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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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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046회 작성일 20-12-23 18:52

본문

  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2009-05-04-U01.jpg

 

                                박    윤

 

 

( 제 37 회 )

 

 

제 5 장

 

9

  

다음날 새벽, 지프리 밀튼대좌는 천막을 두드리는 소란한 비소리와 천둥소리에 놀라 잠을 깨였다. 뿌연 발전기의 불빛속에 이동용침대에 곯아 떨어진 리오타와 그리스챤의 모습이 눈에 안겨드는 순간 그는 후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천막벽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비줄기가 쓸어들어왔다. 옷도 채 입지 못한채 밀튼은 쏜살같이 천막밖으로 뛰여나왔다. 아우성과 함께 리오타와 그리스챤도 속옷바람으로 총알같이 튕겨났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묵중한 천막이 한옆으로 쓰러졌다.

밀튼은 차거운 비줄기에 몸서리를 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간밤의 폭풍과 비발이 어찌나 세찼던지 둔덕우의 천막들이 모조리 녹아났다. 회담장으로 리용하는 가운데천막과 그곁의 조사장지휘성원들의 천막도 폭풍에 쓰러졌다.

밀튼은 푸릿한 새벽빛발속에 드러난 북조선측 천막쪽을 다소 공포에 질린 눈길로 지그시 쏘아보았다. 그쪽에서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듯 싶다. 구령소리와 삽질소리가 들리고 검은 형체들이 얼른거린다.

밀튼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안전을 담당한 북조선측이 천막수리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밀튼대좌, 빨리 회담을 제기하고 넘어진 천막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어느새 우산을 얻어쓴 리오타가 퍼런 입술을 놀리며 밀튼의 곁으로 다가왔다.

밀튼은 어처구니 없어 턱으로 북조선측 천막쪽을 가리켰다. 비바람이 휙 지나가며 등줄기로 비물이 쏟아져내렸다. 그는 할수없이 리오타의 우산속에 기여들어 목을 움츠렸다.

《어쨌든 저들도 같은 형편이니 비가 멎을 때까지 기다립시다.》

몸이 비대한 리오타곁에 서니 한결 훈훈한 느낌이다.

리오타는 불만스러운듯 코소리를 킁킁 냈다.

《대좌, 내 이런걸 예견해서 그냥 출발하자고 했는데 당신때문에 개판이 됐소. 어쩐지 이 땅은 모든게 다 불길하단 말이요.》

《하지만 회담에서 합의한 일정을 깨뜨린다는건 국제법상으로도 비난받을 일이지요.》

《제길,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하는걸 국무성제씨들이 알기나 할런지.… 이건 완전히 전장이나 같아. 어제 보았지? 폭발물이 눈앞에서 움직인단 말이요. 폭발물이!…》

리오타는 어깨를 떨며 진저리를 쳤다.

《가만, 국장님, 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옵니다. 할수없이 우산밑에서 회담을 해야겠군요.》

밀튼이 비양조로 내뱉자 리오타는 허리를 쭉 폈다.

《대좌, 자세를 존엄있게 가져야겠소. 이런 때일수록 미합중국대표라는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천막수리와 관련하여 정중하게 요점을 제기해야 하오. 통역을 맡아주시오.》

북조선측 인원들이 웅성웅성하며 그들쪽으로 다가왔다.

뜻밖에도 맨 앞장에서 삽을 둘러메고오는 사람은 봉명주소장이다. 군복바지를 걷어붙이고 군복저고리를 벗어제쳤는데 비물에 홀딱 젖어버렸다.

《아니 당신들은 천막을 일떠세울 생각은 않구 왜 장승처럼 서있소?》

봉명주는 명랑하게 웃으며 영어로 소리질렀다. 안경을 벗으니 사람이 한결 젊어보인다.

리오타가 속옷바람이지만 점잖은 자세로 한걸음 다가갔다.

