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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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차영진이 도당으로 떠나려는데 다급한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그맘때면 늘 오는 경영위원장의 전화인줄로 알았는데 수화구에서 군안전부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놀라운 보고였다. 이른새벽에 지나간 지진으로 읍거리 십자로근처의 아빠트에 자극적인 파렬음과 함께 균렬이 심하게 가서 자던 사람들이 질겁하여 밖으로 뛰여나오는 소동이 벌어졌다. 여론이 나쁘다. 사람들은 벽이 험하게 갈라진것을 보고 집을 어떻게 지었으면 이 모양이 되는가고 하며 건설한 사람들을 비난하고있다. 아침에 그 집 베란다가 저절로 허물어져내렸다. 이웃집에서도 균렬이 간데를 두군데나 발견했다. 사람들은 그쯤한 떨림에 저렇게 된것을 보면 집을 지을 때 시공을 아주 잘못했거나 세멘트의 질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사는 집에 대하여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불안해하고있다. 그 두채의 아빠트는 3년전 군자체로 생산한 세멘트로 지은것이다…
그 심상치 않은 사건으로 하여 도당에 올라가려던 생각은 물거품처럼 날아나버렸다.
차영진은 사고현장으로 황황히 달려갔다. 문제의 그 아빠트는 주먹이 드나들만한 균렬로 두동강이 나있었다. 한발 늦어 사고현장에 나타난 구영세부위원장은 얼굴이 거멓게 질려 아빠트를 돌아보고는 사람들을 다른 집들에 동거시키고 그 아빠트는 비워두도록 하였다.
그 뜻밖의 사고는 법기관의 주의를 끌지 않을수 없었다. 검찰소의 박검사와 군안전부의 한 과장이 사고현장을 돌아보고 균렬의 넓이와 깊이, 길이를 자로 재여보고 사진까지 찍은 다음 세멘트공장으로 나가 로동자들과 담화하고 주상민을 만나고 가서는 다음날 그를 검찰소로 불러들였다. 세번이나 심문에 가까운 료해담화를 하였다.
어느날 오후 검찰소장이 차영진을 찾아와서 주상민을 구류하고 예심하겠다고 제기하였다. 차영진은 소리쳤다. 안된다고…
검찰소장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불량세멘트를 건설장에 내보낸데 대해서는 법무생활의 요구를 보아도 법적인 추궁을 해야 한다, 그는 전과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차영진은 말했다. 사고원인이 세멘트에만 있지 않다, 설계, 시공, 건물의 관리리용에도 결함이 있을수 있다, 한사람의 죄인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놓고 그한테 모든 책임을 넘겨씌워서는 안된다! 검찰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여러가지 소소한 원인들이 있지만 근본원인이 세멘트에 있기때문에 주상민에게 주의가 집중되지 않을수 없다고 하였다.
차영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세멘트의 기술검사자료를 가져오라, 그것을 심의하기전에는 주상민을 절대로 건드리지 못한다. 검찰소장은 얼굴이 벌겋게 되여 물러갔다.
바로 그날밤 주상민이 없어졌다. 아침에 숨이 턱에 닿아 군당으로 뛰여온 세멘트공장 세포비서 박재순은 주상민이 안해한테 도세멘트공장에 좀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집을 떠났다고 하였다. 도세멘트공장에 알아보니 그런 사람이 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한편에서는 주상민이 갔을만한데 다 알아보며 그의 종적을 찾고있을 때 다른편에서는 불길한 여론의 검은 파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밀려들었다. 주상민은 공명심에 환장하여 질이 낮은 세멘트를 망탕 생산해내고는 이제와서는 책임이 두려워 도망쳤다. 닷새가 지나고 엿새가 지나도 그가 나타나지 않자 여론은 더 험해졌다. 그가 어떤 인간인가? 여기로 오기전에 벌써 죄를 짓고 관대처분으로 살아난 전과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 제도를 등지고 남으로 도망친 반역자이다. 그런 작자한테 세멘트생산을 책임지운것자체가 잘못이다. 다른 살림집들도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차영진은 해당기관에서 사고원인과 주상민의 행처도 밝혀내니 근거없는 억측을 하지 말며 함부로 누구를 의심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당조직선을 통하여 돌아가는 여론을 가라앉히려고 무진애를 썼다. 경솔한 소리를 했거나 옮긴 사람들을 되게 비판하도록 하였다. 하면서도 문득문득 착잡한 의심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그에 대한 믿음이 물먹은 흙담벽처럼 부슬부슬 허물어져내리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가 정말 겁을 먹고 도망친것이 아닌가. 절망끝에 극단적인 생각으로 어디엔가 숨었다가 벌써 세상을 하직한것이 아닌가. 아, 사람이란 이렇게 배신적이고 리기적인 존재인가… 아니다. 그럴수 없다!
