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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강자 5,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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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1,420회 작성일 21-01-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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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천강류역에 바둑판처럼 규모있게 펼쳐진 논배미들에서는 줄대같은 벼들이 한창 시퍼렇게 독을 쓰며 자라고있었다.

논판마다에는 두루미떼가 내려앉은듯 사람들이 하얗게 덮이였다.

오늘은 휴식일이라 동주뽐프공장 종업원들이 떨쳐나와 부업지의 논김매기를 하고있었다.

로동자들과 섭쓸려 김매기를 하던 공장당비서 박영식은 허리가 지끈거려 논두렁에 주저앉았다.

예순살을 넘기다보니 나이는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이나 허리쉼을 한 박영식은 저 멀리에 보이는 뚝을 근심스레 바라보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인차 장마가 들이닥치겠는데 금년에는 뚝이 견디여낼가?》

지난해 장마에 뚝이 넘어나는통에 장훈이라고 소리쳤던 농사소출이 떨어진걸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알알했다.

진통이 사라지지 않는 허리를 두드리며 움쭉 몸을 일으킨 박영식은 뚝을 향해 걸음을 옮기였다.

거의 3천메터나 되는 긴뚝은 현재의 강수위보다 7~8메터 더 되게 인공적으로 쌓은것이다.

원래 청천강의 너비는 상류는 정확히 몰라도 하류인 여기는 2키로메터가 좀 넘는다.

평시에 강중심으로 흐르는 강물의 너비는 150메터정도로서 갈수기때에는 100메터도 되나마나한 물로 사람들이 얼마든지 건너다닐수 있는 깊이이다.

이전에 그 량옆의 넓은 공지는 범이 새끼를 칠 정도로 갈대만이 무성하였는데 생활이 좋을 때에는 그것이 사람들의 눈밖에 나있었다.

그러던것이 고난의 행군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였다.

식량사정이 어려워지자 갈밭을 뒤집어엎어 농사를 지을수 없을가 하는 욕심으로 시안의 공장, 기업소들이 너도나도 갈밭개간에 달라붙을 때 동주뽐프공장에서도 30정보가 넘는 넓은 부지에 말뚝을 박았다.

키높이 자란 갈을 베내고 땅속깊이 뻗은 뿌리들을 들추어내였고 장마철에 불어나는 최대물량을 타산하여 등짐으로 방수뚝을 쌓았다.

그야말로 대자연과의 전쟁이였다.

허나 자연의 조화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평시에는 새색시처럼 조용히 흐르던 강물이 장마철이 되면 돌변하여 성난 들짐승처럼 사납게 광란을 부리였다.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물은 1년 사계절 밀물과 썰물의 성화에 들볶이우며 불었다 줄었다 하는데 특히 장마철에는 굉장하다.

강상류에서 쏟아져내리는 물과 바다에서 올려미는 밀물이 부딪쳐 불어나는 물량은 눈깜짝할 사이에 7~8메터, 최고 10메터까지 높아지는데 그렇듯 거대한 물량이 뚝을 집어삼키고 논밭으로 쓸어든다고 상상해보라.

그때문에 장마철이면 공장의 일군들은 물론 기대를 돌리던 로동자들도 뚝이 무너지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에 마음들을 놓지 못한다.

원래 공장에서는 지난 고난의 행군시기에 개간하였던 땅에서 농사를 짓다가 몇번 홍수피해를 받아 페농을 하게 되자 손맥을 놓고말았었다.

그러다보니 명색이 개간지이지 거의나 황페화되다싶이 되였었다.

그런걸 몇년전 박영식이 공장에 새로 와서 종업원들을 발동하여 뚝을 높이 쌓고 논밭에 쌓인 모래, 감탕을 걷어내고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는 눈물겨운 고생도 많았지만 고생끝에 락이라고 손끝이 모지라지도록 애쓴 보람이 있어 그 이듬해부터 종업원들이 덕을 보게 되였다.

어느 구간을 보강해야 되겠는가를 살피며 구불구불 뻗어간 뚝을 따라 걷던 박영식은 어디선가 울리는 청높은 소리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정신있어?! 해가 중천에 떴는데 이제 나타나면 어쩐다는거요?》

이어 울리는 능청스런 소리…

《어찌겠소, 처가 깨우지 않고 어디론가 갔는데…》

박영식은 웬일인가싶어 눈길을 들었다.