《소장님, 우리는 지금 천막수리와 관련하여 긴급회담을…》

밀튼이 허리를 쿡 찌르는 바람에 리오타는 마지 못해 얼굴을 돌렸다.

《허허허, 이 량반들이 환장을 했군.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회담은 무슨 회담이요.》

봉명주는 손으로 얼굴을 뻑 훔치고나서 뒤따르는 리천중좌를 돌아보았다.

《자, 동무들, 이 알량한 량반들이 회담을 제기하는데 우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행하기요.》

봉명주가 삽을 들고 회담장으로 리용하는 중간천막주위에 물도랑을 파기 시작하자 리천중좌를 비롯한 북조선측 인원들이 일제히 달라붙었다.

밀튼과 리오타는 한옆으로 비켜섰다. 봉명주의 지휘하에 북조선측 인원들은 비속을 뛰여다니며 걸싸게 일을 해제낀다.

밀튼은 강한 충격을 받고 돌미륵처럼 굳어져 이 모든것을 목격하고있었다. 바빠난 리오타는 왁작 떠들며 삽질하는 봉명주의 머리우에 우산을 펼쳐들었다. 봉명주는 힐끔 올려다보더니 그냥 아무말없이 삽질을 계속한다.

(대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병사들도 꺼릴 비속으로 장령이 직접 나서서 일을 하다니… 정말 모를 일이다. 도대체 서방식관념으로야 이들의 행동과 정신세계를 리해할수가 있는가. 어쨌든 불굴의 인간, 거인적인 신비한 군대다!…)

밀튼대좌는 비바람속에서 작업을 지휘하며 걸싸게 삽질을 하는 봉명주를 흘린듯이 바라보았다.

《봉장령, 이거 왜 병사들을 깨우지 않고…》

리오타가 우산을 받쳐든채 봉명주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겨우 한마디 했다. 부유한 명문출신의 리오타도 막일에 몸을 내댄 장령앞에 몹시 옹색한 모양이다.

봉명주가 허리를 쭉 펴고 얼굴의 비물을 훔쳤다.

《허허, 여보 리오타국장, 다행히 병사들의 천막은 골짜기에 있어 손상이 없습니다. 이제 또 경비임무를 수행해야겠는데 피곤한 병사들을 아껴야지요. 젊은이들이란 아침잠이 꿀처럼 달거든! 그렇지 않소? 밀튼대좌!》

밀튼은 눈을 올리뜨고 동터오는 산천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나팔소리가 울렸다. 혈기왕성한 군인들이 비속으로 달려나와 아침운동을 하려다가 둔덕쪽을 둘러보고 와와 뛰여온다. 한 젊은 병사가 무작정 봉명주의 삽을 빼앗아 들자 한 사관은 또 진록색비옷을 씌워준다.

봉명주가 그 병사의 잔등을 철썩 갈기며 명랑한 웃음을 터뜨린다.

밀튼대좌는 꿈속에서처럼 그 모습을 주시하고있었다.

(그래, 북조선군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독특하고 랑만적인 군대다. 아니, 다른 행성 사람들이다. 이들의 고상한 정신도덕적위력은 무한대이다! 이 모든것이 어디에서 나온것인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저 상하의 친밀한 혈연적모습은 대체 어디에 뿌리를 둔것인가? 저런 병사들을 굴복시킬 힘이 우리 미국에, 아니, 이 세계에 과연 존재할가?…)

이 순간 부러움이, 두려움이 한껏 달아오른 그의 심장을 아프게 찌르고있었다.

이날 오후 리오타일행은 봉명주소장과 함께 향산호텔에 려장을 풀었다. 밀튼의 간곡한 요청으로 묘향산기슭에 자리잡은 국제친선전람관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세상사람들에게 전설적인 장소로 알려진 그곳을 한번 참관하려는것은 밀튼대좌가 평소부터 안고있던 소망이였다. 안해 조안이 언제부터 그 소망을 움틔워 주었는지 그는 모른다. 밀튼은 신비한 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심정으로 온통 대리석으로 비다듬은 전람관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세계의 진귀한 보물들과 인간이 창조한 귀중품들이 다 모인 전대미문의 박물관이였다. 그것이 세계의 력대 수반들과 이름있는 정치인, 인사들의 념원과 정성으로 물들여져 더 값높고 성스러워졌는지도 모른다.

