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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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이, 어디 한번 좀 더 보자꾸나.》
림성욱의 안해 은경이가 경대앞에 마주선 미영을 등뒤에서 살그머니 그러안으며 미소를 짓자 미옥이와 철남이도 덩달아 웃었다.
은경은 어제저녁 오래간만에 미영이네 형제들과 마주 앉아서 식사라도 한끼 나누려고 그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했다. 미영은 평양에 올라와 새 집을 꾸리느라 두루 할 일이 많았으나 은경의 성의가 하도 고마와 동생들과 함께 하루밤 소장의 집에서 잠까지 자고 오늘 첫 출근준비를 하는참이였다.
림성욱은 지난밤에도 일이 바빠서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요즘은 아예 사업소합숙에 나가서 숙식을 하였다. 은경의 말에 의하면 벌써 몇해째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며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날이 잦다고 했다.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설계기관을 책임지고 늘 분주히 지내니 그럴수 있을것이였다. 그러나 미영은 오래간만에 은경이와 하루밤을 보내면서 소장이 가정에 대해 등한한것은 듣던바대로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는것을 느꼈었다. 은경은 자기에게 관심이 덜한 남편에 대해 푸념하면서 때때로 한숨을 쉬였다.
미영은 그런 은경이한테 은근히 동정이 갔다. 미영은 밤에 은경이와 한이불속에 눕자 이즈막 자기 생활에서 일어난 꿈같은 일들을 속삭이듯 말했다.
뜻밖에도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창광거리설계집단에 그를 불러주신 일, 성욱소장이 황주로 찾아왔던 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미영의 아버지의 유고설계도면까지 친히 보아주시고 30층설계과제를 안겨주신 일… 다시금 그런 얘기를 나누다가 은경은 미영의 손을 꼭 잡아쥐며 목메여 말했다.
《그래… 그래… 그이께서는 그렇게 인정깊은 분이시다. 너희 부모님들이 살아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창밖에 솟아오른 달이 그들의 베개머리에 명주자락같이 희고 엷은 빛을 드리웠다.
《정말 어머님생각이 자꾸만 나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는 살것 같지 못하더군요.》
미영은 자기의 길지 않은 인생에서 어머니마저 잃고 넋없이 울던 때의 슬픔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있었다. 그날 먹장구름이 낮게 드리운 하늘에서는 장마비가 모질게도 쏟아져내리였다. 연 닷새동안이나 지겨웁게 퍼붓는 폭우였다. 밤에는 문창호지를 찢어발기듯이 번개불이 펑긋거리였다. 왜 날씨도 그렇게 사납기만 했던가. 마을사람들은 어쩌는수 없이 온 천지에 휘뿌옇게 서린 비발속에서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의 령구는 뒤산자드락으로 느리게 올라갔다. 미영은 비에 홈빡 젖어버린채 어머니의 령구를 따라걸었다. 얼마후 마을사람들은 정신없이 령구에 다가드는 미영을 달래면서 어머니를 묘혈속에 안장하기 시작했다. 붉은 흙의 봉분이 솟아올랐다. 미영은 어머니의 묘앞에 엎어져 울면서 통곡을 했다. 대답없는 땅속의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면서 땅을 허비는 미영의 손가락들 짬으로는 뻘건 진흙물이 슬픔의 응어리처럼 비집고나왔다. 미영은 그날 어머니의 묘소에서 어떻게 발길을 돌렸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까무라친채로 마을사람들에게 들리워 집에 와 누웠다가 의식을 차리였는데 움켜쥔 손이 펴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손가락들을 펼쳐보니 진흙이 꾸덩꾸덩 말라가고있었다. 미영은 그 진흙덩이를 넋없이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그의 손금자리가 또렷이 찍혀있었다.
《전 그날 내 손금이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 보았어요. 그리고는 서러움이 북받쳐올라 또다시 흐느껴 울었어요.》
《그랬구먼.》
은경은 이불속의 미영이 손을 꼭 잡아쥐면서 뜨거운 눈물을 삼키였다. 미영의 량쪽 눈귀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며 은은히 비쳐드는 달빛에 반짝이였다. 미영이 단잠에 들었다가 잠결에 얼핏 눈을 떠보니 은경은 그의 곁에 앉아서 연신 눈굽을 찍어내고있었다. 은경은 온밤 그렇게 앉아있다가 새벽녘에 부엌으로 나갔다. 무엇이든 갖가지 찬을 만들어 미영이네 형제들을 기쁘게 해주고싶었던것이다.
