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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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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519회 작성일 21-01-0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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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2009-05-04-U01.jpg

 

                                박    윤

 

 

( 제 46 회 )

 

 

제 6 장

 

8

 

밀튼은 회담이 끝나자 제창 군용차를 서울의 륙군병원으로 몰아갔다.

티렐리사령관에게 서면보고를 제기하고 빨리 남조선군부와 협의해야 했던것이다.

그러자면 모든 조건으로 보아 우선 그 김강인병사를 한번 만나보는것이 좋을것 같았다. 남조선군부는 아마 이 기회에 그를 귀순시켜보려고 벌써부터 책략을 꾸미고있을것이다. 빨리 저지시키고 압력을 가해 넘겨받을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앞일을 예측할수 없을것이다. 티렐리사령관도 북조선군의 신경을 건드릴가봐 주저하고있고 또 그 병사문제는 김정일장군이 직접 관심하는 중대사이다.

밀튼이 륙군병원 특별병동에 들어선것은 김강인이 얼마간 몸이 회복되여 내외기자들과 만나고있는 때였다.

밀튼은 넓은 홀에 모여서있는 기자들의 어깨너머로 머리를 솟구었다.

바퀴가 달린 침대차에 몸이 호리호리하고 얼굴에 아직 병색이 도는 새파란 젊은이가 앉아있었다. 높은 이마와 명민하게 반짝이는 두눈만 아니라면 이 땅 그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청년이였다. 반짝이는 두눈에 적의라 할지 경계심이라 할지 다소 굳은 표정이 깃들어있을뿐 불안이나 공포심같은것은 찾아볼수 없었다.

이상한것은 병사의 몸에 환자복이 아니라 색바랜 군복이 그대로 입혀져있는것이였다.

밀튼은 안내역으로 따라나선 륙군장교 팽대령을 돌아보았다.

《저 병사가 자기 군복을 내주기전엔 절대로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해서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끝내 군복을 가져오자 저렇게 감추었던 초상휘장까지 척 달고 나섰지요.》

《당신네 국방부장관에게 사령부의 지시를 알렸소?》

《예, 장관은 미군의 압력에 격분을 표시하고 대신 참모총장님이 교섭하겠다고 티렐리대장을 래일아침 방문한답니다.》

밀튼은 기자회견장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회견이 계속되고있었다.

《김강인씨, 당신은 〈자유세계〉에 영주할 의향이 조금도 없습니까?》

《나는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것을 다시한번 선언합니다.》

김강인은 또렷한 어조로 찍어 말하며 마치 백광에 눈이 시근듯 어두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발을 한 《CNN》녀기자가 상냥하게 접근하여 나직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계급장을 달지 않은 군복같은것을 걸친 리웅서중령이 조선어로 통역을 시작하자 김강인의 눈길이 번쩍하고 빛났다.

《가만! 당신도 조선사람인가? 왜 이 외국인 녀기자도 우리 장군님의 존함을 존경을 담아 제대로 부르는데 당신은 관직과 수식사를 다 떼버리고 통역하는가? 난 그런 불손한 태도를 절대로 용서할수 없소!》

청천벽력같은 병사의 말에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리웅서는 그만 덴겁을 하여 네모진 얼굴이 붉어지고 외신기자들의 항의의 목소리로 장내가 웅성거렸다.

《김강인병사, 당신은 영어를 알고있군요.》

녀기자가 반가와하기보다 신기해하며 손벽을 쳤다.

김강인은 마뜩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고나서 침착하고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김강인은 리웅서가 머리를 갑삭거리며 사과한후에도 눈길이 그냥 표표한채로 엄엄한 기색이였다.

《그렇다면 왜 직접 영어로 시작하지 않고…》

리웅서중령은 얼굴이 벌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건 신성한 조선인민군 군인의 명예문제요. 왜 세상에 으뜸인 우리 말이 있는데 외국어로 하겠소.》

《오늘 서울시내를 돌아본 감상이 어떻습니까? 지금 남조선은 세계경제개발기구에 가입한 공업국인데…》

김강인은 당당한 표정으로 일본기자를 쏘아보았다.

《부대에서 신문기사를 보았지만 남조선이 금융위기로 국제신탁통치에 들어간 리유를 깨달았습니다. 거리의 실업자들을 보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회주의붉은기를 더 잘 지켜야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마음을 놓아도 됩니다. 이제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치를 받으면 남쪽에도 락원이 펼쳐집니다. 우리 나라에는 두가지 중요한 구호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 군대가 들고나온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이 추켜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입니다.》

기자들이 놀라서 수군거리며 촬영기를 더욱 바투 들이댔다.

밀튼은 충격속에 병사를 눈여겨보았다. 도무지 바늘들어갈 틈도 없는 강철의 군인이였다. 혹시 봉명주네들이 남쪽을 놀래우려고 우정 조직하여 파견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기자회견이 끝난후 밀튼은 입원실에서 김강인을 만났다.

김강인은 미군대좌가 내미는 쪽지편지를 선뜻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놀란 눈으로 밀튼을 흘끔흘끔 올려다보며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병사, 난 판문점에서 돌아오는 길이요. 당신측 대표가 이 편지를 전해달라고 주더구만.》

밀튼의 류창한 조선말에 김강인은 더욱 놀란듯 눈이 둥그래지더니 의혹이 풀린듯 편지를 받아들었다.

