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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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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664회 작성일 21-07-10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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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가 사령부마당에 들어서고 류한무가 손녀와 함께 차에서 내렸을 때 체구가 우람하고 얼굴표정이 근엄한 장령이 앞으로 다가와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붙이였다.

《수고했습니다! 군단장입니다.》

류한무는 사령관의 거수경례며 겉치레 없는 짤막한 인사말에 군인의 본능이 되살아나 두손을 바지혼솔에 붙이며 석쉼하면서도 저력이 풍기는 소리로 답례하였다.

《중장동지, 예비역상좌 류한무입니다.》

장령과 로인은 정겨운 빛이라고는 거의 없이 꿰뚫어보는듯 한 심각한 눈빛으로 몇순간 말없이 지켜보다가 서서히 다가서며 와락 포옹하였다. 바위와 바위가 부딪쳐 뒤엉키는것 같았다.

《련대장아바이!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습니다. 우리 전사들을 크게 고무할것입니다.》

류한무는 포옹에서 풀려나자 중장에게 손녀를 자랑스럽게 소개하였다.

《제 손녀입니다. 류성희라고… 제가 몸이 좀 부실해서 따라왔습니다.》

《예… 간호원이 따라온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하고 사령관은 허리를 약간 굽힐사하며 성희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주었다. 난생처음으로 장령의 손을, 그것도 군단이라는 막강한 무력을 거느린 사령관의 손을 잡아보는 성희는 어마어마한 힘의 배경에 위압된듯 얼굴만 빨개져 인사말도 못하였다.

사령관은 그들을 아침식사에 초청하였다. 그는 부관을 불러 성희의 손짐을 객실에 올려가라고 이른 다음 손님들을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아담하고 깨끗한 식당, 기름얼룩 한점 없는 하얀 식탁보를 씌운 원탁우에는 세사람분의 검소하면서도 맛스러워보이는 아침식사가 차려져있었다. 모두 자리들에 앉자 사령관은 류한무앞에 놓인 유리잔과 자기 잔에 포도주를 붓고 성희의 잔에도 약간 따라주었다.

《아-니, 나는 이런 대접을 받자고 온게 아닌데…》 하며 류한무는 몹시 당황해 하였다. 그러자 사령관은 빙그레 웃으며 뜻밖의 말을 하였다.

《그제밤 인민무력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상좌동지가 도착하면 아무런 불편도 없이 부대방문을 하도록 잘 보살펴야 한다고…》

《예?-》

류한무는 놀랍고 충격이 커 신음비슷한 소리가 나갔다.

《군인정신이 살아있는분인것만큼 부를 때도 매사에서 군사칭호를 존중하며 련대에서는 군대식으로 영접하고 환영하는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잔을 들었다.

류한무는 몹시 감동되여 불깃해진 얼굴로 사령관과 잔을 찧었다. 중장은 성희한테도 잔을 들어보이며 군대술이 어떤가 약간 들어보라고 고무하였다.

식사가 끝나자 사령관은 더운 차물을 후후 불며 마시고나서 항다반사를 이야기하는듯 한 어조로 말하였다.

《요즘은 전연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쏘련과 유럽이 저렇게 되면서 적들의 불장난이 우심해졌습니다. 련대계선까지 나가고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류한무는 차잔을 내려놓고 난감한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중장동지, 30여년만에 왔습니다.》 가슴이 울렁이며 목소리가 떨렸다. 《련대를 더 돌아보게 해주시오. 전연초병들한테 주자고 집에서 공화국기발도 크게 만들어왔습니다.》

사령관은 얼굴빛이 신중해졌다.

《예… 만약의 경우 신변이 우려되여 그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래보여도 아직은 문제없습니다.》

《아래구분대에서 동의하면 나도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감사합니다…》

《초대 련대장이였지요? 그 련대는 칼릉선계선에 배치되여있습니다. 지금 련대장은 새로 임명된 동무인데 어제 알아보니 12대째라고 했습니다. 12대… 휴-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

성희는 장령과 로병의 머리에 내린 서리를 경건한 마음으로 여겨보았다.

