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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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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817회 작성일 21-01-01 02:02

본문

 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2009-05-04-U01.jpg

 

                                박    윤

 

 

( 제 45 회 )

 

 

제 6 장

 

7

 

그것은 도시우에 떠있는 무인도나 다름 없었다. 푸른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과 록색단청은 멀리서도 유표하게 드러난다.

지프리 밀튼은 청와대앞 잔디밭을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이 특별구역도 주소가 있어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이다.

밀튼은 우울한 눈으로 담배를 문채 저녁볕에 선명하게 드러난 청와대일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고고학을 전문하다가 력사학에 접어든 조안은 동방학, 특히 조선력사연구에서 열성을 보여 남편을 놀래웠다. 덕분에 밀튼은 이 류다른 나라에 대한 어쩔수 없는 해박한 인식으로 또 자기 동료들을 감탄시켰다.

1991년 7월에 구청와대를 헐어버리고 신관으로 이사했다. 밀튼은 새 청와대건물을 처음 대하지만 속으로는 쓴 웃음을 짓지 않을수 없었다. 새 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이곳 정치가들의 전통적인 보수성과 일종의 세습적우매성이 그를 아연케 했다. 서울언론들은 청와대신관착공직후인 1990년 2월 20일 기초구뎅이에서 《천하제일복지》라고 쓴 표석이 발견되였다고 떠들었던것이다.

천하제일복지라고 자찬한데 비하면 저 청와대터도 력사의 풍운속에 갖은 고초와 우롱을 다 겪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허구픈 웃음이 나갔다.

숙종 9년인 1104년에 완공된 남경 이궁자리가 바로 지금의 청와대터라고 한다. 력사의 돌개바람속에서 1939년에는 청와대 구본관자리에 악명높은 《조선총독부》가 자리잡았는데 《총독부》관저는 사람의 목에 해당하고 경복궁 근정전은 숨쉬는 코에, 《총독부》출입구는 입에 비유할수 있었다. 일본은 조선의 명맥을 눌러 목조르기를 하려는듯 그 운명의 지점에 저들의 식민지관리청사를 일떠세운것이다. 그리고보면 일본인들 역시 세습적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난쟁이라는것을 스스로 드러낸셈이다.

1945년에는 하지중장이 이곳을 차지했고 리승만이 집권하면서는 경무대라고 명명했는데 윤보선때 정식 청와대라고 불렀다.

현대의 희극은 최근의 정치풍운에 떠받들린 청와대이주설이다. 터가 명당자리가 못된다는 여론이 구구해진것이다. 그것은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가 강하여 힘이 있으나 골이 져서 골육상잔을 하지 않을수 없다는것이다. 특히 주산에서 혈당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장단, 강약과 단절여부는 자손의 번창과 권력을 상징하는것으로 해석되기때문이다.

력대 왕들이 은근히 경복궁뒤릉선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양한 조치들을 취한것도 바로 이곳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기때문이다. 옛글에 백호를 녀자로, 청룡을 남자로 해석하는데 경복궁의 청룡인 낙산이 인왕산에 비해 미미한것을 두고 왕족중 남자는 단명하고 반면에 왕비들이 드셌다는 평가도 이 형상에서 온것이다.

밀튼은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웅장한 묘향산기슭에 든든히 자리잡은 국제친선전람관, 평양의 기념비적건축물들을 생각하니 대조적으로 전설적인 위인들에 대한 경모심이 더 커가는것이였다.

평양을 방문했던 박용길장로는 해마다 4월 15일이면 주체의 최고성지인 금수산기념궁전의 김일성주석의 립상에 해돋이의 첫 빛발이 뿌려진다고 경탄을 금치 못해 하였다.

이것이 어디에 뿌리를 둔 전설인가. 건축예술가들의 섬세한 착상인가 아니면 인간이 그 의미를 해석할수 없는 그 어떤 신비한 세계의 계시인가.

명상에 잠겨있는 밀튼에게로 산뜻한 정복차림의 사나이가 다가왔다.

