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환 제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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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봉은 보통문을 지나 다리를 건느고나서 차를 돌려보내고 유보도에 들어섰다. 갑자기 10년은 더 젊어진것처럼 온몸에서 활기가 풍기였다. 그는 나무밑을 걸었다. 평양단풍이 잎을 피웠다.
봄이 한창 무르익고있었다. 드문드문 덩굴이 져서 꽃들이 피였다. 보통강물은 저녁해빛을 눈부시게 반사하고있다.
이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심한 어머님이 맞받아나오면서 얼굴부터 쳐다볼것이다. 그러면 온 천지를 다 얻은것 같은 이 환희를 어머니는 인차 알아맞힐것이다. 어머니는 너무 감격해서 까무라칠수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또 안해는…
그의 눈앞에는 밀도가 강한 영화화면처럼 집안식구들의 얼굴, 동료들의 모습, 동맹일군들의 놀라운 표정들이 연방 스쳐지나갔다.
그러다가 그 장면이 휙 걷히고 방금전까지 익혀둔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미소를 머금은 영상이 시야를 꽉 채우며 나타났다. 온몸에서 청춘의 기백이 넘쳐흐르는 그이의 기상, 열정에 넘친 음성, 안면에는 그이께 특유한 매력적인 미소가 어려있다. 언제나 신심에 넘쳐있고 락천적인 사람들에게만 볼수 있는 빛나는 눈, 의지와 패기가 엿보이는 입모습, 그이의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라고 할수 있을가. 칸도 많고 갈피도 많은 그이의 사색의 세계, 마음의 금선은 인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뜨겁고 부드러운 사랑의 음향이 울려나오는것이다. 가지각색꽃이 만발한 화원에 비길것인가. 아니 그것은 너무도 왜소하고 단순하다. 그렇지. 그이는 끝없이 설레이고 천변만화를 보여주는 바다와 같은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가. 아니다.
그것은 넓고 깊이는 있지만 인간 누구에게나 공기처럼 필요한 사랑이라는것을 주고있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 그이를 한마디로 집약하고 상징해서 봄! 봄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봄은 싹터서 오고 불어서 오고 흘러서 온다고 하지 않는가. 온 행성이 얼음덩어리로 되여있던 아득한 옛 빙하시대를 상상해보자. 그러면 해마다 찾아오고 그것도 누구에게나 범상하게만 여겨지던 그 봄이 어떤 기적과 변환에 의한것인가를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짐작컨대 아마 인류의 조상, 더 거슬러올라 무기물이 유기물로 진화된 생명의 시작도 지구상에 봄이 온것과 관련되여있을것이다. 봄은 미래를 안고있으며 봄은 만물에 활력을 부어주는 계절이다. 봄은 따사로운 품이다. 모든것이 봄에서부터 시작된다. 봄은 눈으로 보고 알기전에 온몸으로 느껴지는것이다.
김일성동지, 그분은 민족의 념원과 진보적리념을 실체로 되게 하시였다. 일제를 쳐물리치고 조국을 광복하시였다. 이 엄혹한 계절을 헤쳐나가며 당, 정권, 무력을 만들어놓으시였다. 인민이 주인이 된 사회주의제도를 만들어놓으시였다. 3년간의 조국전쟁을 승리에로 인도하여 피로써 얻은 전취물을 보호하고 공화국의 위력을 온 세상에 과시하시였다.
김정일동지, 그분께서는 이제 이 모든것에 활력을 부어넣고 창창한 미래를 펼쳐놓으실것이다. 해빛처럼 따사로운 온기를 안고 이 나라의 모든것이 자라서 무성하게 할것이다. 20세기는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것이 시작되는 창건의 시기라고 말할수 있으며 21세기는 이 나라, 이 민족의 대번영기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때문에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를 우리는 분리해서 생각할수 없다. 병행이며 련속이며 하나의 줄기찬 흐름, 오직 그 하나의 흐름인것이다.
천세봉은 때로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땅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끝없이 날고있는 환상의 구름을 타고 온 우주를 굽어보고있었다. 어떤 때는 아이들처럼 나무잎을 훑어서 하늘에 날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공연히 땅바닥의 돌을 차굴리기도 하였다.
그는 고원군 금수리에 있을 때 소설을 쓰다가 잘 내려가지 않거나 몸이 지긋지긋하면 이렇게 덕지강기슭을 걸으면서 이러저러한 생각도 하고 또 미역을 감거나 아이들과 함께 반두질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다시 머리가 개이고 기운이 솟아 앞을 헤쳐나가군했다.
그는 얼마 멀지 않은 보통강유보도를 몇시간이나 걸었다. 아마도 일생에 이때처럼 희망을 안고 앞을 내다보면서 사색에 잠기기는 처음이였을것이다.
《할아버지!》 계집애 목소리였다.
언뜩 고개를 돌리는데 어느새 벌써 다리에 와서 감겨돌아간다. 유치원다니는 손녀가 강가에 놀러 나왔다가 할아버지를 띠여보게 되였던것이다.
