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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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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55회 작성일 21-06-27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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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호텔을 나설 때 수진은 라옙쓰끼를 불러세우고 어디 조용한데 가서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하였다.

라옙쓰끼는 손을 쳐들며 오늘밤에는 시간이 없으니 래일, 래일 만나자고 하였다. 그때 로씨야동창생들과 어울려 현관문을 나오던 리지야가 다가와 그의 팔을 끼며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좀 걷자고 청하였다. 외면할수 없었다.

수진은 대통로쪽으로 나오며 리지야에게 라옙쓰끼는 어떤 사람인가고 물었다.

《대학시절의 라옙쓰끼는 없어졌어요. 기질만 좀 남고… 그의 사상감정은 미궁속이나 같지요.》

《어째서 그렇게 됐소?》

《그저 그렇게 됐지요. 몇해전만 해도 기계공업분야의 대단한 간부였어요. 주당, 로련당중앙과 늘 충돌하여 다계단식추락을 하더니 나중에는 야꾸찌야쪽 어느 자그마한 기계공장 지배인으로 가고, 거기서 출당, 철직… 안해는 도망쳐버리고…》

《원 저런!…》

《그 기계공장이란 신설이였는데 주에서 주택건설예산을 주지 않아 로동자, 기술자 세대들에서 겨울에 동상자가 생기고… 그래서 소요가 일어났어요. 반당적기분이 농후한 지배인이 선동하여 그런 소요가 일어났다고 출당을 주었다나요. 기막혀서… 그의 녀동생이 우리 이웃에서 살았는데 늘 오빠때문에 눈물로 세월을 보냈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

《아, 라옙쓰끼… 고아신세가 되여 모스크바로 돌아온 그를 우와로브가 끌어당겼어요. 그의 집에 묵으며 반체제적인 인테리들과 어울려 돌아갔어요. 녀동생은 그가 반공분자가 되였다고 통탄했어요. 그후 모스크바에서 사라졌는데 까잔으로 갔다더군요.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

《아까 라옙쓰끼는 우와로브한테 살인자라고 소리쳤는데 그건 무슨 뜻이요?》

《…》

《누구를 살인했단 말인가?…》

《…》

《리자, 저들이 어째 당신한테만은 동창회에 참가하라는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소?》

《말하고싶지 않아요. 말하지 말자요. 아무 말도… 30년만에 만났는데 조용히… 추억에 잠겨 걷자요.》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류수진의 팔을 더 꼭 끼며 속삭이였다. 그 녀자는 호텔식당에서도 권하는 술만 마시며 깊은 이야기를 피하는 눈치였는데 거리를 걸으면서도 역시 같았다.

수진은 말을 더 건네지 않았다.

그 녀자는 술에 취해버린듯 포도를 걸으면서 이따금 발을 헛디디기까지 하였다. 알수 없는 운명의 곡절로 하여 녀성의 수집음이나 절제감마저도 다 줴버리고 타락하여 좀 거칠어진듯 한 리지야… 그는 대학생시절 리자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 가슴이 아파나고 사연을 캐여묻고싶었지만 그럴수 없어 묵묵히 걷기만 하였다.

모스크바의 밤은 깊어갔다.

그들은 까멘늬다리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서 대극장쪽으로 걸었으며 그리고 뚜르브나야광장으로부터 뿌슈낀광장까지 나갔다가 돌아섰다. 그들이 한 지하도에 들어섰을 때였다. 인적이 드문 지하도의 벽쪽에 대여섯사람이 둘러서있는데 그속에서 애젊은 로씨야청년과 외국관광객인듯 한 나이지숙한 뚱뚱보가 로어와 영어를 뒤섞어가며 벅작 떠들어대고있었다. 무슨 흥정판이 벌어진것 같았다.

수진은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리지야는 따라오지 않았다.

로씨야청년이 쏘련공산당 당증 3개를 펼쳐들고 하나에 10파운드씩 내라고 소리치고 외국인은 너무 비싸다고 하며 레닌그라드에서도 5파운드에 판다고 떠들었다.