저앞에 주물직장의 주경세가 자기네 반장과 수닭처럼 마주하고 서있었다.

그들은 박영식이 지켜보는것도 모르는듯싶었다.

《구실은 좋다, 밤새 술을 퍼마셨는데 몽둥이로 때린다고 깨날가.》

박영식은 마음이 쭝깃해졌다.

밤새 술을 퍼마시다니, 그게 제정신인가.

단단히 신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앞세우며 다가간 박영식은 부러 엄한 소리를 냈다.

《밤새 술을 퍼마셨다? 어제밤에 대사집에라도 갔댔나?》

두사람이 불에 덴듯 놀라며 박영식을 쳐다보았다.

키가 꺽두룩한 주경세가 헤식은 웃음을 지으며 굽석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비서동지.》

그의 몸에서는 아직도 술냄새가 났다.

허, 밤새 되겐 마셨군.

작업반장은 한번 혼쌀나보라는듯 비죽이 웃으며 논판으로 들어섰다.

대답을 기다리듯 눈을 찌글써하고 쳐다보는 박영식에게 급해맞은 주경세가 변명하듯 뇌이였다.

《실은 엊저녁에 제가 이번에 사회주의경쟁에서 우승하고 상금을 타왔다고 우리 집사람이 너무 기뻐 한상 차려주길래… 그만 도수가 지나쳐서…》

그 말을 들은 박영식은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그러니 밤새 마셨다는건가?》

《적당히 하고 그만두려댔는데 집사람이 오늘처럼 기쁜 날에는 취하도록 마셔야 한다면서 계속 부어주는 바람에…》

《하하하! 아주머니가 되겐 신바람이 났댔구만.》

《잘못했습니다.》

《잘못이야 무슨…》

마음이 흥그러워진 박영식은 부지중 공장에 온 이듬해 가을에 있었던 일이 돌이켜졌다.

가공직장부문당회의를 지도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던 박영식은 문앞에서 서성거리고있는 낯선 녀인과 맞다들게 되였다.

당비서를 만나려 기다렸다고 한다.

《누구신지?》

녀인은 주밋주밋 입을 열었다.

《비서동지, 초면에 미안합니다. 저의 세대주는 주물직장의 주경세라고…》

《아! 주경세…》

주경세라면 건달군으로 공장적으로 소문이 난 인물이여서 박영식은 쉽게 기억해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소?》

의문어린 박영식의 물음에 불시에 녀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꺽꺽 목메인 소리를 하였다.

《세대주와 함께 못살겠습니다.》

전혀 뜻밖의 그 말에 박영식은 당황해졌다.

이건 무슨 낮도깨비같은 소리인가.

나이도 적지 않은 녀인이 남편과 갈라지겠다는건가.

《리유는 뭡니까? 함께 살지 못하겠다는…》

《난 이제껏 세대주가 공장에서 남만큼은 일을 못해도 사람들의 말밥에는 오르지 않기를 바라며 한푼두푼 아글타글 번 돈으로 아이들은 잘 먹이지 못하면서도 남편만은 남부끄럽지 않게 내세우기 위해 애썼는데 글쎄 이번에 보니…

남들은 일을 잘해서 표창장도 타고 상금도 타가지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며 집으로 들어서는데 세대주라는 사람은… 세상에 그런 망신이 어데 있습니까. 사람이 자존심도 없는지…》

녀인의 자초지종을 들은 박영식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랴.

사회주의경쟁에서 락오자가 되면 응당 그런 망신을 당하기마련이다. 그래서 일하기 싫은자는 먹지 말라는 말이 생긴것이 아닌가.

황페화되다싶이 되였던 부업지를 다시 살리기 위해 온 공장이 떨쳐나 전투를 벌릴 때 주경세와 같은 일부 건달군들은 부업지에서 나오는 생산물은 안 먹어도 좋으니 제발 볶지 말라고 불평을 부리고 땡땡이를 부리였다. 어디가 아프오, 무슨 사정이 있소 하며 힘든 일에서 몸을 사리였다.

