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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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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4,513회 작성일 20-10-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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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1

 

주체사상탑건설지휘부는 여느 돌격대원들의 숙소와 다름없는 건물안에 자리잡고있었다. 뻘건 진흙으로 미장한 토피벽이며 검은 방습지를 씌운 지붕, 풀색뼁끼칠을 한 창문틀 등 외형부터가 첫눈에 림시건물이라는것이 알리였다.

길다란 건물의 중간부분에 있는 그중 널직한 방이 모임장소로 쓰이군 하였는데 바로 이 방에서 처음으로 열린 모임이 주체사상탑기초설계에 대한 협의회였다.

며칠째 계속되는 론의는 끝날줄을 몰랐다. 나흘째되는 날 오후 국가건설위원회와 과학원, 건설건재대학과 시안의 중요설계기관들에서 왔던 건축가, 설계가, 지질학자, 수학자들이 돌아가자 방안은 텅 비게 되였다.

창문가까이의 장의자에 강문혁이만이 혼자 앉아 상심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있는데 그의 순편치 못한 마음을 말해주듯 숱진 두눈섭이 무시로 꿈틀거리였다. 초점을 잃고 허둥거리던 그의 눈길은 어느덧 대동강너머의 아버지네 구두수리소가 있는 어방에서 멎었다.

여전히 그 작은 방에서 일하고있을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달전 이른 아침 천만뜻밖에도 구두수리소를 찾아주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뵈온 아버지… 그 꿈같은 소식을 전해듣고 문혁은 아버지의 마디진 억센 손을 부여잡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그이께서 신발이나 수리하는 아버지와 마주앉아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고 숨은 공로자라는 과분한 치하를 안겨주실줄이야 상상이나 했던가. 게다가 당과 정부의 요인들과 함께 유람선에 올라 중요한 건설문제에까지 참여하였다고 하니 꿈만 같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손을 맡긴채 목메인 소리로 이렇게 당부하였다.

《난 네가 꼭 성공하길 바란다. 우리 집안이 어떤 큰 영광을 받아안았느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이 늙은 구두수리공의 아들이 주체사상탑기초를 설계했다고 하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그 이튿날부터 강문혁은 거의 침식을 잊다싶이하고 일에 달라붙었다. 수백권의 책을 번지며 자료조사를 했고 탑건설장의 시추기옆에서 밤을 패며 지층별 암질조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문혁이 자기의 착상을 가지고 건설대학의 원하림교수를 찾아갔을 때 교수는 도면을 보던 확대경손잡이를 흔들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문혁동무, 요전에 나를 찾아와 말할 때는 솔직히 말해서 지내 대담하다는 생각이였소. 그래서 나두 짬짬이 문헌을 뒤져보았소. 한데 이렇게 암질상태까지 나왔으니 신심이 생기오. 더 심화시키시오. 나두 있는 힘껏 도와주겠소.》

원하림교수는 대학때의 스승이였을뿐아니라 그후 문혁이가 3대혁명소조에 나가서 도소재지의 중요건물구조설계를 자진 맡았을 때는 직접 현지에 나와서 도와주기까지 하였다.

대학시절에 벌써 문혁의 재능을 보고 훌륭한 설계가로 키우려고 결심한 교수였던것만큼 3대혁명소조사업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강문혁이한테 아낌없는 지도와 조언을 주었었다.

한편 설계사업소에서는 여러가지 기초설계안들이 나왔으나 종당에는 《침강정기초안》과 《통판기초안》 두 안에 대한 론의로 좁혀졌다.

침강정기초안은 고르롭지 못한 천연암반을 모조리 까내는 방법에 토대했다면 강문혁이 내놓은 통판기초안은 천연암반을 그대로 리용하는 방향에서 설계되였다.

암질을 력학적으로 타산해본데 근거해서 천연암반을 그대로 리용하면 자재를 엄청나게 절약하면서도 만년대계의 기초로 되게 할수 있다는것이 통판기초안이였다.

