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영원한 넋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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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기슭에 위치한 야전숙소의 밤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희미한 불빛이 비쳐나오는 숙소앞의 그리 넓지 않은 마당을 고민혁부총리와 함께 거닐고계시였다.
《안변청년발전소 제1계단건설에서 그처럼 론의가 많던 조정지의 필요성이 인정되여 건설이 진행되고있는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 론의가 지금까지 계속되였다면 당의 조기조업방침을 어떻게 실현할수 있겠습니까?》
그이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고민혁은 무엇때문인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장군님, 조정지문제는 락착되였지만 2계단건설의 주타격대상이라고 할수 있는 기본언제설계가 예견성있게 완성되지 못하고 의견이 계속 대립되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아무말씀없이 소연히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그 문제는 이미 인민군대에서 올린 문건을 통하여 대략 알고계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생전에 기본언제는 사석언제로 할데 대하여 결론하시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론난의 대상으로 된것은 사석언제를 씌울 겉벽문제였다. 수십센치메터두께의 철근콩크리트겉벽식으로 하자는 안과 함께 수십메터두께의 진흙겉벽식으로 하자는 안이 엇갈리고있었다. 콩크리트겉벽식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그렇게 하는 경우 언제안의 물이 샐수 있다는 주장이고 진흙겉벽식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언제의 안전을 담보할수 없다는 우려였다. 량측 설계가들은 모두 발전소건설들에서 전적을 가지고있는 권위자들인데다가 주장들이 하도 격렬하여 국가과학기술위원회나 건설위원회(당시), 전력공업위원회 책임적인 일군들까지도 좌왕우왕하고있었다. 이런 론난은 순수 기술적문제로만 볼수 없으시였다. 전후부터 대규모수력발전소건설을 수없이 해왔지만 이번처럼 설계진척과정마다 의견대립이 반복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안변청년발전소건설은 시작부터 얼마나 고심참담한 길을 걸어왔던가. 건설계획이 발표되자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이모저모로 악랄하게 훼방을 놀았고 우리는 또 우리들대로 어려운 경제사정속에서 건설을 내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여기에다 기술적론난으로 걸음걸음 건설이 진척되지 못하고있으니 이런 과정이 지속된다면 적들에게 언질을 줄것은 물론이고 언제가도 발전소를 건설할수 없다는 소리까지 나올수 있었다. 이처럼 문제가 하도 심각하기에 최고사령관명령으로 제1계단조기조업을 하달하지 않았던가!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힘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도 알다싶이 우리 당은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사회의 본보기로 하여 혁명과 건설을 령도할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안변청년발전소건설에서부터 인민군대가 사회의 본보기로 될데 대하여 강조한바 있습니다. 그런데 설계를 맡은 동무들이 제할바를 못한다면 어떻게 당의 의도가 관철될수 있겠습니까?》
부총리는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이미전에 나는 안변청년발전소건설은 단순한 경제적문제가 아니라 정치적문제라고 언명한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들의 훼방도 있는데다가 경제형편이 점점 더 최악의 상태로 내닫고 공사과정에 예상치 않던 과학기술적난점들이 제기되자 우리 내부에서까지 동요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까지 극복하지 못하고있는 복잡한 의견대립을 과연 기술적인 문제로만 해결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왜서 론난을 거듭하고있는지 근원을 정확히 밝혀야 할것 같습니다.》
고민혁은 정신이 든듯 펀뜻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곧 자책감을 금치 못하며 말씀드렸다.
《장군님, 그러고보면 제가 그만 기술실무적인 문제라는 깊숙한 함정에 빠져버리고말았습니다. 빠져도 너무 깊이 빠져버려 당에서 맡겨준 부총리라는 직분까지 잊고말았습니다.》
그이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알았다면 됐습니다. 그러나 기술실무적인 문제에서 헤여나 모든 문제를 정책적으로 가려본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자면 우선 설계집단을 이루는 매 사람들을 깊이있게 료해하여볼줄 알아야 합니다.
참, 조정지언제를 설계한 남창명설계가가 아직도 과학자돌격대와 별도로 군부대현장에 거처를 정하고있습니까?》
《예,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경향 역시 의견대립을 산생시킬수 있는 요소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설계집단이 서로 합심할겸 숙소를 옮기게 할 작정입니다.》
그이께서는 가볍게 손을 저으시였다.
《그대로 놔두시오. 경향이라고 할것까지는 못됩니다. 설계가들마다 제나름의 생활방식과 설계방식이 있는데 그것까지 간섭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방식이 좋은 설계안을 내놓을수 있는 조건으로 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됩니다.》
고민혁은 다시금 큰 충격을 받은듯 했다.
