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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약의 나래 제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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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91회 작성일 21-04-2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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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5

 

해볕이 내려쪼였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벌써 초가을의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드높이 개인 하늘은 티없이 맑고 푸르렀다. 청신한 대기속에는 한창 익어가는 곡식과 나무열매의 향기가 떠도는듯싶었다.

가을철에 접어들면서 양영복의 건강은 한결 좋아졌다. 인제는 숨결이 고르로와지고 걷기도 수월하였다. 그는 치료를 받으면서 하루도 쉼없이 연구사업을 계속하여왔다. 티탄합금의 초소성가공법을 완성하기 전에는 도저히 눈을 감을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가 항상 그의 심장을 사로잡았다. 초소성가공법은 과학자로서 한생을 살아온 자기 인생의 마지막과제였다.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않았다. 쓰러지면 최후의 순간까지 과학탐구에 전심을 하였다는 평판은 들을수 있어도 연구과제는 미해결로 남아있게 된다. 그는 자기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제발 연구과제를 완성할 때까지만 지탱했으면…)

점점 로쇠하여가는 자기의 몸을 두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남한테 짐이 되면서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마지막과제를 수행하고 눈을 감는다면 조금도 한이 없을것이다. 흔히 오래 산 학자들에게는 육체적생애와 과학자적생애가 일치하지 않았다. 학자적생애가 먼저 끝나는것이 상례였다. 여차했으면 나도 그 전례를 따를번 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접견을 받기 전까지만 하여도 학자로서 자신의 생애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이께서 안겨주신 소생의 활력속에 나의 학자적생애는 오늘에로 연장되고있다. 이제 나는 숨이 지면서 학자로서의 생애가 동시에 끝나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될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학자로서 가장 행복하고 뜻깊은 인생의 마무리일것이다. 양영복은 남은 생애를 두고 그렇게 생각했다. 진지한 탐구끝에 어제는 티탄합금의 초소성을 보장할수 있는 온도보장방법을 착상했다. 그것을 연구집단과 의논하고싶었다.

《오늘은 내 오래간만에 연구소엘 좀 나가봐야 하겠소.》

아침식사를 하고난 양영복은 떠날 차비를 서두르며 안해에게 말했다.

《아니, 소장선생이 이삼일내로 집으로 올텐데 왜 나가시려우?》

양영복이 출근을 하지 않는 때부터는 손관식이 한주일에 한번씩 집에 찾아와서 그동안의 연구정형을 알아보고 학술론담을 벌리군 하였다.

《인제는 몸도 어지간히 좋아지고 걸을수도 있는데 나가보겠소. 연구한걸 실험실에서 검토해보겠소.》

《정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갑시다.》

박씨는 따라일어서려고 했다.

《그만두오. 인제는 당신의 부축이 없이도 걸을수 있소. 산보길에 나선 우릴 보고도 남들이 웃어댄다는데 당신이 연구소에까지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소.》

박씨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기색이였으나 더는 우기지 못했다.

말대로 동부인을 하고 연구소에까지 나타나면 젊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수 있었다. 그는 말없이 가름옷을 입는 령감을 도와주었다.

양영복은 연한 회색양복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연구소까지는 거리가 퍼그나 멀었다. 승용차를 부를수도 있었으나 운동을 위해 걷는것이 필요했다. 오래간만에 연구소로 나가는 걸음이라 가슴이 설레였다. 마치도 떨어져 그립던 고향집으로 가는듯 한 심정이였다. 하지만 반나마 걸었을 때에는 아래다리가 후들거렸다. 역시 생각과는 달랐다. 연구소까지 어렵지 않게 가닿을수 있으리라고 믿었는데 정작 걸어보니 힘에 부치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단장을 짚고 오는것이였다. 연구소사람들에게 회복된 건강을 보여주고싶은 마음이 앞서서 손에 잡았던 단장을 놓고 떠났다. 잠시 선자리에서 다리쉼을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제련소정문앞을 지나 연구소쪽으로 뻗은 언덕길에 올랐을 때였다. 제련소구내에서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요란스레 울리였다. 머리를 돌려보니 그전날의 자재창고였던 건물두리에서 예술선동대원들이 경제선동을 벌리고있었다. 덩지가 굉장히 큰 설비를 실은 대형화물자동차가 창고쪽으로 달려온다. 이마전에 손을 얹고 눈여겨보니 진공가열로가 분명했다. 끝내 저런 일이 벌어졌구나! 그러나 손관식이 여적 아무런 말도 없었기에 속단하고싶지는 않았다. 곁을 지나는 젊은이한테 물었다.

《저기서 뭘 하오?》

《티탄합금가공설비를 설치합니다. 이제 그것만 완공되면 우리 제련소는 티탄합금을 꽝꽝 가공하게 되지요.》

젊은이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참으로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허위적인 성공에 현혹되여 무모한 공사를 벌리고있다면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양영복은 지친 다리를 가누며 황황히 연구소로 향했다.

