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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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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750회 작성일 21-04-1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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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5

 

손관식은 묵직한 책보자기를 들고 전실에 들어섰다.

《양선생 계십니까?》

《네, 서재에 있습니다.》

박씨는 반겨맞으며 행주치마에 물기어린 손을 씻었다. 방금 위생실에서 빨래를 하다가 주인을 찾는 소리에 나온듯싶었다.

손관식은 서재쪽에 시선을 주고나서 빙긋이 웃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듣자니까 그렇게 고집이 센 양선생이 최근에 부인님앞에서는 꼼짝을 못한다더군요.》

《그 소문이 연구소까지 퍼졌나요?》

박씨는 당황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그러나 주름진 눈가에는 즐거운 웃음이 피여났다.

《휴식참에 모여앉으면 이 집 이야기들입니다. 연구사들중에는 량주가 산보하는걸 띄여본 사람들도 있답니다.》

《원, 저런… 당비서동지가 주고간 과업을 집행하느라고 하는노릇이 늘그막에 웃음거리가 되나보군요.》

《웃음거리라니요, 이 집에서 과학자가정생활의 본보기가 창조된다고 부러워들 하지요. 그래 요새 양선생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좀 나아지는것 같습니다.》

박씨와 몇마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손관식은 양영복의 서재로 들어갔다.

양영복은 베란다가 달린 벽쪽에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양선생.》

불러도 대답이 없다. 곁에 다가가서 다시 불렀다.

《양선생.》

그랬으나 도면에 열중해버린 그는 반응이 없었다. 학술적인 모색에 빠져버리면 헤여날줄 모르는 그였다. 곁에서 아무리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져도 일단 사색에 빠져버리면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의 특수한 신경조직은 이여의것에는 일체 반응을 거부하고 온넋을 집요한 사색으로 몰아갔다. 그때문에 공식적인 모임이나 여럿이 모여앉은 사사로운 장소에서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왕청같은 행동을 하여 오해를 사거나 웃음을 자아내는 일이 없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연구소의 젊은 학자들은 그를 《아르키메데스》라고 불렀다. 고대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와 양영복은 그 특이한 사색의 집중력으로 상통되는바가 있었던것이다. 열렬한 애국자이고 뛰여난 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는 제2차 포에니전쟁때 투척기를 비롯한 훌륭한 무기를 만들어 적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그는 로마군에게 점령당한 도시에서 과학연구를 계속했다. 정원의 의자에 앉아서 땅에 도형을 그리고 깊은 생각에 빠졌던 그는 자기의 곁에 로마병정이 다가온줄도 몰랐다. 병정의 거치른 발길에 자기의 도형이 밟혔을 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어망결에 호통을 쳤다.

《나의 도형을 밟지 말라!》

무지한 로마병정은 칼을 뽑아서 인류의 자랑이였던 그 학자의 목을 쳤다. 밟지 말라고 소리쳤던 땅우의 도형은 그자신의 피로 물들었다.

탐구에 심취된 양영복을 볼 때면 누구나 세상이 다 아는 이 일화를 련상하게 되였다.

손관식은 이 순간 아르키메데스의 그때 나이와 지금 양영복의 나이가 똑같이 75살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그리였다. 그리고보면 정원의 의자에서 땅우에 그린 도형을 내려다보던 아르키메데스의 마지막모습이 지금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수굿하고 사색에 잠긴 양영복의 모습과 신통히도 비슷하지 않았을가?

손관식은 잠시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양영복의 사색을 깨뜨리기가 서슴어졌다. 한창 탐구의 사색에 전념했을 때 그 누가 찾아오는것처럼 짜증스러운 일은 없는것이다. 그것은 자신도 체험하는 일이다. 그가 제풀에 골똘한 사색에서 풀려나기를 기다리며 방안을 무심히 둘러보았다. 두 벽에는 키높은 서가들이 서있다. 서가마다 여러 나라 어종으로 된 금속공학과 재료공학책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양영복자신이 쓴 책들도 10여권이나 되였다. 그중에는 한때 쁘라하와 런던의 국제금속공학토론회에서 파문을 일으킨 찌르꼬니움과 자성체합금에 대한 책들도 들어있었다.

지금 양영복이 연구하고있는 티탄합금가공법이 성공하면 다시 세계금속학계를 놀래우는 또 하나의 책이 이 서가에 꽂히게 될것이다.

