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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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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65회 작성일 21-06-2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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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손잡이가 서서히 돌아갔다. 벽시계의 초침처럼…

(아-)

그는 문쪽으로 몸을 날렸다. 안으로 자물쇠를 채우는걸 그만 잊고있었다는 생각이 머리에 번개쳤던것이다. 당황한 그가 어쩌기도전에 벌써 문이 반쯤 열리며 그 틈으로 눈부신 육체가 미풍처럼 소리없이 새여들었다.

류수진박사는 너무 뜻밖이고 아연하여 우두커니 서버렸다.

어깨며 잔등에 흘러내려 흩어진 윤나는 금발, 도발적으로 두드러진 젖가슴, 상체를 감싼 노란 세타며 하체에 휘감긴 살색치마허리가 터질듯이 몸에 충만된 열정과 건강미… 복도에서 어기였던 그 처녀란것을 간신히 알아보았다.

녀자는 매섭게 노려보는듯 하면서도 새파란 불꽃과 같은 매혹적인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겁내지 말아요.… 선생님한테 상론할 일이 있어 잠간 들렸어요. 인차 나가겠어요.》

그리고는 향긋한 체취를 풍기며 방주인을 스쳐지나 안으로 들어가더니 스스럼없이 쏘파에 앉았다.

그는 따라들어가 녀자앞에 버티고섰다.

《용건을 말하오. 의논할 문제란 뭔데…》

녀자는 실무적인 표정으로 흘깃 쳐다보고는 쏘파의 자기옆자리를 다독이며 앉으라고,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하는수없이 앉았다.

《선생님은 도꾜에서 왔지요? 리쯔메이깡대학 교수 도스또예브쓰끼전문가… 그렇지요?》

수진이는 어처구니가 없어 녀자의 얼굴을 빤히 지켜보았다.

《더 말하라요? 어머니는 망명백계로씨야인 2세이고 또 더 말하라요?》

무엇인가 혼란이 생긴것이 틀림없었다. 어제까지 이 방에 그런 인물이 들어있은게 아닌가?

《나는 평양에서 왔소.》

녀자는 곧장 도꾜에서 왔다고 우기면서 리지적인 차거운 눈매로 그를 흘겨보았다.

《그러지 말아요. 믿어요. 우리는… 우리 츄립협회도 신용거래를 신조로 삼아요. 거기 명예는 담보되여요. 하루밤 봉사료는 호의에 맡겨요. 어떤 손님들은 150딸라까지 내지만… 우린 이런 일에서도 어쨌든 사회주의적이니깐요….》

그는 화냥년이라는 소리가 터져올랐지만 내뿜게 되지 않았다. 혐오감도 끓어번졌지만 난생 처음 만나보는 밤녀자의 세계에 대한 얄궂은 호기심도 없지 않았고 그리고 더우기는 어디서인가 꼭 만나본듯 한 얼굴이고 자기 한생에 지울수 없는 아름답고 순결한 추억을 남긴 그 어떤 미지의 존재를 련상시키는것 같아서였다.

쏘파등받이에 기대여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저 이마… 눈매… 저 코날… 입술의 우아한 조화, 어느 외국영화의 배우와 모색이 비슷한게 아닌가. 안셀리카? 아니… 까쮸샤, 마슬로바? 아니… 오하라 스칼레트? 아니… 윈에 갔을 때… 호텔식당의 인상적인 접대양이 아닌가?…)

수진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녀자를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그런 눈길을 흔연하게 받는것으로 보아 모든것을 초탈한 창녀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 녀자는 갑자기 방안에서 랭기를 느끼게 되는지 손에 들고 들어왔던 검은색 쟈케트를 어깨에 걸치며 따뜻한 구석에 뛰여들려는 고양이처럼 몸을 옹송그리였다.

《어째 아무 말도 안해요?》

《다 듣고있어…》

《선생님한테 동료가 있으면 같이 봉사해드리겠어요. 일본사람들은 이런 일에도 너무 성급한데 우리 로씨야처녀들은 그렇지 않아요. 저 교외 아르한겔쓰끄촌같은데서 별장을 세내면 가을해빛, 단풍, 버섯, 생선국… 며칠을 즐겁게 지낼수 있지 않아요. 우리 애들은 다 대학생들이고 교양이 있고 똑똑하고 유모어도 있어 이야기상대로도 충분해요. 의사의 건강진단서는 물론 다 지참하고있어요. 생각해보고 2∼3일안에 전화하세요.》

녀자는 쟈케트주머니에서 꼬마성냥갑을 꺼내 앞탁에 놓았다.

《이안에 전화번호가 있어요. 전화하면 제가 받던지 누가 받던지 인차 오겠어요. 그때 마음에 드는 애를 선택하세요. 선택권은 선생님한테 있어요. 다 나같아요. 전 이름이 쓰웨따, 쓰웨따… 오늘은 말하자면 견본품이랄가… 상품도 사기전에 만져보지요. 만져보라요… 유방띠가 없어요…》

그리고는 남자의 손을 잡아 자기 젖가슴으로 끌며 요절이라도 하는듯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흑 느끼였다.

