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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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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418회 작성일 21-07-03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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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메산골 송탄군의 험준한 산발들우에는 아직도 파란 하늘이 비꼈고 눈부신 해가 아롱거리고있었다.

읍거리에 사람들의 생활이 넘치였다.

인민들의 불같은 열정과 근면한 로동으로 거의 완성되여가는 아담하고 현대적인 거리, 그 어디를 둘러보나 3, 4, 5층의 살림집들과 문화시설, 편의봉사시설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여 유족하고 문화적인 생활의 생신한 기운을 풍기고있었다. 해빛에 번쩍이는 유리창문들, 베란다들에 놓인 갖가지 화분들, 활짝 열려진 창문안에서 애기를 안고 밖을 내다보는 젊은 녀인의 미소어린 얼굴… 거리를 따라 스적스적 걸음을 옮겨가던 차영진이 어제 집들이를 한 4층살림집앞에 이르니 화단을 꾸리던 두 녀인이 반겨 인사하였다.

영진이 새 집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으니 두 녀인은 앞은 다투어 마음에 꼭 든다고 하였다. 이전에 살던 집은 부엌이 좁아 답답했는데 이번에는 부엌칸이 너렁청하고 창문들까지 시원하게 넓어 정말 좋다는것이였다. 두 녀인은 나라에서 이런 집을 지어 무상으로 주니 무엇이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진심을 담아 말하였다.

차영진은 가슴이 후더워지며 설레여 창광원식으로 새로 지은 목욕탕이며 문화회관, 유치원을 돌아보고 체육관쪽으로 가보았다.

미끈하고 든든하게 일떠선 체육관의 창문들이 해빛을 반사하며 현란하게 번쩍이는데 안에서는 무슨 경기가 벌어지고있는지 떠들썩한 응원소리가 흘러나왔다.

현관옆에서 두명의 로동자를 데리고 간판을 달고있던 행정경제위원회 문화과장이 반색을 띠며 차영진에게 인사를 하였다. 간판에는 《송탄군체육지도위원회》라고 정자로 씌여있다.

《안에서 무슨 경기가 붙었소?》 하고 차영진이 미소띤 얼굴로 물었다.

얼굴이 너부죽한 문화과장은 빙글거리며 대답하였다.

《저 직물공장하고 식료공장이 붙었습니다. 정신없이 배구를 합니다.》

《아니 간판도 붙이지 않았는데 벌써?…》

《책임비서동지, 중지시키겠습니다. 원 참, 통 말을 들어줘야지요. 지대정리에 나온 동무들인데 작업중에 무슨 승갱이질을 하다가 해보자고 들고일어나더니… 말려도 막무가내로 밀려들어가 저 야단입니다. 준공식도 하지 않았다고 그만큼 말했는데도 모두 얼마나 성급한지 이거야 참… 당장 그만두게 하겠습니다!》

차영진은 그 성급한 마음들이 리해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니… 그러지 마오. 자기들의 체육관인데… 주인이야 저들인데 좀 그러면 뭐라오. 둬두오.》

문화과장은 얼굴이 확 밝아졌다.

《책임비서동지, 남자, 녀자 막 섞여서 칩니다. 혼성배구인데 기세들이 굉장합니다.》

《아니 여보, 배구에도 혼성이라는게 있는가, 핫하하…》

이윽고 영진이 문화과장을 따라 체육관안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다급한 발자욱소리가 났다. 행정경제위원회 구영세부위원장이였다. 그는 먼길을 달려온 사람처럼 불깃하게 상기된 얼굴로 단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여기 계시는줄 모르고 한참 돌아쳤습니다. 갑시다. 행사시간이 되였습니다.》

《다 모였소?》

《예, 다가 뭡니까. 허 참… 배놀이터에 인산인해입니다. 학교들에서만 올줄 알았는데 마침 일요일이 돼서 읍내 인민들이 다 모인것 같습니다.》

《허허, 내 그럴줄 알았다니까!》

《아이들 배놀이하는걸 구경하고싶어 모두 시간전에 모여와서는 벅적 끓어번집니다. 이건 완전히 명절날입니다!》

차영진은 돌아섰다.