일본에 다녀온 후 좌절감에 빠졌던 양영복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연구소를 다녀가신 그날부터 새로운 결심을 품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 무슨 학술적구상을 내놓지는 못하였다. 과학원에서 하신 김정일동지의 가르치심은 양영복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젊은 학자들과 달리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 민족적인 수모를 받을대로 받았다. 그랬기때문에 과학기술분야에서도 민족의 영예와 존엄을 떨치며 그것을 세계적수준에로 비약시키려는 김정일동지의 철석같은 의지에 접했을 때 남달리 흥분했다. 그이께서 우리 과학자들의 창조적지혜를 굳게 믿으시고 기존관념을 초월하는 새로운 비약의 방도를 명철하게 밝혀주실 때에는 너무도 감동이 커서 곁에 앉았던 손관식과 시선을 마주치기도 하였다. 뜻깊은 그날에 양영복은 북받치는 흥분을 걷잡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장선생, 나는 오늘 캄캄하던 눈앞이 확 열리는듯 했습니다.》

그는 새롭게 각오하고 새롭게 깨달은 그 모든것을 이 한마디에 담았다. 후날에도 그는 과학자로서 자기 인생의 근본적전환이 일어난 이날을 두고 자주 이야기하군 했다. 그때로부터 그는 전에 없던 담력과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티탄합금가공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고심어린 탐구의 나날이 흘렀다.

그러던 끝에 마침내는 초소성방법으로 티탄합금을 가공할수 있다는 대담한 착상을 하게 되였다.

티탄은 녹음점에 접근하는 일정한 온도에서 자기 길이의 10배이상으로 늘어나는 특수한 성질, 초소성성질을 가지고있었다. 다른 금속들도 초소성성질을 가지고있지만 티탄은 그 성질이 특별좋은 편이였다. 그 성질을 리용하여 해당한 기구에 소재를 대고 불활성가스로 압력을 가하면 필요한 형태를 만들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유리용액을 공기로 불어서 임의의 형태를 만드는 리치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초소성을 띤 티탄합금의 가공은 유리용액을 다루는것과는 대비할수 없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기술을 요구하였다. 앞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여야 했다. 립자구조의 미세성과 균일성, 가열온도에서 합리적인 조건을 보장해야 했으며 그들 호상간의 관계에 대한 복잡한 방정식을 발견해야 했다. 하지만 초소성방법으로 가공할수 있다는 가능성만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했다. 연구소에서는 양영복을 책임자로 하는 연구집단을 지체없이 조직했다.

그것은 제련소에 조직된 박치영의 연구집단이 압착가공기술개발에서 상당한 전진을 이룩한 후의 일이였다.

하나의 과제를 놓고 두개의 연구집단이 존재한다는것은 두말할것없이 불미스러운 일이였다.

그러나 양영복과 손관식은 박치영의 연구시험이 좋은 결과를 기대할수 없다고 인정했기때문에 초소성가공법에 대한 연구사업을 줄기차게 다그쳐오고있었다.…

갑자기 양영복이 신음소리를 냈다. 서재를 둘러보며 자기 생각에 잠겼던 손관식은 놀랐다. 심장에 진통이 오는가? 당황한 눈길로 양영복을 돌아보았다. 양영복은 커다란 확대경으로 여전히 도면을 훑어보고있었다. 마음이 놓이였다. 몸이 말째서 터치는 신음소리가 아니였다. 양영복은 고도로 사색이 승화될 때면 앓는 사람처럼 끙끙 신음소리를 냈다. 의자밑으로 드리운 다리를 떨기도 하였다.

손관식은 오래동안 함께 연구사업을 하면서 그러한 경우를 여러번 목격했다. 신음과 경련이 오리만큼 무서운 사색의 앙양속에서 새로운 발견이 그의 머리에 떠오르군 하였다. 그것은 마치도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산모의 진통과 비슷했다. 손관식은 마른침을 삼키며 양영복을 주시했다.

이 순간에도 양영복의 한껏 승화된 령감적인 사색이 무엇인가를 산생시킬것이다. 신음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부릅뜬 두눈의 동공이 굳어지는듯 했다. 관자노리의 정맥이 두드러졌다. 입귀가 실룩거렸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다.

《됐어! 그렇지!》

마침내 양영복은 주먹으로 책상을 울리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에는 땀발이 흥건했다.

밖으로 달려나갈듯이 흥분하여 두리번거리던 양영복은 손관식을 보자 손을 덥석 잡았다. 완전히 넋을 잃은 사람같았다. 주위의 정황은 망각해버렸다. 어떻게 왔느냐고 묻지도 않고 이렇게 부르짖었다.

《소장선생, 우리 연구집단 성원들을 모두 모여주시오!》

손관식이 자기 집에 찾아온것이 아니라 연구소에 함께 있는것으로 착각하고있었다.

《왜 모여달라고 합니까?》

《티탄합금립자의 미세성을 보장할수 있는 방도가 떠올랐소! 함께 토론해봅시다.》

《그래 어떤 방도가 떠올랐습니까?》

손관식은 기쁨에 넘쳐 반문했다.

《지금의 티탄합금생산공정에서 무엇을 개조해야 하는가 하면…》

양영복은 잡고있던 손관식의 손을 책상쪽으로 이끌었다. 도면을 짚어보이던 그는 문득 생각난듯이 들레며 말했다.

《소장선생뿐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토론했으면 좋겠는데.》

《여기는 연구소가 아니라 선생님 서잽니다.》

손관식이 빙그레 웃으며 깨우쳤다.

양영복은 사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비로소 꿈속에서 깬듯이 두눈을 껌벅거렸다. 자기딴에도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어색한 미소를 그리였다.

