수리공에게도 환갑상을 차려주셨구려! 지금 내 눈앞에서는 허헌선생의 환갑날에 수령님께서 켜주신 예순자루의 초불이 타는것 같습니다. 내가 허헌선생처럼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운적두 없구 수걱수걱 구두수리일이나 하면서 늙어온것밖에 없는데… 지도자동지께서 이 검부락지 같은 늙은이를 숨은 공로자라고 하시며 환갑까지 차려주셨으니… 그분이야말로 꼭 수령님의 인품을 닮으신 인민의 령수라고 생각합네다.》

강로인은 목메인 소리로 말하고 얼굴을 수그렸다. 팔소매로 축축해진 눈굽을 훔치는 로인의 모습을 바라보던 곽운필이 양복앞자락을 제껴놓았다.

《로인님이 아주 뜻이 깊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정말 금언이올시다. 이 기쁜 날 문혁동무의 어머니도 같이 환갑상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곽운필이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며 그렇게 말하자 로인도 오늘은 마누라생각이 난다면서 반백의 머리를 끄덕이였다.

《아마 그 사람이 이 환갑상을 봤으면 눈이 휘뜩 뒤번져졌을거우다. 항차 지금 온 나라가 당대회를 앞두고 법석 들끓고있지 않수. 어디 환갑에 대해 생각이나 할 겨를이 있는 때인가요. 난 워낙 환갑을 해도 며느리를 맞아들인 다음에나 하자구 했던 사람인데 지도자동지께서 이렇게 환갑상을 내려보내주실줄은…》

《로인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선 저희들에게 집을 지어도 우리 인민을 위한 집을 지어야 한다고 늘쌍 간곡히 말씀하시군 합니다. 인민대학습당도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큰 집! 창광거리도 제일 화려하게! 정말 우리 인민처럼 행복한 인민은 세상에 없지요.》

곽운필이 강로인과 그런 이야기를 오손도손 주고 받을 때 누군가 흥이 나게 부르는 노래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건드러진 민요가락에 맞추어 두팔을 머리우로 흔들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날은 림성욱소장도 흥이 나서 저가락으로 술상을 뚱땅뚱땅 두드리다가 곽운필이와 로인의 사이에 끼여들며 말참녜를 했다.

《참 로인님, 오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다른 나라 대표단과 만난 석상에서 로인님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이께서는 대표단성원들과 이야기하시던중 기쁜 날엔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며 오늘 한 구두수리공로인이 환갑을 맞는 날이라고 하셨답니다. 처음엔 외국인들이 그이께서 구두수리공의 환갑때문에 그렇게 기뻐하시는 일이 리해되지 않아 눈이 뎅그래졌다가 무릎을 쳤다나 봅니다. 우리 인민이 수도의 제일 화려한 고층주택들에서 산다는 말을 듣고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젠 알만 하다면서요. 세상에 우리의 지도자동지처럼 인민을 귀중히 여기시는 령도자는 없다고, 이런분을 모시고 사는 인민이 하늘의 별인들 따오지 못하겠는가고 하면서 조선의 건축이 대단한 비결도 다 알게 되였다고 하더랍니다.》

강로인은 그저 꿈같기만 한지 잠자코 있었다. 림성욱의 말을 듣고 흥분한 젊은이들이 《강아바이, 뭘하구 있어요. 이런 때 춤을 추지 않구 언제 추겠습니까! 자, 일어나시라요.》 하고 로인을 일으켜세우면서 설레였다. 춤판에 끌려들어간 강로인이 젊은이들과 어울려 어깨를 들썩이며 춤추는 모습을 한참이나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김광성은 옆의 림성욱에게 넌지시 말을 건늬였다.

《소장동무, 좋구만. 창광거리건설이랑 해놓구 강로인환갑에 와서 이렇게 척 앉아있으니 말이요. 일한 보람이 있거든. 이번에 소장동무가 수고했소. 내 오늘은 한잔 붓겠소.》

《됐네.》

림성욱은 겸손하게 사양하면서 팔을 내저었다.

