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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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떨어진 락엽들이 누렇게 덮인 대동강유보도우에서 정무원 총리와 여러명의 건설부문 일군들이 김정일동지를 기다리고있었다. 요즘 건강이 좀 회복된 김일부주석도 지팽이를 짚고 나와있었다. 황이 든 나무잎들이 바람에 날리며 발치에 떨어져내렸으나 그의 몸가짐은 곧고 꿋꿋했다. 얼굴의 혈색도 좋아진게 알리였다. 올해 여름따라 건강이 나빠져 침대우에서 운신을 못하던 그였다.
《아, 저기 오시누만.》
강뚝우에 올라서신 김정일동지를 선참으로 발견한 김일이 나직이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지팽이를 짚으며 그이를 향해 큰 걸음을 옮기였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총총히 마주 가시였다. 먼저 김일부주석과 인사를 나누시고 이어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신 그이께서는 먼발치에서 옹색하게 서있는 늙은 구두수리공쪽으로 돌아서시였다.
《로인님, 어서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그이께서는 어쩔줄을 몰라하는 늙은이에게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누구입니까?》
김일이 그이께 물었다.
《구두수리공로인입니다. 방금 신발을 닦아신고 나오는 길입니다. 평양에서 일생 살아오신 토배기로인이십니다.》
일군들이 늙은이앞에 다가서며 인사를 했다. 늙은이는 어떻게 인사를 나누어야 할지 알수가 없어 그저 허둥거리기만 했다.
《가만… 그런데 저 처년 누구요?》
기분이 사뭇 유쾌해진 김일이 저쪽 버드나무밑에 홀로 서있는 처녀를 가리켰다. 모두들 김일이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았다. 처녀가 황황히 깊숙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심운호동무의 맏딸 미영입니다.》
성욱이가 김정일동지께 나직이 귀뜀해드리였다.
《아, 미영이, 어서 오라구.》 하시면서 김정일동지께서 김일부주석에게 알려주시였다. 《50년대말에 대극장을 설계한 그 설계가의 딸입니다.》
그이의 음성은 유난히 밝았다.
《그 사람한테 저런 딸이 있었구만요. 아, 오래전 사람이지.》
김일이 탄식하듯 나직이 중얼거리였다. 흰 적삼에 깜장치마를 단정하게 받쳐입은 처녀는 김정일동지의 다정한 음성이 귀전에 울려온 순간 엎어질듯 앞으로 달려왔다.
어느덧 강건너 문수벌 하늘에 솟아오른 태양이 눈부신 빛발로 처녀의 갸냘프면서도 탄력있는 자태를 더욱 선명히 드러냈다. 금시 수정같은 이슬이 처녀의 눈에 가득 고여올랐다. 미영은 겨우 몸을 가누며 걸음을 뗐다.
황이 든 락엽이 그의 발밑에 밟혔다. 고요한 강변에는 묵은 나무잎이 부서지는 소리만이 울리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처녀는 어깨를 떨며 목메여 말을 못했다.
미영이가 자기 아버지때문에 그런다는것을 알아차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바삐 달려오는 처녀가 쓰러질것만 같아 부축해주시려는듯 팔을 드시였다.
《됐어, 륜환선거리는 이제 없어져. 대극장과 로동자아빠트는 아버지의 명예와 함께 남아있구. 그러면 됐지. 이젠 울지 않아도 돼.》
그이께서는 활달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아버지가 남긴 유고도면이나 보자구.》
미영은 황황히 눈물을 씻고 잔디밭우에 놔두었던 설계도면말이를 가져왔다. 성욱이가 미영을 도와 그 도면을 펼쳐들었다. 8절지크기의 도화용지에 그린 고층살림집주택형성안은 모두 일곱장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매 도면들에는 우리 나라 수도의 한복판에 유럽의 제일 뒤떨어진 촌집같은것을 앉혀놓았던 설계가가 자기의 과오를 씻으려고 고심한 흔적들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특히 20층짜리 병풍식모양의 다층종합주택모형도와 25층짜리와 20층짜리가 배합된 계단식탑식주택모형도가 이채로왔다. 매 도면을 주의깊게 살펴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직이 한숨을 쉬시였다.