읍거리는 배놀이터쪽으로 걸음을 다그쳐가는 사람들로 차넘치였다. 사람, 사람, 사람… 늙은이, 젊은이, 나들이옷차림의 처녀들, 작업복차림의 청년들, 엄마나 누나들의 손에 이끌려 종종걸음을 치는 조무래기들, 지어는 개들까지 주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뛰여가고있다.

허리가 꼬부장한 로파가 지팽이를 짚고 허둥허둥 걸어가다가 승용차의 다급한 경적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 날 이런 거리로 차를 타고간다는것은 일이 아니였다. 영진은 할머니를 놀래운 운전사에게 핀잔의 말을 하고는 차에서 뛰여내렸다. 그는 로파한테로 달려가 얼른 팔을 잡았다.

《할머니, 어디로 갑니까?》

《저- 기 배놀이터로…》 숨을 헐썩이며 이렇게 대답하는 파파늙은 로파의 얼굴은 수난많은 지난 세월이 그려놓은 주름살에 덮여있었다. 웬일인지 강단이 있어보이는 로파의 얼굴이 여러해전에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모색을 련상시켰다. 얼굴모색뿐아니라 체취며 헐썩이는 숨소리마저도… 영진은 할머니의 팔을 끼였다.

《할머니, 차에 탑시다.》

로파는 기겁하여 주춤 물러서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아- 니, 이런 변이라구야! 님자는 누군가? 가만… 이게 우리 책임비서가 아니야?》

《차에 오릅시다!》

《이 로친네가 뭐라구… 그전에 타보니 멀미가 나서…》

《탑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보며 벙글거리는가 하면 타라고 왁작 떠들어대기도 하였다. 달려와서 제가 업겠다고 잔등을 돌려대는 젊은 친구도 있었다. 로파는 뒤걸음치며 손을 홰홰 내젓다가 업겠다고 지꿎게 달려드는 젊은 친구의 잔등을 철썩 때렸다.

《이녀석, 누구 망신을 시키자구 이러나 엉? 허리가 꼬부라졌다구 송장이 다된줄 아나, 엉? 이녀석아, 아직두 농마국수 세그릇은 제낀다!》

그바람에 웃음판이 터졌다. 로파는 웃지 않고 짐짓 노한듯한 눈길로 젊은이를 흘겨볼뿐이였다. 영진은 하는수없이 로파의 팔을 그냥 끼고 사람들의 물결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할머니, 올해 년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내 나이가?… 아흔여섯이네.》

《예? 그러니 우리 읍에서 제일 년세가 많겠습니다.》

《책임비서 이사람아,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네. 작년까지만도 누구 신세를 지지 않고 바늘귀를 뀄는데 이젠 눈이 흐려서… 가까이있는 사람은 더 알아보지 못한다니까. 미안하네.》

《할머니, 제가 되려 죄송합니다. 여기 온지도 여러해 됐는데 한번 찾아뵙지 못해서…》

《원 공연한 소리를… 집구석에 배겨있어두 책임비서가 수고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네. 오늘은 증손자녀석이 지도자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매생이를 제일 선참으로 탄다고 해서… 그녀석이 좋아서 어찌는가 보자고 가는 길이네.》

《예… 저하구 같이 가서 같이 봅시다. 증손자가 대단히 똑똑한게지요?》

그 한마디 물음에 로파의 눈에 생기가 빛났다.

《똑똑하기야… 장난이 너무 심해서 공부를 쓰게 못하네.》

《몇학년입니까?》

《인민학교 3학년이네.》

《예…》

《어제 그 학급에서는 오늘 제일 선참으로 배놀이를 하게 되는 애들을 뽑았는데 조상때부터 이 골안에 제일 오래 산 집 애하고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애… 이렇게 둘을 골랐다네. 그래서 우리 차돌이녀석이 뽑혔네. 그녀석이 저녁에 입이 째져서 집에 뛰여들어 갈범처럼 아래방 웃방으로 뛰여다니며 하는 소리가 군당책임비서가 그렇게 호령해서 자기가 뽑혔다는거네. 정말 그랬는가?》

《글쎄요. 우리 군당에서 누가 그랬겠지요.》

《모를 소리네… 사람들 말이 책임비서가 정치를 잘한다고 하네.》

《아니 누가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허허…》

앞에서 걸어가는 두 젊은이가 돌아보며 싱그레 웃었다.