지프리 밀튼은 릴씨의 세번째 편지를 그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전달한후 급히 청와대를 나섰다.

광화문앞 정문밖에 대기시킨 군용차안에서는 정책장교 베이컨중좌와 의례장교 그로스소좌가 사색이 되여 기다리고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나타났소?》

밀튼은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었다.

《대좌님, 정말 안됐습니다. 지금 티렐리대장의 기분이 좋지 못합니다.

대좌님이 나오는 즉시 전화를 걸라는 독촉이 방금 또 왔습니다.》

베이컨은 미안해 하며 눈살이 꼿꼿해서 밀튼을 조심스레 넘보았다.

밀튼은 무선전화기를 들고 중좌에게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무슨 일이요?》

《북조선군 봉명주장령이 긴급회담을 제기해왔습니다.》

그로스가 긴장해서 대신 대답했다.

티렐리사령관은 자기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평범한 어조로 밀튼의 전화를 받았다.

《당신은 왜 근무시간에 사적인 일로 돌아다니오?》

《대장각하, 저는 대통령관저를 방문했습니다.》

밀튼은 약간 아연해져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방문은 다른 시간을 선택할수도 있지 않소?》

《대통령비서실은 저의 지시에 따라 방문일정을 짜지 않습니다.》

티렐리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내키지 않는듯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의례장교의 통보를 받았소?》

《지금 함께 있습니다.》

《던소장이 나가야겠으나 그는 코헨의 긴급지시로 지금 워싱톤에 가있소. 북조선군의 봉장령은 문제가 긴급하므로 당신과라도 만나겠다고 알려왔소. 당신까지 부재면 내라도 나갈판이였소.》

《저는 그들의 긴급협상의제를 간파하고있습니다.》

《알고 있소. 미군문제가 아닌만큼 신축성있게 처리해야겠소. 나의 동의는 얻은것으로 해둡시다. 될수록 그들의 자존심과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시오. 내 의도를 알겠소?》

《국방성의 의도로 리해해도 되겠습니까?》

《좋도록.》티렐리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밀튼은 급히 판문점으로 향했다.

(분명 《국군》에 억류된 병사때문인것 같은데… 난 아직 그 정보를 구체적으로 쥐고있지 못하다.…)

밀튼대좌는 차창밖의 음산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벌써 어스름이 깃들고있다.

《평화의 집》앞에 차를 세웠다. 국내외기자들이 언제 냄새를 맡았는지 《자유의 집》주변에서부터 촬영기를 들이댔다. 밀튼은 당직장교에게 그들을 쫓아버리라고 지시한후 군사정전위원회가 무력화된후부터 자동적으로 자리를 옮긴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 들어섰다.

봉명주의 얼굴은 그새 퍽 상한것 같다. 두터운 안경밑에서 지혜로와보이는 두눈이 위엄있게 번쩍인다. 이 사나이는 회담장밖에서는 사람이 친절하고 유모아도 많고 명랑하지만 일단 회담탁을 마주하면 돌로 빚어 놓은것처럼 무뚝뚝하고 서슬차다.

공과 사가 물과 기름처럼 뚜렷이 대조를 이룬 사람이다.

밀튼은 쓰거운 생각이 들었다.

랭랭하게 손을 마주 잡은 다음 봉명주가 먼저 발언했다. 둥실한 얼굴에 비해 눈매가 만만치 않은 낯익은 리천중좌가 곁에서 통역했다.

《밀튼대좌, 책임련락군관접촉에서 이미 시사했지만 우리 조선인민군 군인 김강인이 귀측에 강제억류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우선 우리는 이에 대하여 위임에 의해 엄중히 항의합니다.》

밀튼은 침착한 눈길로 그를 마주 보았다.