그이께서는 그 어떤 예감으로 가슴이 묵직해오시여 부총리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제2계단건설대상에 대한 설계 역시 순탄치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무가 많은 수고를 해야 할것 같은데 지금부터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민혁부총리를 바래우고나서 숙소안으로 들어서시였다.
야전탁우에는 전선동부 102련대작전지역이 표시되여있는 군용지도가 여전히 펼쳐진채로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민혁부총리를 접견하기 앞서 이 방에 모여앉았던 인민군지휘성원들을 생각하시였다. 102련대가 위치한 최전연을 다음번 현지시찰일정에 제기하자 장령들은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 최전연에 나가시는것만은 삼가해달라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그때를 돌이켜보시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시였다. 최고사령관이 안전한 곳만 찾아다닐바에야 무엇때문에 현지시찰이 필요한가!…
전연정세는 어디나 다 그러하지만 102련대가 위치한 지대는 그전 시기부터 오늘까지 적아쌍방간의 치렬한 최대열점지대에 속한다. 적 《경호함 56》호도 그 수역에서 격침되였고 얼마전에 있은 적무장직승기격추사건도 그곳 전연에서 발생하였다. 지금도 102련대 전연에서는 적들의 의도적인 도발이 계속되고있다. 각종 심리전수단들로 우리 군인들을 자극하는 한편 비무장지대 남쪽지역에 무반동포와 중무기들을 끌어다놓고 우리측 초소를 향하여 때없이 무모한 사격을 가하는 등 고의적으로 긴장을 조성하고있다. 얼마전 미전략정찰기 《U―2R》가 102련대와 면한 경계상공을 침범한 사건으로 하여 그 일대 아군 대공화력타격수단들은 24시간 발사대기상태에 들어가있다.
그이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첨예한 정황이 조성되고있기에 더더욱 직접 나가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더우기 그 일대로 말하면 해방된 강산에서 새 조국건설이 한창 진행되던 때 그이께서 어버이수령님과 어머님을 모시고 이미 다녀가보신 곳이기도 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시였다. 끝없이 굽이쳐간 해안가를 반기며 달려오던 흰파도, 기기묘묘한 바위들, 새생활의 즐거움이 차넘치던 아름다운 어촌마을, 어머님께서는 그곳에서 수령님께 말씀드린 후 또다시 어리신 그이의 손목을 잡고 지금은 남녘땅으로 되여있는 화진포리까지 나가시였던것이다. 바로 화진포리를 지척에 둔 초소에서 그곳 장병들과 함께 통일의지를 함께 나눈다면 얼마나 서로의 큰 고무와 힘으로 되겠는가. 벌써 그들의 모습을 보시는듯싶었다. 3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오중흡7련대 사령부보위정신을 예술소조공연에 담았다는 그곳 초소군인들이며 아버지에 이어 351고지를 지켜섰다는 련대장의 모습도 어째선지 꼭 구면일것만 같이 생각되시였다.
바로 이런 련대이기에 중요하게는 동서로 뻗어간 최전선이 이곳 해안에서부터 시작되기에 102련대를 본보기로 준비시켜 전군의 부대, 구분대들의 전투력을 한층 끌어올릴 결심이시였다.
탁상시계는 어느덧 밤 12시를 알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시계를 바라보시다가 불현듯 미소를 지으시였다. 어리신 아드님의 모습이 떠오르시였던것이다.
전군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대회를 계기로 평양에 올라가셨을 때 일이다. 댁에 들어와서도 늦도록 집무를 보시였다.
밤 12시가 되였을무렵 조용한 기척에 고개를 드니 아드님께서 걱정과 애원이 담긴 모습으로 서재의 문가에 서계시였다.
《아버님, 주무실 시간이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그런데 정은인 왜 아직 자지 않느냐?》
《아버님께서 주무시지 않으니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이께서는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시였다.
《그럼 나도 인차 자리에 눕겠다. 그러니 정은이도 어서 가서 자야지.》
아드님께서는 무엇인가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듯 잠시 그 자리에 서있다가 조용히 물러가시였다.
시간은 사정없이 흘렀다.
또 무슨 기척에 고개를 드시니 아까처럼 아드님께서 문가에 서계시였다.
《아버님, 새날이 밝아옵니다.…》
그이께서는 그제야 벽시계를 바라보시였다. 어쩐지 아드님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드시였다. 이러다간 한잠도 못 자게 할것만 같으셨다. 그래서 일단 보시던 문건을 덮으시였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구나. 이젠 정말 자겠다. 이제 누우면 잠이 잘 올것 같구나!》
그이께서는 정말 피로를 느끼시였다.
