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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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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897회 작성일 21-05-1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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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8

 

강민옥은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친정집을 떠났다. 그가 평성에 이르렀을 때는 아침 10시경이였다. 집을 떠난지 사흘밖에 안되였지만 친정에서 심각한 일들을 겪은탓인지 오랜 나날이 흐른것처럼 생각되였다. 그는 과학원근처정류소에 이르자 전차에서 내렸다. 남편에게는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가? 집으로 가려면 과학원앞을 지나야 한다. 그는 과학원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텅 비여버린 집에 가서는 아무런 소식도 들을수가 없을것이다. 집에 가기 전에 림수봉부원장부터 만나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포장된 언덕길을 올라간 그는 본원청사의 2층에 있는 림수봉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엇인가를 쓰고있던 림수봉은 피끗 머리를 들더니 무척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듯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인 표정이였다.

《드디여 나타났구만. 오늘 아침 동무의 친정집에 전화를 걸어보니 이미 동무가 떠났다질 않겠소.》

왜 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을가? 그사이 남편의 신상에 그 무슨 법적제재가 내려진것이 아닐가? 불길한 생각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그이가 어떻게 되였나요?》

재빨리 묻고는 림수봉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무엇하러 친정에 갔댔소?》

림수봉의 온화하던 눈빛이 갑자기 노기를 띠였다.

민옥은 시선을 떨구었다. 남편을 위해 아버지의 힘을 빌리러 갔댔다고 사실대로 말할수 없었다.

《친정에는 왜 갔댔소?》

림수봉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따지듯 다시 물었다.

《너무 속이 상해서…》

《하긴 동무야 속이 상할 때마다 친정에 찾아가군 했지.》

비난조로 말한 림수봉은 가슴속의 격정을 삭이며 한동안 말없이 창가를 바라보고있었다. 민옥은 한껏 가슴이 조여들었다. 앞뒤를 가려볼 경황이 없었다. 와락 달려가서 그의 팔굽을 덥석 잡고 애원조로 물었다.

《그이가 어떻게 되였나요? 어서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민옥을 돌아본 림수봉은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말보다 먼저 오른팔을 돌려서 자기의 왼쪽팔굽을 움켜쥐고있는 민옥의 손을 더듬어잡았다. 그리고는 가슴속의 흥분을 진정하려는듯 몇번이나 모두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어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우리 과학원에 나오셨댔소. 구체적인 사연은 남편한테서 들으시오. 어서 집에 가서 가족휴양을 떠날 준비를 하시오. 동무가 평양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승용차를 보낼 생각이였소.》

민옥은 꿈속에 잠긴듯 어리멍청한 얼굴이였다.

《모든것을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걸리오. 나는 이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지지도말씀을 관철하기 위한 과학원당위원회에 참가해야 하오. 석홍범동무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있소. 어서 집에 가보오.》

《그이가 지금 집에 있어요?》

《그렇소. 빨리 가보오.》

민옥은 잠시 부원장실 문밖에 서있었다. 종잡을수없이 뒤엉키는 의혹과 혼란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남편을 만나야만 모든 진실을 알수 있다는 판단이 뒤늦게 떠오르자 집을 향해 장달음을 놓았다. 주택건설장의 골목길을 빠져 집에 이르니 과연 부원장의 말대로 남편이 방안에 있었다. 마주선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듯 잠시 바라보기만 하였다.

《여보!》

민옥이가 먼저 외마디소리를 터치며 남편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친정에는 왜 갔댔소?》

부원장처럼 퉁명스레 울리는 남편의 첫 물음이였다.

《당신을 위해 도움 받으려고 아버지한테 갔댔어요.》

남편앞에서는 진실을 말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겠소?》

《정말 어리석었어요. 나는 이번에 친정에서 여러가지로 환멸을 느꼈어요.》

《우리의 운명을 지켜주시는분은 이 세상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한분뿐이요! 알겠소?》

머리우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격하게 울리였다. 마디마디가 무게를 가지고 심장에 마쳐오는 그 목소리에 놀라며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눈굽에 눈물이 어리였다. 민옥은 그 눈물에 자기가 확인하고싶은 모든 사연이 어려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이께서 어제 과학원에 오셨댔다지요?》

《당신도 들었소?》

《부원장선생을 만났댔어요. 그런데 구체적인것은 당신한테서 들으라고 하더군요. 자기는 바빠서…》

그들은 포옹했던 팔을 풀고 마주앉았다.

《안전부에서 나를 데려간 사실을 아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안전부장을 부르시였소. 안전부장이 돌아와서 전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순간의 감격이 되살아난 석홍범은 목이 메여 뒤말을 잇지 못했다. 치밀어오르는 뜨거운것을 꿀꺽 삼키고나서 서서히 머리를 돌리였다. 민옥은 그의 시선을 따랐다. 그들의 눈길이 닿는 벽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와 함께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초상화가 모셔져있었다. 한동안 초상화를 우러르던 남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이 메여서 자주 동강이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숨을 죽이고 듣고난 민옥은 걷잡을수없이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싸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초상화를 향해 마주섰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저는 가족휴양의 혜택까지 받을만 한 녀자가 못됩니다!》

한껏 격앙된 감정이 뼈아픈 자책으로 급격히 변하면서 그의 심장을 아프게 비틀었다. 눈물이 흐르는 얼굴은 지난날의 자신을 타매하며 용서를 비는 량심의 몸부림으로 이그러졌다.

《여보, 진정하고 휴양소로 떠날 준비를 갖추오. 오후에 안전부장동무가 우리를 금강산에 있는 가족휴양소까지 데려다주기로 예정되여있소.》

한동안 안해를 지켜보던 석홍범이 깨우치듯 말하였다.

민옥은 풀썩 주저앉더니 남편을 향해 결연히 부르짖었다.

《안돼요! 당신 혼자 떠나세요. 내가 무슨 낯으로 그런 영광을 받아안는단 말이예요!》

석홍범은 가슴을 움켜쥐고 몸을 뒤트는 안해를 침묵속에 지켜보았다.

오후에 안전부장과 림수봉이 그들부부를 데리러 왔다. 민옥은 그들앞에서도 자기는 가족휴양소로 떠날수 없다고 하였다.

림수봉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동무에게 한가지 진실을 말해야 하겠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석동무에게 가족휴양을 보내자고 하시였을 때 나는 그 동무의 안해는 그런 영광을 누릴만 한 녀자가 못된다고 말씀드리였소. 그러나 그이께서는 이러나저러나 충실하고 재능있는 과학자의 안해인것만큼 가족휴양을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소. 휴양을 가고 안 가고 하는것은 동무 개인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요. 우리 당이 과학자의 가족들에까지 어떤 배려를 돌려주고있는가를 보여주는것이요. 강민옥이라는 녀성이 아니라 과학자의 안해로서 가족휴양을 간단 말이요.》

부원장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있던 민옥은 그 뜻을 되새기듯 조용히 부르짖었다.

《과학자의 안해!》

혼자말로 외워보는 나직한 부르짖음이였으나 심장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그 목소리엔 이 세상 모든 안해들이 누리는 행복의 절정에서 자신을 의식한 녀인의 긍지가 울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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