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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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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80회 작성일 21-06-28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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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1

언제나처럼 승용차는 해묵은 느티나무가 서있는 언덕받이밑에 이르러 멎어섰다. 차영진은 차에서 내리며 운전사에게 그걸 달라고 일렀다.

운전사는 차뒤꽁무니에서 호미 두자루와 괭이를 나무단처럼 묶은것을 꺼내여 들고오며 불만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리였다.

《달포전에는 새 김치독을 실어다주어, 오늘은 또 이런것까지 안겨주면 그 로친네 어깨가 으쓱해져서 더 고집을 부리지 않나 보라요. 쳇, 잘난 딸을 가지구… 제가 들고가지요.》

《괜찮아, 무겁지도 않는데…》

운전사는 속이 끓어번지는지 한숨을 쉬며 책임비서의 어깨에 짐을 올려놓아주었다.

《오늘까지 앵돌아지면 콱 욕이나 해놓고 단념하자요. 창길이 그 녀석은 우리 군에서 내쫓구요. 이거야 너무하지 않습니까. 고약한 신소를 한 작자까지 보살피느라고 이런 걸음을 다 하고… 이거야 참…》

《오늘은 돌아서네.》 하고 차영진은 어깨의 짐을 한번 추슬러보고는 돌아섰다.

그는 언덕으로 기여오른 진흙빛 차길을 따라 스적스적 걸음을 옮겨갔다.

언덕우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저 앞쪽 강냉이밭속에 헐어빠진 매생이를 엎어놓은듯 한 외딴 지붕이 보이고 그뒤로 교외의 농장마을이며 저 멀리 연무속에 도소재지의 우중충한 건물들의 회색 파도가 바라보였다.

그 매생이를 엎어놓은듯 한 지붕밑에서 창길을 괴롭히는 처녀, 지금옥이 어머니와 함께 살고있었다.

잊지 못할 그날 새벽,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신소문제를 두고 물으실 때 차영진은 등골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며칠밤을 뜬눈으로 지새며 자기를 돌이켜보았다. 만약 식료공장 지배인, 그 인상적인 녀성이 간청하였을 때 청년을 단 한번이라도 만나 따뜻이 설복했더라면 이런 엄청난 일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군당책임비서의 직책에서 볼 때 너무나도 작은 문제여서 하찮게 여긴것이다. 그래서 까마득히 잊고있은것이 아닌가. 한 사람의 운명문제라도 소홀히 대하는 일군을 두고 인민을 혈육처럼 생각한다고, 인민의 충복이라고 할수 있는가… 이렇게 생각한 영진은 자신이 친애하는 그이의 요구수준에서 까마득히 떨어져있다는것을 느끼며 몸부림쳤다.

현지지도가 있은 이튿날 그는 우선 창길의 사촌누이인 식료공장 지배인 리순희를 만났다.

신소자 본인부터 갑자기 만나면 그를 놀래울수 있을것 같아서였다.

리순희는 총각과 처녀가 사랑하게 된 경위를 묻는데도 그 대답은 하지 않고 얼굴이 까맣에 질려 동생의 부당한 신소에 대해서만 자꾸 용서를 빌었다. 차영진이 신소와 청원은 공민의 권리이고 또 그렇게 한 심정도 리해된다고 너그럽게 웃어보이며 사랑에 대하여 재차 물어서야 그 녀자는 모든 사연을 죄다 털어놓았다.

총각과 처녀는 도사로청이 조직한 백두산답사에 참가하여 서로 알게 되였다. 둘이 같은 소대에 망라되였던것이다. 어느날 밀림속을 행군하는데 처녀가 얼굴에 피기가 가셔져 대오에서 자꾸 떨어지더니 갑자기 길바닥에 주저앉아 배를 그러안고 돌아갔다. 갑작스레 충수염이 발작했던것이다. 처녀들은 그를 안고 돌아가는가 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한소대의 청년들은 처녀의 몸에 손을 대기 저어하며 떠들기만 할뿐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그때 창길이 나섰다.