《아까운 사람을 잃었습니다. 미영의 아버지가 살아있으면 지금같은때 정말 단단히 한몫 하겠는데 잘 건사해두었다가 창광거리주택설계를 하는데 참고합시다. 계단식탑식주택은 조금만 변형시키면 창광거리에 앉힐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 문제는 후에 다시 의논하기로 하고 이젠 유람선에 오릅시다.》
김정일동지께서 미영의 등을 가벼이 떠미시며 강옆에 붙은 유람선을 가리키시였다.
《자, 로인님도 배에 오르십시오.》
그이께서는 김일의 곁에 나란히 서있는 구두수리공로인한테도 손짓을 하시였다.
《아니… 오늘 정말 배놀이를 조직하신게 아닙니까?》
김일이 진정으로 놀라와하며 물었다. 원체 입이 무거워 늘 무뚝뚝해보이는 그였으나 오늘은 기분이 좋아 전에없이 말을 많이 했다.
《가을도 한창인데 대동강이 얼어붙기전에 배놀이를 하는것도 좋지 않습니까. 혹시 지금껏 못보신 새 경치를 구경하게 될지 알겠습니까?》
그이의 호방한 말씀에 김일이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날듯이 경쾌하게 몸을 흔들며 유람선은 기슭을 떠났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손으로 허리를 짚고 유람선의 란간을 쥐고 갑판우에 서계시였다. 김일도 그이의 곁에 있고싶어 선실에 들어가지 않고 지팽이에 육중한 몸을 의지한채 우뚝 서있었다. 그는 란간이 옆에 있었으나 건강한 몸을 김정일동지께 보여드리고싶어 란간도 잡지 않았다. 유람선은 쾌속으로 달렸다. 가을빛이 짙어가는 대동강 량쪽기슭의 풍경이 느물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물러가기도 했다. 강뚝너머 저멀리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높이 솟은 건물들의 륜곽이 뚜렷이 안겨왔다.
한무리의 물오리떼가 배전가까이에 날아와 앉았다. 물결을 따라 한가로이 떠내려가며 자맥질을 하군 하는 물오리떼들의 두리에서 해빛이 보석처럼 부서져 반짝이였다. 유람선은 옥류교밑을 지났다. 명상에 잠겼던 그이께서 동평양쪽기슭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제가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한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같이 주체사상탑의 위치를 확정짓자는겁니다. 지난번 당중앙위원회 협의회에서 주체사상탑을 건립하기로 토론이 있은 후 설계가들이 달라붙어 짧은 기간내에 탑형성안을 훌륭하게 완성하였습니다. 이제 주체사상탑이 일떠서면 그 높이와 규모, 조형예술적측면에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석탑으로 위용을 떨치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탑의 위치가 신통치 않아 론의가 분분합니다. 도시계획설계가들이 제기한 안들가운데는 련못동입구에 탑을 세우자는 안도 있고 송신쪽에 세우자는 안도 있는데 그곳은 너무 변측이 돼서 적당한것 같지 못합니다. 다른 한가지 안은 저 문수지구 한복판에 세웠으면 하는데 그것이 좋겠는지 이 배우에서 한번 가늠해보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 가리키시는 문수쪽상공에 시선을 박은 김일은 상상속의 탑을 눈앞에 그려보는듯싶었다. 한참후에 그는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거기도 자리는 기막히게 좋은것 같습니다. 수령님께서 금수산의사당 정원에 산책을 나오시면 마주 건너다보실수 있는 곳이니 아주 좋을것 같습니다.》
《그 안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 점을 중시한것 같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찬성하신다면 저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좋은 자리이긴 합니다만 역시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변두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네, 그게 좀 아쉽습니다. 앞으로는 문수지구도 도심지대로 되겠지만 우리 평양의 한복판이야 김일성광장이지요. 내 생각 같아서는 김일성광장을 끼고있는 남산재우에 주체사상탑을 세웠으면 제일 좋겠는데 그 자리는 수령님께서 인민을 위한 대학습당자리라고 오래전부터 점찍어두시였으니 어쩔수 없지 않습니까.…》
《자리도 그렇지만 수령님께서는 주체사상탑을 세우는것 자체도 현재는 확답을 미루고계십니다. 개선문도 꼭 세워야겠는가고 하시며 승인을 하지 않고계십니다. 탑위치문제를 놓고 수령님과 토의해볼수 없는것도 그런 사정때문입니다. 그런만큼 자리랑 우리끼리 토의해서 결정을 짓고 수령님께서 반대하실수 없게 정치위원회에서 주체사상탑과 개선문을 세울데 대한 결정을 눌러야 할것 같습니다.》
《남산재우에 세울수 없는바하고는 광장앞의 대동강반 유보도쪽이 어떻겠습니까?》
순간 김정일동지의 얼굴에 함뿍 웃음이 피여났다.