아빠트 여러채분량의 강재와 세멘트를 쓰지 않을뿐아니라 기초공사기일을 훨씬 앞당겨 탑건설전반속도에도 큰 의의를 가진다는것이였다.

따라서 초기에 이 기초안이 많은 지지를 불러일으켰다.

《대담한 착상이요.》

《천연암반을 하나두 까내지 않아도 된다니 정말 굉장한 일입니다.》

《강문혁동무의 발전속도가 정말 놀랍소.》

《강재와 세멘트가 절약되는 량만도 얼마나 되는지 압니까?》

감탄과 부러움에 찬 이런 목소리들은 오히려 강문혁을 불안하게 하였다. 주위에서 너무나 서둘러 찬성의 목소리를 높이는것 같이 생각되였기때문이다.

아니나다를가 며칠동안의 협의회과정에 그 기초안을 반대하고 침강정기초안을 지지하는 목소리들이 점차 우세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침강정기초안의 지지자들은 천연암반의 지질학적인 특성은 안중에 없는듯 기성리론대로 고르롭지 못한 암반을 까내야 하며 이런 중요한 공사에서 건재의 절약이요 뭐요 하는것은 도대체 있을수 없다는것이다. 《절대적인 안정성》만이 탑기초건설의 근본으로 되여야 한다는 주장이였다.

협의회의 나흘째만에는 통판기초안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피대를 돋구기 시작했다.

강문혁이 속해있는 설계실의 실장인 유민호는 처음에는 제가 직접 나서지 않고 구조설계분야의 권위자들과 자기 실의 홍동무를 앞에 내세워 통판기초안을 부정해나섰다.

유민호는 오늘 오전 협의회가 끝난 다음에 문혁을 따라나와서는 사뭇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강동무, 내말 좀 듣게. 림성욱소장이나 시당비서는 다 로련한 건축가들이네. 말하자면 건축가이면서 창작가, 예술가들이지. 그러니 그들이 구조설계에 대하여는 우리만큼 깊이 알지 못한다구 할수 있지 않는가. 이렇게 말한다고 그분들을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은 구체적으로 말할 때 우리와 전문이 달라. 우린 랭정한 실무적타산과 수자가 기본인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다구 내가 실장으로서 책임문제를 운운하는건 아니야.》

유민호가 스스로 제입으로 자기의 본심을 토설하는것 같아 강문혁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유민호는 기초안설계과제가 제기되자 곧 홍동무더러 자기가 도와주겠으니 《파악이 있는》 대형침강정기초안을 설계하라고 했었다.

협의회 첫날 강문혁이 제기한 통판기초안의 우점들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자기는 결코 새것을 무시하지 않으며 실장으로서 공정한 립장에 서려 한다는것을 보여주던 유민호가 두번째 날에는 강문혁을 따로 만나 가벼운 한숨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난 실장으로서 정말 딱하단말이요. 우리 실사업이 평가되는 결정적인 정황에 처했거든.… 문혁동무, 그래두 난 동무가 모험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오금을 박아주었소. 대담성은 모험을 동반할수도 있다구 말이요. 한데 공명주의라는 말에는 나두 할 소리가 없소.

그들이 마치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것 같았기때문이요… 실장이란 사람이 공명심에 들떠있지 말라, 너의 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네가 책임져야 한다 하구말이요… 문혁동무, 솔직히 말해서 침강정기초안이 <절대적인 안정성>을 담보하고있는 조건에서 그걸 바로 우리 실의 집체적인 이름으로 내놓자는거요.》

그리하여 어저께는 유민호가 누구보다 자주 발언을 하였다.

한데 오늘에는 벌써 승리자연하는 태도로 여유있게 처신하면서 론의자체에는 흥심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초안제출초기의 불안이 사라지자 일종의 반발심에 사로잡혀있던 강문혁은 동요와 주저, 좌절감을 누를수 없어 자기의 안을 주동적으로 철회할 생각까지 했다.…

해질녘의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던 강문혁은 굴착기의 요란한 동음에 펀뜩 정신이 들었다.

