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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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는 고요가 깃들어있었다. 숙연하면서도 사색의 기류가 조용히 흐르는듯 한 방안공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한 문건을 보고계시였다.
그것은 공식문건이 아니였다. 사회과학원의 류수진박사가 보내온 편지였다.
그 편지는 어제 해당 부서에서 올려온 문건들속에 들어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침에 그 편지를 다시 읽으시고 지금 한석비서를 불러놓고 또 읽어보시는것이였다. 박사는 편지에 지도자동지의 천금같은 시간을 침범하게 됨을 용서하라고 쓰고는 자신과 자기 가족들에 대한 당의 믿음과 은정에 대하여 하나하나 꼽아내려가다가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을 쓰며 흉금을 털어놓았다.
…
저는 여기 쏘련에 와서 《개편》의 진상을 목격하며 그 반동적본질을 인식하면서부터 가슴을 치며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였습니다.
지난날 저는 레닌이 창건한 쏘련당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개편》의 본질을 똑바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정치적다원주의, 이 한 문제에서만도 그것을 도입한 동유럽나라들에서 반동사조가 범람하고 반체제세력들이 대두하여 사회주의제도를 뒤집어엎고있는데도 이전 쏘련의 경우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민주주의를 보다 원만히 보장하기 위한 모색으로 생각했던것입니다. 생각하였을뿐아니라 당일군들앞에서 그렇게 발언하여 물의를 일으킨 일까지 있었습니다.
오늘 《개편》으로 빚어진 이전 쏘련사회의 파국적인 사태를 놓고 볼 때 저는 국제문제연구가의 자격이 없으며 그때에 벌써 학자대렬에서 스스로 물러서야 할 인간입니다. 저와 같은 인간이 정치적생명을 가지고 온갖 사회적혜택을 받으며 살아올수 있은것은 그지없이 너그러운 당의 한없는 믿음과 아량의 덕택이였습니다. 지난날 저는 인테리들에 대한 당의 믿음과 사랑의 그늘밑에 숨어 기생하여온 독균같은 존재였다고 자신을 타매하게 됩니다.
자애로운 스승이신 김정일동지!
지난날 저는 당의 목소리를 심장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일찌기 당에서는 쏘련당의 수정주의로선에 대하여 현대수정주의는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에서 그 진수를 수정거세하고 자본주의제도를 복귀하려는 반동적인 사조라고 폭로규탄하였지만 저는 혼자 속으로 다르게 생각하였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한 쏘련당, 레닌의 당이 아무렴 자본주의의 길로 나가겠는가, 이것은 우리 당원들과 인민들속에 큰 나라 당의 로선에 대한 환상이 생기면 자기 당의 로선과 정책에 대한 믿음이 약화될수 있기때문에 그 영향을 막기 위한 과장된 비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인간이였습니다.
저는 일상생활에서는 당과 같이 생각하고 당과 같은 숨결로 숨쉬며 일하며 산다고 말했지만 누구도 모르게 딴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저의 사상생활은 이중적이였습니다. 겉으로는 당의 목소리에 공감하는것처럼 처신했지만 속으로는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저야말로 양봉음위한 한푼의 가치도 없는 인간이였습니다. 저는 이전 쏘련당이 수정주의는 해도 자본주의로는 나가지 않는다고 고집스럽게 믿었던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모스크바에 와서 저의 어리석은 믿음은 산산 깨여지고말았습니다. 여기서 매일매시각 보고 느끼게 되는 현실, 사회적분위기, 토론회들에서 울려나오는 광적인 주장들은 이전 쏘련이 정치리념상으로 자본주의에 들어서기 시작했다는것을 웅변으로 말해주고있습니다.
저는 모진 자책과 후회로 가슴을 치며 피눈물속에 우리 당이 얼마나 정확하고 현명하고 예지로우며 그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이 얼마나 비범한가에 대하여 심장으로 느끼고있습니다. 우리 당의 위대성에 대하여, 우리 당 로선과 정책의 정당성과 그 현명성에 대하여 느끼면 느낄수록 자신이 혐오스러워집니다.