《소장선생, 방금 오면서 보니 끝내 설비공사를 벌렸더군요!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인사도 나누기 전에 울분에 차서 손관식에게 물었다. 손관식은 난감한 기색으로 이마를 찌프리더니 달포전에 있은 최종합평회경위를 이야기했다. 양영복은 노기어린 눈길로 손관식을 쏘아보며 따지였다.

《그래, 림수봉부원장까지 참가한 장소에서야 왜 바른소리를 못했습니까?》

《황석태비서는 우리 연구소에 여러 세대의 살림집을 주었습니다. 선생도 그 점을 인정하겠지만 황석태비서처럼 우리 과학자들의 생활에 관심을 돌려주는 당일군은 드물것입니다. 그래서 최종합평회때 그의 뜻을 거역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당일군이기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주어야지요. 안그렇습니까? 과학연구에서는 완강한 반대자가 사실은 진정한 벗이였다는것을 증명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것을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습니까?》

손관식은 눈시울을 내려깔며 한숨을 쉬였다. 양영복을 볼 때마다 최종합평회에서 자기 주장을 세우지 못한것때문에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사실을 터놓기가 부끄럽고 거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때늦게 공연한 자극을 주어서 양영복을 흥분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식을 전했다면 양영복은 불편한 몸으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자기의 견해를 완강히 주장했을것이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일이였다. 뜻은 이루지 못하면서 본인은 건강을 해치고 자기는 남들의 비난만을 살수 있었다. 연구소소장이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다가 뒤에 돌아가서 비렬하게도 병약한 로인을 부추겼다고… 그것은 과학적량심을 굽힌것보다 몇곱절 더 부끄러운 일로 될것이다. 손관식은 그동안에 겪은 자기의 딱하고 복잡한 심정을 리해하여주기를 바라며 시선을 들었다.

《양선생,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일이 그렇게 된걸 어찌겠습니까. 앞으로 시간이 진실을 증명해줄것입니다.》

양영복은 퍼런 정맥이 얼기설기 두드러진 앙상한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시간은 박치영의 발기가 불가능하다는것을 증명할뿐아니라 소장선생이 과학적량심을 저버린 학자였다는것도 증명할것입니다! 나라의 경제사정이 점점 어려워지는 때에 많은 재산이 무모하게 탕진되는것을 어떻게 강건너 불보듯 한단 말입니까?》

손관식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찌프리며 침묵했다.

양영복은 훌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에 와서 손관식이나 추궁을 한다고 바로 잡힐 일이 아니였다. 참을수 없는 충동에 떠밀리우며 곧바로 공사장으로 향했다. 가까이에 이르러보니 먼 발치에서 볼 때보다 판이 더 크고 요란했다. 창고안에서는 벌써 가열로조립이 시작되였다.

《여러분!》

출입문을 막아선 양영복은 군중을 둘러보며 목이 터지도록 웨쳤다. 느닷없이 울리는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걸음과 일손을 멈추었다. 작업장에 어울리지 않게 넥타이를 단정히 맨 나들이옷차림으로 성성한 백발을 날리는 양영복의 모습은 청높은 웨침이 아니더라도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만 하였다. 그는 연신 팔을 들어 허공을 가르며 열렬히 부르짖었다.

《이건 무모한 일입니다. 나는 여러 기회에 그것을 학술적으로 론증하였기때문에 여기서 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실패가 명백한 여러분의 수고가 아쉽기때문에, 헛되이 바쳐지는 나라의 재부가 아깝기때문에 호소하는바입니다. 다시 학술적인 토론과 합의를 하고 결론을 얻을 때까지 당분간 중지하시오!》

그의 말을 듣고있던 사람들은 그만 아연했다. 앙양된 분위기에 감히 찬물을 끼얹는 저런 선동을 하다니, 저 령감이 도대체 제정신인가? 로망을 부려도 분수가 있지.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엄청난 일이였다. 처음의 놀라움은 곧 격분으로 변하였다. 여기저기서 양영복을 규탄하는 웨침소리들이 터져올랐다. 양영복은 한순간에 전신의 피가 얼굴로 몰려드는것을 느꼈다. 머리속에서 웅웅소리가 나고 아래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럴수록 비장한 감정이 솟구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대중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그는 재가 이는 입술을 혀끝으로 추기고 목청을 가다듬어 다시 웨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성난 얼굴들이 눈앞으로 다가오는통에 기가 질려 입을 열지 못했다. 눈앞에서 무수한 불꽃이 날리였다. 그들이 누구인지 가려볼수 없었다. 자기를 타매하며 부르짖는 소리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랬으나 두눈을 부릅뜨고 한 젊은이만은 가려보았다. 박치영을 알아보자 분별을 잃을만큼 안타까운 울분이 치밀었다.