수진은 그 손을 홱 뿌리치고 주먹으로 무릎을 내리쳤다.

《수치스럽지 않소? 공청원이겠지? 첫 사회주의나라 처녀가, 엉? 이것아, 수치스럽지 않는가 말이야?!》

쓰웨따는 아무 소리도 못들은듯 흔연한 얼굴로 일어나더니 새파란 불꽃같이 타는 눈으로 분격에 우들우들 떨며 일어서는 《보수파》외국인을 쏘아보았다.

《수치라구요? 수치심이란 관념… 관념세계야요. 우린 물질에 궁해 관념을 돌볼 겨를이 없지요!》

그는 년의 팔목을 와락 거머쥐고 무작정 끌고나가 복도로 떠밀어내고는 문을 쾅 닫고 자물쇠를 절컥 채웠다. 토하고싶었다.

쏘파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단숨을 몰아쉬는데 매춘계약의 더러운 흔적이 눈에 비쳐들었다. 성냥갑을 열어보니 안에 성냥가치는 없고 묘혈처럼 느껴지는 그 밑창에 전화번호 두개가 적혀있었다. 수진은 그것을 와락와락 구겨서 재털이안에 내동댕이쳤다가 다시 꺼내 갈기갈기 찢어서 재털이에 놓고 불을 달아 재로 날려보냈다.

그렇게 하고도 의분이 묵새겨지지 않고 오물이라도 넘긴듯 한 께름직한 불쾌감에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나 방안에서 서성거렸다. 50년대말에 있은 일이 생각났다. 크리샨 챤다르인가 하는 인디아의 재능있는 작가가 쏘련을 방문하고 쓴 기행문속의 《모스크바의 매춘부》라는 한 단편이 어느 출판물에 소개되였었다. 내용인즉 그가 모스크바의 밤거리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데 선녀같이 아름다운 처녀가 다가와 사연을 묻더니 팔을 끼고 어디로인가 끌고갔다. 그는 자본주의사회의 밤거리에서 흔히 보게 되는 《거리의 요녀》인줄로 알고 수작을 걸어보고싶은 충동까지 느꼈는데 처녀는 목적지까지 안내해주고 례절바르게 인사하고는 어디로인가 사라져버려 크게 가책을 느꼈으며 사회주의사회가 청년들의 품성을 어떻게 키우는가를 새롭게 느꼈다는것이다.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나 로씨야의 한 작가가 이전 쏘련의 매음계를 적라라하게 폭로한 《국제처녀》라는 소설을 써내여 비난과 찬사의 홍수에 빠졌다. 이 두 사실의 대조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지난 30년에 대하여… 수진이 이러한 끝없는 생각으로 가슴을 끓이며 서성거리다가 쏘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떠밀어서 복도로 내쫓은 미모의 창녀 쓰웨따의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리고 그 어떤 마술적인 조화인지 잊지 못할 동창생 리지야 꾸즈네쪼바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에 실안개처럼 피여올랐다.

그는 담배불을 비벼끄고 꼿꼿이 앉아 그윽한 눈빛으로 허공의 한점을 지켜보았다.

(내가 여기 와있다는걸 알면 밤중에라도 달려올것이다. 래일… 늦어도 모레는 만날수 있겠지…)

그날밤 류수진박사는 늦게야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으나 잠들지 못하였다.

리지야 꾸즈네쪼바… 리자는 그때 17살이였지. 리자는 그때 문양도 별로 없는 수수한 천으로 세련되게 옷을 해입고 금발머리태에는 백합꽃같은 리봉을 달고 눈을 늘 내리뜨고 다니는 아련하고 조용한 녀대학생이였다.

리자는 그때 호방하고 쾌활한 로씨야 총각들과 처녀들이 많아 언제나 떠들썩한 학급에서 그림자처럼 말없이 지내여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수 없는 때가 종종 있는 처녀, 자기한테만 있는 소중한 그 무엇을 감추며 사는듯 한 인상적인 존재였다.

리자는 그때… 1학년 그 시절… 여느 총각처녀들처럼 누구와 짝패가 되려고 하지 않았으며 계단식강의실에 들어가서는 짝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앉지 않고 언제나 제일 뒤줄 정해놓은 한 자리에 앉군 하였다. 그때 리자는 소란한 환락보다도 조용한 고독을 즐기며 향유할줄 아는 명상적인 처녀로 보았다. 그래서 동급생들속에 그를 배척하거나 돋보는 친구들이 생기고 이런저런 뒤소리도 있었다. 어느날 라옙쓰끼는 대학앞마당 나무그늘밑에서 교문으로 나가는 리자를 바라보다가 철학가연한 표정을 짓고 곁에 있는 수진에게 이런 소리를 하였다. 저 리자를 보라구, 어떤 친구들은 자기네한테 섭쓸리지 않는다고 고립주의자요 수도원의 수녀요 청교도요 하고 비난하지만 나는 반대네, 지금 막 피여나는 미모와 청춘을 침해당하지 않고 랑비하지 말고 고스란히 보존하려고 그러는거야, 참된 녀성일세, 처녀시절이란 모성으로 준비되는 시기인데 모성은 자기보존의 본능이 강하네, 조물주가 준 본능에 따라 후대까지 지키고 키워야 하니까… 익살군 포멘꼬는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빈정대는 소리를 하며 키득거렸다. 저런 새침데기가 바람이 들면 무섭네, 이제 보라구, 3학년이 되기전에 임신을 해서 산전휴가를 받지 않는가…

