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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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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928회 작성일 21-06-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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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의 행사들은 일정표대로 어김없이, 화목하고 따뜻한 우정의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학술연구성과발표모임, 과학기술발전경험교환모임, 새 기술 통보모임, 전련맹인민경제발전전람관을 비롯한 몇 대상들에 대한 참관, 인민배우 마까로바가 출연하는 발레뜨무용소품공연관람 등… 준비위원회는 이러한 일정들을 서둘러 넘기고는 호텔의 면담실과 소회의실로 모임장소를 옮겨가며 《<개편>과 인테리의 역할에 관한 토론의 밤》을 열었다. 토론의 밤이라고 하지만 오후 4시경부터 모임을 시작하였다. 첫날에는 《개편》의 필요성과 그 정당성을 론증하는 열변들이 계속되였으나 이튿날부터는… 밤이라는 서정적인 표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 생겼다. 서로 말을 가로채며 반박하고 주장하는 날카로운 론전이 벌어졌던것이다. 《개편》의 내용들에 대한 리해와 평가에서 의견이 저마끔이였다. 다원주의, 사상의 일원화와 다원화, 다당제, 당내분파의 허용, 야당의 존재가치, 공개성과 당, 국가의 위신문제, 선거에서 단일립후보와 복수립후보, 군대와 사법기관의 중립화, 법치주의, 시장경제, 소유형태의 다양화, 경제에 대한 《충격료법》으로서의 가격의 자유화와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화… 개편의 모든 문제점들에서 상반되는 평가가 날카롭게 대치되였다. 사람들은 그 모든 문제들에 사활적인 리해관계, 다시말하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운명이 달려있는듯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열을 내여 자기 주장들을 토설하였다. 40년전에 책상들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고 사이좋게 지내였으며 어제만 하여도 서로 그러안고 눈물이 그렁해져 우정과 회포를 나누던 그들이였건만 반대의견을 주장하는 상대를 철천지 원쑤대하듯 불이 이는 눈으로 쏘아보며 극단적인 표현을 마구 섞어가면서 비판하고 폭로하고 규탄하였다.

그런 열광속에서 동창생들은 어느덧 두 진영으로 갈라졌는데 눈어림으로 보아도 《개편》지지세력이 수적으로 좀더 많은것 같았다.

수진은 말없이 듣기만 하였다. 로씨야인동창생들속에서 라옙쓰끼만은 내내 침묵을 지키였다. 그의 해쓱해진 얼굴빛은 지지인지 반대인지 그 어느것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밤, 사회자의 좌석에 앉은 포멘꼬는 광적인 지지자였다. 그는 팔을 내흔들며 열변을 터뜨리다가 커피잔까지 엎질러놓았다. 그의 곁에 앉은 우와로브는 끓어번지는 론전을 눅잦히려고 커다란 손을 쳐들어 허공을 누르며 조용하라, 조용하라고 소리쳤다. 그때마다 론전이 가라앉는듯 하다가도 다시 끓어번지며 《개편》지지자들은 반대자들을 《보수파》로 몰아대고 《개편》반대자들은 지지자들을 《사상적타락분자》, 《변절자》로 규탄하였다. 이런 백열전속에서 준비위원회가 쁘로꼬피예브의 명상적인 음악감상을 조직한것은 의도적인것인듯 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감성에 작용하는 음악의 서정적힘으로는 리성의 심오한 반발을 도무지 달래여놓을수 없어 다음날에는 더 격렬한 론전이 터져올랐다. 사유화문제를 둘러싸고 《칼부림》이 벌어졌던것이다.

《개편》반대자들은 사유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는 자본주의경제제도의 첫째가는 징표이다. 사유화, 이것은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하고 자본주의제도를 복귀시키려는 시도라고 하며 《개편》지지자들에게 비난과 규탄의 포화를 들씌웠다. 이에 대하여 포멘꼬는 사태를 외곡하고 과장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개편》은 소유형태의 다양화를 실현하자고 할뿐이지 모든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를 실현하여 개인소유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경제제도를 만들자는것이 아니라고, 사유화는 편의봉사부문이나 중소기업에 한한것이고 흑색야금공업을 비롯한 대기업과 철도운수, 체신 등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변명조로 말하였다. 그의 발언은 무서운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서너명의 《개편》반대자들이 분격을 못이겨 자리에서 뛰여일어났다.

