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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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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914회 작성일 21-04-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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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14

 

과학지구는 불도가니마냥 들끓었다. 연구사들과 실험조수들, 중간공장의 로동자들모두가 떨쳐나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직접 받은 학자들을 에워쌌다. 지어는 려관과 상점, 편의사업소와 탁아소의 직원들까지 때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이 지구는 봉사시설들까지 과학자려관, 과학자상점, 이런 식으로 과학자라는 신성한 이름을 앞머리에 달았다. 그래서 과학연구사업과 아무런 련관도 없다고 할수 있는 접대원, 판매원, 신발수리공, 리발사들까지 과학전선의 한대오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자각하고있었다.

과학자회관앞에는 군중집회를 할 때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회관에서 나온 학자들은 여기저기서 팔굽을 끄당기며 그이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고 묻는 여러 사람의 질문에 흥분한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웅성거리는 소음속에 《조선민족제일주의!》, 《주체적인 방법론!》과 같은 말들이 두드러지게 긍지높이 울리였다.

제일 마감에 회관에서 나온 석홍범에게는 달려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영광스러운 그 좌석에 참가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군중으로부터 멀리 물러난 자기를 뒤돌아보았다. 선발된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기는 했으나 그들과는 다른 처지에서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들었다. 자기를 그 장소에까지 불러주신 그이의 심정이 참으로 고마왔다. 그는 전날의 연구집단성원들을 만나서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격동된 마음을 전하고싶었고 처음부터 연구사업을 다시 시작하자고 호소하고싶었다. 사위를 둘러보았다. 기계공학연구소 소장을 중심으로 모여선 사람들의 뒤전에 서있는 양명심이 눈에 뜨이였다. 하늘색샤쯔를 입은 명심은 키돋움을 하며 귀를 강구다가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지 실망한 기색으로 누구인가를 찾고있었다.

그에게 다가간 석홍범은 흥분된 목소리로 불렀다.

《명심동무!》

《우리 할아버지를 못 봤어요?》

양명심은 석홍범을 마주보자 제 먼저 물었다. 그는 회관에서 나온 학자들중에서 여태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를 초조히 찾고있었다. 누구보다도 할아버지를 찾으면 말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을수 있다고 생각한것이다.

《양영복선생은 회관의 응접실에 남아있소.》

《?》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회관에서 담화를 끝내신 다음 로학자들을 따로 만나주고계시오. 모처럼 과학지구에 왔는데 선뜻 떠나고싶지 않다면서 로학자들과 의견을 더 나누고싶다고 하시였소.》

《동무도 참가했댔어요?》

양명심은 사뭇 의아해하는 낯색이였다.

《그렇소.》

석홍범은 놀라움에 사로잡힌 명심의 눈동자가 올롱해지는것을 보았다.

《그럼 그이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양명심은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똑바로 마주보는 눈에서 처음의 의혹이 부러움으로 뒤바뀌였다.

《우리 과학자들에게 하신 말씀내용은 이렇소.》하고 석홍범은 그 내용을 명심에게 들려주었다. 말씀의 구절구절을 심장에 새기듯 하였기때문에 거의나 그대로 전달해줄수 있었다. 그리고는 열정적으로 자기 심정을 말했다.

《초고압유압프레스개발이 지금처럼 장벽에 부닥친것도 실은 우리의 출발자세부터가 잘못되였기때문이였소. 우리 나라의 실정을 고려하지도 못했고 전혀 새로운 발견으로 다른 나라 기술을 압도해보려는 대담한 야심도 없었소. 우리 한번 또다시 지혜를 모아 시도해보지 않겠소?》

《프레스의 본체제작과 기밀장치가 제일 걸렸댔는데 그것을 새롭게 해결할 무슨 착상이 있어요?》

《지금은 아무런 착상도 없소. 그러나 남들과는 전혀 다른 합리적인 방법을 연구해내리라는 야심에 불타고있소.》

《이제 와서 연구집단을 다시 뭇기는 어려울거예요.》

《그것이 승인되지도 않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소. 과학적담보가 내다보이는 착상이 있은 다음에야 연구집단의 재조직이 필요한거요. 내가 기밀장치연구를 맡을테니 동무는 본체제작연구를 맡아주지 않겠소?》

석홍범은 절절히 호소했다. 불같은 열정이 새로운 깨달음의 환희속에 폭발했던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비상한 결의를 새롭게 다졌다 하더라도 아직 아무런 착상도 없이 이렇게 즉석에서 호소하지는 못할것이다. 하지만 명심은 그의 심정에 공감했다.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전해듣고보니 자기도 의욕이 북받쳤다. 자기 역시 지금까지는 방향각이 헛갈린 시각으로 연구사업을 하여왔다고 인정했다.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모색을 하면 초고압유압프레스개발에 부닥쳤던 장벽을 허물어버릴수 있는 방도를 찾아낼것 같았다. 아직은 그것이 막연하고 또 어렵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눈앞이 확 열리는듯 한 느낌속에 자신심이 생기였다.