그는 처녀를 둘쳐업고 3리남짓한 진료소로 냅다 뛰여갔다.

반달후 창길이한테 처녀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고맙다, 잊지 못하겠다는 내용이였다. 창길은 회답을 썼다. 그다음 둘사이에 몇번인가 편지가 오가는것 같더니 두 가슴에 불이 일었다. 세상에 나서 첫사랑인 창길은 제정신이 아니였다.

휴일마다 도소재지로 내뛰여 처녀를 만나고 새벽녘에 돌아오군 하였는데 어떤 날에는 바지가랭이에 도꼬마리며 도깨비가시가 잔뜩 붙어있었다. 그래도 공장게시판에는 생산계획을 넘쳐한다는 속보가 크게 나붙었다.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어 바야흐로 약혼이라는 열매를 맺으려 할 때 처녀의 어머니가 한사코 반대해나섰다. 아버지없이 키운 외동딸을 두메산골에 사는 녀석에게 줄수 없다는것이였다.

성미가 모진 어머니는 딸의 출입을 엄하게 단속하고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어슬녘에 밖에서 개가 짖거나 뻐꾸기울음소리 같은것이 나도 울바자밖에 나가 어스름속에 흙덩이를 뿌려던지며 썩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처녀는 도시로 이사나오라고 창길이를 꼬드겼다.

창길은 물이 맞지 않아 못살겠다는 등 여러가지 수를 써보았으나 통하지 않으니 고민끝에 도당책임비서에게 편지를 쓰는 도깨비짓까지 하게 되였다. 모든 《시도》가 실패하자 처녀는 약속을 저버리고 창길을 외면해버렸다. 창길은 절망에 빠졌다. 리순희가 송탄에도 좋은 상대가 많은데 그따위 처녀는 잊어버리라고 타이르니 창길은 벌컥 성을 내며 누구한테도 장가를 안간다고 했다. 그리고 성격이 거칠어졌다.

공장에 나가서도 걸핏하면 누구하고 다투었다. 날이 갈수록 얼굴이 깎이였다.

리순희는 이런 사연을 이야기하고 자기도 너무 속상하여 그 처녀에 대하여 알아보고 직접 만나보기까지 했는데 용모나 마음씨나 어디 하나 남달리 삐여진데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에 반하여 저러는지 저대로 둬두면 사람을 망칠것 같다고 한숨을 쉬였다.

군당책임비서는 일부러 시간을 내여, 혹은 도당에 갔던 길에 처녀의 집으로 찾아가 어머니와 딸을 설복해보았다. 때로는 아래일군들도 보내고… 기관지천식을 앓아 병색이 있는 작달막한 어머니는 직맹위원장도 드물게 찾는 자기 집에 타군의 군당책임비서가 찾아오는것을 은근히 자랑으로 여기는것 같았으나 혼사문제가 나오면 죄송스러워하면서도 시원한 대답 한마디 하지 않았다.

딸은 내내 어머니의 등뒤에 숨어 빨갛게 익은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는데 이따금 찬찬히 여겨보아도 인물이 환하지 못하고 눈에 띄게 남다른데라고는 별로 없는 처녀였다. 처녀가 다닌다는 직물공장 같은데서 흔히 볼수 있는 직포공이였다. 송탄에도 이쯤한 처녀는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창길은 이 처녀한테서 남들은 물론 사촌누이마저도 발견하지 못한 매력을 느꼈을것이고 처녀가 둘만 있을 때 총각한테 어떻게 살뜰하게 굴며 도대체 무엇으로 그처럼 상대를 끌어당겼는지 그 비밀은 알수 없는것이였다. 창길이가 절망한 정도를 보면 그한테는 그 처녀가 세상에 둘도 없는 춘향이임에 틀림없었다.