그들 세남매는 은경이가 차려준 밥상앞에서 목이 메여버리였다. 은경이도 눈빛이 흐려진채 미영이의 손등을 하염없이 어루만져주었다.
《미영아, 옛일은 다 잊자. 난 네가 창광거리설계를 잘해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기쁨을 드리길 바란다. 넌 꼭 그래야 한다. 오늘은 첫 출근인데 많이 먹구 나가거라. 미옥이와 철남이두… 너희들은 만경대루 놀러가겠다지?》
은경은 미옥이와 철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또다시 눈굽을 훔치였다.
가을철치고도 유난스레 청신한 아침이였다. 해빛은 벌써 거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미옥이와 철남이가 만경대로 간다며 흥이 나서 은경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밖으로 뛰여나갔다. 뒤이어 은경이도 출근시간이 되여서 미영이와 함께 거리에 나섰다. 그는 젊어서 수예를 배우고 한평생 수를 놓는 녀인이였다. 림성욱이보다 나이가 썩 아래인 그는 지금도 몸단장을 잘하고 길에 나서면 중년부인처럼 젊어보였다. 은경은 미영이와 헤여질 길목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손에 들었던 밥보자기를 미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사업소에 가면 광훈이아버지한테 갖다드려라.》
《알겠어요, 광훈이어머니. 소장동지때문에 너무 걱정마세요.》
미영은 측은한 생각이 들어 은경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그래, 난 안다. 너희 소장이야 집을 지을 생각밖에 없지. 할수 없어. 건축가는 잡념이 없어야 하니까. 내가 우리 령감을 리해하고 살면 되지 않겠니?》
누구나 행복하다고 보는 은경에게도 이런 남모르는 그늘이 있었는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장동진 정말 광훈이어머니를 잘 만났어요.》
미영은 발랄한 제 성미대로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울기도 잘했지만 웃기도 잘했다.
《무슨 소릴… 내가 시집을 잘 왔지. 미영아, 집도 멀지 않은데 이젠 자주 놀러오너라.》
《네, 오겠어요.》
두 녀인은 길거리에서 헤여졌다. 미영은 그 길로 사업소에 도착하자 소장실부터 찾아갔다.
《소장동지, 안녕하세요?》
림성욱은 설계도면을 들여다보고있다가 처녀의 맑은 목소리에 머리를 들었다.
《음, 미영이가 왔구나. 어서 여기와 앉거라. 새 집이 마음에 들더냐?》
《네, 어제밤엔 소장동지네 집에서 잤어요. 아주머님이 저희들을 데리러 왔댔어요.》
《거 잘했구나.》
성욱은 걸상에서 움쭉 일어나 흥분한 사람처럼 방안을 몇발자국 뚜걱뚜걱 거닐었다.
《그럼 여기다 전화라도 걸게지. 내 잠간 들어가 저녁이라두 같이 먹는걸… 우리 집사람이란 언제봐두 그래.》
《소장동지두… 옳지 않아요. 괜히 아주머님을 나무라시는군요.》
림성욱은 응석기가 어린 미영의 말에 기분이 좋은듯 빙그레 웃었다.
《됐다. 미영이가 싫다면 로친네 욕은 그만두자꾸나.》
《약속했어요!》
《그래… 그래… 약속했다.》
《그리구 될수록 자주 집에 들어가겠다는것도 약속해주시구요.》
《집에 자주 들어가라? 허허… 그래, 그것두 약속했다.》
림성욱은 오래간만에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미영은 서둘러 책상우에 밥보자기를 풀어놓았다.
《아주머님이 보냈어요.》
《원, 이런… 미영이가 나한테 밥보자기까지 들고다니구. 미영이, 오늘 설계실에 가서 함께 일할 동무들과 인사를 하고는 빨리 수속을 끝내야겠다. 하루빨리 아이들도 학교에 붙여야 안착해서 일을 하지. 미영이가 맡은 과업이 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직접 과업을 주셨는데 걸작으로 만들어내야지.》
그러지 않아도 이젠 우물쭈물할 사이가 없다고 생각하여 출근길에 오른 미영이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어떤 영광을 안겨주시였는가. 30층살림집, 그런 고층집설계는 성욱이와 같은 큰 건축가들만 감당해낼수 있는것이다.
