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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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광거리건설 현장책임자 곽운필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강성으로 무장한 사람이다. 철저한 실무가이며 건축학을 리론으로가 아니라 실천활동속에서 배운 시공일군이였다. 건설자들은 단 한발자국의 답보도 없이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자기들의 지휘관을《중땅크》라고 즐겨부른다. 어떤 일이건 하자고 결심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기어코 끝을 보이고마는 그의 드센 일솜씨로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광산출신인 곽운필이가 건설계에서 유명짜한 인물로 된 내막을 누구보다 잘 알고계신다. 곽운필은 워낙 건설과는 인연이 먼 사람이였다. 젊은 시절에 군사복무를 마친 그는 광산에 배치받자마자 광산대학 통신학부에 입학하였다. 5년동안의 대학과정에 광산 갱건설을 전문으로 배웠다. 지상의 건축예술과는 사돈의 팔촌도 안되는 분야였다. 그는 남달리 투지가 강하고 일솜씨가 뛰여나 그후 당일군양성학교인 중앙당학교에 가게 되였고 그로 하여 광산대학에서 배운 지식은 써먹지도 못하였다. 중앙당학교를 나오자 평양시당위원회 지도원으로 배치되였던것이다. 광부의 아들답게 광산에서 인생을 빛낼 결심이였던 그는 희망이 꺾인듯싶어 손맥을 잃었다. 그는 자기의 새로운 직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혼살림을 시작한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때라 시당에서는 안해가 그리워 그러는줄 알고 두칸짜리 온수난방주택을 마련해놓고 그에게 하루빨리 색시를 데려오라고 독촉을 해댔다. 하긴 안해가 그립지 않은것도 아니였다. 곽운필은 광산대학 통신학부를 졸업한 해인 서른두살때 늦장가를 들었다. 안해는 평양으로 떠나는 곽운필을 광산마을역에서 배웅해주었는데 그때 안해는 결혼식날보다 더 어여뻐보이는 아리잠직한 모습으로 남편을 지켜보았다. 그 꽃같은 안해를 평양에 데려다가 행복하게 하여주고싶은 마음은 그에게도 없지 않았지만 광산을 떠나서는 인생의 보람을 느낄것 같지 못했다.
그는 열흘이 멀다하게 시당책임일군들을 찾아가 광산으로 보내달라고 생떼를 부리였다. 처음엔 귀맛좋은 소리로 설복을 하던 일군들이 나중에는 증이 나서 문제를 세우겠다고 을러멨다. 그래도 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무슨 출세를 바라는것도 아니고 광산의 갱속에 뛰여들어 쇠돌생산에 몸바치려는데 무슨 큰소리냐 하는 태도였다. 그는 만날 우거지상이 되여 우울한 나날을 보내였다. 무슨 과업을 맡아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 삶은 게 발놀리듯 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광산으로 출장갈 일이 생기면 순식간에 사람이 판판 달라지군 하였다. 그 어느 광산이나 그가 나타나면 대뜸 활기를 띠는것은 참말로 이상한 일이였다. 얼마 안되여 광산의 모든 갱들이 번듯하게 꾸려진다는 소식이 날아오는것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시당지도원이 자진해서 동발을 메고 뛰여다니며 갱속에서 밤을 팬다는 칭찬쯤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광산일군들은 곽운필이가 나서기만 하면 요지부동으로 콱 막혔던 일이 풀린다면서 자기네를 도와주는셈치고 그를 눌러앉혀달라는 전화까지 걸었다. 그럴 때면 곽운필은 상급의 승인도 없이 제멋대로 광산에 남아있다가 호되게 비판을 받군 하였다. 그는 자기 문제가 당중앙위원회에 상정되여도 별로 뜨끔하게 여기지 않았다. 책벌을 받아도 광산에 내려가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배짱이였다.
바로 그무렵 김정일동지께서는 평양시당 일군들과 만난 좌석에서 곽운필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료해하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곽운필을 곧 당중앙위원회로 소환하시였다. 건설부문에 손탁이 세고 사람들을 발동시킬줄 아는 진짜 지휘관다운 사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시던중인데 곽운필을 그 적임자로 짚으시였던것이다.