군당책임비서도 여느 일군들처럼 사고와 감정에서 제한이 있는 인간이다. 그한테는 자기를 부당하게 걸어 신소한 청년에 대한 고까운 마음이 전혀 없는것이 아니였지만 우선 자기 군의 한 청년이 도시의 처녀한테, 별로 뛰여난데도 없는 처녀한테 배척당한것, 그것도 두메산골에 산다는 그 한가지 리유로 하여 버림받은것이 분하였으며 승벽심, 자존심까지 살아올랐다.

어떻게 무슨 수를 써서도 고집스러운 어머니와 딸의 마음을 돌려세워야 하였다. 무엇보다먼저 어머니를 감화시켜 산골군에 대한 편견을 가셔버려야 했다.

어느날 그는 송탄군인민병원에 기관지천식을 잘 떼는 용한 의사가 있고 거기에서 특효가 있는 약도 만든다는 말로 구슬려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군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에게 현대적으로 꾸린 읍거리며 5층 아빠트를 구경시키고나서 금옥이가 시집오면 이런 아빠트 세칸짜리에 들게 하고 어머니까지 모셔오도록 하겠다, 금옥이는 여기 직물공장에 넣어 직포공으로 일을 좀 시키다가 공장대학 공부를 시켜 직장장이나 기사장 같은 생산지도일군으로 키워볼가 하는 생각도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눈에 생기가 빛났다.

차영진은 그날 어머니를 집에 모셔와서 점심대접을 잘한 다음 군병원으로 데려가 진찰도 시키고 효험이 좋은 천식정 여러 봉지를 안겨 돌려보내였다. 운전사는 처녀의 어머니를 집까지 실어다주고와서 안해가 갓 사온 자그마한 김치독까지 덧붙여 보내주었노라고 했다.

그 집 울바자밑에 땜질을 여러군데 한 낡은 김치독이 엎어져있었던것이 생각나 잘했다고 칭찬하였다.

차영진은 그런 일들이 있은 뒤여서 활개를 크게 저으며 집뜨락에 들어서면서 선선한 목소리로 주인을 찾았다.

《계십니까?-》

부엌문앞에서 김치독안을 행주로 닦아내던 녀인이 놀라서 돌아보았다. 금옥의 어머니는 그를 인차 알아보고 퇴마루밑으로 내려서며 반기면서도 경계하는 기색이 력연한 얼굴로 인사하였다.

《아유- 또 오셨나요?!》

《예 - 지나가다가 그저 좀 들렸습니다. 이것도 주고갈겸…》하고 그는 농쟁기묶음을 퇴마루밑에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그것들에 흘깃 눈길을 던질뿐 아무 말도 없이 손님을 방안으로 안내하였다. 영진은 자기 희망과는 달리 그사이 무슨 일인가 있었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따라 들어갔다. 언제 와보아도 알뜰하게 거두었던 방안이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해진듯하였다.

그는 흔연한 얼굴로 어머니와 마주앉았다. 그리고는 날씨며 기관지천식, 농사작황 등에 대하여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엌칸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소리나는쪽에 눈길을 흘깃 돌렸으나 인차 얼굴빛이 흔연해졌다.

《금옥이는 어디 나갔습니까? 휴일이 돼서 집에 있을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눈을 내리뜨며 겨우 대답하였다.

《예, …시내 동무들 집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는데 저녁녘에나 오겠는지.》

《어머니, 우리 송탄에 와보구 따님하구 좀 얘기해봤습니까?》

《얘기야 해봤지요.… 책임비서동지, 이거 정말 미안해요. 공연한 걸음을 자꾸 시켜서…》

《미안할거야 있습니까? 오늘은 좀… 금옥이도 없는데 솔직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솔직한 이야기라구요? 솔직한 이야기야 좀 적게 했나요. 저희같은 집에 지체높은 어른이 찾아오는건 고맙지만… 다시는 오지 말아주십시오.》

어머니는 수모라도 당한 사람처럼 얼굴이 해쓱해지며 목소리가 떨렸다. 영진은 너무나도 뜻밖의 거절이며 그 기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 제가 뭘 잘못했는가요?》