《마침 소장선생이라도 집에 왔구만. 자, 내가 찾아낸 방도를 좀 들어보시오.》

양영복은 연필끝으로 도면을 짚어가며 자기의 구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손관식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양영복이 착상한대로 지금의 생산공정에서 몇가지를 개조하면 티탄합금립자의 미세성을 보장할수 있었다. 이것은 초소성가공법의 중요한 매듭의 하나를 해결하는것으로 된다. 앞으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첫출발은 확실히 성공적이다.

《선생님, 수고했습니다! 제 소견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단 말이지요. 래일 내 연구소에 나가서 다른 동무들과도 좀 더 토론해보겠습니다.》

《불편한 몸에 선생이 뭐 직접 걸음을 하겠습니까. 충분히 선생의 의도를 리해했으니 내 다른 동무들과 토론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주시오.》

손관식은 여적 방바닥에 놓고 까맣게 잊고있던 책보자기를 들여왔다.

《일전에 선생이 부탁했던 특허문헌들을 인민대학습당에서 빌려왔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양영복은 서둘러 보자기를 풀고 특허문헌들을 뒤적여보았다.

영문으로 된 문헌들을 몇장 번져보던 그는 손관식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치영이가 있었으면 이 문헌들의 조사를 맡기겠는데…》

무척 아쉬운 낯빛으로 말했다.

《선생이 바쁘다면 문헌조사를 다른 동무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젊은이들은 치영이만큼 마음들게 문헌조사를 못합니다. 그를 다시 데려올수 없을가요?》

《제 이름을 내보자고 연구소를 떠나간 그를 다시 데려온단 말입니까? 아무리 재간이 좋아도…》

손관식은 박치영을 생각만 해도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젊은 혈기에 명예심이나 허영심은 흔히 있는 일이지요. 그 아까운 재능이 성공하지 못할 일에 허비되는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보매 양영복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박치영을 생각하고있는것 같았다. 하긴 그만한 연구조수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늘 말해오던 그였다.

《양선생, 우리가 너그럽게 치영동무를 데려오자고 해도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그는 그저께 실험에서 성공했습니다.》

《그래요?》

양영복은 뜻밖이였다. 박치영의 발기가 실험적으로 가능할수도 있다고 여겼댔지만 그렇게 빠른 기간에 성공하였다는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제련소에서는 치영동무의 방법을 인차 생산에 도입할것이라고 합니다. 당비서를 비롯해서 제련소에서는 지금 큰 경사가 났다고 들끓고있습니다.》

양영복은 갑자기 낯빛이 달라졌다. 엄청난 소식을 들은것처럼 긴장해졌다.

《소장선생, 당장 비서동무를 찾아가서 그게 공업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것을 납득시키시오!》

《제련소사람들의 미움을 사면서 반대의견을 들고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여차하면 보수주의감투를 쓰기 쉽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질투심때문에 반대를 한다는 뒤소리가 돌고있습니다.》

《그런 비난이 두려워서 주저한다면 내가 당비서를 찾아가겠습니다!》

양영복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흥분을 걷잡지 못하고 격하기를 잘하는 그의 성미를 손관식은 알고있었다. 그의 심장탈은 때때로 드러나는 예민한 반사와 격한 성미때문에 쉽게 낫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냥 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것 같았다.

손관식은 따라일어서며 양영복의 손을 잡았다.

《고정하십시오. 선생이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걸음을 하겠습니까. 내가 당비서를 찾아가겠습니다.》

《정말 찾아가주겠습니까?》

《찾아가겠습니다.》

양영복은 다짐을 받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간곡히 말했다.

《실험적인 성공에 현혹되여서 중간공정을 뛰여넘어 생산에 도입할 공사를 벌렸다가는 돌이킬수 없는 일을 저지를수 있습니다. 아까운 당일군인데 빗나가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손관식은 양영복의 집을 나섰다. 당위원회를 찾아가는 그는 걸음이 무거웠다. 과연 황석태를 설득시킬수 있을가?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자신이 없었다. 설사 양영복이 찾아간다 하여도 사정은 마찬가지일것이다. 좀처럼 자기 결심을 굽힐줄 모르는 황석태를 납득시키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문제는 그 한사람만이 아니다. 제련소의 기술자들과 행정일군들, 지어는 연구소의 적지 않은 학자들까지 박치영의 발기를 지지하고있는데 있었다. 로동자들도 성공의 희열에 들떠있다. 누구나 애타게 기다리던 티탄합금가공법이 실험적으로 해결되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공연히 양영복에게 박치영네 연구소식을 전했다가 난처한 부담을 지게 되였다.

손관식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당위원회 접수실에 이르렀다.

《당비서동지를 만나러 왔습니다.》

《비서동지는 평양에 갔습니다.》

접수실의 녀인은 미안한 낯빛으로 말했다.

모처럼 시간을 내여 찾아온 연구소 소장의 공걸음이 미안한 모양이다. 하지만 손관식은 다행 딱한 처지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으로 막혔던 숨을 길게 내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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