《왜 대답이 없냐?》
미영은 얼굴을 수굿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장동지, 많이 지도해주십시오. 전 정말 겁이 나요.》
《미영의 그 마음을 리해할수 있어. 사실 나도 30층주택에 제일 유능한 설계가를 붙이려고 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설하는 초고층주택이 아니냐. 그런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그런 신임을 안겨주셨으니 결심을 단단히 해야 한다. 그이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니. 어떤 일에서나 할수 있다는 신심이 중요하다고 하셨지. 나도 그이를 받들고 사업하면서 능력이 딸려 번민할 때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명한 가르치심에 어떻게든 보답해야 한다는 강심을 먹고는 다시 일어서군 했어.》
림성욱은 천천히 걸상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섰다. 가을빛이 짙게 어린 뒤뜰안에서 나무가지들이 설레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설계실에 가서 동무들과 인사를 나누자.》
성욱이가 창가에서 물러서며 말했다. 미영은 소장이 문쪽으로 앞장서 걸어간 후에도 얼른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잠시 움직이질 못했다.
미영은 우선 사업소당위원회에 들려 인사를 하고 설계실로 찾아갔다. 이른 아침의 밝은 해빛이 따스하게 비쳐드는 설계실안으로 들어선 미영은 출입문가에 조용히 멈춰섰다. 늘쌍 아버지가 작도에 열중하군 하던 바로 그 설계실이였다. 그가 나타나자 여기저기 책상앞에 앉아 일감에 파묻혀있던 설계가들이 저마끔 다가와서 반갑게 손을 잡아주었다. 그들중에는 이미 미영이와 안면이 있는 로설계가들과 남정기 그리고 대학시절의 상급생인 경애도 끼여있었다.
남정기는 주위에서 왁짝 떠드는 속에서 눈물이 그렁해진 미영이한테 말없이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어쩐지 그의 얼굴이 몹시 축간것 같았다. 하지만 미영은 늘쌍 일에 들볶이는 사람이여서 그렇겠거니 하고 무심히 스쳐보냈다.
《미영이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신임을 받고 우리한테 소환되여왔는데 모두들 잘 도와주어야겠소.》
림성욱은 모두에게 한마디 말하고나서 미영이를 창문가의 책상앞으로 데리고갔다.
《미영이, 이 책상에서 일하라구.》
미영은 순간 앞이 콱 흐려졌다. 그는 첫눈에 아버지의 책상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바로 이 책상이였다. 한쪽귀퉁이에 생긴 저 작은 옹이구멍!… 미영은 어릴 때 아버지를 찾아 이 방에 오기만 하면 매번 옹이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오비작거리며 장난을 하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했다. 철없는 소녀는 책상우에 콤파스를 꽂고 기중기팔처럼 돌리면서 무던히도 아버지의 일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영아, 그럼 못써. 아버지가 설계한 집이 삐뚤어져.》 하고 나무라군 했다. 아버지의 그 부드럽고 애정에 넘친 음성이 지금도 미영의 귀전에서 쟁쟁히 울렸다.
미영은 금시 눈물을 흘릴것 같아 입술을 사려물었다. 오늘은 자기의 명랑한 모습을 선배며 동년배의 설계가들에게 보이고싶었다.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떨리는 두손을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아버지의 넋이, 아버지의 온기가 온몸에 흘러들고 영원히 꺼진줄 알았던 아버지의 심장의 고동소리, 설계도면우로 달리는 연필소리가 다시금 들리는것 같았다. 오랜 세월 망각속에 묻혀 그 누구도 들을수 없었던 그 모든 음향이 귀전에 다시 울려왔다. 순간 미영은 끝내 자신을 다잡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말았다. 수정같이 맑은 눈물방울이 책상우에 떨어졌다. 미영은 어깨를 떨며 서있었다. 옆의 사람들도 눈물을 머금었다. 성욱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미영은 비로소 머리를 쳐들었다. 밝은 미소가 눈물이 맺힌 눈가에 함뿍 어리였다.
《제가… 또 울었군요. 이젠 안울겠어요.》
미영이 이렇게 속삭이자 곁에 서있던 성욱이가 굵은 음성으로 무게있게 말했다.