성실한 땀을 바치는 종업원들의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그들의 불손한 언행에 분개한 박영식은 되게 문제를 세우고 혼쌀을 내주려다가 가을에 가서 차례지는 몫을 보면 스스로 자극을 받을것이라고 방임하였는데 오늘처럼 이런 어망처망한 일이 생길줄이야.

하긴 그럴만도 하였다.

일을 잘하여 경쟁에서 우승한 로동자들의 안해들은 입이 귀밑까지 벌어져 제 남편들을 개선장군 맞듯 기뻐하였지만 건달군들의 안해들은 망신살이 뻗쳤다고 집에서 나가라 들어가라 야단을 했다고 한다.

처음 박영식이 공장에 왔을 때 수입원료에 의존하던 공장은 말이 아니였다. 생산은 주저앉았고 식량사정으로 종업원들의 출근률도 한심하였다. 게다가 일부 일군들이 종업원들의 생산실적평가를 공정하게 하지 않고 평균주의를 하다보니 일잘하는 사람들속에서 의견들이 분분했다.

거의 한달동안 품을 놓고 공장실태를 손금보듯 걷어쥔 박영식은 회의를 열고 일군들에게 호소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공장이 이 지경이 된것은 죄악이다.

하루빨리 공장을 일떠세우자.

우리가 살길은 지배인, 당비서로부터 로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지혜를 합쳐 자력갱생하는것이다. 우선 수입원료가 아니라 국내산원료에 의한 생산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

그리고 종업원들의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황페화된 부업지를 옥토로 만들어야 하며 로동자들의 생산의욕을 높이기 위하여 평균주의와 결별하고 사회주의경쟁순위에 의한 공정한 정치적, 물질적평가를 하여야 한다 등의 문제를 당위원회결정으로 채택하였다.

당위원회결정은 종업원들의 심장에 불을 지피였고 정신력을 앙양시키였다.

콕스에 의존하여 운영되던 봉탄용선로를 대담하게 까버리고 우리 나라 탄광들에 흔한 무연괴탄에 의한 용해법과 수입원료에 의존하여 빚어지던 주물심형을 화학공장들에서 나오는 페기물로 리용하자는 기발하고 창발적인 안들이 제기되였으며 그밖에도 공장을 활성화할수 있는 여러가지 좋은 의견들이 수없이 나왔다.

역시 대중은 선생이였고 그들의 정신력에는 불가능이 없었다.

국내산원료에 의한 생산도입과정에 실패의 쓴맛도 보았지만 종당에는 공장종업원들의 창조적지혜와 앙양된 정신력은 성공의 문을 열게 되였으며 생산정상화의 확고한 전망을 마련하게 되였다.

또한 공정성을 원칙으로 한 사회주의경쟁은 로동자들의 생산의욕에 불을 달았으며 혁신자들에게는 정치적평가와 함께 물질적평가도 듬뿍이 안겨주었다.

하지만 생활에서는 앞선 사람들의 의욕에 찬물을 끼얹고 뒤다리를 당기는 주경세와 같은 락오분자들이 기생하고있었으니 그것은 드문히 보게 되는 일이였다.

사회주의경쟁총화에서 정치적, 물질적평가를 받은 로동자들의 집들에서는 웃음소리가 높아졌고 락오자의 집에서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났지만 주경세네 가정처럼 생활의 수레를 벼랑턱까지 끌고간적은 없었다.

하긴 자식을 가진 녀인이 여기까지 찾아왔을 때에야 오죽이나 생각을 많이 하였겠는가.

처방은 설복과 교양이였다.

《아주머니 심정은 리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가정을 파멸시키는 극단으로 나가면 안되지요. 그럼 자식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부부일심이라고 잘못된 일은 서로 일깨워주고 리해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주경세동무가 그렇게 된데는 당비서인 내 잘못이 큽니다. 내 진심으로 사죄하니 마음을 고쳐먹으십시오.》

진정이 넘치는 박영식의 곡진한 호소가 옹맺힌 녀인의 마음을 두드린듯싶었다.

녀인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쳐들었다.

