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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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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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동안 그렇게도 활기에 넘쳐 약동하던 거리가 잠들기 시작했다. 밤이 이슥해지자 고층아빠트의 창가들에 휘황히 빛나던 불빛이 하나, 둘 꺼졌다. 대통로를 메우며 끝없이 달리던 차량들도 뜸해지고 꼬리를 물었던 무궤도전차들도 동안뜨게 나타났다.
전선동부의 최전연고지에서 저녁녘에 떠난 승용차가 수도의 거리에 들어선것은 이무렵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쪽잠에서 깨여나시였다. 련 사흘 높고낮은 산발들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군부대작전지휘소들과 중대들을 돌아보시는 과정에 덧쌓인 피로가 달게 쉬신 차실안의 쪽잠에서 다 풀린것 같으시였다. 손으로 눈시울을 문지르고 시계를 보시였다. 승용차에 달린 전자시계는 명멸하는 파란 문자로 10분전 11시를 가리켰다. 그러니 깜빡 잠드셨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쪽잠이 내처 하루밤을 푹 쉬고난것처럼 생각되시였다. 쉼없이 군부대들과 인민들을 찾으시는 과정에 피할길 없는 시간의 부족으로 잠시 차안에서 눈을 붙이군 하셨는데 인제는 그것이 굳어진 습관으로 되여버렸다. 차체의 부드러운 진동에 몸을 맡기고 쪽잠에 드는것이 침대에서 쉬는것보다 훨씬 편하시였다. 그것은 짧은 시간에 많은 피로를 푸는 가장 좋은 수면방법이기도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유리를 내리우고 확 몰려드는 대기를 한껏 들이키시였다. 낮동안의 열기가 가셔진 밤공기는 신선하고 시원했다. 온몸에 활력이 되살아나고 기분이 상쾌해지는것을 느끼시자 한 병사의 모습이 머리속에 되새겨지셨다. 최전연의 어느 령마루에서 보초를 서던 애젊은 병사의 모습이였다. 그로부터 받은 인상이 너무도 강하였기때문에 쪽잠을 깨신 첫 순간에 그에 대한 생각부터 떠오르는가싶으셨다.
351고지를 떠난 승용차가 그 령마루에 이른것은 해질녘이였다. 령밑의 벌판을 달려올 때만 하여도 청청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졌다. 동서의 기류가 부딪치는 곳이여서 날씨의 변덕이 심한 령마루이고보면 그럴만도 하였다. 차창밖으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골짜기에는 저녁해빛이 찬란히 비치는데 령마루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낙비였다. 칼날같은 번개가 하늘에서 번쩍이고 뢰성이 울부짖었다. 운전사는 시창닦개에 스위치를 넣고 속도를 죽이였다.
비물이 씻겨지는 시창에 시선을 주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발속에 서있는 보초병을 보시였다. 비옷을 쓰지 못한 병사의 철갑모에서 비물이 줄지어흐르고 군복어깨가 벌써 화락하니 젖었다. 그러나 병사는 아랑곳없이 그 누구의 구령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절도있고 맵시있게 영접들어총을 하고 감격에 넘친 얼굴을 승용차쪽으로 돌리였다.
《운전사동무, 차를 세우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산을 찾아 펼쳐들고 멈춰서는 차에서 내리시였다.
보초병은 여전한 모습으로 조각처럼 서있었다. 병사로서 갖출수 있는 최대의 례절인 영접들어총자세를 언제까지나 허물지 않으려는가싶었다.
그이께서는 병사에게 급히 다가가서 우산을 받쳐주시였다.
《왜 보초서러 나오면서 비옷을 가져오지 않았소?》
병사는 역시 절도있는 동작으로 총을 내리우고 활기있게 대답했다.
《이렇게 갑자기 소나기가 올줄은 몰랐습니다.》
《이곳에서 보초를 서는지 얼마나 되였소?》
《우리 소대는 한주일전에 왔습니다.》
《그러니 아직 이곳의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모르겠구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비오는데 저때문에 이렇게 지체하시니…》
병사가 더 말을 못하며 두눈을 슴벅거렸다.
《괜찮아. 소나기가 멎을 때까지 함께 쌍보초를 서보자구.》
찬비를 맞고 어린 병사가 감기에라도 들릴것 같은 생각에 떠나실수 없었다.