《그건 제 생각과 비슷합니다. 저도 수도의 중심인 김일성광장앞 대동강반에 세우자는것입니다. 그러되 본평양쪽의 대동강반에 아니라 광장에서 곧바로 건너다보이는 동평양쪽 강반에 세우자는것입니다,》
김일부주석은 기쁨을 참을수 없어 대번에 얼굴이 희벗해졌다.
《그게 정말 좋겠습니다. 거기야말로 과시 둘도 없는 명당자립니다. 해뜨는 동녘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주체사상탑의 웅장한 모습이 대동강에 비낀 광경을 상상만해도 기막힙니다.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김일은 이제야 주체사상탑이 제자리에 면바로 앉게 된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열띤 음성으로 찬성을 표시했다.
《자, 그럼 그쪽에 내려가 그 자리를 다시한번 음미해봅시다.》
릉라도를 감싸안고 돈 유람선은 청류벽과 옥류관밑을 지나 대동문앞으로 내려왔다. 김정일동지의 지시에 따라 유람선은 광장앞기슭에 한동안 멎어섰다. 일행은 그이께서 지목하신 동평양쪽의 강반을 건너다보며 다들 자기나름대로 거기에 일떠설 거대한 탑을 그려보았다. 그곳은 미구에 남산재우에 올라앉게 될 인민대학습당과 같은축상에 놓인 대칭지점이였다.
《평양의 중심은 김일성광장입니다. 거기에 주체사상탑을 세우면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뒤에는 인민대학습당이 솟고 그 맞은쪽에는 주체사상탑이 솟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세계 그 어느 나라 사람들이 평양에 와봐도 대뜸 여기가 수령관이 확고히 선 인민의 도시라는것을 직감적으로 느낄수 있게 될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총리를 향해 돌아서며 물으시였다.
두손을 엷은 가을외투앞의 배허벅에 모아쥐고 눈을 쪼프린채 황이 들어가는 백양나무가 가을바람에 설레이는 동평양기슭을 건너다 보던 총리는 반백의 머리를 쳐들며 단마디명창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이미전부터 대찬성입니다.》
《이미전에요?》
김정일동지께서 웃음을 머금으시였다.
《네, 광장맞은편 대동강반에 탑을 세우면 어떻겠는가를 고려해보라고 지도자동지께서 전화로 말씀하셨을 때 여기 나와보고 특등가는 명당자리는 바로 저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이상 더 좋은 자리는 없습니다.》
기실 총리도 어지간히 흥분되여있었다.
《음.》
김일이 히죽이 미소를 지었다. 배전에 서 있던 일군들도 일제히 찬성을 했다.
《로인님은 어떻습니까? 어디 한번 기탄없이 말씀해보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구두수리공로인쪽으로 돌아서시며 활달한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우리 집에서 내다보면 바로 저기가 해뜨는 자리입니다. 주체사상탑이야 해뜨는 자리에 세우는것이 천백번 옳습지요. 지도자선생님, 꼭 저기다 세워주십시오.》
늙은이는 너무 감격하여 두손을 활짝 쳐들었다.
《미영이 생각은 어때? 새 세대 건축가의 견해도 들어봐야지.》
그이께서는 미영이쪽으로 다정한 시선을 돌리시였다. 미영은 얼른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두눈에 황홀한 빛이 어려 반짝일뿐이였다.