《잘못하기야… 그저 잘한다는 노릇이 그렇게 됐겠지요. 송탄이 아무리 잘 꾸려져도 도소재지나 평양보다야 낫겠나요?! 솔직한 얘기를 하자고 하시니 내 금옥의 에미로서 한가지 묻겠어요. 나무람하셔도…》

《예, 어서… 무슨 문젠데요?》

《듣자니 창길이라는 그 총각한테는 거기서 무슨 공장지배인을 하는 똑똑한 누이도 있다는데 어째 그 녀자는 나서지 않고 책임비서어른만 자꾸 오시나요?》

《…》

차영진은 뜻밖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선뜻 입을 열지 못하였다.

《혼사에는 가까운 혈육들이 나서기마련인데…》

《제가 오는게 싫은가요?》

《아니야요. 그런게 아니라 너무 미안해서… 딸을 주고픈 마음이 있으면야 누이가 온다고 안주고 높은 어른이 온다고 주겠나요?》

책임비서가 온다고 그 직위에 눌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자리에 딸을 주겠느냐는 뜻이였다.

그는 껄껄 웃었지만 처녀의 어머니를 흘깃 여겨보게 되였다. 운전사가 로친네라고 함부로 부른 작달막한 그 녀인의 눈에 조소적인 차거운 빛이 어려있는듯 하였다.

《예… 그 말씀은 옳습니다. 제가 이렇게 찾아오는데는 사연이 좀 있습니다. 후에 죄다 이야기하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임비서동지, 인제는… 일도 바쁘시겠는데 수고스럽게 오시지 말아주십시오.》

《그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니요. 무슨 일이 있겠나요… 저애 금옥이가 이 에미를 죽게 몰아댔어요. 김치독을 받았다고… 엄마가 구해달라고 손을 먼저 내밀었는가, 구차스러운 소리를 자꾸 했는가, 받았으면 왜 값은 물지 않았는가? 그날밤 나는 새 독이 생겼으면 좋은 일이지 왜 이 야단이야, 공짜로 주는데 값은 무슨 값이야, 그까짓 독이 뭐라고… 이런 치사스러운 소리를 하며 애한테 신경질을 냈지만 속이 뜨끔해졌어요. 저애 말이 옳지요. 이런 일에 물건이나 돈이 끼여들어서는 안되지요.》

《허허, 그거야 혼사하구 무슨 상관입니까. 딸의 말이 옳기는 하지만 너무 지나친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응석꾸러기였는데 대학에 못가고 열일곱살에 직물공장에 들어가 로동을 하면서부터 속대가 저렇게 쇠꼬챙이처럼 꼿꼿해졌어요.》

《예… 정말 기특합니다.》

차영진은 처녀가 더욱 탐났다. 그래서 반죽이 좋게 벙글거리며 딸을 안주면 열번, 백번이라도 더 오겠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얼굴빛이 어둑해지였다.

《그러지 말아요. 부탁입니다. 누군들 두메산골에 딸을 보내고싶겠나요. 거기서 잘… 번듯하게 꾸려졌지만… 나도 딸을 될수록 살기 좋은데 보내고싶어요. 다른데 혼처가 나져서 이러는게 아니야요. 직물공장에서는 이제 저애앞으로 새 집을 주겠다고 해요. 거기 이사나가면…》

녀인은 눈물이 그렁하여 자기 소원을 토설하였다. 듣고보니 어머니의 소원이란 너무나도 소박한것이였다. 시내의 새 아빠트로 이사나가서 마음씨 서글서글하고 활동력이 좋은 제대군인출신 화물차운전사나 사위로 맞아들여 남부럽지 않게, 청상과부로 남정일손이 없어 한평생 남들의 신세를 지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이웃들에게 인심이랑 후히 쓰며 살아보자는것이였다.

《이 소원이… 내 이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하고 녀인은 절절하게 말하였다.

차영진은 가슴이 저려들어 모두숨을 내쉬였다.

