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환 제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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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시계가 석점을 치고있다. 그때까지도 전상환은 침대에 누워보기도 하고 방안에서 서성거리기도 하였다. 골짜기도 많고 절벽도 한둘이 아닌 인생행로를 거듭거듭 돌이키면서 자기자신을 랭철하게 돌이켜보게 되는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주위를 정확히 가려보며 살아갈 결심을 한것이다. 더도말고 락동강기슭을 기여넘으며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던 그 정신, 그 기백으로 살아야 할것이다.
그러자 이제라도 당장 연극단단장을 만나 리형걸에게 그토록 압력을 가한 속심을 밝혀놓고 리형걸의 문제를 바로잡아놓고싶었다.
연극 《일편단심》 그자체는 어쨌든간에 연출가 리형걸과 그의 가정은 그 연극때문에 무슨 큰 반역죄에라도 걸린것처럼 가혹하게 처벌당하고있다. 어찌 이것을 묵과할수 있는가… 그는 문득 허담이부터 찾아가서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충고와 비판은 지극히 옳은것이다. 허담은 어제 외국에서 돌아온다고 하였다.
그날 오후 전상환은 전화로 허담부상을 찾았다. 그런데 허담이 오늘 도착했는데 곧장 비행장에서 병원으로 실려갔다는것이였다.
전상환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원으로 가려고 문을 나선 그는 복도로 급히 걸어갔다.
김정일동지께 알리려고 방으로 먼저 갔으나 그이께서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떠나신 뒤였다.
전상환은 마당에서 대기차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허담한테로 달리는 마음은 몹시도 불안하고 초조했다.
×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가 순환기병동앞에 들어섰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곳 원장과 담당의사가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원장이 환자의 병상태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방에 올라가 자세히 들읍시다.》
어깨에 걸쳐주는 위생복을 입으신 그이께서는 잠간 걸음을 멈추고 의사들의 얼굴이며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감정상태를 가늠해보시였다. 륙감적으로 안겨오는것은 환자상태가 매우 위급하다는 느낌이였다. 생사를 저울질하는 순간순간을 항상 체험하고 그에 습관된 직업인들이지만 어느때나 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법이다.
그때 마침 전상환이도 가쁜 숨을 죽여가며 조심조심 들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핏 보고는 눈인사를 보내시였다.
자그마한 방이지만 아담하게 꾸려지고 아침해가 잘 들었다.
10여명이 앉을수 있게 의자가 놓여있었지만 누구도 자리에는 관심이 없다. 그이께서 그냥 서신채로 《진단은 무엇인데 현재 상태는 어느 정도입니까.》 하고 물으시자 머리가 훌렁 벗어지고 몸이 비대한 담당의사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옆에 있던 사람의 말을 들으면 처음에 가슴이 아프다면서 허리를 꼬부리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담당의사는 계속하였다.
《심장발작입니다. 10분전까지 기계에 반영된 소견은 부정맥이 1분간에 4∼5회 걸리고 다른 소견은 보이지 않습니다. 차츰 쇼크증상은 완화되고있습니다. 지금 문제로 되는것은 혼수상태에서 깨나지 못하는것인데 그것이 오래 끌면…》
담당의사는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이때도 역시 김정일동지께서는 의학적징후와 그 처리에 대해서 주의를 돌리였지만 그보다는 담당의사의 기분상태가 상당한 정도로 긴장되고 불안해있다는 점을 예민하게 감촉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옆에 있던 전상환이 자리를 권하였지만 손을 흔들어보이고나서 담당의사에게 물으시였다.
《발병근원이 무엇입니까. 정신적과로인지 아니면 오래동안 가지고있던 병이 지금에 와서 나타난것인지.》
《네! 그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병력서에는 한 1년전부터 심장신경증소견이 있다고 기록되여있습니다. 이제 더 알아보고 원인치료대책도 동시에 세우자고 합니다.》
그이께서는 두세번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환자상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일행은 입원실 맨끝에 있는 집중치료실로 옮겨갔다. 이곳 원장이 문간에 서서 손을 들어 안내를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든듯이 누워있는 허담의 침대에로 다가가시였다. 침대옆에 놓인 쪽걸상에 앉았던 간호원이 일어나 한옆으로 비켜섰다.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눈인사를 하고나서 심전도기가 놓인 탁자에로 몸을 기울이시였다. 침대옆에 놓인 심전도기영상판에는 심장박동그림이 쉴새없이 흐르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자를 중심으로 한 방안의 모든 사람들과 의료기구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주의깊게 관찰하고계시였다.