《조심해야 합니다.》

《예…》

할아버지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가싶어 가슴이 은근히 조여들었다.

사단계선으로 나가는 도로상에서는 흙먼지구름을 날리며 달리는 군용화물자동차들뿐아니라 대구경포의 무한궤도견인차며 어디로인가 기동하는 방사포행렬도 만나게 되였다. 흙먼지를 부옇게 들쓴 길가의 나무들이며 휘발유냄새와 초연내까지 슴배여있는듯한 공기며 오가는 군인들의 볕에 탄 얼굴이며 가슴앞에 건 자동보총… 어느것을 보아도 여기가 평화로운 후방이 아니고 근 40여년동안 적군과 우리 군대가 대치상태에 있는 전연지방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그들은 사단지휘부에서 하루밤 묵으며 로독을 푼 다음 이튿날아침 련대로 나갔다.

 

산탁에 붙여지은 나지막한 련대지휘부건물의 뜨락에 차가 들어서자 련대장과 정치위원이 달려나와 차문을 열고 류한무와 그의 손녀를 안아내리다싶이 하였다.

련대장은 몸매가 다부지고 패기만만해보이는 새파랗게 젊은 중좌였고 정치위원은 몸이 부하고 원만한 인상의 나이지숙한 상좌였다.

류한무는 오매에도 그립던 친혈육을 만난듯 한 기쁨과 감격과 흥분으로 두팔을 벌려 련대장과 정치위원을 그러안고 반갑다, 수고한다, 내가 왔다고 소리쳤다. 격정에 넘친 말들이 오갔다. 토주처럼 가슴에 불을 지펴 취흥같은 열기와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상봉의 말들이 오갔다.

12대 련대장은 흥분을 못이겨 좀 덤비며 자기보좌성원들인 참모장과 부련대장들, 병종장들과 참모들을 초대 련대장에게 하나하나 소개하며 인사시켰다. 하나같이 름름해보이는 군관들이였다. 인사들이 끝난 다음 련대장은 류한무에게 오늘은 마침 월요일이여서 이제 곧 제식훈련장에서 련대직속구분대들의 상학검열이 있는데 함께 가서 보자고 하였다.

젊은 련대장이 앞에서 걸어가고 정치위원이 로인의 손을 잡고 그의 뒤를 따랐다. 참모장, 부련대장, 병종장, 참모들은 그들의 뒤에서 걸어갔다. 정치위원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가며 나직이 귀띔하였다.

《내무규정에 따라 상학검열이 끝난 다음 분렬행진이 있게 됩니다. 그때 아바이는 련대장동지와 나란히 서서 행진해나가는 구분대들의 대렬경례를 받으며 <동무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큰소리로 답례를 해야 되겠습니다.》

《내무규정이야 잘 알지요. 한데 제가 뭐라구…》

《초대 련대장동지가 아닙니까.》

《아니… 아니 그거야 지금련대장이 하면 되는거지.》

《군단사령관동지한테서도 어제 전화가 왔습니다. 인민무력부의 의견인것 같습니다. 저희들의 심정도 그렇습니다.》

《심정이요?!》

류한무는 몹시 감동되였다.

한쪽가녁에 색갈이 바랜 여러가지 체육기재들이 서있는 훈련장에 군기가 나와있고 구분대들이 열병대형으로 정렬되여있었다. 그뒤에는 군악대가 서있었다. 오늘의 류다른 상학검열을 보장하기 위하여 내려온 사단군악소대의 소편대였다.

련대장과 정치위원, 초대련대장이 사열위치에 나와서자 련대작전직일관이 힘차게 걸어나와 련대장에게 직속구분대들이 상학검열을 받기 위하여 정렬하였다고 우렁차게 보고하였다. 상학검열이 끝나자 분렬행진이 시작되였다.

군기를 앞세우고 구분대들이 사열지휘관들앞으로 정보로 행진해나왔다. 군악대는 보라, 우리를 보라, 그러면 마음 든든하리라는 노래의 취주악으로 훈련장을 들었다놓는다. 땅바닥을 울리는 발구름소리, 군관, 하사관, 병사들의 흥분과 격정에 넘친 얼굴들.