《이봐 총각, 이거야 70년대, 80년대 당증이 아니야. 17년이나 그 이전시기 로볼쉐비크들의 당증만 가져오면 100파운드이상 주겠어.》

《존귀하신 나리, 로볼쉐비크들 그 세대는 다 땅속에 들어간지 오래지요. 어디에 그런 당증이 있겠나요.》

《총각, 그따위 풋내기들 당증은 골동품가치도 없어. 5파운드도 과남하지. 헤헤헤…》

수진은 가슴이 떨리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더욱 놀라운것은 지체가 있어보이는 구경군어른들의 방심한 태도였다.

이윽고 지하도의 층계를 따라 걸어올라가 밖으로 나왔을 때 리지야는 그의 팔을 끼며 한숨을 짓다가 유쾌한듯 웃어대기까지 하였다.

《평양에서는 저런 일이 없겠지요? 놀라지 말아요. 모스크바에는 흔한 일이예요. 당증!… 아, 당!… 아, 지난날에는 얼마나 신성시되였던가요! 이젠 트럼프장보다도 못해요. 저렇게 되여 싸지요, 싸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것 같던 그 녀자는 갑자기 수다스러워지기라도 한듯, 아니면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의분을 누를길 없는듯 수진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열변을 끝없이 토로하였다.

《전… 전… 불행할대로 불행해지면서…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개편>을 저주하게 되였어요. 이 사회를 더럽게 생각하고 증오하게 되였어요…》

그날밤 리지야가 열기를 풍기며 토로한 고백들에서 눈물과 탄식소리, 분격에 반복된 구절들과 욕설 등을 덜고 그 개요만 적으면 대체로 아래와 같다.

 

리지야 꾸즈네쪼바의 고백(1)

 

…대학을 졸업하자 인차 한 남자와 결혼했어요.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예요. 서로 반했지요. 동무의 결혼식에서 알게 되였고 그다음… 다 되였어요. 그 시절에는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주 평탄하고 가까왔으니까요. 그이는 다른데서 대학연구원을 졸업하고 우리 대학 재료력학강좌 교원으로 온 학사였어요.

나를 무척 귀중히 여겼어요. 결혼후에도 내가 슐삔이라는 자기 성을 따르지 않고 우리 로볼쉐비크가문을 존경하여 할아버지와 아버지성을 그냥 따르도록 했어요.

탐구심이 강하고 수재형의 명석한 두뇌를 가진 열정가이고 모든 문제에서 정의감이 남다른 사람이였어요. 불같은 성미였지요. 내가 바로 그 정의감, 그 불같은 성격에 매혹되였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그 비타협적인 정의감이 화근이 되여 나와 우리 가정을 파멸에로 몰아넣을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어요. 결혼후 몇해동안은 정말 행복하게 생활했어요. 모든 일이 잘되고 집문으로는 기쁜 소식만 날아들고… 우리 둘사이에 딸이 태여난것은 온 집안의 경사였어요. 그때 할아버지는 공산주의사회의 공민이 태여났다고 웨치며 돌아가다가 아기 이름을 쓰웨뜰라나, 쓰웨따라고 짓자고 하였어요.

쓰웨뜰라나… 쓰웨따… 나의 귀염둥이가 토실토실 살이 오르며 자라날수록 집안의 행복도 커가고 쏘베트조국도 번영해가는것 같았어요.

우리 집안사람들은… 할아버지나 어머니나 어느덧 서력보다도 쓰웨따의 나이로 모든 사변들을 기억해두는데 습관되였어요. 쓰웨따가 몇살때 아버지가 로력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쓰웨따가 몇살때 어느 우주비행선이 날아올랐다고… 쓰웨따는 우리 가정에서 행복의 상징이였어요.