천세봉은 아이를 늬큼 머리우까지 들어올리였다. 계집애는 좋아서 깔깔거리며 다리를 바둥거린다. 계집애보다 더 좋아하고 밝아진것은 천세봉 그자신의 얼굴이였다. 기다란 얼굴에 웃음이 하나가득 담기였다. 너도 이제 50년이라는 인생의 바다를 건느고나면 내가 지금 무엇때문에 이렇게 기뻐하는지 알수 있을것이다. 사람이 어느때 제일 기뻐지는가. 그것은 바라는것이 이루어질 때이다. 하다 못해 잃어버렸던 귀중품을 찾았을 때도 기뻐지는것이 사람이다. 하물며 자기 운명과 자기 민족의 장래운명을 향도하게 될 령도자를 만나는것이 얼마나 큰 기쁨으로 된다는것을 누가 짐작을 못하겠는가.
손녀가 끄는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아니나다를가 문소리가 나자 이가 한대도 없는 어머니가 맞받아나온다. 여느때처럼 어머니는 가방을 받을념도 웃옷을 벗길념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아들의 거동을 지켜보기만 한다.
《아니 이사람아, 어찌된 일인가?》
어머니는 가느다란 팔을 흔들면서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있다.
《뭐 어쩔거나 있습니까?》
《술을 마셨나?》
《아니요. 봄이 왔어요.》
《뭐? 봄, 에그!》
어머니는 그제서야 복도에 서있는 아들한테서 가방을 받으며 눈굽으로 손을 가져간다.
《네가 밤낮 자지 못하고 그러더니 끝내 정신이 돌고말았구나…》
《아니래두요. 봄이야요. 봄!》
《저것보지 쭈쭈, 히쭉벌쭉 웃기까지 한다.》
《하하하.》
오래간만에 이 집에서 그것도 서재에서 난데없이 큰 웃음소리가 울린것이다. 아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어머니는 문가에 서서 그냥 지키고있다.
하기는 정신이 돌았다고 할만도 한것이다.
다른 작가들과는 좀 달라서 촌에 있으면서 천세봉이 소설을 쓸 때면 그것이 온 집안식구들의 한결같은 노력의 수고로 되였다. 식솔이 많은 이집에서 글을 쓰거나 사색하는데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마음을 쓰는것이 하나의 가풍으로 되였다. 여기서 70이 넘은 어머니도 례외가 아니였다. 그런데 촌에서 올라와 평양에서 써낸 《안개흐르는 새 언덕》이 과오를 범했다고 하지 않는가. 별의별 소리가 다 돌아갔다. 아마도 이 집에서 어떤 불상사가 났다해도 이렇게 고민하고 절망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안해도 울고 아이들도 울고 온 집안이 다 울었다. 어머니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였다.
《수령님 덕분에 머슴이 작가가 되고 우리 집안에 꽃이 핀다고 하던 네가 수령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글을 쓰다니 망녕이 들어두 분수가 있지…》 그러던 어머니였다.
천세봉은 팔을 벌려 어머니를 그러안았다. 한줌만하게 작아진 어머니!… 어머니와 아들의 이런 포옹은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체구가 이렇게 작아진줄 몰랐었다. 이러한 어머니에게 오늘의 이 감격, 이 흥분을 어떻게 말로 전할것인가.
안타까왔다. 가슴이 벅차오를수록 더 안타까왔다.
그는 울었다. 고개를 든 어머니의 조글조글한 얼굴에 굵다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불티처럼 뜨거운 눈물이.
한참 울고나서 어머니도 앉고 아들도 방바닥에 앉았다.
《어머니! 봄이 왔습니다, 봄빛이 비쳐왔어요.》
《아니 뭐?… 에그, 금수리에 있을적에두 미친 사람처럼 늘 혼자 중얼중얼하더니.》
《봄은 만물이 살아나게 하지요. 싹이 트고 따스한 바람이 불고 얼었던 강이 풀리고.》
《알겠다. 알아, 네 혼자소리지.》
어머니에게 이 봄을 리해시키기 위해 아들은 옹근 한밤을 새워야만 하였다.
제 13 장
림귀현은 제철소구내에 이르자 차에서 내렸다. 갱도를 걸어갈 때 생긴 버릇대로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사하고 가설건물안에 들어섰다. 여기서는 평양에서 내려온 미술가들이 대형유화를 그리는 미술작업을 하고있었다.
어느새 알아차렸는지 40대의 화가가 붓을 든채로 맞받아나왔다.
《또 오셨습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지요.》
《하긴 그렇소.》
《그렇게까지 걱정 안해도 되겠는데요.》
림귀현은 그물모자를 쓴 미술가의 등을 떠밀며 웃었다.
아닌게아니라 며칠에 한번씩 와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대형유화판을 세운다는것으로 마음이 한껏 흐뭇해져 다른 사업에서도 성수가 났던것이다. 당대표자회결정 관철을 위해 제철소에 나올 일이 자주 생기였고 그때마다 여기부터 들리게 되는 림귀현이였다.
그는 한창 진행되는 미술작업을 돌아보았다. 높이 10메터, 폭은 6메터 정도인데 그것을 대돌에 올리기까지 하면 규모가 상당히 클것이였다.