수진은 그런 소리를 들어도 그저 들을 때뿐이고 리자뿐아니라 어느 누구의 개성이며 성품이며 미모 같은데 관심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의 몸은 평화로운 대국의 수도에 와있었지만 마음은 전쟁의 불바다속에 남아있었다. 대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는 눈을 감으면 조국땅의 페허들, 재더미… 압록강다리를 건느며 바라본 신의주상공에 쏟아지는 불소나기, 온몸이 붕대에 칭칭 감겨 쑈크실에 누워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꿈에 희생된 소대장과 공급소대에서 고등어를 보내왔다고 기뻐하는 특무장을 만난 일도 있었다. 교문만 나서면 번창한 대도시의 이국정서와 풍요한 생활속에서 19살의 풋내기를 유혹하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순간의 안일이나 해이도 죄악으로 느껴져 휴일이 아닌 날에나 휴일에나 공부에만 파묻혔다.

그를 더욱 각성시킨것은 동급생들의 성원이였다. 로씨야청년들은 자기네들끼리는 사소한 감정마찰이나 반목질시와 같은 아름답지 못한 일이 간혹 있는것 같았으나 그때만 하여도 국제주의교양이 얼마나 잘되였던지 수진에 대한 동정과 방조, 성원에서는 감정과 열의가 한결같았다.

그들은 수진을 영웅조선이 파견한 류학생, 미제침략자들과 싸운 전투영웅으로 생각하고 말도 그렇게 하며 학급의 자랑으로 여겼다. 5. 1절시위때면 전사영예훈장과 군공메달 2개를 억지로 가슴에 달게 하고 학급대렬의 앞장에 세우고 떠들썩하게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활보하였다.

하늘을 향해 서있던 모든것이 불타고 꺾이고 허물어지고 쓰러지고 박산이 되여 바람에 재가루만 흩날리는 땅에서 온 가무잡잡한 청년에게는 그 시절 쏘련에 있는 모든것, 창공을 떠받들고 아스라하게 솟은 고층건물이며 방송탑, 금빛찬란한 사원지붕들의 첨탑들, 명인들의 동상들, 력사의 무게로 위압되는듯 한 크레믈리성벽과 력사유물들, 대극장, 화려한 상점가… 솟아있는 모든것이 부러웠으며 지어는 푸르싱싱한 가로수들이며 도로에 물을 뿌리는 살수차까지 희한하여 선망의 눈길로 여겨보게 되였다. 페허로 된 우리 나라는 언제면 이렇게 일어설수 있을가. 포탄구뎅이들을 다 메꾸고 언제면 우리 도시에도 이런 대통로가 뻗고 저런 살수차가 물을 뿌리며 다닐수 있을가… 이런 생각끝에 위축이 되는 때도 종종 있었지만 다시 강심을 먹으며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게 되였다. 그 시절 공부는 어찌하여 그토록 힘들던지… 학과목들의 내용이 어려웠을뿐아니라 로씨야말을 듣는데 익숙되지 않아 교수들의 강의를 절반이상 알아듣지 못했으며 필기도 못하여 하학후 남의 노트를 빌려 빠진데를 보충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학급공청조직은 이 문제를 론의하고 붙임성이 좋은 포멘꼬에게 도와주도록 위임하였다. 포멘꼬는 로씨야동무들과의 관계에서는 린색하다느니 성실성이 없다느니 하는 비난을 받고있었지만 영웅조선의 류학생은 열성껏 도왔다.

그는 축구선수였다. 상급학년의 축구주장이 학습방조때문에 축구훈련에 지장을 받는다고 시비를 걸어 포멘꼬는 물론 공청조직과도 충돌이 생겼다. 포멘꼬는 주장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고 계속 기숙사를 찾아왔는데 하루는 다른 누군가의 노트를 정리해주고있었다. 물어보니 주장의것이라고 하며 《축구훈련에 지장을 받는다고 시비를 건게 아니네. 이런짓을 시키지 못하게 되여 분통이 터진거야. 주장은 뽈차기로 대학의 영예를 높여 학장과 교수들의 총애를 받고있네. 별수 없어. 그렇지 않으면 축구단에서 제명될수 있거든. 그는 야심가고 베니스상인처럼 복수심이 강하네. 무서운 인간이야.》 하고 말했다…

수진은 머리에 번개치는것이 있어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축구주장… 이름이 우와로브라고 했지. 우와로브, 우와로브동지, 그가 어떻게 부학장에 무슨 위원까지… 흘러간 30년이란 어떤 세월인가… 회억의 물결은 계속 밀려들었다.

수진은 잠을 청하려고 자리에 누워 불을 끄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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