쓰웨따가 12살 때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어요. 우와로브… 대학 3학년에서 협잡과 불량행위로 출학당했던 우와로브가 13년만에 권총과 비수를 품고 로마에 나타난 리바레스처럼 바로 자기를 추방한 우리 대학에 재료력학강좌 교원으로 배치되여왔어요. 등에처럼 브라질의 쟝글에서 상처입은 흠집은 얼굴에 없었지만, 예나 다름없이 멀쩡한 얼굴이지만 공산당원이 되여 돌아왔어요. 그는 곧 강좌의 세포비서로 되고 다음에는 대학당뷰로성원이 되였어요. 그에 대한 소문이 뒤에서 수군수군 돌아갔어요. 남로씨야 어느 변강의 탄광막장에서 여러해동안 일하며 로력혁신자로 되고 공산당원이 되였다, 변강당 경리부에서 일하다가 그곳 공업대학에 편입하여 연구원까지 나왔다, 탄광로동이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십여년전 그의 출학을 주장했던 학부장과 교수들은 마음이 은근히 긴장되였어요. 그가 앙심을 품고있지 않을가 해서… 그를 외면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한테 고분거리는 사람도 생겼어요. 남편과 우와로브는 아주 사이가 좋았어요.

그는 남편하고 강의내용을 놓고 자주 토론도 하고 조언도 받았어요. 이따금 우리 집에 찾아와 포도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참 다행스러운 일이였지요.

뜻밖의 사건이 생겼어요. 우와로브가 학사학위를 받기 위해 제출한 론문이 남편의 정의감에 불을 질렀어요. 그 론문이란 한해전 교통사고로 참사한 연구생의 론문을 통채로 표절한것이였어요.

그 연구생은 남편이 지도하고 사랑했던 천재적인 제자였어요. 론문을 읽고난 남편은 분개했어요. 잠을 자지 못했어요. 밤새껏 담배만 피우며 이런 사이비학자, 절도범은 대학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소리쳤어요.

나는 그를 달래였어요. 과학기술연구의 착상에서는 우연한 일치도 있지 않는가, 무선전화의 발명에서 로씨야의 뽀뽀브가 이딸리아의 마르코니를 표절했다고 할수 있는가, 그는 힘있는 사람이다, 자중하라고 무슨 소리인들 안했겠어요.

그러나 남편은 안해의 현명한 충고를 듣지 않았어요. 대학당뷰로와 대학평의회에 문제를 제기하고말았어요. 대학의 교수들속에 여론까지 환기시켰어요. 대학당뷰로와 평의회의 공동료해가 진행되였어요. 우와로브의 무죄로 결론되였지요. 내가 말한것처럼 우연한 일치, 부분적인 문제들에서 우연한 일치가 있을뿐이라는것이였어요. 오해를 당한 순결무구한 량심의 소유자 우와로브에게는 학사학위가 수여되고 남편은 시비군으로, 시기심의 발작으로부터 함부로 남을 걸고드는 비렬한으로 규탄되였어요. 신성한 학계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느냐고 믿어지지 않겠지요.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예요. 량심적이라는 적지 않은 교수들까지도 강좌의 세포비서이며 대학당뷰로성원인 우와로브의 편역을 들었으니까요. 앞을 다투어 그럴수 없다, 아니다 라고… 그후 남편에 대한 우와로브의 태도는 여전했어요. 아니, 더 상냥스러워졌어요. 승리자의 아량으로 대하는것 같았어요.

4년후 런던공업대학의 학보에 남편의 론문이 실렸어요. 그것은 우리 대학의 학보에서 전재한 론문이였는데 특수강재의 전자현미경사진 두장이 첨가되여있었어요. 남편도 모르고 우리 학보에도 없는… 남편은 경악하여 정신이상처럼 되였어요. 이것은 모해다, 나를 국가기밀루설죄로 제거하자는 모략이라고 소리쳤어요. 며칠후 런던에서 저자에게 보내는 기증본잡지와 후한 원고료가 국제우편국으로 도착하였어요. 한달후 남편은 갑자기 구역검찰소에 련행되여가 심문을 받기 시작했어요. 특수강재의 전자현미경사진을 어디서 누구한테서 입수했으며 어떤 경로를 통하여 나토성원국인 영국에 보냈는가 하는것이였지요. 심문도중 남편은 뇌익혈에 쓰러졌어요. 그다음은 가석방, 대학에서 해임되고… 나는 억울하고 분해 구역당과 시당, 로련공산당과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 해당 부서들에까지 찾아다니며 해명해줄것을 청원했어요. 눈물을 쏟으며… 며칠후 오라지요.