우리 지식인들속에 저와 같은 인간이 과연 어디 있겠습니까. 가까이에 있을 때에는 모르다가 조국을 멀리 떠나와서 대국의 몰골을 보고서야 자기 당과 수령의 고마움을 느끼는것자체가 저의 사대주의적인 체질을 말해주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높은 학위를 가진 학자의 자격도, 당원의 자격도, 공민의 량심도 없던놈입니다.
마땅히 현재의 직무에서 제거되여야 하며 스스로 학위학직을 내놓고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러러 존경하는 김정일동지!
향도의 해발이 비치는 조국의 품이면 어디라도 가서 로동의 구슬땀으로 어지러운 심혼을 씻고 새 인간으로 재생하고싶은것이 이 배은망덕한 인간의 열망입니다.
모스크바의 이 밤, 흉금을 터놓지 않고는 숨쉴수도, 마음의 평온도 영원히 있을수 없어 무엄한 고백의 편지를 쓰게 됩니다.
…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곁에 앉은 한석비서에게 편지를 넘겨주며 읽어보라고 이르시고는 방안을 거니시였다.
한석은 긴장된 얼굴로 편지를 받아 읽어내려갔다. 그의 눈길이 편지의 글줄을 더듬어내려가면 갈수록 얼굴빛이 어둑해졌다. 그는 한번 또 한번 다시 읽었으며 어떤 글줄들은 세번네번 더듬어보았다. 그의 얼굴에 분격, 자책의 그늘이 어른거렸다. 이윽고 편지에서 눈길을 뗀 한석은 피기가 가셔진 얼굴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문가에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겨 바깥을 내다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안락의자쪽으로 걸어오시였다.
《읽었습니까?》
《예…》
《어떻습니까?》
《정말 뜻밖입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자리에 앉으시며 그에게도 앉으라고 이르시였다.
《이사람 견해가 이렇게 돼먹었다는걸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분격에 목소리가 떨리였다.
《돌아와서 연구소에 보고한데 의하면 한 동창생이 우리를 비방하는 소리를 듣고도 되게 면박을 주지 못한 사실도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비방했는데?》
《우리한테도 관료주의가 있기마련이고… 자유화바람을 막지 않았더라면 자기네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게라고 했답니다.》
《음…》 그이께서는 안색이 심중해지시였다.
《우리에 대해서 아주 감정이 좋지 못한자인것 같습니다.》
《어째서 론박하지 못했을가?》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는데… 편지를 보니 그건 변명이고 무엇인가 통하고 공감이 되는 점이 있어 침묵을 지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스스로 뉘우치지 않았습니까?》
《거기서는 그래놓고 돌아와 생각해보니 가책이 되였겠지요. 혁명화되지 못한 지식인들의 심리란 정말 복잡합니다.》
한석의 이마에 피줄이 살아올랐다.
《기술인테리들속에는 과학기술이 앞선 대국에 대한 환상이 더러 있을수 있지만 사회과학부문에는 있을수 없다고 생각한것이 저의 큰 잘못이였습니다. 우리 당이 지난 수십년동안 사대주의, 교조주의… 환상을 반대하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얼마나 줄기차게 진행해왔습니까. 이렇게 집요하니 정말 놀랍습니다. 분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담배가치를 꺼내여 불을 붙이시였다. 한석은 의분을 묵새기지 못하였다.