《비서동지, 제가 이제 남편과 갈라지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두 속이 타구 안타까워서 이렇게 투정을 해보는겁니다. 솔직한 말로 글쎄 제가 바가지를 긁을 때 남편이 가만있기만 했어도 성을 가라앉히는건데 오히려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주먹행세를 하려들며 갈라지려면 갈라지자고 을러메길래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이렇게 체신머리없이 달려왔습니다.》

인차 자신을 뉘우치는걸 보니 속이 깊은 녀자였다.

박영식은 주경세의 처신이 리해가 되지 않았다.

제 처지에 뭘 잘했다고 연약한 안해앞에서 주먹행세를 하려고 했는지…

이런 인간은 용서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할가요. 주경세동무를 정신이 번쩍 들게 공장 자체탄광에 한 일이년 로동단련을 보낼가요?》

격해서 하는 박영식의 말에 의외에도 주경세의 처가 펄쩍 뛰였다.

《아니, 안됩니다. 우리 세대주는 싱아대처럼 키만 컸지 몸이 약해서 탄광일은 못합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허허허! 알겠습니다.》

허구픈 웃음을 지은 박영식은 이런 웅심깊은 녀인의 가슴에 눈물을 안겨준 주경세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애오라지 제 남편이 사회와 집단앞에 떳떳하기를 바라며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때 고생을 락으로 삼고 애면글면하는 안해의 그 마음을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안다면 그런 망동을 부릴것인가.

모를것이다. 알게 해주어야 한다.

《아주머니, 우리 마음을 합쳐 경세동무를 잘 이끌어 떳떳하게 내세웁시다. 우리 사회에서 교양 못할 사람은 없답니다.》

《고맙습니다.》

다소곳이 인사를 한 주경세의 처가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멀어지는 녀인의 뒤를 이윽토록 바라보는 박영식은 자신의 사업에서 빈틈이 많았음을 절감하였다.

이튿날 박영식은 공장종업원총회를 열고 주경세를 비롯한 건달군들을 무대에 내세웠다.

평시에는 그들의 결함에 대하여 강건너 불보듯 하며 무관심하였던 사람들이 주경세네가 그렇게 된것은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비판의 화살을 날리였다.

주경세네는 뒤늦게나마 인간이 사회와 집단의 버림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뼈저리게 느끼며 잘못 살아온 지난날을 눈물로 심심히 사죄하고 결의들을 다지였다.

그에 맞게 박영식은 자주 현장에 내려가 그들과 함께 일도 하며 고무도 해주었다.

그후 그들의 생활에서는 사과나무에 배가 열린것만큼이나 놀라운 개진이 일어났다.

그들중에서 제일먼저 혁신자대렬에 들어선 사람이 오늘의 주경세였다.

《허허허! 경세동무가 그새 자만한게 아닌가. 오늘같은 날 지각을 하다니.》

박영식의 가벼운 핀잔에 주경세의 얼굴이 붉어졌다.

《비서동지, 잘못했습니다. 제 오늘 늦은 봉창을 하겠습니다.》

《응당 그래야지. 헌데 아직 술이 깨지 않은것 같은데 일없을가?》

《일없습니다. 제 성이 무슨 주자인줄 아십니까? 술 주자입니다.》

《엉? 그런 성도 있었던가? 난 또 붉을 주자인줄 알았지, 하하하!》

어깨를 들썩이며 시원스럽게 웃고난 박영식이 주경세와 나란히 종업원들이 일하는 논배미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손전화기신호음이 울리였다.

웃주머니에서 손전화기를 꺼내보니 지배인 리대철의 이름이 찍혀져있었다.

《박영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리대철입니다. 지금 어데 계십니까?》

《부업지에 나와있습니다. 공장에 돌아왔습니까?》

《예. 방금 도착하는 길입니다.》

《알겠습니다. 내 곧 가겠습니다.》

박영식은 지배인과 나이차이가 거의 10년이상이였지만 언제한번 반말을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것으로 하여 지배인 리대철은 제발 둘이 있을 때만이라도 그러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하여 박영식을 딱하게 하였다.