미술가들이 말하는 그 세부묘사란것이 자꾸 더해지자 날이 다르게 형상이 생동하게 살아났다.
림귀현은 몇걸음 다가서기도 하고 또는 뒤로 물러서기도 하면서 대형유화를 쳐다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쪽 손을 높이 드시여 용광로를 가리키며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고계시였다. 주위에 둘러선 로동자들과 일군들의 얼굴에는 수령님을 우러러 흠모의 정이 함뿍 어려있었다.
림귀현은 가슴이 새삼스레 뜨거워진다. 광산지하막장에서 만나뵈온 때의 수령님영상이 눈앞에 떠올랐기때문이다. 한참이나 그림을 쳐다보고있다가 그는 미술가에게 물었다.
《유상철로장이 보이지 않누만.》
《지금 저쪽에 있습니다.》
림귀현이 미술가가 가리키는쪽을 바라보니 울깃불깃한 색감통들이 잔뜩 널려있는 새짬에서 유상철이 옹크리고앉아 무슨일을 하고있었다. 림귀현이 그리로 걸어갔다.
《로장아바인 여기서 뭘하십니까?》
림귀현이 명랑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네?》
고개를 돌린 유상철은 림귀현을 보고 일어섰다. 그는 색감을 이기던 박죽같은것을 그냥 손에 들고있었다.
《어느새 미술가가 됐소이다.》
《미술가라니요? 그저 이렇게 색감이나 이겨주고 붓도 닦아주면서 그림쟁이맛을 좀 보는거지요.》
《하여튼 지성이 여간 아니시군요… 옛날에도 명필이 되려거든 먹가는 법부터 배우랬다지 않습니까.》
《그런데 책임비서동지!》
유상철이 색감이 발린 손을 걸레로 문대면서 앞으로 다가섰다.
《이렇게 하다가는 5.1절전에 완성될것 같지 않습니다. 그림은 그렇다치고 유화판틀이 그때까지…》
《로장아바이의 말이 옳습니다.》
《수령님영상을 하루빨리 크게 모시자구 하는데…》
《다그칠 대책을 세워야지요. 도에 있는 미술가들로 력량을 보충하고 유화판틀을 세우는 작업두 와짝 내밀어보자는겁니다.》
《참, 이렇게 관심해주시니.》
《이건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친히 발기하신거구 우리모두 성심성의로 빨리 해야만 할 사업이지요.》
《더 이를말입니까.》
《로장아바이, 그럼 난 유화판틀을 세우는 <구내산>에 가겠습니다.》
《저두 거기루 가려던 참입니다. 하던 일 마저 끝내구…》
림귀현이 나가자 유상철은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그는 요새 용광로에서 기본교대시간을 보내고는 《구내산》에 세울 유화를 그리는 여기에 나와있군하였다.
그도 림귀현이 나간지 얼마후 거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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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옥은 외면상 고모사촌오빠네 집에 오는 려행길 같았다. 허나 이번 걸음이 자기한테는 운명적인 걸음인듯이 생각되였다.
그동안 세번이나 편지를 보냈지만 한창수한테서는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 명옥은 창수를 잊은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의 름름한 체구와 남성다운 매력을 가진 얼굴모습이 눈앞에 자꾸만 다가섬을 어쩔수 없었다. 명옥은 사랑의 번민에 빠진것이였다. 게다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기에 자연 개입하게 되면서 옥신각신이 벌어지군하였다.
어떤 때는 명옥이를 직접 맞대놓고 부모님은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명옥아, 창수가 군대에 나간 사이에도 너희들은 편지를 주고받았지. 나는 네가 창수의 편지를 기다리다가 그 편지를 받아 읽는 너의 얼굴과 몸가짐을 지켜보군했다. 너희들은 단순히 문안편지나 주고받은게 아니지 않니?… 무엇이든 한번 약속하면 그걸 지키는게 사람의 도리이지. 이런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창수가 공장대학에 다닌다는걸 봐서 제 발전을 생각지 않는것도 아니고 더구나 제철소에서 강철기둥으로 나라를 받들겠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미덥니…》
이러면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말했다.
《아니 여보, 당신은 제딸 생각은 안하는것 같구만요. 딸의 장래도 생각해봐야지요. 그래 거기에 가면 명옥이가 무대에서 물러나야 하는데두요?》
어머니의 말이 옳은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어디 내가 설수 있는 《무대》가 있단 말인가.
명옥은 멀지 않은 기차길이지만 먼길 떠나는 사람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한창수의 아버지 전우라던 전상환부부장이 찾아왔던 일도 생각이 났다.
《그곳은 오늘의 1211고지입니다. 그래서 창수는 거길 못떠나겠다는거지요. 나도 그 심정이 마음에 들어…》
전상환이 신원동에 있는 명옥이네 집에 찾아온것은 비내리는 저녁이였다.
