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총대 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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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박 윤
( 제 31 회 )
제 5 장
3
늦장마가 지려는 모양인지 밤이 깊어갈수록 비는 그칠줄 몰랐다. 비구름이 길옆의 산봉우리에까지 무겁게 내려앉아 꿈틀거리며 대줄기같은 비를 억수로 쏟아부었다.
야전승용차는 비에 패우고 무한궤도와 포차바퀴에 짓이겨진 험상한 도로를 따라 힘들게 전진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가 들출 때마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어둠이 짙은 차창밖을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강렬한 전조등불빛에 사선으로 누운 희끗희끗한 비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군 한다. 마치 기다란 은빛쇠줄들이 온 누리를 빼곡이 뒤덮은것 같다. 비줄기가 닿는 길우의 진창판에서는 물방울들이 콩튀듯 사방으로 뿌려진다.
(비발속에서 행군하는 병사들이 수고하겠군.)
김정일동지께서는 근심어린 시선으로 전조등불빛이 가닿는 길 먼 끝쪽을 바라보시였다. 야전승용차가 나지막한 언덕을 돌아서자 앞에 거뭇거뭇한 형체들이 길게 얼른거렸다. 방금전에 길에 들어선 행군종대인것 같았다.
《가만, 부관동무. 행군하는 우리 병사들이 아니요?》
긴장하게 시창앞을 살피던 책임부관이 얼굴을 돌렸다.
《최고사령관동지, 로영진동무네 부대병사들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음, 보병행렬인걸 보면 그런것 같소. 이 동무들의 행군속도가 대단하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전방지휘소가 아니요?》
《그렇습니다. 전술방안이 바뀐 다음 부대장동무가 행군대오를 무섭게 다그어댄것이 알립니다. 시간적으로 보아 대오가 아직 이 지점까지는 도착 못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임부관은 놀라운지 머리를 기우뚱거렸다.
《그 범같은 리평해사령관이 가만 있겠소? 그리고 로영진동무도 겉보기와는 달리 내밀성과 통솔력이 보통이 아니거든.》
김정일동지께서는 만족하시여 볼편에 살이 적고 키가 후리후리한 로영진을 눈앞에 그려보시였다. 과묵하고 푸접은 없지만 대신 작전예술에 대한 연구심이 강하고 사업과 생활에서 고지식한 젊은 지휘관이였다.
야전승용차가 대오쪽으로 접근하자 비소리에 섞여 아츠러운 발동기소음과 병사들이 기운쓰는 소리들이 가까와졌다.
《길이 막힌게 아니요?》
《포차가 빠진것 같습니다.》
야전승용차가 멈춰서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비옷을 대충 걸치시고 밖으로 내려서시였다. 비바람이 밀려들면서 삽시에 비옷과 야전복섶을 적셔버린다.
김정일동지께서 서둘러 비옷모자를 올리는 순간 행군대오에서 키가 후리후리한 장령이 전지불로 땅바닥을 얼비추면서 급하게 걸어왔다.
《로영진동무 아니요?…》
김정일동지의 청청하신 음성에 그는 흠칫 멈춰서더니 이윽고 놀라며 차렷자세로 뒤를 향해 돌아서려 한다.
《가만, 보고는 그만 두오. 폭우에 길이 막혔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흥분으로 달아오른 로영진의 팔을 잡으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어떻게… 어서… 차에 들어가십시오. 곧 길을 열겠습니다. 비바람이 세찹니다.》
로영진은 퍼렇게 언 입술을 놀리며 절절하게 부르짖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에 뼈속까지 젖어든 지휘관을 미더운 눈길로 살펴보시였다.
《푹 젖었구만. 우리 걱정은 말고 빨리 행군대오를 지휘하시오. 우린 전방지휘소로 가던 길이니 차가 빠질수 없다면 걸어가겠소.》
《최고사령관동지, 비줄기가 예상외로 사납습니다. 저희들이 인차 길을 열겠습니다. 조금만 차에 들어가시여 기다려주십시오.》
로영진은 안타까운 눈길로 그이의 앞길을 막아섰다.