차영진은 그가 석회석덩이를 그러쥐고 산에서 뛰여내려오던 일, 세멘트의 질을 높이려고 창의고안을 하던 일… 지난날의 모든 일들을 돌이켜보며 무너지려는 믿음을 다잡았다.
어느 저녁녘 그가 주상민의 안해를 다시 만나보려고 사무실에서 나가려는데 조직부의 책임일군이 들어와 도당위원회에서 료해하는 사이 당분간 사업에서 물러나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알려왔노라고 하였다.
《사업정지인가?》
《…》
《발생한 사고때문이겠지…》
《그것도 그렇지만 도당에 신소가 제기된것 같습니다. 신소내용이 보고되여… 당중앙위원회 조직부 부부장동지가 도에 내려왔습니다. 도당검열위원장과 함께 여기로 떠났답니다.》
《알겠소.》 하고 영진은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며칠사이 일들이 떠오르며 생활의 우연들이 모두 련합하여 자기를 운명의 낭떠러지로 끌어가려고 안깐힘을 쓰는것 같았다.…
날이 아주 어두워 부부장일행이 군당에 도착하였다.
도당검열위원장은 심각한 얼굴이였으나 조직일군다운데라고는 전혀없이 유순하고 무던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성미가 고박해보이는 부부장은 그의 손을 잡으며 흔연한 얼굴로 류수명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였다. 그리고는 항다반사를 이야기하는듯한 어조로 신소가 제기된 문제를 료해하러 왔다고 하고 몇마디 인사말을 나눈 다음 래일 다시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려관으로 갔다.
차영진은 방안에 홀로 남았다. 그는 진정을 못하고 공연히 방안을 왔다갔다 거닐다가 무엇엔가 흠칫 놀라 뚝 멎어섰다. 저 부부장과 얼굴인상이 비슷한 사람을 어디서인가 만난듯싶었던것이다. 하지만 흘러간 생활의 갈피를 아무리 뒤져봐야 언제 어디서 만났던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다음 다른 생각이 뇌리에 번개쳤다. 신소문제인데 어째 조직부 부부장이 내려왔을가? 혹시… 혹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직접 파견하신것이 아닌가?! 생각이 이런 곬으로 내달리자 불안감, 긴장감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모진 자책감에 가슴이 못견디게 저려들었다. 군을 잘 꾸려놓고 그이를 모시고싶었는데 어떻게 일했으면 신소문제까지 보고되게 했는가.
이튿날부터 영진은 사업정지를 당한 처지여서 송수화기를 전화기에서 내려놓고 내내 응접탁에 나앉아 자기 사업과 개체생활 전반을 반성해보면서 그들의 료해사업에 개의치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자꾸 신경을 쓰게 되였다. 그들이 군당에 사람들을 불러들이지 않고 일터에 나가서 만나며 일이 점점 심상치 않게 번져진다는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자기가 군당책임비서로 임명된후 해놓은 일들이 생각나며 울분이 터져오르는가 하면 자신의 사업과 생활에 빈구석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며 끝없는 죄책감에도 잠기게 되였다. 가슴이 바작바작 타들었다. 어떤 순간에는 목안에서 겨불내가 풍겨올랐다. 누구도 찾아들어오지 않았다. 당규률이란것을 알면서도 섭섭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
이따금 밤이 깊어지면 젊은 조직비서가 들어와서 퇴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차영진은 주상민의 행처가 밝혀졌는가고 물었다. 조직비서는 난감한 얼굴로 아직 모른다고 머리를 가로저어 보였다. 퇴근길에 올라 나란히 걸으면서도 그이상 사업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차영진은 누가 신소했으며 신소내용은 무엇인지, 료해과정에 어떤 문제가 제기되였는지… 알고싶은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물론 류수명부부장이 마감에 모든것을 죄다 알려주고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의견까지 들려주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알고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번민하자니 가슴이 더 끓어번졌으며 누구의 손이나 붙잡고 하소연도 하고 묻고도싶었다. 이 조직비서는 무엇이나 좀 알고있을것이며 물으면 아는것만큼 대답해줄수도 있으련만 당규률을 어길수 없고 또 자존심때문에 입을 굳게 다물고 한마디 묻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사태평한 사람처럼 허세를 부리며 스포츠소식이나 만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두사람은 침묵속에 퇴근길을 나란히 걸어가군하였다.