《박사에 연구소 부소장… 아버지는 전쟁로병, 동생은 당중앙위원회에 있고 얼마나 큰 믿음을 받아왔고… 사회적혜택도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왔는데 무엇이 모자라서?…》
그이께서는 재털이에 담배재를 털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참된 지식인한테는 물질적대우가 문제 아니지요. 가정토대나 환경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오. 그 어떤 권력이나 재부의 유혹에도 굴복하거나 구속되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숭상하며 자기가 믿는 그 진리를 위해서는 개인적불행이나 죽음까지도 무릅쓰고 헌신분투하는것이 그들이 아니겠소. 수령님을 따른 자산계급출신의 큰 인테리들을 보오. 정준택, 강영창, 원홍구… 얼마든지 들수 있습니다. 가정환경으로 볼 때 류수진은 반대의 경우요. 이렇거나 저렇거나 참된 지식인한테는 강제적으로, 기계적으로 주입해서 되지 않습니다. 갈릴레이의 유명한 일화를 생각해보십시오. 리성에 납득이 되여야 합니다.… 스스로 깨닫고 따라오게 되여야 합니다.… 이 편지에 가식으로 느껴지는 점이 있습니까?》
《진심을 고백하기는 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등받이에 기대여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웃음소리를 터뜨리시였다.
《헛허허. 박사선생이 이중적인 정신생활을 하지 않고 일찌기 우리한테 론쟁을 걸어왔더라면 더 통쾌했겠습니다. 그랬더라면 벌써 깨달았을것이고 이런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되였을것인데… 내내 본심을 숨겨왔습니다.》
그러시며 한석에게 앉으라고 손짓하시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앉아 손으로 벗어질사한 이마를 쓸어만지고는 불깃해진 얼굴로 말씀드렸다.
《정말 혁명화되지 못한 지식인의 심리구조란 간단하지 않습니다. 미궁속처럼 그속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짐작할수 없습니다. 쏘련 수정주의에 대한 우리 당의 비판이 과장된 비판이라고… 이거야 사실과 맞지 않는 과장이고 나가서 허위적인 비방이란 소리가 아닙니까?! 정말 고약합니다…》
《그 대목을 읽을 때엔 나도 가슴이 떨렸습니다. 참지 못해 지난밤에 류수명동무를 불러 편지를 보였습니다. 그 동무는 편지를 읽고 너무 기막혀 얼굴이 캄캄해졌습니다. 형이 이런 인간인줄 몰랐다면서 이건 동상이몽이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무리 지나간 일이라고 해도 종이에 잉크로 쓴 편지 몇장으로 용서될 문제가 아니라고, 아버지가 알면 형하고 의절할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를 내보내고 여러모로 생각해봤습니다. 편지도 다시 읽어보고…》
한석은 심각한 눈빛으로 그이를 지켜보았다. 그이의 눈언저리에 고뇌의 그늘이 가시지 않고있었다. 방안은 심연처럼 고요해졌다.
《편지에… 고백하지 않으면 숨도 쉴수 없고 마음의 평온도 영원히 있을수 없다고 쓴 구절에서 눈을 뗄수 없었소. 누구도 모르는 문제를 가지고 마음의 평온도 영원히 있을수 없다고 생각한 여기에, 바로 여기에 량심… 지성인의 량심이 있지 않는가! 나는 량심을 보았소.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누구도 모르던… 친동생이나 아버지도, 안해도 모르던 문제를 연구소나 사회과학원의 그 누구도 아니고 우리한테 직접 고백했습니다. 헐한 일이 아닙니다.》
《아마… 아마… 너무 엄청난 문제니까 어차피 당에 보고될것인데 직접 쓰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
《또 무엇입니까?》
《괴롭기는 하고 고백은 해야 되겠는데 자기 단위 일군들은 심장이… 그릇이 작아… 서뿔리 고백했다가 더 큰 화를 입을수 있다고 타산했을수 있습니다. 한편 속담에 있는것처럼 죽어도 큰 칼에 맞아 죽자는 심리도 작용하고…》
《사람이니까 누구든지 이런 운명적인 문제에서는 복잡한 생각을 할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타산도 할수 있고… 그러나 이 박사는 깨닫자 그자리에서, 모스크바에서 우리한테 운명을 의탁해서 흉금을 터놓고 모든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엄벌이 기다릴수도 있는 조국으로 날아왔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그의 사람됨됨을, 인간적인 질을 보았습니다. 타산?! 아니요. 그건 없었소. 그는 보통문제가 아닌 크고 엄중한 사상문제들을… 현시대의 가장 날카로운 정치문제와 관련된 혁명, 공산주의운동의 생사운명과 관련된 문제에서 범한 과오를 자백하고 뉘우쳤습니다. 어떻게 되여 한 지성인이 이런 용단을 내릴수 있었는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당을 모르는 사람들이 알면 자살행위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류수진이라는 조선의 학자는 자기 개인의 운명문제같은건 념두에도 없이 고백했습니다.