곽운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신임을 받아안고 드디여 새로운 생활의 출발선에 나섰다. 그는 김정일동지께서 건설부문사업을 현지지도하실 때마다 그이를 수행하면서 열성껏 건축일을 배웠다. 그후 1년이 지나 만수대예술극장건설이 시작되였다. 뜻밖에도 곽운필은 극장시공을 책임지고 자기의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그는 김정일동지의 기대에 보답한셈이였다. 그후 그는 드센 일솜씨로 자기가 말은 건설과제들을 어김없이 기일내에 해제끼군 하였다. 산원건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곽운필의 완강한 성격과 전개력을 믿고 그한테 창광거리건설을 맡기시였다. 창광거리 1단계건설을 래년도 당대회전으로 끝내자면 곽운필같은 담찬 지휘관이 필요했던것이다. 하지만 륜환선거리를 날려버린지도 사흘이 넘는데 《중땅크》는 발동을 걸지 못하고있었다. 주민들을 미처 옮기기도전에 집들을 허물어버릴 잡도리이던 시공일군들이 어째서 이렇게 늦잡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예견보다 훨씬 공사가 지연되고있는 리유를 알아보시려다 그러지 않아도 안달아 할 곽운필의 모습이 떠올라 좀 더 기다리기로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당대회준비사업과 관련하여 긴급히 처리하여야 할 일도 있고 해서 평양을 떠나시면서 부관에게 건설문제만은 그시그시 지체없이 자신께 보고하라고 부탁해두시였다. 그러나 교외의 집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하신지 사날 지났는데도 여전히 《중땅크》가 《기동을 하였다》는 소식은 전해오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더 이상 시간을 끌며 방심하실 형편이 못되여 전화로 곽운필을 찾으시였다. 현장에 나가있던 그가 련락을 받고 급히 달려와서 전화를 받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안녕하십니까. 곽운필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벌써 석쉼하게 쉬여버린 곽운필의 목소리를 듣고 그사이 그가 겪었을 갖가지 일이 리해되여 가슴속이 아릿하시였다. 아무리 깊은 밤에 전화를 걸어도 곽운필은 늘 현장에서 달려오군 한다. 그가 언제 자고 언제 깨는지 정말 알수 없었다. 해마다 쉼없이 련속되는 건설때문에 그는 휴양소에도 한번 가보지 못했다.
《운필동무, 왜 목소리가 그렇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게로구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당대회건설과제만 제끼면 푹 자겠습니다.》
곽운필은 쉬여버린 목소리를 맑게 해보려고 애를 쓰며 답변을 드리였다.
《동문 산원건설때에도 그렇게 말했지. 너무 무리하지 마오.》
《알겠습니다.》
《요즘 건설장의 형편은 어떻소?》
《륜환선거리를 날려보내고나니 앓던 이발을 뽑아버린것처럼 씨원합니다. 거리엔 전주대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곽운필의 목소리는 멀리에서도 기운차게 울렸다.
《과시 <중땅크>다운 말이요. 그런데 시공이 왜 늦어지고있소?》
《설계가들때문에 애를 먹고있습니다. 총설계안만 나오면 냅다 밀겠는데…》
김정일동지께서 예견하신대로 곽운필은 설계가 선행되지 않아서 속을 태우고있었다.
