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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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8
아침식사를 하고난 양영복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신선한 아침대기를 마시며 병원구내의 정원수밑을 거닐고싶었지만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숙어지는듯 하던 병세가 이즈막에는 또다시 머리를 들었다. 수면장애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번민이 짙어갔기때문이다. 고중환에게 편지를 쓴 며칠후부터 무슨 소식이 있기를 기다렸으나 종무소식이였다. 편지를 쓴것이 두번다시 부질없고 어리석은짓이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이 적지 않게 회복되는가싶던 보름전에는 인편으로 손관식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에게서도 회답이 없었다. 그때에는 어지간히 정신도 맑아서 진작 하여오던 티탄합금의 초소성가공법을 두고 탐구를 계속했다. 필요한 책들을 읽기도 하고 티탄합금의 늘임률이 가장 좋은 리상적인 조건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몇가지 실험테타를 잡으면 티탄합금의 초소성에 영향을 주는 주요인자들 호상관계에 대한 학술적결론을 얻어낼것 같았다. 그래서 손관식에게 필요한 실험을 하여달라는 부탁을 했던것이다. 그에게서도 전혀 소식이 없는것을 보면 실험을 할수 없는 난감한 사정이 있는게 분명했다. 양영복은 이즈막에 그 누구에게도 하소할길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안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한 몸이 어데론가 고적한 곳으로 멀어져가는듯 한 소외감을 서글피 느끼였다. 늙고 병들면 아무리 의지가 굳세던 사람도 감상적인 기분에 잠겨들기마련인가보다. 이따금 호흡이 가빠지고 손발이 저려드는 심상치 않은 징조가 나타났다. 그럴 때면 자기의 주장과 연구사업을 다같이 실현하지 못하면서 필사적으로 고집을 세우다가 뭇사람들의 미움만을 사고 억울히 한생을 마칠것 같은 절망감에 시달렸다. 담당녀의사는 회진을 할 때마다 되도록 명랑한 감정과 유쾌한 기분을 가져야 한다고 친절히 타일렀다. 다른 모든 병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심장병에는 환자의 감정과 기분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간밤에도 번뇌에 시달리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아침식사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눈시울에 졸음이 실려왔다. 창으로 흘러들어 얼굴에 따스하게 와닿는 아침해발이 잠을 실어온것 같았다. 그는 눈언저리를 책으로 가리우고 솔곳이 잠이 들었다. 되도록 깊이 잠들려고 하였지만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생활의 단편들이 맥락없이 허황히 엇갈리면서 어수선하게 떠올랐다. 얼마나 잠들었댔는지 문을 여는 인기척에 의식을 차렸다. 누운채로 얼굴에서 책을 내리우고 출입문쪽을 바라보았다. 방안에 들어선 일행은 여럿이였다. 의사들이 협의진단을 하러 온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양선생, 몸이 좀 어떻습니까?》
양영복은 그제서야 맨앞에서 침대로 다가오신분이 김정일동지이심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설마 하는 생각으로 눈에 총기를 모아 다시 우러러보았다. 잠바우에 위생복을 걸치시고 다정히 물으시는분은 분명 그이이시였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양영복은 황황히 몸을 일으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부축해주시고나서 침대옆의 의자를 끄당겨놓고 마주앉으시였다.
《바쁘실텐데 이렇게 문안해주시니 감사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양영복은 말로써 다 표현하지 못한 감사의 정이 가슴에 넘치여서 눈을 슴벅이였다. 무릎우에 놓인 두손은 내심의 감격을 드러내며 걷잡을수없이 떨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따뜻이 더듬어잡으시였다. 양영복의 부석부석해보이는 얼굴과 조갈이 인 입술은 심장병이 가볍지 않다는것을 말해주었다. 늙어가는것도 안타까운데 거기에 탈까지 만났다는 생각을 하시니 끓어오르는 애달픈 감정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얼마 되지 않던 우리 과학의 1세대들은 이미 대다수가 돌아가고 아직 생존해있는 학자는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부터 새 조국건설에 헌신해온 그들이 하나둘 돌아갈 때마다 크나큰 상실의 슬픔에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 1세대학자들모두에게는 수령님과 맺어진 깊은 인연이 있으며 그 인연속에 탐구의 로정을 오늘에로 이어온 감격스러운 사연들이 있었다. 해방전 흥남제련소의 기사였던 양영복은 나라가 해방되자 내 겨레를 위하여 자기의 지식과 지혜를 바치려고 했지만 진정한 그 길이 분렬된 조국의 어느쪽에 있는지를 몰랐다. 부모와 형제들은 모두 월남해버렸다. 그들을 뒤따라갈 생각도 없지 않았던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것은 그의 머나먼 장래를 옳게 결정지어준 행운의 계기였다. 여러 학자들과 함께 새 조선건설에 대한 수령님의 구상을 들었을 때 그는 진정한 애국애족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그후 남조선에 있는 학자들에게 보내시는 수령님의 친서를 가지고 38도선을 여러번 넘나들었다. 장사군으로 가장을 하고 륙로로 혹은 밀선으로 남행길에 올랐던 그는 적들의 눈에 걸려 아슬아슬한 고비도 겪었다. 남조선에 있는 형제들과 친척, 친우들중에는 유력한 인물들이 많았다. 그들은 양영복이 서울에 나타나자 자기들과 함께 있기를 애원도 하고 권고도 했으며 나중에는 총부리를 내대고 협박도 하였다. 만약 적들편으로 넘어간다면 양영복은 부귀영화를 누릴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령님품으로 돌아왔다.