《봉소장, 잘못 알고있습니다. 그건 우리 미군사령부가 억류한것이 아닌것으로 나는 인식하고있습니다.》

《대좌의 말을 류의합니다. 남조선군의 통제권은 미군이 가지고있는만큼 정전협정에 기초하여 우리는 당신들에게 의무를 리행할것을 요구합니다.》

《귀측은 국제련합군을 인정하지조차 않으면서 이런 땐 그 의무리행을 촉구하누만요. 좋습니다. 류의합니다. 귀측의 의견을 제기해주십시오.》

봉명주는 두툼한 가죽표지를 한 서류철을 펼치고 종이장을 벌컥벌컥 뒤졌다. 그는 고개를 들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군사임무수행중에 뜻하지 않게 조난당한 병사를 당장 조선인민군측에 돌려보낼것을 요구합니다. 나는 이에 대하여 이 자리에서 대답할것을 촉구합니다.》

밀튼은 상대방의 단호한 태도가 비위에 거슬렸다. 외교적관례에 심히 어긋난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원래 이런 역습에 습관된 사람이고 성격이 침착한 편이였다.

《봉소장, 우리는 그런 무리한 요구에 응할수 없습니다.

우선 장령도 아실테지만 우리는 아직 억류된 병사에 대하여 간접적인 조사중에 있고 또 그 병사가 실지 억류되였는지 그 어떤 정치적동기가 있어 벌써 자기 의사를 표명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손에 쥐지 못하고있습니다.》

순간 봉명주의 눈이 안경너머에서 엄하게 번쩍였다.

《밀튼대좌, 나는 당신들이 국제법에 어긋나게 조선인민군 군인을 놓고 불순한 정치적모략을 꾸밀수 있다는데 대하여 우려를 표시합니다.

만약 그러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조선인민군측은 그로부터 제기되는 모든 후과에 대하여 귀측이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리라는것을 강조합니다.》

밀튼대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견대로 상대방은 완강하게 나오고있다.

밀튼이 침묵에 빠지자 보조좌석에 앉은 달프중좌가 슬며시 발언원고를 들이민다. 곁에 앉은 정책장교도 의혹이 실린 눈길로 지켜본다.

밀튼대좌는 발언원고를 밀어놓고 봉명주를 넌지시 건너다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관례를 벗어나 조선말로 운을 뗐다.

《봉명주소장님, 난 어릴 때 그리 부유하지 못한 불운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나는 늘 공을 가지고 놀기를 꿈 꾸었습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공을 차다가도 제 기분이 뒤틀리면 공을 빼앗아가지고 가버리군 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서글픔에 잠겨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원망했습니다.…

봉소장, 제발 나에게서 공을 빼앗지 마시오.

당신들은 너무 제 기분만 주장합니다. 나에게도 공을 함께 차도록 해주시오.》

봉명주장령의 눈에 가벼운 조소가 실리고 달프와 베이컨은 난처한듯 얼굴을 돌려버렸다. 리천중좌는 약간 소리내여 웃었다.

《대좌, 좋습니다. 우리에게 와있는 〈공〉을 인차 넘겨주겠소. 그러니 숨박곡질할 생각은 마시오.

우리의 원칙적이고 정당한 요구를 류의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지금 유지되고있는 우리와 미군부와의 관계에도 유익할것입니다.》

《류의합니다. 우리는 아직 귀측 병사에 대한 정통한 소식을 받지 못하고있습니다. 구체적인 조사는 시간이 걸립니다. 또 그 결과에 대해서도 아직은 예측할수 없습니다.》

봉명주장령은 밀튼의 얼굴을 유심히 건너다보았다. 그는 다시 성급하게 밤색뚜껑의 서류철을 번지더니 종이 한장을 끄집어냈다.

그는 말없이 한참 그것을 들여다보고나서 밀튼대좌에게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소장!》

《이번 중대사건에 대한 우리의 공식립장입니다!》

베이컨과 달프가 밀튼의 곁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밀튼대좌는 그 문건을 조심스레 읽기 시작했다.

《…

우리의 자제력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성실한 병사를 비법적으로 억류한 대상들을 무자비하게 타격할것이다.

타격목표는 이미 정해져있다.

미군사령부에 사전에 통보한다.…》

문건을 펼쳐든 밀튼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베이컨이 얼른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달프중좌는 황급히 회의실밖으로 달려나갔다.