어느날 저녁녘이였다. 뜻밖에도 송규태가 그의 방에 나타났다. 송규태는 혈색이 좋은 얼굴에 의기양양해진 표정을 짓고 류수명부부장이 나까지 불러들이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며 응접탁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앉았다. 그리고는 제철지구에서 들어오는 길이라면서 담배를 권하였다. 차영진은 이전의 감정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그가 여간 반갑지 않았다.
《제가 일을 쓰게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죄송합니다.》
《원 별소릴… 일을 하느라면 과오를 범할수도 있지. 그런데 얼굴은 왜 그 모양이요? 마라리야환자처럼…》
영진은 머리를 싸쥐며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였다.
《아니 영진이, 언제 이런 졸장부로 됐나? 허허허…》
《너무 기막혀서 그럽니다.》
《내 잘못도 있소. 인계할 때 주상민… 그놈에 대해서 강조하는건데 그만 잊었거든, 잊었소. 큰 재목도 아니니까 그렇게 됐거든. 허참…》
《…》
《제철지구에서 도에 들어와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했댔소. 여보, 그런놈한테 세멘트생산을 통채로 떠맡긴건 너무했소. 도에 올라간 다음 그런 말을 듣고 미타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 내가 충고한다고 들었겠소? 믿으라, 포섭하라는것이 당의 정책이기도 한데…》
《저는 믿었댔습니다. 믿어주면 충신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책임지겠다고 그런 모험을 하겠는가.》
차영진은 얼굴을 들고 그를 빤히 지켜보았다. 항변하고싶어도 믿었다가 엄중한 사태를 빚어낸 자기로서는 할 소리가 없었던것이다.
《주상민이… 그놈이 어디 갔을가?》
《아직 행처를 모릅니다.》
《여보, 류수명부부장앞에서 자기비판을 잘하오.》
《저…저, 부부장동지가 제가 아는 사회과학원 한 박사선생과 얼굴모색이 비슷합니다. 이름도 비슷하고… 형제간이 아닌지?…》
《류수진박사말이요?》
《압니까?》
《알지 않구.》
《예… 인민경제대학에 가 공부할 때 박사선생의 강연을 듣다가 론박한 일이 있습니다. 아마 불쾌했을겁니다.》
《사람이란 모른다네. 그 동생이 료해하러 내려왔거든, 허참, 인생이란… 영진동무한테는 확실히 고쳐야 할 문제가 있어…》
송규태가 류수명부부장이 든 려관으로 간 다음 영진은 담배를 연거퍼 피우며 고민에 시달리다가 밤이 깊어 퇴근하였다. 그는 인적이 없는 거리를 따라 안해가 기다리는 집쪽을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갔다. 괴괴한 정적속에 그의 발자욱소리만 저벅저벅 울렸다.
어스름이 자욱히 서린 거리는 그 발자욱소리에 귀를 강구고 아직 꺼지지 않고있는 멀고 가까운 몇개의 불빛들이 그를 유심히 여겨보는듯하였다. 고개를 수굿하고 묵묵히 걸어가던 차영진은 누가 신소했을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걸음을 멈추었다.
울분이 터져올랐다. 그는 어둠이 서린 집집의 창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누가 신소했는가, 나한테 원한이 서린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여태 군안의 인민들을 도시나 벌방지대 사람들 못지 않게 유족하고 문명하게 살게 해보자고 밤낮 애써왔다. 나한테 어지러운 사심이라도 있었던가, 내가 누구의 운명을 해쳤거나 모욕한 일이라도 있었던가… 그는 한동안 어스름속에 서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몇걸음 못가서 다른 생각이 채찍처럼 량심을 때렸다. 어쨌든 인민들속에서 신소가 제기되게 한것자체가 죄악이다. 이건 죄악이다, 죄악이다! 저 부부장동지가 직접 내려온것을 보면 도당에서 여기 사태를 당중앙에 직보했으며 그이께서 몹시 심려하여 그를 내려보내신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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