《허허, 비뿌리는 밤길을 나의 병사들이 걷고있는데 최고사령관이 비를 좀 맞은들 뭐라오. .…자 그럼 병사들도 만나볼겸 함께 걷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로영진을 가볍게 미시고 병사들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부관과 로영진이 서둘러 따라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뒤를 돌아보시였다.
《부대장동무, 그 전지는 걷어넣소. 우린 이런 밤길에 습관되여서 일없소. 그리고 괜히 병사들에게 우리를 알리느라 하지 마오. 행군속도에 지장을 줄수 있소.》
《최고사령관동지!…》
격동된 로영진이 멈춰선채 어둠속에서 큰 숨을 몰아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진창길을 저벅저벅 걸으시여 행군하는 병사들속에 들어서시였다. 검은 감탕물에 그이의 신발이 푹 잠기고 비방울이 아래도리를 흠뻑 적시였다.
비속을 행군하느라 지친 병사들은 그저 묵묵히 걷고있었다. 꽛꽛해진 방수포비옷을 때리는 비소리와 헛바퀴를 구는 포차소리만이 밤대기를 흔들뿐이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병사들과 함께 말없이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어쩐지 병사들속에서 걸으니 마음이 편하고 즐거우시였다. 이대로 내처 걷고싶으시였다.
물홈에 빠진 포차옆을 지나던 병사들중에서 누군가 싱겁게 한마디 던졌다.
《여, 포차! 보병의 도움이 필요하면 어려워말고 제기하게!》
그러자 운전사인지 전진보장대 성원인지가 시들하게 대꾸했다.
《제코나 씻으라구요. 괜히 포차신세를 지려고 넘겨다보지 말고…》
《뭐? 보병이 포차를 넘보아? 듣다 처음듣는 소리- 우린 발이 날개란 말이요.》
몇명의 병사들이 가볍게 웃었다.
포차곁을 지나자 또다시 병사들은 침묵에 빠져 묵묵히 걸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여 그들과 보조를 맞추시였다. 행군분위기가 무거운것이 마음에 걸리시였다. 병사들은 지쳐있었다. 걸으면서 졸고있었다.
《뒤로 전달! 졸지 말것. 속도 빨리!》
소대장인듯싶은 군관의 짤막하고 엄한 구령이 떨어지자 행군대오는 흠씰하며 전진이 빨라진다.
하지만 몇걸음 못가서 병사들은 다시 눈을 뜬채 졸며 《자며》 걸어간다.
밤, 비줄기, 병사들은 야밤의 행군에 지쳐있었다. 폭우도 어둠도 비바람소리도 그들의 검질긴 졸음기를 날려보내지 못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속이 알싸하시여 옆에서 걷는 로영진을 돌아보시였다. 부대장도 긴장한 자세로 주의를 살피며 묵묵히 걷기만 한다.
《동무들, 내 졸다가 영웅이 된 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라오?》
김정일동지의 우렁우렁한 음성에 졸며 《자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던 가까이의 병사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어둠속이지만 자기네 부대장만은 알아본듯 서로들 돌아보며 좋아하였다.
《어서 들려 주십시오.》
한 병사가 김정일동지의 곁으로 바투 붙어서며 졸랐다.