그때 가까운 이웃들와 동무들은 찾아다니지 말라, 더 화를 입을수 있다, 대학당뷰로의 승인밑에 해임된것인데 그것이 뒤집혀지겠는가, 공산당상급기관들은 다 하급당조직들의 편이다, 그것이 공산당원들의 원칙이고 당성이고 계급성이라고 충고했어요. 라옙쓰끼도 찾아와 공산당원들은 누구나 다 공산당원들의 편이라고 했어요. 나는 그런 소리들을 믿지 않았어요. 그래서 찾아오라는 날에 찾아가면 어디서나 랭대했어요. 가석방한것만도 대단한 관용이라면서… 시당의 한 과장이란자는 우리는 우와로브동지를 걸고든 때부터 색다르게 봤다면서 아예 외국의 앞잡이처럼 대하지요.

반년후 남편은 사망했어요. 숨지기 하루전 새벽 그이는 내 손을 잡고 말했어요. 사리를 따져놓고 보면 나한테 호감을 품고있는 사람이 살인적인 계책을 꾸밀수 없소. 적의를 품고있는 사람이 했소. 그런데 나는 누구한테도 죄를 짓지 않았소. 이 세상에서 나를 증오할수 있는 사람은 우와로브 혼자뿐이요. 우와로브요… 법적인 근거는 없지만 나는 그 추리가 옳다고 믿게 되였어요.

장례식날 바로 그 우와로브가 찾아와서 분묘앞에서 경건하게 조의를 표했어요. 내가 미치지 않은것이 이상해요.

우와로브는 그후 날개가 돋친듯 승진의 계단을 껑충껑충 뛰여올라 누구의 장애에도 부딪치지 않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학부장이 되더니 인차 부학장이 되였어요. 나한테서는 술재간만 늘고 술만이 나를 위안해주었어요.

<개편>이 시작되자 억울하게 처형되였거나 류형당한 사람들의 명예회복바람이 불었어요. 나는 거기에 기대를 걸고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자고 다시 여러 기관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람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몰아치는 미친 바람인것 같았어요. 그 바람속에서 에쎄르당원인 시인 만데르쓰땀의 명예가 회복되고 마호노와 께렌쓰끼가 애국자로 추대되고 로마노브황제를 찬양하는 목소리들이 터져오르더니 아르바뜨거리 우리 집 창문으로 돌멩이가 날아들었지요. 할아버지가 에쎄르당 중앙위원들에 대한 비법적인 집단체포에 참가한 살인귀라는것이지요.

젊은 망나니들이 십여명이나 몰려들어 구호를 부르며 볼쉐비크늙다리 나오라고 소리치며 휘파람을 불어대고 조롱하는 소리들을 미친듯이 부르짖었어요. 에핌할아버지는 분노를 참지 못해 붙잡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밖으로 달려나가 놈팽이들을 족치려다가 몽둥이에 맞아 이마가 피칠갑이 되여 쓰러졌어요. 며칠후 구역주택관리소에서 찾아와 불법입사라면서 집을 내라고 했어요. 그날밤 아버지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여 쏘파에 쓰러져 이 모든것… 이 모든것은 저 6호실에 있는 정신병자때문이라고 했어요. (쓰따라야광장 쏘련공산당중앙위원회 청사 5층 6호실이 총비서의 집무실) 아버지는 <개편>을 반대하고 그 정신병자와 추동자인 야꼬블레브를 증오해왔지요.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어요. 심장마비였어요. 집없는 신세로 되여 한지에 나앉게 된 우리는 먼 교외에 있는 벨지끄촌 친척집으로 이사가서 할아버지와 어머니, 나 이렇게 셋이서 단칸방에서 살게 되였어요. 쓰웨따는 기숙사에 들고… 몽둥이에 맞은 타박상의 후유증때문인지 할아버지는 아주 실성해서 스몰리늬 일리이츠한테 찾아간다고 헛소리를 치며 집에서 자주 뛰쳐나가서 어머니와 함께 끌어들이군 했어요. 그해 겨울 어느날 밤 나와 어머니는 깊은 잠에 들어 할아버지가 집에서 나가는걸 몰랐지요. 이른 아침에 모스크바로 들어가는 한 길에서 눈에 묻힌 할아버지의 시체를 찾았어요. 눈보라가 아우성치는 아침이였어요. 92살의 로볼쉐비크는 애도사도 없이 추도곡의 울림도 없이 한적한 야산의 언땅속에 쓸쓸히 묻혔어요.

