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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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에 총리를 비롯한 경제부문 책임일군들과 함께 당대회를 앞두고 진행되고있는 경제건설정형을 료해하신 김정일동지께서 《100일전투》를 벌릴데 대한 의논을 끝내신 참인데 한 일군이 갑안에 정히 넣은 안경을 가져다드렸다. 그이께서 어제 학습당건설장에서 김광성이와 만나고 돌아오자 전화로 그 일군을 찾아 시당비서의 시력을 알아보고 그에 맞는 안경을 하나 마련해달라고 부탁하신것이였다. 다음 일정에는 집단체조 창조성원들이 준비해놓았다는 당대회기념 집단체조도안을 보시러 나가시는 길에 시당비서의 일이 생각나시여 먼저 평양시당으로 찾아가시였다. 혹시 그가 혼자 머리를 싸쥐고 앉아서 고민하고있지나 않는지… 김광성은 아무리 비판을 주어도 떡먹듯 삼켜버리고 일을 냅다 밀어제끼는 곽운필과는 전혀 다른 형의 일군이였다.
어제 곽운필이가 자기 당조직에 찾아가서 비판한 내용을 보고받았는데 역시 그는 시원시원한 맛이 있는 일군이였다. 곽운필은 건설을 순전히 실무적인 사업으로 여긴 나머지 학습당의 중심지붕을 적당히 낮추려고 했던 자기의 잘못을 심각히 총화했다. 수령님의 인간사랑의 철학을 건축에 구현하여 평양을 인민의 왕국, 주체조선의 수도답게 건설하려는것이 당의 뜻인데 자기한테는 그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실현하기 위한 사상적각오가 부족했다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가 지난날의 크지 않은 성과에 자만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관료주의자로 되여버린데 대해서도 죄다 반성했다니 마음이 놓이시였다. 단지 곽운필에 비하면 너무도 내성적인 김광성이가 이번의 비판으로 해서 양기를 잃지 않았는지 그 일이 걱정되셨을뿐이였다. 여하간 오늘은 김광성이가 어느 건설장에도 나가지 않고 시당에 배겨있다니 그와 만나 좀 풀어주어야 자신께서도 마음이 놓일것 같으시였다. 그이께서 시당청사안에 들어서시자 중앙현관에서 대기하고있던 책임비서가 정중히 인사를 올리며 자기 사무실로 모셔들이였다. 그런데 무슨 제기할 문제가 있어 그러는줄 알았던 책임비서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여나왔다. 지난밤 시당집행위원회에서 김광성의 문제를 취급하고 엄중경고책벌을 주었다는것이였다. 너무도 뜻밖이여서 김정일동지께서는 혈색이 불깃한 책임비서의 둥글넙적한 얼굴을 잠시 마주 보기만 하시였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 동무자신이 당조직에 찾아와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심려를 드린 사실에 대하여 자기비판했습니다. 물론 반성은 진실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의 사상적과오가 엄중하다고 보면서 책벌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어느 한 개별적인 일군의 비판도 아니고 시당집행위원회에서 김광성이한테 책벌까지 주기로 했다니… 그이께서는 책임비서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대단하오, 대단해… 날카롭고 무자비하게 비판을 하고 책벌까지 주었겠소?… 동무들처럼 편협해서야 우리가 어떻게 한지붕아래에서 한가마밥을 먹는 같은 식솔이고 동지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자진해서 자기의 잘못을 비판한 사람을 때리고 책벌까지 주다니. 우리 당의 규률을 그렇게 적용하게 되여있습니까?》
격한 심정을 누를길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신 그이의 안광에서 분노의 빛이 섬광처럼 번뜩이였다. 아직 한번도 그이의 서리발같은 추궁을 받아본적 없는 책임비서는 낯빛이 시꺼멓게 시르죽어버린채 두손을 마주 잡으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격한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김광성동무가 오늘은 시당에 앉아있다 해서 어찌된 일인가 했더니 가만보니 자기비판을 더 심화시키라고 한게 아니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복도로 나서시였다. 책임비서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뒤따랐다. 김광성의 방은 청사의 3층 맨끝에 있었다. 주인은 자리를 뜨고 방은 텅 비여있었다. 비서가 사무실에 없는것을 본 책임비서가 황황히 김광성을 찾으러 갔다. 그이께서는 잠시 담배재가 허옇게 널린 책상을 내려다보시였다. 재털이에는 길고 짧은 꽁초가 수북이 차있었다. 간밤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그냥 새웠는지 모른다. 책벌까지 받았다니 방을 거둘 생각조차 없는 모양이다. 책상 한옆에는 요란하게 장정한 두툼한 화첩이 놓여있었다. 언제인가 그이께서도 보신적이 있는 낯익은 명화첩이였다. 그 원색명화첩은 스위스에 출장갔을 때 그의 오랜 친구인 김 아무개라는 죽마고우의 제자한테서 기념으로 받은것이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광복전에 김광성이와 함께 건축가가 될 꿈을 꾸었던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김광성과 달리 몹시 불우했다.