억수로 퍼붓는 비방울이 잦은 가락으로 후둑후둑 우산을 두드렸다.
《고향은 어데요?》
《평양시 평천구역입니다.》
《아버지는 뭘하오?》
《구두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합니다.》
《아버지이름은 뭐요?… 내 동무의 아버지한테 소식을 전해주겠소. 아들이 군사복무를 훌륭히 한다고…》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 바쁘실텐데…》
상긋이 웃으며 얼굴을 붉히는 병사의 얼굴에는 사려깊은 감사의 정이 떠올랐다.
《일없소. 바쁘더라도 동무의 아버지에게 꼭 소식을 전해주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심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최전연을 돌아보시면서 병사들을 만나실 때마다 그처럼 훌륭한 아들딸들을 조국보위의 전초선에 내보낸 부모들에게 마음속의 감사를 보내고싶으시였다. 그 심정을 하나로 모아서 이번 전선길에 마지막으로 만나보신 이 초병의 아버지에게 직접 소식을 전하려고 생각하시였다. 하지만 병사는 선뜻 응대를 하지 않고 우산밑으로 일순 비발이 자욱한 공간을 바라보더니 몹시 주저하는 기색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저의 아버지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소대 병사들의 심정을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
김정일동지께서는 병사의 걀숨한 얼굴을 주시하시였다.
《저는 보초를 교대하기 전에 소대동무들과 함께 다섯시 텔레비죤보도를 보았습니다. 보도에는 라이쁘찌히국제시장에 가서 금상을 받고 귀국한 과학자들이 소개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환성을 올렸습니다. 세계에 우리 나라 과학기술의 위력을 과시한 사실은 국제체육경기나 예술축전에서 성과를 거둔것보다도 그 의의가 더 크지 않습니까. 우리는 서로 기쁨을 나누던 나머지 그 과학자들에게 우리 소대의 이름으로 축하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 편지초안을 쓸데 대한 과업을 제가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써야 소대 전체 병사들의 심정을 정확히 표현할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그 과학자들에게 저희들의 심정을 직접 전해주셨으면…》
병사는 외람되게 미안스러운 부탁을 드리는것 같았는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어줍게 웃었다.
《그런데 왜 동무가 편지초안을 쓸 과업을 받았소?》
거기에 무슨 까닭이 있을듯싶으시였다. 이 병사와 그 과학자들사이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것이 아닌지?…
《제가 소대전투소보원입니다.》
병사의 대답은 뜻밖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하도록 깊은 감명을 받으시였다. 이 병사를 통하여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모든 군인들의 심정을 보는듯 하시였다. 병사와 과학기술, 어찌 보면 량자사이에는 거리가 먼것 같이 여겨질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조국을 사랑하고 목숨으로 사수하는 우리 병사들은 조국의 번영을 누구보다 축원하기때문에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을 두고 그리도 기뻐하는것이다.
《내 라이쁘찌히에서 돌아온 과학자들에게 초병들의 축하를 꼭 전하겠소!》
그이께서는 병사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약속하시였다.
비발이 갑자기 성기여지면서 갈라지는 구름장사이로 저녁해빛이 쏟아져내리였다. 물안개가 굼실굼실 흘러가는 령마루에 칠색령롱한 무지개가 비끼기 시작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초병과 작별하고 차에 오르시였다.
초병은 다시 작별의 인사로 영접들어총을 하였다. 그이께서는 떠나는 승용차의 뒤창으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부동의 자세로 억세게 틀어잡은 병사의 총창에서 해빛이 눈부시게 부서졌다. 멀어져가는 시야속에 병사의 모습은 사라졌어도 총창에서 발산되는 그 빛발은 여전히 보이는듯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총대와 과학기술!》하고 마음속으로 외우시였다. 총대로 주체위업을 보위하고 과학기술로 부강조국을 건설하시려는 자신의 정치의지를 음미하시며 량자의 련관이 불러내는 철학적명상에 잠기시였다.…
《차가 지금 어데까지 왔소?》
회상에서 깨여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에게 조용히 물으시였다.