일국의 대통령들도 선물 몇점씩은 가지게 될것이다. 그것은 은퇴후 그들 저택의 응접실과 홀의 벽을 호화롭게 장식하는 가보로 전해지면서 가문의 명예와 기품을 윤색하는 정치, 예술적도구로, 나아가서는 구매자들의 눈독을 들이는 일류급상품으로 빛날것이다.

전람관을 나온 밀튼은 향산천기슭을 거닐며 눈을 감고있었다. 세계수반들이 김정일국방위원장께 드린 순금의 선물들이 아직도 눈앞에서 빛을 뿌려서만이 아니였다. 그 모든 국보적인 귀중품들을 고스란히 국민들을 위해 서슴없이 내놓은 그 덕행과 인간미가 이 순간 그를 매혹시키고있었기때문이였다.

밀튼대좌는 곁에서 묵묵히 걷고있는 봉명주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저는 다른 세계에 온 기분입니다.》

봉명주가 흥미를 품고 진중한 눈길로 그를 건너다보았다. 밀튼대좌는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는 향산천의 소연한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네 최고사령관께서 우리의 코앞인 판문점을 시찰하신 때의 일이 떠오르는군요. 저의 안해가 먼저 알고 내게 알려주더군요. 그때의 충격이 되살아납니다. 세계일류급군대의 최고사령관이 최전연에 나온 사실을 나는 처음 믿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상식으로써는 믿을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다음날 군인들의 손목에서 빛나는 금시계를 보았을 때, 신문을 읽었을 때 나는 마술에서 깨여났지요. 나로 말하면 반생을 이 극동전선에서 복무했지만 대통령표창은커녕 8군사령관의 표창도 받은 일이 없거든요. 부하들을 위하시는 북조선군령장의 비범성과 덕망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오늘 국제친선전람관 김정일장군님관을 돌아보니 나의 돌같은 가슴에도 그 어떤 따뜻한 봄물줄기 같은것이 흐릅니다.

봉장령, 나는 개인적으로, 군인으로서 서슴없이 말씀 드립니다. 나는 김정일장군을 진심으로 흠모합니다!》

《?!…》

어느새 비줄기가 멎어버리고 하늘이 파랗게 틔였다.

수려한 산천이 웅심깊은 자태를 드러내고 골짜기와 내가에서 안개가 피여오른다. 깊은 수림들이 눈을 뜨고 절묘한 벼랑들과 봉우리들이 안개속에 솟아올라 빛을 뿌린다.

문득 방금 국제친선전람관 감상록에서 읽은 문익환목사와 그의 부인 박용길장로의 시들이 떠올랐다.

겨울과 가을날의 환희에 찬 시편들…

묘향산 높은 봉

흰 눈덮여 흰뫼

흰 마음 불타오르는 날

온 겨레의 마음같이

붉게 타올라

운명의 세월이 흐른 뒤 안해가 남편의 시구를 받았는가.

흰 구름 안개 서리서리

첩첩 푸른 산 휘여잡고

맑은 물은 장한 바위 얼싸 안고 솟구치네

우리 소원 우리 자랑

산수절경 묘향산아

안해 조안은 이 백발의 장로와도 우의가 두텁다. 장로가 북조선을 다녀온 후 옥살이할 때는 몇번 면회까지 갔었다. 백발로인이 젊게 본 의미깊은 수려한 산천이 그의 좁은 가슴을 넓혀주고있었다. 명산도 명인의 명성이 깃들어있어 더 빛나는걸가.

밀튼은 한눈에 다 안을수 없는 신비한 세계에 현혹되여 만시름을 잊은채 넋을 잃고 이 아름다운 자연의 기적을 감상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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