《제가 이 집 따님의 혼담에 끼여들 사람이 못된다고는 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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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제가 이 집 따님의 혼담에 끼여들 사람이 못된다고는 보지 마십시오. 창수로 말하면 저의 락동강전우의 아들이니 제가 창수의 아버지이고 형님이 되여 이 혼담에 나서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 점을 리해해주십시오. 저는 이에 대해 충고를 받고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창수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며 한창수가 왜 어렵고 힘든 전선에 서있는가 그것부터 설명해드리려고 했습니다… 이 집 부모님들도 창수를 어릴적부터 잘 알고 당사자들도 의합이 된줄로 알았는데…》
명옥이는 뻐스정류소까지 전상환이를 바래주었다. 전상환이 승용차를 먼저 보내였는데 그새 비가 내리기 시작한것이다.
우산을 쓰고 두사람이 나란히 걸었다.
전상환이 먼저 말을 떼였다.
《명옥동무, 어째든 제철소에 한번 가보오. 제철소란 기간공업부문이고 사람들이 모두 선이 굵고 쬐쬐하지 않지. 가보면 창수가 왜 거기를 떠나지 못하는가를 인차 리해하게 될거요. 명옥이, 난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일생문제라 해도 어떻게 사랑이나 결혼이 생활장소라든가 기타 실무적인 조건에 구애될수 있겠소… 그리구 이건 다른 얘기인데 제철소에 동무같은 전문가가 있으면 크게 떠받들리울게요. 원래 그 제철소의 군중써클이 쎄오. 관장도 무용지도원도 다 음악대학이나 예술학교 졸업생들이요. 무용지도원도 평양에서 내려간 녀성이구. 성악지도원이 없어 애를 먹는데 만일 명옥동무같은 전문가가 있다면 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소. 아니, 량해해주오. 제 사업분야라구 해서 내 욕심을 부리는것 같구만. 실무적인것을 반대한다면서 실무적으로 들어가서 미안하오. 하하하…》
전상환이의 웃음은 소탈하고 솔직한것이였다.
한번 제철소에 가본다는것이 조련치 않은 일이였다. 그가 제철소에 간다면 그것은 벌써 일정한 결심이 섰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였다. 그래서 세번이나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내용들은 처녀의 모순된 심정을 그대로 반영하고있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다 《1211고지》와 등지고 사는 사람인가. 여기서도 당과 조국에 충실할수 있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이렇게도 썼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가 인민의 사랑을 받는 가수로 되게 해줄수 있지 않는가… 어쨌든 무슨 말이든 회답을 달라. 한번 평양에 와달라. 왜 그리도 고집불통인가? 등등…
명옥이가 맨처음 들린곳이 제철소합숙이였다.
관리원아주머니가 호기심에 차서 한창수와 어떻게 되는 사이인가고 물었으나 명옥은 일부터 심상히 대답해주었다.
《6촌오빠예요. 여기 고모사촌네 집에 왔다가 잠간 만나보구 가려구.》
허나 관리원아주머니는 능청스러웠다.
《요새 합숙에서 보질 못했다오.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니까.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오더니 성사가 되여 아예 합숙에서 나갈 잡도리인지…》
그때 지나가던 처녀인듯한 관리원이 명옥이를 아래우로 훑어보더니 입을 삐죽이며 말하였다.
《평양처녀만 생각한다나요. 여기 처녀들은 왼눈으로도 보지 않는대요.》
그러자 다른 중년관리원이 접수실에 들어섰다.
《한창수요? 요새 병원에 입원하고있었더랬는데.》
《네? 병원에요?》
명옥은 깜짝 놀랐다.
《용광로출선구에서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더군요.》
《언제?》
《그건 처음듣는 소린데.》
곁에서 두 관리원이 같이 놀라며 눈이 둥그래졌다.
명옥은 뒤에서 녀자들이 호기심에 차서 자기를 바라보는것도 느끼지 못하고 병원으로 반달음을 놓았다.
명옥이는 늙수그레한 외과의사를 만났다. 한창수라는 말이 나오자 의사는 돋보기너머로 명옥이를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순간 명옥이는 안도의 숨이 나갔다.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눅잦혀주고 따뜻이 감싸주는 그런 미소였던것이다…
《멋쟁이청년이지요. 한데 자칫 잘못했더라면 큰일날번했습니다.》
명옥은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창수는 용광로에서 쇠물구멍을 뚫는 착공기를 개조하는 일에 달라붙었는데 불의에 쇠물이 쏟아지면서 그 열풍으로 화상을 당하였다. 다행히 2도정도의 화상이였다는것이였다. 화상이란 그 치료과정은 둘째치고 맨처음은 몹시 아픈데 신음소리 한마디 지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자 이내 우스개소리도 하더라는것이다. 약혼녀라도 있으면 부르라고 하니까 약혼녀도 없고 고아의 처지인데 영원히 합숙생일수도 있다는것이다. 의사는 맨처음은 그를 희떱고 진지하지 못한 청년으로 알았댔으나 지내놓고보니 진짜 대장부다운 사나이더라는것이다.
담당의사는 치료기일이 두주일가량 남았는데 너무 성화를 부려 사흘에 한번씩 와서 처치를 받는다는 조건부로 퇴원시킨지 벌써 며칠이 되였다는것이다.