벌써 표층의 흙을 파내느라 굴착기들이 가동하기 시작한것이다. 문혁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딘지 모르게 고독감이 엄습하는 빈방에서 훌쩍 밖으로 나왔다.

해가 떨어지자 강바람이 불어오며 대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날씨는 하루하루 추워지는데 아직도 기초타입을 착수할 엄두도 못내고있다.

문혁은 강녘을 따라 향방없이 걸음을 옮겼다. 문득 스스로도 놀래여 걸음을 멈췄다.

(내가 안을 주동적으로 철회하다니?) 그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탑… 따라서 자기의 기초안이 선택되지 못하면 그저 한갖 리론으로만 남고 그것을 실현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것이다.… 그런데 자기라니? 자기… 자기… 자기라는 존재, 그 이름, 그 명예가 무슨 가치가 있는가. 문제는 탑을 훌륭히 만년대계로 일떠세우는것인데 여기에 《자기》라는 말을 감히 섞어놓다니?… 문혁은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불시에 배를 움켜잡았다. 요즘 한동안 즘즛해졌던 위탈까지 도지여 말썽을 부리였다. 내가 너무 신경이 예민해진탓인가? 문혁은 3년동안이나 만성위염을 앓다가 최근에 위궤양으로 진단을 받고 여간 고생이 막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한주일이 멀다하게 약을 구해들고 건설장으로 찾아다니는 아버지의 수고도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웬간해서는 아픔을 내색하지 않는데 가끔 가다 경련이 일적이면 눈앞이 다 어질어질해지군 하였다.

《문혁동무.》

누군가 뒤따라오며 불러서야 그는 정신이 들었다. 탑설계대상책임자 박광운이였다. 그는 같은 설계사업소의 실장으로서 탑설계집단을 책임졌는데 주로 탑신구조설계에 많이 관계하고있었다. 제대군인출신의 40대의 유능한 설계가, 10년이나 나이가 아래인 문혁이를 허물없이 대해주는 소탈한 사나이였다. 생활에서는 텁텁하지만 일단 사업에서는 주견이 있고 진취성이 강한 점이 강문혁이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한것인지도 모른다.

《저리 강변에 내려가 말 좀 하자구.》

《…》

문혁은 의아쩍게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난 좀 혼자 있고싶습니다.》

《혼자 있고싶다?… 아니야, 이런 때 동무한텐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해.》

새로운 통판기초안을 내놓았을 때 누구보다 기뻐한 박광운이였다. 그도 사태의 진전을 보고 곁에서 왼심을 쓰며 가능한 한 도와주려고 애썼다.

박광운이 말했다.

《강동무,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하오. 동무도 언젠가 나한테 말했지. 과학자, 기술자는 뭐니뭐니해두 탐구의 열정과 함께 량심이 있어야 한다구. 사실 그래, 량심이 있어야 과학적신념을 지킬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한갖 시정배에 지나지 않소.》

《한데 광운동지, 생활은 그렇지만 않구만요. 자기보신을 하면서 과학자의 량심을 떠드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이 누구를 념두에 두고 한 말이라는것을 박광운이도 모를리 없었다.

박광운은 고개를 돌리고 나무람이 담긴 눈길로 문혁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강동무, 그런 비뚤어진 생각은 버리오.… 난 지금 강동무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구 있어.》

《뭘 말입니까?》

《자기의 기초안을 철회할 생각까지 했지?》

그러자 가장 아픈데를 찔리운 사람처럼 문혁은 펄쩍 뛰며 《잘두 알아맞혔습니다.》 하고 빈정대듯이 말하고는 이어 답답해나는 속을 어쩔수 없어 자기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이제 더 날자를 끌다간… 해를 넘기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물러나는 길밖에 더 있습니까?》

《그래 물러나는것이 공사를 앞당기는 길이라는거요?》

박광운은 걸음을 멈추고 문혁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생각했다는게 고작 그게 다요? 그래 타협하구 말겠다.…》

문혁이 머리를 떨군채 어름어름 대답했다.