나에게는 늙은 어머니와 쓰웨따만 남았어요. 매력있고 교양이 높은 처녀로 숙성해가는 쓰웨따를 보는것이 유일한 기쁨이고 자랑이였는데 그애는 어릴적부터 순결하고 정의롭고 정직하게 자라와… 마음이 곧고 깨끗한 쓰웨따는 가정이 당한 모든 참사의 목격자, 체험자로 되였어요. 그 파란곡절속에서 그애는 마음이 이그러지고 엇나가기 시작했어요. 나는 엄마로서 자기 품속에서 키운 딸의 가슴속에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회의심이 가득 차는것을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어요. 쓰웨따는 대학공부에 흥미를 잃었어요. 남자동무들과 밀려다니며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신다는 소리도 들려왔어요.

어느 일요일 먼 교외의 집으로 찾아온 기회에 헛된짓에 시간을 랑비하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타일렀지요. 쓰웨따는 픽 웃어보이고는 얼굴빛이 사나와져 공부는 해서 뭣하느냐고 항변했어요. 무슨 소리냐고 욱박지르니 대학졸업생은 로임이 110루블이지만 합영회사 운전수는 다 300루블이상이다, 4년을 배우고 110루블… 넉달 배우고 300루블… 이런 판국에 공부는 해서 뭣하느냐고 소리쳤어요. 그리고 막 내뿜었어요. 연구기관 녀성학자들은 국내산 눅거리화장품을 쓰지만 무식한 호텔접대원들은 <샤네리>, <마크스파크톨>, <크리스티안 지올>을 쓴다, 엄마는 네크로만, 파킹, 니나리치… 이런 류행복이름을 알기나 하는가, 돈을 벌겠다, 돈을 벌어 외국제화장품을 쓰고 외국제고급류행복을 떨쳐입고 뽐낼테야, 쫓겨난 아르바뜨거리 집보다 더 멋진 집을 사겠다, 도적질을 하든 마피아단에 들어 강도질을 하든 매음을 하든… 내가 어떻게 졸도하지 않았는지… 뺨을 쳤어요. 그리고 울었어요. 너도 쏘베트의 대학생이냐고 소리치며… 쓰웨따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반발했어요. 쏘베트, 사회주의, 정의로운 사회… 엄마가 어릴적부터 나한테 불어넣은 사상은 다 거짓, 새빨간 거짓이라고. 아버지의 자그마한 정의감마저도 짓밟히는 사회, 량심적인 학자인 아버지는 무서운 오해로 무덤속에 구겨박히고 협잡군, 음모가, 사이비학자 우와로브와 같은 인간들은 까마득히 높게 출세하여 영광을 누리는 사회, 이건 꺼꾸로 된 세상이 아닌가, 량심보다도 비량심이, 정직성보다도 협잡이, 진실보다 허위가 득세하는 세상, 이것이 쏘베트사회인가, 사회주의, 조국, 당, 간부… 엄마가 신성시한것들은 다 메스꺼운것들이다, 신성한것들이란 아무것도 없다, 사회주의조국도, 당도, 정조도… 그년은 통곡하며 방에서 뛰쳐나갔어요. 한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어요. 두달이 지나도… 나는 대학기숙사로 찾아갔지요. 동무들 말이 호실의 두 처녀와 함께 한달전에 종적을 감추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다고, 모스크바에는 있는것 같지 않다는것이였어요. 나는 레닌그라드, 리가, 민스크까지 가서 찾아보았어요. 허사였어요. 몇달후 집에 무기명편지가 날아들었는데 그애가 어느 외국인을 따라 서도이췰란드나 핀란드쪽으로 도망친것 같다는 소식이였어요. 내 딸, 내 귀염둥이 쓰웨따… 내 한생의 밝은 빛은 영영 꺼져버렸어요.

수진은 쓰웨따의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가슴이 얼어붙었다. 자기 호실에 들어왔던 창녀가 생각나서였다.

그들은 뽀끄롭끼사원의 층계에 앉아있었다. 그 녀자는 동을 터치고 쏟아져나오는 비감의 격류를 막을길 없는듯 진정을 못하고 흐느끼며 계속 말하였다.