명옥이는 병원을 나서자 웬일인지 더는 걸음을 옮겨놓을수 없었다. 그는 이를 사려물고 눈을 딱 내리감았다.
《어쩌문… 어쩌문…》
설음이 북받쳐올라 참을길이 없었다. 이제는 다 나았다고 하는 의사의 말에 다소 위안을 느끼면서도 자기한테 소식 한장 보내지 않은 창수가 그지없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바로 창수가 겉으로는 그렇게 태여한체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외로움을 느꼈으리라는것도 짐작하였다. 그러자 문득 명옥은 자기가 창수곁에 있었다면, 창수에게 사랑의 번민을 안기지 않았더라면 화상과 같은 그런 일이 혹시 없었을수도 있었으리라는 왕청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것이 꼭 자기때문이라고 생각이 미친 명옥이는 다리맥이 풀려 그냥 서있을수조차 없었다.
그는 옆에 있는 소공원의 단풍나무밑 장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였다.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리였다. 명옥은 고모사촌오빠네 집에 가서 하루밤 묵으면서 두루 마음을 정리해보는것이 좋지 않을가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인차 고개를 저었다. 그는 오늘저녁으로 꼭 창수를 만나보고싶었다. 아니 만나야 했다. 그래서 제철소구내로 창수를 찾아들어갔다.
그는 자그마한 손가방에 양복차림 그대로였다.
명옥은 바람결에 흘러넘어오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구내철길을 넘다말고 마주오는 반백의 상고머리아바이에게 물었다.
《저… 미안하지만 말 좀 물읍시다.》
《네, 어서 물어보시우.》
《저… 용광로직장에 가자면 어디로…》
《가만, 몇호용광로에 가자구 그러시오.》
명옥은 당황해나서 어물어물하였다. 합숙호실은 알아도 몇호용광로인지는 몰랐던것이다.
《내 2호용광로 로장인데 누굴 만나려구 그러시오.》
《저, 혹시… 한창수라고 모르십니까?》
《아 한창수, 내가 왜 모르겠소. 그가 바루 우리 2호용광로에 있는데.》
《네? 그렇습니까?…》
명옥은 너무도 반가와 뭐라구 인사말도 못하고있다가 인차 다소곳이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다.
《첨 뵙겠습니다. 전 평양에서 온…》
그러자 상대방은 《아!》 하고는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였다.
《난 유상철이라구 부르오. 그러니 동문… 김명옥동무가 아니요?》
《네?》
명옥은 크게 놀라며 고개를 쳐들었다.
(아니 이 아바이가 어떻게 나를 다 알가. 그러니 창수동무가 뭐라구 한게 분명하지.)
유상철은 히죽이 미소를 짓고 말하였다.
《허물하지 마오. 난 한창수의 로장이요. 여기서는 그의 아버지가 돼야 할 사람이요. 그러니 왜 내가 동무의 이름을 모를수 있겠소.》
명옥은 얼굴이 빨갛게 되였다.
유상철이 한걸음 다가서며 처녀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었다. 혹시 처녀가 이제는 마음을 돌려먹고 이렇게 찾아온것이나 아닌가싶어 유상철은 기분이 무척 좋아지기까지 하였다.
《가만, 나와 같이 가기요. 용광로에는 없을게요. 비번이니까.》
《비번이라니요?》
《오 참, 그건 근무교대가 아니란 소리요. 입버릇처럼 돼나서. 자, 같이 찾아보자구.》
그러면서 유상철은 합숙이나 병원에 갔었다는 명옥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아무리 2도화상이라 해도 이거 정말 안됐소. 내가 잘 돌보아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건데.》
유상철의 자책어린 목소리가 별스레 가슴속으로 뜨겁게 흘러들었다. 그는 애써 침착한 어조로 말하였다.
《본인 부주의겠지요. 그는 어릴적부터 덤비는 축이였으니까요.》
《그건 그렇소. 하지만 이번 일은 나한테 책임이 있소. 그날 내가 미리 주의를 주었어야 하는건데…》
두눈을 깜박거리던 명옥의 눈에는 마침내 가랑가랑 눈물이 괴여올랐다. 오랜 용해공의 체취가 풍기면서 인정이 넘치는 이 상고머리로장한테서 한창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감득하게 되니 저절로 눈물이 났던것이다.
사위는 어둑어둑해왔으나 제철소구내는 외등빛으로 훤하였고 거의 마감단계에 이른 유화판건설장은 건설직장사람들과 지원자들로 법석 끓고있었다.
벽체에 얼기설기 설치한 발판에서 촉수높은 외등불빛속에 미장칼이 번뜩이였다. 《자, 사모리요.》 하는 소리가 연방 날아올랐다.
유상철은 창수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가 다시 명옥이한테로 와서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였다.
《그러니 창수는 어데 가있나?》
명옥은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만두십시오. 이제 만나게 되겠지요.》
《그럼 고모사촌네 집에 가서 자고 래일 다시 오라구.》
《고마워요.아직 시간이 많은데 전 여기 더 있고싶어요. 로장아바이두 지원로동에 나오신것 같은데 같이 갑시다. 저두 대학때 이런 일을 많이 해보았어요.》
유상철은 손을 내흔들었다.
