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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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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823회 작성일 21-04-0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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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10

 

고중환은 문건을 받아서 책상우에 놓고 마주서있는 림수봉에게 시선을 들었다. 혈색이 좋던 림수봉의 얼굴이 지쳐보이였다. 전원회의이후 그가 얼마나 머리를 쓰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지 알고있었다. 산하 연구소들의 궐기모임들과 중요한 과학평의회들에 참가해야 했고 거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분석하고 처리해야 했을것이다. 날마다 밤을 새우며 그가 기울인 노력과 사색이 바로 이 문건에 깃들어있다. 전원회의결정관철에서 나서는 일련의 문제들을 종합한 실태자료였다.

《수고했습니다.》

고중환은 두툼한 문건을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언제쯤 의견을 주겠습니까?》

돌아갈 기미를 보이며 림수봉이 물었다. 문건의 내용에 대한 의견을 언제 주겠느냐는 뜻이였다.

《이제 곧 보고 토론합시다. 좀 기다리시오.》

《이러다간 오늘 부부장동무네 집에서 점심밥을 또 축내야 할것 같습니다.》

림수봉은 쏘파로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이 사무실에서 사업을 토론하다가 고중환의 집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때가 많았다. 토론에 열이 오르면 점심전에 평성으로 돌아갈 시간을 놓치군 하였다.

고중환은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문건을 읽기 시작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 올려야 할 문건의 초안인것만큼 특별히 깐깐히 보아야 했다. 그이께서 전원회의결정관철에 떨쳐나선 과학원의 실태자료를 요구하셨던것이다.

글줄을 더듬어가는 고중환의 얼굴에 만족한 빛이 떠올랐다. 앞페지들에는 과학자들의 새로운 결의목표들이 들어있었다.

전원회의가 있은지 한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에는 한해를 두고도 불가능했던 창발적인 발기들이 수없이 제기되였다. 새로운 출발선에 나선 과학자들의 기세와 열의가 실감되였다. 그러나 문건의 다음페지들을 번지면서 점차 얼굴에 그늘이 덮이였다. 일부 첨단과학과 고도기술지표들은 현실적가능성이 없기때문에 계획에서 조절해줄것을 제기했다. 어떤것은 학술적전망이 묘연했고 어떤것은 실험조건과 제작조건이 걸리였다.

고중환은 길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들었다. 줄곧 긴장한 낯빛으로 이쪽을 지켜보던 림수봉과 시선이 마주쳤다.

《여기에 조절해줄것을 제기한 과제들은 현실적가능성을 그렇게도 찾을수 없었습니까?》

안타까운 어조였다.

림수봉은 이 대목에서 고중환이 응당 그렇게 나오리라고 예견했던지 즉시 응대했다.

《과학평의회들에서 심중히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방도가 없었습니다.》

《전원회의에서는 우리 과학을 선진수준으로 이끌어올릴데 대한 새로운 과업을 제시했는데 다른 과제도 아닌 첨단과학연구과제들을 뺀다는것은…》

고중환은 생각만 해도 억이 막힌듯 말끝을 삼켰다.

《우리도 그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획에 그냥 포함시킬수야 없지 않습니까. 본격적으로 과학기술발전 3개년계획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불가능한 지표들은 조절해야 합니다.》

과학기술발전 3개년계획은 그 기간이 다가오는 올해 7월 1일부터 1991년 6월 30일까지였다. 그러니 아직은 그 준비단계라고 할수 있었다.

《앞으로 연구집단들에서 좀더 진지하게 지혜를 모아 토론하면 가능성을 찾을수 있지 않습니까?》

《해당 단위들에서 토론을 하리만큼 했습니다.》

《이리 오십시오.》

고중환은 문건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책상에서 물러난 그는 림수봉과 앞상에 나란히 앉았다. 불가능하다는 지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림수봉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보니 자기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욕망은 욕망이고 현실은 현실이였다. 그 불일치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괴롭게 침묵했다. 결심을 내리기 어려워하는 고중환을 이윽히 지켜보던 림수봉이 말했다.

《부부장동무, 실현할수 없는 지표들을 그냥 계획에 포함시켰다가 만일 그것을 수행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책임문제 말입니까?… 책임이 두려워서라면 그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고중환은 분이 치밀었다. 참말이지 후날 그 어떤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하여도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면 서슴지 않을것이다. 나라의 과학기술을 선진수준에로 도약시키는 성스러운 위업에 한목숨바친다 하여도 한됨이 없을것 같다. 순간적으로 그런 반발심이 북받쳤다.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던 림수봉이 얼굴을 붉혔다.