《천천히 하세, 사실이야 비서동무가 말없이 날 많이 도와줬지. 난 그걸 잊지 않소.》

《아니, 그런 말 마오. 소장동무가 너무 과장하누만. 사실이야 소장동무가 이번에 큰 일을 제꼈지. 난 요즘 퇴근길에 준공을 앞둔 창광거리를 바라보면서 자주 소장동무생각을 하군 하오.》

김광성이 허심탄회하게 말하자 림성욱이도 남몰래 고심이 많았던 지난일들에 대해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비서동무, 처음엔 내 재간으로 도무지 창광거리를 설계해낼것 같지 않더군. 난생 한번도 해본적 없는 일이였으니까. 그런데 여하튼 되긴 됐어. 지금도 내가 설계했다는것이 통 믿어지질 않소.》

《소장동무의 그 마음은 충분히 리해되오. 우리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모시고 륜환선거리로 나갔을 때에야 오늘처럼 현대적으로 일떠서게 될 거리를 상상이나 했댔소? 그러고보면 우리가 자랐지?》

림성욱은 워낙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였다.

《저 문혁이두 그렇구. 한해동안에 많이도 달라졌소.》

김광성의 그 말에 불이라도 당긴듯 곽운필이 문혁을 손짓하면서 목청을 돋구었다.

《저 친구말이요. 겉보기엔 어질어빠진것 같은데 보통 배짱꾸러기가 아니요. 배심이 있거든. 이렇게 말하긴 별나지만 어딘가없이 나하구 비슷한데가 있단말요. 좀 통해!》

김광성은 벌겋게 술기운이 오른 얼굴을 쳐들고 큰소리로 웃었다. 곽운필이 아까 자기앞에다 문혁을 꼭 붙잡아두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이제야 직통배기 시공일군의 마음을 알만 했다.

곽운필은 문혁이 한사람만 아니라 새로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여간 큰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김광성이 역시 곽운필이 못지 않게 문혁에 대한 애착을 뜨겁게 간직하고있었으며 오늘은 이 전도유망한 신진설계가와도 하고싶은 말이 많았다.

《곽참모장의 말이 옳소. 문혁이도 큰일을 제꼈어. 주체사상탑기초를 설계한 설계가면 대단하다고 봐야지. 그렇지만 문혁이 이젠 마음을 푹 놓고 이 시당비서도 믿으라구. 난 죽을 때까지 예술가야. 알겠소? 예술가!…》

김광성은 깊은 회한에 잠겨 한마디 취중의 말을 내뿜고 또 한번 허허 웃었다. 오늘은 지나온 한해를 돌이켜보느라니 참말로 생각되는바가 많아서 여러 사람들과 즐겁게 회포를 나누고 난 김광성은 다시금 강로인과 조용히 마주앉았다.

《로인님, 오늘 밤 우리가 너무 떠들지 않습니까?》

《원, 무슨 말씀을… 시당비서동지랑 찾아와서 이렇게 기뻐하니…》

강로인은 감개무량하여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오늘은 걸핏하면 눈구석이 젖어버리는 늙은이였다.

《됐습니다. 로인님이 만족하시다면… 그럼 우린 이만 돌아갈가 합니다.》

《아니, 벌써 가시다니요?》

김광성이 천천히 자리를 일자 림성욱과 곽운필이도 뒤따라 일어나면서 로인을 위로해드리였다.

《로인님, 그러지 않아도 너무 지체한감이 듭니다. 우린 조용히 돌아가겠으니 그냥 앉아계십시오.》

그들은 한창 흥겨워져가는 방안의 분위기에 지장이 없이 될수록이면 소리없이 떠나려고 서둘렀다. 그런데도 강로인과 문혁이가 굳이 인사를 차리면서 복도로 따라나와 따뜻이 바래워주었다.

참말로 로인의 환갑은 이해의 아름찬 건설을 마감짓는 그들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새겨준 경사중의 경사였다.

대통운이 튼 강로인의 집에서는 김광성이네가 돌아간 후에도 오래도록 창문의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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