《타협하는게 아니라… 탑의 전반공사를 생각하면… 그밖에 다른 도리가 또 있는가 말입니다.》

그의 말에 박광운은 어성을 높여 부르짖듯 말했다.

《강동무, 과학적인 신념으로 자기 주장을 관철해나가자면 때로 모욕도 비난도 당하기마련이지. 그래 이제 동무가 물러선다면 어떻게 되겠소?… 그런 좋은 안을 내놓구두 일시적인 난관에 주저앉을순 없소.… 듣자니 요새 림성욱소장동진 자기 서재와 중앙도서관에서 찾아낸 구조설계에 관한 각종 책들을 책상우에 무져놓구 밤을 새며 문헌연구를 하고있다는거요. 소장동지도 지금 강동무의 통판기초안을 지지할수 있는 보다 확고한 담보를 찾아내기 위해 고심하고있단말이요.》

문혁은 놀라운듯 잠시 눈을 슴벅이더니 갑자기 손을 홱 내저었다.

《하지만 김광성비서동진 기초안에 대한 협의회자체를 인정하는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첫날 협의회때만 얼핏 얼굴을 내밀었을뿐입니다. 침강정기초안을 지지하는게 분명하지요. 그는 본시 건축가입니다. 건축예술가여서 구조설계는 깊이 알려구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지금은 당일군이여서 그저 실무가들이 합의하길 기다리는것 같습니다.》

《문혁이, 제나름으로 생각지 마오. 동문 요새 신경이 과민해져서인지 까다롭게 말을 하누만?… 김광성비서동진 통판기초안이 그저 하나의 리론적인 학술론문이라면 자기는 기꺼이 동의하는 수표라두 하겠다구 했소. 오죽하면 그런 말까지 했겠소?》

강문혁이 무거운 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

《론문으로는 인정한다.… 그런데 실천에 도입하는건?》

그러자 박광운이 다시금 열띤 음성으로 말했다.

《그럴수도 있지. 이 탑이 어떤 탑인가. 세상에 유일한 탑, 력사에 전무후무한 그런 탑이란 말이요. 그래서 심중할대루 심중하게 대하는거지. 그런 립장은 리해해줘야 하지 않을가.… 한데 그것과 동무가 어떤 립장을 취하는가 하는건 다른 문제라고 보오.》

강문혁은 다시 고개를 숙인채 말이 없었다. 그러는 모양을 보다 못해 박광운이 와락 그의 어깨를 거머잡고 흔들었다.

《에익, 이렇게두 속대가 약하다구야.》

박광운이 울분에 차서 다시금 문혁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용기를 내라구. 난… 동무가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보오.》

박광운은 이 말을 남기고 휙 돌아서더니 격해진 마음을 달랠길 없는듯 씨엉씨엉 걸음을 옮겨 강뚝으로 올라가는것이였다.

강문혁은 받개질하는 황소처럼 씨근거리며 서있었다.

(내가 속대가 약하다니? 그래 나약하단말인가?… 그럴수는 없다. 그럴순…)

락엽을 몰아오는 강바람이 문혁의 옷깃속으로 차겁게 스며들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시꺼멓게 드리운 구름장에서는 굵은 비방울이 떨어져 후둑후둑 가로등의 등갓을 두드려댔다. 검푸른 빛을 띤 대동강의 물결이 출렁대면서 유보도 돌계단을 후려치군 하였다.

문혁은 락엽들이 떠내려가는 물결을 한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방금 앞에 떠있는것 같던 황적색단풍잎이 어느새 저만치 아래쪽으로 떠내려갔다. 날씨가 변덕스럽건 말건 멈추지도 않고 지칠줄도 모르며 언제나 변함없이 제가 목적하는 대양을 향해 흐르고 흘러가는 강물… 강은 오직 목적지를 향해 줄기차게 제 갈길을 가고있다. 어째서 자기는 저 강물처럼 줄기차게 흘러가지 못하는가?

(그래, 래일로 모든것이 결판이 나고 말것이다.)