《우리도 일부 계획의 조절안을 내놓으면서 생각이 많았습니다. 마음도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하지 못할것을 하겠다고 할수 없지 않습니까. 그건 자신을 속이고 당을 속이는 처사일것입니다.》

그렇게 나오는데는 할말이 없었다. 림수봉을 외면하고 방안의 어딘가에 시선을 주었다. 자신도 방도를 찾지 못하면서 상대에게 무작정 요구할수는 없다. 최근에 고중환자신도 전자, 자동화연구소들과 생물분원에 나갔었다. 그곳 학자들과 함께 전원회의결정관철을 위한 대책들을 의논했다. 그때 창발적인 의견들도 많았지만 몇개 지표들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들이 없지 않았다. 그렇기때문에 림수봉이 종합하여 제기한 조절안은 결코 예상밖의 일이 아니였다. 그동안 고중환자신도 현실적가능성과 방도를 여러가지로 모색해왔다. 그는 깊은 생각끝에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그대로 보고드리고 결론을 받읍시다.》

그렇게 결심을 가지였으나 죄스럽고 괴로운 심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뒤에는 국가적으로 시급히 해결을 받아야 할 설비, 자재와 자금명세가 첨부되여있습니다.》

림수봉이 문건의 다음장을 번지며 깨우쳤다.

고중환은 다시 문건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분야에 국가적투자를 늘이고 보장사업을 잘할데 대한 전원회의결정내용에 따라 제기되는 명세였다. 세심히 훑어보고 따져보았지만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페지를 보던 그는 표정이 굳어졌다. 시선을 멈춘 글줄들은 학자들에게 승용차를 배정해줄것을 바라는 내용이였다.

《부원장동무, 우리가 일부 첨단과학지표들을 수행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이런 청원을 드릴수야 없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량심이 허락치 않는 일입니다. 우리 과학자들이 지금 승용차가 없어서 과학연구사업을 못합니까?》

《여러해전에 오랜 과학자들이 받은 승용차는 낡았습니다. 최근년간에 학위학직을 받은 교수와 박사들은 아직 승용차가 없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해결하여야 합니다. 전원회의결정에는 과학자들의 사회적대우를 높일데 대한 문제도 포함되여있지 않습니까?》

《사회적대우는 그야말로 사회가 우리 부문에 관심할 문제입니다. 우리로서는 전원회의결정에 제시된 과학기술과제수행에 총력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 할바를 못하면서 이런 제기를 하는것은 너무도 렴치없는 일입니다. 승용차를 사오는 돈이면 그것으로 실험설비나 책들을 하나라도 더 많이 사와야 합니다!》

고중환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림수봉은 도저히 그를 설복시킬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듯 한 아쉬움이 치밀었다. 하지만 어쩌는수가 없었다. 량심과 도덕적감정을 기준으로 한다면 고중환의 견해가 백번 옳았다. 모든 사고와 행동이 량심에 지배되는 그의 결곡한 성미를 잘 알고있다.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해 림수봉은 고중환과 함께 전자공학연구소의 실습공장에 나간 일이 있었다. 그 공장에서 에프. 엠 립체록음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성과를 고무하고 떠나올 때 공장지배인은 기념으로 록음기를 한대씩 두 일군에게 주었다. 본인들은 모르게 운전사들에게 전해줄것을 부탁하며 주었던것이다. 평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운전사는 고중환에게 록음기를 꺼내보이며 사연을 말했다. 고중환은 펄쩍 놀라더니 운전사더러 가까운 군부대로 가자고 하였다. 즉시에 공장으로 되돌아가서 록음기를 돌려주고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지배인의 립장이 딱해질수 있었다. 군부대에 들린 고중환은 전자공학연구소의 실습공장에서 처음 만든것이니 중대교양실에 두고 음악을 들으라고 하였다. 군인들은 공장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공장에서는 난데없는 그런 편지가 어떻게 오게 되였는지 영문을 알수 없었다. 먼 후일에야 고중환의 운전사를 통해서 그 까닭을 알게 되였다. 그때까지 록음기를 그냥 집에 두고있던 림수봉은 심한 가책을 받았다.

만일 고중환이 아직 한사람의 과학자로 그냥 남아있다면 승용차는 고사하고 사소한 사회적대우도 바라지 않을것이다. 큰 과학적공적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무엇을 바라기에 앞서 더하지 못한 연구사업을 두고 죄스러움에 휩싸여있을것이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는가?… 부원장동무, 식사하러 갑시다.》

시계를 보고난 고중환이 그냥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림수봉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미 점심시간은 반나마 흘렀다. 그들은 서둘러 청사를 나섰다. 구내에는 한낮의 봄볕이 쏟아져내렸다.

《다음번 올적에는 아무래도 내 먹을 쌀을 좀 가져와야 할것 같습니다.》

림수봉이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고중환의 집에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것이 미안스러워 하는 말이다.

《왜 쌀만 가져오겠습니까, 부식물도 가져와야지.》

《아닌게아니라 부부장동무의 홀애비살림에 뭘 좀 보태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고정한 성미에 뭘 들고오면 오히려 노여움을 살가봐 번번이 빈손입니다.》

사무실에서는 심중한 론쟁으로 서로 얼굴을 붉혔으나 지금은 다정한 벗처럼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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