아드님께서도 그걸 느꼈는지 약간 갈린 목소리로 인사말을 남기시였다.
《아버님, 편히 쉬십시오.》
《그래, 정은이도 잘 자거라.》
별수없이 잠자리에 드시였다. 폭신한 침대였다. 그런데 웬일인가. 누우면 인차 잠이 올것 같았건만 무엇때문인지 잠자리가 편안치 않으시였다. 자신도 모르게 조심히 몸을 뒤척이시였다. 그러나 피로대신 정신은 점점 더 맑아오는듯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비로소 느끼시였다. 달리는 승용차나 렬차안에서의 쪽잠에 습관되시다보니 이젠 가정의 폭신한 잠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지시였던것이다. 그래도 아드님의 념려도 있고 하여 그냥 잠을 청해보려 하였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으시였다.
잠시후 잠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그러시고는 조심히 탁상등을 켠 후 다시금 문건을 마주하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언뜻 그 무슨 인기척을 느끼시였다. 생각되는것이 있어 출입문쪽으로 고개를 돌리시였다. 그러나 서재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슴속에 한없는 애정감이 북받쳐오르시였다.
《정은이냐? 들어오거라.…》
아닐세라 문이 열리며 아드님께서 들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정겹게 이르시였다.
《어서 가까이 오거라.》
아드님께서는 공손히 다가오시였다. 순간 가슴 뭉클한 충격을 느끼시였다. 아드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었던것이다.
《미안하구나. 그런데 어쩌겠니, 잠이 오지 않는걸…》
아드님은 그냥 고개를 숙이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그윽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오래간만에 집에 들어왔건만 정은이하고 오손도손 이야기할 사이도 없었구나. 아버지를 원망했겠지?》
뜻밖에도 아드님께서는 눈에 물기가 그렁하여 고개를 가로저으신다.
《아닙니다. 아버님은 우리 가정의 아버지이시기 전에 온 나라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님, 난 크면 아버님이 밤을 밝히며 일하시지 않도록 사업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몹시 감심하시여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래, 고맙구나!》
그 새벽, 려명이 시작될무렵 그이께서는 전선길을 향하여 또다시 야전차에 오르시였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으시였다. 제 어머니곁에서 손을 저어주시던 아드님의 모습이…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에서 일어서시여 천천히 방안을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정은아, 리해하거라. 나도 령도자이기 전에 인간이고 그 누구보다도 생활을 사랑한단다. 나라고 왜 힘들 때가 없고 명절날 하루만이라도 가정속에 있고싶은 생각이 없겠냐. 그러나 너도 말하다싶이 나는 한가정의 아버지이기 전에 온 나라의 아버지구실을 해야 한단다.…
그이께서는 문뜩 록음기가 놓여있는 탁자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앞에 놓여있는 한장의 악보와 록음카세트가 보이였다. 그것이 만수대예술단 단장 박영순이 직접 창작한 노래라며 서기가 가져다놓은것임을 알아차리시였다. 악보부터 펼쳐드시였다.
《오늘도 7련대는 우리앞에 있어라》
무엇인가 훅― 끌려드는듯 한 제목이였다. 주의깊게 가사를 한소절한소절 읽어나가기 시작하시였다. 그다음 탁자옆 의자에 자리를 정하시고 다시금 진지하게 반복하여 가사를 읽으시고나서 카세트를 록음기에 끼우시였다.
순간 조용한 방안을 울리며 행진곡조의 힘있고 장중한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이께서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젖히시고 가사와 선률을 음미해보기 시작하시였다.
어느덧 노래가 끝났지만 그이께서는 한동안 자리에 그냥 앉아계시였다. 노래속에 담겨져있는 높은 시대성, 호소성, 철학적정서… 아쉬운것은 남성중창으로 형상한것이다. 이 노래를 공훈합창단에서 형상한다면!… 그 형상의 폭을 담아 그이께서는 가사의 제목을 나직이 외우시였다.
《오늘도 7련대는 우리앞에 있어라.》
의자에서 일어나시여 창가로 걸어가시였다. 달빛에 함뿍 젖은 바다물결이 해당화숲너머에서 일렁이고있었다. 저 멀리 방파제쪽에서 등대불이 반짝이고 어선인지 수송선인지 모를 배들이 부두를 향해 귀항하고있었다.