《예… 그러니까 우리 창길이하고는 기어코 못하겠다는거군요. 하- 참, 그녀석은 고민해서 반쪽이 됐습니다.》

《우리 애는 맘이 편한줄 아시나요. 밥도 제대로 안먹고 웃음도 없어졌어요.》

《그렇습니까?!》

《책임비서동지, 애들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예? 창길이를 생각하시는 마음이 진정이면 여기로 보내도록 해주세요. 빕니다. 내 엎드려 절을 하라면 하겠어요. 창길이 없다고 군이 기울어지겠나요?》

차영진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솔직히 말하면… 가고오는것은 다 자유이고 본인의 요구인것만큼 저도 보내주라고 권고해봤는데 입가진 사람들이 다 반대합니다. 남자가 녀자를 따라가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거지요. 그건 그렇구, 우선 제지공장일군들이 내놓기 아쉬워하는데다가 로동자들도 보내서는 안된다고 들고일어납니다. 창길이만 한 기능공이 없답니다. 그러니 당정책을 책임지고 집행하는 저로서 어떻게 보내라고 강요하겠습니까.》

그 순간 부엌문이 벌컥 열리며 누구인가 밖으로 뛰여나가는 소리… 무엇인가 와지끈 깨여지는 소리가 폭음처럼 울려왔다. 어머니는 와뜰 놀라더니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여 문을 차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방안에 찬바람이 휩쓸어들었다. 그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았다.

퇴마루밑에 박산이 된 김치독쪼각들이 딩굴고 그옆에 금옥이가 얼굴을 싸쥐고 돌아서있었다.

차영진은 가슴에서 욱 치미는 분노를 가까스로 씹어삼켰다. 순간에 관자노리로 식은땀 두줄기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딸의 어깨를 잡아흔들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이년아, 이년아, 독이 이게 뭐냐-?! 너도 사람이냐, 누굴 닮아 이런 독종이냐?!》

딸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는 뒤뜨락으로 사라졌다. 몸을 피해 부엌칸에 숨어서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울분이 터진것이 분명하였다. 어머니는 화들화들 떨며 딸이 사라진쪽을 쏘아보다가 돌아섰다.

《아이고 이 일을… 책임비서동지, 용서하십시오!》

영진은 억지로 웃어보였다.

《허허. 성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승용차에로 돌아온 책임비서의 얼굴빛을 보고 운전사는 모든것을 알아맞힌듯 군까지 들어오며 뒤덜미가 노상 벌개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군당뜨락에 들어와 차를 세운 운전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다시는 이런 걸음을 하지 말자요. 신소까지 한 놈인데 장가를 보내주겠다고. 이거야 참… 갈데로 가라고 군에서 훌 쫓아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날밤 차영진은 깊은 생각에 잠겨 황새천기슭의 제방길을 거닐었다. 걸음마다 잊지 못할 그 새벽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하신 천근무게의 금언들이 가슴에 깊이깊이 되새겨지였다.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가 되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한다는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는 자신의 인격, 수양, 자질이 모자란다는것을 여느때없이 느끼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처녀가 저렇게 나오니 이제는 창길이를 어떻게 하는가… 처녀와 그 어머니를 아주 외면해버리는가, 저 청년은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두고… 이건 그 처녀나 어머니가 남달리 고약해서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차이에서 오는 세기적인 감정의 타성이 아닌가. 군을 빨리 추켜세워야 한다. 군이 도시 못지 않게 살기 좋다면 이런 일이 있겠는가… 시내물도 그의 생각에 귀기울이는듯 소리를 죽여가며 흘렀다. 문득 처녀의 어머니가 하던 말이 미풍처럼 귀전을 스치였다. 《우리 애는 맘이 편한줄 아시나요… 웃음도 없어졌어요.》

처녀가 창길이를 몹시 사랑하고있음이 틀림없다. 부엌에 숨어있다가 밖으로 뛰여나가며 독을 깬건 무엇인가. 그건 그저 울분이 터져올라 분별이 없어졌기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차영진은 걸음을 멈추고 달빛이 부서지는 여울쪽을 끝없이 지켜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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