《김일성광장주변의 장식등들과 주체사상탑의 봉화, 인민대학습당창문들에서 비쳐나오는 불빛이 어울리면 정말 수도의 밤은… 평양의 밤은…》
미영은 시를 읊듯이 나직이 속삭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여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김일부주석도 정무원 총리도 다른 여러 일군들도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이께서 마감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시였으나 김일이 앞질러 말했다.
《뭐 들어보나마나 할것 같습니다.》
《부주석동지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희들은 정말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림성욱이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말씀드렸다.
《그럼 모두들 좋다고 하니 주체사상탑의 위치는 확정된셈입니다. 이제는 한시름 놓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감개무량하신 어조로 매듭지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지체없이 즉석에서 김광성과 성욱이를 불러 다음 사업을 포치하시였다.
《이제는 자리를 확정한것만큼 설계를 다그치면서 탑기초공사를 착수해야 하겠습니다. 탑기초에 문제될것이 없겠는지 면밀하게 알아봐야겠습니다.》
《예.》
림성욱은 그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제꺽 답변을 드리였다.
《주체사상탑의 기초설계에 각별한 주목을 돌려야 합니다. 자, 그럼 한바퀴 더 돌면서 강바람이나 좀 쏘이고 헤여집시다.》
경쾌하기 달리기 시작한 유람선은 주체사상탑자리로 정해진 동평양기슭을 스쳐지나 옥류교쪽으로 거슬러올랐다. 날듯이 달리는 유람선뒤에서 흰 물바래가 날아올랐다. 배전에까지 물방울들이 튀여올랐다. 서늘한 강바람이 흥분한 얼굴들을 식혀주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란간을 잡고서서 남산재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구두수리공로인곁에 다가서시였다.
《로인님,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여기서 보이는 평양이 어떻습니까?》
그이께서는 늙은이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물으시였다. 서쪽 남산재쪽을 바라보는 로인의 눈길에는 어떤 아쉬움이 비껴있었다.
늙은이는 황황히 란간에서 손을 떼며 몸가짐을 바로잡았다.
《보면 볼수록 우리 평양이 좋습니다. 동서남북 하늘아래가 다 집들로 가득차구. 그런데 저 남산재너머에는 낮은 집들만 있어서 그런지 퍼런 하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늙은이가 손을 들어 가리키는쪽으로 급히 돌아서시였다. 그이의 시야속에 넓고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그밑에 보이는것은 밋밋하게 기복을 이루고 누워있는 남산과 창광산일대의 나무숲뿐이였다. 해뜨는 아침이건만 거기에선 가을빛에 불그레 물든 수림만이 가없이 열린 하늘밑에서 한가로이 졸고있는듯 하다.
《로인님, 내가 오늘 로인님과 함께 여기로 나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방금 로인님은 남산재너머의 하늘이 비여있다고 하시였습니다. 이젠 됐습니다. 창광거리의 살림집높이를 얼마나 높여야겠는지 알수 있게 됐습니다. 이젠 확신을 가지고 창광거리설계를 하게 되였습니다. 이래서 수령님께서 늘 인민이 스승이라고 하시는것 같습니다. 로인님이 말한대로 남산재너머의 텅빈 하늘을 고층건물의 숲으로 덮도록 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쁨을 금치 못하며 림성욱이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소장동무, 오늘 아주 소득이 많습니다. 창광거리에 대한 인민의 념원과 리상을 알았습니다. 창광거리건물을 평양의 어데서나 보이게 높이 세웁시다.》
《알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여기서 바라보니 창광거리와 살림집들이 적어도 20층이상은 되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옳습니다. 창광거리에 고층살림집들이 솟아나면 수도의 중심이 한결 규모가 잡히고 웅장화려해 질것입니다. 창광거리는 다양한 형식을 보장하면서 높고 웅장한 건물들로 꽉 채워야겠습니다. 인민들은 더 높은 집이 있었으면 합니다. 아직 평양시에 30층살림집이 없는데 이번에 일떠세워보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금 남산재너머의 빈 공간과 마주 서시였다. 그이께시는 텅 빈 하늘이 아니라 그 하늘중천에 가득찬 집들을 보고계시였다.