《나는 동무에게 진심으로 여러번 충고를 했소. 과학자는 연구과정에 저도 모르게 허위적인 성공에 기만당할수 있소. 그러나 그것이 나라와 대중을 기만하는것으로 이어질 때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악으로 되오!》

《나는 선생님이 처음부터 왜 한사코 반대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는지 아십니까? 온당치 않은 마음이라고, 질투와 시기심으로 그런다고 말한단 말입니다.》

뭐 질투? 시기? 그래 내가 질투나 시기를 느낄 정도의 인격밖에 못 가진 사람이란 말인가? 그게 네 말이겠지?… 기가 막혀서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양영복은 경멸의 눈길로 박치영을 쏘아보며 안타까이 머리를 저었다.

박치영은 위협조로 말했다.

《어떤 결정으로 이 공사가 벌어지는지 선생님도 모르지 않을것입니다. 자꾸 그러시면 결코 무사할수 없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그러신다 해도 우리가 개발한 가공설비는 성과적으로 갖추어질것입니다!》

박치영을 뒤따라 다른 사람들의 성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올랐다. 과학적리치야 어찌되였든 양영복의 느닷없는 행동은 대중의 분격을 자아냈던것이다.

《조용들 하시오!》

류달리 큰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들을 눌러버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황석태가 곁에 서있었다. 이마에 땀발이 흥건한것으로 보아 어데선가 일을 하다가 달려온듯 하였다. 그는 두사람을 번갈아보고 숨을 몰아쉬더니 양영복에게 눈길을 멈추고 짧게 말했다.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시퍼렇게 노기가 번진 표정에 비해서는 어조가 높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거역할수 없는 위압감을 풍기였다. 다른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양영복을 주시했다. 하지만 양영복은 조금도 기가 눌리지 않았다. 마침 울분과 안타까움을 터칠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하는듯 더욱 흥분하여 부르짖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로력과 나라의 자재가 탕진되는것을 보고 조용히 돌아갈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당장 공사를 중지시키시오! 당비서동무에게도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것을 말했는데 왜 듣지 않습니까?》

양영복의 거침없는 행동에 사람들은 두번다시 놀랐다. 황석태도 두툼한 입귀를 푸들푸들 떨었다. 이런 일을 당해보기는 처음이였다. 황황히 불길이 이는 눈길로 상대를 쏘아보던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과학적담보를 인정하는데 왜 선생만이 반대합니까?》

흥분할대로 흥분한 양영복은 주위를 가림이 없이 내심을 그대로 터놓았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인정했다는 그 담보에는 당신의 직권이 작용했습니다. 당신은 편견을 가지고 과학기술문제에 개입해나섰습니다.》

《편견이라니? 내가 선생이 연구하는 초소성방법인가 한것을 적극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나는 과학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실정에서는 남이 이룩한 첨단기술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데 그보다 더 월등한것을 개발한다니 그것을 믿기는 어렵단 말입니다. 물론 월등한것을 개발하면 좋은 일일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래의 일일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티탄합금가공제품을 생산해야 합니다!》

《나의 연구사업의 성공여부는 자신도 담보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과학자의 존엄을 걸고 왜놈의것보다 월등한것을 개발하기 위해 마지막순간까지 노력할것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이 나의 연구사업을 적극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오. 박치영동무의 방법이 공업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기때문에 진심으로 권고하는것입니다! 당신은…》

《그만하시오! 대중이 다 좋다는데 왜 선생 혼자서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이럽니까!》

황석태의 목소리가 뢰성처럼 울리였다. 그냥 두면 양영복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여나올지 알수 없었다.

《대중이란 말로 날 위협하지 마시오. 나는 오직 과학적진리앞에서만 머리를 숙일줄 아는 사람이요!》

온넋을 다해 절규하는 양영복의 부르짖음은 비장하게 울리였다. 그런데 그 부르짖음끝에 갑자기 얼굴이 해쓱해지면서 주름진 얼굴에 땀발이 돋았다. 격렬한 흥분으로 로쇠한 심장이 경련을 일으켰던것이다. 그는 가슴을 부여안고 비틀거렸다.

당황한 황석태는 금시 쓰러지려는 그의 몸을 덥석 그러안았다.

《빨리 위생차를 부르시오!》

그는 번뜩이는 눈으로 모여선 사람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갑삭한 로인의 몸을 허궁 들어서 널직한 가슴에 부여안았다. 다른 사람들은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여서 아직 멍하니 그대로 서있었다. 방금전까지 그렇게도 강경하게 대결해오던 양영복을 다름아닌 황석태가 품에 안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놀라왔던것이다.

《뭘하고있소? 위생차를!》

황석태는 정신없이 로인을 안은채 달리기 시작했다. 위생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수 없었다. 순간을 놓치면 양영복의 생명을 잃을것만 같은 초조감에 휩싸였다. 잠시후 양영복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는 흐릿해진 의식속에 당비서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막혔던 날숨을 깊이 내불며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간 안정이 되는듯 해쓱하던 얼굴에 피기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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