《너를 이 자리에 앉게 한것은 네가 바로 그러기를 바랐기때문이다. 오늘밤에 륜환선거리에 남아있던 마지막건물들을 완전히 폭파해버린다. 어서 가서 수속을 끝내거라. 참 이것도 갖구 가야지.》
림성욱이 안주머니에서 입사증을 꺼내 미영이한테 주었다. 설계가들은 미영을 기쁘게 해주려고 집들이를 단단히 하라면서 일부러 법석 떠들었다. 미영은 그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복도로 나왔다. 대학시절의 상급생인 경애가 살그머니 미영을 따라 나섰다. 그는 미영의 손을 꽉 잡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미영이, 오늘저녁 너희 집으로 갈테야. 좋지?》
경애도 이름있는 설계가의 딸인데 미영이라면 오금을 못쓴다.
《언니, 래일 만나자요.》
《좋아, 그럼 래일 갈래.》
미영은 경애와 헤여지자 사업소를 총총히 나섰다. 오늘은 경애와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밤에 륜환선거리를 완전히 없애버린다지 않는가. 미영은 만사를 젖혀놓고 폭파현장에 나가 륜환선거리가 영영 날아나버리는 광경을 보리라 맘먹었다. 그 놀라운 사변을 제눈으로 똑똑히 보지 못하면 한생 후회될것 같았다.
이날 저녁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울렁거려 미옥이한테 부엌일을 맡겨버리였다. 그가 륜환선거리폭파현장으로 떠날 차비인것을 보고 동생들도 저마끔 따라나서려고 덤벼쳤다. 그러나 어린 동생들까지 폭파현장에 데리고 갈수없는 일이여서 미영은 그들을 타일러 겨우 집에 눌러앉히고 날이 어두워지기 바쁘게 보통강쪽으로 가는 무궤도전차에 올랐다. 륜환선거리에 이르러 전차에서 내린 미영은 한순간 걸음을 옮겨놓지 못한채 가슴을 들먹이며 서있었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모여든 식솔들의 단란한 웃음소리와 밤마다 수천세대의 살림집창문들에서 흘러나오던 불빛으로 하여 흥성이던 거리가 캄캄하고 괴괴하였던것이다.
잠시 어둠에 익숙되고보니 불도젤로 밀어제낀 집들이 적지 않았지만 아직은 거리형체가 그냥 남아있었다. 그것들을 통채로 날려버린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미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어둠뿐이였다. 저쪽 건설장변두리에 지어놓은 돌격대숙소라고 짐작되는 창문들에서 전등불이 깜박이였다.
미영은 거기 건설지휘부로 찾아가면 아는 사람들이 있을것 같아 재빨리 걸음을 다우쳤다. 다음순간 그는 불시에 날아든 고함소리에 두손으로 가슴을 싸쥐면서 와뜰 놀랐다.
《동무!》
웬 사람이 어둠속에서 전지불을 켜들고 불쑥 나타나며 꽥 소리쳤다.
《어디라구 가? 살고싶지 않소?》
《저쪽에 건설지휘부가 있지 않는가 해서… 전 설계가예요.》
전지불이 미영의 가슴에 날아들었다.
《가만, 이게 누구야? 미영동무 아니야?》
욕설이 순식간에 환성으로 돌변했다.
《누구세요?》
미영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미영동무, 날 모르겠소? 강철준이요.》
전지불이 이번에는 사나이의 얼굴을 비쳤다. 미영이도 손벽을 치며 환성을 올렸다.
《아이, 철준동무! 정말 몰라보겠네.》
철준은 미영이와 함께 고등중학교를 마치고 군대에 입대한 청년이였다. 그후 전혀 소식을 모르다가 륜환선거리폭파현장에서 만난것이다. 어떻게나 모습이 달라졌는지 서로 이름을 잊지 않고있는것만도 다행이였다.
《그래 지금 어디서 일해요?》
《보다싶이 난 재작년에 제대되여 건설자가 되였소.》
미영은 청년의 후리후리한 키며 쩍 벌어진 어깨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소? 참 지금은 건설지휘부에 가도 사람을 만나지 못하오. 모두 현장에 나갔으니까. 잘 왔소. 동문 이제 여기서 력사적인 사변을 보게 될거요. 조금후에 륜환선거리가 날아나오, 날아난단말이요.》
철준은 흥분해서 부르짖었다.
《알고있어요.》
미영은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리였다.
《난 이 길목의 감시를 맡았소. 저기 가서 잠간 이야기를 하잖겠소?》
《그러자요.》
철준은 미영의 발부리에 전지불을 켜대며 길안내를 했다. 얼마가지 않아 통나무무지가 나타났다. 철준은 벙어리장갑을 벗어 미영이가 앉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통나무우의 먼지를 툭툭 털었다.