편지를 읽는 그의 순진한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야, 이건… 한철준참모장동지의 글씨가 분명해. 내가 그의 노래집에서 가사를 베끼군 했으니까. 동무들! 상좌동지!

전 천리밖에 있어도 기어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품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 최고사령관동지의 병사를 꺾을 힘은 없습니다!

분대장동지가 퇴원했다? 야, 그 기쁜 소식을 이런데서 전달받다니…》

달프중좌와 팽대령이 나타나 급한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밀튼은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뜻밖에도 청와대 공보실장에게서 온것이였다.

《대좌요?》

《밀튼입니다.》

《대단히 뜻밖의 일이 발생했소. 당신이 가져온 문건은 다름아닌 미국방성이…》

《이건 뭡니까? 그런 극비내용을…》

밀튼이 놀라서 항의하려 하자 상대방은 껄껄 웃었다.

《내 그래서 비상사건이라는거요. 방금 그 문제를 우리 국방부와 정보원에 알리니 여보, 일두 참, 어제 프랑스의 주간지와 군사잡지가 그 〈작전계획 5027-98〉을 토한자 빼놓지 않고 그대로 전재했다는거요!》

《아니 그게 사실입니까?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유감스럽지만 내 책상우에 그 신문과 잡지가 놓여있소.

난 당신의 이종사촌이 어디 미치지 않았는지 의심되오!》

《?!…》

《문제가 생겼소! 이제부터 발편잠을 못잘것 같소! 이제 곧 우리 대통령은 클린톤대통령과 전화련락을 가지겠다고 했소.》

상대방이 전화를 놓자 밀튼은 착잡한 심정으로 방문을 나섰다. 그는 아직 그 문건을 말만 들었지 직접 보지 못한만큼 그들이 우려하는 의미를 다는 리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주의조선을 겨냥하여 작성한 전쟁문서인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릴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남조선당국에 판 극비문건이 빠리의 거리들에 뻐젓이 나돌게 되였는가?

력대적으로 프랑스반탐이나 정탐은 국제적수준에 오르지 못하고있는것으로 세계가 공인하는것이다.

밀튼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입원실에 들어서다가 주춤 멈춰서고말았다.

김강인이 벽을 등진채 어두운 창문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더우기 밀튼을 놀라게 한것은 병사의 침대우에 놓여있는 물건이였다. 크지 않은 비닐쪼각이 펼쳐져있는데 그안에는 뜻밖에도 물에 젖었다 마른것같은 갈색얼룩이 지고 조글조글해진 소박한 담배 몇가치가 들어있었다. 김강인은 그 볼품없는 담배 한가치를 손에 들고 지금 저렇게 망연히 창밖의 북쪽하늘을 바라보고있는것이다.

바투 깎은 머리, 성큼한 목, 아직 연한 살이 빠지지 않은 볼편을 따라 흐르는 맑은 눈물…

저 병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있을가? 무엇을 그리며 눈물을 흘릴가?

고향? 어머니? 혹시 애인을?

그는 어쩐지 이 강철같은 군인의 마음속 숨은 리면을 보는것 같았다. 저 병사에게도 저런 나약하고 감상적인 구석이 숨어있었단 말인가.

밀튼은 병사의 눈빛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자기의 생각을 뒤집는 뜻밖의 인상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것은 감상적이고 쓸쓸한 애수가 아니였다.

그것은 그리움, 숭고하고 열렬한 흠모심, 크낙하고 뜨거운것에 대한 강렬한 애정의 불꽃이였다.

무엇인가 가슴을 쿵 치는것이 있었다.

밀튼은 생각에 잠겨 그에게로 다가갔다.

《병사, 담배를 피우겠소?》

밀튼은 주머니에서 《단힐》한갑과 라이타를 꺼내들었다.

《아니, 라이타만 빌려주시오.》

분명 그에게 큰 힘으로 된 편지를 전달해준 밀튼에게 병사는 다소 부드러운 태도를 취했다.

김강인은 그 쭈그러진 담배에 불을 붙인후 깊이 연기를 들이켰다. 눈물이 마른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여올랐다. 밀튼은 인간이 그렇게 밝고 정찬, 행복한 웃음을 지을수 있다는데 놀랐다.

《병사, 그건 무슨 담배요?》

젊은 병사는 밀튼의 물음에 불쑥 얼굴을 돌리더니 아무말없이 피우던 담배를 들어보였다.

밀튼은 겨우 담배에 새겨진 글자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백승》이라는 두 글자였다.

《백승? 이건 무슨 뜻이요?》

《하하하, 그건 몰라도 되오. 하지만 이건 우리 수령님께서 이름지어 주시고 우리 장군님께서 친히 보아주신 그런 귀중한 담배요.》

김강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다가 미심쩍은 눈길로 밀튼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말이요, 당신은 미군장교같은데 어떻게 이런 편지… 아니 조선말을 언제 다 배웠소?》

밀튼은 진정으로 미소를 짓고싶었다. 아니, 그는 어째서인지 소리쳐 울고싶었다.

《그렇소. 행복한 병사! 당신이 마음속에 간직하고있는 절세의 위인을 우리 미국사람들도 더 깊이 알고싶기때문이요!》

밀튼의 말에 김강인은 놀란듯 눈을 크게 뜨고 그의 아래우를 한참이나 뜯어보았다.

이때에야 비로소 밀튼대좌는 눈을 쪼프리며 안식과 갈망이 깃든 지친 얼굴에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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