광복후 남반부에서 개인설계사업소를 경영한 그는 전쟁때 군사시설을 설계하라는 당국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국자들의 눈밖에 난 그는 박해를 받던중 프랑스에 망명하여 남의 눈치밥을 먹으며 근근히 연명하다 거기서 숨져버렸다. 쮸리히호반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의 제자가 자기 스승의 불행을 회고하면서 김광성에게 명화첩을 기념으로 주었다는것이였다.
애지중지하던 그 명화첩을 검질긴 어느 한 떼질군이 가져갔다면서 퍼그나 서운해하더니 어떻게 되여 도로 김광성의 책상우에 와서 놓여있는지 모를 일이였다. 눈여겨보니 화첩의 갈피에 글쪽지가 끼여있었다.
비서동지, 1년동안이나 화첩을 돌려드리지 않은건 다름이 아닙니다. 실은 임자를 잘못 만난 화첩인것 같아서 뚝 잘라먹자는 속심이였습니다. 비서동지한테는 불필요하게 된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오늘 아침 명화도 안 보고 미술과 담을 쌓은 이후부터 창조력이 마비된 머저리건축가가 돼간다는 비서동지의 전화를 받고서야 제가 얼마나 엄청난 실수를 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아니, 예전의 유능한 설계가로 되돌아온것 같아 무척 기뻤습니다. 예술가의 열정과 창조성을 다시 찾은 비서동지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축하합니다!
남정기 드림.
명화첩에는 김광성이가 이전에 속사한 그림들도 여러장 놓여있었다. 그가 얼마나 뼈아픈 자책에 빠졌으면 지난 시기의 그림들까지 찾아냈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상우의 그림들은 두말할것 없고 1년만에 김광성에게로 돌아온 명화첩을 보시며 기쁜 마음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이제는 시당비서가 예전처럼 자기 사무실이나 달리는 승용차나 그 어디서이건 즐겨 속사하는 모습을 볼수 있을것 같으시였다.
약간 드티여있는 책상서랍을 열어보니 그안에는 빈 사탕봉지와 과자봉지 그리고 닭알빵이 들었던 비닐봉지, 비닐로 된 김치통들이 가득차있었다. 밤늦도록 사무실에 눌러앉아 일하는 그에게 집에서 날라다준것임이 분명했다. 그밖에도 서류장옆에 대강 개여놓은 모포와 베개, 김광성이 여러날밤 사무실에서 숙식하였으리라.
그이께서는 빈 방의 이곳저곳을 자세히 살펴보시다가 책상우의 전화기에서 송수화기를 드시고 당중앙위원회의 한 부서를 찾으시고 물으시였다.
《아까 이야기한 구두수리공로인의 환갑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예, 로인의 집에 환갑상을 내려보냈습니다.》
《그럼 됐구만.》
로인이 환갑을 쇠지 못한 일을 가슴아프게 여기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더 날자를 미루지 말고 오늘 환갑상을 차려주자고 하시였던것이다.
《늘쌍 적적한 가정이였는데… 오늘은 웃음소리가 나게 되였습니다.》
《저, 그런데 로인이 펄쩍 뛰는 바람에 좀 애를 먹었습니다. 글쎄 자기는 평생 구두수리일밖에 한게 없는데 당에서 환갑을 차려준다니 웬말인가며 머리를 젓지 않겠습니까. 별수 없이 <당중앙에서 환갑상을 차려드린다면 어느분의 지시가 있어선지 모르십니까?>라고 리해시켜주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러는 로인의 얼굴이 방불히 떠오르는듯 빙긋이 웃으시였다.