그들은 포멘꼬를 향하여 누가 사태를 외곡하는가? 국회에서 대기업의 사유화가 론의되고있다, 정치가들과 경제실무가들은 기자회견들에서 대기업소를 개인에게 매매하여 기업운영을 사영화해야 한다, 그러자면 새로 등장한 기업가들에게 은행대부를 해야 한다고 떠들어대고있다, 이래도 자본주의복귀가 아니란 말인가? 하고 들이대였다.

그때였다. 내내 론쟁을 완화시키려고 조절자의 역할만 하던 우와로브가 론전의 일선에 나섰다. 그는 위혁적인 시선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무게있게 입을 열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주의… 주의… 주의가 운명적인 문제인가? 각자의 가치관에 달려있겠지만… 21세기를 눈앞에 내다보는 현시대 쏘련사람들은 허황한 공리공담으로 엮어진 그 무슨 주의의 현란한 허울보다 실질적인 물질적복리를 요구합니다. 허위적인 주의여, 갈데로 가라. 우리는 우선 잘 살아야 하겠다! 2억의 심장들은 이렇게 웨칩니다. 사람들한테 가난과 온갖 구속과 불행만 들씌우는 주의가 도대체 누구한테 필요한가?》

장내가 술렁거렸다.

류수진은 가슴이 떨렸다.

(이건 사회주의리념에 대한 중상이다. 독설이다! 바로 이것이 저자의 본색이 아닌가!)

수진이 분격을 참을수 없어 저도 모르게 뛰여일어났는데 곁에서 누구인가 팔을 밑으로 잡아끌었다. 라옙쓰끼였다. 더 들어보자는것이였다.

우와로브는 계속했다.

《우리는 70년동안 사회주의경제를 건설해봤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쏘련경제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제보다 뒤떨어졌습니다. 거대한 쏘련경제가 침체된 근원적인 요인은 경제의 기초인 소유형태,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사회주의경제체제… 집단적소유형태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것입니다. 더 나가서 그런 경제토대우에 세워진 쏘련사회도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것입니다.

친근한 벗들, 내가 너무나도 응당하고 새삼스러운 철학상식을 말하는데 대하여 용서하여주기 바랍니다. 인간은 범인간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개성을 가진 개인적단위로 존재합니다. 구체적인 개성… 구체적인 취미와 기호, 구체적인 정신육체적능력, 구체적인 욕망을 가진 개인으로… 그런 개성을 가진 개인은 비반복적입니다. 동시에 강력한 자기보존의 본능에 의하여 비타협적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런 철리를 무시하고 지난날 쏘련의 강권정치는 집단에 개인을 용해시키려고 했으며 모든 개성적인 요소들을 무시하고 말살하며 개인들을 집단이라는 고체의 획일적인 립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사회는 경직되였으며 경제는 침체일로를 걷게 되였습니다. 집단주의사회인 쏘련의 경제침체와 개인주의사회인 미국이나 일본의 경제부흥을 비교해보면 모든것이 명백해질것입니다.》

조명등이 눈부시게 켜지고 텔레비죤촬영가가 우와로브에게 렌즈를 돌려대고 움직일줄 몰랐다. 우와로브는 조명등의 빛발이 싫은듯 미간을 찌프리다가 손을 높이 쳐들어 웅변가의 자세를 취하며 웨쳐댔다.

《집단주의는 물러가라! 나는 이렇게 웨칩니다. 철학적으로 보아도 개인적인 모든것을 무시하고 말살하는것은 심각한 과오이며 비인도적죄악입니다. 모든것… 모든것이… 사회정치제도, 경제제도도 개인적단위우에 세워져야 합니다. 모든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모든 기업의 사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맞는 필연적이며 합법칙적이며 가장 능률적인 소유형태이고 운영형태이고 번영의…》

참고참아오다가 터지고만 함성에 그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고말았다.