문혁은 마음속으로 괴롭게 혼자 중얼거리였다.

굵은 비방울이 주위를 세차게 두드려대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찬 비줄기에 얻어맞고 떨어진 나무잎들이 길바닥과 잔디밭에 한벌 깔리였다. 문혁은 삽시에 옷이 흠뻑 젖어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구태여 강안공원의 정자같은데 들어가 비를 그으려고 하지 않았다. 찬비를 맞아 몸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으나 그는 움직일념을 하지 않았다.

세찬 바람은 옷자락을 잡아채고 뻣뻣이 일어선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였다. 머리우에서 번개불이 일더니 꽝 꽈르릉- 요란한 우뢰소리가 울리며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이 두쪼각으로 쩡 갈라지는듯 했다. 뒤이어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어둠이 대지를 휩쌌다. 그 무시무시한 어둠의 장막을 찢어발기며 번개불이 다시금 뻥긋거리였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에 강변의 무성한 나무숲은 뿌리채 뽑힐듯이 몸부림쳤다. 문혁은 사나운 비발과 강바람에 흩날리던 나무잎들이 강물에 떨어져 흔적도 없이 떠내려가는 모양을 바라보다가 두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내가 나약하다구?… 그는 마침내 그 어디에도 하소할길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머지 않아 솟아나게 될 탑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아니, 이 거대한 탑을 위해 나는 그 어떤 동요도 없이 새것을 창조하는 참된 과학자가 될것이다. 창조로 아름다와지고 억세고 존엄있는 인간이 되리라… 하고 문혁은 부르짖었다. 그는 얼굴에 휘뿌리는 차거운 비방울도 닦지 않고 그냥 꿋꿋이 서있었다. 고까짓 바람같은것은 사납게 불테면 불라지. 오히려 우뢰와 번개, 폭우로 하여 기운이 솟고 용기백배해진 문혁은 그것을 기쁘게 느끼며 마음속으로 뜨겁게 속삭였다. 나는 하나의 물방울, 저 강변의 작은 모래알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앞에서 굴복하며 비굴하게 살수야 있는가? 과학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간혹 고뇌와 어둠속을 헤매일수도 있다는것을 모르지 않는 내가!… 그것이 두려워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한몸을 주체사상탑건설에 깡그리 바쳤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겠는가!…

어느덧 소나기가 지나간 하늘에서는 보슬비가 소리없이 내리고있었다. 잠시후 그 보슬비도 멎어버리자 흩어지는 엷은 구름장들사이로 한가닥 밝은 해살이 비쳐나왔다. 주위의 나무아지들과 풀잎들에 맺힌 비방울이 구슬처럼 반짝이였다.

문혁은 모진 바람과 폭우를 이겨낸 그 파르스름한 풀잎들을 어루쓸듯이 정겹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발길을 옮기였다.

오늘 저녁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고싶었다. 벌써 닷새동안이나 현장에서 침식을 하며 아버지와 만나보지 못한 그였다. 아버지가 혼자서 어떻게 지내고계시는지… 얼마후 문혁은 아빠트앞에서 자기집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아래웃방에 불빛이 환히 켜져있었다. 아버지도 오늘은 여느때없이 일찍 집에 들어온 모양이였다.

문혁은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가 출입문을 열고 전실로 들어서자 부엌에서 《왔느냐?》 하는 아버지의 쉬지근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예, 오늘은 일찍 들어오셨군요.》

《그래, 어쩐지 네가 올것 같더라니까.》

아버지는 구두수리일을 할 때처럼 코언저리에 돋보기를 거느적이 드리우고 국거리감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가마에 넣는 참이였다.

문혁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자기가 집으로 돌아온 날에야 무엇때문에 아버지한테 부엌일까지 시키랴 해서였다.