《잘했습니다.》
《로인은 한참이나 저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갑자기 동이 터진것처럼 눈물을 좔좔 흘리였습니다. 10분가량은 운것 같습니다.》
《로인님이 울더란 말이지요?》
김정일동지께서도 가슴속이 쩌릿해나서 그렇게 물으시였다.
《동리아주머니들이 옆에 있는데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로인님의 마음이 리해됩니다. 집안에 주부가 없어 늘쌍 때식도 혼자 끓여 잡수시는 늙은이지. 참, 한가지 일을 더해주시오. 내 방의 세계명화선집을 시당비서사무실에 가져오게 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를 마치고 조용히 송수화기를 놓으시였다. 시당책임비서가 방안에 들어와 난감한 표정으로 주춤거리였다.
《왜 그러고 섰습니까?》
《저… 저희들이 김광성비서동무의 문제를 좀 과도하게 본것 같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시당책임비서가 두손을 맞쥐고 송구스럽게 말씀드리였다.
《조금이 뭡니까? 동무들이 이래서야 마음놓고 꾸중인들 하겠습니까? 비서동문 왜 오지 않습니까?》
《부관동무한테서 전화가 왔을 때만 해도 방에 있었는데… 정문에 알아보니 한 30분전에 차를 타고 나갔답니다. 시안의 건설장들과 설계사업소, 집에까지 전화해봤지만 아무도 모릅니다. 건설장에 나가있을 때도 꼭 행처를 말하던 사람이… 모란봉으로 올라갔다는 말도 있는데…》
《모란봉에 갔다면 내 짐작이 갑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에 짚이는데가 있어 책임비서의 말을 중단시키셨다. 김광성이가 모란봉으로 갔을수도 있었다. 모란봉의 을밀대나 최승대는 그가 평양시전경을 부감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책임비서동무, 헛걸음삼아 누굴 모란봉에 보내 찾아오도록 합시다. 최승대밑에쯤 가있을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책임비서가 방에서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부관이 시당성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김광성의 방으로 세계명화집들을 날라왔다. 김광성한테 있는 명화책에 대비할수 없을만큼 호화장정의 명화집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집무실에 두시고 사람이 도달할수 있는 조형예술의 아름답고도 신비한 세계에 잠시 잠겨보군 하는 애용명화집이였다. 하지만 김광성이 비서로서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면 그 무엇이건 조금도 아까울게 없으시였다. 때마침 김광성을 찾으러 갔던 시당책임비서가 보고하는 바람에 방안의 분위기는 한결 흥그러워졌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비서동무가 왔습니다. 정말 최승대앞의 풀판에 바위돌처럼 옹크리고 앉아있었습니다.》
책임비서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문대며 약간 옆으로 비켜섰다. 출입문가에 김광성이가 당황해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안경을 끼지 않은 그의 얼굴은 더욱 꺼칠해보였다. 언제 새 안경을 구해낄 겨를이라도 있었겠는가.
하루사이에 저렇게 주눅이 들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으셨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말없이 그를 지켜보시였다. 안경이 없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공허하고 침울해보였다. 때마침 책상우에서 뜨르릉 전화종소리기 울리였다. 김정일동지의 안색이 밝아지시였다.
《가만, 이 방의 전화가 주인을 알아보는군!》
그이께서는 김광성을 정겹게 마주 보시면서 큰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주인이 나타나니 이렇게 전화가 오누만.》
조용하던 방안은 어디서 걸어오는지 알수 없는 전화종소리로 하여 갑자기 활기가 넘치였다.
《비서동무, 어서 와서 전화를 받소.》
김광성은 얼른 책상앞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하루에도 여러차례 때없이 울리는 전화종소리를 두고 오늘따라 무척 기뻐하시는 그이의 심정에 목이 꽉 메여 말뚝처럼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어쩔수없이 김정일동지께서 그를 대신하여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자칫하면 방이 빈줄 알고 전화가 끊어져버릴수 있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비서동지입니까?》
수화기에서 연방 진동판을 두드리며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그 물음에 어떻게 답변하면 좋을지 알수 없으시였다. 비서라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여 사실대로 말해주면 상대방을 놀래울것 같으셨다. 그래서 누구라는 말씀이 없이 《동문 누구요?》라고 하시며 김광성을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셨다.