사람들은 주먹을 흔들며 발을 구르며 정신없이 소리쳤다.

《아니다-》

《궤변이다-》

《거짓이다-》

《그만두라-》

지지자들의 열광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옳다-》

《진실을 말했다-》

《우와로브, 계속하시오-》

장내가 떠나가는듯 한 엇갈린 웨침속에서 누구인가 우와로브앞으로 걸어나갔다. 키가 훤칠하고 은발이 빛나는 그 사람은 상반신을 앞으로 숙일사하고 상대를 요정낼듯 한 기세로 우들우들 떨며 한걸음 또 한걸음 부학장앞으로 다가섰다. 그 험악한 기상에 기가 질린듯 우와로브는 쏘파에 털썩 주저앉아 크게 뜬 눈으로 그 사람을 지켜보았고 장내는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수진이도 숨을 죽이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 사람은 칼 웨베르였다. 조용하면서도 휘파람같이 날카로운데가 있는 말소리가 확연히 들려왔다.

《우와로브동지… 아니… 우와로브씨… 당신의 연설을 들으니 학창시절에 있은 일들이 생각납니다. 우리 대학 축구주장이고 뒤골목대장에 완력가인 당신은 늘 공부를 착실히 하지 않았지요. 학습장은 어느 졸도한테 필기시키고… 그러니 사회와 사물현상의 가장 보편적인 진리를 깨우치는 어렵고 심오한 학문인 철학이야 제대로 공부했겠습니까. 당신의 발언들에는 무지와 지식의 빈곤에 의한 억지론리만 느껴지고 새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오늘 서부도이췰란드 본에 있는 자유유럽방송이 매일 불어대는 소리와 꼭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한배속에서 나온 쌍둥이처럼 꼭같은…》

《이건 인신공격이요!》 하고 포멘꼬가 소리치고 여러 목소리들이 비렬한 인신공격을 중지하라고 웨쳐댔다.

칼 웨베르는 은발을 날리며 홱 돌아섰다. 그는 불꽃튀는듯 한 파란 눈으로 웨쳐대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비양조의 미소를 머금었다.

《친구들, 용서하시오. 인격모욕이라면… 그럼 점잖게 말해봅시다. 우와로브씨는 분명히 인간에 대한 리해에서 혼란이 생긴것 같습니다. 인간은 개인적단위로만 존재한다는 이 경악할만 한 명제에 대하여 무슨 말로 항의했으면 좋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아연해서… 우리는 1학년때 벌써 바로 이 강의실에서 필로쏘브교수한테서 인간은 사회적존재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의식성을 가진 문명한 사회적존재로 될수 있는것은 집단로동, 서로 힘을 합치고 지혜를 합치는 창조적인 집단로동의 결과라는데 대하여 귀에 못이 배기도록 들었습니다. 인간이 개개로 고립된 존재였다면 오늘의 문명세계도 창조될수 없었을것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존재이며 서로서로가 생산적인, 계급적인, 사상적인 그리고 종교와 신앙, 륜리적인 뉴대로 이어진 집단속의 성원입니다. 벗들, 너무나도 자명한 문제를 력설하여 미안합니다.…》

여기저기에서 박수소리가 났다.

칼 웨베르는 계속하였다.