전화를 끊은 박영식은 주경세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경세동무와 함께 일하며 아주머니한테 칭찬받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었는데 아쉽게 됐군.》

《다음번 경쟁에서 우승하면 우리 처가 비서동지를 집에 청하겠답니다.》

《그래! 가야지. 경세동무가 술도깨비와 인연을 싹 끊은걸 보기 위해서라도 꼭 가겠소.》

의미있게 웃어보인 박영식은 돌아섰다.



6

 

공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뽐프수입을 결정한 건설지휘부 일군들의 처사는 박영식을 격분시켰다.

《그 사람들이 왜 우리 공장과 합의없이 그런 결심을 내렸는지 모르겠군요.》

《무역회사 처장동지 말을 들어보니 아직 우리 공장에서 고양정뽐프를 만들어본적이 없다는걸 알아본것 같습니다.》

《한심하군.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지… 좌우간 지배인동무가 정통을 찌르길 잘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쩔번 했습니까.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야 정책적인 안목이 섰을테니 지배인동무의 제기를 무시하지 않을겁니다.》

《저도 그러리라고 믿습니다.》

리대철의 확신에 넘친 대답이였다.

책상우에 놓여있는 편지를 끄당겨 다시 들여다본 박영식이 감심한 어조로 말하였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괜찮구만요. 이 사람이 아니였더라면 어쩔번 했습니까. 수십만금의 귀한 돈이 남의 주머니에 흘러들어갈번 했단 말입니다. 애국자요.》

《예. 정말 쉽지 않은 동무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일을 하면서 왜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급해서 그랬을가? 편지내용을 보면 우리 공장에 대하여 자상히 알고있는것 같은데… 이건 꼭 영화의 한장면 같구만요. 적후에 깊숙이 잠복한 공작원이 자기의 정체를 로출시키지 않고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는 영화 있지 않습니까. 거 제목이 뭐더라?》

《허허허! 그런 영화야 많지요.》

《어떻게든 찾아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는데… 그래 지배인동무는 어떻게 할 결심입니까?》

《일단 경종을 울리였으니 죽으나사나 우리 힘으로 고양정뽐프를 만들어내야지요. 나라의 존엄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인데 뭘 주저하겠습니까. 그런데 채취기계공업지도국에서는 왼새끼를 꼬는군요.》

《채취기계공업지도국에서요?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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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반문하는 박영식의 눈빛은 날카로왔다.

리대철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려관에서 하루밤 묵은 리대철은 아침일찍 채취기계공업지도국(당시)으로 갔다.

어제 공장으로 내려간줄 알았던 리대철이 다시 나타난것을 본 생산담당 차부국장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어제 간다더니 어떻게 된거요?》

《예, 갑자기 급한 일이 제기되여 토론을 하려고 다시 왔습니다.》

《급한 일이라니?》

리대철은 호기심이 동해 쳐다보는 차부국장에게 어제 저녁에 있은 일을 두서없이 말하였다.

용수철달린 장난감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던 차부국장이 갑자기 리대철의 말허리를 자르며 버럭 성을 냈다.

《여보! 지배인동무, 지금 제정신이요?》

《?!》

《동무도 알다싶이 창전거리건설은 국가적인 관심속에 진행되는 대상이요. 그런만큼 누구도 그 일에 간섭할 권리가 없단 말이요.》

자기의 의견을 긍정해주고 지지해줄줄 알았던 차부국장이 처음부터 반발하자 리대철은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나라의 존엄과 관련되는 중대사이기에 우리가 맡아 해결하겠다는데 그게 어떻게 간섭으로 됩니까?》

《너무 요란하게 말하지 마오. 동무의 리해와 표현대로 한다면 다른 나라에서 사들여오는 수입품은 다 나라의 존엄을 허무는것으로 된다는건데… 이것 보오, 우리가 만들지 못하는것을 사들여오는것은 국가적인 립장에서 보면 어긋나는것이 아니요. 아무렴 건설지휘부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그런 결심을 했겠는가.》

속에서 장대가 치미는것을 가까스로 내리누르던 리대철은 그만 리성을 잃고말았다.