《쓰웨따… 쓰웨따는 똑똑하고 귀엽고 대바른 애였어요. 다 키워서 잃었어요. 아… 사람들은 그애가 신통히 나를 닮았다고 했지요. 아마 당신도 거리에서 그애를 만난다면 어렵지 않게 내 딸이란걸 느낄거예요.》

참을수 없었다. 털어놓았다.

《…자기를 그저 쓰웨따라고 했습니다. 꾸즈네쪼바라는 성만 말했어도 복도로 내쫓지 않고 캐봤겠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쫓은 다음에야 용모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녀자는 품속에서 황황히 사진을 꺼내 내밀었다.

그는 외등의 환한 불빛밑에서 그 사진을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아니다. 비슷하지만 인상이… 인상이 이렇지 않았어.)

《비슷하지만 이렇지 않았소. 인상이… 인상… 내 말을 믿어주시오. 믿어주시오!》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불이 황황 이는듯 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가슴이 떨렸다.

《인상이 이렇지 않았소. 다르오. 난 량심적으로 말하오. 솔직히 말하오. 인상이… 인상이…》

어째서 말이 자꾸 변명조로 나가는지… 그 녀자는 아무 소리도 듣기 싫은듯 머리를 푹 숙이고있다가 품속에서 얄팍한 술병을 꺼내 입에 대더니 게걸스럽게 꿀꺽꿀꺽 마시였다.

《리지야, 이러지 마시오. 이러지 마오!》

그 녀자는 자기 팔목을 붙잡는 수진의 손을 홱 뿌리치고는 절통한 울음소리인듯, 야유의 웃음소리인듯 거치른 소리를 내질렀다.

《아하, 로볼쉐비크 손녀가 창녀로 됐어! 아-》

술병이 포석에 날아떨어져 박산이 되고 그 녀자는 가슴속에 서리서리 서린 원한, 세월과 더불어 쌓이고쌓이며 다져진 분노의 응혈이 터진듯 화닥 뛰여일어나 우들우들 떨며 레닌묘앞으로 달려가더니 두주먹을 높이 쳐들어 흔들어대였다.

《레닌! 레-닌!》 피를 토하는듯 한 부르짖음소리… 《눈을 뜨라- 나를 보라- 당신은 속였는가?!- 나를- 로씨야를!- 당신의 진리는 어디로- 갔는가?!-》

그 녀자는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비청거리다가 가슴을 찢어발기는듯 한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포석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수진은 황황히 달려가 리지야 꾸즈네쪼바를 안아일으켰다. 그 녀자는 정신없이 몸부림치며 그를 와락 밀쳐버리고는 광장을 가로질러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수진은 자신도 알수 없는 함성을 터뜨리며 뒤따라갔다. 그러다가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사태처럼 허물어져내리면서 온몸의 기운이 발밑으로 잦아든듯 순간에 맥이 진하여 허둥거리다가 멎어섰다.

(아, 사람도 망하고 사회도 망하고… 다… 다… 망했다!)

아우성치며 광장을 휩쓰는 차거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그는 헉 하고 느꼈다. 그리고는 비통하게 중얼거리였다.

《다 망했어… 망했어…》

크레믈리성벽 저쪽 최고쏘베트청사지붕우에서는 련맹의 붉은기가 조기의 거먼 빛을 띠며 누데기처럼 펄럭이였다.

문득 인민경제대학 강실에서 자기한테 예리한 질문을 들이대던 청강생의 얼굴이 눈앞에 번개쳤다.

(그는 이런 비극을 예감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나는 왜?… 왜?… 그가 느끼는것을 느끼지 못했던가? 무엇이 나를 둔한 머저리로 만들었는가?…)

그는 머리를 수굿하고 걸음을 떼였다. 자신에 대한 모멸감, 환멸감… 발길이 가는대로 어디라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는 자기 심혼을 들여다보다가 오한을 느끼며 뚝 멎어섰다. 사나운 바람속에 코트자락이 다리에 휘감겼다…

그는 호텔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 포멘꼬한테서 페회식이 있으니 대학으로 어서 나오라는 전화를 받고도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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