《옥류교를 가까이하고있습니다.》
《곧장 봉화산려관으로 갑시다. 그 려관에 오늘 라이쁘찌히에서 돌아온 동무들이 류숙하고있소.》
운전사는 아무말없이 네거리에서 방향을 꺾어 봉화산려관쪽으로 차를 몰았다. 령마루에서 있었던 일을 목격한 그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심중을 짐작하고있었다.
승용차는 려관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길가에 멈춰섰다. 그이께서는 운전사를 려관에 보내고 차실에 그냥 앉아계시였다. 려관의 호실에 직접 들리고싶으셨지만 그렇게 되면 잠자리에 들려던 손님들이 뛰쳐일어나 달려나올수 있었다. 운전사는 10분도 못되여 석홍범과 양명심을 데리고 나타났다. 차실에서 나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각각 그들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나는 래일 동무들을 만나자고 했었는데 한시바삐 보고싶어서 전연에서 돌아오는 길로 이렇게 찾아왔소.》
가로등빛이 비친 두 청년과학자를 번갈아보시며 감격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석홍범과 양명심은 그이를 우러르며 행복에 겨워 활짝 웃고있었다.
《이번에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동무들에게 조국을 지켜선 초병들이 보내는 축하의 인사를 전해주겠소.…》
그 이야기를 전하시는 김정일동지의 미소어린 얼굴에는 그윽한 표정이 떠올랐다. 영접들어총으로 바래워주던 초병의 얼굴을 그려보셨던것이다.
석홍범과 양명심은 가슴속에 차오르는 경건한 감정을 음미하며 숙연히 서있었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하지만 초병들이 보내는 축하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가슴에 안겨왔다.
《비약하는 우리 과학의 면모를 세계에 보여준 동무들을 금방석에 앉히고싶소, 금방석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숙어들줄 모르는 기쁨으로 마냥 가슴이 설레이시였다. 힘껏 대기를 마시며 밤하늘로 시선을 드시였다. 여물어가는 별들이 총총히 빛났다. 그 현란하고 찬란한 빛발이 전에없이 유정하게 안겨왔다. 자랑스러운 청년과학자들과 더불어 이밤을 즐기고싶은 생각이 불쑥 치미시였다. 그래서 승용차옆에 서있는 운전사에게 고개를 돌리시였다.
《동무는 뻐스를 타고 집으로 가오. 나는 이 동무들과 함께 차를 타고 시내를 돌면서 좀더 이야기를 나누겠소.》
《제가 차를 몰아드리겠습니다.》
《아니, 차는 내가 몰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벌써 차실문을 열고 운전사좌석에 앉으시였다. 그이의 권고에 따라 젊은 과학자들도 차에 올랐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차를 모시면서 그들과 우리 과학의 래일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계획했던 첨단과학의 중요한 지표들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였다. 그이께서는 그에 토대하여 21세기를 지향하는 과학기술발전의 새로운 구상을 품고계시였다. 조만간에 우리의 과학기술대오는 급격히 확대되고 질적으로 강화될것이다. 평양과 각 도소재지들에서 1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과정을 마친 뛰여난 인재들이 대대적으로 과학자대오에 들어서고있다. 그들은 첨단과학과 고도기술개발에 필요한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한 신진력량이다. 말하자면 과학의 요새를 점령해가는 전투대오에 새롭게 투입되는 정예사단들이다. 그이의 눈앞에는 튼튼히 정비된 과학기술의 전투대오가 21세기를 향하여 돌진해가는 장엄한 전경이 하나의 뚜렷한 화폭으로 선명히 그려지셨다. 희망과 열정에 사로잡히신 그이께서는 자동차의 가속기를 힘있게 밟으시였다. 속도계의 바늘이 푸른빛조명속에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60, 80, 100, 120… 잎새가 무성해진 가지들을 펼치고 숙연히 잠들었던 가로수들이 놀라움에 깨여나 맹렬히 달려오다가는 한순간에 뒤로 휙휙 사라져버렸다. 멀리 보이는 검푸른 하늘이 빙글빙글 선회하면서 거기에 가득찼던 별무리가 축포의 잔광처럼 쏟아져내리였다.
젊은 두 과학자는 높은 속도감에 몸과 마음이 별무리 쏟아지는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야공속으로 두둥실 떠오르는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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