불현듯 김정일동지께서는 열병대오의 맨 앞장에서 보무당당히 행진해가는 오중흡7련대의 장한 모습이 보이는듯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훌륭한 노래가 나온 기쁨속에 만수대예술단 단장 박영순에 대해 회억하기 시작하시였다. 중학교를 나온 후 청진제강소 로동자로 입직, 그 나날에 가사문학을 자습했으나 천성적인 좋은 목소리로 하여 음악대학에서 자기의 재능을 련마, 졸업후 성악배우로 된 다음에는 제8차, 제9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련이어 참가하여 은메달, 금메달을 쟁취…
그이의 발기에 따라 만수대예술단이 창립될 때 어버이수령님의 접견까지 받았던 박영순은 남성성악조장이 되였다. 그 나날 그에게는 예술인으로서 지닐수 있는 영예가 다 차례졌다. 국내외적으로 이름떨친 만수대예술단의 명성과 함께 인민배우로, 국제콩클수상자로까지 되였다. 그러나 박영순은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꼭 쓰고싶은것이 있었던것이다. 그는 이미 제강소시절부터 가지고있던 가사문학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배우생활을 하면서 인민의 사랑을 받는 수많은 노래를 내놓았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것이 있었다.
1970년대말 박영순은 그이의 탄생일을 맞으며 《2월의 명절을 축하합니다》노래를 창작하여 만수대예술단의 무대에 올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이께서는 박영순을 불러 엄하게 추궁하시면서 당장 《4월의 명절》로 고칠것을 지시하시였다.
박영순은 사정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이 노래는 2월의 명절을 두고 지은 노래인데 어떻게 4월의 명절로 고칠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지 않아 지금 4월의 명절에 대한 노래를 창작하고있는중입니다.》
박영순은 그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월의 명절을 축하합니다》를 그냥 두고 어버이수령님의 탄생일에 가서 4월의 명절을 노래한 《축배의 노래》를 창작하여 무대에 올렸다.
그이께서는 4월 15일 경축공연때 《축배의 노래》가 그처럼 훌륭히 창작된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래서 전인민적감정을 담아 후렴부 《동무여 축배의 이 잔을 들자》대신 《동무여 축원의 노래 부르자》로 고쳐 부르게 한 다음 노래제목도 《축원의 노래》로 바꾸어 세상에 내놓도록 하시였다.
이처럼 당의 기초축성시기 당과 숨결을 같이하며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워온 박영순이였기에 오늘의 이 난국속에서 당의 의도를 시대의 요구로 심각히 받아들이고 훌륭한 가사를 써낸것이 아니랴.
그이께서는 올해초 전선군단들을 료해하고 돌아온 로명욱상장을 만나던 때를 생각하시였다. 그때 벌써 그이께서는 오늘의 준엄한 정세를 193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와 이어보며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고있는 부대, 구분대장병들의 지향을 보고받으시였었다. 박영순은 그 시대정신을 정확히 포착하고 가사에 이렇게 반영한것이다. 그것은 곧 현실체험이 낳은 귀결이기도 했다.
그이께서는 앞으로 노래가 군인대중에게 줄 생명력을 생각하며 집무탁으로 돌아와 다시금 가사를 펼쳐드시였다.
오늘도 7련대는 우리앞에 있어라
백두밀림 헤쳐온 항일의 준엄한 나날에
사령부를 보위해 한목숨 바쳐온 7련대
세월은 이 땅에 저 멀리 흘렀어도
오늘도 7련대 우리앞에 있어라
포연속을 뚫고온 성스런 군기앞에도
위훈떨친 돌격대 그 기발앞에도 7련대
백두의 혈통을 억세게 이어주며
오늘도 7련대 우리앞에 있어라
주체위업 빛내갈 일심단결의 대오에
백전백승 힘을 준 혁명의 영원한 7련대
김정일장군님 안녕을 지켜가며
오늘도 7련대 우리앞에 있어라
그이께서는 천천히 펜을 드시였다. 그리고 가사 3절의 앞소절인 《빛내갈》과 후렴부인 《김정일장군님 안녕을 지켜가며》에 밑줄을 그으시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오늘의 고난의 행군은 어떤 행군인가? 어버이수령님의 유훈과 이어진 주체혁명위업을 오로지 총대로 끝까지 관철해나가기 위한 사생결단의 행군이다. 그 길에서 이 김정일이도 전사다!… 그래서 피눈물의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버이수령님의 전사,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한마음한뜻으로 힘차게 일해나 가자고 호소하지 않았던가.…
여기까지 생각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활달한 필체로 가사의 《빛내갈》을 《받드는》으로, 《김정일장군님 안녕을 지켜가며》를 《내 나라 내 조국 부강을 지켜가며》로 힘있게 가필하시였다. 그리고 앞표지에 공훈합창단에서 다시 형상할데 대하여 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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