조국해방전쟁시기와 전후시기에도 그의 생활에는 곡절이 많았다. 복잡한 가정환경은 색안경을 낀자들의 눈에 늘 의혹의 대상으로 비끼였다. 그런 가위에 처세를 모르고 어데서나 내심을 그대로 드러내며 자기 견해를 주장하는 그의 성미가 때로는 편협한 사람들의 극좌적인 정치적분석에 걸려들수 있는 건덕지를 주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수령님께서 그를 보증하고 보호해주시였다.
양영복은 갖은 풍파를 다 겪으면서도 자기의 지식과 지혜로 사회주의조국을 떠받들어온 재능있는 학자이고 애국적인 공민의 한사람이였다. 그런데 생의 말년에 그가 자기의 과학적주장을 굽히지 않던 나머지 격심한 충돌로 탈이 심해져서 병석에 누워있다. 그를 지켜보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못 견디게 가슴이 아프시였다.
《나도 양선생이 부부장동무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습니다. 병원에 계신다는걸 알았다면 미리 와보는건데… 신상에 그런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였으면 왜 진작 나한테 알리지 않았습니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그토록 관심하시는 티탄합금가공문제를 저는 한때 연구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댔습니다. 간곡한 가르치심을 받고 때늦게 연구에 달라붙었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고 그 성공여부도 기약할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무슨 면목으로 편지를 올리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로학자의 푹 꺼져든 눈에 고뇌와 회오가 어리는것을 보시였다.
《양선생 생각에는 지금 9월제련소에서 하고있는 티탄합금가공방법이 공업적으로 불가능합니까?》
화제가 과학기술문제로 옮겨지자 양영복의 눈이 갑자기 빛을 내는것 같았다.
《안됩니다.》하고 그는 힘주어 단언한 다음 벌써 몇번이고 더 생각해본 근거를 꼽았다.
《선생이 지금 연구하고있는 방법은 어떤것입니까?》
《저는 초소성, 이를테면 일정한 조건에서 티탄합금이 엿가락처럼 잘 늘어나는 특수한 성질을 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있습니다.》
양영복은 환자답지 않게 열기를 띠고 자기의 과학적구상을 자세히 설명해드렸다.
주의깊게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양영복의 연구가 성공을 한다면 티탄합금가공분야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것으로 될것이다. 지난 20년대 금속의 초소성성질이 발견된 후 일부 유색금속가공에서는 그 성질이 적용되고있었지만 티탄합금가공에서는 아직 압축가공방법이 통용되고있다는것을 알고계시였다.
《그러니 선생은 모방이 아니라 창조를 시도하고있군요. 나는 선생의 연구자세를 지지하고싶습니다. 내 이미 여러번 말했지만 과학연구사업은 본래의 의미에서 모방이 아니라 창조입니다.》
《과학원에서 하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말씀이 저에게 담력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과학기술봉쇄를 가해오는 놈들이 보란듯이 새롭고 효률적인 가공방법을 탐구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헌데 뜻대로 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외국에 갔던 선생이 참을수 없는 민족적의분을 안고 돌아왔을 때 그것들의것을 압도하는 훌륭한 방법을 탐구하리라고 믿었댔습니다.》
빙그레 웃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에 서있는 병원원장을 부르시였다. 도수높은 백테안경을 낀 원장은 거의 양영복의 나이에 이른 오랜 의사였다. 그는 흘러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올리며 옆으로 조심히 다가왔다.
《양선생의 병치료를 부디 잘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릎우에 놓인 양영복의 손을 다시금 꼭 잡으시였다. 돌아가실 시간이 되였던것이다.
《부디 병치료를 잘하십시오. 선생의 의지를 믿겠습니다. 꼭 건강을 회복할겁니다. 양선생은 오래 생존해계시는것만으로도 우리 당 인테리정책의 승리를 보여주는것으로 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중환과 함께 곧 병원을 떠나시였다.
양영복은 침대우에 여전한 자세로 앉아서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이의 마지막말씀을 되새기고있었다. 새겨볼수록 가슴을 치는 행복감에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얼마나 위대한 사랑의 품속에서 나의 한생이 흘러가고있는가! 온 세상의 과학자들을 향하여 소리쳐 자랑하고싶은 충동으로 가슴이 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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