《우-로-봣!-》

군기가 절을 하듯 아래로 숙여지며 기폭자락이 땅에 스칠듯이 무겁게 펄럭인다.

류한무는 가슴에서 수없이 많은 추억과 사연이 떠오르며 눈앞이 흐려졌다. 아, 련대기, 나의 련대기! 고스란히 지켜와 색갈도 하나 바래지 않고 다름없었다. 저 기발앞에 결사의 맹세인들 얼마나 다졌던가. 피의 락동강에서, 설악산에서… 그는 눈을 슴벅거리다가 크게 뜨고 받들어총을 하고 불꽃같은 눈으로 자기쪽을 돌아보며 지나가는 병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여겨보았다. 십대, 이십대의 병사들… 40년전 자기가 이 련대를 이끌었던 그 시절의 병사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꽃나이 청춘들이다. 그 련대장은 늙어 북망산에 가게 되였지만 련대는 늙지 않았다. 푸르싱싱하게 젊다. 아, 불멸의 투쟁정신, 불멸의 저 청춘!…저 기백!… 누구인가 팔굽을 건드렸다.

돌아보니 정치위원이 무엇이라고 눈짓하였다. 그제야 로인은 대렬경례를 받기만 하고 답례를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큰 손을 귀가에 올려붙이며 가슴에서 끓어번지는것을 내리쳐 목청껏 웨쳤다. 석쉼하게 갈렸지만 담력이 풍기고 향수에 젖어 자기 청춘시절을 부르는듯 한 절절한 목청이였다.

《동무들-안녕하-십니-까!!-》

《만세-》

《만세-》

받들어총을 한 구분대들은 만세의 함성을 터뜨리며 초대 련대장과 12대 련대장 앞을 보무당당히 행진해지나갔다. 대오의 머리우에 하얀 반점들이 흩날렸다. 이해의 첫눈이였다.

사열지휘관들의 뒤에 좀 떨어져서있는 성희는 련대가 무장대오특유의 의식으로 할아버지를 환영하고 경의를 표하는데 감동되여 기쁨과 자랑, 자부심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리고 웬일인지 불찌같이 따가운것이 자꾸 볼로 굴러내려 손수건으로 그것을 훔치군 하였다.

련대장실로 돌아와 젊은 련대장과 정치위원에게 지난날 살아온 이야기며 부대로 찾아오며 혼자 한 생각이며 인상들에 대하여 말하던 류한무는 련대에 며칠 묵으면서 투쟁경험도 많이 들려주고 작전지휘와 부대관리에 대한 조언도 기탄없이 해달라는 청을 듣자 얼굴빛이 환해졌다.

《여기에 묵는것도 좋지만 제일 전연초소에 나가보고싶습니다. 전연초소를 지키는 소대에 집에서 준비해가지고온 공화국기발도 기증하고 또 거기 초병들과 하루밤 같이 자보고싶습니다.》

련대장과 정치위원은 난감해하는 기색이였다.

《심정이 리해됩니다. 한데… 전연이 조용하지 못해서…》 하고 정치위원이 말하였다. 《토론해보겠습니다. 먼저 직속구분대들을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내가 제일선참으로 가볼데가 있는데요. 속새골이 여기서 가깝지요? 거기에 희생된 대원들을 묻었댔는데… 지금도 있습니까?》

《예… 옳습니다. 같이 갑시다.》

류한무는 혼자 가서 대원들의 령혼과 조용히 이야기하고싶어 잠자코있었다. 이윽고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 일대 길은 잘 압니다. 모두 바쁠텐데 자리에 계셔주시오…》

한시간 남짓하게 지나 류한무는 손녀를 데리고 속새골을 찾아떠났다.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볼줄 아는 정치위원은 자신은 물론 련대장이 따라나서는것도 눌러앉히였으며 정치부의 나이든 지도원만 뒤따르게 했던것이다.