《나라가 젖짜는 암소입니까? 나라에 돈이 남아돌아갑니까? 부국장동지도 고양정뽐프 한대 값이 얼마인지 모르지 않겠지요. 수십대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 돈이면 인민생활에 이바지할 공장 하나를 더 지을겁니다. 그래 부국장동지는 당의 국산화요구를 몰라서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겁니까?》

흥분해서 손짓, 몸짓을 해가며 열변을 토하는 리대철을 어이없는 눈길로 치떠보던 차부국장이 손가락권총을 꼬나들고 엄포를 놓았다.

《여보! 주제넘게 놀지 마오. 나도 그만한건 알아. 대상설비생산만 보장하자고 해도 숨이 가쁜 동무네 공장에서 어떻게 경험도 없이 첨단급고양정뽐프를 만든다고 흰소리요, 흰소리! 이부자리보고 발을 펴라는 말이 무슨 소리인줄 아오? 승산도 없는 일을 벌려놓았다가 일이 망그러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거기에 들어가는 자재, 로력이 얼마인지 타산이나 해보았소? 싹 그만두오. 주물직장이설로 남흥과 흥남가스화, 2. 8비날론 그리고 숱한 대상설비생산을 미달해서 쩔쩔매는 형편에서 어벌뚝지 크게 뭘 만들겠다는거요.》

침방울을 튕기며 목청을 돋구는 차부국장의 가혹한 힐난은 리대철의 가슴에 용암을 끓이였다.

이제껏 조용하고 매사에 타산이 밝고 명백한 인간이라고 존경해온 차부국장이였다. 그런데…

이 순간 리대철은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보았다고 생각하였다.

일군이라면 모든 사업에서 당의 의도와 요구를 생명으로 삼고 그것을 자막대기로 하여 행동하고 발언하여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무슨 황당한 소리를 하고있는가.

뭐, 우리가 만들지 못하는것을 사들여오는것은 국가적립장에서 보면 어긋나는것이 아니라구? 우리가 첨단급뽐프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기때문에 안된다? 그리구 책임이 어쨌다구?

바위처럼 억센 체구를 꿋꿋이 세우고 차부국장을 마주보던 리대철은 말할 상대가 안되는듯 코웃음을 쳤다.

《책임은 부국장동지가 아니라 우리 공장 로동계급이 집니다. 그리고 대상설비생산이 늦어진데 대해서는 부국장동지보고 도와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명백한것은 우린 그 누가 뭐라고 하든 한번 선택한 길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것이니 이래라저래라 훈시질하지 말아주십시오. 섭섭합니다. 난 여태 부국장동지를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허허허! 이제부터 그 사람이 계속 깔끈거리겠군.》

박영식의 말에 리대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량심이 부끄러운데가 없는데야 무서울게 뭡니까.》

《하긴 그렇지요, 나라의 존엄을 지키는 일인데 욕을 좀 먹으면 뭐랍니까? 문제는 흔들리지 않는거지요.》

《옳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설계연구소동무들과 공장기술자들이 모여앉아 토론을 하여 설계를 선행시키자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주물직장이설을 빨리 끝내고 생산을 시작해야지요.》

《옳습니다! 수입을 막자면 빨리 우리의것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건 내 의견인데… 뽐프제작을 한다면서 대상설비생산에 지장을 주어선 안될것 같습니다. 주물직장이설로 늦어진 남흥과 흥남, 2. 8비날론 대상설비생산을 봉창하자면 기사장을 비롯한 생산지휘성원들을 현존생산에서 떼지 말고 고양정뽐프제작조를 따로 뭇는것이 어떻습니까?》

《제작조를 따로 뭇는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박영식의 의견에 리대철은 고개를 궁싯거리였다.

미처 생각을 못했던 문제였다.

고양정뽐프는 다른 일반뽐프와 달라서 많은 기술적문제와 기술력량이 필요한것만큼 력량조절을 어떻게 할것인가를 모색하던 리대철이로서는 박영식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공장에서 다른 일을 벌려놓는다는것은 바늘구멍으로 하늘소를 몰아넣겠다는것만큼이나 어려운것이였다.

전국적으로 진행되고있는 중요대상건설에 수백대의 각종 뽐프들을 보장하여야 할 공장은 어느 부문 할것없이 아름찬 과제를 안고 드달리고있었다.

그런것만큼 기사장과 부기사장, 생산과장 등 생산지도일군들은 한개 부문씩 맡아안고 치차처럼 맞물린 생산공정을 지휘하고있다.