《피곤하면 여기가.》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목을 가리켜보였다. 《못쓰게 된다는데… 가수들은 그게 생명과 같다잖나. 그만두오. 그만둬.》
《괜찮아요.》
그들은 사모리를 이기는 큰 철판이 놓인곳으로 갔다. 작업장은 모두 흥겨운 기분에 싸여 웃고 떠들썩하였다.
명옥은 양복저고리를 벗고 흰샤쯔바람에 손수건으로 머리채를 뒤로 묶었다. 그가 삽을 집어들자 유상철이 그것을 한사코 빼앗았다.
《우리가 뭐 손님을 이렇게 부려먹을수가 있소?》
《아니예요. 전 얼마든지 몰탈이기는 작업을 할수 있어요.》
하지만 명옥은 끝내 웬 청년한테 삽을 빼앗기고말았다. 유상철이와 청년은 둘이 겨끔내기로 삽을 제치고 엎어치며 부리나케 세멘트와 모래를 골고루 섞어나갔다. 명옥은 구경만 하고있을수 없어 웬 단발머리처녀와 맞들이를 들고 거기다가 혼합물을 퍼담아 날라갔다. 땀이 흐르고 기분이 거뜬해졌다.
유상철이 삽자루를 짚고서서 맞들이를 들고가는 명옥이를 대견스레 바라보며 《요즘 예술인들은 옛날과는 다르다니께 참.》 하고 감탄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이때 방송차에서 음악이 뚝 끊어지더니 식당에서 국수를 눌러왔으니 야간작업성원모두 앞마당으로 나오라고 알리였다. 뒤이어 방송차에서 식당주방에서 온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가 들리였다. 온실에서 기른 오이꾸미에다 농마국수라고 하면서 그 맛이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모두다 와- 하고 웃었다. 명옥이는 머리뒤를 묶었던 손수건을 풀어 얼굴과 목을 문대였다. 육체적로동이 가져다주는 쾌감만이 아니라 여기서 떠도는 즐거운 분위기에 휩싸이다나니 자기는 자연 미지의 세계, 아니 그러면서도 무척 친근한 세계에 들어선것만 같았다.
유상철이 《자, 우리도 한그릇 제껴보지.》 하고 무랍없이 명옥에게 말하였다.
어느새 도착했는지 식료차가 와있었다. 거기서 실어온것을 부리워 이동간이식당같은천막으로 들여갔다.
낮교대에서 곧추 여기로 온 사람, 집에서 교대시간보다 몇시간 먼저 나온 사람, 어쨌든 건설자들모두를 위해 저녁참을 내온것이다.
천막안에서 국수사리, 꾸미, 육수, 얼벌벌한 양념… 이렇게 흐름식으로 사발에 놓여지고 그것을 몇명의 녀인들이 목판에 담아 날라내갔다. 속이 출출했던 사람들이 위생저가락이 놓인 국수사발을 받아들고 벽체에 의지해 쌓아놓은 널판자우에 앉았다. 벽돌장을 깔고 앉아 먹는 사람, 외등불빛 가까이 서서 먹는 사람… 그러면서 걸쭉한 롱담과 우스개로 작업장은 몹시도 흥성거리였다.
그들이 저녁참을 다 끝냈을 때였다.
몇장 겹쌓은 불로크더미우에 중년의 문화회관 관장이 나섰다.
그는 방송차에서 끌어온 줄을 한손에 감아쥐고 다른 손으로는 마이크를 입가까이로 가져갔다.
《야간작업을 하고있는 건설자여러분! 그리고 이 작업을 돕기 위해 나온 지원자여러분! 오락회를 시작하기전에 도당위원장동지, 아니 도당책임비서동지가 낮에 밤을 이어 수고하는 여러분들에게 인사의 말씀을 간단히 드리겠다고 합니다.》
키가 큰 림귀현이 블로크더미우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여유있게 온 얼굴에 웃음을 담은채 회관 관장한테서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여러분,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의 눈부신 로력투쟁에 의하여 대형유화판건설은 바야흐로 완성단계에 이르게 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 건설되는 유화판에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모시게 될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지에 나오신 우리 수령님을 언제나 뵈옵는 기쁨을 안고 일하게 될것입니다. 바로 이 긍지, 이 자부심을 간직할 그날을 위해 우리 제철소 종업원들과 그 가족들이 이렇게 성심성의로 일하고있는것입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여 머리우로 휘두르기도 하고 그것으로 가슴을 툭툭 두드려보이기도 하면서 열정적으로 선동연설을 하였다.
《로동계급의 국제적명절인 5.1절을 앞두고 대형유화판건설을 끝낸다는 우리자신의 결의를 잊지 맙시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쇠기둥으로 나라를 떠받들어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구호를 관철해나갑시다.