눈송이들은 하염없이 날아내렸다. 성희는 할아버지의 팔을 끼고 걸었다. 류한무는 한때 자기를 따랐던 대원들이 영면하고있는 속새골어귀에 들어서자부터 갖가지 회억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안겨들어 가슴이 뻐근해졌다. 손녀에게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고 비감보다도 자책의 빛이 어린 눈으로 골안쪽을 바라보며 스적스적 걸음을 옮겨갔다. 산기슭의 민틋한 경사지, 넓게 목책을 둘러친 묘소에는 이 세상과는 동떨어져있는듯 숙연한 정적이 깃들어있었다.

줄지어 누워있는 분묘들앞에는 콩크리트렬사비가 사람키보다 좀더 높게 서있었다. 비에 정자로 새겨진 《영웅적인민군렬사들에게 영광이 있으라》는 글발이 가슴저릿하게 안겨왔다. 비우에 세워진 붉은 오각별에 내린 눈송이들이 녹으며 이슬처럼, 후덥고 짜거운 그 무엇처럼 줄줄이 흘어내리고있었다.

그앞에 손녀와 나란히 선 류한무는 머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고는 비감의 칼날에 가슴이 갈라지는듯 싶어 부옇게 흐려진 눈으로 경사면을 따라 층층으로 누워있는 분묘들을 둘러보며 한숨을 크게 쉬였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떼여 묘들을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어느 묘지에나 묘비가 세워져있었다. 40년전 혈전의 나날에는 나무패말을 대충 박아놓았었는데 언제인가 콩크리트비로 말끔히 교체해놓았다. 묘비마다에는 봉분속에 잠들어있는 렬사의 고향과 생년월일, 전사한 년월일이 세월의 풍운에 지워지지 않도록 깊이 그리고 똑똑하게 새겨져있었다. 묘비의 이름자를 보고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나지 않는 전사들이 있는가 하면 인차 얼굴이 떠오르는 대원들도 있었다.

그는 차명준이라는 이름앞에서 걸음을 뗄수 없었다. 1대대장… 복부에 치명상을 입고도 끝까지 전투를 지휘하고 쓰러진 1대대장, 인차 후송되였더라면 방어선이 허물어졌을지 어떻게 되였을지는 알수 없지만 그는 살아남았을것이다.… 독고일순… 내 마사원, 령남땅의 머슴군, 난생처음 우리 글을 배우고 그리도 좋아하던 전사, 박격포진지에 포탄을 나르다가 쏘구역에서 희생되였었지… 전경남… 3대대장 련락병, 17살의 꼬마전사, 노래를 잘 부르고 수첩에 시를 베껴가지고 다닌 소년병사, 고지에 탄약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가지고 나한테로, 불비속을 뚫고 나한테로 달려와 보고하고는 꼬꾸라졌지, 파편이 옆구리에 박힌채로 뛰여와…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로인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묘비를 쓸어만지기도 하고 안아보기도 하면서 무거운 걸음을 옮겨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제일 뒤줄의 마지막묘에까지 갔다가 돌아내려오던 그는 한 묘비앞에 멎어선채 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묘비에 또렷하게 새겨진 리혜경이라는 이름자의 획, 획들에는 눈석임물이 고여있었다.

군의근무중위 리혜경… 서울처녀… 련대지휘부 옆골짜기에 전방붕대교환소를 전개하고 피투성이부상병들을 처치하고 후송했지… 련대에 숱한 총각군관들이 있었는데 어째서 하필 이 목석을… 이 목석이 외면해버렸으니까 사랑의 품에 단 한번도 안겨보지 못한채 꽃나이로 갔지… 아, 그때 한번이라도 따뜻이 안아주었더라면… 아, 머리태끝에 흰나비처럼 팔랑거리던 댕기… 류한무는 갑자기 허리를 꺾으며 끅끅 느끼였다. 성희가 할아버지의 팔을 잡아일으키며 다급히 속삭이였다.