《할머니, 저는 일을 잘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무슨 잘못이 생기면 저를 불러서 꾸짖어주십시오.

손자처럼 여기고 이녀석, 저녀석 하면서…》

로파는 그한테 더 기대며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숨을 조용히 내쉬였다.

《할머니, 무슨 시름이라도 있는게 아닙니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가보네. 이런 날에 령감이 살아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할아버지는 원래 여기 태생인가요?》

《웬걸… 저- 재령땅이네.》

《예…》

《령감은 지주집 머슴을 살고 나는 부엌데기였네. 그 지주놈 아들녀석이 술주정뱅이인데 하루는 고주망태가 돼서 우리가 사는 행랑방에 들어와 너무 못되게 굴어 령감이 한창나이때라 녀석을 번쩍 들어 문밖으로 내던졌는데 사등뼈가 분질러졌네. 그밤으로 령감은 나를 끌고 여기 산골로 도망쳐 내내 숨어살았네. 광복이 돼서야 뻐젓이 나다니게 됐지.》

《예… 그래서 여기에 뿌리를 내리게 되였구만요.》

《그 뿌리에서 싹이 나고 그 싹에서 또 새싹이 나고… 어느새 일가가 백하고도 스무명을 넘게 되였네.》

《허, 굉장합니다!》

《집안에 책임비서같은 지체가 높은 어른은 없지만 모두 뜨르르하게 돼서 어디서나 존대를 받았네. 우리 령감은 모범농민에 면대의원이였지. 이 읍거리 저 오랜 나무들은 우리 령감이 대의원을 지내면서 회의에서 의견을 내여 심은거라네…》

할머니의 자손들중에는 대학교원도 있고 기차역조역도 있고 소방대원도 있고 백화점 지배인도 있었는데 평양에 사는 증손녀를 제일 자랑하였다.

《그애는 인물이 곱고 공부도 어찌나 잘하는지 재작년 4. 15를 앞두고 선물교복을 내줄 때는 세상에… 정말… 우리 수령님께서 애들이 옷을 입은걸 보아주셨는데 두번째 선 애가 내 증손녀네. 테레비에도 나왔지. 테레비를 보다가 수령님이 그애 어깨를 만져보실 때 그만 소리를 쳤네. 탄실아, 절을 해라. 요 매깨비야, 어째 꼿꼿이 서있냐- 하고…》

차영진이 구영세와 함께 로파를 끼고 배놀이터에 이르니 량켠 물가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모여서 붐비며 설레이고있었다.

저쪽 물가의 잔디밭에는 학생들이 줄지어 앉았고 제방뚝이며 그뒤 산비탈의 경사지에도 사람들이 층층으로 앉거나 서서 설레고있었다. 이쪽기슭의 계선장에는 빨갛고 노란 수지뽀트들이 물결에 흔들거리고 그뒤 콩크리트계단에는 선참으로 배놀이에 참가할 소년, 소녀들이 두줄로 나란히 서있는데 어느 아이나 기쁨에 겨워 어쩔바를 모르고있었다. 그들의 부모들이거나 이웃들인 어른들은 제방뚝이며 버들방천가에 빼곡이 모여서 흥성거렸다. 제김에 들떠서 구경하기 좋은 자리를 잡아보자고 공연히 이리뛰고 저리뛰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버드나무우에 기여올라가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제방뚝에 서있는 하얀 선전차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울려나와 배놀이터를 들썩하게 하였다. 사람들도 설레이고 물결도 설레였다. 차영진이 구영세에게 이끌려 선전차곁으로 오자 음악이 뚝 그쳤다. 갑자기 닥친 정적속에서 구영세가 선전차방송원에게서 마이크를 받아쥐여 책임비서에게 내밀며 배놀이를 시작하기전에 축하발언을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영진은 마이크를 받지 않았다.

