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길남 박사 서거 1주기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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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남 박사 서거 1주기를 맞이하며
강산 (민족통신 성원들과 함께)
고 노길남 박사
코로나 19로 지난 1년여 동안 우리들은 생전 처음으로 너무도 이상하고 낯선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들에게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을 준 것은 바로 2020년 4월 25일에 노길남 박사님과 이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노길남 박사님이 세상을 떠난 지 어언 한 해가 지났지만 노 박사님을 떠올릴 때마다 느끼게 되는 아픔과 상실감은 점점 더해만 갑니다. 누구보다 건강하고 정정하여 늘 주변의 통일운동 선배들을 찾아뵙고 병중에 있는 동지들의 건강을 돌봐드리며 함께 산보도 하고 등산도 권유하며 청년으로 살아가던 노길남 박사가 그렇게 허망하게 갑자기 떠나게 될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남녘의 수많은 통일운동가들과 깊은 교류를 하면서 친구가 되어주고 동지가 되어주었으며, 미국땅 여기저기 흩어져서 활동하는 통일운동 후배들을 일일이 챙기면서 보다 정의롭고 조직적이고 단결되어 하나된 통일운동을 이루어내려 애쓰던 그 열정적인 모습은 바로 통일운동가의 참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그렇게 진정한 운동가로서의 노길남 박사를 잃은 상실감과 아픔으로부터 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오랜 친구나 친척, 심지어 혈육을 떠나보낸 것보다 통일운동가 노길남 박사님을 잃은 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운동에서의 손실은 그 모든 것보다 천배 만배의 무게로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노길남 박사의 빈 자리가 컸다든 것을 지난 한해 동안 늘 느끼면서 살아왔습니다.
노길남 박사의 서거 소식을 들은 미국과 조국, 그리고 온 세상의 진보적인 민중은 크게 놀라워하며 애도하였습니다. 수많은 진보적인 민중이 추모사를 보내어왔습니다. 남녘의 민주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수많은 단체들에서 애도를 표하면서 지난 수십년을 온 세상에 진실을 밝히며 통일운동의 한길을 걸어온 박사님을 기리었습니다. 민족통신과 함께 남녘에서 진실만을 보도해온 자주시보는 민족 민주 통일의 길에 쌓은 고귀한 업적을 기리고 그 참된 일꾼됨을 따라배우기 위해 노길남 박사를 명예대기자로 모시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노길남 박사는 떠나셨지만 이렇게 수많은 진보적인 민중과 단체들은 박사님이 걸어온 그 길을 통일의 그날까지 꿋꿋이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 길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일상과 학교와 매스컴에서 듣게 되는 온갖 거짓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며, 진실을 바로 알고 깨닫고 참된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평생 동안 우리들을 세뇌시켜온 반공을 깨부숴버리고 오직 자주적으로 민족통일을 이뤄내는 우리 모두의 삶에 주어진 가장 위대한 길이며,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그 위대한 길을 보람차게 걷는 것입니다.
민족통신 또한 노길남 박사가 떠난 이후 부족하지만 지난 1년을 꿋꿋하게 버텨왔습니다. 노길남 박사에게 든든한 동지이자 지원군이 되어 험란한 통일운동의 길에 늘 함께해주셨던 손세영 선생님이 여전히 민족통신을 뒷받침해주는 가운데 김백호, 리동백, 강산 기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길남 박사를 잃은 후 그 아픔과 손실은 그대로인데 민족통신이 해야할 일은 조금도 덜해지거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민족통신처럼 20여년을 줄기차게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언론사들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런 만큼 민족통신이 감당해야할 사명은 너무도 크고 노길남 박사가 없는 민족통신의 빈자리는 너무도 큽니다.
민족통신이 가야할 길은 바로 조국통일을 이뤄내는 일에 언론사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가 더딘 듯해도 각성한 인민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이뤄내고야 말 것이기에 과학이라고 하였듯이 우리가 가야할 조국통일의 길 또한 과학입니다. 조국통일의 그날이 까마득하게만 보여지던 것이 이제는 눈에 훤히 보입니다. 지난 76년 동안의 분단의 벽이 아무리 강고하다해도 조국통일의 도도한 물결을 더이상 막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조국통일은 이뤄지겠지만 설혹 살아서 조국통일을 볼 수 없다고 해도 통일의 그날은 기어이 오고야 말 것임에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만큼 우리 모두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노길남 박사가 그 신념 하나로 지난 20년 동안 민족통신을 이끌어왔듯이 지금의 민족통신 성원들 모두는 조국통일을 위한 진실을 말하는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굳건한 신념으로 민족통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아래는 남녘의 황선 시인이 노길남 박사의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지은 추모시로 노길남 박사가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목소리입니다. 노길남 박사는 우리들에게 작별인사는 하지 말고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박사님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우리가 되어 함께하고 있습니다. 통일된 조국의 대광장에서 우리 모두는 박사님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입니다. 부디 안녕히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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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
<벗이여, 안녕히 다시 만나요>
벗이여,
나는 행복했습니다.
이역만리 낯선 병상에서 경황없이 이별을 고하게 됐지만
나는
넓고 깊은 민족의 품을 떠난 날이 없었습니다.
신촌거리에서 깃발 하나 올리지 못해도
깃발 찾기를 멈추지 않았던 약관의 나날,
그때는 채 알지 못했던 조국을
태평양을 건너고야 만났을 때,
그때부터 나는 외로움을 몰랐습니다.
누구는 나를 보고 빨갱이라 손가락질했고
누구는 내게 침을 뱉고 욕을 했지만,
비겁한 정치는 내게 아름다운 고향 강원도를 압수하고
분단의 창조자들은 내게서 태평양을 건널 항공권조차 빼앗았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별 하나 품고
늘 따뜻했습니다.
조국을 사랑하게 된 후로
나는 진실을 알리는 기자였고,
위대한 민족을 탐구하는 학자였고,
유쾌한 늙은 택시운전사였고,
나는 근면한 통일운동가였고, 낙관의 철학자였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청년이었고 벗들의 동지입니다.
벗이여, 그대가 광주도청에서
총을 쥐고 마지막으로 밤하늘에 어머니 얼굴을 그렸을 때,
벗이여, 그대가 연세대 종합관 옥상에서
최루액을 맞으며 개처럼 끌려갈 때,
벗이여, 그대가 야수 같은 제재에 맞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을 때,
나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겨레의 웃음 속에 겨레의 눈물과 함께.
작별인사는 하지 맙시다.
나는 ‘다시 만납시다’라는 인사만 기억하렵니다.
벗이여,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부디 안녕히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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