무엇이, 과연 무엇이 이런 용단을 내리게 했는가? 나는 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 주의주장의 진리성, 선견지명을 깨달은 그 환희가 너무 커서, 그 환희의 열광에 아무것도 꺼리지 않고 썼습니다. 진리앞에서는 무엇도 다 버리고 무릎을 꿇는것이 지성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류수진박사는 참된 지식인입니다. 이제는 그한테 우리 당의 주체사상이 신념화될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기쁩니다. 력사적으로 보아도 진리를 깨달은 지성인은 그 진리를 위하여서는 생명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떤 역경속에서도 배신을 몰랐습니다.… 그는 자기 과오를 깨닫고 번민하던 끝에 우리를 믿고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이 소행에는 우리한테 의거하여 재생하려는, 우리를 따르려는 강렬한 지향이 깃들어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이런 학자를 과거지사를 계산하여 가혹하게 처리한다면 우리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옛날에 있은 레닌과 작가 고리끼의 론쟁이 생각납니다. 창신론의 제창자였던 고리끼는 반대파세력에 대한 볼쉐비크당의 무자비성에 의견을 품고 박애, 인도주의를 호소하며 레닌을 설복하려고 했습니다. 사회혁명당의 인테리녀성 카프란에게 저격당한 레닌은 문병 온 고리끼에게 그가 호소한 인도주의를 상기시켰습니다. 그후 백색테로에 대한 <적색테로>의 모진 바람이 온 대륙을 휩쓸었습니다. <적색테로>의 그 바람속에서 동요하는 사람들, 립장이 철저하지 못한 일부 동반자들도 화를 입었는데 오늘도 사회주의의 원쑤들은 그것을 공산주의자들의 영상을 흐려놓는 선전자료로 악용하고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우리 당의 정치리념은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주체철학에 기초한 인덕정치입니다.
인덕정치… 이건 수령님께서 창시하시고 실천적인 모범을 보이신 가장 혁명적이고 가장 인도적인 정치리념입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과거의 죄과를 용서하고 포섭한 사람들중에는 김구나 최덕신 같은 인물도 있지만 배신자들도 있었습니다. 무서운 배신을 당한후에도 수령님께서는 변함없이 포섭한 사람은 다 한품에 안고 손잡아 혁명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인덕정치의 력사에는 곡절도 많았지만 수령님의 정치리념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그 견인력, 자기 정치철학의 진리성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정치가만이 이렇게 할수 있습니다. 심장이 큰 정치가, 위인만이 변함없이 인덕정치를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다가 피해를 입어도 믿어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는 이 편지를 보고 류수진박사를 믿고싶었습니다. 일이 아무리 바빠도 그를 한번 만나봐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활달하게 방안을 거니시다가 손세를 쓰며 웨치시였다.
《쏘련의 <개편> 현실… 류수진박사의 편지!… 이건 우리가 옳았다는 반증입니다. 우리가 옳았지! 우리가 우경적인 <개편>을 배척하니 고립주의라구?! 핫하하…》
그 통쾌한 웃음소리에 방안이 떠나가는듯 하였다. 한석비서는 터져오르는 격정을 누르며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았다.
(아, 어떤 심장인가! … 어떤 도량인가!!)
그리고는 이 정신적인 거인앞에서 자기의 정신적빈곤이 느껴져 이마에 식은땀이 내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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