해방직후도 그렇고 전쟁이 끝난 직후도 그렇고 나라사정이 어려울 때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제철소로동계급을 찾아주시였습니다. 그 신임, 그 기대, 그 사랑을 잊지 맙시다.》
우렁찬 박수소리가 일어났다. 림귀현도 한동안 같이 박수를 쳤다. 이윽고 관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더니 누군가 가져온 대우에 그것을 꽂아놓고는 두손을 맞잡았다.
《에, 그럼 이제부터 오락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직장별로 자발적으로 나오십시오. 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명심할건 우리 직맹에서는 이런 때에도 사회주의경쟁조항에서 어느 직장이 앞장서는가를 주시한다는 그것입니다. 물론 그러지 않아도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나와주리라 믿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자, 빨리 나오십시오.》
맨처음으로 공무직장선반공처녀인 김옥희가 나왔다. 온 제철소에 소문난 꾀꼴새였다.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녀성민요독창이 흘러나왔다.
하늘에 나래펴서 매봉이냐
산모습이 날카로워 매봉이냐
이 나라 젊은이들…
그다음은 해탄직장에서 남성저음독창이 나왔다.
다음은 용광로직장, 회전로… 경쟁적으로 나왔다. 그들이 노래부르는 수준이 높아 명옥은 저으기 놀랐다. 우선 감정이 진실하고 절절해서 좋았다. 명옥은 유상철이와 함께 군중속에 끼워 연방 박수를 치며 진심으로 감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데 명옥은 곁에 선 유상철이 아까 사모리를 같이 이기던 청년에게 뭐라뭐라 말하는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청년이 어느새 관장한테로 가서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관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쪽으로 돌아서서 기운차게 말하였다.
《여러분, 이자리에는 국립민족예술극장에서 온 가수동무가 참가했습니다. 그 동무가 여러분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게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나오시오. 나오시오.》
장단 맞춰 박수가 울리였다.
그 순간 명옥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어느새 유상철의 손이 그의 팔을 지그시 붙잡는것이였다.
유상철은 히죽이 웃으며 명옥이한테 말하였다.
《한곡조 불러주오. 건 무엇보다 나의 청원이요. 그리구 이 군중의 한결같은 요구라는것을 생각해서…》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내며 길을 틔워주었다.
《자 자, 저쪽으로 좀 비키슈.》
《자꾸 뒤만 돌아보지 말고 길을 내주란 말이야.》
명옥은 스스럼없이 나갔다. 그는 층계에 올라서서 군중을 향해 무슨 말이든 하고싶었으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 얼굴을 붉히다가 손풍금수를 돌아보며 노래곡목을 말하였다.
손풍금수의 전주가 울리고 명옥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두손을 맞쥐였다.
금수산 제일봉에 아침해살이 붉게 피니
꽃봉오리 완연하여 모란봉이라 하였는가
…
1절이 끝나자 벌써 박수가 터졌다. 2절, 3절을 부르자 박수와 함께 《야!-》 하는 환성이 터져올랐다.
《재청!》
《재청이요!》
명옥은 또다시 손풍금수에게 돌아서서 뭐라고 말하였다.
명옥은 민요독창이 전문이였지만 다른 노래를 부르고싶었다. 《천리마선구자의노래》였다. 그는 맞쥔 두손에 힘을 주며 한발을 앞으로 약간 내짚었다.
백두의 정기는 넘치고
우리 손으로 새 사회 꾸린다.
동무여 나가자 혁신의 불길이 타오른다
…
명옥은 모두어잡았던 손을 들고 감정의 고조에 맞추어 흔히 그러하듯 한손을 높이 쳐들었다가 내리우며 불빛에 비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앉은 사람, 서있는 사람 모두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다.
구절마감에 그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한곳에 머물렀다. 한사람이 고개를 숙였다가 쳐들고 그리고는 다시 숙이는것이였다. 명옥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가 한창수라는것을 인차 알아보았다. 마침내 명옥이와 창수의 시선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명옥은 자기가 그만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되였다.
명옥이의 열렬한 호소인듯 노래소리는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
위대한 수령님 부르시는 한길로
아름다운 청춘의 희망은 꽃피네
…
명옥은 노래를 끝내고 요란한 박수속에서 인사를 하고나서 잠간 한창수쪽을 바라보았다.
(화상당한 상처는 일없나요? 왜 저한테도 알리지도 않았나요? 너무해요. 너무해요…)
박수와 함성은 한참이나 계속되였다.
군중속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저 배우가 우리네 회관 성악지도원으로 오는게 아니야?》
《무슨 엉터리없는 소리를 해. 예술인으로서 우리 제철소에 현실체험을 왔겠지.》 하고 제법 아는체하는 젊은 친구도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뒤이어 춤판이 벌어졌다. 북소리, 꽹과리소리가 들썩하게 울리였다. 거기에 손풍금소리까지 합쳐졌다.
적어도 몇백명은 실히 될 로동자들이 넓다란 마당에 흩어져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모래무지에 발이 빠지는 사람, 자갈무지에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 방금전까지 사모리통을 지고 발판으로 오르내리느라고 맥이 빠졌다는 중년사나이도 벽돌장을 깔고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어느새 춤판에 뛰여들었다. 또 이쪽에 앉아 손바닥에 물집이 생겼다면서 붕대를 감고있던 영양제식당 취사원아주머니도 허리를 꼬며 돌아간다.