《설계가 왜 늦어지는것 같소? 땅이 얼어붙기전에 기초작업을 해야겠는데… 동무의 생각을 들어봅시다.》
《인민대학습당형성안이 실패한후 소장동무는 <심중론자>가 된것 같습니다. 아직도 창광거리형성안을 내놓지 못하고 우물거리는건 바로 거기에 원인이 있는게 확실합니다. 주체사상탑건설장의 실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계가들한테서 두개의 기초설계가 나왔는데 구조학적으로 기발하게 착상되고 공사량도 훨씬 줄일수 있는 혁신적인 안이 밀려나게 되였다고 합니다. 전 설계부문 일군들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크게 먹지 않으면 래년도의 방대한 건설과제를 감당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수화기를 잡으신채 침묵을 지키시였다. 지금 평양시안에 여러개 대상의 건설판을 벌려놨지만 씨원하게 추진되는 대상은 하나도 없었다. 설계를 담당한 일군들에게 걸려 건설이 진척되지 않는다고 보는 곽운필의 말이 옳았다. 물론 복잡한 건설과정에는 뜻하지 않게 곡절이 생길수 있고 그로 하여 얼마간 진통을 겪을수도 있는 일이였다. 하지만 림성욱은 인민대학습당을 불당처럼 만들고 지적을 좀 받은것으로 해서 《심중론자》가 되여 우물거리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중땅크》의 직통배기 말을 통해 시당비서한테도 문제가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시였다. 일전에 김광성은 주체사상탑터전의 지질조사결과를 보고하면서 기초설계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두개의 서로 다른 기초안이 나와 옥신각신이 벌어졌을뿐아니라 일군들이 심중성을 내걸고 우유부단하게 사업하는탓으로 보다 혁신적인 새로운 안이 밀려나고있다니 이건 대체 무슨 일인가?
《남정기동무를 인민대학습당설계에서 뗀 일도 잘된 처사같지 않습니다. 남정기동무가 엄중한 과오를 범한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제와서 설계가를 갈아치워선 학습당건설이 제대로 추진될수 없다고 봅니다.》
《남정기동무를 설계에서 떼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너무도 뜻밖의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시였다.
《아니 그럼… 전 남정기동무문제가 보고된줄로 알고?》
곽운필이 몹시 당황해하면서 한참 갑자르다가 가까스로 뒤말을 이었다.
《물론 림성욱소장동무가 고생하는건 저도 압니다. 오죽 애가 탔으면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삼년제도 못갔겠습니까. 초상이 났을 때도 못가고 돐제에도 못가고 금년이 삼년제인데… 이번까지 못가고 부인만 보냈습니다. 일때문에 속을 태우는 소장동무를 생각하면… 요즘에는 사업소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는 때가 많다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신채 잠시 말씀이 없으시였다.
성미가 급한 곽운필의 숨결소리가 들리는듯 하시였다.
《알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놓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주체사상탑설계집단에서 나타난 편향, 아직 개작완성되지 못하고있는 인민대학습당과 창광거리형성안, 그로 하여 궁지에 몰리고있다는 림성욱, 그가 남정기까지 학습당설계에서 뗐을줄이야… 지금껏 어떤 어려운 과제를 맡겨도 배심있게 해제끼던 일군이 당의 기대와 신임에 따라서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우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조용히 방안을 거니시였다.
(림성욱소장이 이럴수 있는가? 벌써부터 이래가지고 어떻게 방대한 건설과제를 감당해내겠는가. 그토록 믿던 일군인데… 믿음이 부족했던가, 사랑이 모자랐던가… )
이윽고 걸음을 멈추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들고 림성욱을 찾으시였다. 수화기안에서는 인차 귀에 익은 소장의 탁한 목소리가 울렸다.
《림성욱이 전화를 받습니다.》
《수고합니다. 김정일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림성욱이 다급히 일어선듯 걸상이 뒤로 밀리는 소리가 가볍게 울리였다.
《소장동무, 내가 전화를 한건 다름이 아닙니다. 남정기동무를 학습당설계에서 뗐다는게 사실입니까?》
잠시후 림성욱이가 나직이 대답올렸다.
《예, 그렇습니다.》
림성욱은 숨죽은 목소리로 말씀드리고나서 남정기대신 림시로 자기가 개작작업을 맡아하고있는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왜 나한테는 알리지 않았습니까?》
《시당비서동무가 보고드린줄로…》
김정일동지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실수 없으시였다. 아무렴 일을 하다가 과오를 범했는데 무작정 사업에서 뗀단말인가. 그것도 한 설계가가 최상의 정성을 들여 설계하다가 범한 과오가 아닌가.