《제 남정기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광성이 그에게 성내던 일이 문득 떠올라 빙긋이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렇소? 학습당의 중심지붕문제때문에 전화를 걸었구만.》
《예, 곽운필참모장이 개작설계를 달라는데 비서동지가 정말 2. 2m 낮추기로 결심했는지 알구싶어 전화를 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옆으로 다가온 김광성에게 슬며시 전화기를 넘겨주셨다.
《비서동무, 남정기동무요, 어서 대답을 주오.》
김광성은 한동안 수화기를 움켜잡고 눈을 슴벅거리였다. 그가 말을 못하자 전화가 끊어진줄 안 남정기가 《비서동지, 비서동지…》하고 다급히 웨치는 목소리가 그이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남동무.》
김광성의 막혔던 목안에서 드디여 불뭉치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동무의 결심이 옳았소. 당장 눈섭지붕을 까팡가치기요! 동무의 설계를 넘겨주오.》
김광성은 련이어 남정기가 뭐라고 하는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여보, 비서라구 왜 코막고 답답할 때가 없겠소. 내가 잘못했소. 명화첩? 받았소. 동무가 날카롭게 비판한 글도 보구.》
김정일동지께서는 김광성이 수화기를 놓자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이제야 진짜 시당비서가 되돌아온것 같소. 어떻소? 10년묵은 체증이 뚝 떨어진것 같지 않소?》
《예, 제가 정말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댔습니다.》
김광성의 눈에 맑은 눈물이 그득히 고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전 이 화판의 봄풍경을 그리면서 얼마나 자신이 서글펐는지 모릅니다. 제가 무척 사랑한 그림이였는데 뜻대로 되여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로소 가슴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전 확실히 설계가의 세계에서 떠나버린 빈털터리였습니다. 아직도 수령님께선 저를 유능한 설계가로 믿어주시는데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을 저주하고싶었습니다. 저의 가슴속에는 어제날의 열정이 식어버렸습니다. 그러다나니 당일군으로서도 제 구실을 못했습니다. 어려운 일에 어깨를 들이밀지 않고 요령주의를 부리고 동지들을 사랑할줄 모르는 인간으로 되였습니다. 전문가인 저를 건설부문 당일군으로 파견해주신 그 깊은 뜻에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보답 못했습니다. 오늘 모란봉에 올라가 앉아서 이점을 가슴 아프게 느꼈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이제부터 건축예술가의 그 열정부터 되찾겠습니다.》
《그래, 열정적으로 그림도 그리고 사색도 하오! 사람들이 비서의 얼굴에서 어제날의 건축가 김광성이를 발견할수 있게 새 출발을 하시오. 훨씬 더 로숙한 건축예술가로 자신을 완성하시오. 그래야 열정적인 당일군으로도 될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시당비서가 될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김광성의 얼굴을 대견히 바라보시고 나서 책상우의 원색화첩을 집어드시였다.
《임자를 잘못 만난 명화첩이라… 남정기동무가 여기에 사죄도 하고 축하도 하는 편지를 써놓았는데 정말 진실한 동무입니다.》
《그가 저를 똑바로 보았습니다.》
《옳습니다. 난 아까 방에 되돌아온 이 명화첩을 보면서 정말 기뻤습니다. 명화첩이 주인을 잘못 만났다는 말을 두번 다시 들어선 안됩니다. 그러나 본래의것은 남정기동무에게 주는게 좋겠습니다. 동무는 이 여섯권짜리 대명화첩을 두고 보시오. 내가 보던것인데 아주 잘 만든 책입니다.》
《아… 아니?》
김광성의 두눈이 화등잔처럼 휘둥그래졌다. 안경이 없이 흐리멍텅해보이던 눈이 번쩍이고 얼굴근육은 세찬 흥분으로 떨렸다. 아무말도 못하고 명화첩들을 바라보기만 하던 김광성이 고개를 들며 말씀올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이건… 이건 안됩니다. 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집무실에서 이 명화첩을 가까이 두고 계시는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안됩니다.》
김광성은 얼결에 손에 들었던 화첩을 책상우에 밀어놓으며 부르짖듯이 말했다. 그럴수록 그이께서는 김광성의 마음이 갸륵하시여 그를 대견스레 바라보시다가 준비해가지고 오셨던 안경과 함께 화첩을 도로 김광성의 손에 들려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어서 받소. 이제야 화첩이 제 주인을 만난것 같습니다. 이 안경을 끼고 잘 보시오.》
김광성이 급기야 정신을 차리고 두손으로 정중히 화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한손으로 안경을 끼고 화첩을 번지였다. 그러나 눈물이 안경알을 뿌옇게 가리워 화첩의 그림이 흐릿하게만 보일뿐이였다.