《좋다! 조오치!》
흥에 겨워 웨쳐대는 소리가 전등불빛으로 환한 건설장을 감돌다가 검푸른 야공 멀리로 울려간다.
《옹헤야》, 《노들강변》… 군중무용으로 류행하던 춤이 다 나왔다. 나중에는 원무곡이 흘렀다.
바람결 맑고
별빛도 정다워
즐거운 이 저녁
다정한 동무들
모두다 유쾌히
춤추고 노래하자…
저쪽구경군들속에 서있던 한창수가 손풍금을 타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의 다리를 념려해서 나무의자를 가져다놓았으나 그는 돌아다보지도 않고 머리를 숙일사하고 열정적으로 손풍금을 탔다.
유상철은 《옹헤야》때 들어가서 몇번 어깨를 들썩들썩하다가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떠밀었으나 그는 홰홰 손을 내저었다.
다정한 동무들
모두다 유쾌히
춤추고 노래하자…
…
명옥은 웬 낯모를 청년과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그 싱검둥이청년은 춤을 추면서 《난 동무를 잘아오. 한달전까지 평양맥주공장옆 아빠트에서 살면서 민족예술극장으로 나드는 동물 보았거든.》 하고 말을 걸었다.
《아, 그런가요? 그런데 어떻게 돼서…》
《어떻게 될거나 있습니까. 강철전선을 지원해서 여기 왔지요. 그런데 오늘 내가 이렇게 동무하고 춤을 추게 될줄이야.》
여느때같으면 《호호호》 하고 웃음으로 흘려버리고말았을것이였다.
그런데 지금 명옥의 온 마음은 한창수한테 가있었다. 그는 될수록 그쪽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짝패는 어째서인지 자꾸 그를 한창수쪽으로 끌고 가는것만 같았다.
《저 친구 손풍금수준이 대단하거든. 아마 다리만 아니라면 이 춤판에 뛰여들었을텐데 그 늘씬한 몸을 굽혔다 폈다 할 땐 같은 총각들두 그 멋에 막 질투가 난단 말이요.》
《남자들이 무슨 쬐쬐하게 질투까지…》
《하 이 동문 정말 모르는군. 저 한창수란 친구는 평양에서 어떤 멋쟁이처녀가 오겠다는것도 거절하는 그런 수준이요.》
명옥은 음악에 맞춰 손을 놓고 저쪽으로 몇걸음 갔다가 이쪽으로 돌아와 그 청년의 손을 다시 잡으면서 방긋 웃으며 일부러 딴전을 폈다.
《평양에서 누가 여기로 오겠다구 해요?》
《뭐라구요? 그게 진심이요?》
청년은 명옥의 손을 놓고만다. 명옥이 시까슬렀다.
《나하구 더 추지 않을래요?》
《허참, 추긴 춰야겠는데.… 다시 그런 말 하지 않겠다는 담보로 말이요.》
《호호호, 그렇게 하죠.》
이렇게 말하는 명옥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괴여올라 주위가 어룽어룽해보이였다. 저쪽의 한창수가 손풍금을 타며 일부러 이쪽을 보지 않는것만 같았다.
명옥은 느닷없이 어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얘, 거기에 어디 네가 늘 말하는 그 <무대>가 있니?》
그러자 지금 이 순간 명옥은 속으로 어머니한테 대답하였다.
(어머니, 여기두 무대가 있어요. 이것을 무대가 아니라고 한다면 우린 정말 이 사람들한테 큰죄를 짓는거예요.)
오락회가 끝나고 다시금 작업이 시작되였다.
유상철이 뭐라고 말하자 한창수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명옥은 손가방을 손에 들고 양복저고리를 팔에 걸친채 한창수한테 다가갔다.
그들사이는 인사가 필요없었다.
두사람은 노래와 춤판에서 서로 말없이 많은 심정을 주고받았던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웬일인지 명옥이로서는 폭발적으로 감정이 터져나올것 같아 입술을 사려물었다.
유상철이와 헤여진 두사람은 으슥진 나무밑으로 갔다. 명옥이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조용히 물었다.
《왜 다리를 다치고도 말 한마디 없이… 아니, 아니예요. 왜 한번도 답장이 없었어요?》
《한데 동문 왜 온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럼 좀 묻자요. 내가 못올데를 왔어요?… 난 고모사촌오빠네 집에 왔던길에 들렸어요.》
명옥은 마감말에 어째선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한창수는 나직이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명옥동무, 밤도 깊었구 피차에 마음을 가라앉힐겸 오늘은 이만하구 래일 다시 만나자구. 시간이야 있겠지?》
명옥이는 저로서도 뜻밖이니만큼 랭정해지며 말하였다.
《하긴 내 보기에도 창수동문 지금 너무 피곤한것 같아요. 래일 아침교대에 나가요?… 그렇다면 푹 쉬여야지요.》
한창수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합숙앞 소공원에서 오후 6시에…》
《그렇게 하자요.》
이리하여 그들은 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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