《좋아요. 연구해보겠어요!》

명심은 깊은 생각끝에 선선히 대답했다.

《고맙소, 명심동무!》

석홍범은 얼결에 명심의 손을 덥석 잡을번 했다. 상대가 처녀가 아니라면 얼싸안아주고싶었다. 연구집단이 해산된 날 저녁에 그더러 금속공학연구소로 옮겨가라고 권고하던 일이며 그의 날카로운 비판에 노여움과 반발심을 느꼈던 일들이 아득한 옛일처럼 생각되였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아무런 의미도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멀리로 사라져버리고 참으로 이제부터 모든것이 새롭게 시작되는것 같았다.

석홍범은 흥분된 마음으로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민옥은 저녁밥도 짓지 않고 우두커니 방안에 앉아있었다. 불안과 경계심이 어린 눈길로 남편의 거동을 의아쩍게 바라보던 그가 조심히 물었다.

《당신 오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로부터 심각한 비판의 말씀을 들었다는게 사실이예요?》

석홍범은 어찌하여 안해가 경황없이 앉아있는가를 깨달았다.

그이께서 과학지구를 다녀가신 소식은 어느새 가두의 아낙네들속에도 퍼진 모양이다. 석홍범은 그이로부터 비판의 말씀을 받은 자기가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꼈는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과학적성과로 기쁨을 드릴 대신에 그이께 심각한 사상적과오를 드러내보이였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받아 마땅할것이다.

《그게 사실이예요?》

안해가 다시 물었다.

《사실이요.》

《그런데도 전에없이 환한 얼굴로 집에 들어서니 도대체 제정신이예요?》

석홍범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내가 자기의 처지를 까맣게 망각해버리고 정신없이 들뜨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심장을 속일수는 없었다. 그이의 면전에서 비판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병들었던 한 부분을 도려내는듯이 그리도 아프던 심장이 지금은 소생의 활기로 세차게 고동치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 까닭은 무엇으로도 설명할수 없었다. 오직 그이의 면전에서 그런 경우를 당해본 사람의 심장만이 체험할수 있는 그런것이였다. 석홍범은 안해를 어떻게 설득시켰으면 좋을지 몰랐다.

《당신말대로 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지도 모르겠소.》

싱긋이 웃으며 그렇게 응대를 하는수밖에 없었다.

《야참 여보, 수도가에서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얼굴을 들수가 없어서 빨래도 못하고 돌아왔어요. 그게 어디 보통일이예요?》

민옥은 남편의 태도에 그만 아연해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당신말이 옳소. 보통일이 아니요. 과학자로서 나의 인생이 지난날과 구별되는 새로운 궤도에 들어서게 된 뜻깊은 일이요. 나는 죽을 때까지 그이의 말씀을 잊지 않겠소.》

석홍범의 얼굴에 나타난 활기롭고 결연한 표정이 민옥을 또다시 놀라게 했다.

《아무래도 당신은 지금 얼이 빠져버린것 같애요. 과학원 당조직이나 개별적일군한테서 비판을 받았대도 모르겠는데 그이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니 이렇게 심중한 일이 또 어데 있어요?》

《여보, 어서 부엌에 내려가 저녁이나 짓소!》

석홍범은 안해를 지켜보며 소리쳤다. 안해는 오늘일로 해서 그 어떤 엄중한 처분이 다가올수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석홍범은 자기의 감정과 너무도 상반되는 생각에 사로잡힌 안해와 더 말하고싶지 않았다. 설사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마음쓰시게 한 잘못으로 하여 안해의 생각처럼 대중과 조직으로부터 이제 그 어떤 가혹한 비판이나 처분을 받는다 해도 조금도 두려움없이 감수할것이다. 하지만 그이께서 바로잡아주신 궤도를 따라 탐구의 한생을 이어갈것이다. 그는 상심한 기색을 거두지 못한채 비실비실 부엌으로 내려가는 안해를 흘겨보고 성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집단이 해산된 후에 벽장속에 깊숙이 처박아넣었던 연구자료들을 꺼냈다. 그리고는 자료묶음의 굽도리에 묻은 먼지를 털고 책상우에 펼쳐놓았다. 불현듯 그 자료들을 하나하나 수집하면서 정열을 쏟아붓던 나날들과 다시 상봉을 하는듯 한 감개가 떠올랐다. 그것은 자기의 어리석은 처사로 곡절의 리별을 하였던 첫사랑의 련인과 다시 상봉을 하는듯 한 감정이였다. 그는 애무하듯 책장들을 쓰다듬었다. 앞으로 이 자료들을 새로운 눈으로 검토하면서 또다시 탐구의 열정을 경주한다면 반드시 고질합성수지를 쓰지 않는 독특한 유압기밀장치를 발견해낼것 같았다. 연구의 방향각을 돌린 자기의 눈앞에는 금시 성공의 실머리가 보일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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