《그래 지금 남정기동문 어떻게 하고있습니까?》
《사업소에 들어와있습니다.》
《그건 무엇때문입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의문이 실린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워낙 과오가 너무 크다보니… 본인을 위해서도 일정하게 분발할 시간을 주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제기되여 일단 설계에서 손을 떼고 사업소로 소환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듣고도 모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신채 괴로운 마음으로 창문쪽을 바라보시였다. 림성욱이와 남정기가 서로 인간적으로 가깝고 림성욱자신이 남정기의 열정과 재능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던 일을 회고하시였다.
그런데 어쩌면 이럴수 있는가? 대학습당이나 주체사상탑, 개선문, 빙상관, 산원, 지금 우리가 건설하고있는 모든 건축물들은 다 처음으로 해보는 우리 식의 새로운 건축물들이다. 그래서 당에서는 이번의 건축혁명을 통하여 설계가들도 한계단 높이 끌어올릴 결심인데 한번 실패했다고 설계가를 뚝 떼여버려서야 그들이 어떻게 날개를 펼수 있겠는가. 그렇게 일해서는 백년가도 독창적이고 대담한 설계가 나오지 못할것이다.
《소장동무, 오늘까지 그 누구에게도 남정기동무가 어떻게 일하는가를 구태여 물으려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때문에?… 그가 비록 학습당을 불당처럼 만들었지만 더 큰 분발심을 가지고 일어나 설계를 훌륭하게 완성하리라는것을 믿었기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를 설계에서 떼다니… 물론 학습당설계가 잘못된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정시킬 기회도 주지 않고 쓸모없이 밀어던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정말 놀라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우리 설계가들이 언제 대학습당과 같이 크고 웅장한 조선식건물을 지어봤습니까. 잘해본다는것이 처음 해보는 일이니 불당처럼 만들수도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걸작이라고 하는 대작들도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충하는 과정에 이루어진것들입니다. 아무리 천재라도 어떻게 단꺼번에야 걸작을 만들수 있겠습니까?》
림성욱은 여전히 아무런 응대도 못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신채 그냥 서계시였다. 오늘처럼 격한 심정으로 림성욱을 질책한 일이 없었던 그이의 가슴은 쓰리시였다.
《그러구보니 남정기동무가 절망상태에 빠질수도 있었겠습니다. 세계적인 걸작을 내놓으려 밤과 낮이 따로 없이 노력한 동무를 설계에서 떼였으니 절망하지 않을수 있습니까.… 소장동무, 남정기동무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맙니다. 엄중합니다. 우리 당은 지식인들을 믿고 대담하게 일할것을 요구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과 인민을 위해 한몸을 바칠 각오를 하고 당에 운명을 의탁한 동무들이 남정기동무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과오를 범했다고 해도 어떤 제재도 요구하지 않을테니 대담하게 창작하시오. 애당초 겁을 먹고 이것저것 재는 설계가한테서는 걸작이 나올수 없습니다. 동무들은 남정기동무를 쓸모없다고 밀어던졌지만 난 그 동무가 큰일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한테는 예술가적인 의욕, 자기의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려는 야심이 있습니다. 그 귀중한 리상과 지향에 공명주의이니 복고주의이니 하는 감투부터 씌워놓으면 어떻게 하자는겁니까. 실패는 교훈을 낳고 교훈은 성공을 낳습니다. 창작과정에 범한 잘못을 가지고 함부로 정치적감투를 씌우는건 위험한 행위입니다. 그를 대담하게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충신을 낳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동무들은 알아야 합니다. 소장동무, 예전처럼 남정기동무를 사랑하고 믿어주시오. 그래야 우리의 설계가들이 먼 후날 21세기에 가서도 손색이 없을 현대적인 거리와 건물들을 일떠세울수 있습니다.》
림성욱이 비로소 잦아드는 목소리로 대답올렸다.
《당의 의도에 따라서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림성욱은 겨우 그렇게 한마디 하고 다른 말은 더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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