《앉소.》
철준은 전지불로 깨끗해진 통나무를 비쳐보이고나서 자기도 미영이곁에 걸터앉았다.
《미영동문 아버지처럼 건축가가 되겠다더니 성공했구만.》
《난 희망대로 건설대학을 나왔어요. 이번에 여기 창광거리 30층주택설계도 맡았구요.》
미영은 천진했던 시절의 동무를 만난김에 스스럼없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렇소? 미영동문 대단한 설계가로 됐구만. 30층주택이야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설하는 초고층살림집이 아니요?》
《나한테는 너무 아름찬 과제예요. 온전하게 해내겠는지 모르겠어요.》
미영은 자기가 30층살림집설계를 맡게 된 사연을 사실대로 말해주고싶었지만 장소도 적합하지 않고 또 제자랑을 늘어놓는것 같아 그만두었다.
《여하튼 반갑소. 우리 평양시련대가 바로 그 30층을 건설하게 되오.》
《그래요?!》
미영은 철준이한테서 큰 도움이라도 받을듯싶어 무작정 기뻐했다.
《미영동무, 걱정할것 없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선 이 락후한 거리를 날려버리고 사회주의리상거리를 건설할 구상이시오. 난 요즘은 여기에 솟아나게 될 웅장한 거리가 눈앞에 얼른거려 밤잠을 이룰수 없소. 이 넓은 거리에 수많은 고층살림집들이 일떠서고 그 모든 창문들에 불이 환히 켜지면 정말 볼만 할거요. 한번 본때를 보이오. 건설혁명이 시작되였는데 미영동무도 대담하게 설계하란 말이요. 나도 이삼년 건설을 해보니까 딴게 없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구상을 받들자면 첫째두 둘째두 대담해야 하오. 그 위대한 구상을 담이 없이야 어떻게 받들겠소. 내 여기 제대군인소대를 책임지고있는데 미영동무의 설계대로 30층주택을 멋들어지게 일떠세우지. 모두들 깜짝 놀라게 설계를 하오, 놀라게… 그래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기뻐하시오. 난 그렇게 생각하오.》
불같이 뿜어대는 말에 미영은 기운이 솟고 신심이 생기는것을 느끼였다.
《철준동무. 정말 고마와요.》
《고맙긴… 우리야 어린시절의 벗이 아니요. 오늘을 꿈꾸며 함께 자라나지 않았소. 우리 집에도 놀러오오. 아동백화점옆의 아빠트에 와서 강두찬지배인이 어디서 사는가고 물으면 제꺽 찾소.》
미영은 그제야 철준의 아버지가 건설사업소 지배인이였던것도 비로소 생각났다.
《우리 집에 다니면서 미리 호랑이같은 지배인과 친해두는것도 나쁘지 않을거요.》
철준은 어른스럽게 껄껄 소리내 웃었다.
멀지 않은 곳의 어둠속에서 무거운 밤대기를 째며 야무진 호각소리가 울리였다. 다급한 발걸음소리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미영은 드디여 폭파시간이 박두했음을 직감하고 철준을 쳐다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각이 다가온듯 싶었다.
《미영이, 폭파요!》
통나무우에서 벌떡 일어난 철준은 무작정 미영의 손목을 잡고 다급히 어둠속을 달렸다. 미영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철준은 허물어진 건물의 지하실로 미영이를 끌고 뛰여들며 《허리를 굽히오!》 하고 짤막히 말했다. 미영은 얼른 머리를 숙이고 철준을 따라 몇발자욱 끌려갔다. 눈앞이 캄캄하여 한치앞도 가려볼수 없었다. 그의 발에 채운 빈 양철통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만이 귀아프게 들리였다.