《이젠 좀 진정하오. 명화야 밝은 눈으로 봐야지 않습니까. 하긴 앞으로 두고두고 봐야 할 화첩이니. 당장 급하게 볼것도 없지… 이 화첩에 담긴 적지 않은 그림은 시간을 내서 혼자 음미해야 그림의 진짜를 알수 있습니다. 인간의 창조력이 어떤 경지에까지 도달할수 있는가 하는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사업을 돌이켜보게 될겁니다.… 마음이 진정되였을 때 보는것이 좋겠습니다.》
《전 보통학교때부터 미술에 미쳐 돌아가며 이 세계명화첩을 갖는것이 일생의 소원이였습니다. 그런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이렇게…》
갈린 음성으로 더듬거리던 김광성의 목안에서 흐느낌이 새여나왔다. 시당책임비서도 머리를 돌린채 조용히 눈굽을 닦고있었다.
김광성은 그제야 그이의 바쁘신 시간을 너무 지체시킨 죄송함때문인지 두손에 안경을 벗어들고 그이께 도로 드리려고 했다.
《아닙니다. 김광성동무, 이 안경은 내가 동무한테 주려고 구한겁니다. 오늘부터는 이걸 끼시오. 괜찮은것 같습니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마시오.》
김광성은 겨우 다잡고있던 격정을 그만 누를 길이 없어 어깨를 들먹거리며 어린애처럼 감격의 오열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흐느낌과 함께 겨우 몇마디 쏟아놓는 말속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었으나 그 분명치 않은 말속에 담겨있는 김광성의 마음만은 충분히 느낄수 있으시였다.
《비서동무, 내 최근에 외국작가가 쓴 책을 한권 읽었는데 사람은 중년기를 넘어서면서부터 젊었을 때 축적한 노력의 결실을 소비하면서 산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로년기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쓴것 같은데 난 그런 견해에 찬성할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중년기가 아니라 로년기에 이르러서도 과거에 축적한것을 탕진할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초로 해서 끊임없이 전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옳습니다. 제 앞으로 당의 뜻을 따라… 건축가로서, 당일군으로서 모든 힘을…》
《그렇게 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드디여 책상앞에서 일어나시며 김광성의 어깨를 힘있게 짚어주시였다.
《광성동무, 오늘 저녁엔 아무데도 가지 말고 강문혁동무의 집에 가야겠소.》
김광성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하다가 근심스럽게 말씀올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전 대학습당중심지붕을…》
《괜히 빠질 궁리를 마시오. 비서동무도 강문혁동무의 아버지가 아들의 일에 부담이 될가봐 환갑을 쇠지 못한걸 알지 않습니까? 난 그 말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오늘 로인에게 환갑상을 내려보냈습니다. 시당비서동무가 가서 축하해주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내가 바쁜 일이 제기되여 못간다는 량해도 구하고 대신 술도 부어드리시오.》
《아니?…》
눈물에 젖은 김광성의 눈빛이 다시금 뿌옇게 흐려졌다.
《래년에는 곽운필동무도 환갑을 맞게 됩니다. 내가 곽운필동무를 시당에서 데려다가 건설을 시킨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환갑나이가 되였습니다. 세월의 흐름이란 막을수 없는가 봅니다. 우리 일군들이 하루하루 늙어가는게 정말 아쉽습니다. 동무네가 <중땅크>하고 옥신각신 많이 했는데 래년엔 그가 환갑상을 받는걸 봅니다. 모두 오붓하게 모여앉아서 한껏 웃어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가방에서 안경갑까지 꺼내여 책상머리에 놓고 밝게 웃으시며 방을 나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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