《허허, 이건 내가 아끼는 이야긴데 병사들에게야 해줘야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말이요. 사단의 포위작전을 위해 한개 분대가 돌출부에서 적들의 공격을 견제하기 위한 전투를 벌리고있었소. 분대는 3일간 돌출부를 지킬데 대한 임무를 받았소. 그런데 예상외로 돌출부를 차지하려는 미제침략군의 기도가 컸던것 같소. 놈들은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련 사흘을 파도식으로 계속 공격해왔거든. 병사들은 주먹밥으로 끼니를 에우며 화선에서 힘겨운 전투를 벌렸소. 분대의 막냉이전사는 구대원들과 함께 기관단총을 휘둘렀지. 사상자들이 나졌소. 사흘째 되는 날에는 돌출부에 분대장과 구대원 한명 그리고 전사만이 남았소. 며칠째 지금의 동무들처럼 잠 못잔 병사들은 끄덕끄덕 졸다가도 적이 공격해오면 번쩍 눈을 뜨고 섬멸의 불을 뿜군 했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물을 손으로 훔치시였다.
병사들은 숨을 죽이고 그이의 이야기에 끌려들어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어느새 정신들이 말짱해져서 부지런히 걸음만 옮기고있다.
《그다음 어떻게 됐습니까?》
곁에 붙어선 젊은 병사가 또 바투 들이대다가 로영진의 손에 잡힌듯 약간 떨어진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병사를 도로 자신의 가까이에 세우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분대장은 말이요. 그 가렬한 전투속에서도 아직 화약내를 많이 맡지 못한 전사생각이 내려가지 않아 억지로 그를 떼내여 눈을 좀 붙이라고 명령했소. 전사는 펄쩍 뛰였으나 끝내 화선의 전호벽에 기대여 졸기 시작했소. 피곤이 삽시에 몰려든것이지.》
《야, 그렇다구 저만 졸다니…》
곁의 병사가 아쉬운듯 중얼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될수록 비바람을 막아주시려고 그 병사를 자신의 뒤쪽에 세우시였다.
《허허허, 그런데 말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졸던 전사는 사위가 고요해지자 문득 깨여나버렸소. 오히려 끊길줄 모르는 총포성속에서는 편안히 자던 전사가 사방이 조용해지자 눈을 떴단 말이요. 그러자 전사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소. 미제침략군들이 새까맣게 돌출부를 에워쌌거든. 이미 분대장과 구대원은 전사했지만 기관총소리가 멎자 적들도 의심쩍은지 조심하고있었소. 적들은 드디여 돌출부를 타고앉은줄 알고 여기저기 싸다니며 기세를 돋구고있었소. 어떤자는 총창으로 전호의 탄약상자까지 찔러보기도 하고…
전사는 순간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소. 그는 억척같은 힘으로 일어나 기관총으로 적들을 쓸어눕히기 시작했소. 돌출부를 둘러쌌던 수십명의 적들이 기관총세례에 쓰러지고 그 순간 사단의 공격이 시작되였소. 분대는 끝내 자기 임무를 수행했거든. 전사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머리우를 지나가는 아군의 불줄기와 공격의 함성을 들었소.
공격하는 구분대가 돌출부에 도착했을 때 영웅전사는 또 깊은 잠에 들어있었소.…》
김정일동지의 말씀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목소리들이 연방 터졌다.
《야! 그 전사가 대단한데!…》
《정말 영웅은 뭔가 달라. 용감하구…》
《그리고 기회도 좋았어!…》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졸음이 말끔히 달아나 활력이 넘치는 대오를 둘러보시였다.
《그래 병사동무들! 졸다가 영웅이 된 전사가 그저 운수가 좋아서 위훈을 세웠겠는가! 아니요. 경애하는 수령님의 명령을 받들고 조국을 피로써 지키려는 각오가 높고 평소에 훈련을 잘했기때문이요. 오늘의 말로 표현하면 혁명적군인정신이 높았거든! 이 정신과 각오와 전투력이 그런 용감성과 위훈을 낳았거든!
병사동무들! 동무들이 지금 이어가고있는 행군길도 총대로 오늘의 준엄한 난국을 헤쳐나가는 성스러운 투쟁이요. 이 성스런 진군길에서 병사들모두가 영웅이 되여야 하오!…》
병사들은 그이의 말씀에서 무엇인가 범상치 않은 충격을 받은듯 격정으로 설레이더니 모두가 목소리를 합쳐 힘차게 대답하였다.