《철준동무, 왜 여기로 왔어요?》
《폭파라지 않소.》
철준이는 미영이를 한쪽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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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철준이는 미영이를 한쪽켠에 눌러앉히고 가쁜 숨을 몰아쉬였다. 미영은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싶었다. 하지만 철준은 미영이앞에 바위처럼 웅크리고앉아 비켜줄념을 안했다. 하기야 철준이가 이밤 륜환선거리를 찾아 온 그의 심정을 어떻게 알수 있겠는가. 미영이가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보려고 앞을 살피는 순간 꽝! 첫 폭음이 요란히 울리였다. 지하실이 움씰거리였다. 미영은 련이어 천지를 뒤흔드는 폭파소리에 소스라치며 벌떡 일어섰다. 세찬 진동에 아래다리가 휘청거리였다. 하지만 미영은 앞으로 몸을 솟구쳤다. 무섬증은 말끔히 사라지고 드센 충격으로 심장이 짜릿하게 아파났다. 그것은 환희였다. 오랜 세월 가슴속에 묻혀있던 멍이 풀리는 아픔이였다. 미영은 두손으로 가슴을 움켜잡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억센 힘이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미영이, 정신있어?》
철준이가 그의 팔을 움켜잡고 성이 나서 부르짖었다. 미영은 철준의 손을 뿌리치려고 모지름을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철준동무, 좀 나가보자요. 난 봐야겠어요. 동문 몰라. 내 심정을… 놔줘요. 어서!》
미영은 목메여 웨쳤다. 마침내 철준의 억센 손아귀가 맥없이 풀리였다. 미영의 웨침에서 그 어떤 비장한 애원을 느낀 모양이였다. 미영은 지하실밖으로 와락 뛰쳐나갔다. 바로 지척에서 몇채의 건물이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풀썩 내려앉았다. 검은 먼지기둥이 밤하늘을 가리우면서 치솟아올랐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어둠속을 배회하다 캄캄한 공사장우로 퍼져나갔다. 우르릉 쾅! 흙먼지가 자욱히 서린 륜환선거리의 중간쯤에서는 아직도 폭음이 둔중하게 울려왔다. 눈이 쓰리였다. 꿈을 꾸는듯싶었다. 미영은 무너져내린 벽돌무지앞에 주저앉았다. 너무나 큰 충격으로 해서 허탈상태에 빠졌다고 해야 할지, 행복에 취했다고 해야 할지 자신도 알수 없는 심정으로 한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는 어둠도 느끼지 못하였다. 자기의 쓰라린 지난날 같은것은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바람에 날려 흙먼지가 사라지자 차츰 황량한 공지가 륜곽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륜환선거리의 초라한 몰골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여기가 이전의 륜환선거리였음을 알려주는것은 큰길 량켠에 기우뚱히 서있는 무궤도전차선로 기둥들뿐이였다. 그밖에는 본래의 모양 그대로 남아있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륜환선거리는 없어졌다. 이제 평양에서 륜환선거리의 그 볼꼴없던 모습은 영원히 사라졌다. 미영은 무너져내린 벽돌더미옆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와 함께 이 빈터우에 30층주택을 일떠세워야 한다는 가슴벅찬 자각이 심장을 지그시 압박하였다. 흙먼지가 덮인 볼을 씻어내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영은 그제야 철준이가 생각나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철준이의 행처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던 미영은 흠칫 놀랐다. 철준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난데없이 유민호가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
《미영동무.》
유민호는 가까이로 다가오면서 무랍없이 악수를 청하였다.
《방금전에 퇴근하다가 여기 서있는 동무를 봤소.》
《오래간만이군요.》
미영은 쉬이 나가지 않는 말을 힘겹게 하며 손을 내밀었다.
《남선생한테서 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소. 잘됐소.》
《고마와요.》
《그런데 이 폭파현장에는 왜 나왔소?》
미영은 뜻밖의 물음에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몰랐다. 륜환선거리가 통채로 폭파되였는데 유민호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흥분도 찾아볼수 없었다. 이 자리와 별로 인연이 없는 사람이니 흥분이 없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도 랭담할수 있을가?… 물론 미영은 외관상 유민호에게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좀전에 보니까 위험한줄도 모르고 여기에 서있더구만. 사처에서 집이 꽝꽝 무너지는데 무섭지도 않소?》
미영은 여전히 잠자코 서있었다.
《이거 괜히 실없는 소릴 했나보군.》
유민호는 웬일인지 무거운 한숨을 후 내쉬였다.
미영은 가슴 한구석이 아프게 저려왔다.
《민호동무.》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마음과는 달리 차겁지도 뜨겁지도 않게 조용히 말했다.
《보세요. 륜환선거리가 없어졌어요. 그러니 지난날의 미영이도 지난날의 일도 다 없어졌어요. 안녕히 가세요.》
지금 이 시각 미영이한테는 유민호의 그 어떤 속죄가 있다 해도 그것은 이미 아무런 의의도 없었던것이다. 그는 획 몸을 돌려 드넓은 공지로 변해버린 이전의 륜환선거리 복판을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