《만약 사회와 집단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여 고립되여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벌써 엄밀한 의미에서의 인간이 아닙니다. 동물에 가까운 존재일것입니다. 서구자본주의의 일시적경제부흥에 현혹되여 미국식개인주의를 숭상하면서 모든 생산수단들을 사유화하자는것은 사회주의경제토대를 밑뿌리로부터 해체하며 개인적단위로 분해하여 사회주의제도가 스스로 허물어지게 하자는 위험한 시도입니다. 이것은 사회발전, 력사발전에 역행하는 사조의 흐름입니다. 흐름이 아닌가?… 흐름입니다! 처음에는 소유형태의 다양화, 다음에는 전면적인 사유화… 이 반동사조의 흐름은 일부 자본주의대국들의 경제부흥, 반면에 사회주의대국들의 경제가 슬프게도 침체의 진통을 겪는 대조적인 국면에서 시작된것입니다. 이 분통한 침체의 원인이, 근본원인이 소유형태에 있는가? 사회주의적소유형태가 인간의 창발성을 구속하고 억제한단 말인가? 아닙니다. 나는 한 국가의 경제관리를 지도해본 사람으로서 자신의 체험에 의하여 아니라고 웨칩니다. 사회주의적소유형태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맞으며 인간의 창발성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추동하고 고무하는 근본요인입니다. 사회주의적소유형태, 사회주의경제제도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것, 이것은 거짓입니다. 희세의… 희세의 허위선동입니다!》

《칼 웨베르선생, 그럼 침체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우와로브는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웨베르는 그를 흘깃 돌아보는 일도 없이 자기 말을 계속하였다.

《… 사적소유, 거의 모든 생산수단들에 대한 백만장자들의 독점적소유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며 사회적불평등의 근본요인이며 모든 사회악의 화근입니다. 우와로브씨가 찬미하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부흥을 두고 말한다면… 상품생산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사악해져 범죄건수도 증대되는 경향을 나타내고있습니다. 겉으로는 생산의 증대, 안으로는 인간정신의 사막화, 기형화… 우와로브씨는 주의고 리념이고 갈데로 가라, 우선 잘 살아야겠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포식에서 만족을 느끼는 돼지처럼 되라는것입니까. 돼지처럼… 돼지로?》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우와로브도 주눅이 좋게 벙글거렸다.

《칼 웨베르선생, 비유가 비슷합니다. 당신의 말대로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어째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회피하오?》

웨베르는 차거운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솔직히 말해도 일없겠습니까?》

《어서…》

《당신의 질문은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개편>이 시작되자 이 나라 대중보도수단들은 침체의 원인이 운영에 있다고 분석하며 운영방식을 개혁해야 한다고 매일과 같이 떠들었습니다. 이건 쏘련사회가 공인하는 상식으로 된 문제입니다.》

그리고는 번뇌의 그늘이 비낀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벗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경제제도, 사회주의적소유형태에 합당한 경제운영방식을 창조하지 못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생산수단에 대한 전인민적소유야말로 인민들의 생산의욕과 창발성을 무궁무진하게 불러일으킬수 있는 제도적인 원칙입니다. 이 경제는 가장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운영해야 위력을 낼수 있는 체질입니다. 그러나 교조… 관료주의… 내용과 형식의 심각한 모순이 경제를 질식시켜 침체에 빠뜨렸습니다.

때문에 <개편>이전부터 운영문제가 론의되였습니다. <개편>이 되자 운영방식을 개혁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바로 이때 사회주의의 적들은 공개성의 공간을 리용하여 운영에만 문제가 있지 않다, 소유형태도 뜯어고쳐야 한다고 온갖 궤변으로 공격의 예봉을 운영방식에서 소유형태에로 돌려놓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회주의경제제도를 밑뿌리로부터 뒤집어엎자는 시도입니다. 그들의 궤변에 절대 속지 말아야 합니다!…》

장내의 여기저기에서 박수소리가 울리고 함성이 터져올랐다.

《칼- 옳소-》

《바로- 그것이다-》

우와로브는 눈에 적의가 번뜩이였으나 더 호방해진듯 껄껄 웃었다.

《궤변… 궤변이라… 누가 누구를 보고 궤변이라고 하는가? 목재를 팔아먹고 살던 핀란드보다도 못사는것이 현실인데 궤변이라구? 여보시오, 공산주의자들은 반성을 해야 하오. 당신들의 주의, 당신들의 설교에 속아 이 알량한 제도를 지키느라고 2천만이나 목숨을 바쳤소. 2차세계대전에서만도… 볼가에서 엘바까지… 행성의 서반구에 쏘련청년들의 유골이 널려져 오늘은 현지주민들의 조소와 저주를 받고있소. 인도주의적견지에서도 반성을 해야 되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를 차고 뛰여일어나 주먹을 흔들고 혹은 네댓걸음씩 밀려나오며 쏘베트병사들의 성스러운 죽음을 모독하지 말라고 분격을 터뜨리는 바람에 장내가 수라장이 되였다.