밀튼은 겨우 자제력을 회복한후 상대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였다.

《당신들의 강경립장이 리해되지 않습니다. 이름없는 한 병사때문에 이런 선전포고를 하다니… 이건 뭘 의미합니까?…》

봉명주는 침착한 눈길로 그를 살펴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밀튼대좌, 그 한명의 평범한 병사도 우리의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아끼시는 전사입니다.

방금 우리의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김강인병사를 빨리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간곡한 지시를 주시였습니다.》

《뭐라구요? 김정일최고사령관께서 직접?!》

지프리 밀튼대좌는 아연해져서 함께 일어섰다. 그때 달프가 급히 쪽지를 가져왔다. 밀튼은 그것을 읽으며 격동속에 사색을 이어갔다.

(김정일장군, 그분은 정녕 어떤 위인인가? 있으나마나한 일개 병사를 위해 그토록 관심하시고 중대한 결심을 내리시다니…

왕족인 황태자때문에 세계대전이 인것은 세상이 알지만 한 병사를 놓고 최고군수뇌부가 대용단을 내리는 그런 기적을 력사는 기억하지 못하고있다!

클린톤씨,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런분이요!…)

밀튼은 쪽지편지를 베이컨에게 넘겨주고 자리에 앉았다.

《당신측의 강경한 립장과 그 모든 원인을 류의하였습니다. 명백히 말할것은 우리가 남조선군부를 조정하여 귀측병사를 반드시 빠른 시일안에 넘겨주겠다는것입니다.

우리 티렐리각하도 같은 립장이라는것을 확언합니다.…》

쌍방대표들은 잠간 휴식하기 위하여 휴계실로 갔다. 밀튼은 이 회의휴식시간을 은근히 기다렸었다. 공식석상에서보다 호상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것이다. 물론 담화내용은 회의록에 기록되지 않을것이다.

마음의 안정이 파괴된 밀튼에게 있어서 이 회의장밖에서의 생활적이면서도 솔직한 담화는 필요한것이였다. 자기의 속심도 재지 않고 터놓을수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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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밀튼대좌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며 휴계실걸상에 주저앉았다.

봉명주소장과 리천중좌가 다가왔다.

밀튼은 위스키병을 집어들었다.

봉명주가 웃으며 그를 제지했다.

《참 조안부인에게 전해주오.

전번 2월명절때 당신가족이 드린 꽃바구니를 해당 부문에서 감사히 접수했다고 말이요.》

밀튼의 눈이 커졌다. 그는 시선을 리천에게서 봉명주쪽으로 돌렸다.

《그걸 왜 이제야 전하오?》

《허, 그걸 함부로 알리다 당신목이 견디여내겠소?》

《모르는 소리, 위인에 대한 숭배는 미국대통령이였던 카터씨도 공개적으로 하는데 뭘 그러오.》

《역시 당신은 대틀이야!》

봉명주는 호탕하게 웃더니 안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오늘 그는 종이장놀음으로 밀튼을 아예 질식시키려는 모양이다.

밀튼은 다소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넘겨다보았다.

봉명주는 빙긋빙긋 웃었다.

《여보, 아까같은 폭탄은 아니니 걱정마시오. 이걸 우리 김강인병사에게 전해줄수 없겠소?》

《전하지요. 무슨 정치적도발은 아니겠지요?》

《무슨 소릴ㅡ 그저 우리의 격려편지요.》

《허허, 봉소장, 그 병사에 대해선 마음놓아도 될거요.

여간 강팀이 아니요. 보도를 들었겠지만 그 병사를 억류하는데 남조선군이 근 열시간 씨름하다 끝내 의식을 잃은 다음에야 병원으로 실어갔소.》

봉명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여보 대좌, 그래서 그러는게 아니요. 우리의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 병사때문에 침식을 잊고계시오!》

밀튼은 상대의 심정을 다 리해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새롭고 거창한, 위인의 놀랍고 신비스러운 인정의 세계가 이 순간 그의 마음을 틀어잡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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