《부위원장동무가 하시오!》

《예?!…》 그는 순간에 흥분되여 얼굴이 불깃해지고 눈이 빛났다.

《제일 수고하지 않았습니까.》

《준비도 잘하지 못했는데…》 하고 그는 몹시 당황해하였다.

《준비는 무슨 준비… 생각되는바를 말하면 되지.》

마이크를 쥔 구영세는 무엇인가 뜻이 깊은 말을 하고싶은지 한참 갑자르다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영진은 그의 뒤에 서있었다.

《동지들… 여러분… 군당위원회와 군행정경제위원회의 위임에 의하여 첫 배놀이에 참가하게 되는 소년단원동무들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이자리에 모인 학부형 여러분!

…여기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두메산골입니다.

옛날엔 송탄다음에는 저승이라고 했습니다. 동무들의 선조들은 여기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사람 못살 고장이라고 여기를 떠나간 사람들은 얼마입니까.

어찌다가 대처에 나가면 산골놈이라고 업심을 당하고 그래도 희한한 도시문명에 눌리우고 주눅이 들어 맞서보지도 못한것이 우리 선조들이였습니다.》

그는 두메산골태생이 아니면서도 가슴속 깊은곳에서, 골수에서 설음같은것이 상처의 피처럼 뿜어나오는듯 목소리가 몹시 떨리였다.

《…오늘은… 오늘은 어떻습니까?!》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는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군중들의 머리우에, 설레이는 물결우에, 저 우중충한 산봉우리들에까지 울려퍼졌다.

《지난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가난하고 무식한 선조들의 후손인 우리를 도시나 벌방사람들 못지 않게 잘 살게 하고 눈도 틔워주자고 세번이나 여기로 찾아오셨습니다. 어느해 장마뒤에는 홍수에 다리가 떠내려가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너 여기로 오셨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여러분들이 다 깊은 잠에 든 새벽에 찾아오시지 않았습니까.

동무들, 이 사실을 길이 잊지 말고 후손들에게 성을 물려주듯이… 후대들한테 대대로 내려가며 잊지 않도록 전해줍시다. 가슴에 깊이 새겨줍시다!… 생각해보십시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극진한 배려와 보살핌이 아니였더면 우리 군을 어떻게 오늘처럼 일떠세울수 있었겠습니까. 저 체육관을 지으면서 우리가 애를 먹으니 강재를 보내주시고 기술자들을 보내주시고… 지금 형편에 나라살림살이에서 강재를 한t이라도 갈라내는게 조만한 일입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 아이들은 텔레비를 보다가도 평양이 나오고 대동강이나 보통강에서 자기또래들이 배놀이하는것이 나오면 어쨌습니까? 부러워하면서도 타보고싶다는 소리는 감히 못하고 어서 평양가서 저런거랑 구경하자고 졸랐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여기 어린이들의 그런 측은한 심정까지 헤아려 일등급의 뽀트들까지 내려보내주셨습니다.

그이께서는 우리 인민들이 자기 사는 고장들에서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무들, 이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우리 고향을 더 살기 좋은 사회주의락원으로 꾸립시다.

나는 오늘 첫 배놀이에 참가하는 우리 군의 어린 공민들을 다시한번 열렬히 축하합니다!》

차영진이 박수를 치자 군중들은 우렁찬 박수소리를 울리며 환호하였다. 채양이 넓은 흰 운동모에 단복차림의 체육교원이 호각을 불고 어린이들이 수지뽀트에 뛰여들었다.

차영진이 할머니를 이끌고 제방밑으로 내려가 이미 마련된 자리에 앉히고 자기도 그곁에 앉으려는데 옆에서 한 녀성이 일어나며 인사하였다. 세멘트공장지배인 주상민의 안해였다. 명절옷차림을 한 그 녀자는 행복감에 겨워 눈을 빛내이며 자기네 딸 미순이도 처음으로 뽀트를 타는데 뽑혀 구경하러 나왔노라고 하였다.