갑자기 그이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혼자 말씀처럼 나직이 물으시였다.
《소장동무, 30층살림집을 미영이한테 맡기는게 어떻습니까?》
《예?》
림성욱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왜 놀랍니까?》
《저희 설계사업소에서도 고층건물을 설계한 중견설계가들이 몇명 있지만 30층짜리 초고층건물은 누구도 설계해보지 못했습니다.》
림성욱은 고개를 숙인채 머밋거리며 대답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얼마간 수긍하시는 표정을 지으시며 아침해빛에 황홀하게 채색되여가는 강안을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시였다.
《소장동무가 자신심이 없어하는 마음은 리해됩니다. 그러나 난 아까 심운호동무의 유고작품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미영이가 어째서 오늘까지 아버지의 설계를 보관하고있었겠습니까. 자기의 잘못을 씻기 위해 노력한 아버지의 성실성을 존중했기때문이고 기회가 오면 아버지의 희망을 다소나마 이루어주고싶었기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소장동무도 심운호동무가 생존했을 때 도와주지 못한것을 괴롭게 여기는 사람인데 떠나간 친구를 위해서도 그렇고 미영이를 생각해서도 아버지와 딸의 간절한 소망을 실현시켜주고싶은 마음이 없지 않을겁니다. 난 소장동무만 잘 도와주면 미영이가 아버지의 유고를 발전시켜 얼마든지 30층설계를 해낼수 있다고 봅니다.… 30층설계를 미영에게 맡깁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림성욱은 사려깊으신 그이의 뜨거운 마음에 감동되여 눈길을 떨구었다. 김정일동지께서 늘 사람들과의 관계는 사상만이 아니라 동지호상간의 도덕의리적관계속에서 더욱 공고화될수 있다고 강조하셨는데 성욱은 지금 그 천금같은 말씀의 참뜻을 새삼스레 더 절절히 깨닫게되는 심정이였다. 그는 황황히 고물쪽으로 달려가 혼자 꿈꾸듯 이쪽을 바라보며 서있는 미영의 손을 끌고 김정일동지앞에 내세웠다. 미영은 방금전까지 눈물속에 묻혔던 두눈을 별처럼 빛내이며 그이를 우러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영의 령리하면서도 담찬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였다.
《미영이, 아버지가 일을 하면서 밤새워 도면들을 그렸을테지?…》
《네…》
미영이는 얼굴을 숙이며 말끝을 흐리였다.
《음, 건축가의 량심으로… 그렇소. 량심으로 말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영의 눈물을 보시게 될가봐 애써 밝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으나 측은한 마음만은 감출수 없으시였다.
《미영이, 내 방금 소장동무와 미영이한테 창광거리에 세울 30층살림집설계를 맡기자고 토론했소. 아버지가 남긴 도면을 연구개조해서 한번 잘 만들어보라구.》
미영이의 눈은 대뜸 휘둥그래지고 얼굴은 겁을 먹은듯 하얘졌다. 처녀는 금시 울음이라도 터뜨릴듯 입귀를 떨다가 갑자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가 어떻게 그런 초고층건물을…》
《미영인 해낼거야. 무슨 일에서나 할수 있다는 신심이 중요해. 소장동무가 잘 도와줄테니 큰 마음먹고 달라붙어보라구. 미영이도 아버지의 꿈을 실현시키고싶었겠지?…》
미영은 급기야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애타게 바랐던 념원을 생각하셔서 먼 후날에도 어떻게든 이룩해보리라 희망했던 그 꿈까지 헤아리시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자기에게 오늘의 영광스러운 과업을 맡겨준다고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격정을 다잡을길 없었다.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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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미영이 끝없이 터져나오는 오열속에 울음을 삼키며 말씀드리였다.
《그래그래, 한번 대담하게 해보라구.》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시며 만시름을 다 잊으신듯 즐겁게 웃으시였다. 따뜻한 가을볕이 출렁이는 물결에 산산이 부서지고 유람선의 고물밑에서는 새하얀 물거품이 소리치며 끓어번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