그 혼잡속에서 칼 웨베르는 뒤짐을 지고 주단우로 왔다갔다 거닐다가 팔을 총창처럼 가로 뻗쳐 우와로브를 가리켰다.

《우와로브씨, 당신한테는 사회주의위업을 위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이 지구상의 모든 공산주의자들도 다 누구한테 속았다고 생각되오? 우리 도이췰란드의 위대한 아들 리프크네히트도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아름답고 고상한 로자 룩셈부르그… 부켄 부르그수용소에서 학살된 텔만도…》

박수, 함성… 상혈되여 얼굴이 시뻘개진 포멘꼬는 황급히 손을 내흔들며 공산주의망령들을 불러들이지 말라고 미친듯이 소리치고 우와로브는 푸르딩딩해서 웨베르를 노려보았다.

그때 총탄의 비행음같은 날카로운 규성이 장내에 메아리쳤다.

《조용하-시-오-》

라옙쓰끼였다. 내내 말이 없던 라옙쓰끼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여 자리에 앉은채로 저력이 풍기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존경하는 우와로브동지, 당신의 훌륭한 연설을 들으며 나한테는 문득 한가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무슨 술수를 써서 사회주의로씨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부학장의 관직에 오르지 않았는가 하는…》

우와로브는 주먹으로 앞탁을 탕 내리치고 일어나서 출입문쪽으로 걸어나갔다.

모스크바의 밤은 평온을 잃고 온갖 론쟁의 광기에 몸부림치는듯 하였다.

류수진은 《토론의 밤》이 깨여져 일찌기 호텔로 돌아올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고 밤거리를 거닐었다. 그는 대도시의 불빛바다속을 누비며 발길이 닿는대로 스적스적 걸음을 옮겨갔다. 랭기를 풍기는 가을바람이 을씨년스러워 두손을 코트주머니에 찌르고… 차거운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문들마다에서 열에 뜬 론쟁소리들이 귀아프게 울려오는듯 하고 상점가의 진렬장앞에 몰켜서서 웅성거리는 사람들도, 전차정류소에 서있는 사람들도, 인도로 걸어가며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모두 《개편》, 사유화, 다당제에 대하여 끝없이 론의하며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쾌재를 부르기도 하는듯싶었다. 건물모퉁이에 마주서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말다툼질을 하는 청년들도 무심히 보이지 않았다.

차도로 오가며 무시로 껌뻑거리는 승용차들의 전조등불빛도 살기를 내뿜는 맹수의 눈빛처럼 문득 느껴지군 하였다. 워롭쓰끼거리의 어슴푸레한 구석쪽에 여러사람들이 둘러서서 떠들어대고있어 무심결에 발길이 그리로 갔다.

허리가 구부정한 늙은 녀석이 날이 시퍼런 군도를 두손에 받들어쥐고 돌아치며 재담을 엮어내리고있었다.

《자- 스뗏쎌장군의 의식용군도요.-아닌가 옳은가 만져보시오- 이 검에는 로씨야의 구슬픈 력사, 비극이 스며있습니다. 저 아득한 만저우대륙… 려순해전에서 로씨야군이 일본군에 참패하여 투항할 때 스뗏쎌장군이 이 검을 일본군 노기대장한테 바치며 눈물을 흘렸는데 승리자 노기는 관용을 베풀어 이 검, 바로 이 검을 돌려주며 어제날의 적은 오늘의 벗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명언이 노래로 되여 온 일본이 불렀지요. 자- 보시오. 로씨야의 구슬픈 력사를… 안사도 좋으니 만져보시오… 3천루불을 2천루불로 내릴수도 있습네다-》

한 로인이 발을 구르며 버럭 소리질렀다.

《엑키 협잡군아, 그건 기병도야 퉤!》

류수진은 아픈 마음으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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