《아, 그렇습니까! 아버지는?…》

《공장에 나갔습니다.》

《일요일인데 이런데랑 나와 좀 쉬지 않고…》

《저보고 미순이한테 박수를 쳐주라고 했어요.》

《같이 봅시다!》

어느새 뽀트들은 기슭을 떠나고있었다. 아이들은 세차게 노를 저었다. 물갈기를 날리며 철썩거리는 노대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적으로 미끄러져나가는 뽀트들, 그것들은 물결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받들려 동동 떠가는듯 하였다. 겁을 먹고 엎드리는 처녀아이들도 보였다. 웃몸을 앞뒤로 흔들어대며 기운차게 노를 젓는 사내아이들, 한쪽 노에만 힘을 주어 제자리에서 돌아가는 뽀트… 숨을 죽이고 지켜만 보던 군중들속에서 갑자기 눈물에 젖은 부르짖음소리들이 터져올랐다.

《순이-야-》

《영-남-아-》

《순이야-어째 엎디니-일- 없- 다- 머리를 들어라- 썩- 썩- 들어라-》

《영남아- 이- 머저라- 왼쪽팔에- 왼쪽에- 기운을 더 주라- 어째- 오른쪽에만- 기운을- 쓰니- 이- 머저라- 아이구-》

《하하하-》

《허-허-허-》

《호호호…》

할머니는 손자를 찾지 못했는지 목을 길게 빼들고 두리번거리기만 하였다.

《할머니, 배를 타는 손자가 보입니까? 예?》 하고 차영진이 다그쳐 물었다.

《아이고, 어째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까까지는 잘 보였는데…》

로파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할머니, 눈물을 닦읍시다.》

《아이구머니나…》

차영진은 얼른 손수건을 꺼내여 로파의 눈을 정히 씻어주었다.

그때였다. 멀리에서 봐도 감때사납게 생긴 녀석이 뽀트를 돌려 이쪽으로 성급히 몰아오다가 노대를 번쩍 쳐들어 좌우로 흔들어대며 챙챙하게 소리쳤다.

《할마- 할마-》

로파가 와뜰 놀라며 차영진의 팔을 덥석 잡았다.

《손자… 내 손자요. 저것이!…》

《할- 마- 할- 마-》

로파는 정신없이 소리쳤다.

《차돌아- 차- 돌- 아- 이녀석아-》

《할마- 내가 보이- 나?-》

로파는 만세라도 부르는듯 두손을 쳐들어 허공을 마구 허비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차돌아-차돌아-보인다-내가-본다-본-다-》

《보이지?!-》

《엉- 엉- 보이구말구-》

그러자 녀석은 벌씬 웃어보이고는 뽀트를 되돌려 신바람이 나서 물가운데쪽으로 냅다 몰아갔다.

제방경사면에 앉거나 서서 목청껏 소리치고 떠들며 껄껄 웃어대는 구경군들속에 어울려 같이 웃고 떠들던 차영진은 주상민의 안해쪽이 너무 잠잠하다는것을 뒤늦게야 느끼고 의아해서 돌아보았다.

그 녀자는 여느 사람들처럼 들뜨지 않고 조용히 앉아 이 행복한 시간의 순간순간을 놓침없이 고스란히 맛보려는듯 헛눈을 팔지 않고 뽀트들이 오락가락하는 물복판쪽만 지켜보고있었다.

넘실대는 물결이 반사하는 해빛이 그 녀자의 미소어린 얼굴에 현란한 줄무늬를 그리며 어른거렸다. 딸의 뽀트를 따라 서서히 움직이는 그 녀자의 눈동자에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밝고 그윽한 빛이 반짝이였다.

《미순이 어디 있습니까. 노를 제대로 젓는가?》

그제야 녀인은 그를 돌아보며 숫저운 미소를 지었다.

《저기… 저기요. 노란 뽀트에…》

차영진은 녀인이 가리키는쪽을 바라보았다. 여러 뽀트들이 붐비는 물복판에서 좀 떨어진 유축에 노란 뽀트가 떠있었다. 미순이는 노를 천천히 저으며 이쪽을 자주 돌아보군 하였다.