《알았습니다!-》
비내리는 어둠속으로 활기에 넘친 병사들이 한동아리가 되여 저벅저벅 행군해갔다.
조금 앞서걷던 로영진이 돌아서며 정중한 자세를 지었다.
《여기 물도랑이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물도랑을 건느시다가 안심치 않으신듯 가운데 놓여있는 징검돌우에 멈춰서시였다. 크지 않은 징검돌이 약간 기우뚱거렸다. 그이께서는 로영진과 병사들쪽을 돌아보시였다.
《자, 병사동무들! 어서 건느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발목을 넘는 찬 물도랑에 들어서신채 병사들에게 손을 저으시였다.
김정일동지의 곁에 내내 붙어가던 젊은 병사가 선참으로 징검돌을 짚었다. 어둠속이라 병사가 약간 기우뚱거리자 그이께서는 손을 잡아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냥 물도랑에 내려서시여 병사들이 무사히 건느도록 일일이 손잡아 이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옷틈새로 차거운 비물이 척척하게 흘러들었으나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신채 미소를 지으시고 병사들을 한명한명 보살피시였다.
그 순간 어둠속에서 흐느낌소리 같은것이 들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놀라서 얼굴을 돌리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로영진이 뜨거운 목소리로 목메여 부르짖자 놀란 병사들속에서 격정의 환호소리가 터져올랐다. 병사들은 자기들과 함께 비뿌리는 진창길을 함께 걸으시며 힘과 용기를 주시고 몸소 어버이손길로 손잡아 이끄신분이 다름아닌 꿈결에도 뵈옵고싶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이시라는것을 알자 너무도 감격하고 행복하여 눈물속에 만세를 불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나무라는 시선으로 로영진을 바라보시다가 그만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자, 병사동무들! 부대의 결전진입시간이 다가오고있소. 행군속도를 늦추면 안되오. 가기요!》
격동과 흥분에 젖은 병사들이 대오를 정돈하고 다시 행군길에 올랐다.
《로영진동무, 이거 어떻게 된 일이요. 아직 <아>군지역인데 이렇게 조용해서야 되겠소? 병사들의 진군길엔 힘찬 군가소리가 나와야지! 부대장이 정말 음악과 담을 싼게 아니요?》
그러자 머뭇거리던 그 젊은 병사가 어려움을 잊고 김정일동지께 청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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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최고사령관동지! 선창을 떼주십시오. 저희들이 받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병사를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최고사령관이 선창을 떼면 병사들이 받겠다? 좋소! 아주 랑만적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병사들을 둘러보시였다.
비뿌리는 전선의 밤, 병사들의 철갑모와 총창이 번뜩인다.
어느새 길이 열린듯 포차들과 장갑차들이 비바람을 헤치며 질주해간다.
약간 뜸해진 비발사이로 점차 밤하늘이 희붐하게 트이고 이제 얼마후이면 별들이 흐를것이다.
총창을 번뜩이는 병사들의 대오우로 힘있는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에
결심 품고 싸워가는 우리 혁명군
이윽고 병사들의 우렁찬 합창소리가 전선길을 뒤흔들며 대지우에 메아리쳤다. 로영진도 그리고 책임부관도 눈물속에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천신만고 모두가 달게 여기며
피와 땀을 흘린자가 그 얼마냐
…
비발이 설펴져 보슬비로 변하자 가벼운 바람이 일었다. 비구름이 서북쪽으로 밀려가면서 언덕의 숲이 솨솨- 설레이기 시작한다.
총창과 철갑모를 번쩍이며 병사들이 행군길을 다그치고있었다.
멀리 행군대오의 앞길에 갈림길이 나지였다. 여기서 군부대 전방지휘소로 오르는 지름길이 시작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