《인주세요, 아버지. 제가 해요.》

문혁은 아버지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부뚜막에 앉아 밥이 잦아드는 소리가 나는 늄솥뚜껑을 열어보았다. 어디서 생겼는지 당콩을 두어 연보라빛물이 오른 흰쌀밥이 잔뜩 부푼채 숭숭 패인 구멍들로 김을 뿜어올리며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있었다. 부뚜막에는 명태자반과 마늘짠지가 담긴 그릇들이 놓여있다. 명태자반을 특별히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식료매대에서 사온 모양이다.

《아버지두 참…》

문혁은 혼자 빙긋이 웃음을 짓고나서 슬그머니 방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부엌일을 맡기고 쉬는줄 알았던 아버지가 구부정히 앉아서 절구질에 여념이 없었다. 문혁이가 건설장에 나간뒤 위탈에 좋다는 보약재들을 구해다놓고 밤마다 초약을 짓는 아버지의 수고에 눈굽이 시큰해졌다. 하루종일 구두수리일은 일대로 하면서 집에 오면 때식을 끓이고 아들의 병구완으로 한시도 손이 놀새 없는 아버지… 머지 않아 환갑을 맞게 될 아버지가 그 모든 일을 맡아안고 밤잠을 제대로 못자서인지 두석달사이에 얼굴이 몹시 축가고 머리칼도 훨씬 희여져보이였다.

때마침 출입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걸걸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문혁이 있나?》

문혁은 인차 방문을 열고 출입문쪽을 내다보았다. 그러던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뜻밖에도 온몸이 비에 홀딱 젖은 남정기가 문설주를 량손으로 틀어잡고 서있었다. 문혁은 방에서 뛰여가 남정기의 손을 잡아 끌어들이였다. 남정기는 얼굴에 함뿍 웃음을 지으며 아버님이 계신가고 물었다.

《여기 있네. 남선생이 왔나보군.》

남정기는 반가와하는 로인의 목소리를 듣고 아래방으로 씽 들어섰다.

《예, 저올시다. 죽지가 부러졌던 남정기가 이렇게 살아서 왔습니다.》

남정기는 둥 뜬 기분이였다. 오래간만에 남정기와 만난 로인도 무등 기뻐했다.

《자네 인민대학습당설계를 다시 맡았다더니 정말 신수가 확 폈군.》

《폈지요. 폈습니다. 아버님!》

남정기는 로인을 덥석 안아올리며 호걸스레 껄껄 웃었다. 당황한 로인이 《어어… 이 곰같은 사람아, 괜히 늙은것의 허리를 부러뜨리겠네.》 하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러건말건 남정기는 늙은이를 안아올린채 방안을 한바퀴 빙 돌고나서 내려놓았다.

《아버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이 남정기가 인민대학습당설계를 꼭 완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오늘은 제가 올려보낸 대학습당수정안이 잘되였다시며 글쎄… 기운을 내라고 산꿀까지 보내주시였습니다.》

남정기는 두손으로 가슴한복판을 움켜잡았다. 목이 메여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그의 넙적한 가슴만이 들먹거리였다.

《그게 사실인가? 정말 꿈같군.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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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강로인은 남정기의 일을 자기 아들의 일처럼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언뜻 문혁을 돌아보며 무엇을 물으려다가 말을 삼키였다. 아들의 일에 마음을 쓰는게 분명했다. 그러나 문혁은 아무 일도 없는듯 남정기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 제 이젠 돌아가겠습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남정기는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로인과 문혁이가 붙들려고 하였으나 완강히 거절하였다. 알고보니 남정기는 제 집에도 들리지 않고 설계현장에서 곧바로 찾아온 길이였다. 사랑하는 안해와 자식들과 기쁨을 나누고픈 마음인들 얼마나 간절할것인가? 문혁은 그를 떠나보내는 순간 어쩐지 그와 더 오래 같이 있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 없었다. 남정기는 어느새 현관을 벗어나 비물이 고인 물창을 밟으며 저벅저벅 걸어가고있었다. 문혁이가 소리쳐 부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는 팔을 높이 쳐들어보이고 춤추듯이 걸어갔다. 환희에 넘쳐 멀어져가는 남정기의 모습을 바라보던 문혁의 눈에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흠씬 고여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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