재빠르게 눈치챈 이곳 원장은 살아움직이고있는 심전도기를 가리키면서 《현재 맥박과 혈압은 수시로 동요하고있습니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하시였다.
우선 맨먼저 주의가 간것은 환자의 얼굴표정이였다. 거의 무표정한것 같은 저 얼굴에 얼마나 많은 고뇌가 어려있는가. 차분히 내리덮인 눈시울, 굳게 다물린 입술, 그것은 허담이라는 한 인간의 초상인 동시에 그의 운명이 그대로 함축되여있는것 같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불안감을 눅잦히려는듯 의자에 앉으시여 외무성 주인호국장을 바라보시였다.
주인호가 그이께 다가서며 서아프리카 특히는 말리에서 있은 사연을 조용조용 말씀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군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떨리는 손으로 허담의 이마를 짚어보고 다음에는 모포밑으로 그의 팔목을 잡으시였다. 팔목에서는 분명히 생명체의 활력을 알려주는 맥박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가슴에 손을 가져다대시였다.
그이께서 나직이 그러면서도 명확하게 원장한테 물으시였다.
《지금도 혼수상태에 있는것 같은데 만약 흔들어 깨워보면 어떻겠습니까. 저절로 깨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뜻하지 않았던 질문에 약간 당황해난 원장은 옆에 바투 다가선 담당의사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렇게 되자 담당의사는 그이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귀속말처럼 조용히 말하였다.
《혼수상태에서는 빨리 깨여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과로가 원인인것 같은데 그런것이 만약 다시 반복되는 때는 돌이킬수 없는 후과가…》
《아, 그렇습니까.》
《시간으로 보아서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심장이란 마음심자 그대로 마음이 결정적입니다.》
《그렇습니까. 마음심자라, 그렇다면 한번 깨워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위생복앞자락을 활짝 열어제치면서 온 얼굴에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렇게 되자 긴장과 불안에 깊이 빠져들어갔던 온 방안이 갑자기 밝아지게 되였다.
오른켠으로부터 침대 아래쪽으로 에돌아 환자의 허리쪽모포를 안으로 밀어넣고 거기에 걸터앉으신 그이께서는 처음에는 팔을 잡아흔들면서 《허담이! 허담이!》 하고 귀에 대고 나직이 불러보시였다. 그러나 환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왼쪽어깨를 잡고 웃몸이 온통 흔들릴만치 밀었다 당겼다 하시였다.
《허담이! 허담이!》
몇번 거듭하였지만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간 손을 멈추고 머리를 가로저으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다시한번 어깨를 붙잡더니 이번에는 온 방안이 울릴만치 큰 목소리로 부르는것이였다.
《춘희 아버지!》
두번, 세번, 네번 같은 소리를 반복하시였다. 제일 생활감각과 밀착된 딸의 이름이 그 무엇보다도 좋을것으로 생각되시였다. 그래 그런지 전혀 반응이 없던 환자는 《아!》 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후에는 다시 잠잠해졌다. 아무리 불러보아도 반응이 없게 되자 그이께서는 침대에서 물러나 뒤로 돌아서시였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쳤다.
(혹시 이렇게 끝나게 되는것이나 아닌가? 허담의 넋은 벌써 저승의 문턱을 넘어섰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이러고있지 않는가?… 아니 그럴수 없다. 그렇게 될 사람이 아니며 그렇게 되여서는 안된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드시였다.
창가에서 분연히 돌아서신 그이께서는 다시 침상으로 다가가 허담의 가슴에 손을 눌러대시였다.
《허담이! 눈을 뜨시오. 김정일이 왔소. 한마디말이라도 해보고 헤여져야 할게 아니요. 허담이!》
순간 그이의 이마에는 이슬이 한벌 솟아올랐고 온 얼굴은 타는듯 붉게 물들었다.
《허담이! 정신을 차리오…》
잠든듯이 누워있던 허담의 어깨와 머리가 약간 떨리면서 흔들리였다. 방안에는 애타는 고함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감격에 젖은 숨소리가 물결치기 시작하였다.
감감히 누워있던 허담의 얼굴이 차츰 이그러졌다.