《아버지가 왔나 해서 저럽니다…》

《예…》

사람들은 왁작 끓어번졌다. 저저마다 자기 자식들에게 소리치는것이였다.

《영남아-》

《순이야- 노를 더 기운차게- 하나… 둘… 하나… 둘…》

《갑수야- 씽- 씽- 나가라-》

그바람에 차영진도 엉거주춤 일어서 입에 손나팔을 대고 목청껏 소리쳤다.

《미순이- 엄마가 여기 있다- 여기서- 본다- 씽- 씽-》

처녀애는 이쪽을 돌아보며 방긋 웃어보이고는 머리를 숙일사하고 노를 기운껏 젓기 시작하였다.

《그래… 그래!… 미순이- 씽- 씽- 잘한다-》 하고 차영진은 응원을 하듯 주먹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서 녀인의 목메인 부르짖음소리가 날아올랐다.

《미순아- 미순아-》

아이들은 신이 나서 뽀트를 몰아가고 물결은 넘실대고 사람들도 설레였다.  

해빛이 부서지는 물결우에서 오락가락하는 뽀트들…

 

그날 차영진과 구영세는 인민들이 다 흩어져가고 선전차까지 떠나간 다음에도 그자리에 남아 앞으로 배놀이터를 잘 관리할데 대한 문제를 놓고 토론하였다.

마감에 구영세는 배놀이터에 채운 물을 리용하여 잉어를 키우자고 하였다. 그리고는 문득 이렇게 물었다.

《아까 제 연설이 너무 길지 않았습니까?》

《아니… 아주 좋았소.》

《모르겠습니다. 책임비서동지가 해야 되는건데…》 하고 말하는 그의 눈에 해빛이 넘치였다.

《인민들이 좋아하는걸 보니 무엇이나 더 해주고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허… 그렇소?!》 차영진은 인민들에게 복무하는데서 삶의 보람과 락을 느끼는 그의 모습을 보는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 집에 가서 점심식사나 같이하자고 그와 함께 한길쪽으로 걸어나오다가 걸음을 뚝 멈추었다. 눈결에 아름드리 물황철나무뒤에서 웬 그림자가 이쪽을 내다보다가 숨는것을 보았던것이다.

버들방천은 바람에 솨- 솨- 설레이고 새들이 야단스럽게 우짖어댔다. 재빛 나무그루뒤에서 빨간 머리수건꼬리며 치마자락이 언뜻거렸다.

《허참, 무슨 처녀가 저렇게 숨는가요?》

《모르겠는데?…》

《여- 동무- 동무-》

그 소리에 기겁이라도 한듯 처녀는 거리쪽으로 정신없이 뛰여가다가 한번 뒤돌아보고는 집모퉁이에 사라졌다.

차영진은 너무 뜻밖이여서 한동안 말도 못하였다. 처녀는 분명히 창길이를 괴롭혀온 그 고집스런 존재, 지금옥이였다. 저 처녀가 어떻게 여기로?… 송탄이 어떻게 살기 좋아졌다는 소문을 듣고 남몰래 찾아왔다가 아이들의 배놀이까지 구경하게 된것이 아닌가?…

차영진은 집에 들어오자바람으로 전화로 식료공장을 찾아 리순희한테 지금옥이 찾아온것을 보았는가고 물었다. 그 녀자는 한숨섞인 목소리로 그 처녀와는 남남간이 된지 오래다고 하며 만약 찾아온것이 사실이라면 다른 볼 일때문일것이라고 하였다.

영진은 자기가 잘못 보았을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해질녘에 차영진은 선전부의 책임일군과 마주앉아 인민군대원호사업에 대하여 의논하고 동유럽사태를 이야기하다가 도당책임비서로부터 불길한 전화를 받았다. 이제 큰비가 내린다는것이였다.

그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내다보았다. 서쪽 하늘가가 벌써 시꺼먼 비구름에 덮여있었다. 이제 홍수가 지면… 하고 생각하자 인민들의 생명재산, 농경지며 건설한 모든것들이 걱정되여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다. 웬일인지 은은한 우뢰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그것이 보통구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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