《할아버지, 왜 그래요? 진정하세요. 진정해요!》

《오냐… 얘야, 네 가방에 담배가 있지?》

《예, 있어요, 불도…》

《달라…》

그는 담배가치에 불을 붙여서는 한손으로 눈을 쓸며 리혜경의 묘석우에 놓아주고 다음 묘석, 다음, 그다음 묘석들에도 향불대신 놓아주었다. 어느덧 묘석들에서는 파르스름한 실연기가 피여돌아 애무의 입김처럼 봉분들의 잔디를 쓸어만졌다.

후더운것이 어린 눈으로 분묘들을 둘러보는 옛련대장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는듯 부들부들 떨었다.

(님자들! 이 죄인을 용서하라구. 내가 작전을 더 능숙하게 지휘했더라면 그대들을 잃지 않았을거네. 그대들은 10대, 20대에 쓰러졌지만 나는 80이 돼오도록 살아서 손자, 손녀들까지 무릎에 앉혀보고 온갖 락을 다 누려왔네. 그러면서도 40년이 지난 오늘에야 그대들을 찾아보니 죄송하기 그지없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나는 죄인이네…)

그의 눈가에 물기가 번들거렸다. 정치부의 지도원이 다가와 팔을 끼며 권했다.

《그만하고 내려갑시다. 저것 보십시오. 소식을 듣고 전사들이 저렇게 모여왔습니다.》

언제 왔는지 렬사비앞에 두석줄로 늘어선 20∼30명의 군인들이 눈을 맞으며 묵도를 하고있었다. 지도원도 그들이 정치위원이 생각을 다시하고 조직하여보낸 군관들과 하전사들이라는것을 미처 헤아려보지 못했던것이다.

류한무가 렬사비옆에까지 내려왔을 때 그들은 얼굴을 쳐들고 비장하고 경건한 눈빛으로 로병을 지켜보았다.

류한무는 저도 모르게 숨막히도록 가슴에 차오른 감정을 터뜨렸다.

《동무들, 고맙소! 고맙습니다! 묘를 지성껏 보살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평양서 온 류한무라는 로인이고 옛날에 이 련대 이 련대장으로 있은… 여기 묻힌 렬사들은 다 내 대원들이요.》

그들은 술렁거렸다. 《련대장아바이, 알고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는 목소리들도 터져올랐다.

《여기 안장된 렬사들은 다 동무들과 같은 나이에 우리 조국, 우리 제도를 지켜싸우다가 목숨바친 전사들입니다. 당과 수령을 위해, 우리 세상을 위해서!》 그는 주먹을 쳐들어 흔들며 격하게 웨치였다.

《병사들, 내 오늘까지 살아오며 지내보니까 피를 많이 흘리고, 희생을 많이 내면서 지켜낸 제도라고 해서 공고한건 아니였습니다.

저 쏘련을 보시오. 자그만치 2천만이 목숨을 바쳐 지켜냈지만 오늘은 다 허물어지게 되였습니다. 문제는 어디 있는가. 후대들이 선렬들의 희생을 어떻게 여기는가, 어떻게 대하는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나가서 어떤 수령, 어떤 령도자가 혁명의 수위에 서있는가 여기에 전적으로 달렸습니다! 나는 우리 군대, 우리 병사들이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일동지께 한목숨 다 바쳐 충성다한다면 어떤 풍운이 몰아쳐와도 우리 세상, 우리 사회주의제도가 끄떡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누워있는 렬사들처럼… 저들의 충성심을 따른다면 든든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사들, 나는 죽기전에 전연초소의 동무들한테, 나의 련대, 후대들한테 이 말을 해주고싶어 평양서 왔습니다. 동무들한테 맹세하오. 죽으면 여기 대원들곁에 눕겠다는걸, 영원히 동무들곁에 있겠다는걸!》

류한무는 가슴이 벅차올라 숨을 헐썩거리며 물기어린 눈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손자벌인 그들은 까딱 움직이지 않고 전쟁사의 갈피에서 걸어나온듯 한 로병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귀안에서 잉-하는 소리가 나도록 문득 닥친 정적속에 눈송이들만 하염없이 흩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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