이때 허담의 넋은 먹물같은 암흑속으로 깊이깊이 빠져들어가고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대뇌피질에 어떤 자극이 미쳐오자 와뜰 놀랐다. 암흑속에서 한점의 불찌가 날아오르고 그것이 불시에 확대되는것 같았다. 처음에는 하나의 흰점 다음에는 항아리만한 붉은 덩어리, 그것이 가슴에 와닿는 순간 소리없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듯싶다.
《아!》
허담은 몸을 비틀면서 신음소리를 내였다. 언제나 친근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불러주던 그 음성이 청각을 자극하고 온 신경을 흔들어놓았던것이다.
《정신차리오. 김정일이왔소. 눈을 뜨오!》
허담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차분히 내리덮이였던 눈시울을 간신히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환각인지 생시인지 알수 없는데 허담의 망막에는 친애하는 그이의 영상이 꿈결에서처럼 비쳐들었던것이다.
《아!》
담당의사는 눈등에 손을 얹기도 하고 심전도기에서 그림이 뛰는것을 보기도 하면서 《한번 더! 한번 더!》 하고 마치도 구령을 주는것처럼 소리쳤다.
《변화가 있습니다. 또 한번. 네! 네! 눈동자가 약간 움직입니다.》
사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설사 헛일이 되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해보지 않고는 견딜수 없으시였다. 경험이 풍부한 담당의사는 대뇌피질에 흥분이 전달된다는것을 감촉하고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이 그이의 역을 맡아나섰다.
《김정일동지께서 오셨습니다. 김정일동지요.》
전혀 움직이지 않던 환자의 눈시울이 알릴듯말듯한 경련이 이는것 같더니 그다음에는 분명히 한쪽 눈귀가 약간 떨리기 시작하였다.
《눈을 떴습니다. 의식이 피여나기 시작했습니다.》
담당의사는 벌써 흥분된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보십시오. 눈이 열립니다.》
그린듯이 누워만있던 환자가 모지름을 쓰면서 눈을 가느스름히 떴다.
《어서 여기를 보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 와계십니다.》
전혀 움직일것 같지 않던 허담의 눈은 고속촬영을 한 화면에서처럼 천천히 열리더니 얼마간 있어 천천히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무엇을 찾고있었다. 그때 옆에 지키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시였다.
《누군지 알아볼만합니까? 김정일입니다.》
그 순간이였다. 맥을 놓고 누워있던 그가 흠칫 몸을 한번 떨더니 안깐힘을 써서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것을 보신 그이께서는 재빨리 그러면서도 조심히 환자의 어깨를 눌러 제지시키시였다.
《됐습니다. 알아보면 됐습니다.》
《김정일동지!…》
허담의 입에서는 말마디가 또박또박 흘러나왔고 눈동자에서는 평상시와 같은 밝은 빛이 차츰 어리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에는 벌써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의식할수 있게 되였다. 그가 나직이 물었다.
《여기가… 어뎁니까?》
《여기는 병원입니다. 그동안 한잠 푹 잤습니다. 한 둬시간동안.》
《아!》
허담은 무게가 실린 눈시울을 스르르 내리감으면서 긴숨을 내쉬였다. 환자의 동정을 주의깊이 살피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쪽걸상을 당겨놓고 침대 한쪽옆으로 가까이 다가앉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모포밖으로 내놓인 환자의 손을 붙잡고 잠시 얼굴을 내려다보시였다. 하루사이에 한 10년이나 늙어진것 같았다. 그러나 방금 열려진 그 눈동자에서는 여느때와 같은 강렬한 생의 빛을 내뿜고있지 않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의 손을 힘있게 그러쥐면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그런데…》 하고 허담은 쩍지가 일만치 초들초들 마른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였다.
허담은 잠시동안 그이를 올려다보고있다가 눈을 감았다.
잠시후 의사들에게 몇마디 인사말씀을 남기고 청사로 돌아오시여 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는 전상환을 돌려보내고나서 혼자 정원으로 나오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원을 천천히 거닐면서 사색에 잠기시였다.
사막의 열풍속을 뚫고 걸어나가는 허담의 거인같은 모습이 다시금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권위를 지키고 빛내이기 위해 불사신마냥 전진하는 우리 당, 우리 혁명의 전위투사, 그가 바로 혁명동지 허담이 아닌가!
인류사상사발전의 최고리념을 위해 목숨마저 바치면서 바다와 강을 건너, 대륙과 대륙을 넘어 수난자의 운명을 스스로 감수한 진리의 사도가 아닌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동지에 대한 미더운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지시였다.
그러면서 그이께서는 허담이 다시금 꿋꿋이 일어서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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