그들을 뽐프제작에 돌리면 공장전반생산이 흔들릴수 있었다.

《동감입니다. 제작조는 설계가 완성된 후 구성하겠습니다. 물론 그전에 준비작업들은 선행시켜야지요.》

《그렇게 합시다.》

그때 밖에서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시오.》

리대철의 응답에 나들문이 방싯 열리며 정향이가 방안으로 들어서며 나부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현실체험을 하려고 온 윤정향입니다.》

정향의 출현은 방안을 한결 환하게 해준듯싶었다.

반가움어린 눈길로 정향을 유심히 쳐다보던 리대철이 탄성을 올리였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졸업생이란 말이지! 전공이 뭐요?》

《류체력학입니다.》

《류체력학! 저런…》

개천치다 금덩이를 얻은 사람모양 너무 기뻐 의자를 차고 일어선 리대철이 또 한번 환성을 올렸다.

《류체력학을 전공했단 말이지! 야! 이거 복덩이가 굴러왔습니다. 어떻습니까? 비서동지.》

무등 반가운 표정을 지은 박영식이 제꺽 응수했다.

《정말 복덩이가 굴러왔습니다. 숱한 대학졸업생들이 우리 공장에 현실체험을 왔었지만 류체력학을 전공한 전문가는 이 동무가 처음이구만요. 이건 공장이 흥할 징조요. 안 그렇습니까?》

《예, 옳습니다.》

뽐프공장이야말로 류체력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필요한 곳이다.

아직은 책상물림의 이 처녀를 전문가라고 하기는 이르지만 고양정뽐프를 만들자면 리론적으로라도 많은 도움을 받을수 있을것이다.

기분이 흥뜬 리대철이 정향의 가까이에 와서 그를 의자에 앉혀주며 물었다.

《앉소, 앉으라니까. 그래 콤퓨터수준은 어느 정도요?》

처음부터 지배인, 당비서의 관심사가 된 정향은 마음이 들뜬듯싶었다.

얼굴에 발가우리한 웃음을 떠올린 정향은 자랑하듯 말하였다.

《대학때 전국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서 1등을 한적이 있습니다.》

《야, 이것 봐라!》

《저런, 대단하구만! 지배인동무, 이 동무를 금방석에 모셔야겠습니다. 류체력학전공에 콤퓨터는 이거라지 않습니까.》

엄지손가락까지 내흔들며 기뻐하는 박영식을 마주보며 리대철은 맞장구를 쳤다.

《아, 그럼요.》

두 일군이 태우는 비행기에 올라앉은 정향의 얼굴에선 웃음이 바글거리였다.

지배인과 당비서가 자기 오기를 기다리고있은듯싶었다.

마음속에 꽃이 활짝 핀 정향은 동주뽐프공장에 대하여 머리를 흔들던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였더라면 어쩔번 하였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보면 내가 결심을 잘했어. 시작이 좋으면 결과도 좋다는데 앞으로 내 일은 잘될거야.

흥분으로 가슴을 설레이는 정향이를 든장질하며 박영식이 말하였다.

《정향동무, 나하고 공장구경을 하지 않겠소?》

《고맙습니다.》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정향은 생긋이 웃으며 리대철에게 눈인사를 하고 박영식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처녀가 사라진 문가쪽을 지켜보는 리대철은 벌어진 입을 다물줄 몰랐다.

류체력학을 전공한 처녀가 공장에 온것은 당면한 고양정뽐프제작을 도우러 온것만 같이 여겨졌다.

저 처년 분명 새 뽐프제작에서 단단히 한몫 할거야.

마음이 흥그러워진 리대철의 입에서는 저절로 코노래가 흘러나왔다.

 

    …

    돌파하라 최첨단을

    아 아리랑 아리랑 민족의 자존심높이

    과학기술강국을 세우자

    행복이 파도쳐온다

 

노래를 마친 리대철은 한팔을 높이 쳐들었다. 허공을 휘저으며 배심있게 소리쳤다.

《그렇지 않구, 민족의 자존심높이 우리 공장의 본때를 보여야지.》

그때 책상우의 전화기에서 경쾌한 신호음이 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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